용기 없는 일주일 창비청소년문학 67
정은숙 지음 / 창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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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반 찌질이  왕따 용기가 교통사고가 났다,

점심시간 친구들의 빵 셔틀때문에 편의점으로 나갔다가 트럭에 치인 사건

있는지 없는지 존재감조차 희미한 그 녀석의 교통사고가 한 반 전체를 나중에는 학교 전체를 흔들어버린다,

용기없는 일주일

그건 우리반 찌질이 박용기군이 병원에 입원해서 없는 일주일을 의미하며

동시에 교실에 남은 우리들 모두 용기없음에 망설이고 부끄러워하고 의심하는 일주일이다,

 

용기의 사고를 전하며 담임선생님이 말했다,

"용기를 힘들게 했던 세녀석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중에서 셋  딱 일주일 주겠다, 자수해라  더 이상 양심을 속이지 말고 자신이 했던 일을 고해해라 자꾸 돌러보지마, 쟤일 수도 있지만 너일 수도 있어, 넌 아닐거라고? 자신하지마 세명 중에 의외의 인물도 있어서 깜짝 놀랐으니까 "

 

두명은 용기를  대놓고 괴롭힌 허치승과 오재열 그리고 하나는?

모두가 그 하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내가 아닌게 분명하지만 나는 쟤보다는 덜한게 분명하지만 용기 그자식이 내 이름을 말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혹시 그 하나?

선생님이 준 일주일동안 교실은 술렁거리고 사건들이 생긴다,

누군가가 학교 익명게시판에 누군가의 이름을 썼고

누군가들은 모여 도데체 그 한명이 누구인지 추리하기 시작한다,

모두 찜찜하다

용기를 놀릴때 말리지 않았고

용기가 사온 음료수를 마셨고

빵을 사오기를 원했고

찌질하다고 놀렸고 뒷담화를 했고

그걸 알고나 있으라고 정직하게 말해줬고

전화를 씹었고

용기가 아닌 누구라도 내게 거슬리면 미워하고 저주하고 욕을 했다

누구도 완전히 무죄라고 말하라 수 없는 상황에서 다만 일주일안에 누구라도 나서주기만을 기다리며 눈치게임에 들어갔다,

 

학교 왕따 이야기는 늘 아프고 무겁다,

용기없는 일주일도 편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작가는 미스테리 형식으로 과연 용기가 언급한 세명이 누구인가에 맞춰 딱 15살 눈높이에서 사건을 풀어나간다,

누구나 타인을 미워할 이유가 있었다,

예전에 나를 놀려서

나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해놓고 무시해서

공부 잘한다고 잘 난척을 해서

왠지 꼴보기 싫어서

나만 아니면 괜찮으니까

아이들은 서로 물로 물리는 관계로 권력체계를 만들어가고 그  계급단계에서 아이들은 순종한다

누가 누구의 위이고 아래인지 아이들 사이에서는 철저하다

평화중학교가 평화로 가장한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걸 보면

평화라는 것이 어쩌면 가장 폭력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냥 선생님이 보기에 평화로우면 그만이고 학폭에만 안걸리면 그만이라고 암묵적으로 서로 쉬쉬하고 덮고 넘어간다,

선생님들은 그냥 모른 척 한다, 시끄럽지 않고 지금 이순간만 넘어가면 그만이다,

 

아이들은 천진하지 않다,

천진하다는 건 무지하다는 것과 비슷해서 무지해서 몰라서 누군가를 괴롭힌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일만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눈앞에 불의를 응징하는 내 행동은 언제나 정의롭고 잘봇되지 않았다고 믿는다,

친구에게 욕을하고 못되게 구는 애한테는 똑같이 대하는 것이 정의라고 믿고

나쁜 애들한테는 나쁘게 대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모른 척 하고 집단으로 힘을 부라리는 일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왜 몇몇의 잘못된 애들 때문에 우리 전체가 벌을 받고 부당한 일을 당해야 하는지 억울해할 뿐이다,

공평하다는 것은 저마다의 기준이 있어서 저마다의 공평들이 모이면 그 이상 불공정이 없다는 걸 모른다, 사실 어른들도 모른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공평함이란 없다는 것이 세상의 유일한 공평함인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이면을 보지 못하는 것은 15살이나 46살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보는 것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을 보고 판단한다,

용기가 35억의 자산을 물려받을 프린스라는 것조차 아이들이 보고싶고 듣고 싶은 것만 모여 만들어진 허상이고 용기의 찌질함속에 숨은 마음은 아무도 모르고  용기를 괴롭힌다고 믿은 허치승의 마음속 상처도 아무도 모른다, 정의를 위해 행한 내 행동이 사실은 얼마나 치사하고 나만을 위한 일인지도 모른다,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에게 공감하고 맞춰준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음을 우리도 나도 모른다,

그저 내 마음은 이런데 몰라준다고 타인을 탓하고 원망하고 힘들어 할 뿐이다,

 

책을 읽으며 교실속 왕따문제가 결국 타인에게 통하지 않고 공감하고 공감받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누군가의 마음을 생각하고 그 생각을 움직여가는 것이 쉽지 않다,

용기에게 해드락을 걸고 키득거리는 일이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용기가 뭐라고 하는게 아니니까 누가 다치겨나 더 극단적으로 몰리는 게 아니니까 심지어 용기는 돈이 많고  당해도 괜찮을 만큼 여유가 있으니까라는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눈을 감고 외면하고 당연히 생각한다,

쟤보다는 내가 낫고 나는 저만큼은 나쁘지 않다는 나 중심의 믿음이 결국 용기없는 일주일을 만든다.

 

도데체 일이 어떻게 풀릴지 정말 그 3명이 누군지 궁금해서 책장을 넘기는 나도 속물이라고 생각되었다, 세명이라는 숫자에 집착해서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 나서서 십자가를 지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내 속에도 잇었던 거 같다,

누군가 나서서 그냥 일을 해결해주길 바라는 마음

나는 그냥 넘어가길 바라는 마음을 읽는 동안 내 속에서도 발견한다,

일주일이 지나고도 아이들 마음에 남은 제 3의 인물이 주는 따끔거림이 오래가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가끔은 따끔거림을 느끼면서 각성되면 좋겠다

 

에필로그를 다 읽고 별 거 아닌데 궁금한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평화중학교 복도에 걸린 위인들의 사진은 어떤 순서로 걸어 놓은 걸까?

도무지 질서가 없는 그 조합의 의미가 뭘까 심히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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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여러가지 단편들이 모인 작품집에서 모든 작품이 균질하게 고른 수준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이 책처럼 여러 작가가 공동 작업한 책인 경우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도 있다,

나 역시 그렇다,

 

내가 관심을 가진 작품은  <지옥으로 돌아온 소녀>  <진실을 말할것> < 5달러짜리 드레스>

<디지와 길레스피> <빨간 머리 의붓딸> 정도다

아 <전용윤 여사의 아들 중매> 도 괜찮았다,

 

큰 스케일의 작품보다는 작고 소소한 소품같고 코지 미스테리풍의 작품을 좋아하는 개인 취향도 있고 의외로 사소하고 사적인 관계에서 일어나는 섬뜩한 순간이 더 마음이 끌린다고 할까

위 작품의 공통점을 억지로라도 찾아보자면 그런 부분이외에

관계에서 대상을 바라볼 때 내가 보는 것만 본다.. 라는 점이다,

 

<지옥으로 돌아온 소녀>와 <빨간 머리 의붓딸>의 경우는 어른이 어린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자기도 모르게 내가 만들어 놓은 아이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

아이를  천진하고 순수한 존재로 볼 것인지 아니면 영악한 어린 악마로 볼 것인지의 전제하에 대상을 바라본다,

물론 이건 개인의 성향이기도 하지만 그 대상인 아이가 그동안 보여준 혹은 내가 그동안 보아온 모습에서 판단해서 내가 보고 싶은 것 더 눈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옥으로 돌아온 소녀의 매덕스는 좋은 소녀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를 바라보던 남자의 시선 역시 자기 판단에 갇혀있다,

학교에서 아이가 벌인 여러가지 사건들 분란들로 아이를 규정해버리고 이후 그 아이의 어떤 행동이든 그 나름 개인적인 의미가 있다는 걸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판단하고 갖게 된 틀안에서 아이를 바라본다, 결국 그 아이는 도저히 손 델 수 없는 문제아이고 스스로 기회를 저버리고 자기를 망쳐버렸다는 것에 불과하다,

그 아이의 진실을 알아보는 방법은 충분히 있었다,

그냥 자기 딸과 대화를 하거나 둘이서 메덕스에 대해 수군거리기만 했어도 진실에 보다 가까워질 수 있었을 텐데

결국 나의 틀에서 한치도 어긋나지 않게 대상을 보고 판단하고 평가해버린다,

토마스 쿡은 그런 일상 생활속에 사람이 가지는 편견 혹은  가치관이 가지는 섬뜩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 <붉은 단풍>에서도 그런 점이 있었다,

<빨간 머리 의붓딸>은 또 다른 대척점에 있다, 어른들은 아이를 순수하게 바라보고 규정한다,

일단 모범생은 영원한 모범생이다,

그 아이가 저지른 일탈은  "어쩌다가 이런 일이....." "친구를 잘못  만나서" 혹은 한 번의 실수로 넘겨버린다, 그 속에 숨은 유치해서 더 음흉하고 위험한 의도는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의 아버지 역시 그렇다, 똘똘하고 착한 내 딸은 늘 그러리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고

내가 끔찍하게 싫은 머릿니라든가 떨어지는 학업능력을 가진 의붓딸에 대한 편견이 모여서 대상을 내가 보고싶은 대로 본다,

아이들은 순수하지만은 않다,

아니 순수해서 영악할 수 있고 순수한 마음이 상처를 만들기도 한다,

 

<5달러짜리 드레스>의 할머니는 사건의 진실에 다가갔을까?

그녀가 다가갔다면 내가 본 걸 부정한 삶을 살았던 것일테고 몰랐다면 일생을  보여지는 것 이면은 생각하지 않았음이다,

별 것 아니지만 평생 누군가에게 속았으리라는 그 삶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하기도 했다,

 

<디지와 길레스피>는 슬픈 이야기다,

화려하지만 낡고 쓸모 없는 집에 남겨진 모녀의 이야기부터 그렇다,

화려한 과거를 부여잡은 엄마와 그곳을 벗어나고 싶지만 능력이 없어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딸 이야기도 그렇고 자기의 잘못이 아닌데 스스로 강박증같은 죄의식으로 일을 크게 만들어버린 모녀의 행동 (특히 엄마의 행동들)이 슬펐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 그 부분에 너무 몰두해서 전체를 보지 못하거나 다른 부분에 관심을 돌릴 여유가 없다는 것 그것이 사건을 만들고 일을 크게 만든다,

후회는 언제나 늦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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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미래에 사라지는 직업들

그래서 택해야 하는 전공과 직업

미래에 대한 전망

입시를 앞둔 아이

....................

 

모든 불확실속에서 인간만 할 수 있는 일

기계는 로봇은 결코 생각할 수 없는 일은

 

아마

패배하는 것

멍 때리는 것

무용한 일에 몰두하는 것

내가 좋으면 그만인 일을 하는 것

그리고 체온을 나누며 안아주는것

 

조용히 책을 읽는 것

수다 떠는 것

 

아마 세상에서 가장 무가치하다고 여겨지는 일에 내 모든 것을 쏟는 것

뻔히 보이는 실패로 밀고 가는 것

그래도 후회하지 않은 것이야 말로

인공지능은 절대 못하는게 아닐까 싶다,

 

 

망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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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에 돌 자갈 모래 물을 담는 문제가 있다,

어떻게 넣으면 가장 많이 상자에 넣을 수 있는가

 

 

 

 

 

 

 

 

 

답은 가장 큰 것부터 넣는다 이다

가장 큰 돌멩이를 넣고 그다음으로 큰 자갈을 사이에 넣는다

큰 덩어리일수록 사이사이 빈 공간이 크게 생긴다

그 사이의 공간을 작은  자갈로 채우고 또 그 사이의 공간을 모래가 채우고

그리고 보이지 않은 틈을 물이 채운다,

가장 큰 것부터

그렇게 빈곳을 채운다,

 

사람의 관계도 그렇다

첫눈에 들어오는 것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

그것이 가장 먼저 닿는다,

얼굴 말투 표정 몸짓

익숙하고 친근한 그것이 먼저 다가오고

그 이후 취향이 보인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하고 싶은 것  피하고 싶은 것

그건 조금만 더 알게 되면 드러난다,

취미  옷입는 취향 음식에 대한 까탈스러움 소탈함

그리고 더 욱 깊이 들어가 마음이 보인다,

이런 표정은 이런 마음이구나 저런 표정은 저런 것이구나

그러나 알아가도 보이지 않는 틈이 있다,

물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은 눈에 드러나지 않기도 하는 법이다,

왜 저럴때 화를 내는지

별 거 아니었던 거 같은데 민감하게 구는 건지

어제까지도 아무렇지 않았던 일이 왜 지금 새삼 걸리는 것인지,,,

그렇게 관계는 모든 틈을 메울 수 없다,

나 자신도 나 자신의 모든 틈을 속속들이 알 수 없다,

 

타인은 그러서 두렵고 불안하다,

동시에 매혹적이다,

나와 다르다는 것 내가 모른다는 건 불안과 동시에 유혹이다,

모르니까 알고 싶고

모르니까  외면하고 싶다

익숙함에서 편하고 싶으면서 동시에 타인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그리고 그 타인과 나 사이의 빈틈을 매운다

조금씩 큰 것부터 보이는 것부터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부터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두 주인공이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면

서로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한 것이었다면

이렇게 깊은 내면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얼굴은 가면이기도 하다

내가 쉽게 숨길 수 있고 보고 싶은 것 보이는 것만 본다,

그러나 틈을 가진 두 사람이 보지 않고

편지를 쓴다는 건 어쩌면 대상이 있긴 하지만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얼굴을 보지 않으니 맞출 필요도 없고 눈치 불 필요도 없고 미루어 짐작할 필요가 없다

대상은 있으되 오롯이 집중되는 건 나 자신이다,

서로 편지가 오가지만

어쩌면 일방적인 내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렇게 두 사람의 빈틈이 메워간다

내가 알지 못했던 내모습도 타인의 편지에서 찾아낸다,

어쩌면 일방적인 소통이기도 한 편지가 나를 비춰준다,

그게 편지의 속성같다

 

아직 틈이 많은 순간은 내용이 추상적이다,

마음을 이야기하고 감정을 이야기하면서도 이성적이고 무언가 나를 포장한다

그러나 점점 틈이 메워지는 동안 이야기는 구체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사적이고 소소한 에피소드들로 이어지면서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아픈 아이 이야기  자주가는 카페 이야기

현재 동거하는 여자 이야기 새로운 사업 이야기

틈이 어느 정도 메워진 후 이야기가 생기고 흐름이 생겼다,

 

그냥 주절주절 하는 이야기속에 내마음이 있고 내 의지가 드러난다,

묘사로 시작해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틈이 메워지고 두 사람은 그렇게 끝이 난다,

다 메워진 상자는 이제 잘 놓아두면 된다, 다 채웠으니까

편안하고 안정감 있지만 관심에서는 멀어지기 시작한다,

모른다는 것이 주는 빈틈이 주는 긴강감과 호기심은 없다

대신 편하고 안도감이 있다,

관계는 그렇게 된다,

잊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그 상대를 알았다고 느낀들 그게 전부는 아니다,

아마 알것이다, 이제 이해할 만하구나

빈칸은 채워졌으나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많은 빈칸이 있을 것이다,

모든 칸은 채울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타인이란 언제나 내겐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없는 법이니까

 

저자가 말하려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지만

책을 덮고 계속 관계에 관해 생각했다,

내가 맺은 관계들

안다고 여겼던 타인들

모른다고 무심하게 지나친 타인들

짧거나 길거나  오래되었거나 새로운 것이거나

그런 인연이 예사롭지 않다고 그리고 우리 삶에서 어떤 모퉁이가 나올지 모를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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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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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를 쓰면서 저는 당신에게서 받은 모든 편지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것들이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어느 것이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저만의 마음의 무늬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딱 하나 글로 전할 수 있는게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이라는 것을 본 당신은 그것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 무서워졌다고 썼지요 하지만 사실은 짧다고 하면 짧다고 할 수 있고 또 길다고 하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가장 강력한 양식이 되는 것을 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이 편지를 대체 어떻게 맺어야 좋을지 저는 펜을 쥔 채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저는 왜 모짜르트의 음악에서 그런 말을 생각해낸 것일까요?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은 어쩌면 같은 일일지 모른다... 마치 어딘가에서 떨어져 솟아난 것 같은 뜻밖의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편지에 툭 써넣은 일이 당신에게서 제가 몰랐던 많은 것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결코 말하지 않았을 말 '모짜르트'의 주인이 마치 저에게서 들은 것으로만 착각했던 말 우주의 불가사의한 구조 생명의 불가사의한 구조라는 말이 지금 저에게 깊은 전율같은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나이프로 자신의 목을 찔러 죽은 세오 유카코씨  죽여 있는 자신을 바라모았으면서도 다시 살아돌아온 당신 나이 들어 한층 일에 집중하고 있는 쓸쓸한 아버지 또 하나의 숨겨진 가정을 갖고 그 여자와의 사이에 태어난 세 살짜리 여자아이의 아버지로서 고심하고 있을 가쓰누마 소이치로  당신이 고양이에게 먹히는 쥐를 봤던 바로 그 시각에 근처 달리아 화원의 벤치에 앉아 무한한 별들을 바라보던 저와 기요타카 우리의 생명이란 얼마나 불가사의한 볍칙과 구졸르 숨기고 있는 것일까요?

 

 

얼음이 소리없이 녹아내리는 모습

커다란 덩어리의 얼음을  상온에 꺼내놓고 잊고 있다가 무심하게 돌아보니 물이 흥건해져 있고 얼음이 녹고 있는 모습을 보는 기분?

소리없이 제 몸을 녹이는 얼음 그리고 흘러내리기 시작한 물을 바라보는 막연하고 조용한 순간

얼음은 소리없이 언제부턴가 녹고 있었고 그리고 아마 또 어느 순간 제몸을 녹여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  아무짓도 못하고 지켜보고 있는 기분

이 책을 읽는 느낌이 그렇다,

 

세상에 유기체가 아닌게 있을까?

모든 것은 생성되고 성장하고 갈등하고 그리고 소멸한다,

세상에 사라지지 않고 영원하다는 것은 그 형체가 존재하지 않은 추상적인 정의뿐이란 생각을 한다,

사랑 행복 이성 평화 자유 평등....

형태는 없지만 존재하는 그런 어떤 단어의 정의만이 영원할 뿐

그 단어들조차 인간사에 스며들면 스스로 만들어지고 성장하고 갈등을 격고 소멸할 뿐이다,

세상 모든 것들이 플라스틱처럼 썩지않고 계속 삶을 이어간다면 너무 징그럽지 않겠는가

목숨이 달린 것이든 어떤 추상적인 감정이든 심지어 사람들이 모인 어떤 집단도 그렇게 스스로 유기체처럼 만들어지고 성장하고 그리고 그렇게 사라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 기간이 길든 짧든... 그게 이 세상의 변하지 않은 평등한 질서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 소설은 그런 유기체같은 관계 감정에 대한 이야기다,

한 때 부부였으나 어떤 사건으로 남남이 된 아키와 아리마는 우연히 놋코누마로 오르는 케이블카에서 재회를 한다, 짧은 만남이지만 강렬했던 그 순간이후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고

그리고  10년간 방치된 얼음이 상온으로 드러나 녹아내리는 것처럼 마음을 녹여나간다,

상대에 대한 배신감 상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분노로 어긋난 삶을 살던 두 사람은 상대를 알아가게된다, 몰라서 비워놓았던 그 빈칸을 스스로 채워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녹아 형체가 사라진 얼음처럼 그들의 감정 그리고 관계도 그렇게  사라지게 두었다, 미련하게 붙잡을 이유가 없고 필요가 없다

만남이 있고 헤어짐이 있고 행복이 있고 불행이 오고 오해가 있고 이해가 있었다,

그것으로 되었다,

 

안다고 믿었던 상대에 대해 내가 너무나 많은 빈칸을 가지고 있었다는 깨달음

내가 몰랐고 알고 싶지 않다고 고집스럽게 믿었던 상대를 알아가면서 마음은 녹아간다,

이해하게 되고 빈칸이 채워지면서 둘은 이제  비로소 헤어져야 할 시간임을 알게 되고

내 삶에 있는 나의 빈칸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이해하면서 누군가를 이해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 타인을 알아가면서 그 방식을 나에게 적용할 수도 있다,

타인을 통해 나를 알아가는 것

서로의 삶에 나 있는 구멍을 메워나가게 되는 것

그 일들이 서술된 소설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이해가 비단에 아름답게 수놓아지듯이 두 사람의 서신으로 완성된다,

 

다 읽고 난후

이 책의 원서가 읽고 싶어졌다,

묘사가 아름답고 단어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적확하다는 기분?

원작도 그런걸까?

아니면 번역자가 잘 번역을 한 걸까?

번역된 소설에서 우리 소설처럼 아름답고 맛갈나는 단어가 나오는게 신기하다

(어쩌면 내가 우리말에 무지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 '환상의 빛'을 읽어봐야겠다,

아키와 아리마의 편지를 읽으며  내내 우미코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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