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하루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이 '최악의 여자'라고 한다,

영화를 보기전 여러가지 정보를 종합해보면

주인공 은희가 제각각의 남자들에게 하는 거짓말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후 생각은

은희가 언제 거짓말을 했지?

은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제각각의 대상에게 제각각 어울리는 역할을 한 것 뿐이다,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나도 엄마로서 아내로서  학생으로서 친구로서 동료로서 제각각 다른 모습을 보인다,

친구들에게 엄마처럼 굴 수  없고 내 아이들에게 동료처럼 대할 수도 없고 남편에게 딸처럼 어리광을 부리지 않는다, 그건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도 할 수 있다,

맞는 상황에 맞는 에디튜트를 갖추는 것

그건 상황과 장소에 맞는 옷차림처럼 당연한게 아닐까

그리고 종합해보면 현오나 운철에게 각각 다른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다,

대상이 다르지 않은가?

같은 사랑하는 애인이라고 해도 생김새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처한 상황이 다르고 관계가 다르다, 그렇다면 상대에게 맞게 맞춰 줄 수 잇다,

그게 어떻게 거짓말인가

그리고 어째서 은희가 최악의 여자란 말인가

은희는 찌질하고 철없고 자기만 아는 남자를 만난 최악의 상황에 처한 여자일 뿐이다,

어쩌면 현오도 운철도 은희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남자들은 자기 언행은 생각하지 않고 양다리를 걸치고 서로에게 다른 말을 한 은희를 거짓말장이로 만들고 쌍년으로 만들어버린다,

은희 하나가 희생하고 욕을 듣게 되면서 스스로는 괜찮은 남자가 되고 교모하게 상황을 빠져나간다 은희에게 땅을 파고 들어가라고 막말을 해대면서 자기는 매우 선하고 아무 잘못이 없는양 군다,

현오는 철이 없다, 철없음이 젊음이라고 착각한다. 자기의 거짓말이나 자기의 혼돈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자기가 은경이라고 부른 사실은 냉큼  잊어버리고 은희에게만 타박이다,

운철도 이혼도 안한 자기 상황을 무슨 순애보처럼 꾸미고 운명앞에 거부할 수 없는 순정남처럼 행동한다, 그렇게 보이고 싶어하고 은희가 그렇게 받아주길 바라면서 은희에게 젊은 애인이 있음을 알고는 은희만 타박이다,

두 사람은 전혀 자기의 본 모습을 볼 수도 없고 볼 생각도 없고 알려는 의지도 없다,

그냥 은희 하나 이상하고 최악의 여자로 만들고 유유히 빠져나간다,

 

은희는 그렇게 혼자 남산에 남겨졌다,

물론 은희가 두 사람에게 진실하고 진정성이 있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살면서 매순간 진성성을 보이나?

나를 꾸미고 싶고 내가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기도 하고 또 그게 난가? 하는 착각도 하면서 사는 거 아닐까

은희에게 최악이란 하필 자기가 가진 여러가지의 페르소나를 한꺼번에 마주햇다는 우연같지 않은 우연뿐이다,

그게 뭐 어쨌다고.....

료헤이의의 대화에서는 낯선 언어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 없지만 의사소통은 언어만 있지는 않다, 거짓말을 하고 속이려면 언어는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은희는 그 앞에서는 조금 진실하고 본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보여지는 모습을 기대하지 않는 그에게 편안함을 느낀다,

때때로 나를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가장 편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

 

이 하루가 은희에게 료헤이에게 현오에게 더구나 운철에게도 최악의 하루일 수는 있다,

제각각의 이유로

하지만 은희가 최악의 여자라는 건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이런 아침 극장안은 달랑 두명의 관객이  있었다,

두 명은 앉혀놓고 상영해서 뭐가 남을라나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지만 대형 멀리 플랙스에 대한 걱정까지 할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둘 다  비슷한 나이의 동성이라.. 정말 편안하게

먹어가며 눈치보지 않고 웃음을 터뜨려가며 영화를 봤다,

주로 현오나 운철을 보며 기가 막혀 웃고

은희의 영악하게 굴어도 아직 세상을 모르는구나 하는 모습에 혀를 차며 웃었다,

니네들 세상을 더 살아봐야겠구나

겨우 그걸로 최악이니 어쩌니 하는 걸 보니... 하는 아줌마스러운 마음으로 영화를 봤다,

말은 나누지 않았지만 또 한명의 관객 역시 같은 마음 아니었을까

우리는 같은 포인트에서 웃었으니까...

 

삶이란 가까이서 보면 최악이고 더할 수 없는 비극이겠지만 멀리서 물을 마시고 오징어를 씹어면서 보면 더 할 수 없는 코메디고 희극이더라

타인의 최악의 하루에 웃어댄게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주인공들이 10년 정도 더 살고 나면 웃을 수 밖에 없겠구나 하고 알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예리는 예쁘진 않지만 참 매력적이다,

어디에 있어도 참 잘 어울리고 스며드는 배우다,

 

영화는 최악의 하루지만... 그날 나의 하루는 영화로 인해 최악만은 아니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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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워낙 일본소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뭐

누군가는 너무 지루하고 별로였다는 평가도 있었는데 나는 정말 좋다고 하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책에는

'도데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니?"

' 왜 자꾸 그래?"

"말 귀를 못 알아듣니?"

 

이런 말이 없다,

기억이 80분으로 한정된 박사에게 모든 일은 새롭다

그에게는 몇번을 되풀이 해야할 잔소리가 없고 몇 번을 말해도 해결될 기미가 없는 묵히고 묵힌 문제가 없다, 모든 것이 새롭다는 것은 그런 것인가 보다

사실 잔소리가 상대를 변화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고

두고두고 반복하는 나의 실수나 습관은 사실 쉽게 바꿀 수도 없다,

그냥 오랫동안 함꼐 가야할 뭐 그런거다,

 

이 책에서 누구도 지겨워하거나 귀찮아하거나 짜증내지 않는다

심지어 미망인조차,..

그게 참 좋았던 거다,

 

그냥 늘 새롭게 바라봐 주고  그 정도면 괜찮다 라고 말해주는 것

 

잔소리가 없고 지루함이 없는 그래서 불안하고 긴장되지만 그럼에도 새롭고 설레는 하루가 있는

소설이었다,

그래서 좋아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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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9-04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좋게 보신 분들이 많네요. 저는 아직 안 읽었는데.. 함 읽어봐야겠네요..

푸른희망 2016-09-05 10:08   좋아요 0 | URL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곰발님 리뷰가 기대되네요
 

 

 

 

 

 

 

 

 

 

 

 

 

 

 

 

 

음.... 고전적이다, 클래식하다... 뭐랄까 신인다운 발랄함이나 참신함 보다 우직하다고 생각했다,

기교도 없고  어찌보면 그저  담담하게 그러나 절실하게 써내려간 그런 투박한 이야기가 그대로 마음을 치고 들어와 앉아버렸다,

이건 뭐지 싶었다,

내가 평론가는 아니니까 뭐라고 평을 할 수는 없지만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시작한 독서가 어느 순간 정자세를 하게 만들고 읽다가 잠들든지 뭐... 하던 나른함이 다시 어깨를 토닥이면서 다  읽어야 할거 같은 의무감을 들게 했다,

별 거 아닌데,.. 멋진 구성도 아니고 어딘가 툭툭 끊어지고 이어지고 하는 이야기인데

그냥 그렇게 쑥 들어왔다, 어떤 예고도 없이

이건 반칙이지...

사실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싶었었다,

누군가를 담담하게 기억하면서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순식간에 들어가버리는 글을 쓰고 싶었다.

소설 거의 중반이후에 나오는 주인공 소유의 감정의 결이 거의 내것처럼 그대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졌다, 그가 쇼코를 바라보는 시선 할아버지를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기대했다가 경멸했다가 혐오했다가 그렇게 인정하게 되는 순간순간이 퍽이나 이해가 가면서 동시에 내가 이해받고 있는 기분 그러면서 이런 이해와 공감을 한 10년도 더 전에 내가 느꼈더라면 나는 지금 다른 내가 되어있지 않았을까 하는 억울한 감정도 들었다,

이건 뭐지? 싶어 한참을 있다가 다음 작품을 읽었다,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를 읽으면서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읽어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할아버지라는 공통점때문일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스며드는 일 누군가가 내게 스며드는 일에 대해  조금 더 나도 그렇게 스며들고 싶었던 거 같다,

80분의 기억을 가진 수학자 그리고 그녀의 집을 드나드는 가사도우미 그리고 그녀의 아들

그리고 수학과 야구

예전에 나는 이 책을 '사람이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예의이자 배려'라고 했다,

지금도 그럴까?

그때나 지금이나 책에서의 첫 인상은 일본인답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등장인물의 성격이라고 해야할까 서로가 서로에게 어색해하면서도 어쩔 줄 몰라하고 그래서 깍듯해지고 서로에게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두며 그 사이의 공간을 존중해주는 느낌... 그거였다,

누군가의 바운더리를 존중해주는 것 나에게 그건 예의의 처음이었다,

친해지고 다가오고 다정한 사이도 좋지만 그렇게 상대가 가지고 있는 공간을 인정해주는 것

그리고 그 공간을 가만 내버려 둘 줄 아는  여유가 예의이자 배려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냉정하기도 하고 못되기도 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박사가 가지는 기억의 한계는  늘 박사를 깍듯하게 만든다.

내겐 낯선 사람이지만 어쩌면 내가 아는 나를 아는 사람일 수도 있는 상대에게  주저하고 두려워하고 조금은 미안해하며 다가가는 박사의 모습과 그런 박사의 이질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인정하는 도우미와 그의 아들 루트 ..

그건 어쩌면 최은영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공감과 이해 그것과 같은 결일것이다,

누군가에게 훅 하고 다가가진 않지만, 그저 주변에서 서성이고 주저하고  생각이 많지만 그래서 오히려 그 주저하는 시간동안 상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 입장을 이해하고 또 이애하고 머리로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그렇게 인정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 그것이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박사가 말하는 여러 수식과 숫자의 아름다움은 낯선 것들이고 이해할 수 없는 세계였지만 그 말들이 나를 인정하고 나를 배려하고 나를 존중한다는 의미라는 걸 도우미는 금방 알아 차릴 수 있었다, 누구에게 그렇게 존중받고 인정받고 존재감을 느꼈을까

낯설지만 따뜻하고 아름다운 수식의 세계에서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공감하고 서로를 배려할 수 있었다,

지속되지 못할 기억일지라도 추억을 만들고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

그리고 그것이 비록 잊혀졌더라도 개의치 않는 것

기억은 없어도 관계와 존중은 지속되는 것... 그것이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

밋밋하지만 따뜻하다,

그저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고고 뻐근한 근육들을 풀어주는 나른한 시간같은 순간들이었다,

 

문득 그런 박사와 도우미와 아들의 아름다운 풍경을 안채에서 보고 있던 미망인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했다,

영원히 나와의 시간은 잊지 못하는 사람

나를 잊어서는 안되는 그 사람이 지금은 불구가 되어 80분의 기억밖에 지속하지 못하지만

그가 가진 낡고 오래된 기억속에 나는 영원하다는 사실은

그 미망인에게 위로였을까 아니면  저주였을까?

나는 늙고 이렇게 변했는데 그의 기억속에서 나는 영원히 영원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예전엔 외롭겠다 싶었는데 그렇게 스스로 위안하며 바라보고 또 바라보기만 하는 미앙인의 마음도 이젠 알 거 같다,

 

 

다시 <쇼코의 미소>로 돌아와서....

 

"넌 왜 그런 얘길 하면서 웃어?"   (씬짜오 씬짜오 중에서)

 

어린 투이의 그 한마디에 나는 순간 무안해졌을것이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말을 하면서 웃는 아이는 자기에게 박히는 말들을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고 한다,

애써 지우리고 하는 게 아니라 애써 기억해내지 않으려고 한다

이 두가지는 비슷해보이지만 다르다,

지우겠다는 적극적 의지조차 내 보이지 못하고 그저 보이지 않도록 보여지지 않도록 남모르게 혼자 애쓸 뿐이다,

웃으며 이야기하는 건 그 이야기가 아프다는 걸 안다는 거다,

아픈 이야기지만 아프다는 걸 보이고 싶지 않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쿨하다고 보여지고 싶고 그리고 누구에게도 내 속내를 보이고 싶지 않다는 어두운 그림자가 한자락 깔려있다,

 

나와 발음이 같은 응웬 아줌마도 역시 잘 웃었다 잘 이해해주었고 상대의 좋은 점을 잘 알아봐 주었고 슬프면서도 언제나 웃고 있었다, "행복이 슬픔과 너무나 가까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행복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목이 매이거나 괜히 명치 끝이 먹먹해지는 기분

그걸 다른 사람도 가지고 있을까

이런 모순되고 이상한 마음을 나만 느끼는 게 아닐까 하고 어릴적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내가 느끼는 이런 감정을 다른 사람도 느끼고 알고 있는 걸까

혹시 나만 느끼는 것 아는 게 아닐까

나만 아는게 좋은 건지 나쁜건지도 몰랐지만 왠지 나만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반이고 나말고도 다 아는 것이었으면 하는 마음도 반이었다고 기억한다,

 

"당신은 항상 그런식이야 죽어도 미안하다는 말을 못해 안해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은 혹은 못하는 사람을 나도 알고 있다,

언제나 자신은 잘못을 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어쩌면 잘못이구나 하고  알겠지만 그걸 입밖으로 꺼내는 순간 자기가 사라질지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잘못을 말하는 순간 자기가 지는 거라고 자기가 없어지는 거라고 믿어서 그게 두려워서 절대 미안하다는 말을 못하는 사람일지 모른다고 요즘 생각을 한다,

그냥 못나고 고집세고 안하무인으로 보이는게 차라리 낫다고 믿어버리는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안쓰럽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절대 그런 내색을 나는 하지 않는다

그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동안 나는 절대 그를 이제는 알거같다는 말을 하지 않을 작정이다

끝까지 모른 척 이해 못하고 알지 못하는 저쪽 별에 사는 사람처럼 대하면서 내가 조금 그를 알아가고 있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 이해인지 오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받아주려고 한다는 걸 절대 내색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유치하지만 이게 복수라고 믿고 있는 중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루이의 유치한 말과 행동이 속깊은 애들이 쓰는 속임수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아이들은 다른 애들 보다 훨씬 더 전에어른이 되어 가장 무지하고 순진해 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연기한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통해 마음의 고통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각자의 무게를 잠시 잊고 웃을 수 있도록 가볍고 어리석은 사람을 자처하는 것이다, 진지하고 냉소적인 아이들을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나는 투이의 깊은 속을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

 

아니다 속이 깊은 아이들은 아이처럼 유치하게 굴기도 하지만 다 아는 어른 처럼 냉소적이고 진지하기도 하다, 어떤 행동을 보이든 그게 타인의 눈에는 어리게만 보인다는 걸 본인만 모른다,

어떤 상황에서도 웃거나 웃기거나 혹은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팔짱을 끼고 찡그리고 있거나 그건 지금 내가 몹시 약하고 불안하고 힘들다는 말인데 그걸 사실 타인은 모른다 나도 모른다, 내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오래되면 그게 나의 본성인듯 여겨진다,

나는 원래 냉소적이고 쿨한 사람이야. 라고 자기를 착각하거나 나는 웃기고 유머감각이 있는 아직은 아이같은 면이 있지.. 하고 자기를 그렇게  정해버린다,

오래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은 이제 내 피부인지 합성고무인지 알 수 없게 된 것처럼 이젠 그런 외피가 없으면 오히려 더 불안하다, 불안을 감추기 위해 써 온 내 겉모습이 이제 내가 된다, 익숙하다, 그렇게 미리 어른이 된 아이들은 나중에 영영 어른이 못되기도 하는 걸까

어릴 적에는 그렇게 조숙해버린 아이가 되었고 나중에 나이를 먹어서는 영원히 철들지 않고 어른이 되지 못한 어정쩡한 나이먹은 아이가 있다,

둘의 공통점은 언제나 지금 현실과 붕 떠있다는 것

아이일 적엔 아이인적이 없었고 지금은 어른이 너무 힘들고 낯설다,

괜찮아요. 아무렇지 않아요

이 말이 가장 많이 입을 통해나오면서 가장 저주스러운 말이되었다,

괜찮지 않다고 아무렇지 않을리가 있겠냐고 말을 해야하는데 그건 자존심의 문제가 되기도 하고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하고 언제나 나보다 타인이 더 중심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언제나 괜찮아야 하고 언제나 아무렇지도 않아야 하는 일들이 쌓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억울하고 억울하고 억울한 마음이 계속 불어났다,

그리고는 이젠 습관처럼 그렇게 말이 생각보다 먼저 튀어나간다,

괜찮아요.  별일 아니니까요

세상에 내게 별일은 무엇이었는지 기억조차 까마득하다,

 

"이제 나는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 생의 행복과 꼭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엄마가 우리곁에서 행복하지 못했던 건 생에 대한 무책임도 자기 자신에 대한 방임도 아니었다는 것을....

 

노력한 만큼 보상이 돌아온다,, 라는 말처럼 허무맹랑한 말이 있을까 이렇게 환상적인 환타지가 있을까 세상은 수학공식이 아닌데 늘 들어가는 수에 따라 나오는 수가 일정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박사는 수식의 아름다움을 말하지만 그건 그저 추상적인 수식일 때의 아름다움이다,

세상은 우리가 사는 이곳은 그렇게 딱 떨어지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다,

노력보다 큰 걸 갖는 사람도 있고 노력따위는 쓸모조차 없는 사람도 있고 아무리 해도해도 안되는 사람이 있다, 그건 제로섬게임도 아니다, 누가 더 많이 가져서 누가 덜 가져가는 일이아니라 그냥 우연이고 운명이고  신의 장난같은 거다, 신도 가끔은 변덕을 부리거나 마음이 내키거나 말거나 할 일이 있을 테니까,,,,

커다란 우주의 진리는 그러한데 세상은 지금 소수점 하나하나까지 일일이 세어가며 누가 얼마나 더 많이 노력했는지 더 많이 이루었는지를 깨알처럼 따진다, 이렇게 노력하고 애써서 이만큼 이루었는데 나보다 덜하고 덜 이룬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이 가지는 것은 너무 억울하고 분하고 부당하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불을 켜고 세상을 본다, 누가 중간에 새치기를 하는지 누가 노력없이 먹으려고 하는지... 그래서 점점 세상이 모래알처럼 되어가고 있다,

가장 큰 세상의 비밀은 언제나 불공정하고 언제나  모든 것이 비례든 반비례든 딱딱 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인데 그걸 아무도 모른다,

 

 

이외의 다른 최은영의 단편들 속에서도 주인공은 늘 머뭇거리 오래 생각하고 멈칫하고 있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행동이 굼떠 보이고 그래서 때로는 오해를 받기도 하고 그러면서 그 오해를 그냥 내버려둘 수 밖에 없어 혼자 속으로 곪아가기도 하는 인물들이 나온다,

그렇게 오래오래 속에서 삭힌 생각들 상대에 대한 생각 자신에 대한 생각들이 배려가 된다,

아 그랬구나

켈리는 사람에게는 제각각의 개인구상개념이 있다고 했다,

내가 본 것 알아낸 것 느낀 것 배운 것들이 모여서 내가 세상을 판단하고 사람을 바라보는 어떤 틀 같이 각각 개인은 개인만의 개인구성개념을 가지게된다, 개인이 어떤 구성개념을 가졌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다 다르고 개인의 성격이 형성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개인의 구성개념은 또 다른 경험이나 감정 생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언제든 바뀔 수 있고 그렇게 딱딱하게 굳기도 하는 것이다,

최은영의 인물들은 모두가 스스로의 개인구성개념을 만들어 간다,

이렇게 봐도 될까 이렇게 받아들여도 될까  저건 어떤 의미일까

혹시 내가 잘못 생각하거나 오해하는 건 아닐까

그러다 아 다 싫다 피곤하다 남따위는 모르겠다고  주저앉기도 하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타인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그 입장에 서보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스스로 모르는 사이에 넓어지고 깊어진 각각의 개인구상개념을 가진다고 하면

켈리박사에게 실례가 될까?

모든 소설속에 내가 있고 내가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면서 그럴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혹은 미워하고 복잡하다가 쥐어짜다가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그를 사랑하는 나를 보기도 한다,

 

박사와 가정부도 서로에게 조심하고 조심하고  고용인과 고용주라는 사이를 조심스럽게 지키다가 서로를 살펴주고 상대가 불편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쌓이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그것도 사랑이다, 타인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이야기가 된다,

 

 

사실 나는 상대를 생각해서 조언이랍시고 하고 그 입장을 생각해서 말을 꺼내지만

그게 참 어설픈 조언이나 하나마나한 잔소리 심지어 소음이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절실히 알아가는 요즘이다,

나는 상대가 원하는 게 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냥 내가 보기에 저러지 않았으면 좋겠고 좀 더 세심하게 남에게 잘 보이려는 노력이라도 하면 좋겠고 비록 속마음은 아닐지라도  세련된 척 괜찮은 척하라고 조언하고 싶어 죽겠다,

그래도 남의 입장에 함부로 입질하지 말자고 참고참고 참다가 결국은 꼭 사단나는 한마디를 한다

말은 하는게  더 후회가 많고 왠만한 말은 다 사족이다,

내가 타인을 이해고 배려한다는 것

그건 그냥 오래오래 그를 마음에 품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의 입장을 이해하지 말고

그냥 그럴 수 밖에 없겠구나 하고 믿어주고 기다리는 것

그리고 그냥 웃어주는 것 뿐이란 열패감이 섞인 깨달음이 든다,

아는 건  쉬운데 그렇게 해주는 건 참 어렵다,'

 

공감이라는게....

그게 오히려 폭력으로   전해질 수 도 있겠다 싶어서

열심히 책만 뒤적인 요 몇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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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모양새는 어디나 비슷한 모양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색하고 피하고 싶은 상대는 가족이다,

나를 너무 잘 알아서 불편하고 동시에 나를 너무 몰라서 외롭다,

 

일찍 죽은 형의 기일에 맞춰 오랜만에 료타네 가족은 부모님 집으로 간다,

아이가 달린 여자와  결혼한 이후  아직 어색한 관계인 모양이다,

그러나 더 어색해 하는 건 아내나 아들보다 료타 자신이다,

어떻게든  하룻밤을 자고 싶지 않다고 핑계를 궁리하지만 오히려 아내는 담담하다.

 

집에서 늙은 어머니는 음식을 하며 수다를 떤다,

그 수다의 상대는 결혼한 딸이고 남편은 언제나처럼 무뚝뚝하고 본인 관심이 없으면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주가 오면 할머니는 깍듯하게 맞이한다,

서로가 예의바르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함꼐 음식준비를 하면서 어릴적 추억을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처음엔 어색해하다가 쉽게 어울린다. 음식이 모자를까 스시를 주문하고 배달온 오랜 이웃인 스시집 아들과 수다를 떨고 함께 식사를 하고 맥주를 마신다,

사위는 어색함인지 무사태평인지 식사후 잠들어버리고  아버지와 료타는 둘만 남을까 전전긍긍이고 어머니는 그래도 부자지간에 무언가 대화를 하기를 바라며 자리를 비운다,

그러나 어색하게 피하거나 무의미하게 부딪칠 뿐이다.

서로는 서로에게 닿지 않는다, 아니 어떻게 다가가는지 알지 못한다,

형의 무덤을 다녀오고 아들이 출세해서 뭔가 뻐기가 싶은 어머니의 속물이 드러나기도 하고 그런 어머니가 귀찮고 부담스러우면서 동시에 죄스러운 아들도 있고  무심하게 엄마의 도움을 당연시 하는 딸이 있고 어색한 가운데서 예의는 다하려고 하지만 마음을 나누기는 힘든 며느리도 있다,

오후 큰 아들의 죽음의 이유가 되는 사내가 찾아온다,

큰 아들이 구해준 그때 물에 빠졌던 소년은 이제 청년이 되었지만 뭐하는 제대로 된 것이 없고 취직도 안되는 하찮은 인간일 뿐이다,

이런 하찮은 인간을 위해 내 귀하고 잘난 아들이 죽었다는 걸 부모는 아직도 못견뎌하면서

잔인하게 그 청년의 죄책감을 건드린다,

 

자식은 부모곁은 떠나면서 마음편하게 안도하고 부모는 또 다시 찾아올 자식을 벌써 기다리기 시작한다,

언제나 그렇게 상대를 향한 마음은 늘 엇갈리고 같은 물질 같은 성질을 가지면서도 그 부피와 색 냄새가 미묘하게 달라서 서로가 서로를 오해하고 어려워한다,

그게 가족이다,

감독이 그려내는 가족은 나쁘다고도 좋다고도 할 수 없는 현실 그 자체다,

사람은 누구나 악하기도 하고 선하기도 하고 악해보이기도 하고 선해보이기도 하다,

료타도  아내도 그저 부모들이 보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어느 정도 이상은 허용하지 않는다,

외로운 누부부는 자식을 기다리고 기다리지만 막상 마주하면서는 데면데면하다,

 

 

따로 살면서 늘  엄마는 아빠에게 자주  전화 좀 드리라고 했었다, 자주 내려오지는 못해도 전화라도 자주하라고.. 꼭 내가 하라고 하라고 해야 마저 못해나냐고... 늘 잔소리였다

어느순간 아버지가 나이가 들면서 이번에는 아버지가 엄마에게는 전화를 자주하라고 어색하고 무심하게 말했다, 나는 괜찮지만 니 엄마는 얼마나 너들  걱정하는지 아느냐,. 늘 니들 생각밖에 없는 엄마인데 목소리라도 자주 들려줘라,

그냥 흘려들었다,

영화속에서 료타도 늙은 아버지의 갑작스런 그 잔소리를 세삼스러운 표정으로 듣지망 아마 나처럼 흘려들었을 것이다,

자식도 살아가는 무게가 만만치 않다,

젊다고 모든 게 다 견딜만한것도 아니고 이제는 젊은 나이도 아니다,

그래서 내 앞의 삶에 허덕이다보면 지금 이순간 눈에 보이지 않은 부모는 가족은 잊히기 마련이다, 마음이 없는게 아니라  여우가 없다, 속을 비워야 무언가가 들어올텐데 이것저것 정리되지도 못한 것들이 뒤죽박죽 속을 꽉 채우고 있다, 그 복잡하고 찌질한 속내를 부모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은 건  그 나름의 상대에 대한 배려였다,

그러나 그 배려가 부모에게는 무심함이고 무관심이고 서운함이다,

조금만 조금만 걸어도 걸어도 둘 사이의 거리를 가까워지지 않는다,

영화속 긴 계단과 언덕길처럼 그렇게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어보인다,

저 계단 위에 부모가 있고 저 언덕위에 그가 있음을 알지만 그 아득한 계단을 오르기도 전에 지치기 시작하거나 언젠가 다시 갈  시간은 충분하다고 믿고 있다,

 

영화는 별다른 사건이 없이 물처럼 흘러가지만

계속 무언가 위태롭고 아슬아슬했다,

터져봐야 별거 아닌 거라는 걸 알지만 그 갈등의 고조가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알아서

꼭 내 부모와 나의 관계처럼 예리하게 다가온다,

가족끼리만 아는 지뢰밭이 있고 가족끼리만 아는 지름길이 있다,

어떤 부분을 건드리면 안되는 지 모두가 알지만 모른 척 해야하는 지점이 어니딘지 진심이 담기지 않아도 이렇게 말하거나 행동하면 된다는 지침같은 것들

이미 익숙해진 가족끼리 모두 알아서 제대로 피하고 모른 척하고 있지만 무심코 본 모습이 드러나거나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감정들로 어느 순간 지뢰를 밟아버리거나 지름길을 놔두고 돌아가버리는 용심을 부릴 때가 있다,

그냥 이젠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혹은 이젠 괜찮지 않을까  행여 변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

그러나 모든 것을 덮어두고 모른 척 하는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라고 변명하고 싶다,

내가 잘 안다고 여기는 내 엄마의 섬뜩한 모습 혹은 정신 나간거 같은 모습이 순간 낯설어지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알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언제나 벽같은 아버지는 늙고 쪼그라들어가고 있고 어쩌면 지금 내가 가장 의지하는 배우자나 내가 든든하게 지켜줘야 할 내 아들도 언젠가 타인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나도 그렇게 보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가족이 뭘까 한 참을 생각해본다,

가장 가까운 존재

가장 잘 아는 존재

가장 의지 되는 존재

그래서 가장 알 수 없는 존재

그냥 내가 아는 걸 인정하고 모르는 건 새롭게 알아가고

또 그렇게 그러려니 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우리가 아는 이상적인 가족이란 언제나 화목하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웃고 미소짓고 걱정하고 그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도와준다,

언제나 다독이고 이해하고 배려한다,

우리는 그런 만화를 보고 책을 보고 드라마를 보면서 가족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가족이니까 남이 아니니까

가족이라고 묶이는 순간 그런 화목함은 저절로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했고

우리가족이 그런 이상적이지 않은 것은 내가 아니라 상대가 노력하지 않고 이상하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당연히 가족이라면 따라와야하는 풍경이 우리에겐 없다는 것은 내탓이 아니었고

그건 왠지 죄스러움이기도 했고 불만이기도 했지만 그게 노력을 필요로 하고 간혹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걸 몰랐다,

그냥 데면데면할 수도 있고 서로 서운 할 수 도 있고 목청을 올리며 싸울 수도 있고 속물스러움을 나누면서도 그려려니 하고 그러면서도 직설적으로 충고도 하고

누구보다 조심스러워야 하고 누구보다 진심이어야 하는게 오히려 가족이라는 걸

가족속에서 태어나고 또 가족을 이루고 살아온지 40년이 넘어서 조금씩 알아간다,

가족은 힘이지만 독이다,

잘 쓰면 약이 될 수도 있지만 치명적이고 내게 든든한 뒷배경이지만 언제 그 힘이 나를 압도해버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의 가족관이 꽤나 비관적이고 냉소적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관계든 노력없이 애씀 없이 이뤄지는 건 없다,

하루하루 나이들면서 계속 꺠달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그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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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 오늘의 젊은 작가 9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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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정의에서 귀신이란

할말이 있어 아직 떠나지 못한 존재들이다,

할 말을 하지 못해서 말이 하고 싶어서 입에 피를 흘리거나  그저 목이 매어서 상대를 노려보기만 하는 그런 존재

 

이 책의 주인공 보건교사 안은영은 그런 귀신을 본다,

 

물론 오랫동안 말을 못해서 그 기회를 놓쳐서 몸이 가루가 되고 희미해질 때까지 맺히고 맺힌게 남아서 악귀가 되어버린 귀신도 있고 그냥  육신에서 혼이 이탈해서 저 혼자 떠도는 외로운 소녀도 있고 그렇고 그런 귀신을 그녀는 본다,

악귀는 쫒아야 하고 살아있는 사람에게 해가가는 것들으을 막아야 하고 외로운 귀신에게는 말동무가 되어준다,

영화에서처럼 쎈 언니 캐릭터로 첨단 무기비슷한걸 지닌 고스터바스터는 못되고 비비탄과 플라스틱 칼을 들고 귀신을 쫒는 조금 스타일은 구겨지는 퇴마사다,

남의 말을 들어주고 남이 보지 못하는 걸 봐야하느라 늘 기력이 딸리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학교 이사장과 깊은 관련이 있는 한문교사 홍인표를 통해 에너지를 받아야 하지만 그렇게 받은 에너지를 그 학교를 위해 쓰니까 뭐 쎔쎔인 셈이다,...

 

세상에 제일 무서운 귀신은 학교에 있는 귀신이고 귀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도 학교가 맞지 싶다 으슥하고 오래되고 낮에는 왁자지껄 아이들이 떠들다가도 순간 고요해져버리는 텅 빈 공간은 누군가 스며들기 딱 좋다, 게다가 오래된 학교 시설이라면 더욱.....

 

그냥 작가의 말처럼 가볍게 오로지 쾌감을 가지고 쓴 글이라 믿고 가볍게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 순간 울컥해지는 부분이 있다,

첫사랑  정현이나 중학교 동창 강선이 이야기

그리고 외로운  황유정 이야기를 읽으면서  작가가 그냥 가볍게 쓰려고 애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드랬다,

그냥 심각하지말고 가볍게 들어. 이거 심각한건 아니야 심각한건 아닌데

그냥 귀신이 나오고 혼들이 나오고 뭐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니까 그냥 들어

그래서 그냥 들었는데... 막 먹먹하기도 하다

그냥 잊고 있는 것 잊어서는 안되는 게 있는데

그래서 귀신이 나오나  꿈을 꾸는 건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뒤엉키면서

그래도 계속 키득거리며 읽어야겠지 하는 마음도 들면서....

 

아는 형은 아니고 안은영은 애를 써서 귀신을 쫒고 학교를 지키지만

학교는 자꾸자꾸 무서워진다,

뭐 용을 없앴으니 그리고 해피앤딩처럼 마무리는 되었지만

학교는 학생들은 자꾸 그대로다,

점점 무서워지고 점점 서늘해지고 점점 막나가고  물불 가리지 않고

 

나도 비비탄과 플라스틱 무지개 칼이라도 지니고 다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따.

 

난 이작가가 참 좋아졌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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