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네 이웃의 식탁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9
구병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평점 :
어? 이렇게 끝이야?
내내 갑갑하고 불안하고 답답했다.
대단한 사건이 서스펜스 넘치는 전개가 있던 것도 아니다.
그냥 네 이웃의 이야기다.
네 가구의 이야기 그리고 바로 너! 너의 이웃의 이야기말이다.
어떤 통제되고 가공된 상황으로 인물을 몰아넣고 인물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바라보는 것이 전작 "피그말리온의 아이들"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 이야기보다는 현실적이고 이야기는 단순하고 무미건조하다.
다만 불편하고 답답해서 꼭 찜질방 안에서 셔츠 단추를 목까지 채우고 미련하게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단추를 풀고 싶은데 풀 수가 없는.. 차마 셔츠를 벗을 수도 없는 상황같았다.
그녀의 만년체는 여전하다.
어쩌면 비문도 몇개 있었는지 모르겠다.
읽다가 내가 꼬여서 다시 읽은 문장이 몇 되지만 그게 비문인지도 모르겠다.
문장이 답답한건지 상황이 답답한건지 아니면 인물들의 대처가 답답한 건지 모르겠다.
세자녀 출산을 약속하고 행복공동주택에 네 가구가 들어온다.
각각의 부부와 그들의 고만고만한 자녀들
임대주택에 들어온 만큼 모두의 사정도 고만고만하다
사정은 고만고만하지만 그래도 아이는 잘 키우고 싶고 자기 일을 포기할 수도 없고 아직도 막연하게 꿈꾸고 희망하는 무언가를 다들 가지고 있다.
불안하지고 무겁지만 차마 놓지 못하는 것들 말이다.
그들의 이사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요진과 은오
남편은 엎어진 시나리오밖에 남은게 없는 감독지망생 백수이고 아내는 약국의 보조 사무원이다.
그들은 경제적인 극단에 몰려서 앞뒤 재지 않고 공동주택을 신청했다
가장 적극적이고 사교적인 재강과 단희
그들은 모두에게 친절하고 공동체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여러가지를 시도하지만 그들의 선의는 타인에게 부담이 된다. 친근한 농담은 치근덕거림이 되고 다 같이 잘 하자는 독려는 간섭이 되기도 한다.
출근하는 남편과 프리랜서로 일하는 아내 커플인 효내와 상낙
상낙은 바쁜 아내대신 이웃 모임에 참석하고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리는 효내는 늘 전전긍긍 바쁘고 정신없다 사람좋은 남편이 모든 일에 응응 하고 동의해놓은 바람에 마음에도 없는 공동육아를 해야하고 사람들과 필요이상의 친분도 쌓아야 하는게 효내 입장에서는 마뜩치 않다.
그리고 교원과 요산이 있다.
누구보다 알뜰하고 억척스럽게 아끼고 동동거리며 살아온 교원은 어느 순간 염치도 없는 맘충이 되어버렸고 요산은 그런 아내의 뒤통수를 치며 자기 식구부터 챙겼다
어쩌면 너무나 다른 네 가족이 공동체로 묶여버렸다.
우스개 소리로 모임이 오래오래 잘 유지되는 조건은 적극적인 리더 한명과 아무 저항없이 잘 따르는 나머지 모두라고 했다. 누구든 이끄는 사람은 한 사람이면 족하고 나머지는 그저 토달지 않고 리더가 하자는대로 따르고 그렇게 모임에 만족한다면 그 모임은 오래오래 지속된다는 거다.
그러니까 생각하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저 둥글게 둥글게 받아들이라는 조금은 서늘한 농담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아무도 말하지 않아도 어디든 뒷말이 나오기 마련이고 한두명끼리 쑥덕이기도 하고 아닌 척 모르는 척 하기도 하면서 유지되는게 사회라는 테두리다
공동주택 이웃들도 서로 좋은 얼굴로 도와가며 일을 꾸려나가지만 여기저기 삐걱거리는 건 어쩔 수 없다.
함꼐 카풀을 하는 이웃 남자는 분위기 띄우는 농담이랍시고 불쾌한 말들을 하고 치근거리는데 딱 잘라서 뭐라고 하기엔 내가 너무 예민한거 같고 그냥 넘기자니 불편하고 불쾌하다.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주택단지에서 서로가 돕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너무 함께 함께~를 강조하는 이웃때문에 개인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불편해지는 이웃도 있다.
별거 아닌 일에 까다롭게 굴면서 튀기만 하고 매사 협조하지 않은 얄미운 이웃도 있고
그저 무탈할 줄 알았던 이웃이 한밤중에 고성과 폭력을 쓰며 죽일듯 싸우기도 한다
모두가 조금씩 불편하고 덜거덕 거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만 모른 척하면 모두가 괜찮지 않을까 하는 견제라고 해야하나 배려라고 해야하나 그런 마음과 누군가 불편할지 모른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하고 행복, 평화 안정, 공동의 선만을 생각하며 스스로 대견해하는 마음이 부딪친다.
결국 예상대로 행복공동주택은 와해되었다
또 새로운 구성원이 들어와 뒷마당의 넓은 식탁을 채워나가겠지만
건강한 집단이란 유기체와 같아서 생성되고 성장하고 완숙되어서 어느 순간 소멸하는 것 그게 당연하지 않을까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라는게 사실 허상이고 징글징글한거 아닐까
아름다운 공동체의 유지는 보이지 않는 아니 보이지만 모른 척 하는 누군가의 희생과 강요로 유지될 뿐이다
화목하고 아름답고 이상적인 공동체는 저절로 굴러가지 않는다.
꿈을 꾼다고 함께 모여살면서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서로에 대해 비밀이 없이 공유하고 있다고 이루어질 수 없다.
누군가는 밥을 하고 누군가는 아이들을 돌보고 누군가는 뒺정리를 하고 내켜하지 않는 또 다른 누군가를 다독이며 성질을 죽이고 복수의 칼날을 갈면서 지탱된다.
참 더럽게 아름다운 세상이다.
****************************************************************************
"모든 사람이 이 이야기에 공감할까?"
다 읽고 맨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이래서 여자들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거야" "도데체 뭐가 문제라는거야? 예민하기는"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소설 내내 뭔가 툭툭 건드려지기는 하는데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뭔가 터지지는 않는다.
물론 말미에 깨어지는 가정도 나오지만 그 결과가 문제가 드러나고 터지고 해결되었다는 느낌과는 다르다. 그냥 건드리고 말았다는 것
그래서 찜찜하기도 하지만 결국 아는 사람은 안다.
도처에 숨은 많은 것들은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문제화 되지 않고 그저 찜찜하고 불안하고 불쾌할 뿐이다. 그건 경험했다면 소설이 공감이 갈 수도 있지만 늘 적확하고 확실한 길을 걸어왔다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