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은 켈리는 사랑했다,

아니 사랑했다고 믿었다,

그런데 안경끼고 키도 크지 않고 근육도 없고 공부 잘하고 글을 잘 쓰지만 남자 답지 못한 그는 절대 고백하지 않는다. 그저 혼자 사랑한다고 믿는다.

함께 동굴같은 살캥이 편집실에서  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

서로 말이 잘 통한다는 것

함께 차를 타고 귀가하고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는 일이 일과처럼 되고

함께 연말 파티에 가고 함께 세상을 돌아보면서

그는 어떤 표현은 하지 않으면서

켈리와 농염한 사랑을 꿈꾸고 미래에 의사가 된 자신과 의사 부인이 된 그녀와 함께 하는 일상을 꿈꾸지만 결코 표현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녀가 나를 좋아할지 모른다고 기대하고 착각하고 믿어버리면서

다른 날 사소한 행동으로 그가 나를 밀어내고 나를 싫어한다고 단정한다,

혼자 믿고 혼자 단정하는 일....

그건 찌질한 일일뿐 아니라 폭력이다.

나 혼자 모래성을 지었다 허물었을 뿐이라고 하겠지만 그 일방적으로 흐르는 마음은 폭력일 수 있다. 내가 생각하고 판단한다. 상대의 마음이나 감정은 조금도 상관없다.

그냥 미루어 짐작하고 판단한 후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모든 것이 서로 간의 관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나의 일방적인 판단일 뿐이다

그 파장이 30년동안 휘몰아쳤고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혼자만의 판단이 몰고 온 비극에서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설령 모든 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내 잘못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나의 어긋나고 삐뚤어진 마음이 어디서 스파크를 일으켜 불꽃이 걷잡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쿡이 로맨스를 쓰나보다 생각했다.

이렇게 무언가를 감추면서 뭔가 대단한 반전이 있을거라는 냄새를 팍팍 풍기면서  전개된다,

너무너무 속터지게 결과를 까보고 싶지만 문장은 한없이 느리고 한없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면서 흘러간다.

녹색의 여륾날 그 화사한 햇살이 손가락사이에서 흘러내리고 있고

덥고 답답한 공기가 휘몰아쳤다가

춥고 으슬한 공기가 다시 나도 모르게 스며들었다가 사라진다,

문장문장은 한업이 늘어져서 사람을 조급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한문장 한문장을 건너뛰고 갈 수도 없다. 어디서 어떤 묘사가 어떻게 튀어나울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그렇게 한없이 느리고 답답하게 이어지는 벤의 독백과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상황이 이어지다가  보나마나 뻔한 결말이 나오겠구나 싶은 순간.....

어떤 한마디의 증오의 씨앗이 30년동안 모두에게 비극을 안겨준다,

누구도 사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했던 증오의 추문이 결국 모두를 비극으로 몰아갔다.

어디서 멈출 수 있었을까?

누구의 죄가 가장 무거울까?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삶은 그렇게 흘러가고 처음부터 정해진 시간의 질감은 되돌릴 수 없다.

 

그동안 쿡은 불안과 수치심 그리고 의심하는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칡덩굴에 엉켜 있었다.

느리고 매혹적인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적나라하고 무시무시한 본성과 마주한다,

이 책도 결국 예외는 아니었다,

그저 찌질하기만 한 벤만 따라갔는데 벤 혼자만이 아니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욕망들

질투 탐욕 배신 증오 무고 등등의 저마다 가지고 있던 감정들이 남부 작은 마을에서 뒤섞이면서 사건을 만들어내고 누구도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고 누구도 부끄러움과 의심을 풀어버릴 수 없다.

 

별거 아니지만....

별 거 아니라는 것조차 얼마나 무시무시해질 수 있을지///

 

 

나는 부인에게서 눈을 떼고 켈리를 내려다보았다. 마치 나머지 모든 사람을 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라일과 실라와 로지 메리와 레이먼드 심지어 토드까지 모두 하나같이 작고 어린아이같은 얼굴이었다. 모두의 눈동자가 마치 그들의 청춘 그들의 희망 그들이 계획했던 미래 저 앞에 보이지 않은 덫이 놓일 줄은 사상도 하지 못하듯 이상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자 나는 깨달았다. 언젠가 켈리가 묘사한 것처럼 어쩌면 촉토는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걸 모아둔 하나의 온전한 세계였다고 . 그와 똑같이 알 수 없는 세계에 같혀 있었던 게 틀림 없다고 그리고 그것을 엮어내는 어딘가에서 하나의 상처가 다른 상처를 봉합하고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 낸다고 그렇게 의지 ㅇ않은 길고 어두운 상처의 핏줄을 만들어내며 흐르는게 틀림없다고

 

 

 

 

 

이것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어두운 이야기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평생을 애써왔다.

머구름과 폭풍우가 어울리는 이야기. 이 이야기를 떠올리면 진흙탕을 달리는 그녀의 발이 생각난다. 하지만 실제로 그 일은 햇빛 쨍쨍한 한 낮에 일어났으며 그녀의 다리는 그해 유독 길었던 봄날의 끝 무렵에 훌쩍 자란 짙푸른 칡덩굴에 엉켜 있었다.

 

우리는 이것을 문 디에 숨어 있는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 시퍼렇게 번득이는 칼날로 서늘하고 냉정한 총구로 본다. 뾰족한 모퉁이 뒤에서 또는 밤을 삼킨 짗은 안개에서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서성거리다가 위협하며 다가오는 검은 형체  골목길 끝에서 작고 사악한 눈을 번득이며 점점 다가오는 것으로 종종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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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사람은 관계를 떠나 살 수 없다.

누군가 타인과 관계를 맻는다는 것은 입고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일만큼 중요하다.

기본 욕구가 충족된 다음 사람은 누구와 관계를 맺고 인정받고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어한다

동시에 누군가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인정하고 싶다.

어쩌면 사람이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관계를 통한 인정받음이고 그 방식은 상대가 보여주는 감정반응일 것이다,

웃어주고 울어주고 화도 냈다가 어깨를 툭툭 치면서 괜찮다고  힘내라고 하는 말과 행동과 표정들   그런 하나하나의 몸짓이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것같다.

내가 웃으면 함께 웃고 울면 함께 울어주고 어깨를 다독여주고 무서울 땐 안아주고 힘들 땐 가만히 기다려주고 하는 감정표현들이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다.

 

다만 그 감정의 표현에 대해 우리가 기대하는 바가 늘 있다,

내가 깨닫지 못하지만 내가 원하는 방식

나는 지금 화내지만 그냥 다독여주면 좋겠어요

나는 지금 화를 내지만 사실은 그냥 울고 싶은 걸 참는 거예요

웃고 있지만 지금 너무 불안하고 무서워요.

울고 있지만 사실 개운하기도 해요....

어쩌면 사람마다 가지는 감정의 패턴은 조금씩 다르다,

 

아니 우리는 모두 우리감정조차 모르기때문에 타인의 감정은 더더구나 알지 못한다.

내가 가진 감정조차 그것이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데 남의 욕구나 감정을 어떻게 알까

그냥 알아주길 바라지만 사실 서로 오해하고 착각하며 살고 있다.

우리는 서로 잘 안다고  니마음은 내가 잘 안다고 너말고 누가 날 알아주겠냐고

그렇게 조금씩 어긋나고 조금씩 오해하고 오해받으면서도 관계를 이어나간다

그건

모두에게 통용되고 인정받는 방식과 함께 사회마다 개인마다 조금씩 다른 방식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각각은 다르지만 그럼에도 공통으로 통하는 무언가를 가지는 것 그것이 사람들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들의 질서다.

그래서 누구나 알기도 쉽지만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 감정이고 표현이고  가장 쉬우면서 어려운 것이 타인과 관계하는 일이다,

 

선윤재는 선천적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이다,

자기에게 일어나지 않은  감정이므로 타인의 감정도 알지 못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이 드는지 선재는 일일이 상황마다 경우마다 그때의 감정들을 배우고 외울 뿐이다, 쉽지 않다,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른데 사람ㄷ과 상황이 뒤섞이면 그 경우의 수는 기하급수로 늘어날 뿐이다,

다만 선재는 내 감정도 모르고 타인의 감정도 모르기에 솔직하다,

나는 모른다, 나는 다르다, 나는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드러낼 뿐이다,

엄마라는 울타리가 없어진 이후 어쩌면 선재에게 솔직함만이 살아가는 무기가 될수 있겠다,

그리고 곤이를 만난다,

전재와는 정반대에 있는 곤이

아무것도 모르고 무심한 선재와 달리 가장 에민하고 가장 민감하고 가장 약한 곤이가 만난다,

서로는 서로를 알 수 없다,

복잡한 수학공식보다 더 알 수 없는 존재들이다,. 서로에게

그리고 소년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성장한다,

윤재는 윤재의 방식으로 그리고 곤이는 곤이의 방식으로  나중에 등장하는 도라 역시 그만의 방식으로 성장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각각이고 그래서 아름답고  세상은 괴롭고 동시에 즐겁다.

 

 

소설은 조금은 독특한 선재의 성장담이며 동시에 선재가 만나고 관게맻는 사람들과 나누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관계 맺음은 세가지로 나뉜다,

나와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

사람들은 나와 다른 타인과의 관계맺음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어쩌면 그건 가장 쉬운 방법일 수도 있다. 그저 맞는 척 연기할 수도 있고 조금 양보하면 그만이거나 무대뽀로 밀고 나갈 수도 있다. 연기할 수도 있고 그래서 상처받기도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없이 살기는 쉽지 않기때문에 누구나 어쨌든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살아가는 사회에서 누군가 타인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면 사회와의 관계도 맺어 나가기 어렵지 않다,

가장 어려운 일은 아무래도 자기와의 관계 맺기다,

사람들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믿어서 가장 무심하게 대하는 존재가 바로 자신이다,

곤이는 스스로 곤이를 모른다, 이수였던 곤이 그리고 댱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곤이이전의 이후의 이름들의 그 존재를 스스로 잘 모른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그토록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아니 어쩌면 그 감정들이 두렵고 낯설어서 더 설쳐대고 더 강한 척하고 더 거칠게 군다,

윤재도 윤재자신을 모른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건 알지만 그럼에도 그 속에 무엇이 꿈틀거리는지 알지 못한다, 단지 감정을 알지 못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자신을 모른다고 여긴다,  윤재와 곤이의 다른점은 여기서 시작한다,

윤재는 자기를 모른다는 걸 알고 있고 곤이는 그것조차 모른다,

윤재는 그저 솔직하게 자기를 드러낼 뿐이다, 상처를 입거나 상처를 주거나 정직하게 직면하고 받아들이고 학습한다

곤이는 피하고 무시하고 도망칠뿐이다, 더럽고 치사하고 싫고 두려워서..

 

성장을 말하고 있을지 모를 이야기에서 나는 관계맺음을 찾는다,

나와 타인과 세상과의 관계에 대해서...

그래서 내 삶이 해피앤딩이 되는 것인지 새드 앤딩이 되는 것인지는 다 살기전에 알 수 없다.

다 살고 나서도 쉽게 단정지을 수 없을 것이다,

삶은 그냥 그대로의 삶이지 그게 행복이든 불행이든 의미가 없을것이다,

그건 다만 나중에 관계 없는 타인들이 붙이는 이름이다,

 

다행히 이야기 말미에 모두기 조금씩은 더 행복해지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나가지만

그래도 삶이 끝나지 않은 한 또 다른 모퉁이가 나오고 또다른 복병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래서 살만한지도 모르겠다.

 

 

사족  요즘 보는 드라마 '비밀의 숲'에 나오는 황시목이라는 인물이 윤재의 20년 쯤 후의 인물이 아닐까 싶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해 지나치게 솔직하고 직선적인 인물

드라마를 보면서 자꾸  아몬드의 윤재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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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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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직전

독일의 어느 학교 교실에서 유대인 소년과 독일 귀족 소년이 동급생이 되었고

어쩌면 서로가 서로를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친구가 될 수도 ... 라는 예감에 서로 친구가 된다.

 

작가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자연과 계절과 성과 시내 곳곳을 묘사하고 있지만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을 넘기면서

언제 뇌관이 뽑힌 폭탄이 터질지 조마조마하다,

더 친하기 전에

더 상처받기 전에

이 우정을 멈추는 것이 낫지 않을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이기적인 마음은 두 소년의 우정이 기쁘지만은 않았다,

 

저자는 노골적으로 나치즘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언뜻 보이는 히틀러의 초상화 나치의 문양을 스치듯 표현하고 말지만 그 은밀하고 습습하고 불길한 냄새는 자꾸 책장밖으로 넘어나왔다,

이제 그만.... 더 상처 입기 전에 이 우정을 멈추기를...'

 

결국 갈등이 일어나고 두 사람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다른 길을 갈 수 밖에 없었고

그리고 전쟁의 기운이 드리워진 후

한스는 미국으로 떠나고 콘라드는 독일에 남는다, 당연하게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둘은 이미 잊었다고 여겼고 삶은 절대 어느 지점에서도 만날일이 없는 긴 선을 만들어 갔지만  우연히도 날아온 동창명부에서 한스는 콘라드를 발견한다,

단 한문장이 그렇게 중격적인 반전을 만들었다.

 

단 한문장이 주는 반전  이라는 광고가 과장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뭐 다 아는 역사. 다 아는 상황

누구나 아는 결말이지만

어떤 피도 전쟁도 갈등도 다루지 않으면서 서로 어긋나야하는 친구관계만으로도 이렇게 긴장감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다 알아서 더 불안하고 두근거렸다,

다 알아서 무섭고 한장 한장 줄어드는게 가슴을 조이더니

결국 마지막에  불협화음같은 대단원이 나타났다.

 

다 읽고 나면 아름다웠구나... 하는 마음이 절로 들것이다,

두 소년의 우정도 작가의 문장들도...

 

그는 1932년 내 삶으로 둘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사반세기가 넘은 9천일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별다른 희망도 없이 그저 애쓰거나 일한다는 느낌으로 공허한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갔다, 그 중 많은 나날들이 죽은 나무에 매달린 마른 잎들처럼 종작없고 따분했다,

내 가장 큰 행복과 가장 큰 절망의 원천이 될 그 소년에게 처음 눈길이 멈췄던 것이 어느 날 어느 때였는지를 나는 지금도 기억할 수 있다. 그것은 내 열여섯 번째 생일이 지나고 나서 이틀 뒤 하늘이 잿빛으로 흐리고 어두컴컴했던 독일의 겨울날 오후 3시 였다.

 

 

어떤 작품도 이처럼 아름답지 않고 이 두 소년처럼 순수하지 않다,

이 소설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첫사랑의 이야기일 것이다,

저 첫 도입부에서 느껴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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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뼈
송시우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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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대하는 송시우 작가의 단편집이다,

 

평범한 일상에 스며있는 불안이나 분노가 어느 순간 불쑥 튀어나오는 순간 그건 섬뜩한 공포가 되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저지르는 범죄가 되기도 한다,

각 단편의 미스테리는 대단하지 않다,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고 단순하고 일상적인 현실에서의 사건이  다양하고 개성적인 인물을 통해 더 풍부하게 펼쳐진다,

 

이번 단편집에서도 < 5층 여자>와 <원주행>에 등장하는 기숙이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어설프고 불쑥 떠오르는대로 말을 뱉어버리는 습관을 가진 소심한 여자가 그런 소심하고 (세심하고) 일상을 허투로 보지 않은 시선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한다, 뭐 대단한 탐정이라기보다  소소한 일상에서 조금 더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과 약간의 운까지 더해진 평범함이 매력적인 인물이다,

 

첫 번째 작품인 < 아이의 뼈>도 충분히 유추 가능한 전개지면 그래도 설마 내가 생각하는대로일까 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게 된다, 내 에상대로 전개되도 그게 시시하다기 보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이 그럴 수 밖에 없고 그럴 수 밖에 없던 마음이 이해가 가는 이상한 경험이다,

 

각각의 단편들은 사건보다는 인물 인물의  보여지는 성격보다 그 이면에 숨은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사람의 일상성 그리고 평범성 자체가 반전이 되고 어떤 짠한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결국 사회에서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상처를 받게 되고  사람을 사람이 하찮게 생각하거나 이용할 대상이라고만 생각하거나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마음들

누구나 한번씩 행동하지는 않더라도 먹어봤던 마음들이 그려진다,

그래서 시시하지만 왠지 마음이 덜컥거리고 움찔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전 작품들 보다는 조금 실망이지만

어쩌면 더 작고 소소한 사건이어서 더 현실적이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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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프티 피플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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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명의 사람들이 풀어내는 제각각의  50가지 이야기

할머니가 오랜 기간동안 모아서 다락방에 꼭꼭 챙겨놓은 천조각들처럼 서로 어울리지 않고  뜬금없기도 하고 사소하고 지리하고 때로는 어정쩡하게 뚝 끊어진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크다란 조각보를 만든다,

결국은 사람,,, 그럼에도 사람,

통계뒤에 사람이 있고

지역뒤에도 사람이 있고

학생  주민 시민 국민이라는 이름도 결국 제각각 사람이 있다,

사람이 우선이라면서 늘 사람은 젤 뒤전이다,

국민의 심판을 달게 받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 국민이 제각각 다양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나 하는 말일까

국민이 판단할 거다, 시민의 힘이다 학생들은 어떠어떠해야한다,...

말하기 쉽지

그들이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지는  존재가 아니라 제각각 하나의 존재라는 것

그건 늘 잊고 산다,

세상의 사람은 세상의 사람수만큰 각기 다른 성격이 있고 배경이 있고 감정이 있다,

그런데 자꾸 그걸 잊고 산다, 나부터..

이러이러하니 비정상이고 저러저러해서 이상한 사람이고  이렇게 행동하니 튀게 되고 너무 나데고 부담스럽게 굴고 까칠하게 굴고 무심하게 굴고  나랑 안맞고 나랑  취향이 틀리고 나랑 사고가 달라서.. 하면서 판단한다, 그 판단의 기준도 결국 사람의 수만큼....

 

그렇게  50명이 넘는 사람의 이야기가 제각각  자기 이름을 제목으로 걸고 펼쳐진다,

시시한 이야기도 있고 더 들어보고 싶은 이야기도 있다,

나랑 닮은 사람도 있고 내가 무지하게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도 있고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은.. 없다, 제각각 다르긴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알고 있거나 그럴 수 있겠다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여기서  소소하게 지나치던 사람이 저기서는 주인공이고 저기의 주인공은  다음 이야기에서 스치고 지나간다,

그렇게 하나하나 가볍게 읽다가 "권나은"의 이야기에 목이 꽉 잠겨버렸다,

많이 친하지 않았고 많이 다르지만 좋아했던 친구

그 친구 사고로 죽었다,

죽은 이유가 드러내기에 꺼림칙하고  어쩌면 사람들은 배려하는 차원에서 혹은 입에 올리기 뭣하다는 이유로  그 죽음을 덮으려고만 한다, 그렇게 덮여진 죽음앞에 나은이는 마땅한 애도의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죽은 친구 승희가 가졌던 물건들을 모으고  나중에 그 물건들을 입고 쓰고 승희처럼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 ... 그렇게 조금은 달라지고 이상해진 나은의 행위들이 결국은 애도였다

 

정말이야 대학가서 잉ㅂ을거야 말하고 나니 그게 원래부터의 계획이었던 것 같았다, 나는 승희 옷을 입고 대학에 갈거야, 승희 옷을 입고 다닐 거야, 내가 입으니까 하나도 안 이쁘지만 어쩌면 졸업할 때까지 더 친해지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졸업하고 나선 한 번도 못 만날 수도 있지만 나만 승희를 좋아했던.... 나은은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났고 방에 혼자 있고 싶었다, 가족들은 나은이가 커서 중학생 같더니 사춘기가 늦게 왔다고 고개를 저었다, 나은으로서는 그 흔한 설명이 차라리 나았다,

아마도 잊어버릴 것이다, 승희를. 나은은 그 사실이 몸서리치게 싫다, 왜냐하면 벌써 중학교 때는 잘 기억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고작 고등학생인데도 몇년 전의 일들이 희미하다, 승희가 체육대회 때 계주를 뛰었던 것 같다,  계주를 이겼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응원을 했던 것만 희미하게 떠오른다, 반바지가 잘 어울렸던 승희의 일자 다리는 엄청 잘 뛰었었다, 종아리와 발목이 거의 비슷한 일자였다, 스포츠 만화주인공 다리 같았다, 승희가 철봉에 앉아 있던 것도 기억난다, 권나은 학원가냐? 너같은 애들을 뭐라고 부르게? 설치류. 설치류라고 부른대

학생이 죽으면 장레버스가 학교 운동장을 한바퀴 돌고 가던데 그런거라도 했으면 나았을거다, 텔레비젼에서만 하는 건지 승희는 오지 않았다, 승희어머니가 너무 여력이 없어서 생각하지 못하신게 틀림없었다, 장례식장에도 선생님들만 갔는데 마치 승희가 잘못해서 죽은 것처럼 승희의 장례식장에 가면 뭐라도 옮을것처럼  못 가게 했다, 그랬기 때문에 아무것도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승희가 뭐 어때서? 승희를 나쁜 소문쯤으로 취급하는 건 말도 안돼. 승희는 정말 좋은 애였어

 

                                                                 P156

 

 

혼자 분하고 서러워서 눈물을 흄치다가 다음 장의 소개팅 이야기에 웃음이 난다,

울다가 웃으면 안되지만,,

살아가는 일이 다 그렇지 않은가?

죽도록 서럽다가도 한마디에 벙긋 마음이 풀어지는 일

소개팅은 잘 이어지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참 서로에게 예의바르다는게 마음에 드는 에피였다,

그렇게 읽다가

 

기부금을 투명하게 쓰고 세세하게 기록하고 그걸 공개하고 나면 또 1년이 갈 것이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진 채 다친 동물처럼 실려온 여자들에게 아이들에게  그 일이 이제 지나갔다고 말해주면서 1년이 갈 것이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또 바보같은 소리를 할 테고 거기에 끈질기게 대답하는 것도 1년중 얼마 정도는 차지 할테다,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그 괴리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누가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돌렷다, 본관의 입원실의 낮은 층 창가에 있던 사람이 잠깐 망설이더니 설아에게 손을 흔들었다, 설아도 마주 흔들어주었다, 창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지만 손바닥만큼은 다정했다,

 

 

사람은 사랑때문에 웃고 사람때문에 울고 사람때문에 상처받고 위로받는다,

사회적인 존재인 사람은 그렇게 관계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도 없고 모두에게 만족할 수도 없다...

한사람 한사람의 이야기가 끝나는 방법이 좋았다,

모두를 모아놓고 그리고 안전하게 돌려보내 준 결말이 좋았다,

예전의 나라면...

이렇게 안이한 해피앤딩이라니... 하면 분개했을지 모르겠지만

이젠 어떤 사고도 없이 어떤 슬픔도 없이 무탈하게 모두가 안전하게 마무리 되는 게 좋다,

누구도 멋대로 나서지 않고 누구도 타인에게 지시하지 않으면서

각자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을 동원해서 하나씩 하나씩 조금씩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마무리가 좋았다,

 

지금 현재 여기서 우리는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사람때문에 머리아프지만

그래도 해결책 역시 사람임을 알고 있다,

사람이어서 저러면 안되는데.. 사람이라서 짐승만 못하기도 하고 사람이라 곧 들킬 꼼수를 쓰고 사람이라서 뜬금없고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사람이라서 다행이고 사람이라서 행복한 일이 조금은 더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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