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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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쓴다는것 그건 아무것도 하지 않은것보다 낫고 마음을 버린다는것 보다는 서서히 녹아 스며들거나 사라지거나 하는게 낫지. 더디 걸리고 아프더라도. 단편이거나 중편이면 더 좋았을 텐데 상수와 경애의 마음에 오롯이 집중하기엔 다른 이야기가 넘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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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의 소설을 읽고나면 쉽게 지친다.

환절기 으슬으슬 몸살이 오는 순간처럼 온몸에 기운이 빠지면서 그저 드러누워 아무 생각없이 멍하게 오돌오돌 떨고 있고 싶어진다.

제발... 왜자꾸 이러는데.. 라고  부탁하고 싶을 만큼  힘들다.

 

아이를 잃고 남편을 잃고 오래 사귄 연인과 헤어져야만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기다리는 임용에서는 떨어지고 누군가의 부고를 드고 가장 가까운 이를 의심해야하는 일이 생긴다.

상실은 절망을 부르고 사는 일은 나를 바닥까지 끌어당긴다.

주위에서 악이 없이 재미로 오르내리는 구설수는 당사자들에게는 뼈를 때리는 아픔이다.

원망의 대상은 없어지는데 억울한 마음은 점점 커진다.

견뎌내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 무조건 이불 뒤집어 쓰고 땀을 내면서 견디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다 열병으로 뇌가 상하거나 탈진하거나 어찌 되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다.

너무 가까워져도 아프고 멀어지면 서럽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가 마지막 작품이어서 다행이었따.

부재와 애도를 원망하지 않고 공감하기 시작한 주인공에게 박수를....

지난 작품집의 마지막 수록작 <서른>은 너무 아프고 아파서 힘들었따.

건강하고 안전한 거리에 대해 생각한다.

부재. 슬픔 원망 죄책감에 대해 때로는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멀어지고 모른 척 해버리면 인간이 아니지만 너무 가까이 해도 인간으로 살 수 없다.

인간은 좋은 인간과 나쁜 인간으로 나뉘는게 아니다.

인간이거나 인간도 아니거나. 그렇게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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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수를 한 적이 있다.

도안에 그려진 밑그림을 보고 칸 수를 세어가면 아무것도 없는 흰천에 십자모양의 수를 채운다.

도안의 칸을 잘 세어서 흰천위에 하나둘씩 수를 채워넣다 보면 그림이 완성된다.

바느질을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정확하게 수를 세어서 틀림없이 알맞은 색으로 채워나가다 보면 그림이 완성된다.

다만 지루하고 눈이 침침해질 수가 있다.

소설을 읽으며 십자수를 떠올린다.

어떤 이야기인지 전체적인 맥락을 알지 못한 채 그냥 읽는다.

더구나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책을 펼쳣는데 에세이같기도 하고 시 같기도 하다.

그냥 넋두리인가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대목에서는 어떤 광기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11년째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는 여자의 간병인으로 무대에서 발작을 일으켜 내려온 전직 배우가 온다. 같은 나이의 두 여자는 자매처럼 닮았다는 말을 듣는다.

살아있으나 살아있지 않은 여자를 돌보면서 화자인 여자는 자신에거 혹은 그 여자에게 쓴 편지처럼 내용이 흘러간다. 아니 편지라기보다 독백에 가깝다.

여자가 배우여서일까.

모놀로그 무대위에선 배우처럼 독백하고 몸짓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그저 배경처럼 왔다가 지나간다

내가 나로 산다는 것

서로에게 닿는다는 것

본다는 것과 보여진다는 것

생각은 생각으로 이어진다

병원속 다양한 인물들도 당연히 등장한다.

약이 끔찍해진 같은 병실의 정옥 아줌마

전쟁통에 조카를 잃어버렸다는 비밀을 평생 간직한 노인

뇌로 전이된 암때문에 장작이 둘로 쪼개지는 아프을 느끼며 결국 마지막 선택을 해버린 남자

한때 유도 관장이었으나 사고로 마비가 와 그의 유도관 학생이었던 물리치료사에게 걷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하는 노인

남편이 죽고 다른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는 고백을 하는 감포 아줌마

생과 사를 함꼐 겪는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은 마주쳤다가 스쳐가고 서로를 알지못하지만 서로의 존재에는 익숙해진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끝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읽다보면 문장이 말처럼 흐르고 리듬을 타고 흘러내리고 굽이친다.

(누군가의 목소리로 듣는다면 더 멋질거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 사람들이 이 생각들이 어떻게 될까?

말이 없고 누워만 있는 여자를 돌보고 만지며 화자는 그녀가 자기인지 자기가 그녀인지 혼란스러워진다. 오로지 한사람의 대상만 바라보고 몰입하는 시간이 계속 흐른다면 그리고 스스로를 고립시킨 상황이라면 둘 사이의 교감은 어쩌면 한사람의 그것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그 여자는 요양소로 가게 되었을까?

능앞에서 혼자 걷기 연습을 하던 그 노인은 여전히 뚝뚝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을까

왜 하필 그 장소가 경주였을까?

한없이 낮고 수줍고 고즈넉한 그곳이 독백과 잘 어울린다고 느낀 건 나만의 생각일까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읽은 후

마침내 눈이 아리게 칸을 세고 그 칸에 맞는 숫자의 색실을 찾아 바늘을 꿰고 한땀 한땀 떠내려간  십자수는 완성이 된다.

과연 도안의 그림이 제대로 완성이 될지 알 수 없는 가운데 그저 근시안적으로 지금 당장 채워야 할 칸만 세고 색을 찾기에 급급했던 십자수는  멋진 그림으로 완성된다.

이거 였구나

누군가에게 닿으려는 손짓

누군가를 보려는 행동 보여지고 싶은 욕망

그것들이 켜켜이 알게 모르게 쌓여서 관계가 되었다.

스치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어져 있었다.

그 여자. 그리고 그 곳 사람들

그속에 나는 나처럼 살고 있었다.

 

아직도 소설인지 시인지 에세이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몽환적이고 긴 독백으로 이어진 한편의 극을 보고난 느낌이다.

두시간을 꼬박 어두운 극장에 있다가 나온 뒤에 느끼는 피로감이 남는다.

내가 읽으며 무대를 상상하고 소리를 상상했던 특이한 독서 경험이다.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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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제도의 운영을 위해 (그 주체가 국가든 회사이건 무엇이든)

이야기를 금지해야 했다

누군가 타인에게 관시을 가지지 말것

상상하지 말것

감정이입을 하지 말것

그렇다면 서성일 일도 고 주저하거나 자기가 가진 정의와 윤리를 다시 되돌아 볼 일도 없다.

듣고 보고 배운대로 믿으며 그대로가 전부라고 믿어버린다면 사회는 갈등도 없고 단순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될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 그건 모르겠다.

소설을 읽는다는 일이 부질없다란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윤성희의 소설은 늘 내 발목을 잡고 옷깃을 붙든다.

'그리 서둘 필요 없잖아. 천천히 읽어  문장이 어딜 도망가니?'

단문들이 반복되면서 자구 헷갈렸다. 이 문장을 읽었던가? 건너뛴 문장이 있는건 아닐까?

가끔 건너뛰어도 별 문제는 없다. 그러나 하나도 빼먹을 수가 없다. 짧고 무심하고 건조한 문장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그려내는 사람들에게 눈을 뗄 수가 없다. 어쩌나. 이런 삶을 어쩌나...

평범하고 특징이 없고 이렇다할 드라마도 없는 이야기가 자꾸자꾸 궁금하다.

어릴 적 네번이나 죽을뻔한 경험을 했다는 것

이복형제들과 살았다는 것

열일곱의 딸을 잃고 아내와도 헤어졌다는 것

이젠 다니던 작장도 그만두었다는 것

쓰다보니 주인공의 삶이 별일 아닌건 아니다.

그러나 윤성희의 문장들은 워낙 덤덤하고 무심해서 별 일 아닌 것처럼 들린다. 그럼에도 무시할 수 없고 자꾸 신경쓰인다.

단조로운 리듬이 적당히 지루해서 나른한 기분 그러나 딱 멈추는 지점이면 기가 막히게 눈이 떠지는 백색소음같은 것. 익숙하고 익숙한데 멈출 수 없는 것

그런 문장들이 모여 이야기를 만들과 사람을 보여준다.

 

근식이든 영무든 그는 여전히 그다.

첫문장.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죽은 딸을 설명해줄 첫문장을 찾는 남자.

어쩌면 뒤늦은 애도일 수도 있다.

또 어쩌면 늘 남들의 착각과 오해속에 숨어 살았던 삶에서 걸어나와 제대로 스스로 설명해보려는 용기일 수도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짧은 기억들이 파편처러 제각각이지만 그것들을 무장으로 이어붙이면 내가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

첫문장은 별 거 아니지만 별 거이기도 하다.

다음 문장 그 다음 문장으로 이어지며 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시작이다.

나는 나의 첫문장을 생각한다.

어떤 문장은 깊이 스며들지 못하기도 한다.

그저 몸에 붙었다가 부지불식간에 어디서 떨어져버리기도 한다. 내것이 되지 못하는 문장들이 수두룩하다. 왔다가 가버리는 언어들 문장들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걸 표현할 문잗을 찾지 못한 것 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떤 문장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내 몸에 붙었다가 떨어져버린 스며들지 못한 문장들을 하나 하나 주워서 이어분다면 결국 그것들이 내가 아닐까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나만 몰랐던 게 아닐까

 

문장을 쓰는 일

첫문장을 무엇으로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멋진 첫문장이라고 생각하고 선택해서 문장들을 이었는데 다 쓰고 보니 빼버리는게 더 나을 수도 있고 다른 문장으로 바뀌어도 상관없을 떄도 있다.

중요한 것은 첫 문장으로 시작해서 문장을 차근 차근 쌓아가는 일이다.

첫문장은 첫문장이다.

그러나 첫문장이어서 쉽게 나오지 않는 문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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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막창집과 호프집이 나란히 있는 골목에서  동네 놀이터에서 마주 칠 수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더 싼방을 구해야 하는 12월의 마지막날  떨어뜨린 케익 상자라도 꽉 부둥켜 안아야 하는 마음이 현실이다. 그건 안타까움이나 절망이 아니다. 감정들을 잘 걷어내야 보이는 그냥 현실이다

(에뜨르)

 

즉은 장의 일기를 보고 주인공은 다르게 살고 싶다고 느낀다. 나를 다른 시선으로 봐주고 기억했던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어쩌면  나는 내가 생각하며 취급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괜찮은 인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의 노랫가사를 풀어내면 이런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랑한다고 기다리라고 약속한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  이미 그 기다림을 잊어버리고 산 어느날 문득 다시 기억해내는 일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현실을 알게 되는 것은 슬프다.

세상에 손가락질받아 마땅했고 비난받아도 당연했던 사람이란 있을 수 있지만 사람은 결국 누구나 자기 삶에 이유가 있고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못할 것도 없는데 그래서 때로는 그 이야기를 아는 것이 싫기도 하다.

그냥 몰라서 미워하고 선을 그어버리고 나누고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다면 나만 힘들테니까

사랑과 관심을 경험했던 사람이 그것이 사라졌을 때의 박탈감은 더 크게 다가온다.

사랑받는다는 것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그것의 부재가 더 크게 다가오고 상처가 깊고 배신감은 진하다.

나는 때로 무시가 산뜻한 계산법이 되는 확고한 자세가 부럽다. (개의 나날)

 

액정이 깨어져 실금이 간 핸드폰이 멀쩡하게 작동되는 걸 본 적이 있다.

보기에는 기괴한데 사용에는 지장이 없는 이상한 광경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아직 약정기간이 남았으니 바꿀 수도 없는 일이다.

그 폰으로 통화하고 인터넷을 하고 게임을 하고 쇼핑을 했다.

가끔 인간관계에 금이 가고 그 금들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아직 사회적 관계가 남아서 타인의 시선이 신경쓰여서 그냥 모른 척 할 때 가 있다. 깨어져 새긴 균열들 금들은 미세한 가루를 흘리며 조금씩 조금씩 소멸되고 있는데 애써 모른 척 하거나 정말 모르고 살아간다.

미세한 금속가루는 위험하다.  (휴가)

 

폭풍이 치기 직전끈적거리고 흐린 날씨

곧 쏟아질듯한 긴장감이 하루하루 이어지면 그냥 무뎌질 수도 있겠다.

남편의 실종

그리고 계속되는 일상들

차라리 무슨 일이 터져버리는 것이 편할 것 같지만 이대로의 미완이 계속된다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셈이니 그것도 좋을거라고 착각한다.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 혹은 이미 일어난 일을 내가 모른다는 것 그건 같은 일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억지 같지만 위안이 되는 일

뭐가 더 나은지는 모르겠다.

태풍이 오기전 얼마나 피해를 입을지 그 크기가 어떤지 알 수 없다

그냥 이렇게 계속 이어져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고 익숙해지는 순간이 위험하다.

(뒷모습의 발견)

 

큰일이 끝나면 소설이나 드라마는 끝이 난다.

그러나 일상은 계속된다.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일은 여전하다.

마음이 바뀌어도 행동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다행이기도 하다

(이후의 삶)

 

읽는다는 것. 책을 읽는다는 것

타인의 섦을 들여다 보고 구경하는 것

나와 다르지 않다는 걸 발견하고 위안을 받는다. 읽으며 위로받고 변할 수도 있겠다.

주인공은 읽으며 견디고 견디며 읽는다.

그 견딤이 누구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도무지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고통일지라도 고통은 고통이고 견딤은 견딤이다.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고 돌아오는 길

그리고 출산하는 딸 옆에서 다시 엄마 노릇을 하는 것

일상은 돌고 돈다.

주인공이 편안했으면 좋겠다

(변해가네)

 

소설이 끝나도 인물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비슷하게 살아갈 것이다.

책장을 덮는다고 내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듯이

저 나아지지도 더 나빠지지도 않은 책 그렇게 상실 이별 고단함 같은 것들을 견디고 그 사이사이 반짝이는 즐거움이나 기쁨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드라마틱한 대단한 일들이 아니라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가장 무서운 일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 우리는 모두 대단한 일을 해왔고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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