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
오사 게렌발 지음, 강희진 옮김 / 우리나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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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에서 늦게 오는 아이를 마중갔다가 걸어오는 밤길

이런 저런 이야기끝에는 꼭 서운했던 일들이 튀어나온다.

동생이랑 말다툼하면 동생편만 드는 것

별 거 아닌걸로 화를 냈던 일

단 한번 먹기 싫어서 안먹겠다는데 그걸로 짜증을 내서 서운했다는 것

소소하고 시시하지만 혼자 쌓아놓기엔 억울하고 속상한 것들

아이 말을 듣다 보면 별 것도 아닌 걸가지고 그러냐고 퉁박을 주게 되고

나도 그러고 컸다는 찌질한 꼰대같은 변명만 하게 된다

그러던 중 아이가 불쑥 말했다

"엄마도 서운한게 있으면 지금 할머니한테 말해. 돌아가시고나면 말도 못할텐데.."

그럴까?

한때  상담을 공부하면서 그리고 너무너무 우울할때 나를 들여다 보니 지금 내문제가 다 자랄때 양육문제고 그때의 애착관계의 문제라고 생각되서 억울하고 화가 나서 뭐라고 퍼붓고 싶다는 욕구를 마구마구 느낀 적이 있었다.

지금이라도 이걸 표현하지 않으면 억울할거 같고

왜 나만 내버려두고 왜 혼자 잘 할거라고 제멋대로 믿었냐고 따지고 싶었고

종가집이라는 거 다 이해해도 어떻게 그렇게 남동생이랑 알게 모르게 차별 했냐고 하고 싶었으나..

나도 아이를 키우고 동동거리고 이런저런 서운한 말을 듣고 보니

그때 우리 부모는 정말 젊었구나. 지금 이렇게 나이먹어 늙은 부모하는 나도 지혜가 없고 아량이 없어서 어린 것들과 기싸움 하고 하나라도 더 이겨먹으려고 하는데

그 파릇파릇 젊었던 우리 부모도 당연히 그랬겠구나

뭐 따지고 보면 내가 내 자식에게 잘하려고 하는 것이 아이들에겐 부담이고  불안이고 서운함인데 어쩌면 그때 당신들에게 그런 말과 행동과 선택이 최선이었던건 아닐까..

가난한 집 장남과 철없이 종부이 되어버려 다른 무게가 많았던 그 분들에게 자녀 양육이라는 거에 모든 걸 쏟아 부을 여력이 남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리고 지금 너무 늙어버린 부모에게 그렇게 조목조목 따지고 들어봤자....

기억할리 없고 기억한다고 한들 아름답게 편집된 그 기억속에 나만 결국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가며 키워놨더니  뒤통수만 친다고 더 억울해하며 방방 뛰시다 안그래도 혈압도 높으신데 쓰러지기라도 하면..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매사 생각만 많고 행동으로 옮기기엔 게으른 성정도 한몫했고

뭐 나도 무던하기만 한 사람은 아닌지라 한번씩 성질나면 팍팍 쏘아주기도 했으니 그것역시 지금 엄마가 된 입장에서 자녀가 그러는게 나름 상처라면 상천데... 서로 쎔쎔이구나 싶기도 했다.

 

 

 

만화속 주인공 제니는 나중에 제대로 된 상담사에게 "정서적 방치'로 인한 트라우마라는 진단을 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이름붙일 수 있는 병명을 가짐으로서 제니는 조금 치유받았을 것이다.

내내 스스로 느꼈던 불안과 죄책감 수치감에 모든게 내 잘못이라고만 생각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못했고 누군가에게 수용되지도 못했던 제니는 비로소 자기 상황과 상처에 이름을 갖게 되면서 치유가 시작되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어른도 마찬가지지만) 감정을 억제하라고 통제하는 것은 가장 큰 폭력이고 겁박이 된다.

슬플 때 울 수 없고  즐거워서 재잘재잘 떠들어댈 수 없고 누군가에게 위로받지 못하고 공감받지 못하는 것은 큰 고통이다.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감정을 조정하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억누르는 걸 먼저 익혀야 하는 건 슬프다.

제니 부모 역시 어쩌면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된다고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누구에게 드러내지 못하고 그렇게 되는 걸 부끄럽게 여겨야 하는 상황에서 정서적 문제를 가지게 되고 결국 내가 가지지  못하고 수용받지 못한 정서는 누군가에게 나눠줄 수도 없다.

억누르는 것 감추는 것이 최선이라고 배운 부모로서는 그것이 최선의 양육이었을 것이다.

물리적 폭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경제적 결핍도 없었고 어쩌면 남들 보기엔 조용하고 평화로운 수준있는 가족이라고 보였을 제니 가족이 속으로 그렇게 조용하게 무너지고 균열되는 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모든 가정이 자신의 가정과 같을 거라고 믿었던 제니는 우는 친구를 안아주고 달래주고 이야기를들어주는 친구 엄마에게 이질감을 느끼고 두려워진다 울면 안되는데 울면 모두가 피해버리거나 싫어하는 짓인데 그걸 태연하게하는 친구의 행동도 이해할 수 없는데 그 친구의 엄마는그런 어리광을 피우는 친구를 안아주고 달래주고이해하다니...

혼란스러운 제니는 세상이 두려워졌을 것이다

문제를 드러내면 등을 돌리는 가족들

칭찬과 관심에 인색한부모

표현하기도 전에 누르는 것을 배우고  어쩌지 못하는 감정에 드러내고 폭발시키고 나면 남는건 개운함이아니라 수치심과 죄책감이다 내가 엄마를 울게 했고 내가 아빠를 등돌리게만들었다는 마음만 남는다타인이라면 쉽게 등돌리고 다른 사람을 찾았을  수 있지만 가족이니까 계속 함께 보고 연결되고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었기에 그렇게 조용히 무너지고 망가지는게 안타깝다.    누구에게도 사랑을 배우지 못한 제니는 조금만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 매달리고 사랑을 구걸한다 스스로 소중하고 가치있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다

엄마가 되고 아이를  사랑하지만 내 아이를 사랑하는 것조차 죄책감이 든다.

내 속에는 사랑받지 못한 작은 아이가 아직도 관심과 사랑에 목말라하는데 내가 이렇게 내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괜찮을까?

불안과 갈등속에서 제니는 스스로 일어서기로 하고 자신 속의 자라지 못한 어린 제니를 마주한다 괜찮다고. 니가 잘못한게 아니라고 . 너는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어린 제니를 인지하고 마주하며 안아주면서 제니는 다시 성장한다.

결국 나를 돌아봐야 하는 건 나 자신뿐이라는게 슬프기도 하다.

이미 늙었고 변하지 않은 부모에게 소리쳐도 닿지 않는다. 상처는 아직도 여기 가득한데 그때 그곳에서 나를 돌봐주고 사랑해주어야 했을 대상이 나를 봐주지 않는다면 나라도 나를 마주하고 안아줄 수 밖에 없다.슬프지만 해야할 일...

 

 

가끔 아이들이 내가 어쩌지 못하는 고민들을 말하거나 나는 관심이 없는 일로 흥분해서 방방거리며 이야기할때  게다가 그런 순간이 내가 지쳤거나 뭔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상황까지 겹쳐진다면 나도  사실 ... 나 좀 내버려두고.. 입을 좀 다물었으면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아닌 척 해도 기가 막히게 티가 나는지 상대는 금방 알아차린다.

지금 내말 듣기 싫어? 내가 귀찮아?

그제사 아니라고 손사래치지만 이미 정서에 작은 기스가 나고 ...한편으론 미안하지만 한편으로는 알면 조금 봐주면안될까싶기도 하고. 아 나도 정서적 방임을 하고 있었구나.... 아차 싶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사랑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사랑을 받은 사람이 사랑을 베풀수 있다는 말은 반박하고 싶지만 할 수없는 진리다.

내 안의 그릇이 가득 차야 누군가에게 댓가없이 나눠줄 수 있다.

상대가 아이라면  나 혼자 이만큼 주었으니 되었다. 하는 만족감은 경계할 일이다.

 

우리애는 참 순해요 참 착해요. 혼자 알아서 잘 해요

이 말이 단지 칭찬일 수는 없다는 인식

혼자 알아서 잘 하는 아이가 얼마나 외로운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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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희와 나 - 2017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이기호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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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과 공감이라는 말은  어쩌면... 가장 많이 오해받는 말인지 모르겠다.

누군가 타인을 타인의 입장에서 들여다보고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사람은 쉽게 자기의 위치를 바꾸지 못한다.

내가 내 위치에서 조금 움직여 타인의 위치로 다가가려고 하지만 완벽하게 타인과 포개어질 수 없다.

이기호가 말한 것처럼 누군가를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누군가의 상처를 바라보는 입장만 취하면서 그저 그것이 공감일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타인의 상처를 공감한다는 건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나머지 단편들 속에서도 우리는 타인의 입장을 절대 공감하지 못한다.

그저 내 자리에 그대로 서서 상대를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하지만 내가 가진 가치관과 편견을 바탕에 두고 이해할 뿐이다.

부부 형제등 가장 가까웠다고 믿는 가족사이에서도 마찬가지고

친구사이에서도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일이고

사회 역시 개인을 전혀 자기 위치를 바꾸지 않고 바라볼 뿐이며 개인은 사회에 어떤 기대감도 없다

그렇게 바라보며  안타깝고 부끄럽고 두렵지만 자기 위치는 늘 그대로 고정적이다.

이해와 공감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

 결국 8편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것을 알아낼 뿐이다.

그래서 슬펐고 눈물이 났다.

무언가 굉장히 부끄럽고 초라하고 안타깝지만.. 나 역시 누군가에게 닿지 못했고 누군가 나에게 닿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이기호의 단편은 툭툭 가볍게 잽을 날린다고만 여기다가 그 가벼운 잽들이 모여서 골병들게 되는 이야기이고

권여선의 단편은 너무 아프고 두려워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을 기어이 눈앞에 들이대고 있으며

김애란의 단편에 나오는 주인공의 정서는 어쩌면 살면서 문득 등골이 서늘해지는 그 순간을 포착하고 있었으며

편해영의 단편은 피식거리다가 결국 얼굴이 벌개지는 부끄러움을 드러낸다

취향탓인지 이야기들은 들쑥날쑥하고 의외로 호감이 가는 작가가 생겼고 의외로 앞으로 작품이 실망될거같은 작가도 있다. 아주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야기는 직접 읽어볼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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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의 비극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문학 베스트 1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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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반전이나 트릭을 기대하진 않는다. 등장인물의 성격과 정서를 보며 감탄한다. 오래된 미스테리물이라 진부하고 고전적인 구성과 묘사도 있지만 인간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희노애락 오욕칠정은 늙지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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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과 분노
로런 그로프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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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과 비극의 차이는 뭐지?

그건 삶의 슬픔이나 유머따위가 아니라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맞다. 그렇구나. 싶었다.

바라보는 사람이 서있는 위치, 그의 눈의 높이 그리고 그 순간 그가 가진 정서과 사고가 삶을 비극으로도 희극으로도 만들어버린다

 

결혼이라는 것과 그리고 이어지는 삶이라는 것이 대단히 스펙타클하다거나 로맨틱하지 않다.

통속적이고 진부하고 누구나와 다른 바 없는 비슷비슷한 상투성의 연속인데

사람들은 자기 삶만은 다르다고 믿고 싶고 스스로를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삶에 대한 올바르고 건전한 생각일 수도 있다.

내 삶이 진부하고 보잘것 없다고 믿는다면 긴 시간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이 책을 왜 읽었지?

책의 처음 몇장을 넘기면서 계속 생각했다.

모두가 최고의 책이라고 했고 심지어 오바마도 최고라고 했다는 말에 심하게 혹한게 아닐까 했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묘사들과 결혼생활이라는게 섹스가 중심이 되어 그것만이 전부인것처럼 이어지는 것도  불편했고  '운명'편의 주인공인 남자의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이어지는 것도 지루했다.

그냥 반납할까 망설이다가 어느 순간 흐름을 타고 계속 읽게 된다

 

이야기는 운명이라는 제목으로 남자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분노의 타이틀로 여자의 이야기를 쓴다. 남자의 이야기는 목적을 뚜렷하게 보여주며 일대기 방식으로 그가 태어나고 자라고 순간순간 위기를 겪으며 그것을 드라마틱하게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순수하고 누구에게나 사랑받아 마땅한 남자의 이야기는 지루하고 속물적이다.

1장에서  사람스러운 남자 랜슬럿  이름마저 주인공이 아닐 수 없는 토로는 멋지게 좌절하고 성공한다. 그리고 느닷없이 죽어버렸다. 사실 이렇게 빨리 죽을 지는 몰랐다.

그가 중심이 된 이야기속에 그의 아내 마틸드는 어떤 면에서는 쌍년이었다.

느딧없이 등장해서 아름다운 청년을 사로잡고 결혼하고 모두의 기대에 어긋나게 죽음이 갈라놓을때 까지 함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둘은 정말 진실로 서로를 원하고 사랑했다. 타인의 기대를 무참하게 깨버리면서

2장은  쌍년인지 내조자인지 헷갈리는 마틸드의 이야기다.

그의 이야기는 연대기가 아닌 뒤죽박죽 흘러간다

어릴적 모습이었다가 과부가 된 지금의 이야기였다가 다시 젊은 시절 혼자 살아내야 하는 시간의 이야기였다가 뒤죽박죽이지만 오히려 그런 구성이 그녀를 더 잘 보여준다.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성숙하지 못한 헛헛함이 두 사람을 만나게 했다.

어릴적 치기어린 행동으로 가족에게 버림받고 춥고 낯선 환경에 버려진 토로와 자기가 무엇을 잘못한지도 모른 채 가족에게 버림받고 여기저기 위탁을 다니며 어느 순간 스스로 삶을 책임지기 위해 가장 위험한 도박을 하는 여자가 만난다.

타인의 이야기로 듣는다면 더없이 드라마틱하고 멋진 플롯이 되지만 그것이 내 삶이 되는 순간 이보다 더 절망적이고 불안하고  피하고 싶은 삶은 없다.

 

아름다운 사람 무책임한 사람 아무것도 모르면서 남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

착한 사람 악한 사람 조용히 사람을 밟아버리는 사람 누구에게나 매력있고 순종적이며 내조하는 사람은 모두 같은 사람이다

세익스피어가 인용되고 신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 상징으로 등장하면서 어쩌면 멋지고 매력있게 보이는 문장으로 이어진다.

그 문장들속에 주인공의 삶은 드라마틱하고 멋지고 아름답지만 딱 거기까지....

읽는 동안 지루했고 재미있었고 긴장도 했지만  마지막을 덮으면서 그대로 잊혀질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다만 남는 것들은

어릴 적 애착관게는 앞으로 살아가는 시간에 많은 영향을 끼치겠구나 

잘못 형성된 애착관계와 도식들이 삶을 어떻게 흔들어가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고

우리가 남의 삶을 바라볼 때 결국 그건 내가 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타인의 삶을 바라본다.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하고 살아가는지를 바라보면서 세상엔 내가 아는 것을 제외한 더 큰 세상이 존재하며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인물 이외 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운다.

내가 토로와 마틸드를 다 이해할 수 없고 그들만큼 매력적인 레이첼과 샐리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면서  내가 모르는 사람들을 소개받고 알아가게 된다.

그들의 삶을 알게 되면서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지만 그들의 삶을 내가 살 수는 없다.

결국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한계도 함께 알아간다.

 

인물은 매력적이지만 이야기는 글쎄.... 호들갑스러운 찬사들은 나랑 맞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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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오리엔트 특급 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03 -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신영희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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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원작이 풜씬 좋다.

그럼에도 영화가 별로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많이 축약되고 인물들도 줄어들었지만 원작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결은 그대로 가지고 간다.

내가 여사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모든 범행에 이유가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형의 집행은 찬성하지 않는다.

어떤 죄를 지었던 그것을 다시 죄로 갚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언제나 이성이 앞서고 논리적일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가장 납득할 수 있는 개인적인 사형이다.

 

영화가 좋았다고 생각되어지는 점은 추리라는 점에서는 어설프고 보여주는 장르다 보니

우리의 노쇠한 포와르가 너무 많은 액션을 펼쳤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유괴당해서 살해된 어린 소녀와 그로 인해 망가지고 파탄이 나버린 가족에 대한 절절한 복수가 이만큼 이해되고 공감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스포가 포함된다)

 

모두가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가누며 칼을 겨눌 때

그들의 슬프고 애절한 표정과 몸짓은 가장 감동적이다.

아름답고 잊을 수 없는 손녀를  기억하며....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에 대한 회한을 담아 무두 손에 피를 묻힌다.

그렇게 관련자 모두가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모여 같은 목적으로 서로를 모른 척하며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닫힌 공간이라는 설정은 그래서 더 매혹적이고 애절하다.

 

많은 추리소설을 읽었다면 크리스티 여사의 트릭들은 이제 낡았고 다들 알만한 클리세가 되어버렸지만 범인을 쫓는 긴장감보다 사람사이의 관계  사람들간의 감정의 흐름의 입장에서 본다면 타인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내가 모든 입장이 되어볼 수는 없어서 소설을 읽는다.

그중에 가장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입장이 되는 방법이 추리소설을 읽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만큼 미운적이 있다면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어서 가슴 한가운데가 아프기만 하고 무력하기만 했었다면

세상의 불의앞에 나서지 못하고 약하고 소심하게 눈을 돌린 경험이 있다면

추리소설이 더구나 이렇게 고전적이고 맬로적인 추리소설이 보여주는 세계는 좋은 공감이 되고 카타르시스가 된다.

 

모든 선악을 구분해야하고 범인은 언제나 죄를 받아 마땅하다고 믿는

고지식한 우리의 포와로가 또다른 추리를 내놓을만큼 어쩔 수 없이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이번 사건은 그래서 걸작이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아니면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매력적인 미셀 파이퍼의 마지막 열변때문일까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세상엔 아니라고 아니라고 머리로는 판단하지만 어쩔수 없는 일들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어서 우리는 참고 견디며 기다리지만

그렇지 않고 해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그 갈등을 견디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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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8-01-11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걸작 인정 !!!!!!!!!!

푸른희망 2018-01-11 18:53   좋아요 0 | URL
그렇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