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목소리
시오타 타케시 지음, 임희선 옮김 / 비앤엘(BNL)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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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뻑 빠지 읽지는 못했다.

읽어나가다 보면 앞부분이 기억나질 않고 이 사람이 저 사람인 헷갈리기만 했는데

중간에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막 다음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는 것도 아닌데

읽다가 다른 일이 생기면 주저없이 책을 덮고 튀어나갈 만큼의 흥미지만 끝까지 읽고 싶었다.

한 페이지를 몇일이나 계속 읽기도 하고 몇일동안 일지 않기도 했다.

두 주인공 이름이 비슷해서 이게 누구인제 좀 분간이 안가다가

이 사람들을 두 주인공 중 누가 만났었는지 혼란스러운건 나이탓일 거다.

 

토시야가 사건을 파헤치다 그만 둔 건 납득이 갔다.

가족이 얽혀있다면 그리고 앞으로 함께 살아가야할 가족이 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저 뺀질거리는 문화부 기자라고 봤던 야쿠쓰가 취재를 해가면서 기자로 성장해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취재가 깊어지면서 과연 야쿠쓰는 어떤 시각으로 기사를 쓸지가 궁금했다.

누가 범인인가라는 사실을 추리해나가는 취재에서 점차 윤곽이 드러나고 거대하고 미해결로 마무리된 사건  게다가 경찰과 언론이 크게 비웃음을 당한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들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궁금해하다가 그게 실소조차 할 수 없는 인간들이라는데 이르러면서 취재의 방향이 궁금했다.

결국은 사람. 그들의 장난같던  혹은 허무맹랑한 대의사이에 낀 사람들 특히 자기 결정권이 없던 어린아이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추적해가기로 한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건의 규모와 원인 결과에 시선을 빼앗기느라

정작 그 사건에도 사람이 관여되어있음을 잊는다.

가해자와 피해자 이외 그들과 얽힌 사람들 그들의 가족 친지 혹은 무관하지만 그 순간 그곳에 있어서 우연히 끌려들어간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잊는다.

지루한 르뽀처럼 이어지는 글이 결국 사람이다.

 

이전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사카린 살포 사건에서 사건보다 그 사건에 연루된 무관하지만 무관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결국은 사람들이었다.

기억을 하든 잊히든 혹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이 항상 있었다.

 

오사카 여행을 가면 늘 인증샷을 찍은 촌스런 런닝셔츠 차림의 달리는 아저씨 구리코 가 이 소설속 깅만사건의 실제 모델이라니... 참.. 알고 갔더라면 좀 달랐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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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말 어느 날 야밤에 한 십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숲속으로들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은 어쩌다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는 호기심을 끌면서 시작된다.

누가 왜 누구를 향해 산탄총을 쏘았을까?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

초반 이야기는 지루하게 하키 이야기로 이어진다.

하키에 살고 하키에 죽는 남자들 이야기 그리고 그 관습을 그대로 이어받은 폭력을 폭력인 줄 모르고 행사하는것이 전통이 되어버린 하키팀의 소년들 이야기 주변 여학생들 이웃들 선생님들

그리고 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하키에 의한 하키를 위한 하키의 마을이 쑥대밭이 된다.

 

1. 모두에게 모두 나름의 이야기가 있고 그것들은 납득이 가능하다

   단 그들에게서만....

 

등장인물이 참 많다.

읽으면서 내내 미미여사의 '솔로몬의 지혜'가 생각났다. 물론 한두줄로 언급된 인물도 있지만 적어도 등장인물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제각각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이해하지 못할 게 없고 그럴 수 밖에 없겠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행동은 모두 이유가 있다.

미치거나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없다.

설령 그렇게 보이더라도 그 행동이나 말 이면에는 깊은 빙산처럼 숨어있는 내면과  삶과 감정과 관계들이 얽혀서 그런 모양새를 보여준다.

하키팀 코치와 단장 사장 그리고 후원자들 이사진들 모두 제각각의 계산이 있고 정의가 있고 자기들끼리의 으어리~ 가 있다. 그래서 그 입장에서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 각자의 입장이 부딪치는 순간 갈등이 생기고 누군가의 천하의 악당이 될 수 밖에 없고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지만 또 다른 면에서 보면 다른 입장들이 존재한다.

주연은 아니지만 프락의 입장이 그리고 보보 부모의 입장에 참 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와 살기위해  집단에 끼기 위해 내세워야 하는 정의가 다를 수도있다는 것과

객관적인 입장이라는 것이 소극적인 입장 더 나아가서는 방관자적인 입장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해준다.

빌리엄의 엄마와 필리프의 엄마는 참 많이 다른 결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그들은 자식앞에서 의기투합하게 되고 엄마니까..어쩔수 없다는 강하면서도 모순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캐빈의 엄마와 마야의 엄마도 다르면서 같다.

아이의 변화를 엄마가 모를 수 없다 다만 모르고 싶고 모른 척 하고 싶다.

자식앞에서 바닥을 칠 수 없는 죄인이며 동시에 자식을 위해 누구보다 뻔뻔해져야 하는 사람이 엄마다. 그래서 엄마는 한없이 숭고하면서 동시에 그럴 수 없이 뻔뻔하고 몰염치하다.

 

2. 이것은 폭력이다. 그것도 집단 폭력이다.

사실은 캐빈이 미야를 성폭행했다는 사실이다.

앞뒤 좌우의 문맥을 다 자르고 펙트만을 놓고 본다면 그건 벌어진 일이며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 사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일어났으되 보이지 않는 것이며  누군가 상처를 받았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다.

베어타운 사람들은 오로지 하키가 전부다.

하키는 마을 구원할 유일한 수단이고 마을 사람들의 자부심이며 살아가는 낙이고 희망이다.

내가 하키를 했고 내 가족이 하키를 했었거나 하고 있고 내 자식이 하키를 하고 있다.

하키는 그들에게 소속감을 주고  의리를 가르치고 팀웍을 가르치고 살아갈 이유가 되며 내가 왜 성공해야하는지의 척도이고  모든 길로 통하는 만능열쇠가 된다.

그 가운데 캐빈이 있다

캐빈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우승이 가능하며 마을을 다시 되살릴 수 있고 모두가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펼 수 있다. 그 앞을 가로막은 마야는 그저 장애물이고 걸레가 되어버린다.

누가 상처를 입었는지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모두의 입장에서 제각각 계산기를 누르고  내가 보고 싶은 것 내가 갖고 싶은 것만 본다.

 

그래서 리모나의 말은 강하게 울린다.

하키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저 그 하키에 미친 남자들이 문제다.

 

폭력을 폭력이라고 인정해버리는 순간 돌이킬 수 없다고 다들 믿는다.

어쩌면 팔랑거리는 나비의날개짓에 모두가 벌벌 떨면서 대단한 빅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 속에서는 그게 호들갑인지 모른다. 대단힌 사태일 뿐이다

그들 밖에 있는 리모나가 알고 프락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기도 하고 보보의 엄마가 생각할 뿐이다.

 

3. 성폭력은 참 예민한 문제다.

이건 위계에 의한 강압적인 폭력이 맞다.

마야는 캐빈을 좋아한다

캐빈은 외모도 좋고 집안도 좋고  하키의 영웅이며 우등생이기까지 하다.

모두가 좋아하고 숭배하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 남자가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면 그건 정말 행운이다.

다른 여자들의 조언이나 충고는 질투이고 시기일 뿐이다.

그가 하키 경기에서 이기고 그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마야를 초대한다

엄마에게는 친구 아나네 집에서 잔다고 하고 간다.

엄마도 딸의 거짓말을 안다 자기도 그 나이때 다 해 본 짓들이다

멋질 엄마가 되기 위해 그리고 반대를 해도 소용없다는 걸 경험으로 아는 인생선배로서 딸아이의 거짓말을 알고도 넘어간다.

안전한 마을이며 서로가 누구인지 다 알고 있는 좁은 동네에서 별일이 생길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다.

그리고 마야는 모두의 시기속에  캐빈과 웃고 술을 마시고 히히덕거린다.

그리고 함께 방을 구경가고 그의 방에서 마리화나를 피우고 키스를 한다

딱 거기까지가 불안하지만 스릴 있고 짜릿한 일탈이다

거기서 멈춰야 했는데 캐빈의 목적은 그게 아니다.

여기까지 따라와놓고 나와함께 침대에 누워놓고 그만두라는 건 말이 안된다.

그리고 폭력이 행해졌다.

 

결국 죄책감은 그날 그곳에서 그렇게 행동했던 마야의 몫이고

자기 자식을 지키지 못햇던 그의 부모 미라와 페테르의 것이다.

캐빈에게는 우승에 따르는 당연한 행위일 뿐이다.

하키팀이 늘 외치는 구호  두번째로 원하는 것은?  떡치기!!!

원하는 누구와도 떡칠 수 있다. 우승만 한다면....

이건 세대를 이어져 전해지는 폭력의 계승이다.  염병할...

결국 가해자는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는 천하의 쌍년이고 걸레고  개인적인 감정으로 하키팀 전체를 그리고 마을 전체를 물먹인 죄인이 된다.

내 일이 아니므로 내가 조금의 피해를 입었으므로

사람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모두가 하나가 된다

공포감을 주는 혐박을 하고 없는 말을 만들어서 퍼뜨리고 마야는 인격이 없는 대상으로 취급하며 그 일을 그저 있을 수 있는 하나의 우승 헤프닝을 본다.

성폭력을 바라보는 시선은 지금 여기 한국이나 저기 스웨덴이나 다를게 없다

그들도 선진국은 아니다.

적어도 세상의 절반에게는

 

4. 결국 모든 일은 이유를 붙이기 나름이다

사람들은 교묘하게 일을 비틀어버린다

하키를 할 수 있다면 내가 변하지 않고 누릴 수 있는 것을 그대로 지킬 수 있다면 굳이 베어타운에서 하키를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들이 그렇게 부르짖은 베어타운의 곰~ 이라는 구호도 자기 이익앞에서는 헌신짝처럼 버려진다.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하키만 할 수 있다면 그곳이 베어타운이든 헤드 이든 상관이 없다. 하키만 할 수 있고 우승할 수 있다면 말이다.

게다가 그 놈들이 신뢰하고 따르는 코치가 헤드로 옮긴다. 이유는 충분하다

아이를 사랑하고 하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다.

내 아이는 사랑하지만 남의 아이는 사랑하지 않는다.

내 아이가 입은 고통은 뭐든 아파 미치겠지만 타인의 고통은 무감각하다.

결국 베어타운은  그대로 남는다.

여자 하키팀이 만들어지고 다시 아이들을 모으며 하키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수 있게 시작한다.

그리고 하키 하나로 뭉쳐진 무서운 광기를 없애기 위해 다른 스포츠도 함께 시도해본다.

내가 하는 행동 선택은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된게 아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이유가 붙는다.

모든 일이 그렇다.

일단 행하고 이유를 나중에 생각한다. 가장 그럴듯한 것으로

 

5. 그럼에도

유약해보이던 에아네테 선생이 격투기 선수였다는 설정은 어이없지만 통쾌하다.

다비드의 선택을 찬성할 수 없지만 그의 입장은 이해가 된다

캐빈의 엄마가 무릎을 꿇고 울며 마야에게 사과하지만 변한건 없다는 것도 그럴 만하다.

그럼에도 벤이가 자기의 정체성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보보가 자기가 생각하는 정의를 행동으로 옮길 줄 알게 되었고 동시에 부모와도 소통하게 된다.  아맛이 친구를 잃지 않아서 다행이다.

무엇보다 꼰대 아저씨같던 프락이 누나를 향해 욕을 날리는 아들을 후려치며

'너는 그런 인간이 되면 안 돼. 내가 용납하지 않는다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 너는 아빠보다 나은 인간이 되어야지.'라고 말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현실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해피했다가 새드했다가 새드새드하다가 해피 할뻔 하기도 하고 돌아보니 해피일 때도 있고 그저 끝날줄 모르는 새드의 연속이기도 하다.

소설의 마무리도 그렇다.

이게 잘 된건지 잘 못된 건지 모르겠다.

산다는게 그런 거니까

 

집단 광기와 폭력을 이보다 더 현실감있게 보여주는 묘사는 없다 싶어 적어뒀다

정말 두려운건 그것들이 폭력이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 모두 정의를 위해서.  전체를 위해서... 라고 생각한다는게

진정한 폭력이다.

 

그들은 술과 마리화나에 대해 물을 것이다. 영원히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바닥 모를 공포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평생 벗어나지 못할 전축과 포스터ㅏ 있는 이 방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것이다. 어딘가로 굴러간 블라우스의 단추와 평생 그녀를 따라다닐 두려움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깔린 채 소리없이 흐느끼고 그의 손으로 입을 틀어막힌 채 침묵의 비명을 지른다.              p245

 

 

가해자의 성폭행은 몇분이면 끝나는 행위다. 피해자에게는 그칠 줄 모르는 고통이다.

                                                        p245

 

 

아직까지는 캐빈이 나한테만 상처를 줬잖아. 하지만 내가 입을 열면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까지 상처를 받게 돼 그건 감당이 안돼.

                                                            p311

 

 

 

말은 하찮은 것이다, 다들 얘기하길 말로 일부러 상처를 주려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다들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경찰들은 그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나는 그냥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그래서 그 남자아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들은 여자아이가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말허리를 자르고 그녀가 어떻게 했는지 질문을 퍼붓는다. 그녀가 앞장서서 계간을 올라갔는지 아니면 뒤따라 갔는지 자발적으로 침대에 누웠는지 아니면 강요에 의한 것이었는지 블라우스 단추를 직접 풀었는지 그에게 먼저 입을 맞추었는지 아니면 그가 입을 맞추었을 때 반응을 보였는지 술을 마셨는지 마리화나를 피웠는지 싫다고 했는지 분명하게 의사를 밝혔는지 충분히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는지 충분히 열심히 저항했는지 왜 곧바로 멍 사진을 찍어놓지 않았는지 왜 다른 학생들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고 파티장을 도망쳤는지

그들은 똑같은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열 번씩 반복해 여자아이의 대답이 달라지는지 체크하며 모든 정보를 취합하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그러면서 혐의 제기 자체가 문제라도 되는 듯이 이건 심각한 혐의제기라고 한다. 그녀는 어떤 부분에서 잘못을 했는지 훈계를 듣는다. 너무 한참 뜸을 들어다 경찰에 신고한 것. 입고 있었던 옷을 버린것 샤워를 한 것 술을 마신 것 그런 상황으로 자신을 몰고 간 것. 이층의 그 방으로 따라가서 그에게 착각을 심어준 것. 그녀가 옆에 없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도 않았을 텐데 왜 그 생각은 하지 못했느냐고 한다.

그녀는 열다섯살이니 부모의 동의 없이 성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나이라고 하고 그는 열일곱살이지만 다들 '어린애'라고 표현한다. 그녀는 '젊은 아가씨'다.

 

말은 하찮은 게 아니다.

 

                                    p323

 

 

피해자가 다른 사람들의 심정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불편하고 끔찍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나중에 누군가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았느냐고 물으면 마야는 고개를 끄덕일 테고 모든 감정 중에서 죄책감을 가장 크게 느낄 것이다. 그녀를 가장 사랑한 사람들에게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잔인한 짓을 저질렀을니 말이다.

 

일이 벌어진 후 모든 부모가 인정하기 가장 두려워하는 그 문장

 

"우리 아이들을 우리 손으로 지키지 못했어"

                                                                 p325

 

 

리더가 되면 가장 먼저 터득하는 것이, 리더는 무슨 말을 할지 선택하는 것 못지 않게 무슨 말을 하지 않을지 선택하는게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p 335

 

 

증오는 매우 자극적인 감정일 수 있다.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친구와 적 우리와 그들 선과 악으로 나누면 세상은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휠씬 더 덜 무서워할 수 있다. 한 집단을 똘돌 뭉치게 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어렵다. 요구사항이 많다. 증오는 간단하다.

그래서 갈등이 벌어지면 우리는 제일 먼저 편을 정한다. 양쪽의 생각을 같이 하는 것보다 그러는 편이 더 쉽게 때문이다. 그런 다음 우리의 믿음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는다. 평범한 일상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위안이 될 만한 증거를 찾는다. 그런 다음에는 적에게서 인간성을 거세한다. 그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이름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몇 날 밤이 찾아오고 소문이 번지자 베어타운에서는 어느 누구도 휴대전화나 컴퓨터로 '마야'라고 쓰지 않고'M' 아니면'그 아이'라고 한다 아니면 '그 걸레'라고 한다 어느 누구도 '성폭행'을 운운하지 않고 다들 '그 주장'이라고 한다. 아니면 '그 거짓말'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로 시작해서 '무슨 일이 있었다 한들 자발적이었다'로 발전하고 한술 더 떠서 '자발적이 아니었다 한들 그 아이가 자초한 일이다 술을 마시고 그의 방에 같이 들어가다니 무슨 생각으로 그랬던 거냐'로 수위가 높아진다. '그 아이가 원해서 한 거였다' 로 시작해 '당해도 싸다'로 마무리된다.

어떤 인간을 더 이상 인간으로 보지 말자고 서로를 설득하는 건 금방이면 된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많은 시간동안 침묵하면 목소리를 내는 소수가 너 나 할것 없이 악을 쓰는 듯한 인상을 풍길 수 있다.

 

                               P 374 

 

 

이런 망할......... 남자들이란. 당신 잘못은 없다 이거지? 이 아이들을 키운 장본인이 하키가 아니라 당신들이라는 걸 언제쯤 인정할래? 자기들이 멍청한 짓을 저질러 놓고 자기들이 창조한 쓰레기 탓으로 돌리는 남자들은 어딜가나 있다니까? 종교때문에 , 전쟁이 벌어진다는 둥, 총기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는 둥, 다 똑같은 개소리잖아!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수네는 변명을 하려고 하지만 그녀가 다시 손찌검을 하려고 들자 고개를 숙여서 피한다.

 

내가 말할 때는 입다물고 있어. 염병할 남자들 같으니라고! 당신들이 문제야! 종교는 싸우지 않고 총기는 죽이기 않아. 그리고 씨발 똑바로 알아두라고 하키는 지금까지  아무도 강간한 적이 없어. 그런데 누가 그러는지 알아? 누가 싸우고 죽이고 강간하는지 알아?

수네는 헛기침을 한다   

남자들?

남자들! 항상 염병할 남자들이 문제라고

 

                                                             P445

 

 

그는 오늘 열여섯살이 되었고 평생 놀림과 따돌림에 시달렸다. 모든 면에서 그랬다. 외모. 생각, 말투 집 주소, 모든 곳에서 그랬다. 학교에서, 로커룸에서, 온라인에서, 그러면 결국에는 인간이 마모된다. 주변 사람들은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거니 생각하기 때문에 잘 모른다. 하지만 아니다. 이런 건 절대 익숙해질 수가 없다. 끊임없이 불길처럼 이글거린다. 도회선의 길이가 어느 정도 되는지 당자자도 모를 뿐이다.

                                                                       P 446

 

 

 

베어타운에서 여자아이는 하키를 조금이라도 좋아하면 안된다. 전혀 좋아힞 않아야 이상적이다. 하키를 좋아하면 레즈비언이고 하키선수를 좋아하면 걸레다. 아나는 옆집 할아버지를 벽에 붙여 놓고 그 아이들이 앉아서 실없는 농담 따먹기를 하는 로커룸이 그들을 보존하는 깡통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알려 주고 싶다. 그 때문에 더디 성숙하고 일부는 심지어 그 안에서 썩는다고 말이다. 그들은 여자 친구도 없고 이 지방에는 여자팀도 없기 때문에 하키가 그들만의 것이라고 학습하고 코치들도 여자아이들은 '기분전환용'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그들은 여자아이들이 오로지  '떡치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학습한다. 그녀는 이 마을의 모든 나이 먹은 남자들이 그들을 가르켜 '투지가 넘치'고 '물러설 줄 모른다'고 칭찬할 뿐 여자가 싫다고 할 때는 정말 싫은 거라고 가르쳐 준사람이 아무도 없지 않았느냐고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 마을의 문제는 어떤 남자아이가 어떤 여자아이를 성폭행한 수준을 넘어 모든 사람들이 그 아이가 그런 짓을 하지 않은 척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남자아이들까지 그의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도 상관하지 않으니 그럴 수 밖에 아나는 지붕위로 올라가서 외치고 싶다

"당신들은 마야에 대해 쥐똥만큼고  관심도 없지? 캐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 왜냐마면 당신들에게 인간이 아니라 그냥 값나가는 물건이니까 그리고 캐빈이 마야보다 몸값이 휠씬 비싸고,"

                                                          P 450

 

 

아이들은 사냥을 익힐 때 숲속에는 두 종류의 동물이 산다고 배운다. 포식동물과 먹잇감이 산다고 배운다. 포식동물들은 먹잇감에 주목해야하기 때문에 눈이 가운데로 몰렸고 정면을 바라본다. 반면 먹잇감들은 뒤에서 다가오는 포식동물들을 간파해야 목숨을 부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눈이 양옆에 달렸다.

아나와 미야는 어렸을 때 몇시간씩 거울 앞에 서서 그들이 둘 중 어느 쪽인지 고민하곤 했다.

                                         P 453

 

 

싸움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걸 시작하고 멈추는게 어려울 뿐이다.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거의 본능적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싸움을 벌일 때 까다로운 부분은 첫 방을 날리는 용기와 이기고 난 뒤에 마지막 한 방을 참는 자제력이다.

                                                                            P 468

 

 

'의리'처럼 설명하기 힘든 단어도 없을 것이다. 의리는 항상 좋은 걸로 간주된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푸는 수많은 호의가 의리에서 비롯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제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저지르는 가장 나쁜 짓도 바로 그 의리에서 비롯된다는 거다.   P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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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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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서 오히려 더 좋았던 책. 그만큼 밀도가 높은 글이다.
글을 쓰고싶은 사람이 문맹이라는 아이러니.
문맹이어서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이 탄생한다.가난한 언어에서 생명력과 감동이 나온다.
나는 읽는다. 이건 질병과 같다.
읽는것에 가책을 조금 느낀다.무엇보다 무엇보다! 쓰는대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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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소설은 어떻게 쓰여지는가
정유정.지승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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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영업비밀을 풀어낸다는 말에 혹했다.

누군가의 비법을 알아낸다는 건 늘 짜릿한 일이다.

비법을 안다면 누구나 정유정같은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요새 챙겨보는 프로그램중에 "골목식당"이 있다.

알다시피 조금 부족한 골목의 식당들에게 백종원이 가서 상황을 살펴보고 미션을 주고 그 미션을 해내면 솔루션을 주며 함께 상황을 해쳐나가보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식당 영업을 잘 알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 백종원은 각각의 식당에 적절한 솔루션을 제공한다.음식의 맛이 부족한 가게에는 아낌없이 레시피를 제공하고 영업에 문제가 있는 가게에는 손님 응대나 재료 보관 등등을 알려준다.

식당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음식맛이 있어야 한다는 건 기본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솜씨면 식당을 해도 되겠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집에서 내 가족이나 손님들을 먹이는 음식과 식당의 음식은 다르다.

내가 돈을 내고 사 먹는 음식에 대해서는 누구나 바라는 기대치가 있다.

적어도 돈값은 해야겠다는 생각을 누구나 하는데 그 돈 값이라는 것에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맛이 있어야 하고 위생적이어야 하고 손님으로 대우도 받아야 겠고 분위기도 좋고 어디 가서 자랑할만한 곳이어야 할 것도 있고... 사람의 마음은 제각각이고 간사하다.

파는 음식이란 그런 모둔 소비자의 욕구를 어느 정도는 충족시켜줄 의무가 있다.

돈을 내가 파는 음식 아닌가?

누군가에게 베푸는 음식이 아니다

백종원은 각가 필요한 솔루션을 준다. 어쩌면 그가 가진 영업 비밀을 하나씩 풀어내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백종원의 비법을 알았다고 모든 식당이 잘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가게 주인의 태도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비법을 가졌다고 모두가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그 비법을 제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비법을 비법인지 모르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 비법이 비법이 아니게 되는 묘한 비법을 가진 꽝손들도 있다.

결국 비법이 비법인 것은 그 비법을 가진 이의 노력과 능력 그리고 꾸준함이다.

 

정유정이라는 작가와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는 단단하고 치열하고 악착같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니...

나는 그의 작품을 모두 읽지는 않았다.

"7년의 밤'과 "28"을 읽었을 뿐이다.

남자 작가인 줄 알았다.

크고 단단한 이야기의 구조와  저마다 개성과 스토리를 가진 인물들 그리고 인간의 추악함을 끝까지 파고 내려가는 집요함까지 읽다가 지치고 이젠 그만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두권으로 독서를 그만 둔 것도 어쩌면 도서관에서 빌리기 너무 힘들다는 점도 있지만

다 읽ㄱ 나면 내가 기운이 뿍 빠지는 그 체험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자기의 비법을 풀어낸다.

당연히 그 비법 역시 악착같고 치열하다

별 다른 것이 아니다.

꾸준히 쓰고 많이 자료를 모으고 공부하고 파고 또 파고 고치고 또 고치는 행위의 반복이다

문학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글에 대해 당당하고 단단하다.

 

음흉한 마음으로 그의 비법을 알아내겠다고 밑줄 칠 준비까지 단단히 하고 책을 펼쳐든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그 비법을 알아낸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비법이 아니다.

세상에 굴러다니는 많고 많은 법칙들 역시 비법이다.

알고 있는 것과 행하는 것

그 사이에 비법이 존재한다.

 

나는 단단하고 치열한 그의 책을 읽을 준비만 하기로 했다.

그녀의 비법들을  찾아내면서 그녀의 소설을 읽어야겠다.

괜찮은 독자라는 위치도 나쁘진 않다.

다음 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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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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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의 책은 작가가 쓰긴 했으나 결국은 독자에게 닿아 그 의미를 가진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하나의 의미가 되듯이

한권의 책은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비로소 완성된다.

그 완성에 이른 책은 이미 작가의 의도에서 많이 멀어졌다.

가끔  작가의 의도를 찰떡처럼 독자가 받아들여 일치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특히나 이야기를 품은 책들은 독자 각각에 닿아 각각의 책으로 다시 완성된다.

 

내가 읽은 최은영이 다르고 내 딸이 읽은 최은영이 다르며 저기 전라도 누군가가 읽은 최은영이 다르고 경상도  한 쪽에서 맘졸이며 일은 누군가의 최은영이 다르다

분명 작가는 작품을 완성하고 편집자들의 손질을 거치고 다시 몇번의 퇴고의 반복으로 소설을 세상에 내어놓았지만 그 소설은 독자들이 키워낸다.

제각각 다른 환경에서 다른 감정에서 소설은 완성되었다

저마다의 개성과 정서와 읽는 순간의 환경에 의해 읽은 독자의 수만큼 다양하게 변주되어 존재한다.

많은 변주를 가진 저자는 행복할까?

아니면 자기와 일치하는 단하나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 더 행복할까

그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자식에 비유해본다면

내 자식이 어디에서든 그 자리에 딱 맞는 존재였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면 전자가 더 좋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사 놓고 오랫동안 읽지 않았다.

어떤 책의 표제처럼 마음이 소금밭이었다.

날은 뜨거웠고 내 문제가 아닌 것들도 발목을 잡았고  자고 삼시세끼를 챙기고 일정을 해내고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아무렇지 않게 웃고 다정하게 말을 걸고 다시 혼자만의 시간에 침잠해버리는  일상을 반복하면서 자꾸자꾸 억울하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었고 모든 건 내 탓이 아니고 니탓이라고 누군가를 붙들고 어깨를 흔들고 악을 바락바락 써대며 무언가를 토해내고 싶었다.

하루종일 소파에 누워 스마트 폰만 무기력하게 들여다 볼지라도 책에는 관심이 1도 가지 않았다.

읽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많이 읽는다고 내가 달라지나? 세상이 달라지나

여전히 덥고 여전히 곤두서있고 여전히 악을 쓰고 싶은 걸 참고 있었다.

나이 먹어 부모를 원망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면서도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음을 원망할 누군가가 필요했고 동시에 내 나이가 되어 나를 원망하거나 이해하기를 강요당할지 모를 내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복잡했다.

나이를 먹으면 세상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건 맞다

다만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 상처가 되기도 했다.

이해하지 못하는게.. 도데체 그 입장을  알게 되고 공감할 수 있다는게 더 힘들 때가 있다.

니가 무슨 마음인지 아니까 뭐라고 하진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이 편해지는것도 아니고

그 때 그 순간 니 입장은 그럴지라도 지금 상처를 입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나는 어디가서 하소연을 해야하나 하는 억울한 마음이 뒤엉키면서 차라리 이기적이고 단순하고 시야가 좁은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더울 땐 그래도 소설이라는 생각에 책을 들었다.

 

"그 여름"을 두 번 읽었다.

선풍기를 켜고 소파 구석에 웅크리고 한줄 한줄 읽어가면서 이경과 수이의 마음을 따라갔다.

주로 서술하는 이는 이경이지만 이경의 눈에 비치는 수이를 보는게 좋았다.

수이의 마음을 알 수 없었지만 그이의 표정에서 행동에서 그리고 꾸역꾸역 말없이 견뎌내는 모습에 자꾸자꾸 마음이 쓰였다. 그리고 어느 대목인지 알 수 없는  부분에서 눈물이 흘렀다.

아마 이경이 이별을 이야기하고 수이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대목이었듯 하다.

괜찮다고 내가 더 미안하다고 말하는 수이를 보면서 그렇게 말 할 수 밖에 없는 수이의 마음이 읽혔다 아니 수이의 마음은 모른다. 그렇게 수이를 표현한 작가의 마음도 모른다

하지만 수이의 그 한마디한마디 꾹꾹 눌러서 내뱈는 모습이 그려지면서 어이없이 눈물이 났다.

왜 우는지 어디가 슬픈건지 아픈건지 아니면 나이 탓인지 알 수는 없지만 더 이상 읽을 수 없었다

결국 허겁지겁 책을 덮었다. 그리고 한 숨 자고 다시  처음부터 읽었을 것이다.

 

다시 울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이 작품 뿐아니라 "고백"을 읽으며 주나와 미주가 추운날  바락바락 소리지르며 싸우는 부분에서도  느닷없이 눈물이 났고 "지나가는 말"에서  늦은 밤 버스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무언가를 기다리던 주희를 모른 척 했던 윤희의 뒤늦은 후회에서도 눈물을 흘렸다.

말이 눈물을 흘렸다는 거지 사실   꺼이꺼이 울었었다.

화자보다 화자가 바라보는 대상 인물에게 마음이 가면서 그 속내가 드러나지도 못하고 그저 행동으로 말로 무언가를 절절하게 드러내보이고 싶어하는 인물에게 마음이 쓰였다.

화자는 스스로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상황을 변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관찰의 대상이 되는 인물은  어찌보면 주인공처럼 큰 자리를 잡고 있지만 그 속내는 알 수 없다. 그저 화자가 보는대로 느끼는대로  드러날 뿐이다.

자기 입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은 사람들. 아니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무엇이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하나?

주인공이 아니어서?

화자가 아니니 그저 남이 묘사하는대로 보여지는대로  판단을 받아야 하는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타인을 그저 보이는대로 내가 겪은 대로 밖에 알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고 믿는다.

그 타인이 가족이거나 오랫동안 알아온 이라면 우리는 쉽게 내가 잘 안다고 해버린다.

그리고 어쩌면 그 타인들은 그들의 지인인 타인들이 아는대로 판단한 대로 보일 수 밖에 없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니까

그 늦은 밤 버스 정류장에서 무슨 생각으로  멀리 고개를 빼고 기다렸던 것인지

친구의 은밀하고 용기있는 고백에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었는지

치열하게 축구를 하고 삶을 살아내는 것이 타인에게 무심하고 예의없이 보일수도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모를 수 밖에 없다

자기를 잘 알 수 없는 법이다. 외외로

 

다시 읽어보니 각각의 단편은 대단한 사건이 있는 건 아니다.

고등학교때 사귀었던 친구와 가까워지고 더 할 수 없이 안타깝고 애절하다가 멀어지는 이야기

어린 시절 이웃 친구가 겪었던 차별과 모멸이 나에게도 마찬가지였음을 알아버리는 이야기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이는 여동생을 시간이 흘러 조금씩 알아가는 이야기

죽어버린 친구때문에 멀어져 버린 또다른 친구와 건널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 이야기

그리고 상처를 가진 이들이 타인의 상처에 대해서는 하찮아 하며 무시하던 이야기

사실 그건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극적인 어떤 꼭짓점은 갖진 못했지만 덤덤한 일상속에서 감정은 얼마나 널을 뛰었던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감정조차 생기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저 어제같고 오늘 같은 일상도 얼마나 다이나믹한 혼자만의 롤러코스터가 있었던가

누구에게 내보일 수 없지만 나는 늘 불안하고 우울하다가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몸을 떨기도 했었으니까 한없이 떨어지는 순간도 있었고 앞이 보이지 않은 막막함에 아무리 악을 써도 소리가 나오지 않은 두려움도 있고 사소한 한마디에 툭 치는 손길에 한없이 무너지며 처절하게 매달리기도 했었으니까.. 그러나 보이는 건 그저 평온하고 일상적인 무색 무취였다.

누군가 이유없이 좋아지지만 지겨워지기도 하고

이유없이 미워지고 사라져주길 바라기도 한다.

내 곪은 상처가 너무 아파서 타인의 타박상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고 경멸하기도 한다.

혼자 콩을 볶고 난리 부루스를 추고 미친년마냥 널을 뛰다가 널부러지는 일

그런 감정의 오르내림이 각각의 이야기속에 있었다.

덤덤하고 평온한 인물들의 감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내게 무해한 사람..

얼핏 보면 내게 무례한 사람 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찌보면 내게 무관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해한 사람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 어쩌면 관계가 없는 사람 상관이 없는 사람

그럼에도 연결되길 바라는 사람

그런 사람들

그리고 그럲게 널뛰는 감정들이 이야기 속에 있었다.

이야기는 내게 와서 그렇게 맺음을 한다.

최은영이 어떤 마음으로 썼든지 인물들이 어떤 격랑을 겪었든지

이야기는 여기 푸른희망앞에서  마구 널뛰는 감정으로 읽혔다.

독서는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여름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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