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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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장편은 처음 읽는다.

그의 수필을 주로 읽었고 단편은 대부분 읽었다.

그를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

사실 소설보다 에세이가 좋다고 생각해왔다. 그냥 소소한 일상적인 이야기가 부담이 없어 좋았고 <먼 북소리>의 경우는 소장하고 몇번을 읽었었고 최근 < 여자없는 남자들> 은 응? 나이가 들어서인가? 하루키 소설이 좋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소설가의 일>에서 그냥 인간 하루키가 꽤 존경할만한 부분이 있구나 생각했다.

내가 나이를 먹었기때물일거다. 나이를 먹으면서 다시 읽거나 혹은 예전엔 미뤄두었던 책을 읽게 되면  의외로 괜찮구나 하는 경험을 많이 하는 중이다. 그리고 반짝하는 천재는 이미 나랑 정말 상관없는 일이 되고 보니 무언가의 분야에서 오랫동안 견뎌온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하루키는 그런 유형이다. 그래서 좋아하게 되었다.

이젠 하루키의 장편에 도전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최근 작품이면서 길지 않고 사지 않아도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수 있는 책.... 으로 이 책을 골랐다. (모든 조건에 들어맞는다)

오후에 빌려와서 그냘 밤에 다 읽었다.

오래 곱씹어야 할 부분이 눈에 띄이지 않고 몇 번을 읽어야 이해가 되는 부분도 없고 별 일 아니면서 단순하고 또 궁금증을 유발하는 부분도 있어서 도데체 왜 그랬대? 그때 그 녀석들은? 하는 마음으로 계속 읽어나갔다. 그리고. 아.... 하고 책을 덮으며 이젠 장편은 읽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슬쩍 했다. 개인적으로 단편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유일하게 소유하는 소설 < 여자없는 남자들> 이나 다시 읽어보기로 한다.

 

#1

홍상수 영화가 떠올랐다.

어쩌면 소심하고 찌질한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씨는 스무살에 고등학교 시절 절친인 고향 친구들에게 절교를 당한 후 그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들인다. 받아들였으면서도 동시에 너무 상처를 받아서 죽음가까이 갔다가 다시 삶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잊고 살아간다. 아니 잊고자 하며 살아왔다. 아니 살아가려고 애썼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면서

그러다 2살 연상의 여자를 만났고 그 여자에게 과거를 고백하고

여자가 말한다.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 사이에 무언가가 끼어들어있는 듯한 껄끄러움이 남는다. 문제를 해결하라...

츠쿠루씨는 그렇게 다시 옛친구들을 만나 그때 왜 그랬느냐고 물어본다. .. 이유는.. 사실 김빠진다. 뭐 고등학생에게는 절실할 수도 있었던 문제였지만 모두가 그렇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면서 누구도 먼저 츠크루에게 연락하지 않았고 츠쿠루 역시 사실을 알지도 못했으면서 그냥 그대로 덮어버렸다. 오해도 아니고 그렇게 상처받은 시간들

친구들은 왜 이제야 연락하냐고 ... 하나같이 반가워하고 너를 의심하지 않았다고 하고 너가 가장 강했었다고 말하고 니가 가장 멋지다고 하고... 색채가 없는 무존재감이라고 느낀 츠쿠루는 당혹해하지만 그걸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어정쩡하니.. 아 문제가 해결되었구나 생각하고 연상의 연인에게 고백하기로 결심하지만 혹시 그녀에게 있을 더 멋지고 편안한 남자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하는 것  

딱 찌질한 남자의 방황기 성장기다. 더구나 여자의 조언이나 도움없이는 한걸음도 내디딜 수 없는 자랄 수 없는 손이 많이 가는... 그러면서 욕구는 왕성한 남자이야기.

상실감이나 연결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찌질하고 소심한 남자가 여자의 도움으로 겨우 강을 하나 건너서 아주 조금 성장하고 있다...끝 

 

 

# 2

결국 그런 이야기로군 하고 책을 덮고 자리에 누웠는데 자꾸 걸리는 부분이 있다.

초반에 나는 분명 이야기에 빠졌다.

물론 초반은 흥미로웠다. 왜 도데체 츠쿠루씨가 다섯명의 완벽한 친구그룹에서 배척을 당했는지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이유를 말하지 않고 이유를 묻지도 않고 그냥 그렇게 끝! 이라니....

너무 잔인하다.

무조건 이제 절대 우리 누구에게도 연락하지마.

이렇게 잔인한 말이 있을까?   그것도 갓 스무살에게.....

츠쿠루씨가 친구들에게 연연하는 성격은 아닌것 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뒤통수를 맞는듯한 배신감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어떤 조짐도 없이 어떤 계기도 없이 어떤 이유도 모르고.

그 문제가 꼭 내문제같아서 더 책에 몰입했던 거 같다.

갑자기 친구가 쌩까거나 나를 투명인간취급하는 순간의 절망감은 당사자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뭘 그런걸 가지고... 다른 친구랑 놀면 되지.. 왜 그러느냐고 따지면 되지.. 웃으며  먼저 다가가면 되지 등등 조언은 수도 없이 많이 할 수 있지만 막상 그 순간이 되면 며리속은 하얗고 몸은 일시 정지상태가 되어버리면서 상대에게 무언가를 얻기보다 끊임없이 내가 뭘 잘못했지? 하며 나를 낱낱이 점검하고 검색하고 색출하는 과정이 되풀이될 뿐이다. 하루키가 꼼꼼하게 묘사하지 않았지만 츠쿠루가 죽음에 이르를 만큼 그도 고민하고 자기를 까뒤집어 보는 시간의 연속일것이다

잠도 자지 못하고 식욕도 없고 그저 학교를 기계적으로 가고 기계적으로 수영을 하고 그냥 기계적으로 먹는 나날들일거라는게 그려졌다.

소설의 도입에서 나온 그 청천벽력같은 친구관계가 남의 일 같지 않아 소설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이유는 정말 이유같지 않은 이유였지만..

그렇게 내면 깊은 곳의 서랍에 넣어두고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다짐한 츠쿠류씨도 결국 그 서랍앞에 서서 대면을 결심하고 순례를 떠난다. 아오를 만나고 아카를 만나고 구로를 만나러 핀란드까지 가고  그리고 그들을 통해 시로의 죽음을 전해 들으며 퍼즐을 맞추는데 이미 16년이 지난 지금은 그 때의 그 이유가 궁금한 건 아닐것이다. 이제 답을 얻어봐야 의미는 없다. 다만 그때의내가 풀어내지 못한 과제를 지금이라도 풀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뿐이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르지만 연결되어 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삶이라지만 한두 모퉁이에서는 다시 뒤를 조금이라도 되돌아 가서 다시 바로잡거나 다시 새겨야 할 것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츠쿠루씨는 그걸 위해 순례를 떠났을 것이다.

이야기 도입을 위해 조금은 무리한 설정처럼 보이지만 친구들의 갑작스러운 절교는 조금 충격이었다. 개인적으로...

 

#  3

소설은 사실 어떤 큰 위기는 없다. 초반 친구들의 절교를 제외하면 츠쿠루씨가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와서 외모나 내면이 변했다는 건 있지만 그 이후는 물 흐르듯 지나간다.

30대 중반까지 몇몇 여자들도 만났고 중간에 하이다도 만났고 규칙적이고 정갈하고 건강한 삶을 살았고 연상의 사라도 만나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순례를 떠나 만난 옛 친구들 누구도 츠쿠루씨를  외면하지 않고 반갑게 만나며 그를 믿었다고 너는 그때도 멋있었다고 말해준다. 의문은 쉽게 풀린다. 다만 죽은 시로를 만나지 못한게 안타깝고 그 죽음의 비밀이 풀리지 않았지만 그건 뭐 큰 문제는 아니다. 이렇게 모든 일들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흘러가는 건 어쩌면 16년 동안 성장하지 못한 츠쿠류씨처럼 나머지 다섯 친구들도  성장이 멈춰버렸기 때문인듯 하다.

모두 어른이 되고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들 살고 있지만 어딘가 성장이 멈춰서 불균형하고 기이한 모습의 어른이 되어버렸다. 나름의 문제가 있고 나름 회피하고 억압해놓은 부분을 가지고 모른 척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래서 불균형 상태로 성장한 츠쿠류와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을까

 

#4.

그래도 마음에 드는 결말이다

순례를 떠나고 친구를 만나 답을 얻었어도 여전히 츠쿠류씨의 앞날은 불투명하다는 것

리사와 잘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며 시로의 죽음에 대해서도 여전히 알 수 없고

한때 친했던 하이다의 행방 역시 알 수 없다. 뭐 인생에 스쳐간 만남이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항상 츠쿠류씨의 삶에서 사람들은 그렇게 통과해 가버리는 경험 뿐이라... 앞날도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 5

이제 더 하루키를 읽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여자 없는 남자들>은 구매를 했으니 가끔 그것만 다시 읽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실망했다는 것도 아니지만  아 괜찮은 걸 또 다른 작품이 궁금해 하는 것도 아니므로....그냥 굳이 더 읽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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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여사의 캐릭터 중에 내가 좋아하는 스기무라 탐정이 활약하는 단편집이다,

날카롭고 완벽한 실력을 갖춘 탐정이 아니라 인간적이고 계속 걷고 또 걸으며 묻고 또 물으며 사건에 다가가는 생활형 탐정이다. 게다가 매우 인간적이다.

지난 작품에서 이혼을 했고 이제 혼자 살면서 작은 탐정 사무실을 운영한다.

등장하는 사건들도 대단하지 않다.

그냥 무신경하게 넘어가도 그만인 일들에 관심을 갖는 오지랍이 넓은 이웃이나

뭔가 한마디가 걸려서 다음으로 넘어가기 쉽지 않은 순간을 맞은 사람들

혹은 내 이웃의 소소한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덕분에

사건이 의뢰가 들어오고  우리의 스기무라씨는 어떤 사건이든 무시하지 않는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열심히 뛰어다니고 조사하고 묻고 다니면서 진실에 다가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법은 이기적인 마음이나  어느 순간의 후회나 돌이킬 수 없는 기억들 그리고 순간의 그릇된 선택에 대한 이야기다.

갑자기 죽어버린 이웃의 할머니는 다시 보게 된  아주머니의 의뢰는 단순한 착각일 수도 있고 어쩌면 해프닝일 수도 있지만  무시하지 않고 하나하나 단서를 찾아가는 스기무라는 그 과정으로 대단하다.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보다 어떤 문제든 차별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는 것 그게 중요하다.

어느 정도 살고 보니 어떤 분야이든  반짝하며 화려하게 등장하는 것보다

작지만 오래오래 그 분야에서 살아남는 사람이 더 멋졌다

포기하지 않고 남들과 비교하지 않으면서 묵묵하게 내 발걸음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더 존경스럽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 덕분에 유지되고 조금이라도 반짝거리는 게 아닐까

 

큰 사건이 아니라 시시하지만 그래도 스기무라의 인간적인 탐색을 좋아한다면  이 책이 괜찮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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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8일의 매미>는 읽었고 <종이달>은 읽지 않았다.

세편을 묶어 사건 시리즈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고 여자가 사건에 휘말리는 큰 틀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책의 화자 리사코는 사건에 휘말리는 건 아니고 어떤 사건의 재판원으로 참여하면서 자기와 비슷하게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피고인에게 감정이 이입되며 피고인을 통해 자신을 돌아본다.

아이를 키워본 엄마라면....... 더구나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혼자 아이와 단둘이 남겨져 전전긍긍해본 엄마라면 조금이라도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다.

 

아이를 욕조에 빠뜨려 질식사 시킨 피고인을 바라보는 화자 리사코는 그 피고인에게서 자꾸 자기의 모습을 발견한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막막함

누구나 애를 키웠다. 예전엔 더 한 조건에서도 키웠다. 혼자만 유세하지 마라

모유를 먹여야 아이의 두뇌에 좋다.

다 자라면 별거 아닐 단계별 아이의 발달 상황 몸무게의 비교

아이의 표정을 보며 육아를 판단해버리는 사람들

행여 학대가 아닌가 지켜보는 눈들 눈들

도움이랍시고 던지는 말들 충고들은 뾰족하게 와서 박힐 뿐이다

나는 피고인과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한창 말을 듣지 않은 딸아이와  다정하고 잘 도와주는 남편이  별 뜻 없이 던지는 말들.. 도움을 주려는 시부모의 태도등등이 모두 하나의 거대한 음모처럼 느껴지는 순간순간들을 묘사하면서 어떤 사건도 새롭게 터짖 않지만 아슬아슬하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막막하고 외로운 일인지를 말하는 건 아니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말" 에 대한 이야기다

누군가는 배려라고 던지는 말이 상대에게는 칼처럼 박힐 수도 있다.

그냥 쉽게 뱉어지고 쉽게 받아 넘길 수 있는 말도 어느 순간 누구에게 어떻 마음으로 듣느냐에 따라 그냥 웃어넘기기도 하지만 독이 되어 박히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이런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뭐가 저렇게 배배꼬여서 남의 말을 꼬아서 듣는담?

자기가 자격지심이 있으니 좋은 말을 해도 다 저렇게 받는거지?

같은 말을 해도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인데 어디 저따위로 말할 수 있지?

 

내가 쏘아보낸 사랑의 말이 상대에겐 고통이 되고

무심하게 한 말이 어마어마한 푹풍처럼 되돌아온다.

 

말을 쉽게 뱉고 이쁘지 않게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말이든 다 꼬아서 듣고 내식으로 해석해버리는 사람도 있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은 벽창호같은 사람도 있고  별 일 아니고 별 말 아닌 것에 파르를 해버리는 사람도 있다.

말은 보이지 않은 독이고 총이고 균이다.

내 의도는 그게 아닌데 오해가 일어나는 경우 그게 내 잘못인지 상대 잘못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

난 그 사람을 볼 순 있지만 모든 걸 알지 못하니까 그 순간 그 사람의 감정이나 상태들을 모두 알지 못하니까 어떤 말이 어떻게 박히는 지 알 도리가 없고  상대 역시 내가 아니므로 내가 맽은 말의 의미를 나와 다르게 해석할 수 밖에 없다.

 

난 요즘 위로 와 공감이라는 말이 가장 어렵다.

힘들겠구나  많으 아프겠구나 하고 마음은 알겠지만 그런 내 마음을 말로 뱉어내는 일은 참 어렵다. 뭔가 좋은 방향을 제시하고 싶어서 한 말은 잘잘못을 따지고 드는 판단이 되거나 어설픈 충고가 되어버리고  위로하고 싶은 말은 때로 위로와 무관심 사이 어디쯤에서 혼자 날뛴다.

말없이 끄덕여 주는게 어느 순간은 위로지만 어느 순간은 귀찮아하는 무관심처럼 보이게 되고

때로는 반대로 무관심이 위로처럼 받아들여질 때도 있어서

혼자 멋적은 순간들도 있었다.

내 마음을 상대방에게 나처럼 여겨주기를 바라는 건 참 어렵다.

 

두 권 다 착하고 공손하다.

소소한 문제에도 최선을 다하는 스기무라나.. 육아에 대해 고민하고 사소한 말한마디에 상처를 받지만 스스로 이겨내려는 리사코나 아무 문제가 없다.

큰 사건도 없다. 그냥 불안하고 뭔가 걸리는게 있을 뿐이다

무시하면 그뿐인 문제일 수 있지만 예민하고 다정한 주인공들은 걱정을 고민을안고 있다.

주인공의 성격 탓일까?

두 권 다 뭐랄까 문장들을 첨언하면서 이게 이렇다고 말하지만 이렇다고 할만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닌 것도 아닌데 .. 그렇다고 꼭 찝어 이렇다고 할 수만은 없는 뭐랄까 그런다고 할까 하는 ... 뭐 그런 애매한 표현들이 자꾸 걸린다.

일본 소설의 특징같기도 한 딱 잘라 이거다. 저거다가 아닌 문장들....

자꾸 덧붙이고 덧붙여  촛점이 흐려지고 도데체 말하자는게 이거라는거야? 아니라는 거야? 싶을때가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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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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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왜 읽으려고 했을까?

분명 알라딘 서재에서 누군가의 리뷰 혹은 페이퍼에서  알게 되어 일기로 했던 거 같은데 그게 누구의 어떤 글이었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너무 오래 장바구니에 담아두었고 구입하고서도 너무 오래 서가에 꽂아두기만 했다. 여름 꾸역꾸역 읽기에 안성맞춤이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이 책을 뽑아든게 일주일 전이었다.

이전 <읽는 인간> 을 읽다가 중간에 포기했던 경험이 있다. 나이든 노 작가의 해탈한 문장들이 힘겨웠다. 음... 좋은 말이야, 좋은 말일거야, 게다가 사회에도 관심이 많은 작가이니  아픈 자녀를 돌봤던 아버지였으니.... 성찰적인(이라고 쓰고 재미없는이라고 해석하는) 소설을 쓴 작가니까... 모든 내용이 좋을거라고 생각하며  반에 반만 읽고 책을 덮었다.

 

그래도 소설은 에세이보다 읽기 쉬울거라고 나자신을  다독이면서 책을 펼친다,

난 의외로 이런 담담하고 지루하고 맥락없으면서 뭔가 계속 읽게 되는 소설이 좋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이 이어지더라도 계속 쉬지 않고 읽어가면서 단지 읽는다는 일이 알아낸다는 일이거나 이해한다는 일이 아니라 견뎌낸다거나 무언가를 참아내는 (불쾌한 것이 아니라 해야만 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마음으로 읽어내는 일이 좋다.

이건 칭찬일까 비판일까?

 

소설은 농담으로 시작해서 하나의 농담의 의미를 찾아간다,

좋은 대학을 갔지만 장래가 막막한 학과에 진학한 주인공을 걱정하는 척 하는 친척들에게 어머니가 일갈을 놓는다.

 

   "취직이 안되면 저 아이는 소설가가 될걸요!

    소설 재료는 붉은 가죽 트렁크에 한가득 들어있거든요"

그렇게 맥락없는 어머니의 일갈은 아들이 소설가가 됨으로 현실이 되었고 농담은 이제 더 이상 농담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붉은 가죽 트렁크"에 기대를 건  소설가 아들은 일생의 마지막 역작 익사 소설을 쓰기 위해 고향으로 어머니의 '붉은 가죽 트렁크"를 만나러 오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시작한다.

어디까지가  사실이며 어디부터가 소설일지 한계가 모호하게 이야기는 전개된다,

작중 화자인 소설가 코기토는 인생 마지막 역작으로 쓰려던 익사 소설을 통해 자신의 기억속에 있던 아버지를 완성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와 누이는 코기토가 소환하려는 아버지를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하고 마지막 기대를 가지고 있던  붉은 가죽 트렁크 속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다. 어린 기억속에 남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사실이었을까 한낱 꿈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코기토는 스스로 혼란에 빠지고 쓰지 못한 익사 소설로 의기소침해진다, 더구나 거대 현기증까지 생기면서 이제 마지막 소설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고향 산속집에서 만난 극단 혈거인의 젊은이들 특히 우나이코와의 만남으로 다시 고향에 대해 기억에 대해 그리고 우나이코에 대해 새롭게 경험하고 받아들인다,

 

코기토의 기억속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을까 악한 사람이었을까?

패전을 에감하며 새로운 저항을 도모하던 장교들과 함께 하던 아버지 

밤마다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무언가를 꾸미던 아버지의  알 수 없는 모습

그리고 비내리는 밤 혼자 붉은 가죽 트렁크를 들고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아버지

그리고 눈앞에서 뒤집혀진 배와  죽어버린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죽음을 그대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어린 코기토

그 순간 아버지 곁에 있던 주인공의 환상의 짝 코기의 모습 '

그건 꿈이었을까 현실이었을까

과연 코기토가 쓰고 싶어했던 익사소설속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싶었을까 아니면 아버지의 진실을 드러내고 싶었을까?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몸마저 말을 듣지 않게 되면서 코기토는 마음이 예민해진다,

쓸 수 없는 작가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아들 히카리에게  "넌 바보다"라고 두번이나 말해버린 일 역시 그런 감정의 연장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언급하기는 커녕 내색도 하지 않고 누군가가 히카리에게 놀리거나 뭐라고 하면 달려가 따져주는 든든한 울타리였던 아버지가 어느 순간 자기에게 바보라고 해버리자 히카리는 아버지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함께 음악을 나누지도 않고 말을 나누지도 않는다.

나중에 수술을 하게되는 코기토의 아내의 부탁으로  히가리의 말들을 모은 작은 책속의 히카리의 말들은 어눌하지만 진실되고 아름답다.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이고 어딘가 경직되고 딱딱하지만 그 문장과 단어속의 진심만은 그대로 전달된다. 그런 아들에게 막말을 하고 관계를 단절당한 아버지

그 아버지와  물속에 익사하면서 단절되어간 죽은 아버지 둘은 다른 듯 닮았다.

어린 시절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아무행동도 하지 못하고 나이 먹어서도 알지도 못한 그 어린 소년에서 한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한 스스로에게 바보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소설속에는 소설가 코기토의 이야기와 함께 연극 혈거인들의 이야기도 함께 등장한다.

혈거인의 중심인물이며 늘 코기토와 연결되는 우나이코의 이야기도 또다른 중심이다.

실험적이고 새로운 연극을  추구하는 혈거인 단원들 중에도 가장 독특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는 우나이코는 우연하게도 "개를 던지다"라는  해프닝같은 공연을 시도하고 큰 호응을 얻는다.

이어 코키토의 여동생 아사의 도움을 받아 지역 전설을 영화화 했던 예전의 <메이스케 어머니 출진>을 바탕으로 연극화 하고 그 내용안에 "개를 던지다"라는 형식을 넣음으로써  반란에 실패하고 배반한 군인들에게 강간을 당했던 그 어머니의 이야기와 함께 어린시절 자기를 성폭력했던 큰 아버지를 고발하려는 이야기를 준비한다, 그건 개인적인 복수의 문제가 아니었다.

국가에 의한 강간과 국가에 의한 살인이라는 사소하고 이름없는 개인의 문제가 결국은 사회적인 문제와 중첩된다는 것을 인식한  우나이코와 아사의 결의가 여런 사람에게 전해지고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반박하며 준비하지만 그 길이 쉽지 않다.

 

여러가지 다양한 이야기 어쩌면 연관이 없어 보이는 제각각의 문제들이 한 장소에서 부딪치고 서로가 서로에게 동의하고 반대하고 무시하는 과정에서 다시 새롭게 변형되고 그렇게 이야기가 이어진다. 처음에 말했듯이 어쩌면 맥락없이  부질없고 애쓰기만 하다가 끝날지 모른다는 막연함이 소설 내내 관통하는데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냥 어찌 되는지 끝까지 흘러 갈 수 밖에 없다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다는 거냐?  그래서 너의 상처가 어떻게 되어갔다는 것이냐? 다 자라 이미 성인이 되어버린 아들과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갈 것이냐?

결국 아내나 여동생이 아니면 게다가 자기가족과는 상관이 없던 우나이코나 릿짱이 아니면 무엇하나 제대로 해닐 수 없는  주인공이나 남자인물들은 데체 어디까지 꾸역꾸역 미룰것인지... 그 모든 것이 기대감보다 도데체 어찌 되어갈려고 이러나 싶은 기분으로 책을 끝까지 읽게 한다.

그래서 실망했냐고?

글쎄...

 

그냥 많은 기억들이 상념들이 책의 내용과 함께 혹은 상관없이 휙휙 지나갔다.

주인공이 예전 어린 소년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꿈꾸던 아버지의 모습을 묘사하는 문장들을 읽으면서 나는 자꾸 주인공이 어린 아들이었다는 사실이 낮설었다.

이제 나이를 먹어 노인이 되어버린 남자가 자신의 소년시절을 생각하고 그 때의 아버지를 회상하는 일이 머리로는 받아들여지는데 마음으로는 영 어색했다

내 부모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였을거라는 막연하고 어이없는 믿음같은 것과 맥락이 닿아있어서일까?  책속에 많이 등장하진 않지만 히카리의 아버지로서의 주인공이 더 당연하고 맞춤처럼 받아들여졌다. 내용은 아버지를 기억하며 그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소설가의 이야기가 주된 흐름이지만 나는 주변으로 등장하는 (그러기엔 후반에는 바중이 커졌지만)  장애가 있는 아들의 아버지 아버지에게 마음의 문이 반이상 닫힌 딸의 아버지 그리고 모든 걸 견뎌내며 이해하는 어떤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의 주인공이 더 쉽게 와 닿았다.

그건 내가 내 아버지를 처음부터 아버지로 만났던 게 이유일게다.

누구나 자기 부모는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부모라는 존재로 만나질 않나?

그 이전을 알지 못하고 함께 공유하지 못했고 게다가 시공간조차 함꼐 나누지 못한 그 이전의 시간을 알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계속 주인공과 내 아버지를 겹쳐가며 이야기를 읽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좋은 아버지였나? 책임감있게 가족을 지탱했다는 면에서는 그릭 자기 일에 책임을 다했다는 것에는 좋은 사람이지만 좋은 사람이 좋은 아버지가 아닐 수도 있고 좋은 남편이 아닐수도 있다.  좋은 사람이라는 건 도데체 뭐지? 그냥 나를 중심으로 그가 좋았는가 나빴는가로밖에 나는 판단할 수 없는게 아닌가? 백명을 인터뷰해서 그중에 51명이상이 좋아요를 누르면 자동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한때 미워한 적도 있고 짠 한 적도 있고 존경스러운 적도 있고 귀찮은 적도 있고 절실하게 필요했던 적도 있었던 복합적인  대상인 내 아버지를 생각한다.

 때가 되면  당연하게 묘사를 다니고  나중에 흉가로 변할지라도 재실을 지어 조상을 기렸던 우리 아버지의 당신 아버지에 대한 추모와 기행동은 익사소설에 집착은 코기토 못지 않은 집념이다. 그리고 한번도 당신 자식에게 바보라고 하진 않았지만 기대에 못미치는 자식들에게 내색하지 않고 실망할 줄 알았고 그 내색하지 않음이 들키지 않을리라고 과신하지도 않으면서 적당히 통속적이고 적당히 속물스럽게 기대하고 실망하고 체념해갔었다.

그냥 코기토가 쓰고 싶은 아버지를 보면서 그리고 아들 히카리를 대하는 아버지 코기토를 보면서 나는 나의 아버지를 겹쳐볼 뿐이다.

에세이나 인터뷰를 보아도 겐지씨는 소설가 혹은 예술가라기 보다 깐깐한 학자같고 그냥 히카리씨의 아버지이기만 할 거 같고  사회에 대한 저항정신이나 꼿꼿한 신념이 있다고 하지만 이젠 나이 먹고 조금 꼬장꼬장하고  한물 간 구석 애물단지같아 보였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허구적인 이야기를 읽는다기보다는

그가 들려주는 살아온 이야기들을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뒤섞인채 듣고 있는 묘한 느낌이었고 그가  다른 누구와 다르지 않아 보여서 더 묘한 감정이 들었다.

 

코기토는 결국 그가 쓰고자 하는 익사소설을 쓰지 못했다.

내가 본 그는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평생의 과제를 늘 등에 매달고 견디며 살아온 사람이었고

그의 등에 메달린 무게는 그가 죽기 전에는 놓을 수 없는 것들이었고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좋은 사람이고 옳은 사람임을 알고 있지만 끝내 그 앞에서 그렇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일테고

돌아서서 아쉬워하고 미안해하고 고마워하지만 그 앞에서는 왠지 말이 나오질 않거나

한두마디만 하다보면 괜한 반발심만 생기고 말게 되는

그러다 다시 돌아서서 후회하게 되는

그런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는 재미없게 읽은 이 책때문인지

그의 다른 책들도 궁금해졌다.

또 꾸역꾸역 견디며 읽게 될 테지만 그 과정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음.. 사실 꽤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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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7-08-24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희망님 잊지않고 리뷰 써주셨네요 ^^ 저랑 비슷한 감상이셔서 ㅎ. 님도 그러셨네요. 그닥 재미없는데 책을 내려놓을수없는 ㅎㅎ 신기한 책 맞죠? ㅋ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외 열린책들 세계문학 174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조영학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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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하는 이야기는 기껏해야 가설에 불과하다.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개연성이 가장 크다고 생가한 이론이다, 내가 도장을 찍듯 복제해 낸 본성의 약한 측면은 조금 전 방기해 버린 선한 자아보다 나약하고 왜소했다 결국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라는 게 십중팔구 노력과 미덕과 절제뿐 사악한 자아를 활용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따라서 에드워드 하이드는 헨리 지킬보다 훨씬 작고 가벼우며 또 젊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헨리 지킬이 선이 빛나는 용모라면 하이드의 얼굴엔 악의 특성이 선명하고도 노골적으로 새겨저 있있다 뿐만 아니라 악은 내 시체의 기형과 타락한 징후를 새겨 놓았다. 하지만 거울이 비친 추악한 외모를 보며 내가 느낀 건 바감이 아니라 밪가움이었다. 그 역시 나 자신이므로 내게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인간적으로 보였다. 내가 보기에 하이드는 영혼을 보다 생생하게 영상화 했다. 지금껏 나라고 여겼던 불완전하고 분열된 자아의 모습보다 명확하고 개성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분명 옳았다. 네기 에드워드 하이드의 모습을 하고 있는 한 접근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불안의 기색을 드러내고 만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것은 일반적인 인간 모두가 선과 악이 혼재된 존재인데 반해 이 모든 인류 가운데 오직 에드워드 하이드만이 순수 악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p 85

 

 

그날 밤 나는 운명의 갈람길에 서 있었다, 보다 고귀한 영혼으로 하여금 가설을 담당하게 하고 고겨하고 경건한 열망의 차원의 실험을 이끌었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생사의 고통을 통해 악마가 아닌 천사를 만들어 냈을 수도 있다 약물의 작용에는 차별이 없다. 약은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다. 다만 내 내면의 감옥 문을 흔들어 필립비의 포로들이 방면된 것처럼 내 안의 죄인을 끄집어 내고만 것이다.

    p 86

 

 

 

예전에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에 대해 술자리 개똥철학을 나눌적에 나는 인간은 악한 존재라고 믿는다고 했었다.  왜냐는 질문에 내가 나쁜 짓을 할 때는 즐거웠고 짜릿했지만 선한 일을 하려고 할 때는 마음을 먹어야 해서였다고 대답했었다.

물론 무의식적으로 나는 신호규칙을 지키고 사람들에게 버릇없이 굴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고 말투도 공손하고 무난하게 살고 있지만 어쩌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돌아오는 불이익이나 비난이 두려워 몸에 익힌 무의식의 습관이라고 생각했었다. 간혹 슬쩍 거리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무언가를 하지 않고 했다고 하거나 하고도 하지 않았다고 우기는 일들은 그 크기가 소소하고 별 일 아니더라도 나름 즐겁고 짜릿했다 그리고 나의 어릴적 꿈 중 하나가 스파이가 되거나 멋진 자객이 되는 거였는데 그것도 한편으로는 살인이나 폭력을 포함하고 있는 존재였다.

은밀하지만 무언가 질서를 흐트러버리는 일은 늘 로망이었고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다만 현실의 나는 소심하고 찌질해서 한번도 그런 일을 한 적은 없다, 다만 찌질하고 소심하게 복수를 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건 누구에게 말하기도 창피한 일들이다.

 

나 역시 약물을 발명하고 내 속의 또다른 인격을 꺼집어 낸다면 천사가 아닌 악마를 꺼집어 낼 확율이 높다. 게다가 현실의 사회에서 정말 미운 사람 죽어 마땅하거나 벌벋아 마땅한 인간들이 정치 경제 언론 문화 교육 다방면에서 굴비처럼 엮여서 줄줄이 등장하고  점점 각박한 살릶살이탓인지 갑질이 늘어나는 세상에서 살다보니 난 분명 악마를 소집했을 것이다. 하이드보다 더 미쳐 날 뛸 수도 있는...

 

살아보니 인간이란 악/ 선 이렇게 딱 잘라 두가지만 존재하지는 않더라

누구나 두 곳에 엉거주춤 다리를 걸치고 있고 다만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두고 더  인내하고 견뎌낼 수 있는가의 문제이지 딱 잘라 이렇다고 정의 내릴 인간은 거의 보이질 않는다

공부도 잘하고 집안도 좋은데다 성격까지 좋다는 건.. 그가 자기가 살고 있는 환경의 바운더리 안에서 어려움 없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원만하고 모든 걸 누릴 수 있고 인정받는 세상에서 악해질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그가 자기가 사는 환경에서 조금만 벗어나 조금 더 각박하고 험한 세상을 경험하거나 자기가 가진 달란트중에 하나라도 부족해버린다면 그도 중분히 달라질 수 있다,

가장 선한 천사에서 가장 악한 악마의 사이에 점점이 무한대로 다양한 인간군상이 존재할 뿐이다,

어디에 더 가까운가의 문제이지 딱 잘라  판단할 수는 없다 물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자체가 한가지로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함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젊잖은 지킬 박사는 억누룰 수 없는 하이드의 존재에 점점 눌리고 영역을 잃어가면서 결국 비극을 맞이한다. 어쩌면 지킬이 선한 존재여서 악을 감당할 수 없어  하게된 선택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존재가 한가지 본성만으로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엇을까 생각한다,

 

내 안에서도 다양하게 존재하는 본성들 중에

지금 여름을 견디는 동안 나는.. 사소함에도 버럭해버리는 조급하고  속좁은 인격이 가장 큰데... 그 모든 이유가 더위때문이라고 핑계 대고 있는 중이다,

선선해지면 조금 매력있고  교양있는 인격이 나올거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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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은 켈리는 사랑했다,

아니 사랑했다고 믿었다,

그런데 안경끼고 키도 크지 않고 근육도 없고 공부 잘하고 글을 잘 쓰지만 남자 답지 못한 그는 절대 고백하지 않는다. 그저 혼자 사랑한다고 믿는다.

함께 동굴같은 살캥이 편집실에서  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

서로 말이 잘 통한다는 것

함께 차를 타고 귀가하고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는 일이 일과처럼 되고

함께 연말 파티에 가고 함께 세상을 돌아보면서

그는 어떤 표현은 하지 않으면서

켈리와 농염한 사랑을 꿈꾸고 미래에 의사가 된 자신과 의사 부인이 된 그녀와 함께 하는 일상을 꿈꾸지만 결코 표현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녀가 나를 좋아할지 모른다고 기대하고 착각하고 믿어버리면서

다른 날 사소한 행동으로 그가 나를 밀어내고 나를 싫어한다고 단정한다,

혼자 믿고 혼자 단정하는 일....

그건 찌질한 일일뿐 아니라 폭력이다.

나 혼자 모래성을 지었다 허물었을 뿐이라고 하겠지만 그 일방적으로 흐르는 마음은 폭력일 수 있다. 내가 생각하고 판단한다. 상대의 마음이나 감정은 조금도 상관없다.

그냥 미루어 짐작하고 판단한 후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모든 것이 서로 간의 관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나의 일방적인 판단일 뿐이다

그 파장이 30년동안 휘몰아쳤고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혼자만의 판단이 몰고 온 비극에서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설령 모든 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내 잘못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나의 어긋나고 삐뚤어진 마음이 어디서 스파크를 일으켜 불꽃이 걷잡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쿡이 로맨스를 쓰나보다 생각했다.

이렇게 무언가를 감추면서 뭔가 대단한 반전이 있을거라는 냄새를 팍팍 풍기면서  전개된다,

너무너무 속터지게 결과를 까보고 싶지만 문장은 한없이 느리고 한없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면서 흘러간다.

녹색의 여륾날 그 화사한 햇살이 손가락사이에서 흘러내리고 있고

덥고 답답한 공기가 휘몰아쳤다가

춥고 으슬한 공기가 다시 나도 모르게 스며들었다가 사라진다,

문장문장은 한업이 늘어져서 사람을 조급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한문장 한문장을 건너뛰고 갈 수도 없다. 어디서 어떤 묘사가 어떻게 튀어나울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그렇게 한없이 느리고 답답하게 이어지는 벤의 독백과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상황이 이어지다가  보나마나 뻔한 결말이 나오겠구나 싶은 순간.....

어떤 한마디의 증오의 씨앗이 30년동안 모두에게 비극을 안겨준다,

누구도 사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했던 증오의 추문이 결국 모두를 비극으로 몰아갔다.

어디서 멈출 수 있었을까?

누구의 죄가 가장 무거울까?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삶은 그렇게 흘러가고 처음부터 정해진 시간의 질감은 되돌릴 수 없다.

 

그동안 쿡은 불안과 수치심 그리고 의심하는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칡덩굴에 엉켜 있었다.

느리고 매혹적인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적나라하고 무시무시한 본성과 마주한다,

이 책도 결국 예외는 아니었다,

그저 찌질하기만 한 벤만 따라갔는데 벤 혼자만이 아니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욕망들

질투 탐욕 배신 증오 무고 등등의 저마다 가지고 있던 감정들이 남부 작은 마을에서 뒤섞이면서 사건을 만들어내고 누구도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고 누구도 부끄러움과 의심을 풀어버릴 수 없다.

 

별거 아니지만....

별 거 아니라는 것조차 얼마나 무시무시해질 수 있을지///

 

 

나는 부인에게서 눈을 떼고 켈리를 내려다보았다. 마치 나머지 모든 사람을 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라일과 실라와 로지 메리와 레이먼드 심지어 토드까지 모두 하나같이 작고 어린아이같은 얼굴이었다. 모두의 눈동자가 마치 그들의 청춘 그들의 희망 그들이 계획했던 미래 저 앞에 보이지 않은 덫이 놓일 줄은 사상도 하지 못하듯 이상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자 나는 깨달았다. 언젠가 켈리가 묘사한 것처럼 어쩌면 촉토는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걸 모아둔 하나의 온전한 세계였다고 . 그와 똑같이 알 수 없는 세계에 같혀 있었던 게 틀림 없다고 그리고 그것을 엮어내는 어딘가에서 하나의 상처가 다른 상처를 봉합하고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 낸다고 그렇게 의지 ㅇ않은 길고 어두운 상처의 핏줄을 만들어내며 흐르는게 틀림없다고

 

 

 

 

 

이것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어두운 이야기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평생을 애써왔다.

머구름과 폭풍우가 어울리는 이야기. 이 이야기를 떠올리면 진흙탕을 달리는 그녀의 발이 생각난다. 하지만 실제로 그 일은 햇빛 쨍쨍한 한 낮에 일어났으며 그녀의 다리는 그해 유독 길었던 봄날의 끝 무렵에 훌쩍 자란 짙푸른 칡덩굴에 엉켜 있었다.

 

우리는 이것을 문 디에 숨어 있는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 시퍼렇게 번득이는 칼날로 서늘하고 냉정한 총구로 본다. 뾰족한 모퉁이 뒤에서 또는 밤을 삼킨 짗은 안개에서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서성거리다가 위협하며 다가오는 검은 형체  골목길 끝에서 작고 사악한 눈을 번득이며 점점 다가오는 것으로 종종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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