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신간을 거의 사지 않고 있습니다. 정기적인 신간 구매는 올재 클래식이 발매될 때만 합니다. 나머지는 모두 중고서점을 둘러보다가 구매합니다. 알라딘 중고서점뿐만 아니라 황학동, 낙성대, 신림, 천호 등 시간 날 때마다 중고서점을 찾아갑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책이 탑으로 쌓이고, 그 중에서 걸출한 책들을 골라왔다는데 뿌듯함을 느낍니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보면 미친 지랄도 가지가지 한다고 할 것입니다. 누렇게 뜬 책들을 보고 히죽히죽 웃거나 더러운 책을 스담스담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지요. 하지만 책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제가 하는 행동에 충분히 공감을 해 줄 수 있을 겁니다. 수집가는 수집가를 알아보죠.
책이 쌓이니, 당장 읽지는 못해도(지금은 베르그손의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읽을 만한 걸출한 책들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흐뭇합니다. 이런 책들이 왜 지속적으로 발간되지 못하고 대부분 절판되고 있는지 참으로 의아합니다. (물론 개중에는 계속 출간되는 책이 있지요. 복잔 되는 책도 있습니다.) 좋은 책인데 말이죠. 다시 재판되면(절판된 책들) 장정을 갈아입고 매우 비싼 가격을 몸에 달고 나올 거 같습니다. 이미 검증되고 있는 현상.
이 페이퍼는 이런 책들에 대한 소개 내지 ‘자랑질’ 정도가 되겠습니다. 읽은 지 오래 되었고, 스담스담했던 책이라 자랑질은 충분히 할 수 있을 듯합니다. 본격적으로 다시 읽는 건 올 겨울이 돼야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뭐, 신간 마실은 서점에서 둘러보고 혹하는 책들을 즉시 살 수 있지만, 절판된 걸출한 책들은 당장 구할 수 없는 그 희소성에 가치가 담겨 있는 듯합니다.
어쨌거나, 다시 들춰봐도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들입니다. 보통 2000년대 초반 출간 됐거나 10년 전에 나온 책들 중 다시 간행되는 책들이 있습니다만, 내용 변화 없이 가격만 올리는 경향이 있어 좀 거시기 합니다. 도서관에서 빌려 봤다가, 중고서점에서 눈에 띠어 구매하게 된 책이 대부분. 혹시 중고서점에서 아래 책들이 보이걸랑 냉큼 구입하시면 좋겠습니다!
<세계문학비평 용어사전>, 이명섭 편저, 을유문화사, 1998
용어사전류는 어느 정도 레벨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춰야할 책이다. 요즘 문학용어 사전들이 꽤 많이 번역‧출간되고 있는 듯하다, 그 중에서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책이 을유문화사판 <세계문학비평용어사전>이 아닐까 한다. 갖고 있는 문학용어사전 책이 몇 권 있는데, 대부분 하드커버에 어느 정도의 분량이 되기 때문에 좀 비싸다. 2만 원을 가뿐히 넘는 책이 대부분. 하지만 이 책은 정가가 12000원밖에 안 한다. 최고디! 두깨는 여타 문학용어사전과 비슷한 정도. 물론 편자가 외국 저자 책을 번역하고, 여기다가 임의적으로 용어를 추가하여 짜깁기 비슷한 책이 됐지만, 내용 자체는 꽤 좋다. 문학용어 사전 한 권 사 놓을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반드시 건져야할 아이템이라 하겠다. 중고서점에서 건지면, 5천원 미만으로 데려올 수 있어, 극강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책이다. (알라딘은 책 이미지를 확보하라! 사진찍어 올려야 하다뉘!)
<20대 경제생활 첫걸음>, 양석조 & 김신욱, 북스토리, 2010
흠, 이 책으로 말할 거 같으면, 자신이 실물 경제에 대해 잼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반드시 읽어 둬야할 경제 실용 지침서다. 특히 자신이 직장인이라면, 거기다가 경제에 문외한이라면 이 책보다 더 유익한 책은 없을 듯. 사회 초년생인 20대에 타겟을 맞춘 책이지만, 경제를 잘 모르는 30, 40대가 봐도 무방한, 아주 강력한 책이다. 세금(세금 적게 내는 방법), 보험(줄줄 세는 내 보험료), 연말정산, 부동산(임대체 계약에서 부동산 매매까지), 주식, 회계(회계 장부를 보고 작성하는 법), 어음, 수표 등 회사생활과 일상 경제생활에서 모르면 손해 보는 알짜 정보가 아주 옹골차게 들어찬 책!
<복식의 역사>, 블랑쉬 페인, 까치, 1997
복식사 책을 꽤 많이 들춰 봤지만, 이 책만큼 알찬 책은 드물다.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20세기까지 복식의 역사를 밀도 높게 알려주는 일종의 교과서. 하지만 일반 교과서처럼 딱딱하지 않다. 근데 하도 분량이 많아(글자가 깨알같이 작게 편집되어 있다) 읽는 수고를 들여야 한다. 삽화도 상당수 들어가 있다! 최대한 많은 내용을 한 권에 담으려고 노력한 듯(그만큼 알찬 내용이 갑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다른 복식사 책에서는 볼 수 없는 기본적인 의류 도식이 부록으로 대거 첨부되어 있다는 점. 거지같은 편집에 비해 가독성은 좋은 편인데, 도판과 그림이 모두 흑백이라 그게 매우 아쉽다. 이 책이 올 컬로로 재단장해서 나오면 아마도 5만원은 가뿐이 넘을 듯하다.
<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네거트, 문학동네, 2007
커트 보네거트가 절필을 선언한 이후 발간한 에세이집. 방송인이자 작가인 스터즈 터클이 이 책이 출간되자 “하느님, 감사합니다! 다시는 책을 내지 않겠다던 보네거트가 약속을 깨뜨리게 해 주셔서.”라고 말했다니, 영미 문학계에서 보네거트의 위상을 짐작하게 해 준다. 보네거트 하면 신랄한 풍자와 품격 있는 유머 그리고 날쌘 재치로 유명한데, 이 책을 펴서 한 페이지만 읽어 보아도 보네커트에게 회자되는 저 명성이 빈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보네거트 소설을 많이 읽어 보진 못했지만, 이 에세이집은 정말 최고다! 이걸 이렇게나 늦게 만나다니...
<퍼스의 미완성 체계>, 정해창, 청계, 2005
쇼펜하우어, 키에르케고, 베르그손, 후설 등의 공통점은 아마도 독창적인 사상을 전개한 철학자라는 사실. 여기에 찰스 샌더스 퍼스를 올려놓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상대적으로 저평가 되어 있는 철학자다. 철학보다는 기호학에서 더 많이 연구되는 학자인데, 그만큼 퍼스의 인식론을 연구하는 철학자가 우리 학계에 별로 없기 때문일 거다. 어쨌든, 미국에서(지금은 세계적으로) 가장 독창적인 철학자라고 평가받는 문제의 철학자다. 사실 미국에서 철학은 건국초기부터 ‘독창’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뭘 하든 영국의 따라지신세를 면치 못했는데, 퍼스로부터 미국은 사상사에서 한 획을 긋는 철학사조를 태동하게 된다. 그게 바로 프래그머티즘. 퍼스는 프래그머티즘을 잉태시킨 시조다. 철학사 어떤 책을 펴도 미국철학은 프래그머티즘이고 이는 퍼스부터 시작한다. 이 책은 미국 철학의 ‘숨겨진 영웅’ 퍼스를 일대기부터 시작하여 중요 사상에 이르기까지 알기 쉽게 훑어 주는 고마운 책이다. 퍼스 입문서로 민음사에서 출간된 <퍼스의 기호사상>(민음사, 2010)이 유명한데, 정해창 교수의 이 책이 훨씬 더 쉽고 퍼스의 체계를 넓게 조감할 수 있다. 퍼스의 사상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강추할 수 있는 책이다.
<장엄한 불교 경전의 세계>, 김정빈, 책이있는마을, 2005
아주 옛날, 고려원이 망했을 때 김정빈의 ‘만화로 보는 불교이야기’ 5권을 구하지 못해 땅을 치고 후회한 적이 있다. 오, 근데 고려원이 망한 후 판권이 ‘책이있는마을’로 넘어갔다 보다. ‘책이있는마을’에서 출간된 김정빈의 ‘만화로 보는 불교이야기’ 5권 세트는 배판도 커지고 편집도 산뜻해(2색 인쇄)져서 보기 시원시원하다. 내용은 고려원판과 똑같다. 이 책은 불교이야기 시리즈 중 마지막 권으로 불교 경전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만화로 된 불교 입문서 중 황금가지에서 나온 ‘만화로 보는 불교’ 시리즈와 더불어 그 체계와 내용이 매우 탁월한 교양 불교 만화다. <장엄한 불교 경전의 세계>에는 불교의 주요 경전들이 모두 다루어진다. 아함경, 법구경, 금강경, 화엄경, 법화경 등 핵심 경전을 아주 간결하게 스케치한다. 다소 깊이는 부족하지만, 교양으로 읽어두기 그만이다. 아이들과 함께 읽는 교양서로도 부족함이 없는 멋진 책이다~
<현대물리학의 위대한 발견들>, 에드워드 스파이어, 범양사출판부, 1998
범양사라는 출판사가 있다. 주로 과학 교양서를 주로 출간하던 출판사인데, 이곳에서 총서 시리즈로 기획한 책들이 있다. 범양사 '신과학 총서'. 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간된 이 총서는 실로 1급 이론서를 포함하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외국 석학의 과학 교양서를 잘도 선별하여 출간해 왔다. 내가 소장한 책만도 한 10여권 이상 되는데, 정말 걸출한 과학책이 많다. 아서 케슬러의 <야누스>를 비롯하여 주커브의 <춤추는 물리>, 레더만의 <쿼크에서 코스모스까지>, 부어스틴의 <발견자들 1,2,3>, 브로노프스키의 <인간등정의 발자취> 등등. 프리초프 카프라의 주저(<현대문명과 동양사상>,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들도 범양사 이 총서에 들어있던 책이다. 아쉽게도 현재는 더 이상 출간되지 않는 듯하다. 어찌됐건, 표지는 안타까울 정도로 궁하지만, 내용은 매우 빼어나다. 이 시리즈 대부분이 일정 정도의 퀄리티를 갖고 있어, 총서 명만으로 구매해도 기본은 한다. 스파이어의 이 책 역시 뉴턴 이후 물리학에서 일어났던 기념비적인 여섯 분야의 발전(파동이론, 장이론, 통계물리학, 양자론,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들을 명쾌하고 간결하게 소개하고 있다. 상당히 난해한 이론들이지만, 일반인들도 충분히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 밀도 있지만 쉬운 물리학사 책을 찾는 이들에게 최고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책.
<에로틱한 발>, 윌리엄 A.로시, 그린비, 2002
원제는 <The Sex Life of the Foot and Shoe>. 타이틀 밑에 부제로 ‘발과 신발의 풍속사’를 달았는데, 그냥 부제를 책 타이틀로 달았으면 좋았을 책. 문화사(풍속사)로 분류할 수 있는 책들은 대체로 읽어두면 유익하다. 이 책의 미덕은 우리 신체의 가장 외진 곳이라 할 수 있는 발에 관한 성풍속 자료가 예상외로 많다는 거. 무엇보다 저자가 성풍속 자료를 능수능란하게 다루어, 무게감 있는 학문적 내용에 재미와 유머가 깨알같이 섞여 있다. 그래서 책 읽는 맛이 그만. 이 책을 읽으면 여자들이 왜 실용적이고 발이 편한 신발을 신기보다 불편하지만 섹시한 구두에 발을 우겨넣고 있는지, 문화사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아내나 여자 친구가 발 아프다고 하면서 하이힐을 신는다고 타박하지 않게 됨.) 발에 관한 전문가(저자 로시는 발치료 전문의)가 들려주는 이야기라 절대 흘려들을 수 없다. 패션과 건강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발과 신발. 이에 대한 문화사적 고찰이라 일독할 가치가 충분한 책. <구두, 그 취향과 우아함의 역사>(작가정신, 2005)와 같이 읽으면 금상첨화!
<한국전통사회의 정신문화구조양상>, 정종화, 고려대출판부, 1995
이거, 아주 걸출한 책이다. 혹시 중고서점에서 이 책을 보신다면 닥치고 구매하시길! 부제가 ‘속담을 통해 본 가치관의 비교문화적 접근’. 저자인 정종화 교수는 영문과 교수이다. 영문과 교수가 한국적 가치관의 실체를 찾고자 우리나라 속담을 모아 연구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한국적 성격이 어떻게 형성됐고, 남녀 관계와 기타 인간관계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모두 속담을 통해 보여준다. 영문과 교수인 만큼 영어 속담과 우리 속담과의 비교는 자연스럽게 문화적 차이로 귀결된다. 리처드 니스벳 교수의 책과 같이 보면 훨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특히 부록으로 정리된 ‘우리 속담’, ‘외국 속담(원어 그대로 실려 있음)’과 이를 번역한 ‘외국 속담 번역’은 [간이 속담 사전]으로도 부족함이 없다. 해당 페이지를 찾으면 용례와 의미를 빠르게 찾을 수 있으니까. 정말 희귀한 학술서다!(학술서인데 재밌기까지 함) 가격적인 면에서도 대박. 정가가 8500원밖에 안 해, 4천원 미만으로 데려올 수 있다. 이 책이 재간되면 아마도 2만원은 가뿐히 넘지 않을까. (다른 인터넷 서점에는 이미지가 있는데, 왜 알라딘에는 없을까?!)
<지명으로 보는 세계사>, 21세기연구회, 시공사, 2002
이 책을 읽고 21세기연구회가 펴낸 역사서를 모두 소장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명으로 알아가는 역사 지식이 매우 쏠쏠하다. “지명은 도로 한쪽에 세워진 단순한 표지판이 아니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에도 자신만의 역사가 살아 숨쉬듯 그 곳에는 수천 년 인류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명은 전쟁과 민족의 대이동, 대항해가 만든 장대한 역사의 대사전이다.” 이 책의 저자들이 강조하고 있는 대목이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지명에 얽힌 역사적 이력과 그 의미를 아는 재미는 이 책을 읽는 사람만의 몫일 게다. 미국의 시카고는 ‘야생 양파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이고, 아프리카의 국가 짐바브웨는 ‘커다란 돌집들’을 의미한단다. 고대의 석조 유적, 대 짐바브웨에서 따왔다고. 우리나라 제주도의 의미도 소개돼 있다. “제주도의 ‘제’는 ‘물을 건너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주’라는 행정구역의 단위를 붙여 고려왕조는 ‘바다 저편에 있는 주’라는 지리적 감각에서 제주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p120) 제주도가 고려시대에 붙여졌다는 사실은 알았는데, 저런 의미가 있는 줄을 몰랐다. 전 세계 주요 나라와 도시 그리고 강, 바다, 산맥, 민족 등등 그 명칭에 내포된 역사와 의미를 알아가는 재미는 그만이다. 읽고 나면 세계 지리와 세계 역사에 대해 막 아는 척 하고 싶어진다. 그만큼 유익한 책.
<사이언스 퍼스트>, 로버트 E. 아들러, 생각의나무, 2003
고대에서 현대까지 최초의 발견을 이루어낸 35명의 과학자를 다룬 과학사 책. 기원전 6세기 탈레스에서부터 20세기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까지 지난 2600년 동안의 멋진 과학적 사건들과 발견들을 재미있게 보여주는 과학 교양서. 저자는 과학사 전문 저술가다. 과학자가 아닌, 네이처지에 기고하는 출판물 전문 저술가이기에, 이런 책은 이론의 깊이를 기대하면 안 된다. 하지만 밀도 높은 과학 전문 이론서는 이해하기 너무 버겁다. 그래서 핵심 과학자와 그들의 업적을 일목요연하게 알려주는 이런 책이 인기 있는 건 당연한 일. 쉽게 과학사를 정리할 수 있으니까. 물론 빠진 간극은 어찌 할 수 없다. 보통 밀도 있는 과학사 책은 시대순으로 과학자 10여 명이나 10여 개의 주요 과학 원리들을 다룬다. (보통 도서관에서 확인해 보니 그렇더이다.) 400페이지 내외. 이런 책들은 읽기 쪼금 빡빡하다. 그에 비해 <청소년을 위한 과학자 이야기>(신원, 2002)같은 책은 30명의 과학자를 다루지만, 매우 쉽다. 대상이 청소년을 위한 과학사이기에. <사이언스 퍼스트>는 밀도 높은 이론서와 청소년용 과학책의 딱 중간 정도 수준인 듯. 과학 교양서로는 아주 그만인 책이다. 보통 과학자를 다룬 과학사 책은 아주 유명한 과학자들로만 채워진다. 뉴튼, 갈릴레오, 패러데이, 돌턴, 코페르니쿠스, 멘델, 왓슨, 케플러, 허블, 아인슈타인, 괴델, 라부아지에, 다윈, 플랑크 등의 학자 가운데 저자가 10여 명을 선별한다. 대체로 그렇다(도서관에서 관련 책을 꺼내보면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아주 생소한 과학자가 꽤 많이 등장한다. 레우 키포스(우주는 원자와 공간으로 구성된다), 아리스타르코스(잊혀진 태양중심이론), 이븐 알하이삼(시각의 비밀), 안토니 반 레벤후크(미생물 탐험가), 험프리 데이비(웃음가스), 레이먼드 다트, 바바라 매클린턴, 디디에 퀼로즈, 키스 캠벨 등등. 과학사에 많이 다루어지지 않는 학자들이 꽤 포함되어 있다. 이 책과 함께 <과학의 열쇠>(교양인, 2006)을 함께 읽으면, 과학사가 손에 꽉 잡히지 않을까 한다.
<미국 문화의 몰락>, 모리스 버만, 황금가지, 2002
버만의 논의대로라면, 미국은 얼마 가지 않아 초강대국의 힘을 잃을 거다. 원제는 <The Twilight of American Culture>이고, 부제는 ‘기업의 문화 지배와 교양 문화의 종말’. 버만은 로마 제국의 몰락으로부터 미국의 운명을 예견한다. 저자는 로마의 멸망을 몇 가지로 제시하는데,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사회보장제도의 붕괴’, ‘정신의 타락과 지식의 몰락’ 등이 그것이다. 버만은 이런 요인들이 미국 사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소비주의의 만연으로 일반교양 문화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고. 그 예로 미국 엘리트 층의 처참한 교양 수준을 알린다. 버만은 1999년 토크쇼 프로그램에서 제이 리노가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한다. 리노는 당시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포함되었다면서, 8개의 질문을 던졌다. 이중 가장 충격적인 질문만 거들떠보겠다. [문5. 숫자 3의 제곱은 무엇입니까? 한 학생은 27이라 답했고, 다른 학생은 6이라 답했다. / 문6. 물이 끓는 온도는? 학생 중 섭씨 46도라고 답한 학생도 있었다. / 문7. 지구가 자신의 축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리노가 받은 두 가지 답변은 광년과 24개의 축. / 문8. 지구에는 달이 몇 개 있는가? 질문 받은 학생은 2,3년 전 천문학 수업을 들은 적이 있고 A학점을 받았지만 모르겠다고.] 1/5과 1/2 중 어느 것이 더 큰지 모르는 학생도 많았단다. 글을 왜 읽느냐고 되묻는 학생들도 있었다니! 이로부터 버만은 미국의 몰락이 멀지 않았다고 진단하고 있는데, 타치바나 다카시가 일본 청년을 진단한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와 그 내용이 비슷하다. 우리나라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 여튼 이 책은 아주 단숨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흥미진진하다. 아직 읽지 않은 분이라면 얼른 데리고 오시길! 알라딘 중고서점에 자주 출몰하고 있으니까~
<대중매체의 기호학>, 박정순, 나남출판, 1997
기호학에 대한 지식을 함양하고자 책을 찾다 보면 죄다 어려운 책들만 보인다. 뭐가 개론서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는 거. 일단 번역본은 번역 자체의 장벽 때문에 더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한길 크세주 총서 중 한권인 <기호학사>가 나름의 쉬운 입문서 구실을 한다지만, 그래도 번역서라 조금은 짜증이 날 수 있다. 우리나라 학자가 쓴 기호학 입문서를 찾아 다녔지만 계속 허탕을 쳤다. 논문 모음을 제외하고, 한 학자가 단행본으로 출간한 ‘기호학에 대한 입문서’ 구실을 하는 책을 찾기란 정말 어렵다. 번역서와 논문 모음집을 제외하고 쉽게 정리된 '기호학 입문'서는 검색조차 안 된다. 헌데, 아주 우연히 대학 교과서 코너를 두리번거리다가 박정순 교수의 책을 펼쳐보게 되었다. 신문방송학 코너에 있는 책이라 손에 쥐기 쉽지 않았는데, 책을 열어보니 알고 싶던 내용들이 죄다 들어있던 거! 총 9장으로 구성된 책에서 서론과 1, 2장은 안 봐도 무방. 커뮤니케이션 접근방법과 모델에 대한 내용이기에 없는 셈 쳐도 된다. 3장부터 알고 싶은 기호학 일반 이론들이 펼쳐진다. 저자는 대학원생들과 미디어 전문가를 염두에 두고 집필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기호학 개론서로 딱이다. 일반 기호학의 기초 개념들을 소개하고, 이 개념들이 텍스트 분석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소개하는 내용이기 때문. 3장에서 9장까지의 내용은 정말 기호학 입문에 대한 알찬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기호학이 뭔지 알고 싶은 분들은 이 책 한 권이면 한 방에 정리될 거임. 개인적으로는 기호학 이해에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됐다. <기호학으로의 초대>같은 책이 매우 빈약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이전 판 이미지도 올려주시길!)
<역사를 보는 눈>, 호리고메 요조, 개마고원, 1998
역사철학에 대한 가장 유명한 책은 아마도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일 게다. 헌데 번역으로 인해 읽기 쪼금 힘든 게 사실. 이 책을 추천해 줬다가 어렵다는 평을 하도 많이 들은지라, 이제는 좀 조심스럽다. 책과 별로 친하지 않은 분에게 이 책을 추천해 주면 욕을 바가지로 먹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역사철학 분야는 읽어 줘야 한다. 관점을 넓히기 위해서도 필요하니까. 역사철학 분야는 유명한 책이 꽤 된다.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를 위한 변명>이나 개디스의 <역사의 풍경>, 에릭 홉스봄의 혁명 3부작 등. 읽으면 매우 유익하다. 역사를 보는 자신만의 눈을 형성할 수 있기에. 하지만 읽기 만만치 않다. 호리고메 요조의 <역사를 보는 눈>은 이 모든 난관을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책이다. 부제가 ‘역사를 알고, 역사를 배우려는 교양인의 필독서’인 만큼, 올바른 역사 인식을 배울 수 있는 최적의 역사철학 입문서 구실을 한다. 이 책에는 ‘역사의 주관성과 객관성’, ‘역사의 시대구분’의 중요성, ‘역사의 필연과 우연’, ‘역사와 자연과학(역사는 과학인가)’, ‘역사와 역사관’ 등 아주 굵직굵직한 역사철학의 주요 주제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하지만 읽으면 바로바로 머리에 꽂힐 정도로 쉽다. 저자가 그만큼 내공이 아주 깊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250페이지도 안 되지만 역사철학의 주요 주제는 거의 훑을 수 있는 아주 알찬 책. 개정판도 있는데, 구판을 사는 게 유리하다. 내용이 거의 똑같기에. 중고서점에서는 3천원 미만으로 데려올 수 있으니, 완전 대박이다~(이전 판본 이미지는 왜 없는 거지??)
<세계의 종교 이야기>, 폴 발타 외, 미래M&B, 2007
보통 ‘종교 이야기’를 다룬 책을 펼치면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다다. 뭐, 종교도 서양 중심이니, 이해는 한다. 근데, 위 3종교를 다룬 책들이 너무 많다. 타이틀이 ‘세계 종교’여도 매한가지. 헌데 이 책은 진짜 세계의 모든 종교를 다루고 있다. 더군다나 사전식이라 전 세계의 모든 종교에 대한 내용을 적게나마 모두 맛볼 수 있다. 컬러풀한 그림과 사진 그리고 지도는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책의 편집 디자인 역시 빼어나다. 주제와 내용 그리고 그림과 지도가 3-4페이지(많게는 6페이지) 안에서 완결되기에 가독성이 아주 좋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이외에도 불교, 자이나교, 힌두교, 유교, 도교, 조로아스터교, 부두교 등 현재 예식이 거행되는 모든 종교를 다 담고 있다. 종교뿐만 아니라 역사 이전의 신화와 샤머니즘의 세계도 알차게 조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내용의 체계성이 매우 빼어나다. 종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개념인 신과 신자, 기도와 제례, 봉헌과 계율, 신비주의 등 보편적 종교 주제를 책 앞에 배치했다. 그 다음 고대부터 현재까지 각 종교, 민족 그리고 지역별로 신앙의 기원과 체계, 교리, 제례 등을 흥미롭게 펼쳐 나간다. 앞부분이 종교사의 총론 격이라면, 뒷부분은 각론 격이라 할 수 있겠다. 고고학 자료에 기초한 탄탄한 구성과 동작 하나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은 삽화들은 마치 사진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 종교사 개론 책으로 이 책만큼 쉽고 체계가 잡힌 책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정말 최고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