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KBS스페셜 ‘청년 탈출, 꿈을 찾아서’를 시청했다. 이걸 보면서 드는 생각이 한국은 정말 희망이 없는 나라라는 거.
올 해 5월 말인가, 공중판 방송에서 네덜란드 이민 가족을 조명한 다큐를 방영했었다. 요점은 여유를 찾고 싶어 이민을 결심했다는 사람들의 얘기였다. 한국은 과도한 경쟁과 근무조건으로 가족과 같이 지낼 여유가 없다고. 말미에 다큐 주인공 부부는 말했다. “물론 타향살이가 힘들지만, 5시 이후에 여유가 있는 삶, 한국에 있을 때 보다 더 적게 일하면서도 소득은 배로 벌 수 있는 나라를 뒤로하고 한국에 돌아갈 이유는 없다”고.
어제 본 ‘KBS스페셜’은 이의 청년 버전 쯤 된다. 헬조선을 탈출한 20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정부 정책이라는 것이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현재 알바 최저 시급은 6470원. 학자금 대출받아 학교를 다니고, 알바 뛰어 대출금을 갚아도, 살아갈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들의 전언에 의하면 한 달 풀타임으로 알바를 뛰어도 100만원이 안 되고, 이 돈으로 학업과 생활을 해 나가기 어렵다고 한다. 저축은 언감생심이고, 미래를 그려볼 수조차 없다니, 이게 무슨 OECD 회원국의 삶이란 말인가.
헌데, 한국을 탈출하여 주요 선진국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이들의 말에 따르면, 이거 보다 더 견딜 수 없었던 것이 희망이 없는 ‘무력감’이었다고 전한다. 이력서를 넣고 떨어지는 무한 루프 속에서 내가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버러지 같은 존재가 되어 간다는 것이 무섭다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건만 택배 알바조차도 떨어지는 삶에서는 희망을 찾을 수 없었다니, 이들의 고충을 어렴풋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다. (택배 알바에 그리 높은 스펙을 가진자들이 지원한다는 자체가 매우 이상하다고. 미친 사회 맞다~) 그리고 그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여 '네가 잘 못하고 있어서다, 네가 문제다.'라는 게 결정타였다고.
다큐를 보면, 해외에서 알바를 하는 이들이라고 삶의 패턴이 한국에 있었을 때와 달라지지는 않았다. 호주, 캐나다, 일본 등에서 식당과 호텔 정리 알바를 하지만, 이들은 한국과는 180도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노동 강도는 한국보다 세지 않지만, 임금은 거의 두 배 이상을 받는다. 야근 수당을 꼼꼼히 챙겨 받고, 늦게 귀가 시 교통비도 지급받는다. 휴식은 법적으로 기본. 이들은 알바지만 능력을 인정받고, 저축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입을 모은다.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행복하다고.
호주 워킹 홀리데이에서 용접공의 대우를 눈으로 확인한 32세의 한 청년은 그 길로 용접을 배워 캐나다에서 기술자로 일하고 있다. 용접 보조로 일을 한지 5년 만에 해당 자격증을 2개나 따고, 능력으로 인정받아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청년의 연봉은 7천 만원. 캐나다인 용접 매니저의 말이 인상 깊었다. 우리 캐나다는 직업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직무와 능력으로 사람을 대우하기 때문에 아시아 사람들이 와서 성공하기 좋은 조건이라고.
선진국이라는 호주, 캐나다, 일본. 비록 자본주의 사회였지만 한국 청년들이 ‘행복’이라고 느끼고 삶의 ‘희망’을 발견한 곳이다. 결코 편하다고 볼 수 없는 기술직이거나 비정규직이었지만, 이들은 여유 있는 삶이 좋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그 나라에 머물겠다고 다짐한다.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한국은 열심히 살아도 그 대가가 정당히 주어지는 나라가 아니라고.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미래를 그려볼 수 없는 나라라고.
헬조선이라는 말이야 언론과 책에서 많이 듣고 알았지만,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 20대에게 생생한 말을 전해 들으니, 이 나라의 미래가 암울하다. 그들이 한국을 향해 ‘애처로운 나라’라고 했을 때, 오로지 하나의 생각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바로 정치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그 나라의 청년들이 나라를 등지고 해외로 떠나간다. 두뇌유출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앞으로 기성세대가 될 그들이 한국을 ‘애처로운 나라’라고 표현한다는 사실이 비극이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인구절벽을 감당해야 한다고 한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어 성장률이 마이너스 상황을 기록할 시기가 확실히 도래한단다. 이 와중에 나라 경제의 근간을 부양할 20-30대 층들이 해외취업과 이민으로 한국을 등지고 있다. 엑소더스 헬조선이다. 이 추세가 10년만 지속되어도 우리는 그리스 사태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
기성세대의 정치를 바로 잡지 못하고 한국을 탈출하는 청년들. 그들에게 돌을 던질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자신의 꿈을 찾아 스스로 개척하는 길까지 ‘비겁하다’고 말하기는 참으로 어불성설이다. 기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나라가 그래도 굴러간다면, 그게 고작 몇 년을 버티겠는가? 수많은 비리와 갑질 위에 서 있는 나라. 머리가 텅 빈 대통령이 국가의 주요 인사와 정책을 마음대로 획책하는 나라. 이런 나라에 창조의 희망이 있다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뭐, 정치에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이미 있는 기본 제도만 제대로 돌아가게 해 달라는 거다. 세금 걷으면 투명하게 쓴 거 공개하고, 현장을 체험한 후 정책을 기획하고, 퇴근 후 근무지시 하지 말고, 야근 하지 말고, 야근 하면 수당 제대로 주고, 직무 능력으로 역량 평가하고, 생활에 맞는 임금을 지불하면, 최소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삶은 되지 않을까. (근로기준법만 제대로 준수하라고!)
이명박근혜 10년 치적의 결과가 ‘헬조선이요, 국민이 꿈을 찾아 그 헬조선을 탈출’하는 것이다. 이 인과관계를 의심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새누리 빠 아니면 외국인일 듯. 이제 1년 남았다. 대통령을 잘 못 뽑으면 국민 생활이 어떻게 파탄나는지 우리가 똑똑히 보고 있다. 우리가 아직 희망을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기본이 바로 서는 정치뿐이다. 자본주의가 아무리 구조적 모순점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정치가 제대로만 작동하면 우리 모두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덧
EBS 자본주의 다큐가 책으로 묶였다. ‘쉬지 않고 일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살기 힘든 가’를 잘 파헤친 다큐였다. 이는 자본주의에 내재한 본질적 문제점에 대한 얘기였다. ‘KBS 스페셜’ <청년 탈출>의 경우에는 여기에 정책의 부재가 더해져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른 듯. 내게는 청년 실업 문제가 ‘세월호 사태’의 경제 버전으로 읽힌다. 정부가 젊은 층의 얘기를 현장에서만 파악했더라도 현재와 같은 ‘공황적 엑소더스 사태’는 막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