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올 해 전시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전은 무리라 판단되어 단체전에 참여하기로 했어요. 아직 시간이 있지만 아래 작품을 포함하여 5점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출품 기한은 2월과 5월 입니다. 해외에서 1번 국내에서1번. 생각보다 이르게 전시회에 참가하게 되어 고무적이에요. 모두 응원해 주신 결과입니다!ㅎㅎ
<작가 노트>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조차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신비함과 관심은 죽을 때까지 함께 했다고 한다. 다만 저서로 남기지 않았을 뿐인데, 그의 사후 프랑스에서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논의들이 풍성해졌다. 아마도 베르그손의 사상부터이지 않을까한다.
나의 작업은 사실 오래전부터 구상되어 왔다. 비트겐슈타인에 관심을 갖고 베르그손의 철학에 빠져들면서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어떻게 언어적 육체를 갖고 형상화되는지 보았다. 실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시간’에 대한 베르그손의 탐구는 실제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을 ‘지속’과 ‘기억’이라는 개념을 통해 멋지게 보여주었다. 그래서 데이비드 호크니가 “시간은 실재하며, 공간은 환상이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칸딘스키는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 그 지점을 <예술에 있어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를 통해 알려주었다. 그것은 바로 내 몸을 통해 지나간 시간, 즉 기억을 색채로 표현하는 것이다. 전에는 그 생각의 도구가 언어였다면, 지금은 그 도구가 색채가 됐다.
-기억의 편린-
기억의 편린 시리즈를 주로 그리는 이유는 내가 베르그손의 텍스트를 그림으로 구현하고자 열망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시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은 곧 시간으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간은 우리의 몸과 정신을 통과해 나가는데, 그 증거가 기억이다.
기억은 현재의 기억이 과거의 기억 위에 차곡차곡 쌓인다. 모든 기억은 나름의 사건들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나름의 색깔을 갖고 있다. 우리의 현재적 삶의 이미지는 과거로부터 축적되어 온 시간의 이미지의 아주 작은 지점에 지나지 않는다. 시간이 쌓이듯이 기억은 겹겹이 쌓인다.
쌓인 기억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우리의 현재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시간(기억)이라는 거대한 빙산의 가장 작은 윗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빙산의 거대한 아랫부분은 무의식에 잠겨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과거의 기억은 절대 빙산 아래에서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항상 현재에 개입한다.
최근에 쌓인 기억들 밑에 과거의 기억이 깔린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기억은 언제나 현재와 관련을 맺고 생생하게 현재에 개입한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과거의 기억은 과거에 묻혀 잊혀지는 게 아니다. 트라우마처럼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다가 현재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시 언제나 현재로 불쑥 개입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현재적 순간’이란 과거 기억과 그것을 불러온 현재의 사건이 만나 현재의 시간을 구성한다. 그것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 삶의 모습이다. 나는 이런 현재와 과거를 오르내리는 기억의 작용을 화폭에 담아보고자 시도한다. 그 결과물이 <기억의 편린> 연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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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편린, 6F, 캔버스에 혼합, 2023.01.>
[그림설명]
‘기억의 편린’이라는 시리즈의 주제를 갖고 작업을 한 결과물 중 하나이다. 무수한 우리의 기억은 하나의 색깔이고, 이 색은 여러 중첩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하나의 색에 다른 색이 믹스되겠끔 표현했다. 순수한 기억보다는 믹스된 기억을 중점적으로 표현했고, 과거의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태를 통해 현재에 개입할 수 있는데, 이를 구현하기 위해 색의 중첩을 통해 아래의 색이 발현될 수 있겠끔 작업했다.
과거의 기억들이 서로 중첩되게 섞이면서 무의식의 단초를 표현했고, 아울러 덮인 색이 덮은 색을 통해 발현되게끔 해서 현재의 순간이 과거의 기억들이 무의식 속에서 현재 어떻게 개입되어 떠오르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