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상반기 비문학 원픽!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페이퍼 2탄입니다.
5. 고정순 - 바닥에서 선택한 웃음
고정순 작가는 심상치 않은 삶의 전력을 가지고 있다. 유년 시절, 학창 시절 경제적인 문제로 겪었던 어려움에 이어, 꿈을 찾은 스물일곱 살에 중증의 다발성통증증후군 진단을 받는다. 약을 먹어가며 "붓을 손에 동여매고 그림을 그렸다."(151쪽) 12년이 걸린 뒤에야 데뷔에 이른다. 그러나 그 이후로 누구보다 성실히, 꾸준히 작품을 출간하고 있다. 최혜진 작가는 고정순 작가와의 인터뷰를 이렇게 표현했다. "인터뷰 내내 맞은 편에서 빛의 세례가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지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에게 스며 나오는 존엄의 빛이었다."(151쪽)
인터뷰 중 자기 표현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신 부분이 와 닿았다.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신에 찬 사람의 글에는 진짜가 없다는. 감정을 표현할 줄 알아야 타인의 고통에도 예민해질 수 있다는. 역시 글쓰기에는 치유의 효과가 있다. 내 안을 깊이 긁어 써낸 글일수록 진짜가 된다.
피터 비에리의 책 《자기 결정》(은행나무)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자신이 누구인지 표현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어릴 때부터 자기표현에 어려움을 겪었던 작가님이 보시기에 자기표현은 왜 중요한가요?
좋아하는 서점, 지역 도서관에서 성인 독자와 글공부를 하는데요. 열에 아홉은 적절한 자기표현 방법을 깨우치지 못한 상태예요. 나아가 자기를 속이는 사람도 있어요. ‘나는 날 잘 알고, 나는 행복하다‘는 확신에 찬 분들이지요. 그분들 글은 전형적이에요. ‘오후 햇살이 따뜻하고, 배우자와 아이는 사랑스럽다‘고 말하지만, 진짜 감정은 느껴지지 않아요 글공부를 계속하며 껍질이 벗겨지고 참된 자기를 처음으로 마주하면 충격받고 막 울기도 하지요. (...) 표현하지 못한 감정 안에 오래 있다 보면 세상보는 눈이 왜곡되더라고요. 타인의 고통에 무감해지고요. ‘네가 힘들어서 죽어 나간들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으리'라는 상태는 진짜 아픈 상태예요. 한국 사회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자꾸 떨어지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내가 막혀 있으니까요. 주변과 감응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과 감응해야 해요. 자신의 현재를 이해하고 적절한 언어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해요. 나를 표현하지 못하면 타인과 연대할 수 없고, 연대할 수 없으면 열린 공동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요. - P158, 159
살면서 시련과 부정적 사건을 막을 도리는 없어요. 일단 찾아오면 온몸으로 겪을 수밖에 없어요. 다만 그 끝에서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면 고통에 지지 않을 수 있어요. 고통이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깨닫는 인식의 전환이요 행복과 즐거움도 물론 소중해요. 하지만 나와 타자에 대해 간절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건 반대의 감정이에요. 삶의 우선순위를 통렬하게 고민하게 하지요. 부정적 사건이 벌어지면 생각해요. ‘아, 삶의 우선순위를 고민하라는 뜻이구나.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키고 싶은 게 뭐지?‘라고요. - P162
고정순 작가님의 그림책 중에는 <무무씨의 달그네>를 읽었다.
무무씨는 달로 여행을 가는 사람, 아니 동물들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구두를 닦으러 찾아오면, 그들의 구두를 정성스레 닦아주고 달로 떠나는 소회를 듣는다. 어떤 이는 "이곳이 지겨워서" 달로 떠난다고 말하지만, 달을 바라보기를 좋아하는 무무씨는 이곳이 지겹지 않다고, 어쩌면 그것은 계속 변하는 달의 모습 때문일지 모르겠다고 한다.
어떤 이는 무무씨에게 그렇게 달을 좋아하면서 왜 달에 가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달에 가면 달을 볼 수 없으니까". 무무씨는 이곳에 남아, 달이 잘 보이는 곳에 '달그네'를 설치한다. 그네에 홀로 앉아 많은 이들이 찾아간 달을 바라보는 무무씨의 모습은 외롭거나 불행해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그가 어떤 자족의 세계에 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책이 되었다.. 애들은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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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지은 - 자립을 위한 흔들림
이지은 작가님도 이 책에 나온 인터뷰이 중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분이 아닐까 싶다. 이 분의 그림책은 어른에게도 아이에게도 재미와 의미를 모두 던져줄 수 있다.
'말에는 힘이 없다'라는 대답은 왜 나왔을까? 말이 가지고 있는 힘 때문에 고통받아왔던 사람이라면 이 작가님의 대답에서 답을 얻길 바란다.
(...)관계 맺기에 있어 작가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 있을까요?
'말에는 힘이 없다'라는 사실이요. 흔히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말에 힘이 생기는 순간은 누군가 그 말을 주웠을 때뿐이에요. 제가 컵을 향해 움직이라고 백번 말해도 컵은 움직이지 않지요. 제 말을 누군가 듣고 옮겨줄 때 말의 힘이 발생해요. 즉, 내가 타인의 말을 줍지 않으면 그 말에는 힘이 없어요. 저는 이 사실을 오랫동안 모르고 살았어요.
어설픈 책임감과 관계가 끊어질까 두려운 마음에 주변 사람들 말을 일일이 줍고, 마음에 담고, 나를 힘들게 했어요. 관성적으로 위로, 충고, 조언, 약속을 주고받으며 말로 관계를 이으려 했지요. 이제는 내 몸이 기꺼이 고달파도 괜찮은 관계를 맺으려고 해요. 두 번째 원칙은 ‘감정이 여러 층위로 구성되어 있음을 기억하기'예요. 저와 부모님의 관계에 대해 명상을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불편한 감정이 쌓여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감정의 레이어를 하나씩 걷어내니 가장 밑바탕에 사랑을 주고받고 싶다는 마음이 있더라고요. 탓하고 싶은 마음의 근원에 사랑이 있었어요. 그걸 보고 나선 가장 처음에 인식되는 감정의 표면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 P200
이지은 작가님의 책은 세 권 읽었다.
<팥빙수의 전설>과 <친구의 전설>은 그림책 전시회에 갔다가 비치도서를 아이와 함께 읽었고,
<이파라파냐무냐무>는 가지고 있다.
<이파라파냐무냐무>는 정말 귀여운 그림책이다.
평화롭게 살고 있던 마시멜롱들의 마을(그렇다, 그 하얗고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마시멜롱!)에 어느날 시커먼 털북숭이가 나타나 "이파라파냐무냐무~" 라고 외친다. 그게 무슨 뜻일까 고민하던 마시멜롱들은 자기들을 냠냠 먹겠다는 말로 해석하고, 어떻게 털북숭이를 해치울지 작전을 짠다. 과연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이파라파냐무냐무는 무슨 뜻일까?
<친구의 전설>과 <팥빙수의 전설>은 이파라파냐무냐무보다는 좀더 큰 아이들용이다. 어른들도 역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전해주는 메시지도 좋고.. 사서 소장하려고 했는데, 읽지 않은 책부터 사다보니 미뤄지고 있다^^;
7. 유준재 - 기다림이라는 의지
먼 곳을 두리번거리지 말 것, 일상 속에서 가능성을 찾을 것, 작은 가능성을 정성스레 가꾸어 키워갈 것. 그날 깨달은 창작자의 태도를 지금도 잊지 않으려 해요. 이렇게 제 삶에 집중하면서 작품을 한 권, 한 권 만들면 생의 끝자락에 회고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이런 고유성을 가진 작가였구나, 하고. - P216
(...)누나를 간호하며 봤어요. 거기에도 삶이 있더라고요. 희망은 아주 절망적인 곳에서 태어나는 새싹 같아요. 두려움의 극단에서 피어나는 설렘처럼요. 표현이 다소 진부해도 그게 진실 같아요. 《사기》로 알려진 사랑하는 후배 윤지회 작가가 천국으로 갔을 때, 그림책 모임 단톡방에서 이런 대화가 오갔어요. 지회가 병치레로 많이 힘들었으니 웃으면서 보내주자고, 울 사람은 장례식장에 오지 말라는 작은 농담과 함께.
허무나 절망을 선택하긴 쉬워요. ‘웃자‘고 말하는 건 어렵지요.
그런 힘을 갖고 싶어요. - P226
먼 곳을 두리번거리지 말 것. 작은 가능성을 정성스레 가꾸어 키워갈 것. 이런 창작자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 인상깊었던 유준재 작가님의 그림책은 한 권을 읽었다.
<정연우의 칼을 찾아 주세요>는 작가님의 인터뷰처럼 '웃자'고 말하는 힘을 갖고 있다. 정연우는 어느날 자신이 매우 아끼던 장난감 칼을 잃어버린다. 울며불며 장난감 칼을 찾아 동네를 헤매는 연우를 본 동네 아이들이 모여든다. 각자가 자신이 소중한 걸 잃어버렸던 기억을 떠올린다.
아이들은 의논 끝에 칼을 찾아달라는 전단을 만들어 동네에 붙이기로 한다. 표지에 그려진 전단이 바로 그것이다.
살면서 소중한 것을 잃는 일은 뜻하지 않게 발생한다. 장난감 하나 잃어버린 게 대수라고, 하는 어른의 시큰둥함 대신 이 책은 공감과 위로를 전하며, 아이들이 스스로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첫째 아이가 재미있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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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노인경 - 작고 사소한 기쁨의 목록
입버릇처럼 일상을 여행하듯 살고 싶다고 되뇐 적이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일상적 경험의 차원에서 이건 의자고 저건 식탁일뿐이라고 느끼는 동시에 이건 기적이고 저건 희열이라고 느끼는거야"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등대로》 속 문장처럼. 나이를 먹고 경험이 늘어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새록새록 유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다채로운 색으로 빛나던 많은 것들이 오래 곁에두면 시간과 함께 서서히 채도가 낮아졌다. 가장 가깝고 익숙한 순서대로 빛을 잃었다. 당혹스러웠다. 자주 다짐했다. 일상의 권태에 지지 말자! 소박한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사람이 되자! 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해야 그렇게 될 수 있는지 몰랐다. 특별 이벤트로 가득한 타인의 삶이 사방에서 번쩍일 때, 어떻게 하면 나의 사소함에 ‘시시함‘이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을 수 있을까? - P242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는 작가로, 저자는 노인경 작가를 꼽는다.
홀구멍에 떨어진 소소, 빗방울을 모두 잃은 아빠 코끼리 등 그림책 주인공들은 늘 난관을 마주하지만, 이내 갈등과 긴장이 해소되고 평화롭게 책이 끝나요. 안심시키는 서사가 그림책 특유의 낙관성을 만들지만, 한편으로는 허약한 희망 아닌가 싶을 때도 있어요.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모두 해피엔딩을 꿈꿔요. 생각해보면 행복감은 순간일 뿐 지속되지 않아요. 지구의 자전 같은 진리예요. 좋은 날이 지나가고 나쁜 날이 와요. 그러면 나쁜 날이 지나가면 좋은 날이 온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해요. ‘앞으로도 나쁜 날밖에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나쁜 날을 보내는 것과 ‘좋은 날이 올 거야‘ 믿으면서 나쁜 날을 보내는 건 전혀 다른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림책의 해피엔딩은 우리가 어둠을 통과할 때 떠올릴 수 있는 좋은 날에 대한 기억을 심어줘요. 용기를 내면 분명 무언가 달라진다는 믿음과 함께요. 사람들 마음에 작은 전구 하나를 넣어주는 거예요. 어두울 때 밝혀볼 수 있는 작은 불빛이요. 낙관성을 담아내는 일이 곧 가벼움이 되지 않도록 주인공이 세계를 긍정하기까지의 과정을 고심하며 잘 보여주려고 노력해요. - P266
사람들 마음에 작은 전구 하나를 넣어주는 것이 그림책이라는 말! 노인경 작가의 그림책은 그 말마따나 작은 전구같은 소박한 따스함이 있다.
<코끼리 아저씨와 100개의 물방울>은 아빠 코끼리가 목말라하는 아기코끼리들을 위해 물 한바가지(물방울 100개)를 떠서 먼 길을 돌아오는 이야기다. 바구니 안에 있는 100개의 물방울, 더운 날씨에 햇님이 물방울 몇 개를 가져가고, 기린이 몰래 물방울을 핥아먹기도 하여 그 수는 점점 줄어들어 가는데... 아빠는 이걸 무사히 아이들에게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책청소부 소소>는 책보다 훨씬 작은 몸집의 '소소'가 주인공이다. '어떤 책의 어떤 부분을 지워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책청소부 소소는 출동하여 해당 책의 해당 부분을 찾은 다음, 청소기로 글자들을 빨아들인다. 아래 첨부한 사진의 장면은, '빨간 머리 앤에서 앤이 초록 머리가 되는 장면을 지워달라'는 요청을 받고 소소가 청소기로 그 부분을 빨아들이는 부분이다. 커다랗게 그려진 책들의 제목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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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권정민 - 자리바꿈의 이유
《이상한 나라의 그림 사전>의 그림을 보면 폭력의 피해자 자리에서 인간들이 ‘살려달라‘는 표정을 짓고 있어요 폭력을 행사하는 동물들은 인간의 표정을 전혀 읽어내지 못하지요. 어쩌면 지금 우리 곁의 누군가도 ‘살려달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몰라요. 우리가 읽어내지 못할 뿐이죠.
작가님 책에선 ‘생명 있는 모든 존재가 고통 없는 자리에 있으면좋겠다‘는 소망이 읽혀요. 하지만 현실은 폭력과 고통이 만연하잖아요. 이 괴리를 어떻게 견디시나요?
‘인간은 잔혹합니다. 답이 없어요‘라고 말하면 간단하겠지만,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점점 단순하고 간단한 답을 원하는 것 같아요. 3분짜리 영상을 클릭하듯 말이에요. 하지만 3분 안에 양자역학을 이해할 순 없지요. 인간은 복잡한 다면체예요. 인류를 사랑해야지 다짐하면서 동시에 지하철 옆자리 사람을 미워해요. 저 역시 그래요. 이런 책을 만들지만, 제 안에도 모순이 많아요. 친환경 세제를 샀다가도 거품이 제대로 나지 않으면 일반세제로 바꾸고, 아이 반찬준비가 힘들 때는 돈가스를 사주죠. 의식하지 않으면 쉽게 무관심해지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먼저 제 안의 괴리를 줄이려고 해요. ‘혹시 내가 함부로 힘을 사용하진 않았나?‘ 자주 자문해요. 도덕과 윤리는 왜 우리에게 때리지 말고, 훔치지 말라고 반복해 가르칠까요? 내키는 대로 살면 누구든 불의한 짓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 아닐까요? 자기성찰은 자동으로 되지 않아요. 불편하고 어려워요. 그럼에도 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인간다움 같아요. 타락한 세상인 것도 맞지만, 추악함 속에서 선함을 발견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도 역시 인간이잖아요.
인간의 아이러니를 관찰하고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을 해나가려고 합니다. - P297, 298
아이에게 돈가스를 사주죠.. 작가님 돈가스도 괜찮아요.. ㅜ_ㅜ 인간의 모순을 인정하고, 자기성찰을 통해 모순 속에서 더 나은 길을 발견하려고 애쓰는 작가. 아이를 키우는 분이라, <엄마 도감>의 리얼리티가 엄청나다.
<엄마 도감>은 아이의 입장에서 엄마를 샅샅이 관찰하는 이야기다. "엄마가 태어났습니다. 나와 함께"라는 도입 문장은,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야"라는 말처럼 좌충우돌하는 초보엄마들에게 힘이 된다.
아이가 보기에 엄마는 참 이상하다. 나를 먹이는 데는 그렇게 집착하면서(나는 알아서 적당히 먹고 있는데) 자기 밥은 서서 급하게 먹어치운다. 숨바꼭질을 좋아해서 자꾸 없어진다(그림 속 엄마는 소파 뒤에 숨어서 스마트폰 보는 중ㅋ). 뭔가를 열심히 공부하는데, 그게 나보다 중요한가 보다(그림 속 엄마가 보고 있는 책은 육아서). 엄마는 또 틈만 나면 잔다. 엄마의 정체는 대체 뭘까?
아래는 가장 웃겼던, '배변 활동' 부분이다. 아이는 엄마가 혼자 화장실에 못 가서 같이 가줘야 한다고 여긴다. 혼자서도 볼일을 볼 수 있게 훈련시켜야 한다고. 엄마랑 아이의 위치가 바뀐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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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박연철 - 주변부에서 꾸는 꿈
그림책이 매력적인 이유로 그 안에 담긴 판타지를 빼놓을 수없다. 그림책에서 불가능한 일은 없다. 동식물과 사물이 사람처럼느끼면서 말하고, 빨갛게 익은 수박이 온 동네 사람들을 위한 수영장이 되기도 하며, 불뿜는 용이 집 앞에 찾아오거나, 손을 뻗어서 하늘의 별과 달을 만져볼 수도 있다. 만약 현실 규칙이나 과학적 법칙이 깨지는 장면이 모두 사라진다면 그림책이 지금과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림책 속 판타지에 이입해 나의 오늘과 주변의 현실을 비추어보고, 점검하고, 위안을 얻은 시간이 꽤 길었음에도 마음 한편에서는 찜찜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종종 만났기 때문이다. 성인이 ‘어린이 도서‘를 탐닉하는 것은 퇴행이고, 현실에서 도피하는 미성숙한 수단이라고. 현실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순문학‘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깊이가 부족하지 않냐고.
질문이 생겼다. 정말 환상은 현실보다 열등할까? 그림책과 아동문학이 보여주는 환상의 세계는 특정 생애주기에만 유효한 수준 낮은 눈속임일까? 판타지를 잃어야만 진지한 어른이 될 수있을까?. - P306
최혜진 저자가 던진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으십시오 ㅋㅋ
저자는 박연철 작가를 '주변부'를 위한 문학, 전복의 서사를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2000년대 후반부터 옛이야기 그림책이 너무 정형화되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어처구니 이야기> <떼루떼루》 《피노키오는 왜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를 내셨지요. 하지만 ‘안전하지 않다,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출판사로부터 수정 요구를 받는 일도빈번했다고 들었어요.
<떼루떼루>에서 민중을 상징하는 캐릭터 ‘딘둥이‘는 혼자 옷을 벗고 있어요. 허례허식이 없기 때문이에요 남사당패 인형극에서는 나무로 된 딘둥이 성기에서 물이 나오면서 오줌 싸는 장면도 나와요. 그래서 <떼루떼루>에서도 딘둥이 정면이나올 때 성기가 보이도록 했는데, 출판사가 반대해 결국 가렸어요. 작가마다 그림책의 정의가 다르겠지만, 저는 그림책이어린이를 우선하는 장르라고 믿어요. 그래서 어린이를 존중해야 해요 성기를 가리라고 한 건 어린이를 존중한 게 아니에요. 어린이의 수용 능력과 자정 능력을 믿는 게 존중이지요
‘어린이라 안 돼‘ 그게 바로 어린이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어린이를 존중한다면 삶의 모든 측면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해요. 다만 어린이가 이해하게끔 이야기하기가 어렵고, 거기에 작가의 역량이 필요하지요. - P319
박연철 작가의 그림책은 한 권 읽었다. <안녕! 외계인>은 심심해서 친구를 찾아 지구에 온 외계인 아이의 이야기다. 이 아이는 지구를 돌아다니며 외계인(자기 입장에서)으로 보이는 모든 것에게 안녕!하고 말을 걸지만, 그것은 자동차이거나, 변기이거나, 상수도관이거나, 등대이거나,,
우리 주변의 흔한 사물들 중 외계인이 봤을 때 외계인으로 여겨질 법한 것들을 모았다. 앞장에서는 그것을 외계인처럼 형상화 하고, 짠 넘기면 사실은 이거지~ 하는 방식이다.
둘째가 좋아하며 앉은 자리에서 여러번 봤다. 6살 첫째는 글씨 적다고 안 좋아함.. 3~4세 추천도서다. 앗, 요건 사진을 못 찍었네.
더 읽어보고 싶은 박연철 작가님 그림책
드디어 10명의 작가를 모두 소개했다.
인터뷰를 마친 최혜진 작가는 책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그림책이 품은 매력이 무엇인지를 잘 압축해 보여주는 글이다.
그림책은 한번도 권력을 가져본 적 없는 존재(어린이)를 심장에 품은 매체다. 한 인간의 가장 취약한 시절을 지키는 책이다. 회화와 문학의 전통을 계승하지만, ‘순수-비순수‘라는 예술의 이분법 구조안에서 오랫동안 지위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다 최근 재평가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 세계는 위계를 모르는 여리고 느린 존재와 속도를 맞출 줄 안다. 작고 사소한 숨결에 감탄할 줄 안다. 그림책의 너른 품 안에는 온갖 아웃사이더들이 모여 산다. 기득권의 논리에서 비켜 선 사람들. 마음을 자주 다치면서도 다른 가능성에 대한 상상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
(...)
앞으로도 그림책은 우리가 향해야 할 목적지를 눈에 보이게 할것이다. 현실의 제약과 한계를 훌쩍 넘어 더 나은 곳을 향한 상상을 쉬지 않고 이어갈 것이다. 이토록 강인하고 담대한 그림책의 목소리가 담장 너머 먼 곳까지 나아가면 좋겠다. - P330, 331
최근에는 어른을 위한 그림책도 제법 있는 것 같다.
글자를 따라가기에 바쁜 두꺼운 책을 잠시 내려놓고, 그림책 속 다양한 그림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다른 세계를 꿈꾸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