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세실 > 글 읽는 민족의 자존심(서울신문)

글 읽는 민족의 자존심/김종면 문화부 차장

일본 유수의 한 신문사 사장은 언젠가 “한국이 일본을 따라오지 못하는 것은 양국의 독서량 차이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의 연간 도서발행 실적이 일본의 3분의1에 불과하고 특히 순수과학과 예술서적은 10분의1에도 못 미친다는 통계청 발표도 있고 보면, 이런 자존심 상하는 지적을 받아도 딱히 할 말이 없다.

글 읽는 선비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온 우리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을까. 우리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을 가진 문화강국이요, 안중근 의사의 말대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유구한 지적 전통을 지닌 민족 아닌가.

마침 한국독서학회가 3월 ‘이달의 독서인’으로 조선 중기의 대표적 시인 김득신을 선정, 피폐해진 우리 독서풍토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한다. 여기서 김득신은 물론 조선 후기 김홍도와 함께 활동한 풍속화가 긍재(兢齋) 김득신이 아니라 17세기 시단을 이끈 문인 백곡(柏谷) 김득신이다.

백곡에 관해서는 책읽기와 관련된 일화가 적잖이 전한다. 백곡은 부친이 감사를 지낸 명문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 시가(詩家)로서의 싹은커녕 주위로부터 글공부를 포기하라는 권고까지 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훌륭한 글들을 골라 읽고 또 읽어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책을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란 말을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

백곡이 가장 즐겨 읽은 글은 사기의 ‘백이전’이다. 그는 이것을 무려 11만 3000번이나 읽었다고 ‘독수기(讀數記)’에 적고 있다. 부인의 상중에 일가 친척들이 ‘애고, 애고’ 곡을 하는 중에도 그는 곡소리에 맞춰 ‘백이전’의 구절을 읽었다는 일화도 있다. 한마디로 독서광이었다.

한국독서학회는 국민 독서운동의 일환으로 올해부터 매달 ‘이달의 독서인’을 선정, 발표해오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청장관 이덕무를,2월에는 퇴계 이황을 뽑았다.

간서치(看書痴, 책만 보는 바보)라는 자호를 쓸 정도로 책을 좋아한 이덕무, 끼니마저 거르면서 책을 읽었던 이황, 둔한 머리를 무릅쓰고 책읽기에 힘써 대시인이 된 김득신. 이들의 독서법은 한결같았다.

이덕무는 책을 읽는 과정에서 그 뜻이 심오해 이해할 수 없을 때는 책장을 덮어두고 한참 쉬었다가 다시 읽을 것을 권했다. 일종의 ‘재충전형’ 숙독법이다. 이황 또한 빠르게 읽기보다는 천천히 생각하면서 글의 뜻을 음미하는 숙독과 정독을 바람직한 독서법으로 여겼다. 이황은 책을 다 읽으면 그것을 암송해 완전히 자기 것으로 삼았다. 숙독에 관한 한 김득신은 그 이상의 예를 찾기 힘들다. 책을 한 번 펼쳤다 하면 적어도 1000번을 읽었고, 좋아하는 책은 1만번 이상 읽었다고 하니 눈물겹기까지 하다. 요컨대 이들의 책읽기 코드는 숙독이었다.

우리 주변에는 권장도서 또는 필독도서 목록이 난무한다. 그러나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편이다. 옛 선인들의 독서법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이달의 독서인’ 3인이 강조하듯, 속독은 ‘독서의 적’이다. 속독을 하면 옛것을 참고해 새것을 알기 어렵고 또 무르익은 생각을 하기 힘들어 마음이 급해지고 늘 쫓기게 된다는 게 이황의 말이다.

이런 옛 선인들의 독서법을 몸에 익힌다 해도 기본적으로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한다는 과제는 남는다. 다행히 최근 몇 년 새 작은도서관 만들기나 북스타트운동 같은 소리없는 독서혁명이 이뤄지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조선시대 독서왕’ 김득신.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으로 꾸준히 책을 읽어 입신한 그는 이 땅의 ‘독서 둔재’들에게 하나의 희망이다. 이같은 독서전통을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을까. 단순히 ‘이달의 독서인’을 선정하는데 그쳐서는 별 의미가 없다. 아쉽게 막을 내린 문화관광부 ‘이달의 문화인’ 선정작업의 대안이 될 만한 구체적인 독서운동사업을 모색해야 할 때다.

김종면 문화부 차장 jm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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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가 베스트북은 아니다

덩달아 따라 읽기 말고
검증된 스테디셀러중
관심따라 골라읽는 지혜를

아랍에미리트의 수도는 아부다비이고 경제 중심지는 두바이다. 인구 120만 명의 두바이가 열중하는 일이 있다. 세계 최고층 빌딩 ‘버즈 두바이’, 미국 디즈니랜드의 8배에 달하는 ‘두바이랜드’처럼 세계 최대, 세계 최고의 무엇을 만드는 일이다. 이유는? 빠른 시간 안에 전 세계에 효과적으로 두바이를 알리기 위해서다. 1932년 뉴욕에 지어진 102층짜리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또한 유럽에 대한 열등감을 치유하기 위한 미국인들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

그런데 두바이나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최고’ 혹은 ‘1등’을 좋아한다. 삼성의 1등주의가 싫지 않은 이유도 그렇고, 인터넷 영화예매 순위를 보고 관람할 영화를 결정하는 것도 “이왕이면 1등이 낫다”는 생각 때문이다. ‘베스트셀러’가 곧 ‘베스트북’이 아니라는 사실은 아마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알면서도 베스트셀러를 읽는다. 그래도 많이 팔렸다면 뭐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우리에게 최고는 곧 최선을 의미하니까.

책따세(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교사들이 함께 엮은 ‘독서교육 길라잡이’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소개되어 있다.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학생이 계속 베스트셀러 무협소설을 읽고 있기에 책을 뺏어 교무실로 들고 왔다. 무슨 책인가 싶어 몇 장 읽다 보니 재미가 있어서 앉은 자리에서 그 책을 다 읽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읽기 교육이 전공인 교사가 이런데 학생들은 어떻겠느냐, 베스트셀러란 사실 재미있는 책이며 재미있는 책을 무조건 읽지 말라는 건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게 그 선생님의 이야기다.

사실 베스트셀러를 읽는 것 자체가 사회적 악은 아니다. 베스트셀러를 즐길 줄 아는 태도도 필요하다.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만화 ‘슬램덩크’에서 배웠다”고 한 소설가 정이현의 말이 아니더라도 시대가 바뀌면 어른들이 걱정하는 베스트셀러가 주류(主流) 문화로 바뀌기도 한다. 또한 베스트셀러와 베스트북도 따지고 보면 독서 취향의 문제다. 관심사가 다르면 읽는 책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누구에게는 ‘김인식 리더십’이 꼭 읽고 싶은 책이지만 누구에게는 ‘읽는다는 것의 역사’가 책다운 책일 수 있다.

문제는 고전은 읽지 않고 베스트셀러만 읽는 행위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독자 스스로 자신만의 베스트북을 가려서 읽는 혜안을 기르는 일이다. 반대로 가장 나쁜 독서 행위는 베스트셀러가 말하는 바를 아무런 가치 기준 없이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태도이다. 따라서 베스트셀러를 읽더라도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아 검증받은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 2000년 이후부터 활발하게 쏟아지는 경제·경영서를 예로 들면 꼭 필요한 책도 있지만 사실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인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경우 독자가 알고 싶은 분야의 대표선수 격인 스테디셀러를 찾아 읽는 것이 효과적이다.

2001년 베스트셀러였던 ‘펄떡이는 물고기처럼’은 조직 활성화를 우화 형식으로 다룬 책이지만, 이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2002년 국내에 출간되어 지금까지 기업 경영의 바이블로 읽히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를 보는 편이 낫다. 변화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돌풍을 일으켰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가 말하는 바에 관심이 있다면 지식사회에서 개인의 자기실현을 다룬 피터 드러커의 ‘프로페셔널의 조건’을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찬가지로 처세 심리서를 여러 권 읽느니 ‘설득의 심리학’을 여러 번 읽는 것이 더 유용하다.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 조선일보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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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4-04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우리는 마음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김성신|출판저널리스트 0183768027@naver.com

시공사 이동은 편집부장을 만나러 간다. 그녀는 우리 출판계에 이제 몇 안 남은 희귀한 존재다. 나이 사십 줄에 들어서서도 여전히 출판사에 적을 둔 편집인이라는 면에서 그렇다. 다들 이러저러한 이유로 사십 줄에 들어서기도 전에 출판계를 떠나기도 했고 출판경영인이 되기도 한다. 젊고 의욕 넘치는 출판경영인이 많아지는 것도 좋은 일이겠지만, 오륙십 대의 노련한 전문 편집인을 보유하고 있지 못한 것이 늘상 우리 출판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곤 하지 않는가.

이동은. 1967년생. 올해로 마흔의 나이. 생물학적인 연령이 결코 많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출판계에서 편집자로서는 많은 나이다. 그녀는 십수 년을 출판현장에서 편집자로 일해 왔고 나름의 감각을 유지하면서, 부침 없이 좋은 기획들을 선보여 왔다. 그녀를 만나면 출판 편집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 우선 묻고 싶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절대 지치는 법 없이 꾸준하게 뭔가를 이루어나가는 에너지의 원천도 알고 싶다. 이제 숨을 고르며 그녀를 기다린다.

김성신 (이하 김) 반갑습니다.
이동은 (이하 이) 오래간만이에요. 근데 무슨 인터뷰?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이나 되나요?
        그건 제가 정하는 것이고요.(웃음)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전초전 오래 할 것 없이 바로 궁금한 것부터 물어볼게요.
        이런, 막가파군요. 그래요 그럼. 뭐가 궁금한가요?
시리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시공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들이 주로 시리즈더군요. 시공아트의 책들, '디스커버리 총서' '로고스 총서' '샴발라 총서', 아동물의 '네버랜드' 시리즈 등등. 어떤 관점에서 이 많은 시리즈를 출간하고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앞에 계셨던 선배들이 다 했던 것이고, 사장님이 했던 거고, 자본으로 했던 거고…, 제가 한 것이 뭐 있나요? 예전에는 시장이 급격하게 요동치지 않아서 좀 길게 내다볼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던 책입니다. 하지만 최근엔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지금도 많은 시리즈물을 검토하고 있지만 과거처럼 오랜 숙성기간을 거쳐 기획을 하고 여유 있게 전략을 짜면서 만들어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시리즈에 대한 기획을 많이 해봤고 그래서 경험이 풍부한 저희가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을 가지고 꾸준히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조금 전까지도 회사에서 그런 내용을 논의했어요. 결론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였습니다. 우리는 교양 시리즈물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그냥 쉽게 나오는 책은 없잖아요. 시리즈도 마찬가지죠. 일단 결정되면 들어가는 돈이 만만찮으니까 신중할 수밖에 없지요. 하여튼 시리즈를 기획할 때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기획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급하게 결정하고 곧바로 쏟아내기보다는 1년 정도는 꼬박 준비과정에 투입할 수도 있어야 하고. 이렇게 해도 제대로 기획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예전에 비하면 그렇게 하기가 훨씬 어려워졌어요. 사람도 부침이 심하고 누가 나가버리면 기획도 따라서 망가지는 경우도 있고, 준비해나가는 사이에 회사측에서 생각이 바뀌는 경우도 많고.

        제일 힘든 건 회사의 생각과 판단이 중간에 바뀌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편집자가 시리즈 기획을 하고자 할 때 가장 고민되는 부분은 회사의 의지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 하는 점이지요.
그런데 이건 회사 의지만의 문제이거나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어요. 진행 중이더라도 아니다 싶으면 중단하는 것도 경영상에서는 필요한 일이잖아요. 회사가 망하게 생겼는데 밀어붙일 수는 없잖아요.
        물론 그렇죠. 하지만 처음부터 자사의 자금 규모나 시장 파악을 면밀하게 해서 일단 시작한 일은 끝을 볼 수 있어야지요. 시리즈를 기획해서 책을 내기 시작한다는 것은 독자와의 약속이고 신뢰의 문제니까요. 그러니까 기획 준비 단계에 시간을 여유 있게 투입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겁니다.

        제 생각에는 편집자가 기획을 통해 출판 자본을 설득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봐요. 시리즈 기획할 때나 단행본 진행할 때나 기획 추진의 방식이 다를 바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편집인들이 한 권의 책을 기획해서 자본을 설득하는 방식에는 유능한데, 장기적인 플랜을 제시하는 데는 그리 유능하지 않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시리즈가 출간되고 3년 이후에는 얼마만큼의 매출을 올릴 것이다 혹은 올릴 수 있다. 이런 식의 비전을 보여주거나, 질 좋은 시리즈로 인해 독자로부터 얻게 될 출판사의 지명도 같은 무형 자산까지도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계산해서 기획을 해야 하는데 그런 일을 잘하는 편집인이 드물다는 겁니다.
        맞아요. 게다가 이직이 잦은 우리 출판계 현실에서 자신이 몇 년 후까지 그 회사에 있을지마저 불투명한 상태니 장기적 의지가 필요한 시리즈 기획이 더욱 힘든 것이지요. 이것은 결국 출판사가 독자와의 신뢰관계를 만드는 것에 있어서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콤팩트하고 알찬 시리즈를 기획하고 싶어요
        얘기를 다른 쪽으로 좀 돌려보지요. 최근에는 어떤 출판사의 책을 눈여겨보나요?
        상대적으로 자본에 여유가 있는 대형 출판사들이 최근 만들어낸 출판물과 출판 시스템이 우리 출판계 전체에 긍정적인 역할을 많이 하고 있다고 봅니다. 독자들은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기획의 신선함에 대해 점수를 줄 수 있는 책들이 우리 눈에는 보이잖아요. 출판계가 그걸 가지고 열심히 고민하고 분석해서 공유하면 공부가 많이 됩니다. 가령 누가 실용서로 베스트셀러를 기획했다면 거기에다 교양의 성격을 더 부과해보기도 하고, 또 다른 방향으로 영역을 확장시켜보기도 하고, 그런 고민은 출판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사회적인 의무라고도 생각해요.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지금보다 조금 더 고민의 질을 높이고 집요하게 분석해보면 출판이 더 희망적이지 않을까? 전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 출판은 누군가 하나를 이루고 진척시키면 금방 금방 그 영역을 자기 영역으로 만들고, 좋은 요소들을 받아들여 소화시키는 데 정말 빠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단행본도 단행본이지만 시리즈 기획에 대한 욕심도 있겠지요?
        시공사에서 좋은 시리즈물을 기획하고 싶습니다. 독자들은 시공사를 대표하는 시리즈에 대해 여전히 디스커버리 총서요, 아트 시리즈요, 로고스총서요 하는데, 이것들은 출간된 지 좀 오래됐고, 게다가 전부 외국의 저작물이고 그래서 우리 저술가들의 시리즈를 만들고 싶어요. 수십 수백 권에 이르는 대형 시리즈는 아니더라도 콤팩트하고 알찬 시리즈를 기획하고 싶어요. 구체적인 것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두고 타진 중입니다.

        아까도 잠깐 언급했던 문제지만 어떤 기획자가 시리즈를 기획하다가 퇴사를 하면 시리즈가 중단된다니 그건 정말 코미디 아닐까요?
        코미디지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도대체 그 출판사는 무슨 의지를 가지고 책을 만들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얘기겠지요. 그런데 그런 경우 전 해당 기획자의 책임도 크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후임으로 온다고 해도 그 시리즈를 계속 진행해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놨어야 한다는 것이죠. 시리즈의 방향과 의미는 뭐고, 어떤 방식으로 전개가 되어야 하고, 인적 네트워크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이런 것들을 정리해서 온전하게 회사 시스템으로 만들어놓아야 합니다. 본인이 나간 뒤 회사에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면 그건 정말 문제가 많은 편집자지요.
시리즈뿐만 아니라 일반 단행본이라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편집자들은 전임자의 기획을 잘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자기중심적인 면이 있다고 봅니다. 내가 한 기획은 '나'의 것이라는 생각을 자꾸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남의 기획은 이어 진행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기획을 회사의 시스템으로 만들어놓지 않으려고 하죠.
        '내 일처럼 한다'라는 덕목이 정말 이상하게 적용되는 부분이지요.
        그러게 말이에요. 그래서는 안 되는데 말이죠.
        내 일처럼 열심히 일하는 건 좋은데 나갈 때도 내 일로 가지고 나가버리는 거죠.
        실제로 많잖아요, 그런 일이. 일을 떠나서 사람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덕이나 양심의 문젠데….

        현장 경험이 많은 편집기획인의 한 사람으로서 현재 시공사의 기획과 편집 시스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기획자가 단순교정업무로부터 지금보다는 좀더 자유로워져야 할 필요성을 느껴요. 차라리 교정업무만을 전문적으로 대행하는 회사가 생겨 교정 업무는 이관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현재의 단계에서 고려해볼 만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기계적으로 편집 업무를 떼어낸다는 것은 위험성도 커보이는데요.
        그렇죠. 그래서 이것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기획과 편집 업무는 기계적으로 나눌 수 없는 부분도 많거든요. 편집에는 너무나 섬세한 것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잖아요. 한 사람의 저자가 쓴 글에는 글자 하나하나에까지 그 사람의 철학과 사상이 담기죠. 그래서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데 있어 기획은 여기까지다 편집은 여기까지다 하고 가를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좋은 기획자라면 편집과 기획을 함께 가져가야지요. 교정 교열의 아주 기계적인 부분은 따로 떼어 외부에서 처리한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책을 세팅하는 과정에서는 편집의 영역을 잘 알아야 하거든요. 그래서 출판 기획은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책을 만드는 데 있어서는 정말 많은 기능이 필요하고 이것들이 통합적인 관점에서 적용되어야 하거든요.

출판 편집자로서의 삶이 좋고 긍지도 느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런데 오랜 기간 노력해서 아무나 못하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사람들을 우리 출판계는 그리 오래 활용하지도 못하고 은퇴시키는 경우가 많죠. 아예 집으로 보내버리기도 하고 출판사 사장이 될 수밖에 없도록 내몰기도 하고. 40대 이상의 편집자가 드문 것이 그 증거지요. 제가 평소에 존경하던 편집자 선배 한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이 나이 40 되던 해쯤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출판사를 차렸지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선배 같이 뛰어난 편집자가 고작(?) 출판사 사장이나 되다니 슬프다”고.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있던 분이었거든요. 여건만 허락됐다면 늙어서 은퇴할 때까지 출판사에 편집자로 남았을 양반입니다. 사업적인 마인드 때문에 출판사를 차린 것이 아니었지요. 계속 출판 편집자로만 남았다면 후배들에게 편집에 대한 노하우를 많이 생산하고 전수해줄 수 있었을 텐데…. 사장이 되면 사실 편집인으로서는 끝이라고 봐야 하지 않나요. 경영을 해야 하니까. 전 바로 그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맞아요. 외국 출판사 사람들을 만나보면, 편집자 중 50, 60 넘는 분들이 많아요. 참 부럽지요. 전 출판 편집자로서의 삶이 좋고 긍지도 느낍니다. 가능하면 이 역할을 오래 하고 싶어요.

        얘기를 좀 다른 쪽으로 돌려보지요. 최근 몇 해 동안 기획해서 출간한 책들 중에 박종호라는 저자의 책이 눈에 띕니다. 2004년에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작년에는 1000쪽 가까운 『불멸의 오페라』가 나왔죠? 지금은 『불멸의 오페라』 2권을 준비 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한 사람의 저자에게 한 출판사가 집중하면서 지속적으로 책을 펴내는 일이 요즘 출판계에서는 흔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저자가 사회적 지명도를 충분히 얻을 때까지 런칭을 진행하는 일종의 매니지먼트적 출판기획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같은 저자의 책이 그 사람의 의미와 맥락을 전반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는(이해해나가는) 편집자에 의해 지속적으로 기획되고 만들어진다는 것이 의미 있어 보이는데요.
        박종호 선생은 제가 만나기 이전부터 이미 지명도가 있는 저자였습니다. 자료를 찾아보고 매력을 느껴 직접 만나보니 완고한 면이 있는 분이었어요. 하지만 그 완고함 가운데 일관된 사유가 있었고 논리가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진행하고자 마음을 먹고 기획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드라이한 클래식 정본이나 개론서 쪽으로 쓰겠다는 의지가 완강했습니다. 그래서 설득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갈등도 많았어요. 정신과 의사였지만 클래식이 좋아 병원까지 접고 음반매장을 연 사연 같은 건 대중에게 정말 흥미로운 요소잖아요. 그래서 “원하시는 대로 쓰시되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좀 넣어서 글을 써보세요”라고 했지요. 처음에는 자신의 사적인 부분을 책에서 밝히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했습니다. 여러 차례 설득을 했죠. 그래서 출판사 의견이 많이 반영되어 책이 나왔는데,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결과적으로 좋았다는 것이죠. 저자도 만족했고 판매 면에서도 저자의 기대와 출판사의 기대에 얼추 맞아 들어갔습니다. 저자도 만족스러워 했어요. 그래도 아쉬움은 많이 남았습니다. 저자의 독특한 삶과 사유가 좀더 잘 드러나게 편집과 기획을 했어야 했는데 그게 아쉬웠지요. 그런데 저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이런 아쉬움이 계속적으로 책을 같이 만들게 된 원동력이 아닌가 싶어요.
        그러니까 서로 아쉬웠던 부분이 지속적인 관계의 시작이었군요.(웃음)
        저자 입장에서 한 권의 책을 내긴 했지만 할 얘기가 더 많이 남아 있었던 거지요. 묵직한 오페라 개론서도 쓰고 싶고, 클래식과 관련한 여행 이야기도 있고, 음악가와 정신분석에 관한 이야기도 있고…. 굉장히 쓰고 싶은 것이 많은데, 이미 한 번 책을 내서 기대만큼 반응을 이끌어냈던 출판사와 일하고 싶어했다고 이해하고 있어요. 저자의 입장에 서서 제가 예측한 것일 뿐입니다만, 제 입장에서 그분과 계속 같이 일을 할 수 있었던 요인은 따로 있습니다.
박종호라는 저자는 굉장히 까다로운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편집자를 믿어주는 그런 분이죠. 그리고 일이 끝나고 나면 편집자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그런 분입니다. 이런 면은 박종호라는 작가가 왜 좋은 작가인지 대변해주는 부분입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좋은 작가니까 계속 같이 일하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요. 거기다가 편집을 하면서 느낀 부분인데, 글에 있어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게 되니까 저로서는 존경하는 마음까지 절로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최선을 다해 일을 해나가며 생긴 저자와의 신뢰관계가 지속적인 관계의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박종호 선생의 글을 시공사에서 계속 만날 수 있겠군요.

우리는 마음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일할 때 까다로운 저자가 사실 좋은 저자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만큼 자기 글에 대한 자부심도 크고 책임감도 더 큰 분들이니까요. 그래서 일의 결과가 더 좋은 경우가 많지요. 박종호 선생의 일을 처음 들어갈 때 이동은 부장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저자가 까다롭다고 툴툴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좋았다고 말하는군요. 전 이미 그때부터 그분이 좋은 저술가일 거라고 예측했었습니다.(웃음)
        아마 또 일로 들어가게 되면 똑같이 툴툴거릴 거예요.(웃음)
        툴툴거리든 말든 어쨌든 저자에 대한 애정이 바탕이 되니까 좋은 책을 계속 만들 수 있겠군요. 그 좋은 저술가의 좋은 책을 계속 준비 중이시지요?
        그렇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2권도 곧 나올 예정이고, 『불멸의 오페라』 2권도 연말쯤 출간할 예정입니다. 여기에 정신과의사로서의 전문성을 살리는 독특하고 흥미로운 음악 책도 기획 중에 있지요. 저자를 중심에 두고 자유롭게 여러 가지 기획을 구상하는 중입니다.

        아무래도 한 사람의 저자를 중심에 두고 그 연장선상 속에서 기획을 가지쳐 나가는 방식이라 내용의 깊이와 대중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대가 되는군요.
        이런 방식의 기획이 더 많아져야 기획자의 입장에서도 정말 기획하는 맛이 나겠지요. '어려운 필자 만나서 오랜 기간 정성 들여 책 한 권 만들었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는 그걸로 끝이다.' 그러면 그건 너무 공허하잖아요? 그 저자의 책을 어떻게 만들면 될지 이제 겨우 알았는데, 그 시점에서 그 사람의 책을 더 만들 수 없다면 아깝죠 정말. 아무리 출판이 산업이라고 하나 출판인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물건 만들어 파는 제조업자는 아니잖아요.
우리는 마음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분들(저자)과 함께 당대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일에 종사하는 것이잖아요. 책 한 권 달랑 만들어놓고 판매실적에 따라 흔들리기보다는 애초에 원했던 그 뭔가가 이루어질 때까지 함께 모색해가는 것이 옳은 출판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자기계발서는 그 의미가 날로 확장되어 가고 있어요
        최근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획의 방향은?
        자기계발서 기획에 관심이 많습니다. 최근에는 자기계발이 끝없이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고 봅니다.
        동감입니다. 그런데 최근 제가 읽은 책 중에 해냄에서 나온 『나에서 우리로』(마크 & 크레이그 킬버거)나 현대문학에서 나온 『행복을 위한 변명』(마티유 리카르)이 있는데, 이런 책들을 보면 자기계발의 방향과 트렌드 변화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기계발이 자기 자신 즉 '나'만을 중심으로 하는 관점이었다면, 책 제목처럼 '나'에서 '우리'로 관점이 확장되고 있다는 겁니다.
『행복을 위한 변명』을 쓴 마티유 리카르는 인간이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것에 있어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추구하는 방식은 공허하다고 지적하지요. 그러면서 '나로 인해 행복해지는 타인들과의 관계와 소통에 의해 비로소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이런 요지의 이야기를 합니다. 이 책뿐 아니라 요즘 이런 이야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제시되고 있는데, 이런 것이 앞으로 출간되는 자기계발서의 방향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작년에 출간되어 화제가 된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푸른숲)가 얻어낸 반응도 같은 면에서 생각할 수 있지요.
        오늘날의 자기계발서는 그 의미가 날로 확장되어 가고 있어요. 기존의 고정관념이 해체되기도 하고 상이한 개념들이 통합되기도 하면서 계속 확장되어 가지요. 요즘에는 그런 면을 잘 담고 있는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런 관점에서 독자의 요구를 수용하고 또 한편으로는 논의를 이끌어가기도 하는 책을 많이 만들어보고 싶어요.

        영화계를 보면 영화의 줄거리 말고도 영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외적인 부분, 다시 말해 그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서사까지 영화의 홍보에 일조하고 있음을 주목합니다. 감독이 어떤 이야기를 어떤 생각에서 왜 영화화하기로 했는지, 배우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선정되었는지 이런 수많은 이야기들이 관객에게 영화에 대한 더 많은 흥밋거리를 주고 애정을 만듭니다.
이에 비해 우리 출판계는 아쉽게도 이런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지요.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흥미로운 일화가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런데 이게 가능해지려면 책을 만드는 편집자들에게 출판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생각을 일관되게 관철하려 했는지를 독자에게 알려줄 수 있어야 의미가 있겠지요.
        그래요. 전적으로 동감해요. 또 다른 면에 있어서도 우리 출판인들은 영화인들에게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영화에도 오랜 침체기가 있었지요. 그런데 그들은 영화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었고 또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고 봅니다. 출판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우리가 열정과 철학을 놓치지 않는 한 반드시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출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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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4-04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가져갈게요. 근데 출처는 어캐 되나요? 알아두려고요.

하늘바람 2006-04-04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저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입니다

마태우스 2006-04-04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동은 편집장, 제 초등학교 동창이어요. 그전엔 효형에 있었는데 시공으로 옮겼지요. 인터뷰 보니까 반갑네요.

2006-04-04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06-04-04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시군요. 마태님 넓은 발 다시 한번 감탄입니다
 

[글 속에 미래가 있다]명사들이 말하는 책읽기 [06/04/03]
《우리 시대 대표적인 책벌레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도대체 어떻게 책을 읽느냐고. 비슷한 대답이 쏟아질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책을 고르고, 읽고, 갈무리했다.

어떤 이는 집중적으로 몇 시간을 투자해 한 권을 읽었고, 어떤 이는 틈틈이 시간을 쪼개 여러 권을 나눠 읽었다. 어떤 이는 책을 읽었다는 흔적을 남기는 것을 싫어했고, 어떤 이는 서슴없이 책을 찢기도 했다. 어떤 이는 책의 주요 내용을 적어 둔 메모상자를 활용했고, 어떤 이는 낭독하거나 대화 중에 섞어 넣는 등 몸으로 책을 읽었다.

책 읽는 개성은 달랐지만 그들의 결론은 같았다. 책은 지식을 얻는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며 책은 꾸준히 읽다보면 그 학습 효과가 기하급수적으로 배가된다고.》

○ 이미지맵을 통한 입체적 독서-시인 장석주

신문 서평을 읽거나 제목과 필자를 보고 직관적 판단에 의존해 책을 고른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의 목차를 훑어보고 주로 인터넷 주문으로 1주일에 15권가량 구입한다. 온라인으로 책을 사지만 실망한 확률은 20권에 1권꼴밖에 안 된다. 하루 한 권 이상은 꼭 읽으려 한다.

한번 책을 잡으면 3시간 이상 집중적으로 읽는다.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속독을 배우지 않고도 단어가 아니라 덩어리로 읽는 버릇이 생겨 이론서도 1시간에 60쪽 이상의 속도로 읽는다. 책에 대한 결벽증이 있어 메모도 하지 않고 줄도 치지 않는다.

다만 책을 읽을 때 머릿속에 직육면체의 공간을 상상하고 읽어 가면서 깨달은 내용을 그 안에 배열하는 이미지맵 독서를 한다. 이런 입체적 독서를 하다 보면 책을 읽다가 앞으로 되돌아가서 읽을 필요가 없다. 다만 쉽게 이해하기 힘든 책은 책장 가까이 두고 읽고 또 읽는다.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가 쓴 ‘천 개의 고원’이 그런 경우로 완독만 5번 했고 부분적으로는 거의 매일 읽는다. 노자의 ‘도덕경’은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국내의 거의 모든 역주본을 찾아서 읽지만 읽을 때마다 좋다.

○ 메모함을 이용한 DB독서-출판평론가 표정훈

매주 서너 개 신문의 서평을 샅샅이 읽고, 온라인 서점의 신간 코너를 두루 검색해 구입할 책 목록을 작성한다. 책 구입은 반드시 오프라인 서점을 방문해 책의 ‘신체적 건강 상태’를 점검한 뒤 결정한다. 한 달에 대략 30권의 책을 구입한다.

책을 읽을 때는 중요한 부분,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는 ‘스킵(skip) 독서’를 많이 한다. 서문, 목차, 찾아보기 등을 먼저 훑어보고 무작위로 펼쳐서 읽다 보면 내게 필요하고 중요한 부분이 저절로 찾아진다. 꼼꼼하게 정독할 필요가 있는 책은 한두 달이나 그 이상에 걸쳐 조금씩 읽어 나간다. 이런 책들은 한약방 약상자처럼 언제든 꺼내 볼 수 있게 가까운 책장에 꽂아 놓고 본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페이지에 어떤 주제의 내용이 있다는 것을 메모지에 적어 두고 주제별 메모 상자에 넣어 둔다. 카페에서 잡지를 읽다가도 좋은 구절이 나오거나 TV 교양프로를 보다가도 좋은 말이 나오면 메모해 뒀다가 이 메모 상자에 보관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에게서 배웠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실용서는 아예 필요한 페이지를 찢어서 별도의 파일 형태로 보관하다가 새 책을 한 권씩 만들기도 한다. 요즘은 소장서적 1만3000권의 서지사항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다.

○ 몸으로 읽어라-고전연구가 고미숙

연구실(연구공간 ‘수유+너머’) 식구들이나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책을 빌려 읽거나 필요할 때는 인터넷으로 구매한다. 집필을 위해 읽는 책과 매일 반복해 읽는 경서(동양고전)를 빼고 일주일에 최소 두세 권을 읽는다. 일반 책을 읽을 때는 이해 못하는 부분은 그냥 건너뛰면서 단숨에 쭉 읽는다. 필요하면 줄도 많이 치고 여기저기 메모도 하면서 거칠게 읽는다.

책에 대한 집착이 없어 쉽게 빌려주고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책으로부터 지식이나 정보를 얻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책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해 주고 내 몸을 바꿔 주는 통로일 뿐이다. 경서를 읽으면서 터득한 것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읽으라는 것이다. 예전에 소리 높여 낭독하게 한 것은 교육의 현장감과 신체적 교감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낭독은 기운을 소통시키고 읽다가 막힌 부분을 뚫어 주는 마력이 있다. 요즘 책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으면 일부러 소리 내 읽다 보면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특히 청소년에게는 낭독을 통한 독서를 권한다. 또 책에서 읽고 깨친 부분이 있으면 일상의 대화나 토론 현장에서 그 내용을 끊임없이 응용할 때 비로소 내 것이 된다.

○ 책에 대한 엄숙주의를 깨라-경영저술가 공병호

매년 한 해 동안 얼마의 책을 읽을 것인지 수량 목표를 설정한다. 작년에는 300권을 목표로 했는데 380권을 읽었다. 올해는 500권을 목표로 삼았다. 새 책을 읽을 때마다 꼭 500권 중에 몇 권째임을 기록해 둔다. 한 달에 두 번씩 오프라인 서점을 찾아 정신없이 바쁘게 책을 고른다. 책을 잡으면 목차를 보고 중요한 부분부터 찾아 읽는다. 정독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앞에서부터 차례로 읽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면 발췌 독서로 충분하다. 이제는 센서 기능이 발달해서 내게 필요한 부분만 잘 찾아 읽게 됐다.

책에 대한 엄숙주의를 버려야 한다. 돈 내고 내게 필요한 지식을 사는 것이다. 예전엔 책을 읽다 필요한 페이지는 과감하게 반을 접어서 언제든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요즘에는 책을 읽고 맨 앞 페이지에 사용가치가 있는 아이디어, 사례, 키워드가 담긴 페이지를 메모하는 방식을 택한다. 또 책을 연속적으로 읽지 못하고 틈틈이 읽기 때문에 마침내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20∼30분의 시간을 들여 메모한 주요 내용을 복습한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일이 손에 안 잡힐 때 남들은 술을 마시지만 나는 몇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책을 읽는다. 피터 드러커에게서 배운 휴식 방법이다.

○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라-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

아마존닷컴과 반스 앤드 노블 등 해외 온라인 서점의 실시간 베스트셀러 목록과 독자들의 서평을 참고해 온라인으로 구매한다. 특히 맬컴 글래드웰, 짐 콜린스, 토머스 프리드먼, 존 그리셤처럼 좋아하는 필자의 책은 바로 구매한다. 주로 경영 관련 서적이 주를 이루는데 한국에 있을 때도 번역돼 나오는 것을 참기 힘들어 원서로 읽었다.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보기보다는 한 권의 책을 집중적으로 본다.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해 틈틈이 읽는 경우가 많다. 승강기를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기도 하는데, 몇 년 전까지 입주했던 회사 건물의 승강기가 느려서 한 달에 한두 권은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절대로 요약본은 보지 않는다. 책의 대강의 줄거리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자의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자신의 지식이나 현재의 상황과 대비하면서 사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이 읽는 것도 좋지만, 능동적으로 생각하면서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을 때는 그 부분에 집착하기보다는 다음에 같은 분야의 다른 책을 읽는다. 다른 표현 방식과 다른 관점으로 설명을 하는 것을 읽고 있노라면, 그 전의 책에서 이해가 안 가던 부분도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때가 많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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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의 비밀 딱 3주만에 결판 [06/04/02]
대박 필자들 4가지 공통점
①나만의 전문영역 개척 ②틈새시장 철저히 공략
③고정독자 몰고 다닌다 ④출판사들 ‘특별 관리’

현재 우리나라의 베스트셀러 저자들은 누구인가. 우리 출판계에도 새 저서를 출간하면 몇 만 부에서 몇 십만 부의 판매가 거의 ‘보장’되는 필자들이 있다. 대부분 열성적인 고정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이들의 책을 내기 위해 출판사들은 애를 쓴다.

명상 서적을 주로 내는 시인 겸 번역가 류시화(47)씨는 출간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된다고 해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등이 밀리언셀러가 됐으며,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성자가 된 청소부’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등 번역서들도 수십만 부가 팔렸다. 또 법정 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등 류씨가 엮은 책들도 수십만 부씩 팔려 나갔다. 류시화씨는 “나는 독자들의 강한 잠재적 요구가 있는데도 출판사들이 잘 내지 않는 책들을 골라 펴낸다”고 ‘비결’을 공개했다.

경제 경영서의 베스트셀러 저자는 공병호(46)씨와 구본형(52)씨다. 공씨의 저서 중 가장 많이 팔린 것은 ‘10년 후 한국’(40만 부)이며, ‘자기경영노트’ ‘10년 후 세계’ ‘부자의 생각, 빈자의 생각’ 등도 베스트셀러다. 자신을 ‘지적 사업가(intellectual en trepreneur)’라고 규정하는 공씨는 “강연 등을 통해 사회와 부닥치면서 ‘시장’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구본형씨는 외환위기 이듬해에 펴낸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켜 20만부 이상 팔려 나갔다. 그리고 뒤이어 펴낸 ‘낯선 곳에서의 아침’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등 변화와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들도 10만 부 이상 판매됐다.

최근 베스트셀러 저자로 떠오른 사람은 오지여행가 및 구호활동가 한비야(48)씨다. 그가 7년간의 오지여행 경험을 담아 펴낸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전 4권)은 모두 100만 부가 팔렸으며, 뒤이어 펴낸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20만 부) ‘중국견문록’(50만 부)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35만 부)도 잇달아 히트를 쳤다. 한씨의 책 세 권이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은 세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 증대와 책이 지닌 교육적 의미 때문으로 분석되며, 독자층이 대학생과 20대에서 청소년층으로 확대되고 있다.

분야마다 베스트셀러 저자들은 다양하다. 역사 분야에서는 ‘조선왕 독살사건’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등을 펴낸 이덕일(45·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씨와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방외지사’를 낸 조용헌(45·강호동양학연구소장)씨가 대표적이다. 또 한문학에서는 ‘미쳐야 미친다’ ‘죽비소리’ ‘한시미학 산책’의 저자인 정민(45) 한양대 교수, 미술 분야에서는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 ‘내 마음 속의 그림’을 펴낸 미술평론가 이주헌(45)씨, 신화 분야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소설가 이윤기(59)씨, 과학은 ‘개미제국의 발견’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를 지은 최재천(52) 이화여대 석좌교수와 ‘과학콘서트’를 펴낸 정재승(34)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등이 두드러진다.

베스트셀러 저자들은 출판사와의 관계에서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원고를 넘겨준 후 출판사에 완전히 맡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최종 순간까지 함께 상의하며 책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류시화씨 같은 경우는 전문 편집자 이상의 안목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혼자서 거의 전 과정을 책임지며, 공병호·정민씨 등은 출판사의 특성에 맞춰 저서들을 분산 배치하는 저자들로 꼽힌다.

베스트셀러 저자들은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거액의 계약금을 미리 받거나 인세를 많이 받는 등 금전적 이득을 중시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호흡이 맞는 출판사들과의 파트터십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관행은 거의 사라졌다.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는 “한 출판사에서 여러 권을 잇달아 출간해야 시너지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 대신 책의 제작과 광고 등에서 다른 필자들보다 더 정성을 들여줄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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