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세실 > 글 읽는 민족의 자존심(서울신문)

글 읽는 민족의 자존심/김종면 문화부 차장

일본 유수의 한 신문사 사장은 언젠가 “한국이 일본을 따라오지 못하는 것은 양국의 독서량 차이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의 연간 도서발행 실적이 일본의 3분의1에 불과하고 특히 순수과학과 예술서적은 10분의1에도 못 미친다는 통계청 발표도 있고 보면, 이런 자존심 상하는 지적을 받아도 딱히 할 말이 없다.

글 읽는 선비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온 우리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을까. 우리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을 가진 문화강국이요, 안중근 의사의 말대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유구한 지적 전통을 지닌 민족 아닌가.

마침 한국독서학회가 3월 ‘이달의 독서인’으로 조선 중기의 대표적 시인 김득신을 선정, 피폐해진 우리 독서풍토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한다. 여기서 김득신은 물론 조선 후기 김홍도와 함께 활동한 풍속화가 긍재(兢齋) 김득신이 아니라 17세기 시단을 이끈 문인 백곡(柏谷) 김득신이다.

백곡에 관해서는 책읽기와 관련된 일화가 적잖이 전한다. 백곡은 부친이 감사를 지낸 명문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 시가(詩家)로서의 싹은커녕 주위로부터 글공부를 포기하라는 권고까지 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훌륭한 글들을 골라 읽고 또 읽어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책을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란 말을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

백곡이 가장 즐겨 읽은 글은 사기의 ‘백이전’이다. 그는 이것을 무려 11만 3000번이나 읽었다고 ‘독수기(讀數記)’에 적고 있다. 부인의 상중에 일가 친척들이 ‘애고, 애고’ 곡을 하는 중에도 그는 곡소리에 맞춰 ‘백이전’의 구절을 읽었다는 일화도 있다. 한마디로 독서광이었다.

한국독서학회는 국민 독서운동의 일환으로 올해부터 매달 ‘이달의 독서인’을 선정, 발표해오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청장관 이덕무를,2월에는 퇴계 이황을 뽑았다.

간서치(看書痴, 책만 보는 바보)라는 자호를 쓸 정도로 책을 좋아한 이덕무, 끼니마저 거르면서 책을 읽었던 이황, 둔한 머리를 무릅쓰고 책읽기에 힘써 대시인이 된 김득신. 이들의 독서법은 한결같았다.

이덕무는 책을 읽는 과정에서 그 뜻이 심오해 이해할 수 없을 때는 책장을 덮어두고 한참 쉬었다가 다시 읽을 것을 권했다. 일종의 ‘재충전형’ 숙독법이다. 이황 또한 빠르게 읽기보다는 천천히 생각하면서 글의 뜻을 음미하는 숙독과 정독을 바람직한 독서법으로 여겼다. 이황은 책을 다 읽으면 그것을 암송해 완전히 자기 것으로 삼았다. 숙독에 관한 한 김득신은 그 이상의 예를 찾기 힘들다. 책을 한 번 펼쳤다 하면 적어도 1000번을 읽었고, 좋아하는 책은 1만번 이상 읽었다고 하니 눈물겹기까지 하다. 요컨대 이들의 책읽기 코드는 숙독이었다.

우리 주변에는 권장도서 또는 필독도서 목록이 난무한다. 그러나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편이다. 옛 선인들의 독서법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이달의 독서인’ 3인이 강조하듯, 속독은 ‘독서의 적’이다. 속독을 하면 옛것을 참고해 새것을 알기 어렵고 또 무르익은 생각을 하기 힘들어 마음이 급해지고 늘 쫓기게 된다는 게 이황의 말이다.

이런 옛 선인들의 독서법을 몸에 익힌다 해도 기본적으로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한다는 과제는 남는다. 다행히 최근 몇 년 새 작은도서관 만들기나 북스타트운동 같은 소리없는 독서혁명이 이뤄지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조선시대 독서왕’ 김득신.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으로 꾸준히 책을 읽어 입신한 그는 이 땅의 ‘독서 둔재’들에게 하나의 희망이다. 이같은 독서전통을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을까. 단순히 ‘이달의 독서인’을 선정하는데 그쳐서는 별 의미가 없다. 아쉽게 막을 내린 문화관광부 ‘이달의 문화인’ 선정작업의 대안이 될 만한 구체적인 독서운동사업을 모색해야 할 때다.

김종면 문화부 차장 jm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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