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리브르 박재환 대표
등록일 : 2006/04/05
누군가는 꼭 내야 할 책이라면

김성신|출판저널리스트 0183768027@naver.com

'연매출 1000억 원대의 출판사가 나와야 한국 출판이 산다' VS '출판사의 거대기업화와 이로 인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책의 다양성을 해치는 원인이 된다'. 최근 쟁점으로 떠오른 출판계의 이슈다. 사실 출판계 사람 모두가 연매출 1000억 원대의 출판사가나오도록 열심히 기도를 한다고 해서 그런 출판사가 반드시 나오리라는 보장도 없고, 반대로 거대 기업화하려는 출판사의 발목을 잡아 그만큼의 매출을 올리지 못하도록 막을 방도도 없다. 그렇다면 이 논의에 대해 아예 관심을 거둘 것인가? 그것도 그리 옳은 자세가 아니다.

이른바 '출판거대화 찬반논쟁'이라고 명명할 만한 이번 일은 한국 출판의 5년 후를 설계한다는 사뭇 구체적이고도 거대한 논의라고 하지만, 사실 그런 것보다는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출판인들에게 '출판이란 무엇인가' '책의 다양성' '지식의 독과점' '단행본의 정체성' '출판자본의 성격' 등등, 어찌 보면 출판학 개론 같은 책에서 언급될 만한 주제들을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 매력이 있다.

출판이란 무엇인가
출판은 때때로 문화 같기도 하고 장사 같기도 하다. 사실 그 점이 모호하기에 출판인이라면 언제나 경계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우리는 항상 우리 스스로에게 '출판은 무엇인가'를 되묻는다. 우리를 제외하고 도대체 어떤 산업이 구성원들에게 이런 방식으로 가장 근본적이고도 고통스러운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가?

그러다 문득 박재환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에코리브르라는 이름의 간판을 내걸고 책을 낸 지도 벌써 5년여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이 출판사가 낸 책들은 모두 65권에 이른다. 규모에 비해서는 적지 않은 출간 종수다. 에코리브르의 출간도서목록을 훑어보면서 이렇게 작은 규모의 출판사가 부침없이 한 달에 한 권 꼴로 꼬박꼬박 책을 내온 것이 우선 신기했다. 또 인문, 역사, 사회, 문화, 환경, 경제 등 기획의 방향이 다양함에도 그 깊이와 수준은 일정하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에코리브르의 책은 전반적으로 지식인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책이기는 하다. 그러나 대중성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 면에서 웬만한 고집으로는 만들기 힘든 도서목록이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줄기차게 펴내는 환경 도서들이 우리 환경운동에 중요한 맥락을 제시하는 그야말로 좋은 책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게 잘 팔리기는 할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오늘은 그가 펴낸 환경 관련서들을 중심으로 그가 생각하는 출판이란 과연 무엇인지 직접 들어보려고 한다.

김성신(이하 김) 안녕하셨습니까?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박재환(이하 박) 춤을 배우느라 열심입니다. 아내와 함께 스포츠 댄스를 배우는데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니에요. 운동도 되고.

김   그래서인지 무척 건강해 보이십니다. 보기 좋습니다. 출판 일을 하신 지 오래되셨지요?
박   출판을 시작한 것이 93년인가 94년이니까 10년이 넘었군요.

김   첫 직장이 디자인하우스였던가요?
박   공식적으로는 디자인하우스가첫 직장이지만 그전에 작은 출판사에 잠깐 근무한 적이 있긴 하지요.

김   일반적인 출판인들에 비해 상당히 늦은 나이로 출판계에 입문하신 셈이지요?
박   35세에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와서 2,3년 있다가 시작했으니까 37, 38세 정도에 출판을 시작한 것이지요.

김   다자인하우스에서 근무하다가동문선 출판사로 옮겼고, 그 다음부터는 직접 출판 경영을 하셨지요?
박   21세기북스 자회사인 이끌리오였지요.

김   그리고 2001년도에 에코리브르를 창립했지요? 에코리브르 창립 첫 책이 『인터넷 심리학』이었던가요?
박   『프리에이전트의 시대가 오고있다』가 한 달 빨랐어요. 그 책이 2001년 6월에 출간되었고 『인터넷 심리학』은 2001년 7월입니다.

김   제 기억으로는 창립 직후부터 그 책들을 포함해 거의 한 달 간격으로 문제작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제가 미리 자료조사를 좀 해봤는데, 창립 첫 해에 나온 책만 7권이더군요. 『패스트푸드의 제국』 『나는 왜 역사가가 되었나』 『거울의 역사』 『독서가 어떻게 나의 인생을 바꾸었나?』 『돈의 감성지수』까지, 이 책들이 모두 창립연도에 출간되었지요? 사회문화사와 인문역사 분야에서 사회적 화두가 될 만한 책들이 2001년에 줄기차게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박   대부분이 이끌리오에서 출간하기 위해 기획했던 책들입니다. 이끌리오를 그만둘 때 그 기획들은 내가 책임지겠다고 하면서 본사의 양해를 구했지요.

김   에코리브르 하면 환경도서가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릅니다. Ecolivre라는 출판사 이름부터가 환경생태학 책들에 대한 출간의지를 담고있는 듯 보이는데, 그런 출판사명에 맞게 중요한 환경 도서들을 여러 권 펴냈지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를 비롯해 『회의적 환경주의자』 『요람에서 요람으로』 『아침의 붉은 하늘』을 거쳐 최근에 펴낸 『환경경영리포트』에 이르기까지, 흥미롭게 읽은 환경 도서들의 리스트가 떠오릅니다.환경 관련서로는 세계적인 문제작들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항상 드는 생각이 '이런 책들이 어떻게 이제야 소개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서유럽에서는 이미 수년, 수십 년 전에 출간되어 전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책들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습니까? 한국에서 환경 도서들에 대한 반응이.
박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전히 어렵습니다. 환경에 대한 우리의 대중적 인식과 관심은 과거에 비해 크게 증폭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관심이 책을 통해 지식을 축적하는 방향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환경 책이 팔려나가는 부수를 보면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경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2000-3000부 팔기도 힘들어요. 때때로 1000부 이하도 있어요.

김   그런 상황에서도 꾸준히 환경 도서들을 기획하는 것은 보통 뚝심이 아니지요. 그런데 좀 세밀하게 보면, 에코리브르의 환경 도서들은 환경이론서 쪽이 많은데요. 일반대중들의 실생활에 밀접한 것이기보다는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쪽이지 않습니까?가령 환경보호의 당위성을 사회학적 측면에서 분석하는 책이거나 통계학적 자료들을 동원하는 책들이 주종을 이루는데, 이런 책들은 환경 문제를 이론적이고 체계적으로 공부하려는 사람들 외에 대중들 입장에서는 어려워 보입니다. 대표적인 책이 『회의적 환경주의자』가 아닌가 싶어요.1068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책 가격이 무려 5만 원이지요. 이 책은 인터넷 서점에서 할인도 많이 안 하더군요. (웃음) 이런 책은 아무리 환경에 관심이 많다고 해도 선뜻 구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환경 도서가 전반적으로 안 팔리는 것이 아니라 에코리브르의 환경 이론서가 일반독자들에게 너무 고압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박   그래도 누군가는 꼭 내야할 책이라는 생각에 기획했습니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출판사들은 잘 안 팔리기로 유명한 환경 도서들을 꾸준히 출간했습니다. 고급 교양도서를 출간해온 기존 출판사들도 간간이 중요한 환경생태 도서들을 출간하면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고, 그 중에서도 그물코 같은 출판사는 굉장한 의지를 가지고 환경 도서만을 줄기차게 출간하고 있지요. 아주 고무적인 일입니다. 같은 출판인 입장에서 존경스럽기도 하고요.
우리 출판사가 내는 환경 도서들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말씀하신 대로 대체로 환경 이론서들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환경과 관련한 가장 중요한 화두를 던지는 책이라는 것에 대해선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이 책들은 우리의 환경 생태운동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책들이기도 합니다. 우리 출판 시장의 사이즈를 감안해볼 때 상업적인 이윤이 보장되기 어려운 책들이기는 합니다만, 그렇게 때문에 '내가 지금 내지 않으면 당분간 나오기 어려운 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손해 본 책들을 볼 때 마음이 편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후회하거나 중단할 생각은 없습니다. 출판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저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책들이니까요. 그렇다고 저희가 펴낸 환경 도서들을 아무도 안보는 것은 아닙니다. 환경 도서 출간에는 나름의 경영 노하우가 있지요.

김   그 경영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박   꾸준히 환경 도서를 내다보니 시장 사이즈에 대한 통계가 있습니다. '이 책은 얼마만큼 나가겠구나' 하는 예측이 있다는 것인데요. 대체로 맞아떨어집니다. 때때로 '이 책은 500부만 팔겠다. 그럼 500부에서 손익분기점이 나오도록 하자' 이런 식의 전략을 세웁니다. 그리고 기획 단계부터 그만큼의 분량을 소화하는 데 홍보와 마케팅 전략의 초점을 맞춥니다.

김   에코리브르의 책들이 전반적으로 가격이 너무 높은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군요.
박   판매에 욕심을 부려 무리하면 경영 전반에 문제가 생기겠지요. 저희는 절대 무리하지 않으면서 시장의 순리에 맡긴다는 것이 전략이라면 전략이지요. 할 일이 많은데 천천히 가야지요.

김   『회의적 환경주의자』는 구체적으로 어땠습니까?
박   『회의적 환경주의자』는 처음부터 500부만 팔 계획이었습니다. 분량이나 가격 면에서 봤을 때 그 정도면 대성공이라고 봤지요. 지금도 간간이 주문이 오고 결국 예상 판매량을 뛰어 넘었으니 경영상으로는 성공작이지요.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 책이 매우 논쟁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음에도 생각만큼 쟁점으로 떠오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서유럽에서는 환경 위기론이 60년대부터 시작되었죠. 우리는 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환경에 대한 담론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후 대세를 이루는 논의는 환경 비관론, 나아가 일종의 미래 종말론이었어요. 그런데 『회의적 환경주의자』는 이 논의의 비과학성과 불합리성을 방대한 자료와 통계학적 수치를 통해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환경의 실제 상황을 놓고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고 설파했습니다. 환경운동의 목적이 옳다고 해서 비과학과 불합리한 방법론까지 합리화될 수는 없다는 이 책의 경고는 단지 환경운동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관 자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문제제기는 일시적으로 환경 문제에 대한 대중적 경각심을 희석시킬 수도 있고, 사명감으로 환경운동을 펼쳐온 사람들의 도덕성과 존재감을 무력화시킬 수도 있는, 그러니까 매우 미묘하면서도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이 책이 던져진 직후에는 반드시 논쟁이 필요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논쟁이 펼쳐지지 않았어요.
내용에 대한 지엽적인 반박문 비슷한 글들만 몇몇 떠돌다가 대중적 시야에서 멀어졌지요.
무척 아쉬운 대목입니다.



환경 문제에 대한 다양한 논쟁 아쉬워
김   저는 그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일종의 충격 같은 것을 받았습니다. 환경에 대한 일반론적인 저의 인식을 송두리째 재검증하게 만들었는데요. 제 생각에도 논쟁이 반드시 필요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논쟁은 누가 이기고 누가 지고 하는 식의 논쟁이 아니라 논의 자체를 제대로 수용하기 위한 과정으로서 의미를 가진다고 봐야지요. 우리는 아직도 논쟁이라고 하면 승패가 있는 게임으로만 생각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아까 '우리 사회에 이 책이 던져진 직후에는 반드시 논쟁이 필요'했다고 말씀하셨는데, 본격적인 논쟁을 출판사가 직접 기획해보는 방향으로도 검토해 보셨나요? 가령 대학과 연계해서 세미나를 개최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박   여러 가지 방향으로 구상도 하고 시도도 해보았으나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에서 환경 논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어려운 이유가 또 있다고 봅니다.
아직까지 우리가 환경 이론의 생산자이기보다는 서유럽에서 만들어낸 환경 이론의 수용자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김   방금 말씀하신 그런 의미에서라도 에코리브르 같은 출판사는 한국의 환경주의자들이 진보적인 이론을 생산하고 이를 우리 사회에서 검증한 후 전세계적으로 보편화하는 교두보 역할을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에코리브르에서 펴낸 환경운동 관련서의 저자가 외국 저자 일색이었던 것에 조금은 비판적이었는데, 작년 중반기 이후부터는 국내 저자들의 책을 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안심했습니다.
박   동감합니다. 올해 2월 출간한 『환경경영리포트― 환경이 경쟁력이다』는 환경공학자인 양인목 씨와 환경정책 전문가인 정익철 씨가 참여한 책입니다. 최근 저는 기업의 환경경영 쪽에 포커스를 두고 있는데, 시작 단계인 우리나라 환경경영의 수준을 가늠하는 한 지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기획한 책이지요. 작년 8월 이병욱, 황금주, 김남규 씨가 공저한 『환경경영― 21세기 신경영 패러다임』을 펴내면서 이 방향으로 책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김   지금까지 에코리브르의 책들이 환경에 대한 개인적인 차원의 각성을 촉구했다면 그 다음은 기업의 환경에 대한 각성이 필요하겠지요. 기획의 방향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박   어쨌든 우리 환경 운동가들이 생산하는 환경 담론이 전세계 환경운동에 크게 기여할 수 있도록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단순한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우리 저자들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려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한 수준의 환경 이론이 생산될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 전반의 환경 의식과 지식의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김   그렇죠. 선진국은 돈만 많이 벌어들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겠지요.일반 대중의 문화와 교양과 지식의 수준이 고르게 높아져야 하지요.

주목받지 못했던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김   환경경영이라는 주제 이외에도 환경에 관해서는 여러 방면으로 촉각을 세우고 계시지요? 최근 에코리브르의 환경 책들을 보면 기후나 대기 오염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은 듯 보입니다. 생태학과 생명 다양성 보호 쪽으로도 관심이 높은 것 같고.
박   2005년 5월 출간한 『아침의 붉은 노을』과 2004년 7월에 나온 『대기오염 그 죽음의 그림자』가 그 범주에 해당하는 책이지요. 사실 서울의 대기오염도는 OECD 국가 주요 도시들 가운데 최고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환경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지만 유독 대기오염에 관해서는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대기오염에 대한 언론 보도는 거의 사라졌고, 『대기오염 그 죽음의 그림자』를 출간할 당시 자료를 찾아보니 교재를 제외하고는 대기오염에 관해서 어떤 대중서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관심들이 없는 이유는 대기오염이 개인적인 관심의 대상이라기보다 집단적인 관심의 영역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대기오염은 생각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우리의 건강을 해치고 있어요.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호 교수의 연구자료를 본 적이 있는데, '서울의 공기가 제주도 정도만 되어도 서울 시민의 평균기대수명이 3년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더군요. 음식을 잘 가려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만이 웰빙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숨쉬는 대기를 맑게 하는 것이 웰빙의 출발이고 기본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기획한 책들이었는데, 역시나 대중적인 관심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다른 환경 도서들에 비해서도 안 팔리더군요. 대중들은 이보다는 '먹거리의 오염'이라든지 독성물질 같이 개인적으로 체감되는 주제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대기오염은 한 개인에게만 폐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불특정다수를 한꺼번에 위협하는 것인데, 이 불특정 다수에 자신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요. 환경 도서 출간해서 부자가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니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이 분야의 책을 계속 펴낼 생각입니다.

김   우리나라의 환경을 위해서도 결코 망해서는 안 되는 출판사가 에코리브르군요. (웃음) 그래도 걱정되니까 환경 도서들을 꾸준히 내되 좀더 대중적인 쪽으로도 기획을 해보시지요. 그런 면에서 그물코 출판사가 좋은 예가 될 텐데요.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이나 『녹색시민 구보씨의 하루』 같은 책들은 분명한 존재 이유와 대중성을 겸비한 책들이지 않습니까? 내용은 물론 좋고,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고, 따라서 가격도 싸고, 이런 요인 때문에 각종 추천도서로도 꾸준히 소개되어 판매도 지속적이고.
박   그 출판사가 좋은 환경서들을 많이 내지요.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그들은 그들이 잘하는 책을 내는 것이고 우리는 또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책을 내는 겁니다. 물론 그물코 출판사에서 나오고 있는 방향의 환경 도서들을 우리가 낼 수도 있지요. 하지만 환경 도서의 스펙트럼이 다양하게 확산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우리가 내고 있는 종류의 이론서들은 우리가 아니면 내기 힘듭니다. 그런 면에서 자긍심 비슷한 것을 느끼면서 책을 기획합니다.

김   생각은 할 수 있으나 실천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출판을 하시는군요. 후배 출판인들이 가슴에 오래 담아두고 되새겨봐야 할 출판 철학인 것 같습니다. 내친 김에 이야기를 한 가지 더 하고 싶습니다. 가령 그물코에서 2003년 말에 낸 『녹색시민 구보씨의 하루』를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국내 작가를 동원해 재구성한 『초록어린이가 발견한 7가지 물건들의 비밀』 같은 책은 기획이 좋지 않습니까? 이런 기획을 그대로 적용해 에코리브르에서 나온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나 박석순의 『살생의 부메랑』 같은 책들을 어린이 책으로 다시 기획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어린이들에게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운다는 의미도 있고 경영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추천 도서 등으로 선정되어 홍보가 되면 구매로 연결되거나 반응이 확실한 것은 성인물 쪽보다는 아동물 쪽이니까요.
박   좋은 생각입니다. 기획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환경 도서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내고 싶은 책이 많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주셨으면 합니다.

기사게재 : <기획회의> 172호 만난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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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2011-02-22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공간의 생산(앙리 르페브르)이 근간으로 소개되었다고 지인이 전해주었습니다.
혹시 어떤 분이 번역을 맡으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전출처 : 이리스 > 그대로 두기

반세기 영문학의 숨은 공로자를 ‘그대로 못두죠’
[헤럴드 생생뉴스 2006-04-25 08:32]

‘지하철 정거장에서’로 유명한 시인 에즈라 파운드는 유능한 편집자이기도 했다. 그가 무명시절의 제임스 조이스를 발굴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율리시스’를 만날 수 없을 거다. ‘황무지’의 엘리어트도 에즈라 파운드와 함께 작업했다. 에즈라 파운드의 삶 속에 당시 문학가들의 동향이 흐른다. 출판사 ‘열린책들’이 출판 편집 총서 세번째 책으로 내놓은 ‘그대로 두기’는 20세기 영국 출판계 최고의 편집자 다이애나 애실의 자서전이다. 애실이 출판 편집자로 활동한 반세기의 삶 곳곳에는 당시 손꼽히는 영미권 작가들의 예술과 인생이 그대로 박혀있다. 에즈라 파운드처럼. 게다가 당시 지성들의 성격도 살짝 공개된다.

‘달려라 토끼’의 저자 존 업다이크의 대부분 저작이 애실의 손을 거쳤다. 애실은 업다이크를 “절대 스타 행세를 하지 않았고 한 번도 우울해 한 적이 없는 완벽한 저자”라고 소개한다. 필립 로스의 처녀작이자 대표작 ‘콜럼버스여 안녕’도 애실과 합작품이다. 초기작 두 권을 내고 애실의 안드레 도이치 출판사를 떠나긴 했지만.

노먼 메일러와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메일러의 첫 작품인 전쟁소설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는 런던의 유명 출판사 여섯 군데에서 퇴짜 맞고 애실에게까지 흘러왔다. 소설은 탁월했으나 문제는 작품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속어였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의 분위기는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완고한 문학담당 기자는 출간 반대 기사를 1면에 쓰고 법무장관은 출간 금지를 고려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장관이 출간을 허가해 애실과 출판사는 노먼 메일러의 이후 작품을 독점하는 성과를 거뒀다.

책 제목 ‘그대로 두기’는 편집자가 교정지에서 삭제하려 했다 되살리고 싶은 부분을 표시하는 용어다. 저자는 “축적한 경험의 일부를 고스란히 되살리려는, 즉 ‘그대로 두기’ 하려는 목적”이라고 자서전 출판의 이유를 밝혔다. 애실이 활동했을 당시엔 유명했으나 지금은 잊혀진 작가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지 않은 작가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아 일반 독자에게는 이 책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전후 50년간 영미권 문학사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일독할 만할 가치가 있을 정도로 다이애나 애실의 ‘50년 편집자 인생’은 넓고도 깊다.

이고운 기자(ccat@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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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어린이』 창간 3주년 기념 세미나를 엽니다!
창비어린이
2006.04.11.
92
『창비어린이』 창간 3주년을 맞아 올해에도 우리 어린이문학과 문화의 새 지평을 열어갈 논의의 장을 열고자 합니다.

『창비어린이』는 그동안 ‘현실주의 동화, 어떻게 볼 것인가’와 ‘오늘의 아동문학과 역사적 상상력’ 같은 우리 어린이문학계의 주요 논제를 가지고 심포지움을 열어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참여하셔서 열띤 토론을 한 바 있지요.
올해에는 우리 어린이문학과 함께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생각을 나눌 세미나를 준비했습니다. 모처럼 귀한 분들을 모시고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깊이있게 나눌 수 있으리라 봅니다.
세미나는 모두 3부로 나누어 진행합니다. 1부는 ‘작가가 보는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글책과 그림책을 실제로 창작하는 글작가와 그림작가, 그리고 편집자의 경험과 고민을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2부는 ‘그림책에서 글과 그림의 관계’로, 관련 주제발표와 토론을 합니다. 이어 3부에서 전체 참가자들이 함께 토론을 하고 청중도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집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주제: 어린이문학과 일러스트레이션
사회: 엄혜숙(그림책평론가, 어린이책 기획자)

① 작가가 보는 일러스트레이션
- 발표:
이억배(일러스트레이터)
이형진(일러스트레이터)
노경실(동화작가)
임정은(어린이책 기획편집자)

② 그림책에서 글과 그림의 관계
- 발제: 김상욱(『창비어린이』 편집위원, 춘천교대 교수)
- 토론:
여을환(어린이도서연구회 연구실장, 돌베개어린이 편집위원)
채인선(동화작가, 우리책사랑모임 회원)
한성옥(일러스트레이터, 보림출판사 아트디렉터)

③ 종합토론 및 청중 질의응답

글과 그림이 만난 어린이책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감동을 안기고 얼마나 상상력을 열어줄 수 있는지 탐색하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바쁘더라도 꼭 참석하셔서 우리 어린이책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는 자리로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장소: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4층)
시간: 2006년 4월 26일(수) 오후 4시~6시 30분



*2006년 4월 11일 (주)창비 어린이책출판부 (전화 031-955-3346, childzine@chang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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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4-24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가서 듣고싶은 세미나네요. 거리가 너무 멀어요 ㅜㅜ

하늘바람 2006-04-24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일이 마무리가 잘되면 가고 싶어요 잘 될지 모르겠어요
 
 전출처 : 라주미힌 > [퍼온글] 편집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아니, 편집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편집자 집요함 꼼꼼함 없으면 책도 없다”
[한겨레 2006-04-19 23:18]    

[한겨레] 지은이들이 편집자 위해 마련한 ‘특별한 출판기념회’

“이진경 선생님 원고를 읽는데 문장 하나가 두가지 뜻으로 읽히는 게 있었어요. 저 혼자 1시간 넘게 낑낑대고 고민하다가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전화를 드려서 무슨 뜻인지 물었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응, 그거 그냥 빼버려’ 하시는 거에요. 어찌나 허탈하던지….”

18일 저녁 7시, 종묘 뒷담 골목속 자리잡은 ‘연구공간 수유+너머’ 강의실. 출판사 그린비의 김현경 편집주간의 이야기에 청중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옆에 앉은 지은이 이진경 교수도 함께 웃었다. 하지만 웃음을 자아내는 이 이야기속에는 편집자들의 집요함과 고생스러움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편집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아니, 편집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책을 직업적으로 접하는 이들이 아니라면 일반 독자들에게조차 편집자는 낯선 존재들이다. 그 이름은 책의 앞이나 맨뒷장 서지사항속 조그맣게 ‘편집 아무개’라고만 적힐 뿐이다. 그나마 요즘에는 이마저도 적지 않기도 한다. 그만큼 편집자는 뒤로 숨는다.

하지만 책에 있어서 편집자의 존재는 저자 못잖다. 때로는 저자 이상일 때도 있다.

지은이가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면 그 원고를 읽기 좋게 가다듬고, 보기좋게 모양새를 잡고, 그리고 제목을 다는 것. 이 모든 것이 편집자의 몫이다. 오탈자를 잡는 교열, 교정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는 기본 일거리다.

책 자체를 기획해서 걸맞는 저자를 선정할 경우 그 책은 저자의 것이기 이전에 편집자의 것이다. 걸출한 편집자는 세상을 제대로 읽고, 그런 세상 흐름을 반영하는 책을 기획한다. 책이란 것에는 오롯이 지은이의 창의성과 노력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은이의 책’이 있는가 하면, 출판사 대표가 탁월한 교섭력을 발휘해서 유명한 필자와 출판계약을 따내 성공하는 ‘펴낸이의 책’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편집자의 책’이 있다. 꼼꼼한 편집과 세밀한 정성으로 만들어내는 책이다. 처음 책을 접어들 때는 알아차리가 어렵지만, 읽고나면 독자들이 가려워하는 곳을 긁어주듯 다양한 배려를 담뿍 담아놓은 책. 바로 그런 책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출판계의 주인공들인 편집자들은 관심의 바깥에 있다. 책이 성공하면 관심은 온통 지은이에게 쏠리기 마련이다. 책이 성공하면 벌어들인 수익은 출판사로 돌아간다. 그 사이에서 편집자들은 분명 ‘푸대접’을 받고 있다. 아무리 눈밝은 독자라도 편집자까지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좋은 책의 뒤에는 반드시 편집자가 있다. 다만 드러나지 않을뿐이다. 편집자들은 조용히 책 뒤에서 책의 성공에 감격하고, 책의 실패에 눈물흘린다.

18일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열린 출판기념회는 그런 점에서 무척이나 특별한 출판기념회였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의 새 책 <미래의 맑스주의>(그린비 펴냄)와, 인문학 연구자 고미숙씨의 책 <나비와 전사>(휴머니스트 펴냄) 출판기념회로, 두 사람이 함께 몸담고 있는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마련한 자리였다. 출판기념회라고 하면 으레 지은이가 평소 친한 이들에게 익숙한 감사말을 하며 식사를 대접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이날 출판기념회는 달랐다. 두 책을 편집한 편집자들인 김현경 그린비 편집주간과 선완규 휴머니스트 편집주간이 함께 주인공으로 참석했다. 지은이 두 사람이 “나는 이렇게 책을 썼다”고 설명하고, 편집자 두 사람이 “나는 이 책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설명하는 출판기념회였다. 책의 숨은 주인공 편집자가 전면에 나섰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출판기념회였다. 실제 이날 출판기념회의 진정한 주인공은 두 편집자였다. 그리고 편집자는 무엇으로 사는지, 그리고 어떤 존재들인지를 청중들에게 보여주었다.

첫 발표자는 <미래의 맑스주의>를 쓴 이진경 교수. 이 교수는 “사회주의 붕괴 이후의 마르크스주의와 혁명을 어떻게 다시 사유할 것인지, 그리고 마르크스의 기본 가정들이 될 공리들을 다시 살펴보고 마르크스주의의 경계를 넘어섬으로써 그 경계선을 확장시켜 보려했다”고 책의 집필 취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휴머니즘’에 대해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했다. “휴머니즘이란 것은 무서운 것, 끔찍한 것이다. 인간이 존엄한만큼 인간이 아닌 모든 것의 존엄함이 망각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에서도 나타나는 휴머니즘의 이런 지점들을 넘어보려 했다.”

이는 곧 새로운 세상의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재정의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미래사회 등장할 로봇이 인간이란 주인에게 지배받고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프롤레타리아트라고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인간을 위해 실험되고 희생되며 착취당하는 동식물들도 마찬가지로 넓은 의미, 새로운 의미의 프롤레타리아트란 것이다.

이 책을 편집한 김현경 주간은 “편집자가 만나는 책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는 것같다”는 말로 발표를 시작했다. 하나는 ‘편집자가 저자의 원고에 깊숙이 개입해 전체 구성부터 세세한 원고 배치와 부속물까지 함께 만들어 나가는 책’, 또다른 하나는 ‘구성과 내용에 깊이 관여하기보다는 그 원고의 내용을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정확하고 보기 쉽게 전달해줄까에 초점을 맞추는 책’이라는 것이다. 고미숙씨의 책 <나비와 전사>가 전자에 가깝다면, 자신이 편집한 이진경 교수의 <미래의 맑스주의>는 후자에 가까운 책으로 정의했다.

김 주간은 <미래의 맑스주의>가 쉽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스타일의 글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아라도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나게 하기 위해 여러가지 신경을 썼다고 밝혔다. 그가 밝힌 다음 네가지 편집적 연출은 10년 이상 편집에 종사한 베테랑이 책을 만드는 요령이란 점에서 후배 편집자들이 귀담아들을만한 ‘노하우’이기도 했다.

우선 원래 원고의 각주에는 인용주와 내용주의 두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내용주는 본문을 이해하는 데 필요했기 때문에 각주처리를 했고, 인용주는 시선을 분산시켜 읽어나가는 흐름을 방해할 우려가 있어 후주처리를 했다고 한다.

두번째로는 앞으로 이 책이 연구자들에게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보아 저자 원고에 따로 정리되어 있지 않던 참고문헌 목록을 인용주들과 본문에 언급된 책들 모두를 뽑아 정리해 뒤편에 실었다고 한다.

세번째로는 이 책이 저자의 사유를 집중해서 따라 읽어가는 것이 좋다고 보아 본문 안에 그림을 따로 배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림이 너무 없으면 독자들이 책에 담긴 강한 사유를 쉴틈없이 맞닥뜨려야하기 때문에 쉴 여유공간을 두려고 각 장의 시작 부분에 그림을 넣고 각장의 문제의식을 관통하는 문장을 지은이에게 부탁해 수록했다.

네번째는 정확한 정보전달을 위해 책 본문에서 인용하는 책들을 모두 구입 내지 입수해서 모든 인용구를 대조했다고 한다.

이날 이 네번째, 책 본문에 인용되는 모든 책을 실제 구입내지 입수해 대조했다는 대목은 청중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편집자가 얼마나 꼼꼼하고 수고스러운 일을 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작업이기 때문이다. 김 주간은 인용되는 책들 가운데에는 절판된 것들도 많아 온 출판사 직원들의 친구며 후배며 동생을 동원해 각 대학 도서관을 샅샅이 훑었다고 한다. 김 주간은 “책을 기획하는 것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지만, 교열과 교정은 고된 노동이자 글자 하나, 문구 하나하나와 대결하는 전쟁”이라고 비유하고, “좋은 원고를 만나면 고정교열이란 노동은 어느새 나 자신을 다른 것으로 변화시키는 마주침과 생기넘치는 활동이 된다”고 말했다. “더 많은 불온한 사유와 만나 그것을 독자들이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의 형태로 만들어내는 일, 그것이 바로 편집자로서의 제 꿈이고, 역할이고 행복입니다.”(당연히 터져나오는 청중들의 박수)

다음은 또다른 책 <나비와 전사>의 지은이 고미숙씨의 차례였다.

고씨는 책의 편집자 선완규 주간의 ‘지독함’을 ‘까발리는 것’으로 감사의 말을 대신했다. “선완규 주간은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가 안보낸 원고도 자기가 입수해서 밑그림을 그려서 보내줘요. 원고를 보내주고 나면, ‘이 부분은 에전 선생님이 쓴 다른 글과 비슷하다’며 일일이 다 지적해서 다시 연락이 와요. 그러니 이러이러한 내용을 덧붙여 달라, 여긴 이러면 좋겠다… 그런 주문이 이어지는거지. 그래서 원래 1500매였던 원고가 2000매로 늘어났어요.”

고씨로부터 ‘집요한 편집자’란 애정어린 힐난을 듣고 발표에 나선 선 주간의 설명은 고씨의 말이 오히려 선씨의 집요함을 덜 표현한 것임을 느끼게 만들 정도였다.

선 주간은 이 책 <나비와 전사>가 “5년을 기다린 끝에 나온 책”이라고 설명해다. 그리고 2001년 6월12일자로 작성한 애초 출판기획안을 직접 가져와 이번 기획안과 함께 보여주기도 했다. 선 주간이 이 책을 기획했던 것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열린 고씨의 강연을 들었던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당시 ‘한국의 근대성’이란 주제의 강연을 듣고 책으로 펴내면 좋겠다고 느낀 고씨가 강의안을 토대로 기획안을 작성해 고씨에게 보냈고, 책을 펴내기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후 고씨의 바쁜 일정 때문에 책 출판은 계속 늦춰졌다고 한다.

책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선 주간은 원래 강의때 고씨가 한 말들을 꼼꼼히 기록해두었던 것을 활용해 원고에 빠진 내용이 있으면 연락해서 집어넣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역시 이 대목에서 청중들 박수.

선 주간은 “책은 어느 한 사람의 땀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발표를 마쳤다.

지식인들이 책을 써 새로운 지식과 담론을 생산할 때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바로 편집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 때문에 두 편집자 모두 이날 행사에 자신을 초청한 연구공간 수유쪽에 무척이나 감사하다는 뜻을 밝혔다. 사실 이처럼 저자와 편집자가 함께 책을 설명하는 행사를 기획할 수 있었던 것은 연구공간 수유만의 성향탓일 것이다. ‘대학’으로 대표되는 기성 아카데미즘에 반기를 들고 도발적이고 새로운 사유의 모험을 떠난 젊은 연구자들의 코뮨이자, 가장 왕성하게 대중적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펴내는 저술가들이 대거 참여한 수유이기 때문에 가능한 기획이었다.

고병권 수유 대표는 “올해는 수유의 여러 회원들의 책이 그 어느 해보다도 많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 책들이 과연 어떤 편집자들과 만나 대중들의 곁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글·사진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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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6-04-21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속상한 건 저자들이 편집자의 고마움을 모를 때죠. 그저 자기만 잘 난 줄 아는 저자의 책 판권에 한마디 써 넣고 싶어질 때가 있었는데... "이 책 누구 덕에 나온 줄 아시나요?"

하늘바람 2006-04-21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장요 작가가 엉망으로 써 주어서 정말 힘든 원고도 많은데 ^^ 하지만 그래도 작가는 작가인듯해요
 

[편집자레터] 신(新) 출판인 [06/04/09]
제가 출판인들을 알게 된 지는 10년이 넘습니다. 90년대 초 문화부에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책 페이지 만드는 일을 거들기 시작했고, 이런저런 자리에서 출판계 인사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출판팀 소속은 아니었기 때문에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출판인들이 어떤 분위기인지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 60대 출판인들은 “책이 좋아서” 또는 “문화에 이바지하고 싶어서” 출판계에 뛰어든 경우가 많습니다. 50대 출판인들은 선배들보다 사업에 대한 관심이 좀 더 강하지만 그들 역시 책과 문화에 대한 집착은 못지 않은 것 같습니다. ‘좋은 책’을 만드는데 힘쓰고, 어쩌다 ‘베스트셀러’가 나오면 좋아서 어쩔 줄 모릅니다.

지난 1월 출판팀장을 맡고 나서 출판계 인사들을 이전보다 훨씬 많이 만나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것은 이제 시장과 경영 마인드로 무장한 새로운 출판인들이 많이 등장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급성장한 출판사들을 이끄는 ‘신(新) 출판인’들은 출판계에 새로운 조직과 경영 방법, 마케팅 기법을 도입했습니다. 이들에게 책은 이제 자동차나 휴대전화, 냉장고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상품입니다. 이들은 독자들의 요구를 정확히 읽고, 거기에 맞춰 책을 만들어 낸 후, 첨단 매체를 이용해서 다가갑니다. 이들의 일차적인 목표는 ‘좋은 책’보다는 ‘잘 팔리는 책’인 것 같습니다.

저는 어느 한 쪽이 옳고 다른 쪽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시장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상황에서 출판만 예외일 수 있겠습니까. 얼마 전 만난 한 중진 출판인은 “출판의 기본을 지키지 않는” 후배들을 개탄했지만, 그들이 출판시장의 규모를 크게 키우고 기업으로서 출판사를 강화한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한가지, 이들이 양적 성장을 질적 심화로 연결시키는 모습을 더 자주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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