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기획자는 ‘그림자’다. 저자와 책이 빛을 보게한 ‘산파’이지만 뒤를 살펴야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존재다. 지난 25일 저녁 3명의 출판기획자들이 서울 서교동 홍익대 앞의 한 음식점에 모였다. ‘우리시대’문고시리즈로 출판시장의 새 가능성을 연 김광식(43·책세상)주간, 소규모 출판의 실험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정은숙(39·마음산책)주간, ‘소설향’시리즈로 문학출판의 기반을 다져가는 김미숙(37·작가정신)주간 등 이른바 출판기획의 ‘뉴리더’로 불리는 면면들. 이들에게 ‘한국출판기획의 미래’를 주제로 좌담회를 갖겠다고 했는데, 첫 술잔이 돌자마자 “다 그만두고 ‘그림자들의 세상타령’으로 하자”고 우겼다. 좌담은 기획자의 꿈, 회한, 절규, 분노가 어우러진 ‘연극무대’가 돼버렸다.


난상토론에서 첫 ‘화살’을 맞은 사람은 김광식주간. 서로 휴가계획을 묻다가 김미숙 주간이 “직원들을 그렇게 혹독하게 훈련시킨다면서요”라고 쐈다. 의외로 김광식주간이 순순히 자백한다. “못견뎌서 많이 떠나는 걸 보면 그런 모양입니다. 신입사원 뽑을 때는 늘 ‘당신이 알코올중독자였으면 좋겠다’고 하죠. 허허.” “술과 편집자는 떼놓을 수 없는 관계냐”고 되물었더니 모두 “그럼요”하는데 술에 약한 김미숙주간만 “제 스타일 나름”이라며 샐쭉해졌다.


출판계로 화제를 돌리자 예상대로 독자와의 ‘거리조정’이 난제였다. 정은숙 주간은 “출판행위가 독자들을 향해 ‘반보’(半步)앞서면 성공이라고 본다. 기획자의 당기려는 의도와 독자의 나가려는 의욕이 딱 맞아떨어져야지, 완전히 한 발을 앞서면 낭패를 본다”고 균형감각을 꼽았다. 여기에 김광식주간은 “긴장감까지 넣어야 한다”고 가세했다. 출판기획자가 계몽주의자여선 안되며, “철저한 자기 반성이 있어야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독자와의 거리가 가늠된다”는 것. 성에 차지 않았던지 “나는 독자들과 싸움을 걸고 싶다”는 말로 의미를 더했다. 김주간은 내친김에 “메이저 출판사들이 겉으론 ‘독자들의 다양한 욕구에 부응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이것저것 모아 다원출판을 하고 있지만, 실제는 매출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있는 것일 뿐”이라고 성토한다.


올바른 의미의 출판 다양화는 기획자들의 활로를 찾는 토대다. 차별화된 소수 독자층을 겨냥한 특성화된 출판이 시장성을 가져야 출판인프라가 다져질 것이란 것. 김광식 주간은 “시장이 베스트셀러 중심으로 움직일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메이저들이 몸집을 불려가도 그들만으로 출판시장이 굴러가진 않는다”고 했다. 시장의 트렌드에서도 그런 가능성을 타진했다. “21세기 화두가 지식인과 대중의 화해, 종교의 화해, 환경과 문명의 화해라고 하는데 출판에도 그 부분이 중요한 시장이 될 것이고, 그것들은 종합출판사라고 해도 만만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것이 정주간의 전망. 김미숙 주간은 “도구는 컴퓨터이지만 최종 생산물은 아날로그 책”이라며 “브랜드 이미지를 차별화해 열성독자층을 확보한 작은 시장을 갖는 게 기획자들의 꿈”이라고 거들었다.


문학시장의 침체를 놓고선 치열한 설전이 벌어졌다. 김광식 주간이 뜸을 들이다 “더 이상 봐줄 수 없어요. 그나마 남아있는 독자층을 잡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도 한국문학에 뛰어들기로 했어요”라고 ‘선전포고’를 했다. “때묻지 않은 평론가 그룹이 원고를 검토해서 안될 것 같으면 인세만 주고 출판하지 않는 방식으로 작가들의 작품성 검증을 철저히 할 것”이라고 복안까지 꺼냈다. 이에 정주간은 “문학시장이 죽은 게 평론가들의 문제, 또 출판사가 책을 너무 쉽게 출판해서가 아니라 ‘문학과잉’에서 정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일 수도 있다”면서 “작은 독자일지언정 그들을 유지시킬 작품의 질이 관건”이라고 반박했다.


김미숙 주간도 “인맥으로 얽혀있는 평단과 작가들의 현실을 깰 수 있느냐”고 고개를 저었지만, 김주간은 “평단과 작가가 긴장관계를 형성해야 상생의 길이 있다”고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규모가 작은 한국 실정에서 밀리언셀러가 나오는 비정상적인 모습을 벗어나지 않는 한 희망이 없다”던 정주간이 “97년 외환위기때는 ‘이 시기만 지나면 100%가 괜찮겠지’했는데, 지금은 ‘10%만 살고 90%는 죽겠구나’ 싶다. 그래서 더 최악”이라는 말을 꺼내자 일순 침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도서정가제, 사재기, 온라인 서점, 그들 앞에 놓인 출판계 현안들이 도마에 올랐다가 차례로 호된 ‘매’를 맞았다.


타령이 3시간째에 접어들었다. 모두가 취기가 오른 표정, 이때다 싶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출판기획자는 누굽니까.” “이 기획자 시리즈 기사를 쭉 보니 모두가 성공신화에 매달려 있더군요. 출판기획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이 돈입니까.” 김광식주간의 비판에 울분이 섞였다. “기획자란 총체적인 문화비평가여야 합니다. 반성적 사회로 가는 길잡이가 돼야 해요. 그 잣대로 기획자를 봐야 합니다”는 그의 말에 정주간이 “기획자는 책을 통해 세상을 편집하고 자기세계를 실천합니다. 반짝하는 아이디어가 기획력이 아닌 것이죠”라고 비판을 이어갔다.


위기를 피하는 방법 중 하나는 ‘차수변경’. 한바탕 설전을 정리하고 술자리를 옮겼다. 이들간에 동지감이 형성돼가는 듯도 했다. 그게 흥미로워 “출판기획자가 정당하게 대우받고 먹고 살만하냐”고 찔러봤다. 김미숙 주간은 “편차가 심하다. 노동력에 비해 대가가 합당한가도 늘 고민거리”라고 했다. 김광식주간은 “연봉 1억원의 기획자가 나올때쯤 한국출판에서 기획자시대가 열렸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불쑥 “그렇다면 출판기획자들의 ‘적’은 무엇이냐”고 던져봤다.


“내부적으론 기획자들의 맨파워가 약하다는게 문제겠죠.”(김광식), “출판관행과 몰이해 같아요.”(정은숙) 등이 나오다, 김미숙 주간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술이 더 돌고나서야 그는 “사실 편집자들의 대우, 기획방향의 문제로 곧 그만두게 될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기획자들의 ‘적’중에 오너도 포함될 수 있음이다. 김주간은 “어쩌면 이게 독립의 길이고, 그림자들의 꿈을 빨리 실현하는 길일 수도 있다. 오히려 축하하자”며 분위기를 추슬렀다. 그들의 어깨를 내리누르는 현실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그들은 다시 어두운 거리로 몰려나갔다.
/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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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2-16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은 괘 오래된 글이지만 제게는 나름대로 도움이 되어서 스크랩해왔습니다. 따라서 요즘의 일이 아니니 감안하여 봐 주셔요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125억달러. 갈수록 커지는 브랜드의 힘이 출판 분야라고 예외는 아니다. 특히 각자의 분야에서 제 영역을 구축한 저술가는 그 이름만으로 독자의 지갑을 여는 1인 브랜드라 할만하다. 스타 저자 중심으로 움직이는 해외 시장과 달리 국내 서점가에는 독자에게 신뢰받는 저자가 많지 않다. 하지만 불황의 출판계에서 스타급 저자의 가치는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국민일보 출판팀은 저자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뜻에서 현장에서 국내외 저술가의 브랜드 가치를 묻는 설문조사를 마련했다.

 

출판인들이 뽑은 국내 최고의 저술가는 소설가 김훈인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일보 출판팀이 단행본 출판사 대표와 주간,출판 평론가 등 현장 출판인 41명을 대상으로 ‘국내 저술가 브랜드 가치 설문조사’를 한 결과,‘장르를 불문하고 현재 출판시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내 저술가’를 묻는 질문에 189점을 받은 ‘칼의 노래’의 소설가 김훈이 1위로 꼽혔다. 2위는 이윤기(168점),3위는 법정(117점),4위는 황석영(116점),5위는 정민(107점)으로 나타났다. 평가는 1위 답변에 10점을,10위에 1점을 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들 저술가의 책을 출판사에서 낼 경우 예상 초판 부수에 대해서는 김훈이 2만5000부,법정 1만7000부,이윤기·황석영 1만6000부,정민 1만4000부로 답했다. 부수는 설문자가 답한 예상 초판 부수에 대한 평균값을 따졌다. 분야별로 브랜드 가치를 구축한 국내 저자를 묻는 질문에는 △문학 김훈(52·이하 괄호 안은 점수) △인문 이윤기(80) △예술 이주헌(58) △정치사회 홍세화(63) △과학 정재승(87) △경제경영 공병호(100) △실용 이보영(49) △어린이 권정생(42) △비소설 법정(68) 등이 1위로 꼽혔다.

 

분야별로 2∼5위 저자는 △문학 황석영(42) 이문열(41) 박완서(28) 조정래(17) △인문 정민(61) 진중권(19) 유홍준(18) 김용옥(14) △예술 유홍준(39) 진중권(37) 오주석(23) 한젬마(14) △정치사회 강준만(47) 박노자(37) 진중권(17) 유시민(9) △과학 최재천(82) 이은희(14) 이인식(9) 홍성욱(7) △경제경영 구본형(45) 장하준(8) 삼성경제연구소(6) 유시민(5) △실용 한비야(34) 이익훈(27) 김대균(22) 문단열(20) △어린이 이원복(34) 황선미(30) 윤구병(14) 정채봉(6) △비소설 류시화(58) 한비야(14) 이해인·이외수(11) 이윤기(10) 등이다.

 

이중 진중권은 인문과 예술·정치사회 세 분야에,유홍준은 인문·예술 두 부문에, 한비야는 실용·비소설에서 순위에 올라 전방위 예술가로 각광받았다. 점수는 1∼5위를 꼽은 뒤 1위에 5점,5위에 5점을 주는 방식으로 계산했다. 여건이 된다면 스카우트 하고 싶은 저자로는 정민,김훈,이윤기,이원복,황석영의 순으로 답변해 브랜드 가치와 다소 다르게 나타났다.

 

국내에 소개된 외국 저술가로는 단연 ‘개미’의 베르나르 베르베르(예상 초판부수 3만부)가 가장 영향력 있는 필자로 꼽혔다. 이어 2위 ‘연금술사’의 파울로 코엘료(2만7000부),3위 ‘해변의 카프카’의 무라카미 하루키(1만6000부),4위 ‘넥스트 소사이어티’의 피터 드러커(1만3000부)·‘장미의 이름’의 움베르토 에코(1만부),5위 ‘선물’의 스펜서 존슨(19000부) 순이었다. 이어 6위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의 켄 블랜차드,7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스티븐 코비,8위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9위 ‘다빈치 코드’의 댄 브라운,10위 ‘키친’의 요시모토 바나나 등이 10위권 안에 올랐다. 국내 저자에 비해 초판 부수를 높게 잡은 것이 눈에 띈다.

 

국내 저술가에게 부족한 자질로는 단연 ‘대중적 글쓰기 능력’을 꼽았다. 이어 ‘시의성 있는 기획 능력’ ‘저술 내용의 참신성’ ‘전문 지식’ ‘홍보 마케팅에 대한 이해와 협조’ 등으로 답변했는데 이는 출판사들이 저자에게 가장 아쉬워하는 게 독자의 눈높이에 맞는 기획과 저술 능력이라는 뜻이다. 저자의 브랜드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를 묻는 질문에는 ‘트렌드를 읽고 저술을 기획해내는 작가의 능력’ ‘독자의 구미에 맞는 대중적 글쓰기 능력’ ‘특정 분야에 대한 깊이있는 지식과 학계에서의 권위’ ‘저자의 지명도와 개인적 인기’ ‘출판사의 기획과 마케팅’ 등의 순서로 답변했다.

[국민일보 이영미 기자 200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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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Die Froliche Wissenschaft

도서관의 천사를 아는가?

 

우리가 어떤 것을 알고자 할 때, 또는 심지어 우리 자신이 무엇을 찾기를 원하는지조차 의식하고 있지 않을 때...도서관의 천사는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준다. 우연히 뽑아든 책을 무심코 펼쳤을 때, 그곳에 바로 우리가 원하는 내용이 쓰여 있다면, 우리는 도서관의 천사를 만난 것이다. 도서관의 천사는 좀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가 책장을 뒤지고 있을 때, 그리고 마침내는 원하던 내용이 어디에 있는지 떠올려내는 일에 실패하고 단념하는 순간, 책장에 쌓아둔 책이 휘청거리며 떨어져서 펼쳐지며 우리가 원하던 바로 그 내용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면 이 또한 도서관의 천사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The Library Angel
by Geoff Olson

 

A short time ago, I was searching for material for a column. I recalled some useful information buried somewhere in my midden of magazines at home -- but where? After some time digging through one stack and then another, I gave up. 'I'll never find it this way', I thought in exasperation, cramming a pile back onto my shelves. A magazine fell from a shelf above, and there was the article I was looking for, open at my feet...

 

얼마 전, 나는 컬럼을 쓰기 위한 글감을 찾고 있었다. 나는 집에 있는 내 잡지들 가운데 어디엔가 있을 몇몇 유용한 정보들을 기억해냈다. --그러나 어디에? 이 책더미, 저 책더미들을 좀 찾아본 후 나는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다시는 그것을 찾지 않겠다'고 나는 화가 나서 책들을 책장에 다시 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바로 그때) 한 잡지가 책장 위에서 떨어졌고 그곳에 내가 찾던 기사가 있었다. 바로 내 발에 펼쳐진 채로...

 

It's not the first time I've experienced this kind of thing, and I'm not the only one. In the introduction to one of his works, the British author Colin Wilson observed: "On one occasion, when I was searching for a piece of information, a book actually fell off the shelf and fell open at the right page..."

 

이런 일을 경험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리고 나 혼자만의 경험도 아니다. 영국 작가 콜린 윌슨이 그의 작품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우연히, 내가 한 정보를 찾고 있을 때 한 책이 실제로 책장에서 떨어져 (내가 찾던) 정확한 페이지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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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6-02-15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부르신줄 알고 달려왔는뎅~~~~

모1 2006-02-15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저런 경험이 없는데.....대단한 우연.

하늘바람 2006-02-15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세실님 부른 거 맞아요. 모1님^^. 참 그런데 사진이 없어져 버렸네요
 

[책·사람·세상]정은령/'活版'고수 老인쇄공
[동아일보 2000-06-0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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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각지 로터리 봉덕인쇄소 조익제사장(64)과 만리동 고개 성실인쇄소 윤춘기사장(61). 견습공으로 시작해 한평생 인쇄 외길을 걸은 두 선후배는 요즘 심각하게 '회사 합병'을 논의 중이다. 그들의 합병은 '활판인쇄'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다.

'활판(活版)인쇄'. 납활자를 짜서 판을 만들고 거기에 잉크를 묻혀 인쇄를 하는 방식. 9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인쇄소마다 활판인쇄기 돌아가는소리가 요란했지만 전자출판과 오프셋인쇄가 도입되면서 납활자도 활판도 급격히 사라져갔다. 제작비용이나 생산력에서 오프셋과 경쟁상대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신문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손이 보이지 않을만큼 빠른 속도로 깨알같은 활자뭉치에서 필요한 활자를 집어내던 문선공들의 신기(神技)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게 불과 10년 안쪽의 일이다.

활자를 짜서 판을 만드는 조판소는 2년여전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회사가 문을 닫아 이제 신간은 활판으로 찍고 싶어도 찍을 수 없다. 그나마 옛날에 활판으로 만들어진 책의 재판(再版)을 찍어줄 수 있는 인쇄소도 봉덕, 성실 두 곳이다. 이제 남은 활판인쇄기계는 두 인쇄소에 남은 3대.

그나마도 주문물량이 줄어 합병하면 1대만 남기고 2대는 또 부숴 고물로넘길 수 밖에 없다.

두 원로인쇄인이 선뜻 활판인쇄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마지막"이라는 절박함 때문이다.

"못나서 지금껏 붙들고 있었겠지요. 그래도 우리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차마 기계를 부술 용기가 안 납니다."

경력 10년 이상의 출판인이라면 누구나 활판인쇄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있다. 필름 위에 잉크가 스치고 지나가 매끈하기만한 오프셋인쇄와는 달리 활판인쇄 책에는 활자에 잉크가 묻어 꾹 찍힐 때의 압력이 그대로 요철로 남는다. 그래서 고참 편집자들은 "활판인쇄 책을 만들 때는 문자의 몸을 만지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오프셋은 기계 몫이지만 활판은 사람몫"이라고도 한다. 활자마다 제대로 잉크가 묻어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시험판을 내고 글자마다 일일이 손으로 농도를 조절하는 공정을 통해 인쇄가 마무리 되기 때문이다.

이런 '손 맛'의 매력 때문에 도올 김용옥처럼 "내 책만큼은 꼭 활판인쇄로 찍고 싶다"는 열렬한 찬미자도 있다. 도올 김용옥은 '여자란 무엇인가'(통나무) 등 자신의 책 판권란을 통해 '활판으로 인쇄된 책을 귀하게 여깁시다'라는 캠페인까지 벌였을 정도다. 이밖에도 문학과지성사, 기독교문사, 삼중당, 탐구당, 을유문고 등이 지금껏 활판인쇄 책을 찍는 출판사들. 그러나 이 소수의 '경배자들'만으로는 더 이상 공장을 돌리기 어려운 실정이다.

"명색 한국이 금속활자의 종주국인데 활판인쇄가 이대로 사라지는데 대해서는 누구 하나 대책을 내놓는 사람이 없습니다. 변하는 세월이야 거스를 수 없지만 조판소, 인쇄소 한 개씩이라도 남겨 활판인쇄가 무엇인지라도 후세에 알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두 노(老) 인쇄공을 만나고 온 밤, 새삼 이제는 누렇게 변색된 활판인쇄의 책들을 꺼내 보았다. 종이 위에 울룩불룩 찍힌 글자들, 그 '문자의 몸'을 만져보았다. 그러다 시 한 구절에 마음이 걸려 그만 책장을 덮고 말았다.

'…이제 나는 산동네의 인정에 곱게 물든 한 그루 대추나무 밤마다 서로의 허물을 해진 사랑을 꿰맨다 …가끔…전기가…나가도…좋았다…우리는…'

(박라연의 시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중)

정은령<문화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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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6-02-15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 생각 나게 하는 글이군요. 조판소 쫓아다니며 교정보던 생각, 그 빨간색의 부호들에 의해서 자빠진 글자 바로 세우고 엎어진 놈 일으켜 세우고 뒤집혀진 글자 찾아내고 ......
그리고 그 분들하고 가끔 대포잔을 나누면 인체에 흡수된 납성분을 배설시킨다며 먹던 돼지 비개들 생각도 나고.
이 분들이 아직도 활판을 하실지 의문이군요. (그런데 저 광고, 마음에 안드네요.)
퍼 가서 광고 없에야겠어요.

하늘바람 2006-02-15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수작업 편집을 해봐서 그 느낌을 아주 조금만 알아요. 광고는 지우고 픈데 지울 줄을 몰라서 죄송해요. 수암님 건강한 하루 되셔요

2006-02-15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출처 : 도쟁이 http://203.241.185.12/

세계에서 가장 큰책   
세계에서 가장 큰 책 '부탄'  

  
 최근 미국에서 발간된 ‘부탄’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말하자면 디지털 기술의 ‘총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말라야 마지막 왕국의 사진오디세이’라는 부제의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큰 책’으로 최근 기네스북에 등재됐습니다. 마이클 홀리 미 MIT대학 교수가 만들었는데, 가로 1.5m 세로 2.1m 크기에 무게가 60㎏이나 나갑니다. 책 한권 제작하는 데 들어가는 종이만도 축구장을 뒤덮을 정도며, 사용된 잉크의 양은 2갤런(약 8ℓ)에 달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중 하나인 부탄의 모습을 세계에서 가장 큰 책에 담았다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MIT 학생들과 4차례에 걸친 현지탐사 끝에 완성한 이 책에는 ‘지구상의 마지막 상그리라’로 불리는 부탄의 숨막히는 풍경사진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 책에 비하면, 올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선보인 알리의 자서전 ‘GOAT’(50×50㎝)나, 최근 교보문고에 전시됐던 이탈리아 책 ‘모던아트:혁명과 회화’(100×70㎝)는 왜소할 뿐입니다.

‘세계 최대의 책’을 만드는 과정이 순탄했을 리 없지요. 수많은 전문가들이 제작에 동원됐습니다. 우선 홀리 자신이 창의력 풍부한 컴퓨터 과학자입니다. 그는 MIT의 미디어랩 교수로 있으면서 ‘생각하는 사물’ 같은 연구 프로그램을 주도했던 인물이지요.

대형사진을 신속·선명하게 인쇄하기 위해서는 2기가바이트 수준의 압축 이미지파일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컴퓨터 기술이 가진 한계를 시험하는 것이었지요. 특히 어려웠던 것은 제본. 책장이 잘 넘어가면서도 쉽게 떨어져나가지 않도록 ‘아코디언’ 스타일의 제본방식을 적용했다고 하네요. 휴렛팩커드,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코닥, 페덱스, 아마존, 아도베, 델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첨단기술과 장비를 지원하지 않았다면 이루기 어려운 과제였을 것입니다. 책값은 1만달러(1200만원). 비용을 뺀 수익은 ‘우정의 행성’ 재단에 기탁되어 부탄 돕기에 쓰인다고 합니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세종서적)을 보면, 지금까지 가장 큰 책은 19세기 제임스 오듀본이 쓴 ‘아메리카의 조류’로, 크기가 가로 세로 75×105㎝입니다. 오듀본은 이 책 때문에 가난에 찌들고 정신이상까지 일으켜 혼자 외롭게 죽어갔다는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책 ‘부탄’을 보며, 디지털 기술이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의 신기원을 이룩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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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부탄' Bhutan
부제 : 히말라야 마지막 왕국의 사진오디세이 A Visual Odyssey Across the Kingdom
저자 : 마이클 홀리 Michael Hawley (미 MIT대학 교수)
형태사항 : 가로 1.5m 세로 2.1m,  무게 60㎏, ‘아코디언’ 스타일의 제본방식(책장
         이 잘 넘어가면서도 쉽게 떨어져나가지 않도록)
제작규모 : 종이 - 축구장을 뒤덮는 양
          잉크 - 2갤런(약 8ℓ)
내용주기 :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중 하나인 부탄의 모습을 세계에서 가장 큰 책
          에 담음았다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MIT 학생들과 4차례에 걸친 현지탐사
          끝에 완성한 이 책에는 ‘지구상의 마지막 상그리라’로 불리는 부탄의 숨
          막히는 풍경사진들이 들어 있다.
부가 정보 : 수많은 전문가들이 제작에 동원됐습니다. 우선 홀리 자신이 창의력 풍부
           한 컴퓨터 과학자입니다. 그는 MIT의 미디어랩 교수로 있으면서 ‘생각하
           는 사물’ 같은 연구 프로그램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대형사진을 신속·선명하게 인쇄하기 위해서는 2기가바이트 수준의 압축
           이미지파일이 필요했다고 함. 컴퓨터 기술이 가진 한계를 시험하는 계기.
           휴렛팩커드,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코닥, 페덱스, 아마존, 아도베, 델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첨단기술과 장비를 지원
           'HP 디지인젯 5500'을 통해 출력, 500부 한정판으로 출판됐다.
             - HP의 대형 프린터 홍보를 위해 제작됐다(???)
가격 : 1만달러(1200만원).
   ※ 비용을 뺀 수익은 ‘우정의 행성’ 재단에 기탁되어 부탄 돕기에 쓰인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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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작은 책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가장 작은 책은 1996년 러시아에서 펴낸 안톤 체홉의 ‘카멜레온’으로 가로 0.9㎜, 세로 0.9㎜ 크기다. 30쪽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쪽마다 3개의 컬러 삽화와 본문 11줄이 들어가 있으며 모두 ‘100권’을 냈다.


그외 참고
스코틀랜드 자장가를 담은 가로,세로 1㎜의 ‘올드 킹 코울(OLD KING COLE)’. 5년여의 테스트 끝에 1985년 3월 스코틀랜드의 ‘더 글레니퍼 프레스(The Gleniffer Press)’에서 85부 한정판으로 제작했다. 한국에 온 책은 그중 83번으로 12쪽에 걸쳐 70개의 단어가 수록됐다.
바늘로만 페이지를 넘길수 있다고 한다.

이 자장가의 기원 중 한 설에 따르면 콜(Cole, 본래는 Coel)은 영국 콜체스터(Colchester)의 왕이었다. 그는 자신의 딸인 헬레나를 로마의 장군에게 시집보냈는데, 후에 헬레나는 콘스탄틴 황제를 낳았고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공로로 성자추대를 받았다. 콜의 유쾌함 덕분에 그의 나라에 평화를 가져온 딸의 결혼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옆의 사진은 현미경으로 몇십배 확대된 책의 모습이다.


 

출처 : 안성두-도쟁이 & 슬미 홈 http://203.241.18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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