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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관심도서는 빅토리아 알렉산더의 <예술사회학>(살림, 2010)이다. '예술사회학'이란 타이틀 자체가 오랜만이어서 반가운데, 개인적으론 아르놀트 하우저, 자네트 월프, 피에르 부르디외 등이 이 분야의 관심저자였다. 각각의 대표작으로 <문학과 예술사의 사회사>, <예술의 사회적 생산>, <예술의 규칙> 등이 우리에게 소개된 바 있다. 알렉산더의 원저는 2003년에 출간됐는데, 2000년대에 나온 책은 뭔가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담고 있는지 궁금하다. 따로 '예술사회학'이란 타이틀의 책은 드물기에 최근에 나온 예술분야 신간을 묶어서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예술사회학- 순수예술에서 대중예술까지
빅토리아 D. 알렉산더 지음, 최샛별.한준.김은하 옮김 / 살림 / 2010년 7월
30,000원 → 27,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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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란 무엇인가- 문화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천재 예술가들
베레나 크리거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휴머니스트 / 2010년 7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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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베를린, 젊은 예술가들의 천국- 베를린의 미술과 미술 환경에 관한 에세이
조이한 글.사진 / 현암사 / 2010년 6월
16,800원 → 15,120원(10%할인) / 마일리지 84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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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민혜련의 파리 예술 기행 : 미술 건축- 아는 만큼 깊이 사랑하게 되는 곳, 파리
민혜련 지음, 손초원 사진 / 21세기북스 / 2010년 6월
16,500원 → 14,850원(10%할인) / 마일리지 82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5월 28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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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0-07-13 23:13   좋아요 0 | URL
자네트 월프와 하우저의 책만 봤네요..자네트 월프의 책은 <철학과 예술사회학>만 읽어봤습니다..부르디외의 위의 책은 못봤네요. 아래 올리신 다섯권책들중 갖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군요..예술사회학은 아니지만 유리 로트만의 저서와 월프의 책들을 읽어본 경험상 좀 지루한 분야의 책들인거 같습니다. 별로 땡기지 않는다는..ㅎㅎ 하우저의 책은 볼만 했습니다만..^^

로쟈 2010-07-14 08:01   좋아요 0 | URL
다섯 권은 모두 신간이고 저도 아직 갖고 있지 않습니다. 로트만은 예술사회학과는 좀 거리가 있는데, 넓게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월프의 책은 저도 재미없었지만, '예술사회학'이란 분야를 개척한 공로가 있습니다. 이번에 나온 책은 그 이후의 진척을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편의점에서 한국일보를 사들고 동네 분식점에 가 콩국수를 먹으며 읽었다. 가장 읽을 만했던 건 '삶과 문화' 꼭지에 쓴 신형철 평론가의 칼럼이다(이번에 새 필진으로 가세한 듯하다). 제목부터 '아, 즐거운 체호프!'이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일보(10. 07. 13) 아, 즐거운 체호프! 

예컨대 이런 글은 얼마나 진부한가.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 나오는 리틀 피플의 차이를 살펴보면 전자는 외적 억압의 상징이고 후자는 내적 병리의 반영이다,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는 외부의 억압이 아니라 내면의 공허 때문에 생기는 것일 수 있다, 무라카미가 60년 만에 오웰을 다시 쓴 것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은 1984년 이전으로 후퇴했다, <1Q84>가 독서계를 휩쓸고 있지만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불행하게도 <1984>일지 모른다….

이런 내용의 글을 쓸 뻔 했다. 이미 너무 많은데 또 보탤 필요가 있을까 싶어 접었다. 진부한 세상이 진부한 칼럼을 양산한다. 칼럼니스트의 잘못이 아닐 것이다. 도대체 다른 시각이 필요 없을 정도로 단순하게 엉망인 현실 때문이다.

적어도 이 지면에서만은 즐거운 얘기를 하고 싶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시길. 분노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체념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제는 일일이 분노하기조차 지쳐버려서, 그저 이 나라는 안 된다고 체념하면 속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체념하면 지는 것이다. 힘 있는 어떤 분들이 세계를 거꾸로 되돌리기 위해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으니 우리도 각자 분야에서 그만큼 열심히 해야 할 텐데, 그 과정에서 체념하지 않으려면 즐거워야 한다. 그분들이 잠 안자고 시뻘건 눈으로 열심히 할 때 우리는 충분히 자고 낄낄대면서 해야 한다. 그런 태도를 배워보기로 하자. 레이먼드 카버의 <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소설이 있다. 우리가 살면서 30분 정도 시간을 내서 체호프의 산문을 읽는 일은 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일이다. 

"인생은 지독하게 재미없는 농담과 같지만 그런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랍니다… 만약 여러분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성냥에 불이 붙었다면, 호주머니 속에 화약창고가 들어있지 않았음을 기뻐하고 하늘에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의 별장으로 가난뱅이 친척들이 들이닥치거든 새하얗게 질리지 말고 환호작약하십시오. 경찰이 아니어서 얼마나 행복한가! 손가락이 가시에 찔렸을 때에도 기뻐하십시오. 눈을 찌르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아내나 처제가 피아노를 두드려대기 시작하거든 발끈하지 마시고 뛸 듯이 기뻐하십시오. 당신은 들개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있거나 고양이들의 연주회에 참석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연주를 듣고 있으니 말입니다. 만약 아내가 여러분을 배신한다면 아내가 배신한 것이 조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뻐하십시오."- <인생은 아름다운 것>에서.

아, 즐거운 체호프! 비슷한 맥락에서, 움베르토 에코는 세상의 바보들에게는 웃으면서 화를 낼 줄 알아야 한다고 했고 무라카미 류는 적들에게 복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니 체호프를 따라 이렇게 말하자. 국가적인 비극의 조사결과를 오류와 실수투성이로 발표해 망신을 당하고 세계가 조롱하는 국책사업을 개발독재 시대의 마인드로 밀어붙이는 한편, 민간인을 불법 사찰해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고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특정인의 TV 출연을 막기 위해 제작진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등, 대한민국을 30년 전으로 되돌린 이 황당하고 창피한 정부 밑에서 보내야 할 시간이 2년 넘게 남았다는 사실에 머리를 쥐어뜯지 말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십시오. 20년이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가! (신형철 문학평론가)  

10. 07. 13. 

P.S. 나도 며칠 후에는 칼럼을 써야 하기에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웠는데, 덕분에 좀 '가벼운' 기분으로 써보기로 했다. 매번 머리를 쥐어뜯게 되지만, 그래도 4주에 한번씩일 뿐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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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통령은 정말 잘 뽑고 볼 일이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7-17 10:02 
    경향신문에서 '목수정의 파리통신'을 옮겨놓는다(지난번 신형철 칼럼과 짝을 이룰 만하다). "대통령은 정말 잘 뽑고 볼 일이다"가 제목이어서, '좀 센데!'하며 클릭했는데, MB 얘기가 아니라 사르코지 얘기였다. 하지만 결국 MB 얘기. 위안거리는 그렇게 잘났다는 프랑스인들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 베를루스코니를 총리로 둔 이탈리아 국민들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이번 월드컵에서 나란히 죽을 쒔다는 점도 공통적
  2. 인생의 아름다움과 비극적 유머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6-11 01:48 
    오늘자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읽기'를 옮겨놓는다. 체호프의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에 대한 '해럴드 블룸의 읽기'를 바탕으로 적은 글이다.번역본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열린책들),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귀부인>(고려대출판부), <사랑에 관하여>(펭귄클래식코리아)에 실린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참조했다.참고로 국내에 소개된 체호프 단편집은 이 작품을 포함하고 있는 것과 그렇
 
 
델러웨이부인 2010-07-13 14:30   좋아요 0 | URL
즐거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로쟈 2010-07-13 19:12   좋아요 0 | URL
저는 전달자일 뿐인데요...

미지 2010-07-13 16:42   좋아요 0 | URL
저도 감사드립니다 ~

로쟈 2010-07-13 19:12   좋아요 0 | URL
제가 대신 감사를 받는 건가요?^^

비로그인 2010-07-13 19:01   좋아요 0 | URL
배신할 아내가 없어서 안타깝네요 ㅋㅋ
매번 머리를 쥐어뜯게 되지만?
이건 상상이 잘 안 되네요.
이렇게 얘기하면 화내실지 모르겠지만 늘 술술 힘들이지 않고 쓰시는 것 같아서요^^

로쟈 2010-07-13 19:08   좋아요 0 | URL
나름대로 쥐어뜯습니다.^^;

paul 2010-07-13 19:10   좋아요 0 | URL
이제는 정부에 대한 비판이 일상적 대화의 주제가 된 듯하군요. 정말로 30년 전으로 되돌려진 시간이라면 오히려 지금의 대응방식이 옳은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행동이 결여된 '비판의 말들'이 유희되고 소비될 수도 있다는 우려입니다. 왜 대부분의 조소섞인 비판들이 2년이라는 유예를 굳이 들먹이며 고통의 시간을 합리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에 골몰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2년 뒤에 어떤 세상이 도래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인데, 단지 시간의 (길고) 짧음이라는 추상적 안위에 안도하라는 충고가 지나치게 허무하게 들리는 것은 왜일까요. 더 가볍게 읽는다면야 물론 문제 될 것은 없겠죠. 웃으면서 화내는 것은 더 어렵지만, 아직 우리들은 정당하게 화내는 법조차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로쟈 2010-07-13 19:12   좋아요 0 | URL
"체념하지 않으려면 즐거워야 한다"는 게 한 가지이고, 분노도 축적하려면 즐거움의 외양을 필요로 한다는 게 다른 한 가지입니다. 사실 정색하고 비판하기엔 너무 엉터리 같기도 하구요(천안함 조사결과도 그렇지만). 안에서부터 바가지가 새기도 하고...

루딘 2010-07-14 08:27   좋아요 0 | URL
아내는 배신을 안하는데 조국이 배신을 행하는 파렴치한 현실은 어찌하나요? 조국이라는 개념보다는 정부의 개념이겠지만... 항상 로쟈의 글에 감사를 드리며.

로쟈 2010-07-14 15:42   좋아요 0 | URL
네, 조국은 좀 다르죠. 모국이라고 해도 되겠구요.^^;
 

내일자 한국일보에 실리는 좌담기사를 옮겨놓는다. 마이클 센댈의 화제작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2010)가 지금 한국사회에서 왜 읽히나를 화두로 삼아 장동진 연세대 정외과 교수와 대담을 나누었다. 오늘 오전의 일인데(연장전까지 간 월드컵 결승전 여파로 하루 종일 피곤하다), 대담이라곤 하지만 기자의 질문에 응답한 내용이 대담기사로 재구성됐다. 듣자 하니 초판 5만부를 찍은 책은 현재 11만부 가량이 판매됐고, 이런 추세라면 30-40만부는 무난하리라는 전망이었다. 현 시점에선 '문화적 사건'과 '사회적 현상'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일보(10. 07. 13) "한국, 형식적 민주화 이후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마이클 샌델(57)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발행)가 오프라인서점 교보문고와 온라인서점 예스24, 알라딘 등의 7월 첫주 종합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모두 1위에 올라 화제를 뿌리고 있다. 교보문고의 경우 인문서가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은 2002년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1> 이후 8년, 철학서로는 2000년 <노자와 21세기2> 이후 10년 만의 일이다. 출판계는 '문화적 사건'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출판사 측은 "독자층의 70%가량이 20~30대이며, 여성 독자들도 40%대로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젊은이들은 왜 '정의'를 묻고 있는가. 정의론 분야 전문가인 장동진(57)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로쟈'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진 인터넷 서평가 이현우(42ㆍ서울대 노어노문학과 강사)씨의 대담을 마련했다. 



▦이현우= 저도 이 책이 나오자마자 구입해서 블로그에 소개했습니다. 이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고 바랬는데, 제가 걱정할 게 전혀 아니었어요.(웃음)

그동안 공동체주의 정치철학자들의 책이 국내에 소개됐고 이론가들이 여러 번 방한하기도 했고 강연집도 나와 있어요. 근데 이런 책들은 다 관심을 받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이 열풍이 마이클 샌델이란 저자나 정치철학 자체에 대한 관심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거죠. 그럼 뭐냐. 우선 타이틀이 주는 효과인데, 천안함 사건, 4대강 논란, 지방선거 국면에서 현 정부의 실정이 도마에 오르면서 <정의란 무엇인가>란 제목의 문제 제기가 시의적절했어요. 2008년 촛불 정국 때도 <죽음의 밥상>이란 책이 1만부 정도 나갔다고 합니다. 이 책도 수만 부 정도는 나가겠구나 예상은 했는데, 그것을 뛰어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러면 뭘까. 진지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무엇보다 잘 읽힌다는 점입니다. 하버드 효과 얘기들을 하지만, 하버드 최고 인기 강의라 해도 읽기 어려우면 이런 반응이 나오지 않겠죠. 책에서 다루고 있는 벤담이니 칸트, 롤스는 사실 쉽게 접하기도 어렵거니와 이해하기도 어려운데, 그런 철학자들 얘기를 하는데도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거죠.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하고. 독자들 스스로도 놀라워하는 거 같아요. 폼으로 읽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인문서로 크게 화제가 된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도 많이 팔렸지만 실제로 다 읽은 독자는 많은 거 같지 않아요. 근데 이 책은 독자들이 별점을 네댓 개 주면서 정말 좋은 책이라고 서평을 남겨요. 그만큼 읽고 공감했다는 뜻이죠.

▦장동진= 또 다른 원인으로는 지금의 우리 정치 현실을 들 수 있을 겁니다. 현 정당정치에 국민들이 많은 회의를 느끼고 '이들이 과연 우리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가', '파당적 이익을 대변하는데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정의'란 말이 우리사회의 어떤 결핍과 갈증을 채우는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떤 근본 원칙 하에서 움직이고 작동해야 하는가, 서양에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그런 관심을 촉발시킨 것이죠.

특히 청년실업으로 고통받고 있는 20대가 이 책에 주목한 것을 보면 이들이 우리 사회의 비전에 대해서 뭔가 암울하다, 부당하다고 무의식적으로 인식해왔던 것 같아요. 그동안 우리사회가 민주화운동으로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착됐지만, 20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공평한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는 거죠. 한편으로 그들이 이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런 상황에 처해있기도 하고요. 공평한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불만과 이런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얽혀서 정의에 대한 관심으로 표출된 게 아닌가 싶어요.

▦이= 현 정부가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 세워진 정통성과 합법성을 가진 정부인데도, 촛불 때도 그랬지만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게 어쩌면 모순적인데요. 문제는 우리사회의 제도적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가 수십년 간의 노력을 통해 성취된 것이긴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라는 문제의식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내실이 필요하다는 거죠. 민주주의는 분명히 하고 있는데, 그 결과가 부패나 빈부격차의 확대 등으로 나오니까요. 그 때문에 이 책이 던지는 정의라는 기표가 화두처럼 젊은이들에게 와 닿았다고 봅니다.

▦장=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정의 담론 자체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사실 과거에는 정의라는 게 독재정권 타도하고 민주주의 확립하는 거였죠. 그게 명백했기 때문에 따로 정의라는 담론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문제가 사회 곳곳에서 대두되면서 학자들 간에 이론적인 면에서 논의가 오갔습니다.

이 책을 계기로 정의 담론이 일반 담론으로 확대된다면 우리사회의 근본적인 원칙에 대해 새롭게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의는 공동체의 근본적인 운영 원칙입니다. 자유주의적 이념, 시장적 원리, 민주주의 원리 등의 큰 근간이 어떻게 조합돼야 하느냐는 점인데, 이 원리가 구체화되면 헌법이 되고 더욱 세분화하면 법과 정책이 되겠죠. 이 근본 원칙이 잘못되면 어떤 사람은 유리하고 어떤 사람은 불리하게 되는, 사회구조적 불평등을 양산하게 되는 겁니다. 정의 담론의 확산으로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새삼 인식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를 논의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샌델이 책 결론부에서 강조하는 공동체주의나 공동선의 정치가 한국적 정서와 맞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1970~80년대에 자유주의가 주입됐지만, 우리에게는 아직도 가족애나 애국심 등이 더 친숙한 가치이죠. 그런 점도 이 책을 쉽게 받아들이게 하는 요인인 것 같아요.

▦장= 이 책이 개인의 자유나 권리보다 공동체주의적 성향이 강한 한국적 정서와 맞아떨어진 부분입니다. 샌델은 또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시장의 자유에 대해 구조적 제한을 둬야 한다는 입장인데, 이런 점은 국내 진보 진영의 생각과도 부합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샌델은 중도좌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결국 국가의 능력을 인정해야 하고, 이럴 경우 '확대된 국가'의 위험성이 있습니다.

샌델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협력해서 공공선에 참여할 수 있고 정치적 영역에서도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보는데, 중립적 자유주의자가 보기엔 이게 낭만적 생각이라는 거예요. 도덕적 판단을 개입시키면 매우 복잡해집니다. 샌델이 말하는 '덕성 정치'가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실현될 경우 '강한 국가'라는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도 있어요. 그의 주장은 아직 이론적으로 완성이 안됐다고 생각해요. 책의 뒷부분이 앞부분과 달리 명쾌하지 않은 것도 이런 점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 정의 담론이 확산되는 것은 매우 긍정적입니다. 공정하고 정당한 제도 여하에 따라 우리 삶의 조건은 달라집니다. 정의가 이제 막 사회적 담론이 되기 시작하는 단계인데,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문제입니다

  

■저자 마이클 샌델은

미국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57ㆍ사진)은 공동체주의 이론의 대가다. 브랜다이스대 졸업 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27세 때인 1980년 하버드대 최연소 교수가 됐고,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하며 '공동체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1982)를 발표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하버드대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그의 강의 '정의'는 2007년 가을 학기 수강생이 하버드대 사상 최대인 1,115명을 기록하는 등 20여년 간 1만 4,000명 이상이 수강했다. 이 강의는 하버드대와 보스턴 공영방송(WGBH)이 2007년 편당 50분의 TV시리즈 12편으로 제작해 방송했는데, 온라인(www.justiceharvard.org)으로 강의를 보면서 토론에 참여할 수도 있다.

10. 07. 12.  

P.S. 기사 말미에 나온 대로, 장동진 교수는 샌델의 '덕성 정치' 혹은 공동체주의 정치철학이 아직 미완성이며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많이 남겨놓고 있다고 주장한다. 존 롤스 전공자다운 식견으로 보였다. 실제로 장 교수는 <정의론> 이후 롤스의 대표작인 <정치적 자유주의>와 <만민법>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자유주의 정치철학에 대한 해설서 <현대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이해>(동명사, 2001)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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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nanoc의 생각
    from conanoc's me2DAY 2010-07-13 22:14 
    왜 읽히나 철학서적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게 10년만이라는.
  2.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공동체주의적 접근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8-20 08:45 
    <정의란 무엇인가>로 적어도 한국과 일본에서는 붐을 일으키고 있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방한 기자간담회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어제 이사중에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서평을 청탁받아서 겸사겸사 챙겨놓는 것이기도 하다. 일정상 외부 청탁원고는 사양하고 있지만 이미 읽은 책인데다가 언론 인터뷰 등에 응한 바도 있어서 나대로의 감상을 정리해두려고 한다. 여건상 9월초에나 쓰게 되겠지만. 기사 중에 '글로벌 교
 
 
2010-07-13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3 0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콩세알 2010-07-13 06:32   좋아요 0 | URL
약간은 회색눈으로 이 현상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래도 궁금해져서 소개해 주신 사이트에 가서 첫강의를 들었습니다. 오디오 강의는 물론이고 비디오 강의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 10분 이상 듣기가 힘들었는데 파트1을 한번도 자리를 뜨지 않고 다 봤습니다. (고맙게도 자막도 깔아주더군요. ^^ ) 상당히 흡인력이 있는 강의더군요. 엄청나게 많은 학생들이 강의를 듣는 것도 인상적이었구요. 책이 재밌을 것 같다는 실감이 옵니다. 사이트 소개 감사합니다.

로쟈 2010-07-13 08:11   좋아요 0 | URL
20대 대학생이나 직장 여성까지 손에 든다는군요. 신드롬의 경계쯤에 와 있는 거 같습니다...

mirror 2010-07-13 07:36   좋아요 0 | URL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되었다고 하셨군요? 지금 한국 사회의 문제가 형식적 민주주의가 잘 지켜지고 있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는 거죠? 홉스 이래의 자유주의적 정치철학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의 정치체제가 시민들의 자유를 억압해도 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나요? 언론이 정권과 결탁해서 왜곡을 밥먹듯이 하는 것이 절차적 민주주의가 잘 되는 나라에서 발생하는 일들입니까? 현정부는 민주주의적인 절차를 통해서 집권했으나, 통치방식은 민주적이지 않습니다.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통치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자유주의와 공통체주의의 논쟁 이전의 문제들입니다.

로쟈 2010-07-13 08:17   좋아요 0 | URL
"민주주의적인 절차를 통해서 집권했으나, 통치방식은 민주적이지 않습니다"가 공통적인 전제입니다. 저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란 말을 살짝 비틀었을 뿐입니다. 형식적 민주화 이후에 정치는 더이상 문제될 게 없다는 인식이 벽에 부닥친 것이라고 봅니다. 현 집권세력을 '반민주 세력'으로 몰아붙일 수도 있지만 크게 어필할 거 같지 않습니다. '불의한 세력'이라고 하면 사정이 좀 다르죠. 더구나 '정의'는 오랫동안 5공(민주정의당)의 전유물이고 그 유산이었습니다(선점효과죠). 이젠 되찾아야 할 프레임이라고 생각합니다...

2010-07-13 0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3 0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3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3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콩세알 2010-07-13 11:21   좋아요 0 | URL
리바이어던을 얼마전에 읽고 있었는데 홉스는 정치체제가 자유를 억압해도 된다고는 안했지만 목숨을 지키려면 알아서 내어놓으라고 하는 것 같더라구요. 그리고 자유란 주권자가 법률이나 명령의 방식으로 간섭하지 않는 부분에서만 허용된다고 하구요. 그런데 이런 홉스가 로크로 로크가 밀로 그리고 자민당(lib-dem)으로 신자유주의로 간다고 하는데 영 헷갈려요.

로쟈 2010-07-13 19:18   좋아요 0 | URL
서양정치사상사 종류를 참고하셔야 하나 봅니다...

kumun 2010-07-13 13:37   좋아요 0 | URL
저는 이 현상에 윤리 인강에서 가장 유명인사인 '이현'씨의 강의가 기여한 바가 크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나라가 얼마나 썩은 사회인지를 말하시면서 정의를 말하면 바보가 되는 사회라고 하셨죠. 우리나라가 얼마나 썩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면서...
또한 자신은 노무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노무현 정부가 역사상 가장 깨끗한 정부였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하셨죠. 이 부분만 편집이 돼서 인터넷 유머사이트 등에서 많이 화제가 됐었죠.
또한 몇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윤리과목을 선택하는 많은 수의 학생들이 그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을 것을 생각하면 무시못할 영향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로쟈 2010-07-13 19:14   좋아요 0 | URL
새로운 해석이네요.^^ 젊은 네티즌에겐 어필했을 것도 같습니다...
 

이번주 한겨레21에 실은 '문화면' 기사를 옮겨놓는다. '출판면'은 그만두었지만 '문화면' 청탁까진 거절할 수 없었는데, 더구나 인문학 커뮤니티 '비평고원'에 관한 것이었다. '내부자'이기도 하기에 안과 밖에서 보는 비평고원에 대해 적어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그래봐야 시간에 쫓기며 작성한 거라 주문내용이 다 들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불멸회원 로쟈가 회고하는 인문학 커뮤니티 비평고원 성장사'이자 '10주년 카페북 출간을 계기로 돌아본 어제와 오늘'이 글의 컨셉이다.    

한겨레21(10. 07. 19) 인문학 강호를 뒤흔든 비평의 강호

시작은 미미했다. 2000년 봄, 지방대학의 국문학과를 졸업한 한 청년이 대학원 진학을 위해 서울로 ‘유학’왔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살이에 외로움을 느끼다 마침 등장한 인터넷 세계에 빠져들었고, 별다른 생각 없이 ‘쿤데라와 고진의 고원’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다. 전자메일이 상용화된 지 1년 남짓이었고 ‘카페’라는 이름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붐을 타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가 좋아하던 작가가 밀란 쿤데라여서 운영자 닉네임은 ‘쿤데라’로 정했다. 관심을 갖던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의 책들이 두세 권 출간되어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천 개의 고원>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지만 인문학 동네의 ‘전설’로 떠돌고 있었다. 일종의 팬카페였던 ‘쿤데라와 고진의 고원’은 이들을 조합한 이름이었다.   

그들이 미약한 시작 '쿤데라와 고진의 고원'
쿤데라 소설의 애독자이자 고진의 <탐구>를 흥미롭게 읽은 터라 나는 우연히 발견한 이 카페에 호감을 느끼고 가입하여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대학과 학원의 강사생활을 하면서 ‘로쟈’란 필명으로 인터넷 세상을 어슬렁거리던 때였다. ‘도스토예프스키’란 팬카페를 나름대로 운영 중이었지만 더 열심히 글을 올린 곳은 ‘쿤데라와 고진의 고원’이었다. 그건 소위 대화의 ‘상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쿤데라 작품엔 절대적인 가치(구원)이나 종착역이 존재하지 않고 웃음은 바로 그 작품 전체구조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세상 전체가 농담이 되는 것이죠. 한데, 도스토옙스키 작품엔 웃어서는 안 되는 ‘종착역’(구원)이 전제된 상태로 현실에 역투사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유머는 진지함을 보충해주는데 그치고 있습니다.”라고 주인장이 주장하면, 나는 “도스토옙스키에게 웃어서는 안되는 종착역이 있다는 건 그의 사상의 경우에 국한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아시다시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미완성작이고, 거기엔 별개의 사상과 감정들이 극단의 스펙트럼까지 공존하며 이질적인 웃음과 비장함을 빚어내고 있습니다”라고 반박하는 식이었다.  

아주 무겁지는 않더라도 제법 ‘진지한’ 대화가 자주 오고 갔고, 카페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인문학 전공자뿐만 아니라 대학생과 직장인이 가세했고, 관심사도 더욱 넓어졌다. 거기에 보조를 맞춰 2004년 말에는 카페명이 ‘비평고원’으로 개명됐다. ‘쿤데라와 고진’이라는 특수성이 ‘비평’이라는 보편성으로 전화된 사례라고 할 만하다. 닉네임을 ‘소조’로 바꾼 운영자 조영일씨의 표현을 빌면, 비평고원은 곧 인터넷 공간의 ‘강호’가 됐다. 카페 개설 1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책 <비평고원 10>(도서출판b 펴냄)의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무협소설에 비유하자면, 한국 지성계가 환관들에 의해 유지되는 국가기구의 하나(교육장치)라면, 비평고원은 오로지 자신의 무공에 의지하여 ‘의(義)’를 행하는 강호(또는 무림)라 하겠다.”   

그들의 강력한 무기, 고진과 지젝
얼마간 과장된 것이긴 하지만, 이 재치 있는 비유에는 지난 10년간 온라인 인문학의 대표적 커뮤니티로 성장한 비평고원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 있다. 2007년부터는 언론의 본격적인 주목까지 받게 된 비평공간(*비평고원)은 이미 “저마다 무림의 고수를 자처하며 갈고 닦은 내공으로 일합을 겨루는 공간”(한겨레), “고수들이 학벌이나 나이 등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필력으로만 자웅을 겨루는 공간”(경향신문) 등의 평판을 얻은 터다. 조영일씨는 한걸음 더 나아가 비평고원의 존재의의를 한국사회의 “관료지성에 대한 일반지성(또는 대중지성)의 강력한 비판”이라고까지 규정했다. 크라운판 1072쪽에 달하는 이 묵직한 책의 무게가 그 비판의 무게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관료지성’에 대한 비판의 ‘무기’로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과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자주 참조된 것도 비평고원의 특징이라 할 만하다.  

 

사실 조영일 씨는 가라타니 고진 선집을 기획한 ‘전담 번역자’이기도 하며, ‘로카드’란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성민씨 역시 지젝과 그의 친구들인 ‘슬로베니아 라캉학파’의 책 다수를 한국어로 옮겼다. ‘로쟈’ 또한 이들에 대한 글을 온라인에 많이 올린 사람 중 하나다. 한국 지식사회에서 고진과 지젝, 두 사람이 누리고 있는 평판의 상당 부분은 비평고원에 빚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카페출석부’까지 포함하여 전체 11부로 구성된 <비평고원10>은 그러한 비평고원 10년의 궤적을 담고 있다. 조영일씨는 이 책을 ‘비평고원 베스트앨범’이라기보다는 ‘비평고원 매뉴얼’로 생각해주기를 당부했는데, 이 유례없는 ‘카페북’ 혹은 ‘커뮤니티북’에서 차별적인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논쟁의 고원’ 장이다. 3편씩 대논쟁과 소논쟁이 선별됐는데, ‘카페 소통 논쟁’ ‘레비나스 논쟁’ ‘번역 논쟁’ 등이 대논쟁의 주제다. 책은 온라인 논쟁의 특성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많은 분량의 댓글까지도 그대로 옮겨놓았다. 편집자에 따르면, 이 논쟁적인 글들은 “탁월한 학술적 논쟁 혹은 고도의 공동 사유의 결과물이 아니다. 오히려 인터넷이 노정하는 취약성을 드러내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균형점을 찾으려는 지속적 ‘불균형 상태’를 보여주는 글들”이다. 그러한 ‘불균형 상태’야말로 제도권의 ‘관료지성’이 드러내놓기 꺼려하고 기피하는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거꾸로 이 독특한 ‘학술공간’이 예외적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일지도 모른다.  



비평고원이 10년 동안 지속될 수 있던 원동력으로 조영일씨는 ‘오프라인적 요소의 배제’를 꼽았다. 다른 온라인 지식 공동체들이 오프라인화를 추진하면서 흐지부지해진 사례와 견줘 그렇다는 것이다. 카페의 정기모임은 1년에 고작 한두 차례 정도이니 비평고원의 핵심 회원(‘불멸회원’)들조차 서로의 ‘안부’를 잘 알지 못한다. 지난 7월3일 저녁 서울 신촌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카페 정기모임은 그런 의미에서 드문 자리였다. 물론 <비평고원 10> 출간을 기념하면서 10주년을 자축하는 자리였다. 회원 30여 명이 모인 이 자리에서는 10년 후 <비평고원 20>을 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덕담으로 나왔다. 그게 현실이 된다면 아마도 온라인 커뮤니티의 또 다른 ‘기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이 있는 건 아니다. 카페의 회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현재 1만 명이 넘었지만 일일 방문자 수는 정체 양상을 보인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회원 수도 기대만큼 늘지 않고, 이 때문에 ‘전성기’가 지난 것이 아닌가란 인상마저 준다. 말하자면 재충전과 재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비평고원 10>이 그 계기가 될 수 있을까.   

그들의 창대한 미래, '비평고원들'
비평고원의 회원이든 아니든 “비평고원이 한국지성계(또는 한국인문학)를 변화시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조영일 씨의 말에는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비평고원과 같은 인터넷커뮤니티가 10개 정도 된다면? 그리고 그것들이 10년, 20년 계속된다면?”이란 그의 질문이다. 이 질문이 여전히 우리를 들뜨게 한다면, 비평고원은 대표적 온라인 지식 공동체로서 앞으로도 꾸준히 자기 몫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평고원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비평고원들’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것이다.  

10. 0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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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3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3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서관에 반납해야 할 책들을 챙기다 보니 카자 실버만의 <월드 스펙테이터>(예경, 2010) 원서도 눈에 띈다. 지난 4월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올려놓으면서 서평도서 후보로 고려했다가 제쳐놓는 바람에 아직 읽지 못한 책이다. 부제는 '하이데거와 라캉의 시각철학'.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이긴 한데, 방학이 끝나기 전에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주 드문 소개기사 하나를 스크랩해놓는다.    

 

주간한국(10. 04. 13) 바라보기를 통한 세계의 인식 

책의 제목인 '월드 스펙테이터(World Spectators)'는 본래 저자인 카자 실버만의 말이 아니다. 이 말은, 한나 아렌트에서 나왔다. 아렌트는 공간적으로 제한받지 않고 외부세계로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시각의 주체, 그리고 사회에서 책임, 의무, 권리를 지닌 주체를 철학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월드 스펙테이터' 즉, '세계관찰자'란 말을 지어냈다.

저자인 카자 실버만은 이 말을 전복시켜 자신의 사유를 풀어낸다. 이 전복이 블록버스터 급이다. 그녀는 '외양'과 '존재'를 엄격하게 구분했던 서구 형이상학의 전통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녀는 말한다. "바라보아야 존재할 수 있다"고. 이 책의 핵심은 바라보기를 통한 세계의 인식이다. 참고로 그녀 실버만은 국내에서 정신분석학 틀을 이용해 사진과 영화를 분석하는 이론가로 알려져 있다. 저자의 이야기는 우리가 매일 만나는 대중문화, 사진과 영화를 새롭게 이해하는 하나의 툴이 될 수 있을 터다.

우선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저 유명한 알레고리, '동굴의 우화'를 전복시킨다. 평생을 컴컴한 동굴에서 살아온 죄수가 어느 날 갑자기 환한 바깥세상을 경험하고 다시 동굴에 들어온다는 옛날 옛적 그리스 이야기를, 그리고 죄수는 이제 바깥 세계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그 고통이 크더라고 세계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 철학자의 사명이라는 전통적 해석을 저자는 '동굴 속 개별 죄수'에 집중함으로써 비틀어 버린다.

실버만은 동굴 속 죄수 각자는 주어진 세계에 던져진 존재로 모든 것이 제한적이고 부자유스럽지만, 적어도 자신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진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사물이 눈에 보일 때만 실제적으로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녀는 말한다. "결국 세계가 나타나 존재하게 될지, 아니면 비(非)존재의 어둠으로 흐려져 사라질지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 자신 뿐"(15페이지)이라고.

보기, 즉 시지각은 말하기, 언어에 앞서는 것이다. 그녀의 다음 전복 대상은 성경이다. 흔히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언어측면이 강조되지만, 실버만은 동물과 새가 아담 앞에 먼저 보이고, 그런 다음에야 아담이 존재의 이름을 말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주체는 개별자이지만, 또한 그가 속한 세계와 분리되어 있는 단독자가 아니다. 본다는 것은 언제나 주체와 대상, 타자, 세계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실버만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타인에게 비춰질 때만, 존재한다. 나의 존재는 타자의 존재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진공상태의 단독자보다 현실 세계를 사는 집합체 속 개별 주체를 강조한다. 개별적이면서도 사회 안에 집합적으로 살아가는 세계관찰자, 월드 스펙테이터는 동굴 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더라도 언어 이전의 영역에서 언어가 나타낼 수 없는 존재의 근본 조건을 볼 수 있는 시각적 역량을 지닌다.

이 책의 부재는 하이데거와 라캉의 시각철학이다. 그러니까 그녀, 실버만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이데거와 라캉의 철학을 사유의 바닥에 깔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 하이데거와 라캉은 다시 플라톤과 프로이트의 사유에 기대고 있는바, 책을 읽어내기 위해 정신분석, 철학, 시각문화, 미술사 그리고 문학과 영화학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여행을 마칠 때쯤 동굴에 대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죄수, 현상을 비틀어 볼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 터다.(이윤주기자) 

10. 07. 12.   

P.S. 실버만의 책 가운데 관심을 끄는 타이틀은 몇 개 더 있다(원래는 <기호학의 주체>란 초기 저작으로 알게 된 이론가였다). 그나저나 말 그대로 '월드 스펙테이터'들이 주시하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결승전이 몇 시간 남지 않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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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0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2 20: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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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22: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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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22: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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