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꾸미밥상집에서
여인의 초상을 읽는다
대안이 있었나
분노와 용서가 아니면 도덕형이상학
쭈꾸미 비빔밥을 먹으며
분노했다 용서하고
도덕형이상학을 숙고하고?
쭈꾸미의 체면을 생각해서
정중히 거절한다
못생긴 여자의 역사도 있었지
밖에 나와서까지 읽을 건 아니잖나
그럼 식인의 형이상학?
맙소사
나는 쭈꾸미로 충분하다네
이사벨 아처는 그렇지 않았지
젊고 아름다운 이사벨에겐
부유한 귀족도 쭈꾸미였지
인생은 모험이어야 했어
조건 너머에
예측가능한 삶 너머에
누구도 살아보지 못한 삶
이사벨은 남자를 잘못 보고
이사벨은 사기결혼을 하고
이사벨은 인생을 배우지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인생이지
이사벨 아처만의 파란만장
하지만 그것이 인생
그것이 여인의 초상
쭈꾸미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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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6-24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다 보니 리비스와 이글턴의
여인의 초상에 관한 글을 읽게 됬네요.
(읽는게 아니였는데~머리가 복잡복잡ㅎㅎ)
강의가 궁금하고 기다려집니다.

로쟈 2018-06-24 17:03   좋아요 0 | URL
헨리 제임스의 모호성을 어떻게 봐야 할지 저도 고심중.~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문학의 귀족이라면
발저는 문학의 하인
로베르트 발저는
야콥 폰 군텐과 함께
하인학교에 다니지
벤야멘타 소년학교는 하인학교
어떠한 지식도 가르치지 않는다
가르치는 교사도 없다
인내와 복종을 기르친다
제복만 입는다
귀족 태생의 야콥은
미미한 존재를 꿈꾼다
발저는 문학의 조수
발저는 하인들을 양성하고
발저는 작은 글씨로
아주 아주 작은 글씨로
작은 문학을 완성한다
작은 글씨로도 여백이 모자라
발저는 산책으로 나머지를 완성한다
인내와 침묵을 완성한다
발저의 집은 정신병원
발저는 집을 갖지 않는다
발저는 집을 짓지 않는다
집이 없는 보헤미안 릴케는
귀족의 성에서 시를 쓰고
집이 없는 발저는
산책길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는 발자국만
눈길에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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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6-22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저의 눈밭에서의 죽음이나
톨스토이가 가출해서 기차역에서 죽은것
현실같지 않고 영화의 한장면 같아요.
(근데 발저는 왜그렇게 맘이 짠하지~)
일부러 작정해도 안될것 같은데.

로쟈 2018-06-22 20:40   좋아요 0 | URL
네, 매우 발저다운.

로제트50 2018-06-22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년전 배수아가 번역한
마르틴 발저의 <불안의 꽃>을
읽었습니다. 배수아 번역작은 일단
사던 시절. 그 독일 -발저 조합에
웬지 이끌리면서 <세상의 끝>을 구입, 로베르트 발저. 이걸 안 순간
목사님 설교, 감정을 따르지말고 이성을 따르라...가 생각나면서@@
그래도 로베르틴 발저도 매력있길,
아직 펼치지 않은 표지에 기대
합니다^^*

로쟈 2018-06-22 20:42   좋아요 1 | URL
로베르트는 뭔가 새로운 세계입니다.~
 

도봉산행 기차를 탄다
도봉산에 가지 않는다
도봉산에는 도봉이 있나
도봉산
봄에도 여름에도 도봉산
설마 겨울에도
설산 대신 도봉산인가
도봉산에는 언제 가는가
도봉산에는 갈 일이 없나
도봉산을 왜 피하는가
거리낌없이
도봉산행 기차를 타고
도봉산에 가지 않는다
도봉산은 멀다
꿈속의 도봉산
도봉산을 꿈꾸지 않는다
오늘도 도봉산을 오르는 사람들
하지만 도봉산에 가지 않는다
도봉산에 갈 일이 없다
도봉산을 외면한다
도봉산이 불러주지 않는다
도봉산에 간 적이 없다
도봉산을 사랑한다
도봉산을 그리워한다
도봉산은 어디에 있나
도봉산과는 무슨 인연인가
도봉산에 가지 않는다
도봉산은 거기에 있다
알 수 없는 도봉산
도봉산도 알지 못할 것이다
왜 도봉산인지
도봉산은 숨어 지내나
도봉산을 찾는다
도봉산이 보이지 않는다
도봉산이 그립다
도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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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6-2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엿날옛적에 한번 올라가 본적은 있으나
하산하여 먹었던 고기와 막걸리만 기억나고
도봉은 김수영 시인을 떠올리게 하는~
김수영문학관이 그짝에 있다던데
강의도듣고 문학관도 가보고 싶네요.

로쟈 2018-06-23 15:06   좋아요 0 | URL
네, 김수영문학관이 그쪽이죠. 엠티라도 가봐야겠네요.~
 

걷는다
걸어왔다
걷는다
말없이 걸어왔다
걷기만 하자
걷는 데만 주목하자
나는 걸었고 속도를 냈다
속도가 붙는다
걷는 건 외롭지 않다
외롭지 않게 걷는다
두 다리가 사귀듯이 걷는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슬프다
걷는다
슬픔을 삼키며 걷는다
내색하지 않는다
걸었다
걸어왔다
걷는다
한참을 걸었다
잊을 수 있을까
걷는다
이유는 없다
걷는다
구두가 닳는다
바꿔 신는다
걷는다
걸어올 때까지
걷는다
걷는 건 외롭지 않다
말없이 걷는다
꺾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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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6-22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계절엔 아침 출근길 들판을
보면 차에서 내리고 싶어요^^;
밤퇴근길은 무서버서 배고파서^^*
어제 저녁 모임 장소 이름이 골짜기를 뜻해서 정류장에서 내려
일 이분 걸은 것이 침 좋았답니다.
자갈길(신발 밑창이 얇았지요)과
좌우로 늘어선 나무에서 나오는 향과
공기가 골짜기로 들어서는 기분이었지요^^* 그 짧은 시간이
행복했습니다. 이 시를 보니 그때가
기억나 또 기분 좋아요~
화자의 심정과 관계없이.

로쟈 2018-06-22 10:11   좋아요 0 | URL
네 우리가 매일 걷지요.~
 

여름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여름이어도 되는 걸까
언제부터지?
알면서도 놀란다
놀라는 척이 아니라서 놀란다
세상에나 여름이라니
네가 언제 그렇게
여름부터라고?
그럼 이게 다 여름이란 말인가
여름 햇볕이고 여름 가발이고
여름 사냥이고 여름 열매고
네가 세상 모르던 때가 언젠데
벌써 여름이고
네가 여드름 짜던 때가 언젠데
이젠 막 나가는 건가
아무리 여름이어도 그렇지
여름밖에는 할 수 없다는 거야?
원칙이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가 한두 번 본 사이도 아니고
우리가 같이 보낸 여름도 있건만
그래도 정색할 수가
네가 여름이라고 치자
네가 어떻게 여름이지?
여름이 그렇게 허술해?
여름을 사랑한 적은 있어
여름이었지
여름일 수만은 없잖아
수도 없이 지나갔어
그래도 여름이라니
세상에나 여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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