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를 제목으로 단 두 권의 책을 같이 묶는다. 인류학자이자 사회운동가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관료제 유토피아>(메디치미디어, 2016)와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사회주의, 생동하는 유토피아>(오월의봄, 2016)다. 의미가 같지는 않다. 바우만의 사회주의 유토피아가 지속적인 탐험과 지향점을 뜻한다면, 그레이버의 관료제 유토피아(원제는 '규칙의 유토피아')는 반어적인 명명이다.
<관료제 유토피아>의 요지는 책소개를 통해서 대략 어림해볼 수 있다. '관료제 유토피아'란 말은 '전면적 관료화'의 의미로 이해해도 좋겠다.
"저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현대 사회가 '전면적 관료화'가 된 현상에 주목한다. 정부 업무는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 금융, 학교에도 관료주의가 널리 퍼져있다. 권력 기관은 제도와 규제처럼 당연해 보이는 규칙을 통해 개인들을 손쉽게 통제한다. 절대왕정 시대와 비교하면 세상은 훨씬 더 관료제화 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옳고 그름을 떠나, '자유'라는 단어 자체가 모순이다. 저자는 현대 자본주의와 관료제 사이의 끈끈한 밀월관계와 이로 인해 파생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낱낱이 파헤친다. 또한 우리가 불만 속에서도 관료주의 체제에 속수무책으로 사로잡혀 있을 수밖에 없는 온갖 종류의 속임수나 덫들에 관해 조명하고, 우리가 자발적으로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게 해준다."
그레이버의 책은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그린비,2009)이 처음 소개된 이후, <부채>(부글북스, 2011), <우리만 모르는 민주주의>(이책, 2015) 등이 출간되었다. 추세를 보아 마샬 살린스와 공저한 <왕들에 대하여>(2016)도 번역되지 않을까 싶고, 이 역시 기대되는 타이틀이다.
사회주의란 말은 역사적으로나 의미가 너무 확장되어 그 자체로는 심지어 모호해 보인다. '어떤 사회주의?'라는 질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데, 바우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바우만의 사회주의란 어떤 사회주의인가를 먼저 물어야겠다. '생동하는 유토피아'라고 답할까?
"저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원래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였고, 열렬한 사회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런 바우만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책이며, 또한 노골적으로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바우만의 현대성 분석과 소비사회 비판이 왜 시작되었고, 어디에서 나왔는지 그 맥락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현대사회에 사회주의라는 '생동하는 유토피아'가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탐험한다. 현대사회의 유토피아로서 사회주의의 역할을 분석하고, 사회주의를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반문화로 제시하면서 오늘날의 사회주의가 가야 할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다."
원저는 2010년작. 이제껏 그래왔듯이 올해도 바우만의 책은 여러 권 소개될 듯싶다.
그 전에 밀려 있는 바우만도 몇 권 빨리 해치워야겠다. 읽는 속도가 쓰는 속도를 못 따라가다니...
16. 0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