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발견'으로 조지 패커의 <미국, 파티는 끝났다>(글항아리, 2015)를 고른다. 지난달에 나왔지만 주문한 원서가 아직 배송되지 않아서 나로선 독서를 미뤄두고 있는 책이다. 물론 600쪽이 넘는 분량도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럼에도 '걸작 논픽션' 시리즈에 값하는 걸작으로 보인다(상대적으로 이런 논픽션이 우리에겐 왜 없는지 아쉽다).

 

 

저자는 미국의 저널리스트로 국내엔 조지 오웰의 평론집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이론과실천, 2013)의 편자로 처음 소개되었다. 그러니 <미국, 파티는 끝났다>가 실상은 첫 책이다. '고삐 풀린 불평등으로 쇠락해가는 미국의 이면사'가 부제. 논픽션이지만 여느 논픽션과 다른 점은 다큐멘터리 소설 같은 형식 때문이다. 실제 인물들과의 인터뷰와 여행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논픽션이지만, 마치 흥미로운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가.

"1978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의 다양한 시민들은 그야말로 '몰락했다.' 저자는 미국 땅에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역정을 소설처럼 재구성해 드러냄으로써 이 부정할 수 없는 몰락의 과정을 보여준다. 보수적인 남부 시골에서 담배 농사를 포기하고 바이오디젤이라는 신경제의 전도사가 되는 딘 프라이스, 마약과 마피아가 활개치는 중서부 오하이오의 퇴락한 철강도시의 공장노동자에서 조직운동가로 변모해 생존을 도모하는 태미 토머스, 월가의 억대 연봉을 마다하고 워싱턴 정계의 막후 공작에 매진하다 좌절하는 제프 코너턴,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일으켜 거액을 모았으나 거품 붕괴로 파국을 맞은 피터 틸 등등. 이들의 삶을 섬세하게 드러내면서 저자는 지난 30년간의 미국 역사를 극단적인 빈부 격차와 금융업계의 규범 없는 이익 추구 그리고 정치권을 쥐락펴락하는 월가의 돈 앞에 저항운동조차 부서지기 일쑤인 사회가 '뉴아메리카의 이면'이라고 진단한다."

 

"슬픔과, 분노와, 측은지심이 윙윙거린다. 저자는 존 스타인벡 소설에 맞먹는 논픽션 걸작을 선물했다."고 뉴욕타임스는 평했는데, 저자의 고백으론 더스패서스의 삼부작 <미국>(1938)을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펭귄판으로 1184쪽의 대작이다). 국내엔 <맨해튼 트랜스퍼>(문학동네, 2012)만 소개돼 있어서 아쉬운데, <미국>도 번역되면 좋겠다.

 

 

미국의 실패와 몰락을 다룬 책은 드물지 않다. 심지어 톰 하트만의 <2016 미국 몰락>(21세기북스, 2014)은 올해를 몰락의 해로 특정하기도 했다. 물론 그의 관심은 여러 몰락의 징후들이 말해주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놓여 있지만, 실상에 대한 직시가 선결조건이다. 과연 우리, 헬조선국은 사정이 다른지 묻게 된다. '천조국'도 파티가 끝났다면 더 말할 것도 없긴 하지만...

 

16. 01. 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주의 발견'은 모린 코리건의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책세상, 2016)다. 처음 소개되는 저자이지만 제목이 <그래도 책읽기는 계속 된다>(현암사, 2012)도 떠올리게 해주어 공연히 반갑다. 제목이 시사하듯 독서 에세이다. 'F. 스콧 피츠제럴드와 <위대한 개츠비>, 그리고 고전을 읽는 새로운 방법'이 부제.

 

 

아직 다른 소개는 뜨지 않아서(다른 곳에서도 목차만 확인할 수 있다) 제목과 부제만으로 어림해볼 따름인데, '고전을 읽는 새로운 방법'이란 문구 때문에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다. <위대한 개츠비> 같은 경우도 자주 강의하는 작품이라 저자의 생각이 궁금하기도 하고.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선 영문학자 김욱동, 서숙 교수의 책이 나와 있기도 하다. 나대로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 강의한 내용이 포함된 책은 이번 봄에 나올 예정이다...

 

16. 01. 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주의 발견'으로 모티머 애들러의 <모두를 위한 아리스토텔레스>(마인드큐브, 2015)를 고른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애들러는 유명한 독서법 책 <독서의 기술>로 잘 알려져 있다(국내에도 여러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모두를 위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쉽게 풀이한 책.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쉽게 설명하고 있는 책.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자였던 모티머 J. 애들러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을 교육의 기조로 삼고, 철학과 교육에 관한 많은 책을 썼다. 전문적 용어의 사용을 최대한 피하고, 일상의 친근한 사례를 들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1부에서 책의 전체 구도를 소개한 다음, 2~4부는 감각을 통해 잘 알 수 있는 것에서 출발하여 본성상 더 분명한 것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개별 저작이 아닌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전반에 관한 가이드북이 얼른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사실 입문서가 요긴한 철학자 가운데 한 명이 아리스토텔레스이다(고대 철학 전반을 다룬 책은 드물지 않지만). <모두를 위한 아리스토텔레스>가 때마침 나와주었다고 할까. 주요 저작들은 번역돼 있는 터이니(최근에는 <자연학 소론집>도 번역됐다) 전체에 대한 조감도 격으로 애들러의 책을 읽고서 주저들을 손에 드는 쪽으로 독서를 진행해도 좋겠다. '무력할 땐 아리스토텔레스'라고 하니까 연초부터 무기력에 빠진 분들이라면 더더욱...

 

16. 01. 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주의 발견'으로 수잔 스튜어트의 <갈망에 대하여>(산처럼, 2016)를 고른다. '미니어처, 거대한 것, 기념품, 수집품에 대한 이야기'가 부제. 사실 발견이라고는 했지만 초면은 아니다. 이미 지난해 봄에 짧은 원서 리뷰를 작성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http://blog.aladin.co.kr/mramor/7009413). 번역이 까다로운 책인데, 무탈하게 나와주어서 반갑다.

 

저자 수잔 스튜어트는 인류학, 시학, 민속학 등을 종횡무진하는 거침없는 필력을 선보이며, 기호학, 정신분석학,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마르크스주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얻은 통찰과 개념 등을 끌어다가 독창적이고 기발한 내용으로 갈망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미니어처 책, 18세기 소설, 톰 섬의 결혼식, 허풍스러운 이야기, 관광이나 노스탤지어의 대상 등 다양한 문화적 형태를 주제로 삼고 있다. 일상의 사물들이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특정한 모습에 생명을 불어넣어 실현시키는 방식을 매혹적인 필치로 분석해 내는 문화연구다.

분류하자면 '이론서'에 해당하는지라 독서가 만만하지는 않지만 인문학 전공자라면 많은 생각거리를 발견할 수 있는 책이다.

 

 

생각난 김에 적자면, 저자가 많이 참고하고 있는 미하일 바흐친의 국내 번역본들이 대부분 절판(혹은 품절)된 상태다. <말의 미학>(길, 2006)을 위시하여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아카넷, 2001), <장편소설과 민중언어>(창비, 1998) 등등. 인문학에서 인용지수가 가장 높은 학자 중 한 명이지만, 독서 여건만 보자면 그런 지수가 무색하다. 개정판이 어렵다면 재간본이라도 나오길 갈망한다...

 

16. 01. 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을 감별하는 게 서평가의 일차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쪽인데, 가끔은 '실수'를 하곤 한다. 주목할 만한 책에 정당한 주목을 하지 못할 때다. 그런 주목은 물론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최대한 '확장된 주관'을 통해서 책의 의의를 짚어주는 게 서평가의 역할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니킬 서발의 <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이마, 2015)도 그렇게 내가 놓친 책 가운데 하나다(어림에는 대략 한달에 한두 권씩 놓치는 책이 있다).

 

 

저자는 생소하다(원저가 2014년에 나온 저자의 데뷔작인 걸 생각하면 너무 당연하다). 중요한 건 주제다. 무엇에 대해 쓴 것인가. 사무실에 대해서. 사무실이라는 현대 도시의 표준적 공간에 대해서. "저자는 사무직 노동자와 사무실의 탄생과 그 연대기를 밀도 높고 재치 있는 문장으로 서술한다.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방대한 자료를 동원하여 지금까지 연구의 배경으로만 머물렀던 사무 공간의 진화를 솜씨 좋게 직조해 낸다."

 

되짚어보건대, 이 책에 주목하지 않은 것은 내가 사무실 생활자가 아니어서인 듯싶다. 학과 조교와 연구소 간사 시절을 제외하면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사무실 노동자'였던 적이 없다. 사무실과 흡사한 '연구실'도 가져본 적이 없고. 때문에 주관적으로는 구미에 맞는 책이 아니다. 하지만 '확장된 주관'에서 보면, 꽤 신선한 주제를 다룬 흥미로운 책이다. 문화연구자 박해천의 추천사가 일러주듯이.

드라마〈미생〉에서 원 인터내셔널의 오차장은 퇴사한 선배로부터 다음과 같은 조언을 듣는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총성 없는 전쟁터의 변화상, 즉 사무직 노동과 그 공간 환경의 역사적 변천을 다루고 있다. 니킬 서발은 사회학, 경영학, 건축사, 디자인 이론, 소설과 영화 등 방대한 자료를 동원해 사무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거대 서사를 완성해 낸다. 아마도 장그래라면, 주저함 없이 이 책을 펼쳐보지 않을까? 자신의 일터가 어떻게 변화했고 어떻게 변모할 것인지 궁금할 테니 말이다.

이런 책을 찾아내는 출판사의 눈썰미도 인정해줄 만하다...

 

16. 01. 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