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감별하는 게 서평가의 일차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쪽인데, 가끔은 '실수'를 하곤 한다. 주목할 만한 책에 정당한 주목을 하지 못할 때다. 그런 주목은 물론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최대한 '확장된 주관'을 통해서 책의 의의를 짚어주는 게 서평가의 역할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니킬 서발의 <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이마, 2015)도 그렇게 내가 놓친 책 가운데 하나다(어림에는 대략 한달에 한두 권씩 놓치는 책이 있다).

 

 

저자는 생소하다(원저가 2014년에 나온 저자의 데뷔작인 걸 생각하면 너무 당연하다). 중요한 건 주제다. 무엇에 대해 쓴 것인가. 사무실에 대해서. 사무실이라는 현대 도시의 표준적 공간에 대해서. "저자는 사무직 노동자와 사무실의 탄생과 그 연대기를 밀도 높고 재치 있는 문장으로 서술한다.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방대한 자료를 동원하여 지금까지 연구의 배경으로만 머물렀던 사무 공간의 진화를 솜씨 좋게 직조해 낸다."

 

되짚어보건대, 이 책에 주목하지 않은 것은 내가 사무실 생활자가 아니어서인 듯싶다. 학과 조교와 연구소 간사 시절을 제외하면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사무실 노동자'였던 적이 없다. 사무실과 흡사한 '연구실'도 가져본 적이 없고. 때문에 주관적으로는 구미에 맞는 책이 아니다. 하지만 '확장된 주관'에서 보면, 꽤 신선한 주제를 다룬 흥미로운 책이다. 문화연구자 박해천의 추천사가 일러주듯이.

드라마〈미생〉에서 원 인터내셔널의 오차장은 퇴사한 선배로부터 다음과 같은 조언을 듣는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총성 없는 전쟁터의 변화상, 즉 사무직 노동과 그 공간 환경의 역사적 변천을 다루고 있다. 니킬 서발은 사회학, 경영학, 건축사, 디자인 이론, 소설과 영화 등 방대한 자료를 동원해 사무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거대 서사를 완성해 낸다. 아마도 장그래라면, 주저함 없이 이 책을 펼쳐보지 않을까? 자신의 일터가 어떻게 변화했고 어떻게 변모할 것인지 궁금할 테니 말이다.

이런 책을 찾아내는 출판사의 눈썰미도 인정해줄 만하다...

 

16. 0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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