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부터 틈틈이 공을 들이고 있는 독서분야는 인류학과 지구사 쪽이다(덧붙여 조선시대 선비와 당쟁에 관한 책들을 몰래 읽고 있다). 탈식민주의와 탈서구주의란 지향점에서 서로 만나는 분야인데, 그런 관심에서 가장 반가운 책이 이번에 나온 수전 벅모스의 <헤겔, 아이티, 보편사>(문학동네, 2012)이다. 몇 차례 언급한 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론 지젝의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창비, 2010)을 통해서 처음 존재를 알게 된 책이다. 출판사쪽도 비슷한 듯해서, <헤겔, 아이티, 보편사>의 역자도 지젝의 책을 옮긴 김성호 교수다. 아무튼 반가운 마음에 그제밤에 바로 주문을 넣었지만 당일배송이라던 책은 끝내 소식이 없다. '온다던 책 오지 않고'가 이런 경우다. 휴일에 손가락만 빨고 있자니 기분도 언짢아서 기사를 검색하다가 <지구사의 도전>(서해문집, 2010)의 서평에서 벅모스의 책이 언급된 걸 찾았다. 사실 <지구사의 도전>도 최근에 구입한 터라 내겐 '새책'이다. 재작년 가을의 기사를 '프레시하게' 읽으며 옮겨놓는다.   

 

 

 

한겨레21(10. 10. 08) 세계를 보는 창틀, 지구의 역사로 확대해보자

 

<지구사의 도전: 어떻게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설 것인가>(서해문집 펴냄)라는 책 제목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거대한 지구가 하나의 대륙에 불과한 유럽에 도전하겠다니 아이러니할 수밖에. 그러나 그 아이러니는 현실이다.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그리스·로마 시대와 프랑스혁명, 영국 산업혁명 아래 수없이 쳐놓은 ‘밑줄 쫙 별표 하나’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인식하는 역사의 시공간 한가운데에는 유럽이 자리하고 있다.

 

유럽중심주의는 단순히 유럽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기록한 역사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유럽중심주의를 “근대 세계를 구축한 시각인 동시에 담론이며 자본주의 체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식민지와 전세계에 구도적으로 강요된 출세와 부국강병의 담론이자 지식 체계”이며 “유럽의 역사가 세계 역사 발전의 보편적 방향을 표현한다는 사고”라고 설명한다. 유럽중심주의는 한국을 포함해 지금 지구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의 창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지역·인종을 넘어선 세계관

 

이 창틀은 여전히 단단하고 건재하지만, 탈유럽중심주의는 더 이상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근대화 이론이 신뢰를 잃고 탈식민지에 관한 논쟁이 빠르게 퍼져나간 20세기 후반부터 있어왔고, 유럽중심주의에 관한 비판과 회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역사학자와 사회과학자 사이에서 ‘지루하다’는 평을 들을 만큼 반복돼왔다. 이 책의 큰 제목이 ‘어떻게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설 것인가’였다면 이 책 역시 ‘지루한’ 책으로 분류됐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유럽중심주의의 폐기와 극복에 관한 해답이 나온 것은 아니다. 학자들은 유럽중심주의가 없는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에 대해 여전히 이렇다 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나온 대안이 바로 이 책의 큰 제목인 ‘지구사’다.

 

 

책은 유럽중심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언어와 논리구조, 역사관으로서의 지구사에 대해 얘기한다. 이화여대 지구사연구소 조지형 교수와 김용우 연구교수가 엮은 이 책은 지난 4월 이화여대 지구사연구소가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서 지구사로’라는 주제로 개최한 국제 학술회의에서 발표된 글과 논의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세계사의 새로운 대안, 거대사>(데이비드 크리스천 지음)와 <인류 최대의 재앙, 1918년 인플루엔자>(앨프리드 W. 크로스비 지음)에 이은 지구사연구소 총서의 세 번째 책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학술회의에 참가한 전세계 연구자 11명의 글이 차례로 실렸다. 책은 사학적 관점에서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과 지구사에 관한 쟁점으로 시작해 지구사를 통한 새로운 역사 서술의 가능성을 엿보고, 지구사의 관점과 시선에 관한 설명으로 끝을 맺는다.

 

‘지구사’(Global History)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의 창틀을 지구 전체로 확장한 개념이다. 유럽중심주의뿐 아니라 중국중심주의, 문명의 세계사, 애국적 세계사, 근대중심주의, 인간중심주의 등 모든 ‘중심주의’가 가진 편향된 눈 대신 지구 전체를 고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눈이 지구사다. 조지형 교수는 지구사를 이렇게 정리한다. “지구사는 인류의 존재 조건으로의 지구성(Globality), 하나의 역사 단위로서의 지구, 지구적·지역적 상호연관성과 상호의존성, 역사 행위자의 지구적·지역적 층위 혹은 의미를 연구하는 것이며, 서유럽중심주의와 모더니티를 뛰어넘기 위한 방법론을 제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령 아이티 혁명을 통해 지구사와 지구사적인 관점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2년이 지난 1791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카리브해의 생도밍고에서 혁명이 일어난다. 흑인 노예들이 일으킨 이 혁명으로 아이티라는 공화국을 세우고 정치적 독립을 이뤄낸다. 오랜 시간 동안 주류 역사에 가려져 있던 아이티 혁명은 최근 그 역사를 복원하고 의미를 찾아내는 연구가 활발하다. 아이티 혁명을 프랑스 혁명의 영향 아래 일어났다고 바라보는 시각은 대표적인 유럽중심주의적 시각이다. 지구사적인 관점으로 이 혁명을 바라볼 때 중요한 것은 가려진 역사의 복원뿐 아니라 그 혁명이 위치했던 담론과 네트워크를 찾아내는 일이다.

 

 

 

아이티의 노예들은 가혹했던 학대에도 당시 국가와 지역의 경계를 넘나들던 자유와 평등 등 인간 보편권에 관한 실천 네트워크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미국 코넬대학 수잔 벅-모스 교수는 아이티 혁명에 관한 연구에서 헤겔 역시 그 네트워크에 개입했으며, 그가 아이티 혁명에 관심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의 철학적 논의에도 아이티 혁명이 영감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자유와 평등 같은 이념이 ‘문명의 땅’ 유럽에서 ‘역사 없는 땅’으로의 일방통행이었던 것이 아니라 서로 교류하며 상호작용했던, 그러나 유럽중심주의에 의해 잊혀지고 지워졌던 과정을 찾아내는 역사가 지구사다.

 

유력한 대안인 만큼 의문과 한계 또한 많아

 

지구사에 대한 밝은 기대와 전망에도 이 책에 ‘도전’이라는 단어가 붙은 데에는 그만큼의 이유가 있다. 지구사에 대한 논의가 출발 단계인 만큼 아직까지 지구사에 대해서는 확신보다 의문이 더 많다. 과연 역사가 개인이 지구사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가능한가, 지구사가 국가사나 지역사와 충돌하거나 갈등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유럽중심주의를 피하려다 다른 중심주의에 편입되지 않을까 등 수많은 의문이 제기된다. 이런 의문에도 여전히 지구사는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손꼽힌다.

 

그 가능성을 얘기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먼저 역사가들의 소통 네트워크다. 지구사적 관점에서의 역사 재구성은 지구 곳곳의 여러 역사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역사가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유럽중심주의적 관점으로 사용되는 용어 대신 지구사적 관점의 용어를 만들고 공유하는 것 역시 중요한 전제다. 이러한 전제만 충족된다면 지구사는 충분히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설 수 있을 거라고 이 책은 강조한다.(안인용 기자)

 

12. 0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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