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인터넷이 개통된 지 일주일만에 '주간 서재의 달인'의 되어 어제 5,000원의 적립금을 받았다. 31등을 목표로 한 '서재질'이긴 했지만 대번에 20위권 안으로 진입하게 되어 좀 머쓱했다(더불어 느낀 건 약간의 우쭐함과 함께 '배신감'이었다. 남들은 이런 '허접한' 일에 더이상 신경쓰지 않는구나! 라는 데 생각이 미친 때문). 어제 거기에 대한 감상을 '알라디너의 길'이란 제목의 페이퍼로 썼는데, 등록하기를 누르는 순간 먹통이 되더니 날아가버렸다. 나의 '뼈저린 반성'과 함께(황지우의 시 '뼈아픈 후회'를 패러디한 반성문이 어제 쓴 글의 골자였다). 여하튼 기억을 더듬어서 다시 쓴다. 내용이 그대로 보전될 리는 물론 없지만.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책 이야기들을 좀 내뱉음으로써 나대로는 '청결한' 정신상태를 유지하자는 게 페어퍼들을 올리는 기본 취지인데, 보기에 따라서는 유난스러워 보일 만도 하고('이 사람'을 보라고 하지 않는가!), 이젠 적립금 '수혜자'까지 돼 버렸으니 발뺌도 못하게 됐다. 지난주부터 집에서 야심한 시각에도 서재를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게 된 탓에 얻게 된 장점은 '진행중'인 글을 거의 만들지 않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고, 그건 내심으로 내가 가장 부듯하게 생각하는 것이다(물론 예전에 '진행중'이라고 미뤄놓은 글들이 채무처럼 아직도 꽤 남아있지만).

 

하지만, 이런 시간투자는 다른 일들(특히 생계!)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당연 든다. 한데, 문제는 나날이 늘어나는 '수거물'들이다. 거의 처치 곤란한 수준이다. 떠오르는 단상들과 참견들을 긁어모으면 매달 책 한권 분량은 적어내려갈 듯하다. 하니, 취지야 그럴 듯하다고 쳐도 방도는 좀 달리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게 요즘 드는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을 가다듬으며 다시 읽는 '뼈아픈 후회'.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도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도로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젋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니었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들 넣어주는 바람뿐

 

 

나는 이런 식의 과장된 수사나 자기 비하에 공감하는 바가 거의 없다. 거기에 모든 게 걸려 있지 않다면, 그냥 후회의 포즈에 불과하기 때문에. '폐허'를 간직하고 있다지만 작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에 조직위의 예술총감독으로 참여하면서 보여준 공로로 얼마전 문화훈장까지 수상한 황지우 시인은 올해부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장으로 봉직하고 있다. 지난 2월 신입생들 맞으면서 그가 '공인'으로서 건넨 축사의 일부는 이렇다고:

 

“바람둥이 제우스가 앙앙대는 부인 헤라와 부부 싸움을 하다가, 패기 시작했는데, 요즘 말로 하면 가정 폭력의 원조였다. 아들 헤파이스토스가 대드니까, 제우스는 아들을 발로 차버렸다. 하늘 끝에서 지상으로 추락한 헤파이스토스는 절름발이가 됐지만, 그는 최고의 대장장이가 됐다. 무릇 예술가란 어딘가 눈에 띄는 결함이나 결핍이 있다. 예술가는 견딜 수 없는 결핍 속에서 위대한 무엇을 해낸다. 여러분도 자신의 결함을 자신의 특징으로 ‘잇빠이’ 키워라.”(강조는 나의 것) 

 

 

 

 

 

 

 

 

  

여기서 총장님 말씀에 끼어든 '잇빠이'가 시인의 표징이자 자존심이다. 더불어 처신에 대한 그의 자기 정당화이다. 또한 더불어, 이 예술가론은 막바로 그의 시론이기도 하다는 걸 굳이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 '뼈아픈 후회'는 그 자신의 사소한 '결함'을 '잇빠이' 뽑아낸 게 아닐까? 연이어 공직을 맡게 된 시인의 소감은 이렇다: “인생 ×됐다. 몽골 초원에서 양떼를 키우며 살고 싶었는데, 또 덫에 걸려 시간을 차압당했다. 지금 몽골의 내 양떼들이 눈을 맞으며 흩어져 있을 텐데….” 그 양떼들이 아마도 시인/총장 황지우가 또 '잇빠이' 키우고 있는 자신의 내밀한(공공연한) 판타지일 것이다. 게눈 속의 연꽃처럼. 아래는 시인/총장 황지우.

 

  

여하튼 그의 '뼈아픈 후회'를 본받아 '뼈저린 반성'을 산문적으로 해보자면, 이런 식이 될 것이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책들이 놓였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책들, 어딘가 몇 군데는 찢기고 해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책들의 사막도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도로 이 무시무시한 책탐에까지 끼어들어오지는 못했다(오, 숱한 구박이여!).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아빠는 자기 생각만 해!")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이어지는 운문.

 

책에 묻혀 아무도 사랑해 볼 틈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저린 반성은 바로 그거다

그 시덥잖은 책들을 위해 그 누구누구를 더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젋은 시절, 철없는 욕심에

내가 자청한 책사기는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니었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잔소리 없이는 들어오지 않는 나의 서재

다만 죽은 저자들의 머리맡에 가라앉는 책먼지뿐.

 

 

신이시여, 이것이 정녕 알라디너의 길이옵니까?!

 

06. 04. 04.

 

P.S. 얼마간 예상했던 것이긴 한데, 오늘(04. 05)로써 서재를 즐겨찾는 분이 600명에 이르렀다. 300명을 넘어선 지 대략 9개월만이다. 과거에도 혼자서 자주 써오던 '독서일기'였지만, 본의 아니게(나는 알라딘의 '고객'이었을 뿐이었다!) '나의 서재'라는 블로그를 갖게 된 이후에는 다른 이들의 이목에도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즐겨찾는 분들의 1/3 가량은 '로쟈'에 대한 이런저런 '비호감' 때문에 서재를 찾는 '적들'이 아닌가 싶고, 반대로 1/3 정도는 소극적으로라도 로쟈를 지지/응원해주시는 '우군'들이 아닌가 싶다. 어느 경우이든, 그리고 언제든 나는 배울 준비가 돼 있다(나의 '수다'는 궁극적으로 세상을 더 많이 알고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한 노력이다). 즐겨 찾으시는 만큼 즐겨 꼬집어주시고 가르쳐주시길 기대한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알라디너 모두의 '파이팅!'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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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6-04-04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아가버린 것'은 허망합니다. '날아가버린 것'은 더이상 로쟈님의 것이 아니니 넘 미련두지 마셔요....^^;

twoshot 2006-04-04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립금 5천원...5천만원도 아니고 5천원 아니겠습니까. 요새는 시집도 6천원이니까 별 도움은 안되겠군요. 그냥 사막을 건널때 낙타에게 물 한모금 먹이면 되겠네요...그리고 낙타를 잡아먹어야 하는건가...쿨럭..

2006-04-04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4-04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흔한 일인데요, 뭐.
marcus님/ 낙타들은 당연히 먹어치워야 하지 않을까요? '책'에 그렇게 나와 있다면!
**님/ 제딴엔 가벼운 수다들이 '무게중심'을 잡는다시니까 제가 무게 좀 잡겠습니다. 한데, 지금 타고 계신 건 뭔가요?^^

마늘빵 2006-04-04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은 오천원 받을 만한 자격 충분해요. 저 방금 로쟈님한테 땡스투 두 개 눌렀어요. 잘했죠?

로쟈 2006-04-04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잘 하셨습니다.^^

로드무비 2006-04-05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시덥잖은 책들을 위해 그 누구누구를 더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밑줄 쫘악.^^


연우주 2006-05-11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늦은 댓글이지만 글 너무 좋은데요? 황지우 시집 검색하다 찾았습니다. 와우! 패러디 글도 너무 좋습니다.

2006-06-17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6-17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여력이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