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에 가득 놓여 있는 책들 가운데, 파란여우님의 <깐깐한 독서본능>(21세기북스, 2009)을 잠시 손에 들었다가 추천사를 쓰기 위해 읽은 대목 중 하나를 다시 읽었다. '파란여우가 생각하는 책'이란 꼭지다. 저자가 자주(?) '우려먹는 이야기'이지만, 펼칠 때마다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건 이 책이 저자의 '실존을 말하는 책'이기도 하다는 걸 시사해주는 대목이기도 해서다. 알라딘에는 이 책의 '미리보기'가 뜨지 않아서, 한 독자의 재량으로 (저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내가 읽은 대목을 옮겨놓는다. 저자의 말대로, "고향을 잃은 사람, 고향의 정적들로부터 떠나온 사람, 진정성을 의심받고 마음을 다한 기도가 하늘에 닿지 못해 부서진 사람, 세상의 바깥으로 홀로 던져진 사람"에게, 혹은 "종종 심허증으로 앓아눕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분들에게 책을 권한다. <깐깐한 독서본능>을 권한다...  

 

“가련한 넋이여! 짐을 꾸려 토르네오로 떠나자. 어쩌면 더욱 멀리라도 가자. 발틱해의 맨 끝까지라도. 할 수 있다면 인생에서 더욱 더 멀리. 북극에 가서 살자. 거기 태양은 비스듬히 땅을 비추고, 낮과 밤의 느린 교대는 변화를 없애고 허무의 반쪽인 단조로움을 북돋아 준다. 거기서 우리 오래도록 어둠의 미역을 감을 수 있을 것이요. 그동안,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극광은 때때로 우리에게 지옥 불꽃의 반사광처럼 그 장밋빛 햇살 다발을 보내 주리라! 마침내 내 넋의 말문이 터지더니만 슬기롭게도 내게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어딘들 상관없어! 다만 그곳이 이 세상 밖이기만 하다면!”
_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중 



자, 이제 내 얘기를 좀 하자.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빗대면 나에게도 책의 역사가 있다. 나도 이거 언젠가는 쓸 테지만(모르죠, 카프카의 유언처럼 모두 불태워 버려! 이런 변덕이 없으란 법도) 내 삶에서의 책은 곧 세상이다. 그것도 그냥 세상이 아니고 새 세상이다. 또 우려먹는 이야긴데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시기는 마흔 살이 된 어느 날부터였다. 남들 마흔과 내 마흔은 다르다. 나는 마흔 살이 되도록 결혼하지 않은 싱글이었고 직장생활도 변변치 못했다.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객(客) 노릇을 했으니 절친도 없었다. 마흔이 되니까 허무했다. 나는 읽지 않는 책을 사들였다. 단지 샀을 뿐이다. 내겐 장식용이라도 뭔가가 곁에 필요했다. 하필이면 그것이 책이었다. 사들인 책을 책상 위에 쌓아놓고 스위트콘과 양송이와 양파, 피망과 소시지, 블랙 올리브와 피자치즈 등의 토핑이 풍부한 책의 화려한 표지를 눈요기하며 영혼의 허기를 채웠다.   

 

폼 잡고 싶은 허영기를 선풍기 날개처럼 윙윙 돌리는 욕망으로 맨 처음 산 것이 ≪완당평전≫이었는데, 완당의 <세한도(歲寒圖)>가 내게 있어 세한도(歲閑渡)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보들레르가 이 세상 바깥의 그 어디로든 떠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고 한 절규, 난 그때 그런 심각한 상태였다. 돈도 없고 빽도 없이, 속된 말로 미모도 재산도 권력도 그리고 연인도 없이 시골 면사무소로 출근하는 늙은 여자에게 누가 애틋한 눈길을 주겠는가. 세상 인심이란 것이 내 주머니가 두둑하면 파리, 모기가 배고픈 상어 떼처럼 달려들고 빈 주머니가 되면 빈대까지 나가 버린다. 함께 술 먹을 상대로는 좋았는지 만날 술타령은 원 없이 했다. 변두리에 술집 하나 차릴 만한 돈이 내 지갑을 떠났다. 허무하고 허탈하여 허허로운 때에 책은 내게 왔다. 첫 책인 ≪완당평전≫ 세 권을 읽으면서 다른 건 잊고 완당의 <세한도>만 내게 남았다. 압축완당이다. 고향을 잃은 사람, 고향의 정적들로부터 떠나온 사람, 진정성을 의심받고 마음을 다한 기도가 하늘에 닿지 못해 부서진 사람, 세상의 바깥으로 홀로 던져진 사람. 책은 불면의 밤을 붉은 포도주처럼 흥건히 위로했다.  

 

그때 내가 잠시 근무했던 면사무소 앞마당에는 수령이 백 년이 넘은 고로쇠나무가 있었다. 여름이 가고 쓸쓸한 가을을 지나 무덤덤하게 겨울을 보내고는 다시 봄을 맞는 동안, 늙은 나무는 출퇴근을 서두르는 키 작은 나를 등 굽은 할머니처럼 마중하고 배웅했다. 경칩을 전후한 이른 봄이 되면 종이컵에 담긴 수액이 직원들의 책상으로 배달되었는데 그 맛이 무척 달콤했다. 늙은 나무가 제 몸의 혈액을 외롭고 신산한 세상의 빈혈에 시달린 나를 다독였다. 나는 한 모금씩 천천히 혀를 입 안에서 굴려가며 아껴 마셨다. 세상은 팍팍했고 나는 춥고 허기졌다. 종종 심허증으로 앓아눕기도 했다. 완당의 <세한도>에 나오는 나무가 고로쇠라고 착각했다. 면사무소 앞마당 늙은 고로쇠나무는 내가 잃은 꿈, 간직하고 싶은 꿈을 알고 있었다. 고로쇠나무 아래에서 독백으로 흘린 내 꿈의 파편들을 나무는 말없이 바람에 쓸려 보냈다. 나는 종종 화가 났고 괴로웠고 외로웠다. 검은 상복 같은 정장을 즐겨 입고 기형도처럼 세상을 증오한다고 발광했다. 면사무소의 늙은 고로쇠나무는 내 삶의 어느 한 시점의 완벽한 증인이다.  

그리고 책이 내게 왔다. 뻥쟁이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풍요로운 수다를 듣고 수잔 손택의 윤택한 지성도 만났다. 이탁오를 읽는 동안에는 그의 고독에 전염되어 밤마다 한 모금씩 소주를 마셨다. 책을 읽기 전 온몸으로 세상을 관통하느라 생긴 상처에 책은 빨간약을 발라줬다. 나는 한 차례 쩌릿쩌릿 아프고 나서 새 세상의 문이 쾅쾅 열리는 것을 봤다. 열려라 참깨 같은 주문은 없었지만 그것은 마법이었다. 황야에서 뒹굴던 여우는 널빤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서툴렀다. 삐뚤빼뚤.  



“결국 인생의 여러 가지 경험들, 이리저리 찢겨지고 갈래갈래 조각난 경험들을 숙고해보건대 내가 참으로 실존의 책상에 임하는 것은 차라리 백지 앞에서, 나의 램프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두어 책상 위에 펼쳐진 흰 페이지 앞에서이다. 그렇다. 내가 최대한의 실존, 팽팽한 실존, 앞을 향하여, 보다 앞을 향하여, 또 그 위를 향하여 긴장되어 있는 실존을 알게 되는 것은 나의 실존의 책상에서이다.”
_가스통 바슐라르, ≪촛불의 미학≫ 중


바슐라르의 책상은 실존의 책상이다. 책상 앞의 나는 어둡고 습하고 아픈 곳을 한 번 더 응시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이 세상이라고 말한다. 책상 위에서 관념을 밝히는 촛불을 창밖으로 내던지고 실존을 밝히는 새 촛불을 켜라고 책은 일러준다. 팽팽한 스트레이트 미문 때문에 소설 말고 에세이를 쓰라고 권유받는 작가 김훈은 밥은 지엄하다고 말한다.   

실존을 말하지 않는 책은 사이비고, 상상력으로 위로해주지 않는 책은 관 속에 넣어야 하고, 최후의 질문조차 남기지 않는 책은 불쏘시개로 끝나야 한다. 밥 먹고 똥 싸고 욕하고 웃고 우는 조촐하고 소박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 책이 열어준 새 세상에서 좀 더 많이, 더 많이, 더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09. 11. 22.  

P.S. 덧붙여, <깐깐한 독서본능>의 초고를 읽고 내가 쓴 추천사의 초안은 이랬다. 굵은 글씨가 뒷표지에 실렸다.

내가 거주하는 알라딘 마을은 책 마을이어서 모두가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수다를 떤다. ‘고수’도 많고 ‘강자’도 득실거린다. 하지만 이 마을의 ‘면장’이라면 단연 파란여우님이다. 염소치기 면장님이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마을 사람들은 늘 궁금해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바로 그 면장님이 드디어 책을 내신다! 당신은 마흔에서야 ‘지각독서인생’을 시작한 ‘종잡을 수 없는 독서가’가 내놓은 ‘뻥 과자’라고 부르지만, 그건 ‘뻥’이다. 책상물림이 아닌 ‘칼을 찬 독서가’의 용맹정진 독서기가 당차게 펼쳐진다. 도저하며 거침없다. 어서 이 소식을 알려야겠다. "여기 한 독서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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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from 뻥 Magazine 2009-11-23 15:49 
    “세상이란 도대체 무얼 말하는 걸까요. 인간들의 집단을 말하는 걸까요. 어디에 그 세상이란 것의 실체가 있는 걸까요. 그 실체가 뭐가 됐든, 강하고 엄하고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나였지만, 호리키에게서 그런 소릴 듣고 나니 문득 ‘세상이란 건 널 두고 하는 말 아니야?’ 라는 말이 혀끝까지 튀어 나왔습니다.”            
 
 
2009-11-22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23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phie 2009-11-22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이루어지는 독서를 하시고 난 평이라 그런 것 같아요. 파란 여우님의 <깐깐한 독서본능> 꼽아놓겠습니다. 읽고 나니 왠지 흐뭇해요. ^^*

로쟈 2009-11-23 00:03   좋아요 0 | URL
네, 어떤 분위기의 책인지 소개가 좀 필요할 듯해서 옮겨놓았어요...

수유 2009-11-23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모로 부러운 책이네요^^

로쟈 2009-11-23 16:12   좋아요 0 | URL
이 참에 저자 대열에 참여하심은?^^

펠릭스 2009-11-23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은 늘 궁금합니다.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독서가)

치유 2009-11-25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경사가 왠지 우리 가족 경사처럼 행복합니다.
아이들 불러서 자랑시켜주고 흐뭇합니다.
여우님의 깐깐한 독서본능 대박기원~!

책읽는나무 2009-11-27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파란여우님이 '이장'님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단계가 더 높았었군요.^^
님의 글에서 이미 여우성님의 책을 읽은 듯하고,
좀 뭐랄까,
여우님의 모습이 눈에 잡히는 듯하여
마음이 좀 애틋하게 느껴지네요.
실은 내가 사는 이작은 동네 면사무소 한 켠에 여우성님이
고로쇠를 홀짝이고 계실 듯하여 확인하고픈 욕구도 생기구요.
암튼 얼른 사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