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IN에 실린 리뷰를 옮겨놓는다. 최근의 (말 그대로) 시사적인 이슈와 관련하여 피터 싱어/조지 메이슨의 <죽음의 밥상>(산책자, 2008)을 읽고 적은 소감이다.

시사인(08. 05. 10) 도대체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개방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안전성에 대한 보장이 미흡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국민건강권과 검역 주권을 포기했다는 비판이다. 비록 미국소라 하더라도 광우병 발생 확률은 극히 낮은 수준이라는 반론도 있지만 고기만 먹는 것이 아니라 뼈까지 고아서 먹는 한국 식문화의 특성 때문에 광우병 감염에 대한 우려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때문에 “과연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도 좋은가?” 하는 것이 우리의 새로운 근심거리가 됐다. 그런 근심의 연장선상에서 아예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겠다. “도대체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호주 출신의 세계적인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가 농부이자 변호사인 짐 메이슨과 같이 쓴 <죽음의 밥상>(산책자 펴냄)에서 던지는 좀더 근본적인 물음이다.  

이미 싱어는 <동물해방>(1975)에서 ‘인간 동물(human animal)’이 ‘인간이 아닌 동물들(nonhuman animals)’에 대해 갖고 있는 오랜 편견과 독단적인 차별을 비판한 바 있다. 그는 그런 태도를 ‘종차별주의’라고 불렀다. 종차별이라고? 인간의 역사가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굴레에서 해방되어온 역사라면 이제는 종차별, 곧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차별’의 철폐와 극복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라는 것이다. 싱어도 지적하는 것이지만, 사실 영국에서 메리 울스톤크래프트가 <여성의 권리옹호>(1792)를 통해서 남성과 동등한 여성의 권리를 요구한 것이 불과 두 세기 전이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듯 보이는 이 요구는, 하지만 당시엔 많은 반발과 조롱을 불러일으켰다. 저명한 남성 철학자가 <짐승의 권리옹호>라고 패러디했을 정도다.

‘동물의 권리옹호’를 주창하는 싱어는 한때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됐던, 여성에 대한 차별이 지금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처럼 동물에 대한 차별 또한 결코 정당화될 수 없으며 윤리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그가 주된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다. 만약 동물들도 우리와 똑같이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가 그 고통을 무시하는 것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만큼이나 윤리적으로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     

‘전형적인 현대식 식단’과 ‘양심적인 잡식주의자’, 그리고 ‘완전채식주의자들’로 분류된 세 가족의 ‘밥상’을 따라가면서 먹을거리의 선택에서 우리가 어떤 윤리적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죽음의 밥상>에서도 저자들의 출발점은 동일하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동물성 단백질의 주요 공급원으로 삼고 있는 닭, 돼지, 소 등의 ‘권리’와 ‘복지’를 고려해야 할 필요성은 그들의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나온다. 즉 닭들이 우리 생각보다 똑똑한가 아닌가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윤리적으로 정말 중요한 문제는 닭이 얼마나 똑똑한지가 아니라 닭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느냐이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고통을 경험할 수 있다면, 불필요한 고통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윤리적 태도이다.

하지만 윤리보다는 비용과 편리가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현실은 비정하며 잔혹하다. 도살할 때 돼지의 고통을 줄이는 일에 인센티브를 주어지지 않는 한 양돈업자들은 돼지의 고통을 던다고 쓸데없는 비용을 낭비하지 않는다. 소들은 사육장에 도착하자마자 근육강화제에 해당하는 합성 호르몬 임플란트를 이식받으며, 초식동물이지만 목초 대신에 항생제가 잔뜩 들어간 옥수숫대를 먹는다. 심지어는 광우병을 유발한 양의 골분(骨粉)까지도 먹는다. 그리고 저렴한 육류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은 이러한 비인도적 공장식 사육의 논리와 비윤리를 묵인하며 지속시킨다. 먹을거리에 대한 우리의 선택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남이 무얼 먹거나 말거나 무슨 참견인가 싶겠지만, 무얼 먹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보다 더 양심적일 수도 있고 덜 양심적일 수도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무엇을 먹느냐는 식성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이다. 저자들의 인용에 따르면, 간디는 어떤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적 발전 정도는 그 나라에서 동물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개인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08. 05. 07.

P.S. '당신은 이제 죽음의 식탁앞에 앉는다'를 타이틀로 한 시사인의 이번주 특집기사는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9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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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화,드라마] 고통스럽게 사는것과 고통없이 죽는것. 행복한 엠마,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Emma's Bliss, Emmas Glück, 2006)
    from 월풍도원(月風道院) - Delight on the Simple Life. 2010-07-29 15:19 
    이미지출처 : tmrw.tistory.com 농장에서 혼자 가축들을 기르며 사는 여자와 췌장암에 걸린 남자가 주인공이다. 암에 걸린 남자는 말기라,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함께 일한 친구의 비자금을 훔쳐서 마지막 여행을 가려고 한다. 하지만 친구한테 걸려서 도망가던중에 차가 여자가 사는 농장으로 추락하게 되고… 엠마와 막스. 둘은 이렇게 우연히 만나서, 서로 다른부분에 대해 갈등도 가지지만,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비로그인 2008-05-07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노애락의 감정을 명백히 갖고 있으며,
더불어 어린 아동 수준의 지능을 지닌 고등 동물을 죽여서 그 고기를 먹는 일에 관하여
깊이 생각해 봐야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저는 물론 고기를 즐겨 먹습니다만..


로쟈 2008-05-07 18:57   좋아요 0 | URL
싱어는 '지능'보다는 '고통'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지능이 모자란다고 사람을 차별할 수도 없으니까요.^^;

라주미힌 2008-05-07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식품'으로 태어난 생명체들에게 행해지는 인간의 '반윤리'적인 일들이 인간에게까지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할 텐데 말이죠... 쩝. 소, 닭, 돼지가 뭔 죄여... 때만 되면 대량학살이나 하고...

로쟈 2008-05-07 18:58   좋아요 0 | URL
사육하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있다고 봅니다...

드팀전 2008-05-07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채식주의자들을 존중하지만 윤리적,정치적 이유로 채식주의자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더우기 때도 때이어서 그렇겠지만 낭만적 생태주의에는 반대합니다. 영화<행복한 엠마,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 중간 중간에 시골사는 엠마가 돼지를 평소처럼 산책가자고 안심시킨 후 살짝 목을 긋고 .."괜찮아..아프지 않지...1.2.3.."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도시에서 간 남자는 그 장면이 충격적이지요.비인간적으로 보이기도 할 겁니다.창졸간에 죽음이기에 그 유혹이 더 비윤리적으로 보이기도 하겠지요.

전 저를 포함한 도시인들이 그런 '낭만성'과 '생태주의'를 윤리적을 브랜딩하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한국인의 문화적 코드이기도 한 노자,장자의 자연주의까지 슬쩍 첨가해서 말이지요. 그런 경향이 계몽적 각성처럼 느껴지게 하는 '라이프 스타일화하는 트렌드 '는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소를 소로 키우지 않고 소고기로 키우는 것,닭을 닭으로 키우지 않고 닭고기로 키우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는 윤리적 측면 뿐만이 아니라 근대적 농업 생산양식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전근대적 방식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그런 상호관계적인 역사성을 탈취시키고 윤리문제로만 한정시키면-싱어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수용자가 낭만적으로 전유해버릴 수 있기때문에-또 다른 벽을 만나고 만다고 생각합니다..

로쟈 2008-05-07 22:33   좋아요 0 | URL
윤리적 이유로 채식주의에 반대하기는 어려울 듯싶은데요. 저도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문제가 되는 건 육식 자체라기보다는 근대식/공장식 사육체제라고 해야겠습니다. 그게 '저렴하다'고는 하나 모두 사회적 비용으로 전가된 것이라는 게 싱어의 지적이고요(환경오염 등). 거기에 비하면 엠마의 돼지들은 매우 '인간적인' 대우를 받은 것이죠. 해서, 첫째 인도주의적 사육과 도축이 이루어져야 하고(고통을 최소화한다는 의미에서), 둘째 육식은 좀 줄여 나가야겠습니다(대부분의 경우 동물성 단백질을 과다섭취하고 있으니까요)...

군자란 2008-05-07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 말씀에 공감합니다.무엇보다 노장사상이나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을 읽었던 사람들에게 누구에게나 그럴수 있는 현실과 유리된 생각으로 자신을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것은 사실인것 같습니다. 저도 그럴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은 있지만 저의 집의 종량제 봉투를 채우는 3분의2이상이 비닐쓰레기이고 날마다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를 보면서 어쩌면 제자신이 이 거대한 종말의 문화에 한쪽끝에서 어쩌지 못하고 죄의식만 쌓여가고 있습니다.충분히 걸어갈수 있는 길을 꼭 자동차를 이용하고,한주에 몇번의 육식을 해야 힘을 쓸것 같고...도대체 방법이 없습니다.

로쟈 2008-05-07 19:0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혼자만 자연주의 섭식 혹은 채식주의를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고요, 현재의 공장식 사육의 문제점(광우병도 기본적으로 거기서 파생되는 문제니까요)에 대한 인식의 필요하고 개선해나가야겠다는 것이죠...

노이에자이트 2008-05-07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가인 존 쿳시도 동물 권리를 주장하던데요.

로쟈 2008-05-07 23:30   좋아요 0 | URL
그게 동양문화권의 생각과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유교에서는 인간과 동물을 엄밀히 구별하고, 불교에서는 모든 생명을 다 동급으로 치니까 그 '사이'(특정한 동물에 대한 권리옹호)가 낯설지 받아들여지는 듯해요...

소경 2008-05-08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싱어의 책을 읽다보니(주로 <동물해방>) 공장식 사육에 대한 폐해에 대해서 동물의 '고통'과 더불어 문제점이 대단하더군요(철분의 섭취를 막기 위해 햇볕에 노출을 막는다든지, 그로 인해 소는 자신의 분뇨를 통해 철분을 섭취하려 한다든지). 더불어 예전에 코를 먹아도 역겨운 오리 농가의 냄새에 기억이 나더군요(한켠으로는 X-파일의 광인육에 대한 에피소드도...).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고기를 먹지만.

걱정이 드는게, 미국의 소의 개방으로 오히려 공장식 사육방법이 도입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로쟈 2008-05-08 11:42   좋아요 0 | URL
이번주 시사인 특집을 참고하셔도 좋겠습니다. 공장식 사육은 우리도 하고 있습니다. 규모에서 차이가 좀 나지만...

노이에자이트 2008-05-09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0년대부터 농촌에선 가정집 뒤곁에서 돼지를 키우지 않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식용동물의 대량사육이 우리나라에도 시작된 시점이라고 봅니다.그 무렵 식용견 업자들이 덩치 큰 새 견종을 만들기 시작했구요.

로쟈 2008-05-11 11:22   좋아요 0 | URL
가내수공업제에서 공장제로의 전환이겠군요...

드팀전 2008-05-11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70년대 '녹색혁명'이라는 것,즉 보릿고개를 없애자라는 구호아래 시작된 농업혁명 부터 이미 공장식 사육제도는 도입된 것 아닐까 합니다. 그 후 담론은 공장식 사육제도의 위생문제였지 공장식 사육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은 한동안 없어왔지요. 당시에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가 모든 성찰을 미루어 둘 수 있게끔 했을테니까요..

그런데 로쟈님이 '윤리적 이유로 채식주의를 반대하기 힘들다"라고 하셨느데 저는 그것에도 의문이 듭니다. 이 말은 채식주의가 윤리적으로 정합적이다라고 볼 수 있는데..전 그 지점에 대해 동의할 수 만은 없다는 생각인거죠. 잡식성이라는 인간의 존재조건 역시 문명화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것이 이미 수 천 수 만년동안 지속되어 종의 특성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육식을 포함한 잡식성 조차 인간의 존재 조건이고 그것을 비윤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물론 공장식 사육의 인위성에 대해서는 저 역시 비판하고 있지만 그것이 윤리의 문제와 연결시키는 일부 채식주의자들의 문제의식과는 좀 다른 선을 긋고 싶군요. 동물도 동물을 잡아먹지요..인간이 동물이라면 -최소한 식물은 아닐테니까-동물섭취 자체에대해서 윤리적 잣대를 긋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아...그리고 로쟈님은 전공하셧으니까..ㅆㅆ ...저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서 나보코프의 <어느 망명작가의 참인생>을 샀답니다.그 책 요즘 안나오은 거 맞지요? 호호호...원제목은 <세바스천 나이트의 참인생>이었지요.<청하>에서 나왔더군요..알라딘 검색에서는 아예 책 자체가 뜨지도 않던데..제가 잘 주워온거 맞지요.ㅆㅆ 개별 가격은 얼마였는지 모르지만 그날 산 책이 모두 5권에 2만 3천원이었으니까..몇 천 원 안했을거 같아요..ㅋㅋ

로쟈 2008-05-11 11:30   좋아요 0 | URL
가령 윤리적인 이유로 육식에 반대할 수는 있지만 채식에 반대하는 건(채식은 비윤리적이야) 어려운 일이 아닌가라는 것입니다. 잡식성 동물의 딜레마에 대해선 저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필요 이상의 육식이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겠지요. '인간조건'이 비윤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라고 하셨는데, 윤리라는 것 자체가 칸트나 사드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조건을 초과한다는 점에서) 비인간적인 것 아닐까요? 배가 고프지만 자기 빵을 남과 나누어먹는 걸 그래도 우리는 윤리적이라고 하지요. 동물도 동물을 잡아먹지만, 우리처럼 착취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잡아먹지는 않지요. 저로선 육식 자체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게 아니고 현재의 (과다한)육식과 비인도적 사육/도축과정에 우리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어느 망명작가의 참인생>은 나름 재미있는 책입니다. 저도 긴 리포트를 쓴 적이 있지요(언젠가 서재에 옮겨놓았습니다).^^

드팀전 2008-05-11 23:20   좋아요 0 | URL
^^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그리고 대량생산/소비에 의존하는 사육/도축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저도 100% 동의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5-11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용소나 감옥처럼 가두어 대량사육하는 방식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그 부작용이 요즘의 조류 인플루엔자나 광우병 아닐까요.

로쟈 2008-05-11 22:38   좋아요 0 | URL
다 자업자득이라고 해야겠지요. 온난화도 그렇고...

도다리맨 2009-08-29 0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께 질문이 있는데요. 인간이 잡식성 동물이 되었다는 것이 종의 특징이 되었다는 말씀을 하실 때 인간과 다른 동물에 대해서 특별히 층을 지어 구분하시지 않는걸로 보입니다. 즉 법이나 <인간끼리만> 소통되는 윤리가 들어갈 영역을 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즉 법이나 인간끼리의 윤리를 제외하고 단지 하나의 동물로서(다른 동물과 구별되지 않는다는 층위에서)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것도 비윤리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요? 로쟈님 생각도 듣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