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뉴스에서 작가 편혜영의 인터뷰 기사를 옮겨놓는다. 인터뷰는 '젊은 창작자를 찾아서'란 기획시리즈의 하나인데 오래전에 시인 김경주 편을 한번 옮겨놓았었다. 공통점은 내가 뭔가를 기대하는 젊은 시인/작가들이라는 것이겠다, 지난번에 나온 소설집 <사육장쪽으로>(문학동네, 2007)은 작가가 (아마도 사소한 인연을 빌미로) 사인본까지 보내주어서 두 권을 갖고 있지만, 아직 절반밖에 읽지 못했다(관련 페이퍼는 http://blog.aladin.co.kr/mramor/1449456). 나는 '편혜영쪽으로' 계속 가고 있는 중이다...

컬처뉴스(07. 09. 19) 나의 일상이 나의 적이 된다면

도시생활의 고단함을 일거에 보상받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연인들(「소풍」)의 모습이나 힘들게 마련한 전원주택단지에서 꿈을 키워가는 소시민(「사육장 쪽으로」)의 삶, 직장상사의 눈에 들어 승진의 기회를 얻고자 하는 회사원(「분실물」)의 고뇌는 우리 삶의 일부처럼 가까운 일상이다. 그런데 그들의 일상이 한순간에 ‘섬뜩’한 악몽으로 변한다면?

전작 『아오이가든』에서 역병이 퍼진 도시에서 개구리비가 떨어지고, 엄마에게 버려진 아이가 쥐의 배를 가르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하드고어(Hard Gore) 원더랜드’라는 평가를 받았던 편혜영이 두 번째 소설집 『사육장 쪽으로』(문학동네)를 펴냈다. 이번 작품집에 실린 작품들도 ‘섬뜩’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전작에 비하면 극단적인 이미지가 줄었고, 아비규환의 ‘아오이가든’ 대신 ‘일상’이라는 공간이 들어섰다.

그런데 이 ‘일상’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우리에게 너무나 낯익고 익숙한 것이어서 더 섬뜩하다. 작가는 이번 작품집의 ‘섬뜩’한 일상들을 통해 마치 평화로운 현대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에게 “당신의 일상은 평화로운가요?”라고 묻고 있는 것 같다. 지난달 인터뷰차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작가에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당신의 일상은 어떤가요?”라고 말이다. 

작가도 누구나 그렇듯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었다. 일반 직장인처럼 “8시에 일어나서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한다는 작가는 “독특할 것이 하나도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작가’라는 타이틀만으로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서 작가에게 다른 직업이 있다고 해서 놀랄 일은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사육장 쪽으로』에서 ‘일상의 악몽’을 쫓고 있는 작가가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배신감이 밀려왔다.

“제 작품에 나오는 일상이 워낙 무섭고 사람들이 조롱받는 느낌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뻔히 불행한 결말이 보이는데도 아둥방둥 살아가고. 근데 작품에서는 그렇지만 사실 사람들의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하나의 긴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시간의 일부잖아요. 현실에서는 그렇게 불안을 느끼지 않고. 사실 저도 마찬가지인데, 어느 날 이런 나의 평범한 일상이 적(敵)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는 그렇게 평화롭게만 보이는 일상의 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작가는 자신의 출근길에 대해 “이제 곧 날씨가 추워지면 광화문의 출근길은 마치 장례식장처럼 변해요. 모두가 검은 양복을 입고”라고 묘사했는데, 일상의 한 순간에 포착된 이미지에서 현실의 ‘불안’과 ‘공포’를 보고 있는 작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악몽의 일상’에서 ‘일상의 악몽’으로

“톨게이트를 지나자 안개가 한층 두껍게 내려앉았다. 차들은 빙판길을 지날 때처럼 서행하고 있었다. 얼마 전 한 대교 위에서 십사중 충돌사고가 일어났다. 사망자 열두 명. 부상자가 서른아홉명이나 발생한 대형 사고였다. 안개 때문이었다.” - 「소풍」

“김이 카드를 돌렸다. 박은 슬쩍 카드를 확인하고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조는 확인한 카드를 손에 감추고 칩을 만지작거렸다. 세 사람은 신호라도 되는 듯이 서로 눈을 맞췄다. 게임이 시작되었다.”- 「금요일의 안부인사」

“박은 가방 손잡이를 꼭 쥐었다. 오늘따라 전철 안이 더욱 붐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서두르는 건데 그랬다. 길이 막히더라도 택시를 타는 게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가방 때문이었다. 가방 안에는 서류가 들어 있었다.” - 「분실물」

인용한 글들은 모두 세 작품의 도입부이다. 도로에서 ‘안개’를 만나거나, 누군가의 집에서 셋이서 ‘카드게임’을 하거나, ‘붐비는’ 지하철을 타는 일은 모두 일상적인 것들이다. 하지만 도입부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안개’와 ‘카드’ 그리고 ‘붐비는 지하철’은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상황이 닥쳐올 것만 같다.

신형철 평론가는 작가의 이번 작품들을 두고 “편혜영 소설은 이제 ‘악몽의 일상화’가 아니라 ‘일상의 악몽화’를 겨냥한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일상의 불안함에서 시작되는 ‘일상의 악몽화’는 이번 작품집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변화를 두고 신형철 평론가는 물론 많은 평자들이 그녀의 소설세계가 “진화했다”고 평가했다. 

“기괴함(grotesquerie)이 낯선 것들과의 조우에서 발생하는 미학적 효과라면 섬뜩함(uncanniness)은 낯익은 것이 돌연 낯선 것으로 전화될 때 발생하는 정치적 효과다. (줄임) 편혜영의 최근작들이 특히 매혹적인 까닭은 편혜영 특유의 실재의 미학(기괴함)이 마침내 실재의 정치학(섬뜩함)으로 진화해가는 국면을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해설 「섬뜩하게 보기」(신형철 문학평론가)

이러한 진화, 혹은 변화에 대해 작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기계문명도 아니고 ‘진화’라는 표현은 좀 그렇네요.(웃음) 첫 책을 묶고 두 번째 책에 대한 방향성을 따로 세운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것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하는 생각은 있었어요. 첫 책은 공간자체도 현실에 없을 것 같은 환상의 공간이나 사건이 많았잖아요.(웃음) 하지만 너무 구체성을 띠는 것은 좋아하지 않아서 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약간 모호한 시공간의 이미지가 그대로 첫 번째 책하고 연결되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작가가 말대로 구체성에 대한 배제는 W시나 D시와 같은 알파벳 지명이나 김, 박, 조 등으로 표현된 사람의 이름들로 나타났다. 이러한 작가의 글쓰기 방식은 구체적인 이름이나 지명이 주는 선입견을 제외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특정한 공간이나 특정한 인물이 아닌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공포감을 배가한다.

이미지로 글쓰기

편혜영 작가의 글쓰기는 서사보다는 ‘이미지’가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측면에서 전통적인 소설쓰기와 구별된다. 하지만 작가에게도 전형적인 소설쓰기의 시절이 있었다. 작가의 등단작이었던 「이슬털기」는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굿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방식이나 내용면에서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가 기괴하고, 잔혹한 이미지로 가득한 글쓰기를 시작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그렇게(전통적인 글쓰기로) 소설을 쓰는 것이 재미가 없었어요. 처음에 쓸 때는 개요를 잡아놓고 구성을 생각하면서 썼는데, 그런 작업이 저한테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하루는 이미지 중심으로 막 써내려가는 데 서사는 미약했지만 저한테는 굉장히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그게 계기가 돼서 이미지로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작가는 “내적인 구조”만 생각하고 글을 쓴다고 했다. 전작 「아오이가든」에서 개구리가 비처럼 내리다가 나중에 누이가 개구리를 닮은 아이를 낳는 것처럼 “이미지의 흐름만 생각하며 글을 써내려 간다”는 것. 물론 그것이 읽는 사람에게는 다소 낯설고 불편할지라도 작가는 스스로에게 “재미있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미지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작가는 “실제 일어난 사건들에서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변두리 도시의 동물원에서 일어난 코끼리 탈출사건을 그리고 있는 「퍼레이드」의 경우 실제로 2005년 발생했던 코끼리 탈출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같은 작품에 나타나는 대도시 한복판의 벙커 역시 그해 떠들썩했던 ‘여의도 벙커’를 생각하면 만든 이미지라는 것. 그리고 그 이미지를 표현하는 방식은 ‘기괴함’과 ‘그로테스크’인데, 이것과 관련해서는 “80년대나 90년대 어법과는 다른 2000년대 새로운 어법의 한 방식”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80년대는 지나치게 사회적인 억압이 있었고, 90년대는 개인적인 것에 대한 억압이 있었던 시기 같아요. 그런데 2000년대는 그런 방식의 억압이 없어요. 억압이라고 한다면 새로워야 한다는 억압만 있는 것이죠. 그 새로움의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저는 기괴함이나 그로테스크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은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것을 가져오기도 하고, 유머를 가져오기도 하죠.”

더불어 작가는 작품에서 비전이나 전망에 대한 감각은 일부러 떨치려고 한단다. 그는 “처음에 글을 쓰며 힘들었던 것이 작품에 비전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작품에 비전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그것에 대한 불만이 너무 싫었죠. 그래서 아예 출구 자체가 막혀있는 것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그게 현실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한 박자 쉬어가기

이번 두 번째 단편집은 첫 소설집 『아오이 가든』 이후 2년 만에 묶은 것이다. 전작이 등단 이후 5년 만에 나왔던 것에 비하면 굉장히 빠른 속도인데다, 총 8편이 실렸으니 1년에 꼬박 네 편씩을 쓴 셈이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이제 좀 “쉬어가고 싶다”고 했다.

“내적으로 고갈된 상태가 된 것 같아요.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한 작품 쓰고 생각을 전환하거나 이전 작품에 대한 생각들을 떨쳐버리고 갈 수 있는데 물리적 시간 때문에 그런 작업들을 하지 못했어요. 그런 리듬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니 내가 마치 생산자가 돼서 뭔가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이제 한 두 계절 쉬면서 멀찍이 떨어져 보고 싶어요.”

젊은 작가 중에서도 편혜영 작가는 소위 ‘잘’나가는 작가에 속한다. 그가 2년 만에 발표한 원고들을 모아 단편집을 묶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인데, 그의 ‘쉬고 싶다’는 고민이 행복한 비명처럼 들리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기계처럼 쏟아냈다’는 스스로의 진단이 어떤 쉼으로 이어져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위지혜)

07. 09. 20.

P.S. 나도 궁금해진다! 참고로, <문학동네>(가을호)의 '젊은 작가특집'이 편혜영을 다루고 있으므로 그의 독자들이라면 필히 챙겨두어야겠다. '작가초상'은 동료이자 후배작가 김애란이 맡았다. 작가의 '스타일'을 고려하자면 <사육장쪽으로>의 뛰어난 점을 열 가지 이상 주워섬겨야겠으나, 나는 당장에 볼일은 없을 거라는 예단으로 흠을 잡겠다. 가령 <소풍>과 <분실물>을 지난달에 읽었는데, 나는 '이미지'로 끌고가는 이야기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눈에 띈다고 생각했다(<사육장쪽으로>의 기억이 워낙에 강렬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중간쯤 읽으면 이미 결말이 예상되는 소설들이었다. "작품에 비전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탈피한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출구 자체가 막혀있는 것"만이 우리의 현실일까?(그건 또 다른 강박 아닐까?) 작가의 하드고어 원더랜드에 '놀라움'이 더 충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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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20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불향히도 제 취향은 아니었다는... ㅠㅠ

로쟈 2007-09-21 09:47   좋아요 0 | URL
모든 작가들을 좋아할 수는 없는 일이죠...

자꾸때리다 2007-09-21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 분이 참하게 생기셨네요. 므흣...

마늘빵 2007-09-21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첨 뵙는 분이지만, 므라빈스키님과 같은 말을 하고팠어요. '착하게' 생기셨다고. ('참하게'를 '착하게'로 읽어버렸습니다. -_- )

로쟈 2007-09-21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소설들과의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참하게'와 '착하게'는 동의어군요...

2007-09-21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