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소설집이 나왔다. 편혜영의 <사육장 쪽으로>(문학동네, 2007). 발표 당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작품이어서 나중에 작가의 작품들을 더 챙겨읽은 기억이 있다. 주로 문학잡지에 발표되는 단편들이기에 일일이 찾아 읽기가 번거로웠는데 한데 모아놓으니 보기에 편하지 아니한가. 내가 좋아하는 건 작품의 '악몽적인' 세계라기보다는 작가의 하드보일드한 문체이다. 나는 작가가 편혜영식 <변신>, 편혜영식 <성>을 써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는 쪽이다. 사육장쪽이 그쪽이라고요?..

경향신문(07. 07. 26) 편혜영 소설집 ‘사육장 쪽으로’… 끔찍 기괴한 일상 비판

작가 편혜영씨(35)가 두 번째 소설집 ‘사육장 쪽으로’(문학동네)를 발표했다.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2005년 첫 소설집 ‘아오이 가든’(문학과지성사)을 내면서 무서운 신예로 주목 받았다.

썩어들어가는 몸, 절단된 사지, 시체를 뜯어먹는 쥐 등 하드코어 이미지들이 난무하는 ‘아오이 가든’의 세계는 초현실적 시공간 속에서 빚어지는 엽기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사건들이 지배했다. 작가의 메시지는 소설뿐 아니라 현실도 이렇게 끔찍하고 불안하며 기괴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런 악몽 같은 이미지들이 신인인 저를 기억시키는 데 큰 몫을 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충격적인 이미지만 주목을 끌게 돼 그런 상황을 빚어낸 현실을 보여주는 데는 역부족이었지요. 그래서 좀더 현실과 가까운 작품을 쓰자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결과물이 이번 소설집이다. 총 8개 단편 가운데 4편이 주요 문학상 후보작이기도 하다. 표제작인 ‘사육장 쪽으로’는 현대문학상·이수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 ‘퍼레이드’는 황순원문학상, ‘분실물’은 이효석문학상, ‘첫번째 기념일’은 이상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이 같은 편혜영 소설의 특징은 부조리한 상황, 정체성이 혼란스러운 인물을 통한 문명비판이다.

‘사육장 쪽으로’는 도시민의 꿈이라는 전원주택에 살기 위해 많은 융자를 받은 직장인 ‘그’가 어느날 출근길에 파산통고가 담긴 우편물을 받는 데서 시작한다. 그가 인생을 걸다시피한 전원주택은 실제로는 열흘 만에 지어진 조립주택이며 단지 내의 다른 집들과 판박이인 데다 인근 사육장에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로 인해 황량하면서도 불안한 느낌을 준다.

그와 그의 아내가 집을 뺏기고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는 가운데 치매에 걸린 노모는 아랫도리를 벗은 채 정원으로 뛰쳐나오고 개 사육장을 탈출한 개들이 들이닥치면서 아이를 물어뜯어 실신하게 만든다. 소설은 담요에 싼 아이와 울부짖는 아내, 노모를 차에 태운 그가 사육장 옆에 있다는 병원을 찾아 헤매는 장면에서 끝난다
.

'퍼레이드’에서는 쇠락한 U공원을 배경으로, 퍼레이드에 동원된 여섯 마리의 코끼리와 네 명의 퍼레이드맨 이야기가 펼쳐진다. 알록달록한 고깔과 색색의 망토를 걸친 코끼리들, 당나귀·고양이·개·수탉으로 구성된 브레멘 음악대로 변장한 남자들은 비슷한 처지다. 고향인 라오스를 떠나온 코끼리들은 천천히 걸으며 코로 과자를 받아먹는 것밖에는 별다른 재주가 없다. K, P, E, S라는 이니셜로 불리는 남자들 역시 공사장 막일, 이삿짐 센터 직원, 텔레마케터,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거쳐 아이들에게 손을 흔드는 놀이공원의 마스코트가 됐다.

어느날 퍼레이드 도중 코끼리들이 감쪽같이 탈출하고 남자들은 다른 자리에 배치받는다. 유령의 집에서 드라큘라가 된 K는 자기가 당나귀인지 드라큘라인지 헷갈리고, 청소를 맡은 P와 E는 비질을 하다가 과거 습관 때문에 아이들에게 손을 흔든다. 롤러코스터 검표원인 S는 검표원 복장으로 퍼레이드를 하는 중이라는 착각을 일으킨다. 마침내 도심의 벙커 속에서 코끼리들이 발견되고 남자들은 새로 도착한 인형옷을 입는다.

‘분실물’은 무능한 직장인 박이 상사인 송으로부터 회사의 비자금과 관련된 일을 지시받는데 이 내용이 담긴 서류를 지하철에 놓고 내리면서 빚어지는 악몽 같은 일상을 담았다. 일생 일대의 기회를 놓친 박은 분실물 센터를 다그치지만 가방의 모양과 내용물조차 기억이 안 나고 스트레스로 인해 회사 동료들, 거래처 직원의 얼굴도 헷갈린다. 자꾸 땅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는 그는 텅 빈 가방을 찾은 후 송에게 분실 사실을 전화로 보고하려 하지만 소음 때문에 대화조차 제대로 안된다.

‘첫번째 기념일’은 리모델링을 앞두고 대부분 입주자가 퇴거한 아파트 6층에 사는 여자에게 홈쇼핑으로 구입한 물건을 배달해주는 택배회사 직원의 이야기다. 늘 배달물이 밀린 그는 전원이 꺼진 엘리베이터 대신 깜깜한 계단을 올라가지만 늘 여자는 부재 중이다. 그의 유일한 취미이자 희망은 더 나은 직장을 찾기 위해 이력서를 쓰는 일이지만 스스로도 아무 소용 없는 일임을 안다. 어느날 여자가 인근에 들어서는 테마파크의 놀이기구 시험운행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여자를 찾아가고, 연인이나 되는 것처럼 나란히 곤돌라를 탄다. 그후 여자가 받지 못한 물건 목록이 적힌 이력서를 여자에게 내민다.

이처럼 대개 익명 처리된 편혜영의 주인공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현실은 손끝 하나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면서도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사람을 덮치는 사나운 개, 땅 밑의 코끼리, 지진, 버려지거나 공사 중인 건물 등 불안 요소는 어디에나 잠복해 있다. 작가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에 못지 않게 우리 현실은 끔찍하다”고 반복해서 말한다.(한윤정기자)

07. 07. 26.

P.S. 관련페이퍼로는 '편혜영과 사육장적 상상력'(http://blog.aladin.co.kr/mramor/1115174) 참조.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물만두 2007-07-26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추리소설을 써주기를 바랬습니다^^:;;

로쟈 2007-07-26 23:55   좋아요 0 | URL
물만두님다우십니다.^^

비로그인 2007-07-26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오... 아오이가든, 사육장, 모두 관심있어요!
로쟈님 페이퍼 감사합니다 :)

로쟈 2007-07-26 23:56   좋아요 0 | URL
'가든'하고 '사육장'은 좀 다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