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모닝커피 한잔 마시면서(정신도 차릴 겸) 신문들을 훑어보는데, 문학기사 하나가 눈에 띈다. 계간 '세계의 문학' 봄호에 실린 문학평론가 천정환의 '2000년대 한국 소설의 독자'에 대한 리뷰기사인데 이전에 읽었던 리뷰들과 초점이 전혀 달라서이다(참고로, 이번 봄에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평문이다).

책이 출간되기 이전부터 나온 리뷰들의 초점은 문학독자층이 변화하고 있다는 그닥 새롭지도 않은 얘기였는데(사실 <근대의 책읽기: 독자의 탄생과 한국근대문학>(푸른역사, 2003)의 저자인 천정환씨는 한국 근/현대문학 독자층 연구라는 '블루오션'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한국소설 중간계급 전유물 전락'이라고 타이틀을 뽑게 되면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 것이다. 다시금 다른 언론의 리뷰들을 찾아보니까 '25-35세 여성이 문학시장 움직인다' '엘리트 독자 가고 대중 독자가 왔다' 같은 타이틀이 붙어 있다. 거의 '라쇼몽' 수준 아닌가? 가히 '독자의 시대'가 도래한 걸 입증해주는 듯도 하다. 당신이 무얼 쓰든지 간에 독자는 자기 구미에 맞는 것만 읽어내는 시대! 나는 가장 최근의 리뷰를 편들고 싶다. 세 편의 리뷰를 자료삼아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7. 03. 12) 한국소설 중간계급 전유물 전락
“하위계급의 남성 및 여성 독자와 상층계급의 남성 독자는 소설로부터 이탈했다. 남은 건 엽기·추리·무협 등 하위 서사장르를 소비하는 남성 중간계급 일부와 여성 중간계급뿐이다.”
문학평론가 천정환씨(성균관대 국문과 교수)가 계간 ‘세계의문학’(민음사) 봄호에서 ‘2000년대의 한국 소설 독자’에 대해 분석했다. 그는 “한국인 작가가 한국어로 쓴 소설을 읽는 독자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지만 번역된 외국소설을 읽는 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늘어나고 있다”면서 ‘한국 소설의 독자’와 ‘한국의 소설 독자’는 구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한국 소설의 독자가 줄어드는 것을 한국의 소설 독자가 줄어드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된다는 뜻이다. 또 한국 소설의 독자에게만 집착하는 현재 문단의 구조에 대한 간접적 비판도 담고 있다.
천씨는 “한국 소설이 잘 읽히지 않는다면 이는 교육과 훈련, 배제와 선택을 통해 걸러진 ‘한국 소설’ ‘한국 작가’가 독자들의 삶·취향과 불화의 상태에 있는 것”이라면서 “상·하위 계층을 거의 잃어버린 주류 한국 소설은 프티부르주아 여성과 여학생, 문학청년 이외의 문화 수용자들의 관심을 잘 끌고 있지 못하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1950~60년대를 거치면서 엘리트 독자와 대중독자로 재편된 한국 소설 독자 가운데 엘리트 독자인 상층계급 남성들은 문학을 떠났다. ‘교양’의 발로로 소설을 읽던 이들은 현재 계간지 시스템으로 유지되는 한국문학 질서의 근간이기도 하다. 저자는 소설 애호가로 알려진 정치학자 최장집씨나 80년대까지 신문 문학월평을 꼼꼼히 챙겨봤다는 노회찬 국회의원을 이 범위의 독자로 들었다.
그러나 386세대 이후 이같은 엘리트 독자는 사라졌다. 아직까지 소설을 읽고 있는 엘리트 독자는 최후의 근대적 독자일 뿐 탈근대의 독자는 아니라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인문학 전공자와 문학 연구자조차 연구는 할 망정 소설 독자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대중독자 가운데서는 전통적 의미의 노동계급이 완전히 떨어져 나갔고 남성 중간계급과 남학생 일부, 여성 중간계급과 여학생층이 남았다. 그런데 남성 중간계급과 남학생 일부는 주로 엽기·추리·무협 등 하위 서사장르 소비의 주역들로, 순수·본격을 추구하는 한국문학이 이들을 놓고 영화·만화·게임과 싸우기에는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그렇다면 남은 독자는 여성 중간계급과 여학생층인데 이들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같은 칙 릿,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일으킨 공지영 신드롬, 그리고 일본소설 수입붐의 주역들이다.
천씨는 “소설에서의 일류(日流)에 드러난 초국적·무국적의 소설 향유는 세계화한 삶이 소설 향유에 미치는 영향으로 막기 힘든 대세이며, 80만부가 팔려나간 ‘우행시’의 성공에 대해서도 문단은 스스로 반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면서 소설 독자가 사라진다는 것은 빈사상태의 한국문학이 독자에게 투사한 자기모습일 뿐 그들이 모르는 독자층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결론을 맺었다.(한윤정기자)

한국일보(07. 02. 27) 25-35세 여성이 문학시장 움직인다
'칙릿(chic lit)을 잡아라.' 젊은 여성(chic)들을 위한, 그녀들의 문학(literature)이 21세기를 호령할 태세다. 문학ㆍ출판계가 그 같은 변동상에 감응하고 있다. <내 이름은 김삼순> <브리짓 존스의 일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 젊은 여성들 사이에 인기를 끈 영상물의 성공에서 확인되는 추세에 대한 문학의 대응이다. 신간 일본 소설은 보다 직설적이다. <워킹 걸 워즈>. 매일 전쟁 치르듯 살아 가는 30대 전후의 여성 직장인들을 속도감 있게 그린 소설이다(랜덤하우스).
성균관대 국문과 천정환 교수는 계간 <세계의 문학>을 통해 "25~35세의 비물질 노동 종사 여성들은 문화적 소비에서 일종의 전위 부대"라며 "지난해 출판계 전체의 화두였던 칙릿은 향후에도 한국 소설의 유력한 독자층으로 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층 계급 및 남성 독자의 상당 부분이 소설 독자에서 이탈한 현재, 순수ㆍ대중의 장벽을 허물며 21세기 초 문화계의 화두로 등장한 칙릿 층은 고학력 중간층이라는 외형적 공통점을 지닌다. 천 교수는 그러나 "그들의 상당수는 불완전 고용 상태에 놓여 있다"며 그들의 현실적 입지를 외면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고학력 전문직이지만 사실상 직종 내부에서 성별로 분업화하고 저임금과 비정규직으로 차별화한 노동에 투입되기 십상인 현실을 가리키는 말이다. 노동과 소비의 불일치, 출신 계급(부모의 계급)과 소속 계급(자신의 현실)의 불일치 등 현실에서의 이중적 지위가 따라서 엄존한다는 지적이다. 본디 근대 소설의 가장 중요한 독자층이었던 여성 중간 계급과 여학생 층은, 최근 가족과 결혼의 문제에서 결정권이 강해짐에 따라 더욱 큰 지분과 역할을 부여받게 됐다는 것.
천 교수는 "성공한 대중 소설은 독자의 취향과 의식의 평균치에 대해 과감히 도발하는 소설"이라며 관련 작가의 분발을 촉구했다. 그는 <나의 달콤한 도시>에 대해 "TV나 영화 같은 데서 심심찮게 본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한 네티즌의 서평을 인용, 기시감과 상투성을 극복할 것을 작가들에게 요청했다. 천 교수는 서사가 매우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상식을 비트는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는 성공한 작품에 속한다고 평했다.
천 교수는 "1990년대 이후 문학 독자의 재생산 구조는 상당히 달라졌다"며 "소설의 전통적 독자가 이탈하고 재구성되면서 우리 눈앞에서는 문명사적 전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2000년대 한국 소설의 독자를 주제로 펼쳐진 논의에서 천 교수는 "하위 계층과 젊은 세대는 블로그와 UCC 등 인터넷을 통한 산 지식 습득과 향유에만 집중, 독서 문화에서 이탈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며 "이들이 문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 문학의 미래가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편 국립국어원은 최근 문화 지형도를 바꿔 놓고 있는 칙릿을 '꽃띠 문학'으로 부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장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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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07. 02. 23) 엘리트 독자 가고 대중 독자가 왔다
■ 세계의 문학 ‘2000년대 표준 독자’ 분석
서울 거주 22세 여대생 김모 씨. 한 달에 한두 번 시내 중심가 대형 서점에 가며 ‘에쿠니 가오리’류의 소설을 사 본다. 베스트셀러 목록이나 인터넷 독자 서평을 살펴보긴 하지만 구매를 결정하는 것은 책의 내용을 직접 확인하고 나서다. 대학 도서관이나 대여점, 친구들에게서 빌려 읽을 때도 있다. 독서 시간은 잠들기 전 1시간 정도. 인터넷 이용 시간이 훨씬 많고 개봉 영화 무료 시사회를 알뜰히 챙기는 영상 세대지만 재미있는 소설이라면 기꺼이 손에 잡는다.
다음 주 출간되는 ‘세계의 문학’ 봄호에 소개되는 ‘2000년대 표준 문학 독자’의 모습이다. ‘세계의 문학’은 특집 ‘누가 문학을 읽는가’에서 한국의 문학 독자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짚었다. 결론은 ‘엘리트 독자가 물러난 자리를 대중 독자들이 채우고 있다’는 것.
○ 엘리트 독자가 쇠하다
이 특집에서 성균관대 천정환 교수는 ‘2000년대 한국소설 독자 Ⅱ’라는 기고를 통해 엘리트 독자가 사라져 간다고 선언한다. 그는 직접 인터뷰한 모델 독자 G, C, Y 씨를 통해 엘리트 독자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사회과학을 전공한 40대 초반의 남성 교수. 주요 한국소설 작품과 김윤식 백낙청 등 대가급 평론가의 저작을 읽었다. ‘창작과 비평’ 등 문예지를 읽고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한국 현대소설 사상 최고의 유산이라고 믿는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선 ‘한국문학의 대안’인지 모르겠다며 유보적이다.
인문학 출판사의 40대 남성 주간. 문예지는 안 보지만 우리 작가의 주요 작품집과 장편을 꾸준히 읽는다. 천명관의 ‘고래’, 박민규의 ‘카스테라’ 같은 30대 작가들의 작품을 재미있게 읽었고 ‘좋은 문학적 역량을 갖고 있다’고 평한다.
문학박사 학위를 소지한 30대 초반 여성 대학강사. 한국소설 중 어떤 작품이 대중적으로 읽히는지, 평단에서 회자되는지에 대해선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현장의 한국문학 작품은 거의 읽지 않는다. “재미가 없을 것 같고, 안 읽어도 세상 사는 데 별 문제가 안 되기 때문”이다.
독자 G 씨는 우리 문학 교육과 인문학 제도가 길러 낸 가장 모범적인 엘리트 독자다. C 씨는 성실한 엘리트 독자이긴 하지만 G 씨에 비해 문학의 변화를 보는 태도가 유연하다. 천 교수는 “Y 씨는 문학도이면서도 G, C 씨와 같은 선배 엘리트 독자의 명맥을 잇지 못하는 독자”라면서 “전통적 의미의 엘리트 독자가 단절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밝혔다.
○ 재미난 이야기를 찾는 대중 독자들
그렇다고 문학 독자 자체가 사라지는가? 이 특집에 따르면 엘리트 독자의 뒤를 잇는 것은 들끓는 대중 독자다. 출판문화연구소 백원근 책임연구원은 특집 기고 ‘통계로 본 소설 독자’에서 지난해 ‘국민 독서실태 조사’(성인 1000명, 초중고교생 3000명 대상)를 꼼꼼하게 분석했다. 그 결과 남성보다는 여성이, 세대별로는 20대가, 대학생과 화이트칼라 직업군이 소설을 많이 읽으며, 소설 독자들이 다른 문학 장르 독자들보다 영화를 많이 본다는 등의 자료를 토대로 ‘서울 거주 22세 대학생 김모 씨’라는 2000년대 표준 문학 독자의 초상을 뽑아냈다.
이들에게는 앞선 엘리트 독자들처럼 한국문학 작품을 읽거나 최소한 알아야 한다는 ‘충성심’이 없다. 일본소설이나 영미권 치크리트(chick-lit) 등 국적을 가리지 않고 읽으며 소설의 선택 기준은 ‘재미와 오락’이다. 백 연구원은 이 같은 대중 독자들 때문에 “소설 판매량은 안정적이고 견실하며, 다양한 방식을 통해 여러 사람이 한 권의 소설을 읽는 경향이 있다”면서 소설은 힘센 장르라고 밝혔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이 조사에 따르면 한국소설은 엔터테인먼트 경쟁력 제고가 필요한 조정 국면”이라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김지영 기자)
07. 0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