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가 끝났다.

원고는 세 꼭지 더 써서 65% 달성.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8월말 일본 출장도 있고, 휴가로 밀린 일들에 정신 없이 바쁠 텐데
8월말까지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려면 미친 척하고 써야 겠다.

천재가 아닌 이상 글은 새벽 3시에 찾아 오는 영감으로 쓰는 것도 아니고
재능이나 톡톡 튀는 감각으로 쓰는 것도 아니다.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거다.
무식하게 책상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어야 한다.
책상과 의자 사이에 몸을 집어 넣고 있으면 어떻게든 꾸역꾸역 쓸 수 있다.

며칠 전, 한 잡지사로부터 원고청탁을 받았다.
"내 인생의 책 한 권"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 달라고 했다.
한참 고민했다. 바쁘기도 하지만 도대체 딱 한 권의 책을 어떻게 골라야 할지...

[CEO 책에서 길을 찾다]는 책을 도서관에서 쭉 넘겨 본 적이 있는데,
이메이션코리아 라는 회사의 이장우 사장은 이명박의 <신화는 없다>를 추천했다.
그 책을 읽고 자기 보다 더 고생한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았다나?
(뭐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고생을 많이 한 심형래의 <디 워>도 비난하면 안되지! 쩝)

그의 책 추천에 시비를 걸고 싶지는 않다.
사람마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다른 거니까.
무슨 의도로 그런 책을 추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책 추천은 익명의 다수에게 영향을 미친다.
몇 명이 되었건(단 한 명이라도!) 타인의 인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책을 추천하거나 소개하는 건 조심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영향까지는 아니더라도 책값을 날리게 할 수 있다.)

호감을 갖고 있는 잡지인데다 원고 분량이 5.5매 밖에 안 되기에
쓰겠다고 했는데, 어떤 책을 선택할지 여전히 고민 중이다.

수영복 한번 안 입어 보고 휴가가 끝났다.
뭐 수영을 하는 것도, 사람 많은 해수욕장에 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으니
이번 휴가에 후회는 없다. 생각 보다 원고를 많이 쓰지 못했을 뿐.

어제 친한 후배 N이 응원을 한다며 크리넥스를 한 박스 들고
오피스텔에 놀러 왔다.
지나 다니며 찍어 뒀던 아담한 이자까야에서
저녁을 먹으며 기린 이찌방을 마셨다.
(아...넘 맛있어. 기린 이찌방. 정말 이름대로 쵝~오!)

계산을 하려 했는데 응원하러 왔다며 술값도 후배가 냈다.
꽤 나왔는데... (고마워, 남생아!^^)

오피스텔은 독립 기념으로 받은 주변 사람들의 선물들로 가득하다.
스텐드, 체중계, 커피머신, 무선 주전자, 머그컵, 그릇, 공기청정기,
스팀다리미, 토스트기, 믹서기, 정수기, 테팔 후라이팬, 빨래 건조대...
금일봉을 주신 분도 세분이나 있으니 거의 내가 산 게 없다.
고맙고, 또 미안해서라도 좋은 글을 써야 겠다.

휴가가 끝날 때는 우울모드에 빠지기 쉽다.
그래도 다음주에 광복절이 있으니 희망을 가지자.
또 9월이 되면 추석 연휴가 있으니!

p.s) 자꾸 어제 마신 기린 이찌방이 생각난다.
하루 종일 틀어박혀 글을 쓰자는 의지와
친구를 불러내서 한잔 하고픈 욕망이 상충하고 있다.
과연.... 오늘 밤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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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8-11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잘 나가시는데요? :) 미리 사인받아놔야될거같은데...사진도 잘 찍어놓고.

BRINY 2007-08-11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그렇게 시간을 내서 좋은 글을 쓰시는지요!! 저는 다음주에 휴가 다녀온 후 부터 분발해서 논문을 붙들어 보겠습니다.

Mephistopheles 2007-08-11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참 그래요.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을 뿐더라 아주 가끔 책 좀 권해달라는
부탁을 들으면 난감하던데.. 니가 제일 좋게 읽은 책 좀 권해 봐..해도..대답은
언제나 없어..혹은 너무 많아로 일관하게 되더군요...이런 회색주의자 같으니라구.!

다락방 2007-08-1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어쩌셨어요? 욕망에 무릎 꿇으셨나요? :)

kleinsusun 2007-08-12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잘 나가긴요. 휴가 내내 방콕하고 있는데요.ㅋㅋ

BRINY님, 다음주 휴가시군요. 부러부러~ 전 내일부터 출근이예요. 흑흑
이번 휴가에는 어디로 떠나세요? 휴가 잘 다녀오시구요, 논문에 가속도를! 홧팅!^^

Mephistopheles님, 네...책 추천하기 참 어려워요. 그것도 딱 한권만!
무슨 책을 추천할지 고민중이예요. 책 쩜 추천해 주세요!^^

다락방님, 어떻게...아셨어요? 어제 욕망에 무릎을 꿇고 알딸딸한 상태로 들어와서 푸~욱 잤답니다. ㅠㅠ
 

 
 
휴가 4일 째.
원고 세 꼭지를 더 썼다. 60% 달성!

모처럼 조조영화를 봤다. 그 말 많은 <디 워>를.
하도 시끌시끌하기에 궁금해서 봤다.
그래도 뭔가 있으니까 그렇게 인터넷이 <디 워> 얘기로 화끈거리겠지?

조조라 인당 4,000원에 카드 할인까지 받아 둘이서 5,000원에 봤다.
휴...다행이다! 제 값 내고 받으면 돈 아까워서 쓰러질 뻔 했다.

" <디 워>는 영화가 아니라 70년대 청계천에서 마침내 조립에 성공한
미국 토스터기 모방품에 가깝다는 점이다.
'헐리우드적 CG의 발전', '미국 대규모 개봉' 등 영화 개봉 전부터
<디 워>를 옹호하는 근거의 핵심축으로 등장한 이런 담론들과
박정희 시대에 수출 역군에 관한 자화자찬식 뉴스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논란이 된 이송희일 감독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는 좀 심하다 싶었다.
뭐 이렇게까지야! 하며.

영화를 본 지금 이송희일 감독한테 술이라도 한 잔 사고 싶다.
(농담 아님. 이송희일 감독의 연락처를 아시는 분은 제보를 부탁 드려요!^^)
그 보다 <디 워>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다.

<디 워>는 영화라기 보다는
중소업체가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며 밤새 공장을 돌려 만든
수출을 위한 "제품" 같다.

심형래는 감독이라기 보다는 사장 같다.
영화 끝나고 사진과 함께 자막으로 보여 주는 심형래의 제작 후기에는
"우리 직원들"이라는 말이 반복된다.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말도 나오는데
제조업체 공장들에 펄럭거리는 현수막에서 보던 말을
극장에서 보니 기분이 묘하다.

도대체 "세계 최고"의 뭐란 말인가?
CG? 매출액? 극장 점유율?

"세계 최고"의 영화란 없다. 있을 수가 없다.
아카데미상을 타도, 칸 그랑프리를 타도
"수상작"일 뿐이지 "세계 최고"는 아니다.
예술에 있어서 "세계 최고"란 존재하지 않는다. 공산품이면 몰라도.

심형래는 충무로가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항의할 필요가 없다.
충무로 대신 무역업계에서 인정과 지지를 받으면 된다.
요즘 수출 업체들은 쉬지 않고 오르는 해상운임 때문에 난리다.
물류비도 안 들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영화, 제발 많이 수출하시라!
수출이 생업인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심형래 사장님을 존경하고 지지한다.

허리우드 블록버스터들도 모두 결말이 뻔한 단순한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인물들의 "갈등"과 "감정"이 입체적으로 표현된다.
<디 워>도 여의주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를 이무기한테 바쳐야 하는
남자의 갈등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면
그토록 영화가 밋밋하지는 않았을 거다.

사랑하는 연인이 이무기한테 쫓겨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500년 후 환생해서도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그 놈의 여의주 때문에
여자가 죽는다면 슬퍼야 되는 게 정상 아닌가?
충분히 감정을 우려낼 수 있는 스토리를 살려 내지 못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디 워>는 CG만 보라고! 정말 볼만한 CG라고!
그런데...영화를 보면서 영화 음악만 떼어 내서 들을 수 없는 것처럼
어떻게 CG만 보나?

어렸을 때부터 심형래를 좋아했는데,
고3때 심형래가 칙칙이로 나오는 <내일은 챔피언>을 보면서
넘 웃겨서 울기도 했는데(녹화 해 놓고 봤다),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 같은 심형래가 돈키호테처럼 멋져 보였는데
아....넘 실망이 크다.

다른 건 몰라도 수출, 세계최고 이런 말은 안 했으면 좋겠다.
스스로를 감독으로 생각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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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7-08-10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분한 관객으로서 영화 이야기를 하셨네요. 요즘 디워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과열돼서 숨돌리며 읽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디워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서 오늘은 100분 토론까지 하더군요. '심사장님' 표현이 재밌고 적절한 것 같아요. 심형래 씨가 '우리 스탭'이라고 소개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저는 논쟁이 좀더 지속되기를 바래요. 뜨거워지고 격해지는 것은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중요한 것은 디워 논쟁이 지금 핵심에 있다는 거죠. 그런데 주위에서는 자꾸 앓는 소리를 한다거나 덮어놓으려고 하는 것이 속상하네요. 심형래 씨가 '여의주'를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스파피필름 2007-08-10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니 대체 어느정도길래.. 하는 생각에 영화가 더 보고 싶어져요 -_-;
휴가 재미나게 보내세요.. 수선님 ^^

kleinsusun 2007-08-10 0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 오늘 100분 토론을 했어요? 정말 최고의 광고네요.100분 동안! ㅋㅋ
영화도 영화지만 심형래의 제작 후기에서 심한 심리적 저항을 느꼈어요. 그건 제작 후기라기 보다 대기업들 견학가면 보여주는, 불굴의 의지로 신화를 이룩했다는 홍보물 같았어요. 스스로를 감독으로 인식한다면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ㅠㅠ

스파피필름님, 네...보세요, 조조로!^^
요즘 <디 워> 안보면 대화가 안된다니깐요. ㅋㅋ

Mephistopheles 2007-08-10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살짝 비꼬아서 생각을 해봤는데요..이송희일감독의 노골적인 악평의 진실유무를 떠나서 그 감독이 분명 엄청난 악플과 비방을 받을 것을 과연 모르고 저러한 영화평을 올렸을까..라는 생각도 들더라구요..어찌 되었던 단편영화를 만든 아직 메이저의 발판을 밟지 않은 감독이 상당히 짧은 시간에 엄청난 주목을 받아버렸으니까요..^^ (음모론을 너무 많이 접했어.)

kleinsusun 2007-08-10 0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상력도 풍부한 Mephistopheles님^^
막상 <디 워>를 보니 제가 이송희일 감독이라도 화가 날 것 같았어요.
예산이 없어서 만들고 싶은 영화를 포기하는 감독들이 넘쳐나는데,
<디 워>를 만든다고 300억이나 썼다는 생각을 하면! 아..그 분한 마음이 이해가 되요.^^

드팀전 2007-08-10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는 안봤고 앞으로도 안 볼 생각입니다.괴수 영화와 CG가 많이 쓰인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반지의 제왕도 전 그냥 그냥 했어요.
<디워>는 영화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도 영화를 생산하고 소비하고 유통하는 현상이 재미있는 담론들을 모으고 있는 듯 합니다...

kleinsusun 2007-08-10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 오랜만이예요.^^ 근데...영화 자체의 문제이기도 해요. 영화가...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하게 하거든요.ㅠㅠ

시비돌이 2007-08-10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송희일 감독 연락처 아는데, 술 살때 저도 끼워주면 연결해 드리죠. ㅋㅋ

깐따삐야 2007-08-10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래저래 할인 받아서 3500원 주고 봤거든요. 하프더즌 도넛 세트나 사먹을 걸 그랬다는. ㅠ.ㅠ

kleinsusun 2007-08-10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비돌이님, 연결해 주세요! 원츄! 오늘 서점가면 책 있어요?^^

깐따삐야님, 전 보기 잘했다고 생각해요. 이제 100분 토론 등 그 어떤 논란에도 관심이 없거든요. ㅋㅋ

라로 2007-08-10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 다 주고 봤으면 아까와서 쓰러지실 뻔 했다면서요?ㅎㅎㅎ
그 말에 완전 쓰러질뻔 했잖아요11ㅋㅋ
이것도 다 지나가겠죠..

kleinsusun 2007-08-10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bi님, 돈 다 주고 받으면 진짜 기절했을 꺼예요.ㅋㅋ
네...다른 사건이 생기면 이것도 곧 잊혀지고 지나가겠죠. 늘 그렇듯이...

어머 2007-08-10 19:05   좋아요 0 | URL
저도 조조로 봤는데... 나오면서, 조조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다들 똑같군요 ㅎㅎ

프레이야 2007-08-10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보셨군요. 시원하게 잘 쓰셨네요. 전 안 보고 싶은 영화라 쓸 말이
없지만 다들 '현상'들에 대한 생각과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품고 있지요.
휴가는 잘 보내고 계신거죠? ^^

BRINY 2007-08-10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 조금전 9시 뉴스에서도 '또' [디워] 뉴스가 나왔어요. 어제 MBC100분 토론 장면과 말이죠. 거의 심형래 옹호 분위기로 나가길래, 별로 관심없었지만 한번 봐 볼까하고 기울어지던 마음에 수선님 글 보고 다시 제자리에 섰습니다.

kleinsusun 2007-08-10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 네...조조 아니었으면 큰일날 뻔 했어요.ㅋㅋ 근데 제작후기 보면서 울~컥 했다는 사람들도 은근 많더군요.

혜경님, 오늘 휴가 마지막 날이랍니다.^^ 심형래는 정말 대단한 이슈 메이커인 것 같아요. 유명인들이 다들 말하기를... 안티가 많은 게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 보다 낫데요.ㅋㅋ

BRINY님, 뭐 한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보고 나면 떠들썩한 논란들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지거든요. 정말...영화라기 보다는 공산품 같아요. ㅠㅠ

twinpix 2007-08-11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갈등이 입체적이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왜 각본을 딴 사람에게 맡기지 않았는지 의문이에요. 워낙 인터넷에서 난리라 볼 수밖에 없었던 영화. 미국에서는 과연 어떤 평을 받을지 걱정이 들더라고요. 주말 잘 보내세요~!^^

kleinsusun 2007-08-11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winpix님, 저도 영화 같이 본 친구랑 그 얘기했어요. 꼭 각본까지 직접써야 했을까? ㅋㅋ 능력있는 시나리오 작가만 참여했어도 이렇게까지는 안됐을텐데...아쉬워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이게다예요 2007-08-15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보여주는 제작후기... 좀 촌스럽죠? 세계최고, 대한민국, 아리랑... 뭐 이런 발언들은 영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단순히 국민들의 정서만 자극하는 말 같아서 아... 심감독이 극복해야 할 것이 이런 촌스러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CG 하나로 밀고 가기엔 영화 내적인 문제들이 다소 심각해 보이죠? 오랜만이에요^^

kleinsusun 2007-08-15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다예요님, 오랜만이예요^^
네...제작 후기 넘 촌스러워요. 압권은 단연 세계최고!
영화를 만드는 건지 새마을 운동을 하는 건지. 잘 살아 보세~ ㅋㅋ
 

휴가 둘째 날.

어제, 오늘 세 꼭지를 더 써서 55% 달성.
아직 가야할 길이 멀지만 그래도 반 넘게 썼다.

원래 책을 쓸 때 다른 저자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아마...꼭지 수를 채운 다음에 1st draft를 출판사에 넘기겠지?)
난 3꼭지, 6꼭지씩 쓰는 대로 출판사 담당자에게 계속 보냈다.
물론 오늘 쓴 3꼭지도!

친애하는 기획자 L은
찔끔찔끔 원고를 보내면 귀찮을 만도 한데
원고를 보낼 때 마다 커멘트도 해주고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최고의 필자"라고 부르며! 

Yes24 웹진 <채널예스>에 실린 김주하 아나운서 인터뷰를 보면
김주하는 뉴스데스크를 진행한지 1년쯤 됐을 때부터
수많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아 왔다고 한다.

책의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저 잘 나가는 여자 김주하를 포장지로 할 수 있으면
어떤 책이든 괜찮다는 제안도 있었단다.

안 봐도 비디오다.
나도 메이저급 출판사들 몇 군데에서 제안을 받았는데
"여대생이 닮고 싶은 여성" 1위라는 뉴스데스크 진행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러브콜을 받았을까?

나랑 계약을 한 출판사는 덩치 면에서 메이저급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 내가 찾던 기획자를 만났다.

내가 원했던,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기획자는
내 작업을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메이저급 출판사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헤드헌터를 만난 것 같은 기분,
또는 오디션에 통과하고 고마워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함께 작업하고 있는 출판사를 처음 만났을 때는
담당자 뿐 아니라 주간님까지 세 분이나 나오셔서
밤 늦게까지 왁자지껄 떠들며 술을 마셨다.
초등학교 반창회 같은 편안한 분위기였다.

그 때 술을 마시며 생각했다. 엮였구나!
그리고 얼마 후, 망설임 없이 계약했다.

책을 쓰면서 자기 검열을 많이 한다.

언젠가 우연히 알게 된 한 문학평론가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염결성의 윤리를 갖고 계시는군요."
(그 때 "염결성"이란 말을 처음 들어봤다.
술 먹다가 "지식의 환원은 윤리" 라는 얘기를 스스럼없이 하는
술자리의 윤리에는 약한 사람이었다.)

염결성의 윤리까지는 몰라도
어떤 강박 같은 건 갖고 있다.

최소한 펄프는 안 아까운 책을 쓰고 싶고,
돈 만 원이 안 아까운 책을 쓰고 싶고,
내 스스로에게 쩍 팔리지 않은 책을 쓰고 싶다.

그러다 보니 진도를 쫙쫙 뽑지 못하고 고민에 갇혀 있을 때가 많다.
2주 전에는 주말 내내 책상에 앉아서 한 줄은커녕 한 단어도 쓰지 못했다.

그럴 때 마다 L은 내게 용기를 북돋아 준다.
다른 저자들한테도 다 그런지 모르겠지만 "최고의 필자"라 부르며!

아까 바람도 쐴 겸 서점에 갔었다.
출간 소식을 못 들었었는데 <장정일의 독서일기 7>이 있기에 사 왔다.
<공부 -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를 읽고 그렇게 실망을 했으면서도
또 다시 지갑을 여는 나는 장빠?

휴식 겸 잡문을 쓰며 기네스를 한 캔 마시고 있다.
캬~ 맛있다!

자 ~ 이제 다시 시작해 보자구! Go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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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7-08-07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휴가 맞아요. 회사 안 가니까! ㅋㅋ

마늘빵 2007-08-07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핫. 그것도 스트레스 은근 있을거 같아요. 그래도 부러워. :)

플로라 2007-08-07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오랜만에 뵈어요.^^ 정말 값진 휴가를 보내고 계신 것 같습니다. 자신감과 패기를 가지고 멋진 글을 쓰고 계실 것 같아요. 집필 중이신 책도 너무 기대되고요.^^ 출간하심 살짝 알려주세요.ㅎㅎ 화이팅!!

파란여우를 아시나요? 2007-08-07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대나 나는 장빠 맞을겁니다.^^
그책에 이런 글이 써 있어요.
나이 사십넘으면 사전의 단어마다 기억을 끌고와 말 할 수 있게된다구요.
수선님 정도의 나이와 사회적 위치에선 캔맥주에 관한 뭔가 나올거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아참, 혹시 저를 아시나요? 기냥 응원해드리겠슴다.

비연 2007-08-08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어떤 책인지 정말 궁금하네요^^ 좋은 책 쓰시리라 믿습니다. 기대만빵!

dalpan 2007-08-08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찬 휴가라고 인정! 즐기면서 쓱싹쓱싹 써내려가시길.

Mephistopheles 2007-08-08 0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이 추정하는 책 제목은 아마도 "미녀는 서재를 좋아해" 일껍니다.
(미안해요 마태님~~~팔아먹어서요~~)

다락방 2007-08-08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보람차게 보내고 계시군요. 어떤 책이 나올지 잔뜩 기대하고 있어요.
비오는 날의 다락방의 이야기도 써주세요. 므흣~

승주나무 2007-08-08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세 잡고 쓰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나도 언제면 자세 잡고 써보나.. 그나저나 책의 콘셉트에 관한 짜투리 글 같은 거 어디 가면 볼 수 있을까요.. 궁금궁금^^

시비돌이 2007-08-08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거 제가 한게 아니고, 예스24에 실린 걸 퍼온건데요. 펌, 그래스물넷이라고 해놨는데, 오해하셨군요. ^^

twinpix 2007-08-08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가를 뜻깊게(?) 보내시네요. 책 나오면 사야겠어요. 건필하시길.^^/

kleinsusun 2007-08-08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스트레스 없다면 뻥이죠.ㅋㅋ

플로라님, 감사합니다.^^ 휴가가 벌써 반 넘게 지났네요. 휴가랑 주말은 넘 빨리 지나가요. 그죠?

장빠님, 당근 알죠, 파란 여우님!^^
님이 쓰신 <장정일의 독서일기 7> 리뷰도 어제 읽었어요.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빨리 컴백해 주세요!^^

kleinsusun 2007-08-08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감사합니다.^^

달판님, 감사합니다. 쓱싹쓱싹 톱을 갈듯이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Mephistopheles, 하하하 감사합니다^^ 마태님이랑 책 제목을 상의해 봐야 겠어요.ㅋㅋ

kleinsusun 2007-08-08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호홋, 정말 써도 되는거죠? 나중에 따지기 없기예요.ㅋㅋ

승주나무님, "자세 잡고"라 말씀하시니 제가 넘 오버한 것 같네요.
그냥 휴가 때 어디 안가고 쓴다 뿐이죠. ㅋㅋ
책 컨셉은 담 번개때 말씀드릴께요.^^

시비돌이님, 아...그렇군요. 제가 제목을 안 봐서...죄송합니당. 고쳤어요.^^

twinpix님, 와...감사합니다.^^

혜덕화 2007-08-08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쓰시나봐요. 정말 대단해요. 휴가 잘 보내시고 좋은 글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2007-08-09 0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휴가 첫날.

월욜인데 회사를 가지 않으니 좋기도 하면서 살짝 어색하다.
아까 잠깐 밖에 나갔었는데 평일 낮에도
시내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게 신기하기도 하다.

어제 밤을 꼬박 샜다.
원고 4꼭지를 썼다.
4번째 꼭지를 쓰고 있을 때 날이 밝았다.

아...책 한권 쓴다고 정말 유난 떤다.
오피스텔까지 얻고...
책이 잘 팔려서 인세를 많이 받아야 할텐데!

어제 낮잠을 자기는 했지만
아직 밤을 샐 수 있는 체력이 있다는 게 기쁘다.

또...이렇게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밤을 샐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는 게 좋다.
How happy I am!

밤을 새면서 조덕배 9집을 듣고 또 들었다.
조덕배는 내가 중학교 때 너무나 좋아했던 가수다.
<나의 옛날 이야기>를 듣고 필이 확~꽂혔다.
중학교 때 용돈을 모아 롯데호텔에서 했던 조덕배 콘서트까지 갔으니!
무척...특이하거나 또는 조숙한 애였던 것 같다.

오랜 공백 끝에 조덕배 9집이 나왔고,
나 또한 무척 오랜만에 CD를 샀다.

<나의 옛날 이야기>,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여인> 등
리메이크된 곡들이 새롭다.
특히 조PD랑 정지선이 피처링을 한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여인>은 듣고 또 들어도 좋다.
뽕짝 풍으로 바꾼 <말문이 막혀 버렸네>도 좋다.

어느새~ 벌써~
조덕배가 49살이란다.
내 중학교 때 꿈이 조덕배랑 결혼하는 거였는데...음하하

휴가 첫날의 여유로운 오후.
시간아, 천천히 가라!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갑자기 황진이 시조가 생각난다.

이 소중한 시간이 헛되게 새어나가지 않게
짜투리 시간을 냉동실에 꽁꽁 얼려서 보관했다가
휴가가 끝나는 날에 해동해서 쓰고 싶다.

휴가 첫날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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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6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8-06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습니다. 이런 생활. :)

다락방 2007-08-06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휴가는 끝났는데, 수선님의 휴가는 시작이로군요.
부러워요.
:)

BRINY 2007-08-06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휴가셨군요~

라로 2007-08-06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의 글을 읽으면 님이 80%바른생활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음,,,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지만,,,ㅎㅎ
암튼 일 넘 많이 하지 마시고 즐기세요~~~.

kleinsusun 2007-08-07 0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아프님은 방학이 있잖아요!^^

다락방님, 휴가는 즐겁게 보내셨어요? 아...제발 시간이 천천히 가기를!^^

BRINY님, 네...안 그러면 일요일에 그렇게 배짱을 못 부리죠.ㅋㅋ

nabi님, 80% 바른생활인이라...이거 칭찬인가요? ㅋㅋ

시비돌이 2007-08-07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늦지 않았네요. 조덕배 아저씨랑 나이차도 몇 살 안나구.. ㅋㅋ

kleinsusun 2007-08-07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예요??? 조덕배 아저씨 딸이 10대라구요! ㅋㅋ
 

 매력남의 조건과 질투의 심리학 로쟈의 방주


로쟈 (이메일 보내기) l 2007-08-06 00:31


http://blog.aladin.co.kr/mramor/1473513



진화심리학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칼럼 두 편을 옮겨놓는다. 요즘 인기를 끄는/끌었던 드라마 두 편의 비밀도 얼추 헤아려볼 수 있다. 하나는 한겨레21의 '정재승의 사랑학 실험실'에서 가져온 칼럼이고 다른 하나는 신동아의 '세계가 놀란 대단한 실험'의 한 꼭지이다. 몇 가지 관련서의 이미지들도 덧붙여놓는다. 예전에 올린 페이퍼로는 '섹슈얼리티의 진화심리학'(http://blog.aladin.co.kr/mramor/1072196)과 '질투는 진화의 힘'(http://blog.aladin.co.kr/mramor/898080)을 참조할 수 있다. 



한겨레21(07. 07. 26) 돈보다 꽃미남! 

얼마 전 영국에선 남자의 키가 1인치(2.54cm) 클수록 스피드 데이트에서 성공을 거둘 확률이 5%씩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스피드 데이트란 참가비를 낸 많은 수의 남녀가 10분 정도씩 대화를 나누면서 이상적인 파트너를 찾는 서구형 집단 미팅을 말한다. 영국 에식스대학의 연구자들이 남녀 3600명이 참가한 스피드 데이트 84회를 분석한 결과, 남자는 키가 클수록 여성들의 선택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참가자가 전체 평균 나이보다 한 살씩 많아질수록 선택받을 확률이 4%씩 감소한다는 사실도 찾아냈다. 젊은 남성이 선호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여성의 경우에는 몸무게가 늘어날수록 선택받을 확률이 현저히 떨어졌지만, 남성들에겐 과체중이 그다지 큰 장애가 되지 않더라는 것도 중요한 결과였다.




 

 

 

 

 

 

 

 

 

한 살 많아지면 매력은 4& 감소
이처럼 매력남과 매력녀의 실체를 밝히는 작업은 사회심리학자들의 중요한 연구주제이다. 매력남(혹은 매력녀)의 조건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원인에서 비롯됐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낭만적 사랑의 실체’를 파헤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개팅으로 처음 만난 자리에서 여성이 가장 눈여겨보는 것은 남성의 무엇일까? 여성들은 그다지 남성의 외모를 따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설문조사를 해보면 남성만큼은 아니더라도 외모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남성의 85%가 여성의 외모가 중요하다고 대답한 반면, 여성은 60% 정도가 남성의 외모가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똑같은 설문을 거짓말 탐지기를 설치한 상황에서 하겠다고 일러주면 그 수치가 80% 가까이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여성들도 남성의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적절하지 않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 판단해서 설문에서 거짓 대답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것이다.

여성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성의 외모는 단연 키다. 위에서 소개한 연구 결과처럼 키가 크면 소개팅에서 인기를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평균 178∼185cm의 남성들이 가장 선호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들 중에는 남성의 얼굴보다 키가 더 중요하다고 대답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잘생긴 얼굴은 여전히 매력남의 조건이다. 특히 여성의 경제적 능력과 지위가 점점 올라가고 있는 요즘, 그런 경향은 전세계적으로 점점 두드러지고 있다.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학의 심리학자 피오나 무어는 18∼35살의 여성 1851명에게 경제적 능력, 사회적 지위, 친절함, 유머감각, 관계에 대한 헌신도, 육체적 매력 등 13개 특징을 제시하면서 어떤 속성을 지닌 남성을 선호하는지 물었다. 동시에 여성 자신의 경제적 자립도도 표기하라고 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영국의 여성들은 남성의 경제적 능력보다 외모를 더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신의 경제적 자립도가 높다고 평가한 여성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욱 뚜렷했다.

이 결과는 한국이나 미국에서 했던 많은 설문에서 여성들이 ‘남성의 경제적 능력’을 가장 중요한 매력 포인트로 꼽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연구자인 피오나 무어는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도가 높아지면서 그것이 장기적 파트너 후보를 선택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성 평등이 강화될수록 여성들도 짝을 선택할 때 남자와 유사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언급하고 있다(우리나라의 ‘꽃미남’ 현상도 무관하지 않다). 왜냐하면 경제적 자립도나 성공 욕구가 낮은 여성은 여전히 남성의 경제적 부를 가장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남자가 좋아
인기가 많다는 것도 남성에게 큰 매력 포인트다. 영국 애버딘대학의 심리학자 벤 존스과 그 동료들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이 호감을 갖는 남성을 좋아한다고 한다. 벤 존스 박사팀은 여성들(28명, 평균연령 24살)에게 비슷한 수준의 외모를 가진 네 명의 남성 사진을 보여준 뒤, 매력 정도에 따른 ‘평점’을 매기도록 했다. 그 다음 같은 남성들이 다른 여성과 함께 등장하는 짧은 비디오를 보여주었는데, 영상 속의 여성들은 세 가지 표정으로 남성을 바라보았다. 웃는 얼굴, 지루한 표정, 무표정한 얼굴이 그것. 비디오를 본 뒤에는 여성들의 평가가 달라졌다. 웃는 여성들의 시선을 받았던 남성들에게 선호도가 15%가량 높아졌던 것이다. 결국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이 좋아하는, 말하자면 ‘인기남’에게 더욱 큰 호감을 느끼는 것이 밝혀졌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 그저 잘생긴 외모의 인기남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미시간대학 공중위생학 연구팀은 ‘여성은 결혼 상대로 남성적 외모보다 여성적 얼굴을 가진 남성을 더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들은 이목구비가 뚜렷해 ‘남자다운’ 인상을 풍기는 남성은 데이트에서 여성에게 결혼 상대라는 인상을 주기 힘들다는 사실을 설문을 통해 알아냈다.

연구팀은 미국 남녀 대학생 약 850명을 상대로 컴퓨터로 다양한 외모의 남녀 합성사진을 보여주었다. 설문 결과 여성들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턱이 각져서 튼튼하게 보이는 남성 얼굴에 대해 ‘이런 남성은 주로 단기간 교제하기 적합한 상대이며 결혼하면 바람을 피울 가능성이 높다’고 대답했다. 반면 얼굴이 둥글어 인상이 서글서글하고 입술이 약간 두터운 ‘여성적’ 얼굴의 남성은 결혼 뒤 ‘좋은 아버지’나 ‘좋은 남편’이 될 것 같다고 대답했다. 다시 말해 장기적 배우자감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여성이 단기적으로 남성을 만날 때는 남성적 외모 같은 유전적 잠재 요소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결혼 등 협력이 중요한 관계에서는 상대방의 육아 능력까지 고려해 여성적 얼굴을 가진 남성을 선호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반면 ‘완벽한 외모에 사회적 지위까지 높은 남자들이 의외로 신랑감으로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영국 센트럴 랭카셔대 연구진은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신랑감 자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기 위해 가짜 소개팅 광고를 냈는데, 이때 참가한 남성들은 여성들로부터 매력이 철철 넘친다는 평가를 받은 남자와 보통 남자, 매력 없는 남자 등 세 부류였고, 영국 국립통계청의 직업 분류상 상(기업 이사, 건축가)·중(교사, 여행사 직원)·하(웨이터, 우편집배원)로 구분되는 각종 직업을 내걸었다. 이 광고를 186명의 여성에게 보여주고 장기적인 파트너로 누가 매력이 있느냐고 물은 결과, 잘생긴 남성은 모든 직업군에서 못생긴 남성보다 선호됐지만, 직업적으로 성공하고 용모도 뛰어난 남성들은 예상과 달리 가장 가난한 남성들과 비슷한 점수를 받았다. 놀랍게도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그룹은 보통의 외모와 수수한 직업을 가진 남자들이었다.

때론 키보다 중요한 유머감각
연구진은 ‘여성이 매력적이면서도 성공한 남성을 피하는 것은 이들이 장차 바람을 피우거나 둘 사이의 관계, 더 나아가 미래의 가족을 위해 그다지 헌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여성들은 무의식적으로 잘난 남자를 피하고, 바람을 피우거나 자신을 떠날 가능성이 적은 남자를 고르는 경향이 있다며 자녀 양육에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남성이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남성의 매력 포인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유머감각’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웨스필립주립대와 캐나다 온타리오 맥마스터대의 공동 연구팀은 <진화와 인간 행동> 최근호에서 여성은 농담을 잘하는 남성을 파트너로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유머감각은 때론 외모나 키보다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유머감각이 그 사람의 정신적 능력을 보여주며 무엇보다 사회적 능력이 뛰어나고 인간관계가 원만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간접적인 신호로 파악되기 때문인 것 같다. 늘 유머를 잃지 않으며 특히 위기의 상황에서도 유머를 발휘할 줄 아는 남성만큼 매력적인 남성도 없다.

요약하자면, 현대 여성이 가장 선호하는 남성은 큰 키에 멋진 외모,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가정적이고 유머감각을 겸비한 사람이다. 나도 그런 남자를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다.(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신동아 574호(07. 07. 01) '내 남자의 여자’ ‘내 여자의 남자’의 질투심리학

똑같이 바람을 피워도 남편은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성적인 관계를 가졌다는 것을 더 질투하는 반면 아내는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감정적 집착을 보이는 것에 더 질투를 느낀다. 이는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 위해 오랜 세월 진화한 남성과 여성의 번식본능 차이 때문은 아닐까.

최근에 불륜과 질투심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함으로써 인기를 끄는 드라마가 있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 감초 구실을 하는 한 부부의 집 앞에 누군가 아이를 놓고 간다. 아내는 바람둥이 남편이 밖에서 낳은 자식일지 모른다면서 난리를 피우고, 남편은 아니라고 하면서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이 부부는 남편이 바깥에서 다른 여성과 일회성 관계를 갖느냐 여부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쓰는 듯하다. 무슨 짓을 하든 자식만은 낳아오지 말라는 투다.

한편 주인공 부부는 정반대 상황을 연출한다. 남편은 아내의 친구와 바람을 피우는데, 마음까지 줌으로써 심각한 갈등을 빚어낸다. 이 드라마는 마치 진화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하다. 생물학자들은 자기 연구 분야 쪽으로 다윈이 어떤 말을 했는지 관심이 많다. 진화론을 심리학에 적용하는 일을 하는 진화심리학자들도 다윈의 금과옥조 같은 말을 찾아냈다. 다윈은 “먼 미래에는 심리학이 새로운 토대 위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 토대란 바로 자신이 세운 이론인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론이다.



질투심 유발 실험
그로부터 한 세기가 흐른 뒤 다윈의 계승자들은 본격적으로 심리학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인간의 마음을 진화의 산물로 보고 질투심, 추론 능력, 언어, 지위, 짝 선택, 공격성 등 마음의 다양한 측면을 진화 원리로 풀어보고자 시도했다. 남녀 관계를 연구하는 인물인 미시간 대학교의 데이비드 버스도 그중 한 명이었다.

1992년 버스 연구진은 남녀의 질투심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본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누군가와 놀아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남녀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펴보았다. 그들은 상황을 둘로 나눴다. 몸을 줬느냐, 혹은 마음을 줬느냐. 그들은 다각도로 살펴보기 위해 세 가지 실험을 했다. 첫 번째 실험은 불륜에 대해 남녀가 보이는 반응이 서로 다를 것이라는 전제 하에 이뤄졌다. 그들은 실험 대상자인 대학생 202명에게 다음과 같은 곤란한 상황을 제시했다.

당신이 깊이 사랑하는 애인이 누군가와 바람 피우는 것을 알았다. 다음 둘 중 어느 쪽일 때 더 심란하겠는가.
(A) 연인이 상대에게 감정적으로 집착할 때
(B) 연인이 상대와 성관계를 즐길 때

이어서 실험 대상자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한 뒤 같은 지문을 제시했다. 그리고 다음의 둘 중에서 선택하도록 했다.

(A) 연인이 상대와 갖가지 체위를 시도할 때
(B) 연인이 상대와 사랑에 빠져 있을 때

결과는 남녀가 큰 차이를 보였다. 감정적 집착과 성관계를 대비시킨 질문에서는 남성의 60%가 성적인 불륜에 더 질투심을 느낄 것이라고 답한 반면, 여성은 고작 17%만 그쪽을 택했고 83%는 연인이 상대에게 감정적으로 집착할 때 더 질투심을 느낄 것이라고 답했다. 성과 사랑을 대비시킨 질문에서도 비율은 좀 달랐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상대의 성관계에 더 심란할 것이라고 답한 남성이 여성보다 32% 더 많았고, 여성은 다수가 연인이 상대와 사랑에 빠질 때 더 심란할 것이라고 답했다.



두 번째 실험은 생리적 반응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연구진은 남자대학생 21명과 여자대학생 23명의 몸에 자율신경계 흥분 상태와 맥박수를 측정하는 장치를 붙인 뒤 두 가지 상상을 하도록 했다. 하나는 연인이 다른 누군가와 성관계를 갖는다는 상상이고, 다른 하나는 연인이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집착한다는 상상이었다. 결과는 남녀가 큰 차이를 보였다. 남성은 감정적 집착보다 성관계를 상상했을 때 자율신경계가 훨씬 더 흥분했다. 반면에 여성은 성관계보다 감정적 집착을 상상했을 때 더 흥분했다. 맥박수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남성은 연인의 불륜 성관계를 상상했을 때 맥박수가 더 높아진 반면, 여성은 양쪽 상상 때 맥박수가 비슷하게 올라갔다.



남자 짓누르는 ‘선택압’
세 번째 실험에서는 남성 133명, 여성 176명 총 309명으로 실험 대상자를 더 늘려서 앞의 실험을 검증하는 한편, 성관계 경험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서 답이 달라지는지를 살펴보았다. 여성은 성관계 경험 유무가 답에 별 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이에 비해 성관계 경험이 있는 남성은 55%가 감정적 불륜보다 성적 불륜에 더 심란해한 반면, 성관계 경험이 없는 남성은 그 비율이 29%로 훨씬 낮았다.

이 실험 결과는 연구진이 세운 진화심리학 가설에 들어맞았다. 포유류가 다 그렇듯, 인간의 정자와 난자도 여성의 몸속에서 수정된다. 따라서 여성은 낳은 아기가 자신의 자식임을 100% 확신할 수 있지만, 남성은 그렇지 못하다. 난자를 수정시킨 것이 자신의 정자인지를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니까. 이 불확실성은 남성에게 진화적으로 꽤 골치 아픈 문제를 안겨준다.

여성이 불륜을 통해 낳은 아이를 자기 아이인 줄 알고 기른다면, 유전적으로 볼 때 그 남성 처지에서는 여간 손해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기는커녕 엉뚱한 유전자를 퍼뜨리는 일에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를 쏟는 셈이니까. 그에 비하면 여성이 멋진 남자 배우에게 홀딱 반해 팬클럽 회장으로 활동하는 행위는 별문제가 안 된다.

따라서 남성은 오쟁이 지는(아내가 외간 남자와 성관계를 맺는) 것을 막는 강력한 선택압(選擇壓)을 받아왔어야 한다. 오쟁이 져도 허허 웃고 마는 인품 좋은 남성들이 있었다면 그 남성들의 유전자는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남성이 성적인 질투심을 강하게 보이는 것이 바로 그런 선택압의 결과라고 본다. 성적 질투심이 약한 남성은 후손을 적게 남기는 바람에 세월이 흐르면서 대가 끊겼을 것이고, 질투심이 강한 남성은 후손을 많이 남겨서 주류가 됐다는 것이다.

한편 여성은 남성의 도움을 받아야 자식을 키우기가 편하다. 남성이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를 육아에 쏟을수록 그만큼 여성 자신의 유전자가 살아남아 후대로 전달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부일처제에서 남성이 바람을 피울 때 아이를 키우는 여성에게 닥칠 위험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그냥 딴 여성과 가볍게 바람을 피운다면 자신과 자식에게 투자될 비용 가운데 일부를 잃는 정도에 불과하겠지만, 딴 여성에게 아예 홀딱 반해 집착한다면 혼인 관계는 파탄나고 육아 투자를 전혀 못 받을 가능성이 높다(그런 위험을 막기 위해 이혼한 아버지에게 양육비를 의무적으로 내도록 하는 법 조항이 있긴 하다). 일부다처제하에서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다른 부인과 성관계를 갖는 것은 큰 문제가 안 되겠지만, 감정적으로 그 쪽에 홀딱 빠지면 육아 투자분이 더 많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연구진은 남성은 여성의 감정적 불륜보다 신체적 불륜에 더 심하게 질투심을 느끼고, 여성은 남성의 신체적 불륜보다 감정적 불륜에 더 심하게 반응하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실험 결과는 가설과 들어맞았다.



질투의 심리
연구진은 이 실험에 한계가 있다고 인정한다. 실험 대상자가 대학생들이기에 연령과 문화가 한정돼 있으며, 이 남녀의 반응 차이가 정말로 오쟁이 지는 것 대 투자 상실을 가리키는 것인지, 남성이 섹스 자체에 더 관심이 있고 여성은 사랑에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지 불명확하며, 남녀 각 성별 내에서의 개인별 반응 양상을 더 상세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여성은 성경험 유무와 질투심이 별 상관관계가 없는 반면 남성은 왜 상관관계가 있는지도 규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연구진은 이 실험이 성별과 질투심이 상관관계가 있음을 뚜렷이 보여준다고 했다. 진화심리학을 뒷받침하는 경험 증거인 셈이었다.



버스를 비롯한 진화심리학자들은 후속 연구를 통해 질투의 심리와 그것이 진화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상세히 밝혀냈다. 다양한 상황에 따라 여러 가설이 제기됐고 각각에 대한 경험 증거를 찾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데이비드 버스와 마티 하셀튼은 남녀의 질투심 차이에 관한 가설들을 이렇게 정리했다.

성적 불륜 신호들에는 여성보다 남성이 더 질투심을 느낀다. 자신이 아이의 아버지가 맞는지 불확실해지고 여성이라는 번식 자원을 빼앗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여성은 감정적 불륜 신호들에 더 질투심을 느낀다. 남성이 제공하는 자원이 경쟁자에게로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3자가 질투심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다. 경쟁자가 육체적 매력을 지닌 사람일 때는 여성이 더 질투하고, 부나 지위처럼 조건이 더 좋은 사람일 때는 남성이 더 질투한다.

한편 질투심은 자기 짝을 지키려는 행동도 유발한다. 남성은 자기 짝이 매력적인 여성일 때 질투심이 더 발휘돼 지키려 애쓰며, 여성은 연인이 조건 좋은 남성일 때 지키려 더 애쓴다. 그리고 여성의 배란기가 가까워지면 성적 불륜의 위험이 커지므로 남성이 짝을 지키려는 성향이 강해진다. 남녀는 불륜의 단서를 눈치채고 마음에 담아두는 성향도 다르다. 남성은 성적 불륜에 관한 단서들을 더 잘 기억하며, 여성은 감정적 불륜의 단서들을 더 잘 기억한다.

불륜을 알았을 때 사람들은 드라마에서처럼 처음에는 날카롭게 감정 대립을 하다가, 용서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용서하든지 헤어지든지 할 것이다. 하지만 남녀는 거기에서도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토드 섀클포드와 버스 연구진은 앞서 말한 버스의 첫 번째 실험에 어느 행동이 더 용서가 안 되고 갈라설 마음을 더 먹게 하는가라는 질문들을 추가했다. 그리고 자신의 짝이 누군가와 열정적인 성관계를 갖는 동시에 감정적으로도 몰입할 때에는 어느 측면이 더 용서가 안 되고 갈라설 마음을 먹게 하는가라는 질문도 던졌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남성은 짝의 감정적 불륜보다 성적 불륜이 더 용서가 안 된다고 답한 반면, 여성은 감정적 불륜이 더 용서가 안 된다고 답했다. 몸도 주고 마음도 준 상황에서도 여성보다는 남성이 몸이라는 측면이 더 용서가 안 된다고 답했다. 즉 불륜을 알아차렸을 때 남성은 감정적 불륜보다 성적 불륜을 더 용서하지 않으려 하고, 성적 불륜이 일어났을 때 결별할 가능성이 높다.
불륜을 용서할 것인지에 대한 남녀의 이런 반응 차이도 인류 진화의 산물이다. 성적 불륜이 저질러졌을 때 다른 누군가의 자식을 키울 위험이 커지는 쪽은 남성이며, 따라서 남성 쪽이 더 큰 비용 부담을 안게 된다. 그런 진화적 역사를 거쳤기에 남성이 성적 불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반면 여성은 감정적 불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쪽이 남성이 장기간에 걸쳐 제공할 자원을 빼앗길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사실들을 그냥 나열한 듯하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지겹도록 보아온 연애나 불륜 이야기들이지 않은가. 하지만 진화심리학자들은 종잡을 수 없이 변덕스럽게 보이기도 하는 그런 현상들이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이라는 진화 전략에서 비롯된 것임을 간파했다. 질투심 같은 심리적 현상들이 감정적으로 미숙해서 생기는 것도, 자제를 못해서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것도, 인성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서 생기는 것도 아니라고 말이다.

Beauty is defined as a waist

허리와 엉덩이 비율 0.7의 비밀

진화심리학자들은 질투심뿐 아니라 남녀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다른 성향 차이들도 문화적 구성물이 아니라 선택을 거쳐 진화한 생물학적인 것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버스는 전세계 남녀의 성적 취향을 조사한 끝에 남성들은 원칙적으로 무한히 많은 자식을 가질 수 있으므로 여성보다 바람기가 더 다분한 반면, 여성은 평균적으로 한 해에 한 명밖에 자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짝을 선택할 때 더 신중한 경향을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여성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지위와 소득 수준과 지능이 높고 건강하며, 착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남성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버스는 남성의 그런 특징들이 가족을 잘 부양할 수 있음을 나타내는 지표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남성이 젊은 여성을 선호하는 현상도 본능적으로 여성의 번식 잠재력을 가늠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심리학자 데벤드라 싱은 전세계의 남성들이 허리와 엉덩이의 비율이 0.7인 여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며, 그 비율이 여성의 번식 잠재력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런 연구 결과들을 보면 질투심도 바람기도 상대의 조건을 따지는 속물근성도 멋진 몸매를 선호하는 성향도 다 이유가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그것들이 때로 정도를 벗어나서 날뛰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드라마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종종 보듯이 질투심은 때로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드잡이질을 하는 수준을 넘어서 상대를 살해하는 지경으로 치닫곤 한다. 바람기는 심심치 않게 집안을 파탄내곤 하며, 요모조모 따지는 근성은 때늦은 후회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멋진 몸매를 따지다가 사회 전체가 비생산적인 일에 몰두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본래 그것들이 진화의 산물로서 다 이유가 있는 것이라면 과하지 않도록 막는 수단도 진화했어야 하지 않을까?



진화심리학은 현대 사회에서 그런 병적인 증상들이 나타나는 이유를 우리의 심리적 성향이 인류가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원시시대 환경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원시시대에는 그렇게 때로 과하다 싶은 행동을 하는 것이 나름대로 도움이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원시시대 이후로 인류는 급격히 발전해 수많은 사람이 우글거리는 현대 도시들을 건설했다. 질투심 같은 뇌의 특정 기능들은 그 변화를 미처 따라잡지 못했을 수 있다. 신경과학자들은 실험 대상자들에게 연인이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갖는 장면을 상상하도록 하면서 뇌를 촬영했다. 그러자 성적 행동 및 공격 행동과 관련이 있는 편도핵과 시상하부가 흥분하는 것을 발견했다. 즉 질투심은 공격성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것은 우리 뇌에 새겨진 본능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진화심리학 둘러싼 논란
남녀의 성향 차이를 진화의 산물로 보는 관점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다. 그것이 기존의 불평등한 관계를 합리화하는 논거로 쓰일 수 있고, 사회나 문화나 교육을 통해 남녀의 성향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생물학자 새러 블래퍼 르디는 현대 여성의 경제활동 기회가 적으니 경제적으로 더 능력 있는 짝을 고르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당연하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과학철학자 데이비드 불러는 진화심리학이 언뜻 볼 때는 현실과 딱 맞아떨어지는 듯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근거가 빈약한 주장이 많다고 말한다. 남성이 번식 잠재력이 큰 젊은 여성을 선호하고 여성이 지위가 높은 남성을 선호하는 쪽으로 진화했다거나, 남성이 성적 불륜에 더 질투하고 여성이 감정적 불륜에 더 질투한다거나, 부모가 친자보다 의붓자식을 더 학대한다거나, 둘째가 첫째보다 진취적이고 모험적이라는 등의 연구 결과들이 다른 가설들을 배제시킬 만큼 확실한 근거를 갖고 있지는 않다고 본다.



브루스 윌리스처럼 나이를 꽤 먹은 할리우드 남자 배우들이 젊은 여자를 끼고 다니고 ‘플레이보이’ 모델이던 안나 니콜 스미스가 20대에 90세가 다 된 석유재벌 하워드 마셜과 혼인한 사례를 보면 진화심리학적 주장이 옳다고 여겨지지만, 젊은 남자 배우가 브루스 윌리스의 전처인 40대의 데미 무어와 사귀고 유명 배우이면서도 평생 반려자와 늙어가는 배우도 많다.

첫째로 태어난 사람이 보수적인 경향을 보이는 반면 둘째는 자유분방한 경향을 보이는 식으로 출생 순서에 따라 성향이 달라진다는 연구로 유명한 프랭크 설로웨이는 진화심리학적으로 볼 때 첫째는 부모의 자산과 유전자를 독차지하고 있었기에 둘째가 태어나면 잃을 것이 많으므로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 애쓴다고 말한다. 따라서 첫째는 권위에 수긍하는 보수적인 경향을 띠게 된다. 반면에 동생들은 처음부터 부모의 기대 수준도 낮고 기대에 어긋나도 잃을 것이 별로 없으므로 변화와 모험을 선호한다. 그래서 세계를 혁신시킨 사람들은 대부분 첫째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 혁신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은 설로웨이도 첫째가 아니다. 하지만 반박하는 사람들은 반대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고 말한다.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은 첫째였다.



구체적인 사례마다 논란이 분분하긴 하지만 진화심리학은 심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았고, 인간의 심리적 적응 양상들을 새롭고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개념적인 틀을 제공한다. 제프리 밀러는 ‘메이팅 마인드’에서 진화심리학이 지나치게 억지 해석을 한다는 견해를 반박하면서, 오히려 인간 특유의 창의적인 능력들을 소홀하게 다루는 등 지나치게 소극적이라고 본다.

그는 음악, 미술, 지능, 학습 등도 진화의 간접적인 산물이 아닌 짝 선택에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선택된 형질들이라고 말한다. 진화심리학자마다 인간 마음의 다양한 특성들을 해석하는 방향이 서로 다르곤 하지만, 진화심리학이 언제까지나 알 듯 모를 듯한 영역으로 남아 있을 것처럼 여겨졌던 인간의 마음을 과학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은 진화론과 생물학을 기반으로 한 자연과학과 인문학 및 사화과학의 통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이한음 과학평론가)

07. 07.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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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8-06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걸 퍼오신 이유는? :p

2007-08-06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7-08-06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가기 기능이 사라지지 않았나요?^^

kleinsusun 2007-08-06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저도 뭐...잘생긴 남자가 좋다! 이런 뜻에서...ㅋㅋ

잉크냄새님, 복사해서 붙이기 했어요. 서재 2.0되고 나서 좋은 거 보다 불편한게 많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