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출간된 책들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도널드 시먼스의 <섹슈얼리티의 진화>(한길사, 2007)이다. 학술명저번역 총서의 일환으로 출간되었는데, 지난 1979년에 출간된 원저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는 진화생물학/진화심리학 분야의 '고전'으로 살아남은 이유/비결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데이비드 버스의 책들이나 제래드 다이아몬드의 <섹스의 진화>(사이언스북스, 2005)를 비롯해서 이후에도 이 분야의 '명저들'은 많이 출간/소개됐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저자의 이름도 다소 생소하기도 하고. 책소개도 이런 점을 의식했는지 아래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출판된 지 2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이에 따라 진화심리학에서 그 당시 이뤄졌던 논의와 현재 진행되는 논의가 다소 다를 수도 있으나, <섹슈얼리티의 진화>는 성에 관한 진화심리학적 논의의 이정표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있는 책이다. 관련 분야의 다양한 논의를 심화시키는 데 이바지한 바가 크며, 특히 국내의 인간에 대한 생물학적 연구, 성 심리학, 그리고 여성학적 논의의 성숙에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성매매 특별법' 등에 대한 입장을 정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

요컨대, 이정표가 된 책이라는 것. 분량도 560쪽(원저는 368쪽)에 이르기에 부피에 대한 바람도 채워준다. 장서용으로 좋다는 얘기이다. 다윈의 <인간의 유래>(한길사, 2006)도 아직 꽂아놓고 있지 못한 형편인지라 소장도서로 만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듯하지만, 리뷰 정도는 미리 읽어두도록 한다.  

 

문화일보(07. 03. 02) 남성의 바람기는 ‘유전자의 명령’

여성을 위한 ‘플레이 보이’지를 창간하려는 사람에게 주는 충 고. 첫째, 음경이 발기한 남성의 사진이 음경이 축 늘어진 남성 의 사진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둘째, 남성의 단독 사진보다는 벌거벗은 남성과 함께 있는 여성의 사진이 좀더 효과적이다. 셋째, 남녀가 서로 어루만지는 사진이 특히 효과적이다.

이 같은 충고는 여성의 성(性)적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여성의 벗은 모습에 시각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남성과 달리 상당수 의 여성들은 남성의 누드사진에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기한 남성의 사진이 그렇지 않은 남성 사 진에 비해 효과적인 것은 보다 실질적인 성 관계를 시사하기 때 문이다. (이는 여성을 위한 포르노 잡지의 입지가 빈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포르노토피아(pornotopia)에선 합당한 맥락에서의 성적 현실 보다는 환상적인 상황을 설정하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은 남성을 시각적으로 대상화하는 데서 오는 자극보다 는 사진에 같이 나오는 여성에 대해 주관적인 동일화를 함으로써 더욱 자극받는다. 이는 세번째 충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단순한 시각적 자극보다는 사진에 자신을 투사해보기를 여성은 더 선호한다. 사진에 자신과 같은 성인 여성이 나오는 것은 경쟁과 질투심 같은 정서 또한 촉발할 수 있다.



책은, 이 같은 인간의 성 특성에 관한 진화심리학적 고찰을 집대성한 고전이다. 진화심리학에선 인간의 진화사를 통해 보통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심리적 특성과 행동을 설명한다. 저자는 인간의 성적 행동과 태도, 감정에서 남녀간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차이가 생래적이라는 결론을 내놓는다. 다시 말해 똑같은 환경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남녀 사이에는 전형적인 성 특성이 나타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인류의 진화사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남자와 여자의 성 특성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첫째, 이성을 두고 벌어지는 동성간의 경쟁은 일반적으로 여성들 보다 남성들 사이에서 훨씬 치열하다. 둘째, 남성은 일부다처적인 성향이 농후하지만 여성은 이런 측면에서 비교적 유연성이 있다. 셋째, 배우자에 대한 성적 질투심은 남성이 더욱 강렬하다. 넷째, 육체적 특징 특히 젊음은 여성의 성적 매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이에 비해 남성의 육체적 특징(젊음 등)은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작다. 다섯째, 여성에 비해 남성은 훨씬 많은 수의 성 파트너를 갖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 여섯째, 성은 여성이 남성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또는 호의로 간주되며 그 반대는 아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이 같은 남녀의 성적 특성이 유전자의 보존과 후대 전달을 위해 모든 생물이 프로그램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유전자의 후대 전달을 위해 남녀간 성적 특성과 행동에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남성은 될 수 있으면 많은 여성과 관계를 맺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평생 낳을 수 있는 자녀의 수에 제한이 있는 여성은 다수의 남성과 무작위로 관계를 맺기 보다는 우수한 유전자를 선택하는 것이 더욱 유리하다. 따라서 남녀는 각기 다른 성행동 전략을 구사하게 되는 것이다.



사족 한마디. 남성에게 다수의 성 파트너를 얻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옳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러한 특성 이 있다는 ‘사실(fact)’에서 ‘가치(value)를 도출해내는 것은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자연’과 ‘선(善)’을 동일시하려는 경향은 진화론적 원인을 이해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김영번기자)

07. 03. 03 - 04.

P.S. 저자인 도널드 시먼스는 "캘리포니아 대학 인류학과 교수"로서 "인간의 성 특성의 진화론적 해명에 관심을 가지고 줄곧 연구해왔으며, 성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탐구를 대표하는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소개돼 있다.

"지은 책으로는 <놀이와 공격성: 붉은털원숭이에 대한 연구>, <섹슈얼리티의 진화>, <전사 연인들: 성애적 허구, 진화 그리고 여성의 섹슈얼리티> 등이 있다"고 하는데, 마지막에 언급된 <전사 연인들>이 최근에 나온 <다윈의 대답> 시리즈의 한권이다. 마저 소개되면 좋을 듯하다...

P.S.2. 섹슈얼리티의 진화심리학의 연장선상에서 '강간의 진화심리학'에 대한 소개/논의를 옮겨놓는다. 온라인 학술저널 담비의 리뷰팀이 <섹슈얼리티의 진화>의 역자이기도 한 김성한 교수의 연구논문을 요약정리해놓고 있다.

담비(07. 03. 03) 진화심리학을 오해하는 페미니즘에 맞서

강간 같은 흉폭한 강력범죄에 대한 학문적 연구에서는 그 원인에 대한 설명을 둘러싸고 여러가지 설명의 유파가 존재한다. 피해 여성에게 심각한 고통을 주는 강간은 그 원인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예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강간에 대한 기존의 설명은 주로 페미니스트들의 사회심리학적 분석이 그 주도권을 잡아왔다. 강간을 사회문제화하고 그것에 대한 최소한의 처벌 기준을 제시해온 그들의 공력은 인정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강간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해석이 등장하면서 양 측이 해석공방을 벌이고 있다.

최근 '철학' 제89집에 발표된 김성한 서울여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의 '강간에 대한 진화심리학의 설명 비판은 타당한가?'는 진화심리학적 설명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을 분류하고 그 각각에 대한 반론을 시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먼저 김 연구원은 강간에 대한 진화심리학의 설명을 요약해서 제시한다.

불필요한 질문처럼 여겨지지만 왜 남성이 강간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을까부터 보자. 이는 기본적으로 남녀 간의 생물학적 성 특성의 차이 때문으로 "여성이 상대를 가림에 비해 남성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 모습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남성은 단순히 교접만으로도 자손을 탄생시킬 수 있기 때문에 사랑없이, 상대와 비교적 무관하게 성관계를 맺을 수 있을뿐만 아니라, 시각적 자극 등 비교적 단순한 기작을 통해 성적 욕구가 일어난다. 반면 여성은 임신과 출산 등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상대를 잘못 고를 경우 자칫 자손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 선택에 신중하다. 이 때문에 성관계와 관련한 수요 공급의 불균형이 일어나고 대부분의 남성들이 성적 파트너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다.

바로 이런 이유가 성매매의 사회적 승인여부와 관계없이, 나이와 사회경제적 지위 또는 정신병의 유무와 관계없이 지극히 정상적인 남성들마저도 강간범이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이유다. 남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어떤 설문조사에선 잡히지 않으면 강간을 범하겠는가의 질문에 35%가 그렇다고 답했다는 건 이런 주장을 보강해주는 자료다.

강간으로 인한 여성의 고통에 대해 진화심리학자들은 어떻게 설명할까. 왜 강간의 고통이 여타의 폭력 등에 비해 더 심각한 상처를 안겨주나. 강간 희생자인 여성은 육체적 상처를 넘어서, 아이출산 시기와 상황, 그리고 태어날 아이의 아버지가 될 남성을 선택할 기회를 박탈당하며, 이로 인해 번식적 성공의 가능성이 현저히 줄기 때문이라는 게 그 설명이다. 심지어 진화심리학자들은 이런 가정도 해봤다고 한다. 만약 여성들에게 번식적 성공의 가능성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교육을 시키면 어떻게 될까. 물론 터무니 없는 추론이다. "여성은 교육을 받음으로써 강간당하는 경험을 원하게 될만큼 유연한 본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게 결론.

그렇다고 진화심리학이 강간을 옹호하거나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레이(R. Gray) 같은 학자는 "진화론적 설명은 우리의 행위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유전자에 프로그램화돼 있으며, 그래서 그 행위가 자연스럽고 고정적이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듯하다"라고 비판적 입장을 보이지만, 진화심리학은 남성이 상대방에게 고통을 야기하면서까지 강제적으로 성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망을 타고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즉, '여러 여성과의 성관계'를 갖고 싶어하는 욕망이 곧 강간에의 욕구는 아니라는 것. 이런 맥락에서 유전자 결정론자로 비난을 받고 있는 도킨스조차 "우리는 유전자에 대항할 힘이 있으며, 이 지상에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이기적 자기 복제자들의 전제적 지배에 반역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에드워드 윌슨도 인간의 공격성은 유전적 성향과 사회가 처한 환경, 그리고 그 사회의 역사라는 세가지 요인이 동시에 작용함으로써 발생한다고 말한바 있다.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진화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결정은, '물에 빠진 자식을 구하지 않을 수 없어서 구했다'라는 의미의 결정이 아니라, '직각적으로 물에 빠진 자식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는 사실이며, 그러한 감정이 우리에게 육박해 들어온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라고 김 교수는 되풀이 설명한다.

그럼에도 진화심리학자들은 학습이나 환경적 요인들이 통제력을 발휘해 행동상의 변화를 가져올 수는 있지만,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일부 성향 자체를 완전히 변화시킬 수는 없음을 분명히 한다. 이는 호랑이의 맹수적 본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이것 때문에 진화심리학자들은 오해를 사기도 하는데, 김 교수는 논문에서 이들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자연적인 것'이라는 등식은 받아들이지만, '자연적인 것=옳은 것'이라는 등식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연적인 경향을 인정하는 게 곧 옳음을 주장하는 게 아니며, 이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진화심리학에 대한 기타 사회과학자들의 구체적인 반박을 살펴보자. 먼저 진화심리학의 강간에 대한 설명은 꼭 필요하지 않은 군더더기라는 관점이다. 니네들이 굳이 나서지 않더라도 충분히 설명된다는 것으로 탕-말티네즈(Z. Tang-Martinez) 같은 이는 "강간이 생물학적 토대를 갖는다고 주장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페미니스트 사회심리학 분석을 통해서도 해결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페미니스트 사회심리학이란 남성은 어렸을 때부터 사회화를 통해 여성을 통제, 지배하려는 욕구를 습득하게 되고, 이것이 고착 강화되면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으로 나타난다는 해석으로, 강간이 일종의 정치적 행위라는 주장을 표방하는 입장을 지칭한다.

하지만 그런 설명은 설득력이 약하다. 김 교수의 주장처럼 동일한 현상에 대해 근인(proximate cause)적 설명과 궁극인(ultimate cause)적 설명을 모두 추구하는 게 바람직하다. 우리는 동물의 행동을 신경, 호르몬, 인지과정, 유전자, 조건화, 감정 등을 통해 설명할 수 있으며, 이들 중 어떤 한가지만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강간에서 생물학적인 성 특성을 간과한다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놓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회심리학자들은 강간이 성범죄가 아니라는 걸 주장하기 위해 강간범들의 증언을 활용하기도 한다. 강간범들은 붙잡히고 나서 왜 그랬냐는 질문에 "불만, 분노, 소외감" 등을 대기도 하는데, 이를 근거로 강간을 힘, 지배, 굴욕, 착취, 가학성에 관한 폭력행위로 규정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 강간범들이 "더 이상 내가 위험인물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성적 충동을 최소화해서 말하는 것"일 가능성이 사실상 크고, 일부 조사에서 강간범들은 자신의 실제 동기를 말하기보다 연구자들이 원하는 설명을 제시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강간할 때의 폭력사용을 이유로 강간을 폭력으로 이해하려는 경우도 비판하고 있다. 강도가 피해자의 물건을 강탈할 때 강도의 목적이 물건이지 폭력이 아닌 것처럼, 강간도 마찬가지라는 것. 이 문제에 대해서는 손힐(R. Thornhill) 등의 경험적 연구가 있는데, 강간범의 폭력을 도구적 완력과 과도한 완력으로 나눌 때 대부분 전자에 속한다는 연구가 그것이다. 또한 강간희생자가 살해당하는 경우도, 전체 살인사건에 비해 극히 일부분이고, 면식범의 소행일 경우 사건은폐가 더 크게 작용한다는 점도 덧붙이고 있다.

또한 일부는 전쟁중에 강간이 많이 발생하는 것을 근거로 강간이 성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브라운밀러 같은 이는 전쟁 중에 남자들이 떼거지로 다니면서 여자의 나이를 가리지 않고 집단윤간을 행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월성이나 지배욕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데 이것도 생각해보면 성적 욕구의 충족을 목적으로 일어난 강간으로서, 다만 전쟁중에는 처벌받을 가능성이 현저하게 낮아지기 때문에 강간빈도가 높아지고 행위의 수준도 강화된다는 것쯤은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아무튼 강간의 원인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설명은 기존의 사회심리학적 설명의 부족한 부분을 잘 메워주고 있는 듯하다. 물론 김 교수의 논문은 진화심리학적 입장에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사회심리학적 설명들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감이 없지 않다. 때문에 이것은 논쟁을 통해 가다듬어 나가야 할 주제인 듯하다.(리뷰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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