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명한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의 <위험한 열정 질투>(추수밭, 2006)에 대한 한겨레(06.06. 16)의 리뷰를 옮겨온다. 이유는 질투 때문이 아니라 기말시험 채점 중에 잠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이다. 기자는 일단 '질투는 진화의 힘'이라는 멋들어진 제목을 뽑았고, 마지막엔 이 책이 <오셀로를 닮은 남자, 헤라를 닮은 여자>(청림출판, 2003)의 재출간본이라는 점을 명시해줌으로써 점수를 땄다(출판사의 상호가 변경된 듯하다). 데이비드 버스의 책들에 관해 이전에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 조명해보는 이유이다(이 정도의 초보적인 진화심리학은 이젠 상식이 될 만하다).

 

 

 

 

-“어서 털어놔. 그 사람이랑 잤지?” “당장 고백하지 않으면 당신을 칼로 찌르고 말거야!” 남편에게서 살기를 느낀 아내는 공포에 질린 채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려 했다. “맞아요. 당신 말이 맞아요. 이제 절 놓아줘요.” 순간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다. 분노에 질린 남편이 아내의 머리를 잡고 탁자에 내리친 것이다.

-에밀 졸라의 소설 <수인>에서 주인공 루팽이 아내를 다그치는 이 장면은 불행히도 소설로 그치지 않는다. 매일같이 어디선가 질투 때문에 권총이 발사된다. 또 어디선가는 질투 때문에 휴대폰이 날아다니고 또 한편에선 질투 때문에 울부짖는다. 배우자의 외도를 목격하거나 파트너가 자기 곁을 떠나버릴 때 질투라는 감정은 격렬하게 경고음을 울린다. 밑바닥엔 “내가 널 가질 수 없다면 아무도 널 가져선 안돼”라는 위험한 열정이 도사리고 있다. 극단적으로 흘러 ‘살해 환상’에 시달리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 한두 번쯤 겪었을 이 음습한 열정,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악마적 본성은 대체 뭔가.

-“질투란 계속 생존하고 생식할 수 있도록 하는데 매우 중요한 감정이다. 질투하지 않는 사람은 질투심 많은 경쟁자에게 밀려 진화에서 도태되었다.” 질투라는 파괴적 본능을 건설적으로 본 사람은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 그는 여자친구가 없던 젊은 시절, “내 여자친구의 몸은 완전히 그의 것이고 자기가 원하는 누구와도 잠자리를 같이할 수 있으며, 질투란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는 미성숙한 감정일 뿐”이라고 ‘쿨하게’ 생각했지만 사랑에 빠지자마자 태도가 180도로 돌변해 잠자고 있던 심리의 저변을 인식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진화심리학을 탄생시킨 배경이다.

 

 

 

 

-인간의 짝짓기 전략을 탐구한 저서 <욕망의 진화>(백년도서, 1995)를 더 구체화한 <위험한 열정 질투>(추수밭 펴냄)는 자기 짝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느끼는 욕망과 외도 행위에 대처하기 위해 설계된 ‘질투’라는 안전판을 주목한 책이다(*<욕망의 진화>도 재출간되는 게 좋지 않을까? 책을 읽어본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사랑하는 만큼 질투하지만 질투만큼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감정도 없다. 질투는 상처와 위협, 상심, 당혹, 배신감, 거부당함, 화남, 소유욕, 혼란, 좌절, 우울, 분개 등을 동반한다. 그렇지만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질투는 주요한 애정관계에 위협이 왔음을 알리는 적응적 신호이다. 예컨대, 위협적인 언사와 매서운 눈초리로 경쟁자를 몰아내고, 배우자에게 애정 공세를 퍼부어 한눈을 팔지 못하게 만들고, 흔들리고 있을지도 모를 배우자에게 변치 않는 애정을 알리는 구체적 행동을 유발시켜 사랑을 붙잡아두도록 한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면 질투는 사랑을 지키는 ‘방어 메커니즘’인 셈이다.

-반면, 외도는 진화적으로 가치 있는 자원의 일부가 다른 데로 새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남성은 자기 짝이 낳은 자식이 실제로 자기 자식인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여성은 자신의 짝이 다른 여성과 그 자식에게 마음을 빼앗겨 ‘자원’을 몽땅 갖다 바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늘 지니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다음 문제는 진화과정에서 생긴 남녀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상상해보라. ① 그가 다른 사람과 감정적으로 깊이 교류하고 있다, ② 단지 다른 사람과 성욕만 나누는 사이다, 어느 쪽이 화나고 충격적일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은 감정적 배신에, 남성은 성적 배신에 더 괴로워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배우자의 질투심에 맞선 남녀는 숨바꼭질하듯 ‘나선형 공동진화’를 해왔다. 낯선 냄새나 수상한 외출 따위의 낌새를 느끼면 배신행위의 비언어적 신호를 해독하는 심리적 안테나가 극도로 민감해진다. 동시에 감쪽같이 속여 넘길 상대의 기술도 연마된다. 또 짝시장에서 ‘남성은 자원, 여성은 외모’를 갖춘 선호도가 높은 경쟁자가 나타날수록 ‘질투 방어체계’가 크게 작용하도록 진화했다.

-거꾸로 배우자를 지키려는 질투와 모순되는, 다른 사람을 욕망하는 위험한 열정은 왜 품는가. 지위, 명예, 결혼, 심지어 신변의 안전까지도 송두리째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데도 말이다. 한 여성의 말이 흥미롭다. “남자들은 수프와 같은 거죠. 늘 여분의 한 냄비를 불 위에 올려두어야 하거든요.” 저자는 여성의 외도를 질병과 전쟁 등 짝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비한 ‘짝보험’을 들려는 습성으로 설명한다.

-여성 생식기에서 발견된 또다른 진화론적 증거를 보자. 돌돌 말린 이상한 모양의 정자, 수영속도가 형편없는 일명 ‘가미가제’는 두 남자의 정자가 동시에 한 여성의 몸 속에 서로 섞여 있을 경우 근원이 다른 정자를 감싸 안고 함께 죽어버린다.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주려는 오랜 경쟁의 역사가 없었다면 전투 담당 특수정자가 등장했을 리 만무하다. 일부일처 이전, 생래적으로 폴리아모리(다자간 사랑)였음을 추정케 한다는 풀이다.

질투 숨기되 질투 유발시켜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책의 마지막장은 사랑으로 이끄는 대처법에 할애한다. 첫째, 질투를 숨겨라. 질투 경험이 있는 사람의 50%는 의도적으로 질투를 감춘다. 상대적 매력이 뒤떨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 질투를 유발시켜라. 다른 이성에게 시시덕거리며 미소를 짓는 건 “제가 곁에 있는 걸 당연하게 생각지 말아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셋째, 경쟁자를 폄훼하라. 이것은 자신의 자존심을 회복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깊이 사랑하지만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고, 의심하면서도 열렬히 사랑한다.” 질투의 늪에 빠진 오셀로가 남긴 이 말은 ‘오셀로 증후군’을 앓고 있는 모든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올바로 사용될 경우 질투는 관계를 풍요롭게 하고 열정에 불을 붙이며 헌신을 강화한다. 질투가 전혀 없다면 연인에게 그만큼 불길한 신호도 없다”고 말한다. 2003년에 나온 <오셀로를 닮은 남자, 헤라를 닮은 여자>를 재출간했다. 37개 문화권에서 무려 1만여명을 사례 조사했다. 구구절절한 사랑의 열정과 파멸이 소설책보다 극적이다.

 

06. 0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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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6-17 16:40   좋아요 0 | URL
ㅎㅎ 퍼가고 싶지만, 애인이 볼까봐서 -_-; 안 퍼갑니다. 진화생물학은 흥미롭지만, 인문학도로서는 일정부분 이상은 땡기지(?)가 안습니다. 뭔가, 생물학적 환원론 같기도 하고. '통섭'같은 문제도 과연 가능할까 의문이네요. 하지만, 역시 재미는 있습니다 ^^;

로쟈 2006-06-18 08:33   좋아요 0 | URL
진화생물학의 관심은 "일정 부분 이상은 땡기지 않습니다"가 아니라 "애인이 볼까봐서 안 퍼갑니다"인 것이죠.^^

호박 2006-06-18 05:45   좋아요 0 | URL
몰래 읽고 애인을 관찰해보는 재미도... 풋.

evopsy 2006-06-29 05:56   좋아요 0 | URL
잘 읽었습니다. 2003년에 나온 [욕망의 진화] 개정판이 곧 재출간될 것 같은데요...^^

로쟈 2006-06-29 07:46   좋아요 0 | URL
좋은 소식이군요. 제가 다시 살 필요는 없었으면 싶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