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노트북 시작페이지는 '네이버'다. 어제 눈을 부비며 일어나 노트북을 켜고 네이버 첫 화면을 봤을 때, 뭘 잘못 봤나 했다. 정수라 결혼사진이었다. 정수라라면 내가 어렸을 때 '아~대한민국!'을 부르던 가순데, 도대체 지금 몇 살이지? 궁금한 마음에 검색해 보니 정수라는 63년생, 남편은 54년생다. 54년생! 우리 상무님이랑 동갑이다.헉!!!연예인들의 특성상 정수라는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였고, 예전에 뚱뚱해서 그런지 오히려 지금이 전성기 때 보다 예뻐 보였다. 얼굴도 갸름해 지고 긴 생머리도 그렇고 언뜻 보면 SES 유진이랑 약간 닮은 것 같기도. 하지만 사업가인 남편은 연미복을 입은 것 자체가 웃겨 보였다. 하긴 그럴 수 밖에....54년생이면 한국 나이로 53살이다. 머리도 많이 빠졌고 주름도 자글자글한 것이 꼭 연미복을 입어야 했나...안스러워 보이기 까지 했다. 신문에 난 사진들을 보니 연미복 뿐만 아니라 한복을 입은 사진도 있었다. 사진을 보는 내가 다 뻘쭘했다. 정수라의 결혼식에는 하객이 1,000명이나 참석했다고 하는데, 나이 든 사람들이 꼭 그렇게 '요란한' 결혼식을 해야 할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S건설 대표라는 정수라의 신랑(?)은 23살, 20살 다 큰 아들이 2명이나 있단다. 결혼식 사진을 보면서 애들이 학교 가서 쩍 팔리진 않을까 하는 별 쓸데 없는 생각도 잠시 했다.무엇보다, 나는 왜 나랑 아무 상관 없는 연예인의 결혼소식에 이렇게 신경을 쓰나? 생각했다.난 연예인들한테 별 관심이 없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도 잘 모르고, 요즘 '뜨는' 애들도 몰라서 가끔 '넌 TV도 안보냐?' 하며 핀잔을 듣기도 한다. <액스맨을 찾아라> 같은 데 연예인들이 우르르 몰려 나오면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누가 누구랑 스캔들이 났다고 해도 별 관심이 없고, 누가 누구랑 결혼을 한다 해도 '그래?'하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만다.그런데....그런데 왜? 도대체 왜? 정수라의 결혼에는 네이버 검색까지 해 가며 관심을 가졌던 걸까? 왜 그렇게 신경이 쓰였을까?생각해 보니, 인정하기 싫지만 그건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나도 이렇게 결혼 안하고 있다가 저렇게 나이 든, 머리가 희끗희끗한 차원을 넘어 머리가 많이 빠진 남자랑 결혼하면 어쩌지? 그런 막연한 두려움. 난 사실... 30대지만 내 나이가 많은지 모르고 산다. 회사에서도 후배들이랑 자주 어울리다 보니 그냥 20대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가끔 결혼한 친구들을 만나면, 애가 둘씩 있는 애들을 만나면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하고, 기분이 이상해 지기도 한다. 걔네는 이미 자기들이 '늙었다'고 생각한다. 친구들은 말한다."넌 참 늙지도 않아. 결혼을 안 해서 그런가? 항상 그대로야."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 위로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남자를 좋아했다. 우리 집은 딸만 셋인데 내가 첫째다. 그런 이유에선지 부모님은 내겐 좀 엄격한 편이었고, 난 부모님께 재롱을 부린다거나 뭘 조르거나 하는 일들을 거의 하지 않고 자랐다. 그래서인지 난 내가 칭칭 거릴 수 있는 남자가 좋았다. 하염없이 날 귀여워 해주는 남자! 연하는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동갑도 싫었다. 남자 같이 느껴지지 않고 그저 어리게만 느껴졌다. 그런데...이제는 그렇지가 않다. 30살과 37살은 좋아 보인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 <열 일곱, 스물 넷>처럼 참신하고 싱그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무리 없이 어울려 보인다. 그런데 34살과 41살은? '불혹'이라 불리는 나이 40을 넘었다는 생각에 엄청난 '심리적 저항'이 느껴진다. 30살과 37살이 만나 4년 있으면 34살과 41살이 되는 건데도, 우습게도 현재 시점에서 41살 남자를 만나는 데는 거부감이 느껴진다. 그건 아마도 '나이듦'에 대한 나의 두려움이 크기 때문일 꺼다. 29살 때, 30살이 되면 큰 일 나는지 않았다. 쓸데 없이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큰 소리로 틀어 놓고 운전하다 보면 눈물이 나곤 했다. 막상 30살이 되었을 때,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어서 놀랐다. 허탈하기 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벌써부터 40살이 되는 게 두렵다. 피할 수 없는 거지만, '늙는다'는게 두렵다. 정수라의 결혼사진을 보고 그렇게 충격을 받았던 건, 자꾸 신경이 쓰였던 건 아마도 내 '두려움'이 투사 되었기 때문일 꺼다. 엄청 쩍 팔렸을텐데도 신부를 위해(?) 연미복을 입고 기자회견까지 하는 늙은 신랑의 모습에서 엄청난 심리적 불편함과 거부감을 느꼈다. 어쨌거나, 늦게 만난 만큼, 정수라 커플이 많이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말)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사랑은 언제나 어디서나 온다.
5월의 토요일.날씨 참 좋다.이 좋은 날, 난 서울시내 한 복판에 있는 호텔방에 혼자 있다. 집에서는 글이 안 써진다는 핑계로.진짜 이유는 혼자 있고 싶어서. 내 나이 한국나이로 34살. 엄마 뱃 속에서 한 살, 생일이 1월 1일이건 12월 31일이건 새해 첫날 일괄적,무차별적으로 다함께 나이를 먹는 비합리성, 또는 억울함으로 언젠가 부터 나이를 말할 때는 "73년생"이라고 대답하거나, 앞에 "한국나이"라고 친절한(?) 부연을 붙힌다.30대 중반이 되었는데 부모님께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는 건 쩍 팔리는 일이다.그리고 불편한 일이다.유럽 거래선들이랑 농담 따먹기 및 신변잡담을 주고 받다 보면 꼭 이런 질문이 나온다. " 혼자 사니? 아님 남자친구랑?" (유럽에선 결혼 안하고 동거만 하는 경우가 일상다반사다.결혼을 해도 몇 년 동거하다가 한다.) 이럴 때, 정말 대답하기가 뻘쭘하다. "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 " 뭐.라.구? 부모님이랑? " 난 쩍 팔림을 모면하려 부연설명을 한다." 한국에선 결혼하기 전엔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 게 일반적이야. " 이렇게 대답하면 유럽 애들은 어이 없다는 듯이 놀라며 묻는다." 그럼 40살까지 결혼 안 하면 그 때까지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 Non sense! " 베스트셀러 <괴짜 경제학>에는 이런 제목의 글이 있다. "마약 판매상은 왜 어머니와 함께 사는 걸까?마약 판매상들은 엄청나게 돈을 버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집도 없이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면서.이 부분을 읽다가 경기를 일으킬 뻔 했다.아....뜨끔! 결국 나이 들어서 부모와 함께 산다는 건 경제적으로 무능력하다는 거다.작년에 독립을 하려고 오피스텔을 알아 봤다.헉 소리 나게 비쌌다. 한 달에 50~60만원은 기본.관리비도 10만원이 가볍게 넘는다.이렇게 월세를 내고 저축을 하면 생활이 유지되지 않는다.미친 척 하고 전세를 얻을까, 하나 살까도 생각해 봤지만 전 재산을 전세금으로 맡겨 놓거나 부동산 시세도 불안정한 마당에 대출까지 받아 집을 사는 건 차마 간 떨려서 포기했다.또, 주변에서 이구동성으로 뜯어 말렸다. " 야, 너 독립까지 하면 진짜 결혼 못해.장기전으로 간다니까. 쓸 데 없는 생각 말고결혼을 해! " " 월세 낼 돈이 있으면 저축을 해! 현금 보유가 최고라니까. " " 혼자 살면 생활 진짜 문란해 진다. 사람 폐인되는 거 금방이야." " 나 혼자 몇 달 살다가 다시 집에 들어 갔쟎냐. 혼자 사는 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야. 진짜 외롭더라구." " 혼자 살면 뭐 하나 하는 게 다 돈이야. 치약 하나, 생수 하나도 다 니 돈으로 사야 한다니까." " 야...그러다 결혼하면 또 이사하고 골치 아프쟎아.결혼하면 집은 남자가 구하는데 뭐하려고 사서 고생을 하냐?" 등등 별의 별 충고와 잔소리를 다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난 독립을 하고 싶다.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절.실.히. 02년에 난 첫번 째 차를 샀었다.중고차를 한대 현금 주고 사 버렸다. 사실 서울에서 출퇴근하면서 차를 몰고 다니면 더 피곤하다.잠시 눈을 붙히지도 못하고,책을 읽지도 못하고, 차는 막히고, 주차하면서 스트레스 받고.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공간이 생겨서 좋았다. 크게 음악도 듣고, 때론 미친 듯이 혼잣말도 하고.하루 종일 완벽하게 혼자 있는 시간이 운전할 때 밖에 없었다.미친 척 하고 오피스텔을 얻을까? 연립주택 반지하라도 얻을까? 생각이 많다.나만의 공간이 필요해.절.실.히! p.s) 요즘 책을 쓰고 있다. 마음 잡고. 작년에 책을 쓰겠다고 선언만 하고 바쁘다는 핑계,심적 여유가 없다는 변명으로 꼬랑지를 내렸다.지금은...간절한 마음으로 쓴다.왜? 내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필요하다.절.실.히. 뭔가 집중하지 않으면, 뭔가 목숨 걸지 않으면 무너져 내릴 것 같다. 집에서는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아니 "잘"이 아니라 아예 안 쓰게 된다.튕자튕자,뒹굴뒹굴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호텔에 있으면 호텔비가 아까워서라도 글을 쓴다.영화 <디 아워스>에서 니콜 키드만이 혼자 있고 싶어서, 혼자 조용히 책을 읽고 싶은 바람 하나에 혼자 호텔에 가는 장면이 마음에 사무친다. 돌봐야 할 애도 없고, 가사의 부담도 없지만 영화 속 니콜 키드만의 심정을 약간은 알 것 같다.가끔은 정말.... 혼자 있고 싶다.
도대체 79년생인지, 79학번인지 헛갈리는 남자 후배 C가 있다.정말 79년생 맞나 궁금해서 민증까지 봤다. 확실하다. 79년생 98학번. 그런데 C의 사고방식은 79학번 남자에 더 가깝다.남자로 태어난 게 무슨 벼슬인지 안다.한 번은 C가 꿈꾸는 여자, 결혼하고 싶은 여자 얘기를 듣다가 한대 칠뻔 했다. 차 한대에 다섯 명이 타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라 내릴 수도 없고, 귀를 막을 수도 없었다. C의 입을 막아 버릴 수도 없었다. 그래서 심호흡을 하며 성질을 죽였다. C의 확신에 찬 표정으로 봐서 C는 자기가 얼마나 지독한 '모순'에 빠져 있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심호흡까지 하며 힘들게 들은 C의 이상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매일 아침 미니스커트를 입고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이며 남편의 아침을 준비하는 여자.- 생활력 있고, 너무 곱게 자라지 않은 여자.- 자기 부모님을 모실 여자(부모님하고 같이 사는 게 결혼 제 1조건이다.) - 결혼하면 전업주부 할 여자(바쁜 여자 싫단다.) - 애교있고 섹시한 여자 이런 여자가 세상에 있긴 있는지 모르겠다.만약 있다면 '다중인격 장애'를 앓고 있지 않을까?C는 말한다. 여자가 시부모를 모시는 건 당연한 거라고.시부모를 모시지 않겠다는 여자는 가정교육을 잘못 받은 거라고. 오빠나 남동생은 자기 부모를 모시기 바라면서, 자기는 시부모를 모시지 않겠다는 태도는 이기적인 거라고. C의 얘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79년생 C의 몸에는 조선시대에 장가 한 번 못 가보고 죽은 몰락한 양반의 혼이 들어 있는 게 아닐까? 영화처럼.C는 입사한지 몇 달도 안돼 회사를 옮겼다.돈 많이 주고 편한 데로 간다기에 축하해 줬다. 오늘 이상하게 C생각이 났다. C가 했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선배님 같이 바쁜 여자랑 결혼하면 밥이나 얻어 묵겠습니까?"그래.많은 사람들의 눈에 나는 그렇게 보일 꺼다. 바쁜 여자. 서른 훌쩍 넘었는데 결혼도 안한 여자.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여자.남자 보다 자기 일에 욕심이 많은 여자. 어제 처음 만난 회사선배의 친구와 셋이서 저녁을 먹었다. 나를 처음 본 그 남자의 눈에 나는 "쿨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인생을 즐기고, 대범하고, 남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 말 그대로 "쿨한" 여자. 남들한테 "쿨하다"는 얘기를 들을 때, 솔직히 당황스럽다. 난 쿨하기는커녕 내 정서는 차라리 신파에 가깝다. 울고,짜고,미련 많고,약지 못하고,여려 터진 신파."쿨하다"는 오해(?)를 받으면 쿨한 척 해야 할까?아니면 "전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잘 받는답니다." 하고 커밍 아웃을 해야 할까? 오늘 나는....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한 번도 화내본 적 없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화까지는 아니라도 짜증 한 번 내본 적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러 명이서 일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꼬이고 열 받는 상황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아무리 혼자서 온갖 교통법규 다 지켜 가며 운전을 해도, 뒤에서 비틀비틀 불안하게 따라오던 차가 쿵~하고 박아 버리면 그만이다. 회사 일도 그렇다.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삶은 계란을 세 개나 먹었는데 마실 물도 사이다도 없는 것 같은 황당하고 암담하고 목이 멜 것 같은 상황들이 발생한다.운전하다 욕 안 해본 사람 없는 것처럼, 회사 다니면서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를 항상 실천한다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내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다.어떤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목소리 한 번 높히지 않는 사람, 궂은 일 혼자 다해도 미련하다 싶을 만큼 생색내지 않는 사람,자기 잘못 아니라도 시비를 따지지 않고 일 처리 먼저 하는 사람,자기한테 어이 없이 소리지르는 사람한테도 끝까지 예의 바른 사람. 회사 선배인 천사표 K과장 얘기다. 정말....이런 사람 없다. 한 겨울의 주머니 난로처럼 누구에게나 따뜻한 사람이다. K과장은 41살 말띠. 예쁜 아내와 말 그대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애들이 있다. 딸 하나, 아들 하나. 둘 다 초등학생이다.천사표 K과장이 회사에 나오지 못한지 벌써 한 달. K과장은 지금 간암으로 투병중이다.한 달 전,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다가 정밀검사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입원을 했다. 조직검사를 하고 며칠 결과를 기다릴 때만 해도 "급성간염" 이겠지...했다. 그런데....암이란다.무슨....이런 일이 다 있지?병문안을 갔다가 마음이 내려 앉는지 알았다. 부인은 눈이 튕튕 부어 있었는데, 그 힘든 와중에도 애써 웃으며 음료수를 권했다. 마음이 저릿저릿했다. 잠깐 앉아 있다 나오는데 부인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을 나왔다. 손을 잡고 "언니, 힘내세요!" 말했더니 깡마른 K과장의 부인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나도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살면서 남을 위해 기도해본 적이 많지 않다.참....이기적으로 살았다. 나를 위해서는 열심히 기도했다. 끝까지는 못했지만, 삼천배도 해본 적 있다. 그 때 난 백조였다. 실업자 올드미스가 되면 어쩌지...하는 조바심과 두려움에 밤을 새워 간절히 절을 했다. 다리 아파 죽는지 알았다.삼천배하고 며칠 후, 지금 회사 포함 세 군데 회사에서 한꺼번에 연락이 왔다.불보살님의 가피를 입은 건지, 면접했던 회사들이 한꺼번에 발표를 한 건지는 알 수 없다. 실업자 올드미스 될까 봐 가슴 졸이던 나는 세 회사 중 어디를 갈지 주판을 튕기며 고민했다.요즘 K과장을 위해 기도한다.내 어설픈 기도가, 남을 위해 기도해본 적 거의 없는 내 어설프고 서투른 기도가, 아주 조금이나마, 아주아주 조금이나마 K과장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K과장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다. 천사표 K과장.
토요일 오후, 몇몇 호텔 커피숍은 선 보는 남녀들로 넘쳐 난다. 한 눈에 봐도 딱 알아볼 수 있다. 어찌나 어색한지.... 이 많은 커플 중 도대체 몇 커플이나 다시 만날까? 이런 생각을 하며 유심히 둘러 보면, 확률은 20% 도 안될 것 같다. 나이,키,가족관계,학력,직업,종교,연봉 등 상대방의 신상정보를 이미 파악하고 만난 여자와 남자가 오고 가는 질문 속에 서로를 탐색하는 자리. 난 정말,진정,참으로 '선'이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몇 번 선을 본 적이 있다. 벌써 몇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남자가 있다.어찌나 여러 가지로 웃겨 주셨던지... 그 남자는 정말 수많은 질문들을 했다. 무슨 면접관들처럼 질문 리스트가 있는 것 같았다. 난 최대한 예의 바르게 대답하려 각고의 노력을 하다가, 슬쩍 장난이 치고 싶어 말했다. " 왜 그렇게 질문을 많이 하세요? 선 볼 때 마다 그래요? " 그 남자는 약간 당황하며 대답했다. " 질문을 해야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으니까요."난 그만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수선 :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아까처럼 "어른을 공경하세요?"라고 질문할 때, "아니요."라고 대답하는 여자도 있나요? 맞선남 : (역력히 당황한 표정으로)물론....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죠. 하지만 말을 하는 방법이나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죠. 그러고도 그 남자는 몇 가지 질문을 더했다. " 결혼하면 남편한테 아침밥을 차려 줄 수 있나요? " 난 자기가 '부채 도사'라고 착각하는 그 남자를 좀 놀려 주고 싶어 씩 웃으며 말했다. " 아침에 뭐 드시는데요? " 그 남자는 자세히도 대답했다. " 저 서울에 혼자 사는 거 들으셨죠? 대학 1학년 때부터. 이젠 정말 아침에 빵 부스러기 먹는 게 지겨워요. 요즘엔 빵이 너무 지겨워서 빵집에서 파는 샐러드를 먹거든요. 그런데 그것도 차가워서 싫어요. 이젠 정말....밥이 먹고 싶어요. 따뜻한 밥이랑 된장찌개." 난 그 말을 들으면서 혹시 그 남자가 바보가 아닐까 생각했다. "아침밥을 해줄 수 있나요?" 라는 질문에 "네, 그럼요. 어떻게 남편을 빈 속으로 보내겠어요." 라고 닭살 돋게 대답해도, 결혼하고 나서 밥 안 해주면 그만이다. 물론 그 남자에게 있어서 '아침밥'이란 결혼조건 1번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네" 라는 대답을 들어야 마음이 놓이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은 상황에 따라 '변동적'이라는 걸 그 남자는 모르는 걸까? 그 다음 선에서, 또 그 다음 선에서, 그 다음 다음 선에서계속 그런 질문을 할 그 남자를 마주 보고 있으니, 슬며시 불쌍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남자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소개해 주신 분을 생각해서 참았다. 그 때 하지 못했던 말. " 결혼하면 아침밥을 할지 안 할지, 지금은 당연히 알 수 없죠.그건 결혼 해 봐야 알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출근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거구요. 그런데....그거 아세요? 여자들은요, 아니 여자건 남자건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요, 상대방에게 뭐든 해주고 싶어해요. 만약 제가 보신탕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남자를 사랑한다면요, 전 개라도 잡을 수 있어요. 그런데...처음 보는 남자가 아침 밥을 해줄 수 있냐고 물어 보면할 말이 없어요. 아마 다른 여자들도 그럴꺼예요. 질문에 대한 대답에 너무 연연하지 마시구요, 차라리 연애를 한 번 해 보세요. 어쩌면, 어쩌면 빵이 다시 좋아질지도 몰라요.빵을 좋아하는 여자를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아침에 고생하는 게 싫어서 밥을 먹기 싫을지도 몰라요. 아니면 직접 아침을 차릴지도 몰라요. 그렇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