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출근길.

평소 보다 2분 늦게 나간 대가로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떠나가는 통근버스를
안타까움과 스멀스멀 올라오는 짜증 속에 보냈다.

이미 떠난 통근버스를 뒤로 하고
멍하니 버스정류장에 서 있을 때,
한 난폭한 버스가 전력질주를 하며 물세례를 퍼부었다.

순간 난 벙커씨유와 매연,산성비를 뒤집어 썼다.
베이지색 정장은 참혹하게 젖었고,
얼굴에 긴머리까지 다 젖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해서 회사에 가야 하나...

꾸정물에 젖은 베이지색 정장을 보니
군데 군데 까만 알갱이 같은게 묻어 있었다.
티슈를 꺼내 옷부터 닦았다.

회사에 전화해서 하루 쉬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10시에 연기할 수 없는 미팅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난 한기에 떨며 버스를 탔다.
7시도 되지 않았건만 좌석버스에는 빈 자리가 별로 없었다.
옆자리에 앉은 뚱뚱한 남자는 이어폰을 낀 채 드르렁 드르렁 졸고 있었다.
다리는 어찌나 쫙 벌렸는지 내 자리의 반을 그 남자의 거대한 허벅지가 차지하고 있었다.

일상이란 왜 이렇게....왜 이렇게 구질구질할까?
구차하고 비리한 일상.

비 오는 날, 버스가 튀기는 물 한번 뒤집어 쓰고,
옆에 뚱뚱한 사람이 앉아 불편하게 앉아 있고...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상다반사인 데도
이상하게 서럽고, 외롭고, 서글펐다.

도.대.체, 내가 뭘하고 있는거지?
도.대.체, 뭘 위해서 꾸정물을 뒤집어 쓰고 아둥바둥 출근을 하고 있는거지?
7시도 안되서 버스를 가득 메운 이 많은 사람들은,
피곤에 지쳐 시체처럼 자고 있는 이 많은 사람들은
모두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걸까?

출근을 해서도 우울함은 가시지 않았다.
10시 미팅을 한 바이어와 점심을 먹으면서 맥주를 마셨더니
술기운까지 올라와 몸이 더 힘들었다.(낮술은 무섭다!)

우울한 하루를 보내고... 오늘 하루 휴가를 냈다.
사유에 "몸살"이라고 썼더니 팀장이 어디 아프냐고 물어봤다.
대답하려 하는데, 허옇게 질린 내 얼굴을 보더니 팀장이 말했다.
" 진짜 아픈가 보네. 내일 잘 쉬어라. "

회사에서는 이제 곧 점심시간이 시작되겠지.
하루 휴가를 낸 난 아직 잠옷을 입은 채로 쇼파에 기대 끄적끄적 글을 쓴다.

내가 전업주부라면 항상 이 시간에 이렇게 집에 있을 수 있겠지.
그럼.....지금보다 더 행복할까?

모르겠다.
어쨌거나 선물 같은 오늘 하루.... 푹~쉬어야지.
밥 벌이의 구차함에 하루 휴가를 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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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7-19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든 하루셨네요.이제는 햇빛 보고 싶은데...다음 주 초까지 기다려야 하나봐요.오늘은 밥벌이가 구차하지만 내일은 괜찮을 거에요...... 밥벌이가 힘든 모든 사람들에게 애정의 시선을...님께도.

2006-07-19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로라 2006-07-19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고단한 아웅다웅 일상, 휴가로 멋지게 날려버리세요~ 선물같은 하루, 부럽구만유~^^

mannerist 2006-07-19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마치고 아무 일이 없어 전화해 밥 뜯고 맥주 한 잔 사드릴려했는데. 헤헷... 어렵겠네요. 푹 쉬시구요, 조만간 만나 밥벌이의 개지겨움과 살아갈 길에 대해 토론 한 번 해 봐요. ㅎㅎ

mannerist 2006-07-19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 5동 171 도로교통공단 3층 혁신평가팀 김대중. 으로 보내주세요.

고마워요. ^_^o-


잉크냄새 2006-07-19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은 가끔 소설 제목처럼 닭털같은 나날이기도 하지요.^^

조선인 2006-07-19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오늘 이틀 연달아 지각했습니다. 어제는 12분. 오늘은 8분. 늦은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난 6시 30분에 일어나, 7시 30분에 이미 모든 준비를 끝마쳤는데, 시간 못 마춘 어린이집 버스 때문에 이틀 연달아 지각했다는 것 때문에 오전 내내 속이 부글거렸다죠.

2006-07-19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06-07-19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우리 수선님 고생하셨네요. 물튀기고 지나가는 차들 나빠욧. -_-+ 힘내세요. 가끔 일상이 더 맘아프게 느껴질 때가 있죠. 그러다가도 또 조그만 일에 더 행복해질 때도 있구요. 오늘 하루 푹 쉬시고 기운 차리시길 바래요. ^^

kleinsusun 2006-07-19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 감사합니다.^^ 아침이는 잘 크고 있죠?

속삭이신님, 감사합니다. 님의 문자가 큰 힘이 되었어요. 오늘 운동하고 땀 짝~빼고 기분이 좋아졌어요.^^

플로라님, 감사합니다. 근데 선물 같은 하루가 몇시간 안 남았네요. ㅠㅠ

kleinsusun 2006-07-19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매너, 맥주를 사려 했다구? 담에 꼭 사!^^

잉크님, 쌩뚱 맞게도...<닭털 같은 나날>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조선인님, 진짜...속이 부글부글 거리셨겠어요. 저야 뭐 지각하면 제가 못 일어나서 그런 거지만, 억울하게 늦는 그 마음이란.... 지금은 기분 좋아지셨나요? 우리 힘내자구요!^^

속삭이신님, 오늘 하루 잘 쉬고 기분 많이 좋아졌어요. 감사합니다.^^

달밤님, 근데요...."의도적"으로 물 튀게 하는 그런 차들도 있데요. 나쁘죠?
전 뚜벅이라 물을 튀게 할 수 없어요.ㅎㅎㅎ
네...이러다 또 작은 일에 행복해 질꺼예요. 그게 우리들의 일상. 일희일비!^^

2006-07-20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06-07-20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안히 좌석에 앉아 전철 창문 너머로 물기에 젖은 초록 들판을 보면서 통근(아니, 지금은 연수중이니 통학?)할 수 있는 저는 행복한거네요. 그냥 얌전히 지금 직장에 박혀있어야겠군하는 생각이 또 드네요.
 

" 넌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탁구공 같아. "
멀리 아프리카에 있는 사랑하는 친구 지혜가 내게 한 말.

요즘 내 일상은....정말 "탁구공" 같다.
스피드와 민첩성은 있으나 전략은 없는 선수의 손목에
핑퐁 핑퐁 정신 없이 날아 다니는 탁구공.

그러다 보니 실속 없이 바쁘기만 하다.

난 참... 계획을 세우고 일정을 관리하는데 젬병이다.
그 때 그 때 생각나는 일을 한다.

내 앞에 앉은 J과장은 아침마다 계획을 세운다.
두꺼운 "프랭클린 플래너"에 아침 일찍 해야할 일을 빼곡히 쓴다.
"소중한 일을 먼저하라!"는 프랭클린의 충고대로
해야할 일을 A+에서 C-인지 D-까지 질서정연하게 분류한다.

그뿐이랴?
가정경제에도 "중장기 계획"을 도입했다고 한다.
회사에서 중장기 계획을 세우면서
가정경제에도 중장기 비전과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단다.

한달에 한번인가 두번인가 부인과 함께
자산현황과 계획 대비 실적을 확인하고 개선방향을 의논한다고 한다.

중장기 계획 달성을 위해 J과장의 부인은 남편의 헌신적 외조 속에
공인중개사 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그들 부부는 지금 한참 공사중인 재건축 아파트에 입주할 날을 행복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에 비해 나는 당일 저녁의 계획도 수시로 바꾼다.
엿장수처럼 기분에 따라,
공사장 아저씨들처럼 날씨에 따라,
인터뷰를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톱스타들처럼 컨디션에 따라.

계획을 세우는데는 젬병이면서,
그 때 그 때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밀어붙히는 실천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
무식하고도 용감하게 일을 벌린다.

일주일 전,
난 새로운 세계에 머리를 들이 밀었다.

언제나처럼 무식하고 용감하게 시작했는데,
오랜만에 하루 푹 쉬다 보니 겁이 난다.
잘할 수 있을까?
무모하게 시작했다가 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건 아닐까?

꼭 연애를 시작하는 기분이다.
이 벅찬 감정과 두려움.

회사생활을 하면서
남들처럼 골프를 배우고 중국어를 배우는 대신,
마케팅 서적을 읽고 저녁에 경영대학원을 다니는 대신,
이리 저리 지치지도 않고 기웃거리며(그것도 돈 안되는 일만 골라서!)
수도 없이 삽질을 했다.(다행히... 체력 하나는 좋다.)

이번은...
제발 이번은....
삽질이 아니기를....
그렇게 쉬지 않고 찾아 헤매던 그 길이 맞기를....

오랜 시간 날 옆에서 지켜봐 준 국민학교 동창 재범이의 말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려 한다.

" 넌 삽질을 한게 아니야.
방향성이 없으면 삽질이지.
넌 한 방향으로 가고 있어. 네게 필요한 자양분을 쌓으면서."

기왕 시작한거 물러서지 말자.
겁내지 말자. Go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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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라 2006-07-17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안녕하세요~ 첨으로 인사드려요...^^ 저도 탁구공처럼 이리저리 튀어다니느라 정신없는 나날들입니다. 공감할 수 있는 좋은 말들 덕분에 힘이 되는데요.그리고 동창분 말씀처럼 수선님께 필요한 자양분이 되었을 거예요.^^

kleinsusun 2006-07-17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로라님, 안녕하세요!
플로라님도 정신 없이 튀어다니시는군요.^^
플로라님도, 저도...지금의 이 정신 없는 순간들이 가야할 길을 가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길 바래요. 우리 홧팅해요!^^

마늘빵 2006-07-17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계획성있는 생활보다 맘대로 가는 생활이 더 좋아요. 물론 경제적 측면에서 한참 뒤지겠지만요. 치밀한 계획 아래 이것저것 다 재다보면 삶이 재미 없을거 같아요. "내(뽀인뜨) 멋대로 살아라" 이게 좋아요.

kleinsusun 2006-07-17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오랜만^^
저도 물론...맘대로 가는 생활이 좋죠. 하지만....같은 자리를 빙빙 돌고 있는건 아닐까...걱정스럽고 두렵기도 해요. 방학은 잘 보내고 있어요?^^

2006-07-17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06-07-17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쁘신 줄 알았어요.
그 J 과장님네 얘기 들으니, 저의 무질서하고 일단 저질러보자, 하다 안되면 쉬고~하는 식의 생활이 무척 문제있어 보이기도 하네요. ㅎㅎ

hnine 2006-07-17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기 보다는, 그때 그때 '필'이 꽂히는 대로 최선을 다하자는 주의의 사람이 있답니다. 제 남편이 딱 그 타입이더군요. 성격이고 개성이라고 봐요.
기왕 시작한거 물러서지 마세요.
겁낼게 뭐가 있겠어요 ^ ^

kleinsusun 2006-07-17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살짝꿍 알려드리죠.^^

BRINY님, 님도 저와 같은 부류군요.ㅎㅎㅎ

hnine님,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왕 시작한거.... 아자!

마태우스 2006-07-18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중에 살짜쿵 알려주세요. "난...삽질을 했다"는 대목에서 강력히 반발하게 되네요. 골프나 재건축아파트보다도 님은 훨씬 더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해요. 홈피 가꾸는 것만 해도 그들보다 훨씬 나은데요 뭐.

kleinsusun 2006-07-18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네...님도 X촌에서 만나면 살짝꿍 알려드릴께요.^^
저...삽질한거 아니라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당.꾸~벅 ㅋㅋ

잉크냄새 2006-07-18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의 방향성!!! 이 있으면 삽질이 아니라는 친구분의 말씀에 공감해요.
탁구공도 드라이브 제대로 걸리면 일정한 방향과 엄청난 속도를 가진다는 것 아시죠? ㅎㅎ

kleinsusun 2006-07-18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님, 저는 탁구를 잘 못쳐서 제가 치는 탁구공이 일정한 방향으로 나간 적은 없지만, 탁구 경기를 보면 정말 일정한 방향과 엄청난 속도로 나가더라구요.
네...제가 쏟은 그 모든 에너지가 결국 다 모여서 엄청난 힘을 낼꺼라 믿어요.^^

moonnight 2006-07-19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기를 내셔요. 전 수선님의 탁구공같은 다이내믹함이 무척 부러워요. 전 늘 소극적이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무지하게 큰 편이라. ㅜㅜ 분명 잘 되리라 저도 믿어요. ^^

kleinsusun 2006-07-19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달밤님, 안 그래도 오늘 달밤님 생각했었는데....^^
네...잘 될꺼예요. 노래도 있쟎아요. 잘 될꺼야~ 하며 춤추는....ㅎㅎㅎ 홧팅!
 

토고전 하는 날 저녁,
울산에 있는 허름한 호프집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토고팀 분석, 시청 앞 광장의 응원 열기, 2002 하이라이트 등
방송 3사는 경기 몇 시간 전부터 채널을 고정시키려고 난리였다.

2002 하이라이트를 호프집의 대형 TV 스피커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렬하고도 비장한 음악과 함께 보고 있으니,
축구에 별 관심이 없는 나까지도 가슴이 뜨겁게 달아 오르며
애국심(?)이 마구 고취되었다.

그러다 광고가 나오자, 사람들은 잡담을 하며 맥주를 마셨다.
그 때, 필이 확~꽂히는 광고를 봤다.

한 젊은 여자가 커다란 곰인형을 안고 벤치에 앉아
남친과 키스를 하고 있다.(부러워라!)

카메라가 왼쪽으로 이동하며,
테이크 아웃 커피 종이컵을 잡고 있는 여자의 손을 보여준다.

화면이 바뀌며,
같은 벤치에 40대 아줌마가 테이크 아웃 커피 종이컵을 들고
"혼자" 앉아 있다. 옆에는 쪼글쪼글해진 곰인형이 휑하게 앉아 있다.

그 때, 자막이 나온다.
사랑의 평균지속기간 18개월 / 종이컵 분해시간 20년

"인생은 짧고 일회용품은 길다."
- 공익광고 협의회 "일회용품 사용자제-환경수명편"

아!!! 공익광고를 보고 이렇게 울컥~하기는 처음이다.

사랑의 평균지속시간 18개월,
종이컵 분해시간 240개월.

그렇게 다들 웃고,울고,죽네 사네 목숨 거는 사랑의 평균지속시간이
종이컵 수명의 7.5%!!!

어제 본 영화 <내 남자의 유통기한>도
주인공 커플이 3년 동안 서로 사랑하면
저주를 받아 잉어가 된 잉어 커플의 마법이 풀린다는 전제로 시작한다.

30년도 아니고 딱 3년!!!
짧아 보이지만, 사랑의 평균지속시간의 딱 2배다.

그럼 부부들은 정으로 사는건가? 초코파이 나눠 먹으며?

어쨌거나...
사랑의 평균지속시간의 "평균"을 깍아 먹는 연애는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p.s) 글 쓰기 시작할 때는 나름 필 받았었는데,
에어컨 안 나오는 사무실에 앉아 있으니
수박 껍데기에 파리 꼬이듯이 생각이 꼬인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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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7-02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아봤는데요, 제가 했던 연애들은 통계에 안들어갔더군요. 님은 대표적인 능력있는 미녀이니 통계에 들어갔을지도...^^

로드무비 2006-07-02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군요.ㅋㅋ
하긴, 처음부터 덤덤했던 터라 식고 자시고 할 게 없지 뭐유.^^;;

클리오 2006-07-02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같이 뜨거운 연애를 하면 그럴지 모르지만...(반드시 식어야 되니까..) 그렇지 않은 친구같고 우정같은 사랑은 정까지 더해져 상대를 점점더 이뻐보이게 만들어군요... ^^ 임자를 잘 만나야지 저도 그 전엔 평균지속시간 6개월 미만.... --;;

바람돌이 2006-07-03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랑이란게 눈 뒤집어져서 좋아죽는거 말이겠죠. 그거 18개월도 안돼요. 한 6개월쯤? ^^ 근데요. 사람이 늘 그렇게 눈 뒤집혀있으면 어떻게 산대요. 좋아하는 일도 좋았다 싫었다 할 때가 있듯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좋았다 싫었다 할때가 있는것 같아요. 그런데 웃긴건 그 싫었다 시기를 잠시 지나고 나면 또 상대가 새롭게 보인다는거죠. 그건 눈 뒤집히는거하곤 다르지만 뭔가 다르게 좋다는 느낌이 확실히 와요. 아마 그렇게 부부들이 사는게 아닐까 싶은데..... ^^

조선인 2006-07-03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좀 황당한 얘기인데 연애기간 5년 동안 옆지기가 '사랑해'라고 말해달라고 조를 때마다 참 싫었어요.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러다 마로 가진 뒤, 아,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긴 하는구나 느꼈고, 마로 걸음마할 때쯤 비로소 '이 사랑이 사랑이다'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직 정들기엔 느린 듯. 굉장한 slow starter죠?

마늘빵 2006-07-03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뜨거운 사랑을 해서 그런가. -_-

비로그인 2006-07-03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반 광고보다는 공익광고가 더 좋아요. 유명 연예인이 잘 등장하지 않아서 창의력 하나로 승부해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 공익광고 저도 보았는데 참 슬프다, 생각했어요. 18개월밖에 안된다면, 남는 긴 시간을 베어내지 못할 때는 무엇으로 보아야 할까?
무엇보다도 사랑이라고 믿었던 감정이 너덜너덜해지는 일은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아니, 없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저는 아직 어려요.

글샘 2006-07-03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놈의 수치란... 뭘로 평균을 낸 걸까요. 설문지로? ㅋㅋ
사람 나름이죠.

BRINY 2006-07-03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8개월이나 간다면 그나마 임자 제대로 만난 거네요. ㅎㅎㅎ. 만나서 2,3개월만에, 10번 만나고 결혼했다는 사람들 보면, 전에는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고 펄쩍 뛰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 들어요. 조건 맞으면 만나서 2, 3개월째가 가장 좋을 때죠~ 싸움 한번 안하고 눈에 뵈는 거 없고~

혜덕화 2006-07-03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광고 보고 느낀 게 많았어요. 아마 여기서의 사랑은 연애기간의 사랑을 말하겠지요.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면 18개월도 길거예요. 끝없이 주고 또 주면 유통 기한이 없어요. 처음엔 그야말로 사랑으로, 그 다음엔 아이 커가는 것 보면서 끝없이 추억을 공유해 나가는 것, 그것이 부부의 사랑이 아닌가 합니다. 미울 때는 원수가 따로 없다가도 작은 일에 서로 감사하고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것, 글쎄 그게 정인지 사랑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좋은 감정이 있어 부부로 사는 게 아닐까 합니다. <사랑>은 그야말로 이름일 뿐이죠. 사과를 사과라고 부르든, 애플이라고 부르든,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2006-07-05 1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7-06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7-10 14: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7-10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7-10 1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7-12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7-12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금요일 밤.
한국과 스위스의 결전을 몇 시간 남겨 놓은 시청 앞은
온통 빨간 티와 두건, 또는 태극기로 탑을 만들어 입은 섹시(?)하고 용감한 10~20대,
'김밥 한줄에 1000원!'을 외치는 장사치들,
별로 팔릴 것 같지 않은 허접한 빨간 티를 5천원에 팔고 있는 좌판 등 북새통이었다.

시청 앞 광경은 분명 '축제' 였는데,
난 그 북새통 속을 까만 정장을 입은 채로 뻘쭘하게 걸었다.
운동을 하고 막 샤워를 하고 나왔던 터라 맨 얼굴에
채 다 말리지 못한 긴 머리는 젖어 있었다.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배꼽티를 입은 혈기왕성한 어린애들 사이를
터벅터벅 걷는데, 뭔가 뻘쭘하고 어색했다.
새벽 4시에 하는 경기를 보려고 초저녁부터 모여든 그들의 넘치는 에너지가
부럽기도 했고, 무모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난 번 사건 이후로 글 쓰기에 대한 무식한 열의도 한 풀 꺽이고
미친 듯이 운동을 했다. (왜 나란 인간은 뭔가에 집중하지 않으면 못사는 걸까?)

일주일간 빡세게 운동을 했다.
몸을 만드려고 저녁은 먹지 않고
요즘 열광하고 있는 '매일 순두유' 한병으로 때웠다.

목요일 회식은 팀 '주무'라는 권력(?)을 활용,
삼겹살의 무서운 열량을 피하기 위해 횟집으로 예약을 하고
회와 야채만 먹고 소주는 거의 마시지 않았다.

일주일간 빡세게 운동을 하고 다이어트를 잘해왔던 터라 내심 뿌듯했는데,
너무 먹지 않아서인지 고질적인 외로움이 또 스물스물 기어 올라온건지
금요일 밤은 아주아주 무기력하고 우울했다.

버스를 타고 창밖을 바라 보는데
치킨집에 앉아 생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오뎅바에서 정종을 마시는 사람들,
길가에 내어 놓은 테이블에서 신나게 술을 푸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술 한잔 생각이 간절했다.

순간 핸드폰을 꺼냈다.
누구 불러내서 술 한잔 할까?

하지만 이내 다시 핸드폰을 가방 속에 넣었다.
맨날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약속을 피하다가
내가 술 마시고 싶다고 전화하는게 치사하게 느껴졌다.

술이 마시고 싶고, 뭔가 거한 음식이 먹고 싶었다.
치킨 다리를 뜯고 싶기도 했고,
감자탕 속의 푹 익은 고기 생각도 나고,
평소 좋아하지 않는 족발까지 떠올랐다.

뭘 먹을까 계속 생각하다가
아파트 상가 앞을 지나면서는 캔 맥주만 몇개 샀다.
며칠 빡세게 운동한 걸 도루아묵으로 만들지 말자는
강한 이성과 '본전 의식'으로.

집에 와서 캔 맥주 하나를 마시고는 뻗어서 잤다.
새벽 4시에 일어나지 못해 축구도 보지 못했다.
그리곤 토요일 내내 자다,깨다,먹다를 반복했다.

자다 깨면 멍하니 TV를 봤고,
동생이 극찬한 피자 헛 '치즈 바이트'를 게눈 감추듯이 먹었으며,
중간 중간엔 캔 맥주를 홀짝 홀짝 마셨다.

요즘 유행하는 책 <하류사회>에 묘사된
전형적인 '하류'의 일상이었다.

축 늘어져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운동을 빡세게 했더니 근육통인지 뭔지 몸이 욱신거리기도 했다.
느끼한 피자와 맥주가 그렇게 땡겼던 걸 보면 '욕구 불만' 같기도 했다.

욕구 불만, 욕구 불만, 욕구 불만.

어찌 보면 난 항상 '욕구 불만'의 상태에 있었던 것 같다.
별로 '멋대로' 살아본 적도 없고, 깡그리 망가져본 적도 없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범생이의 피가 혈관을 타고 콸콸 흐르고 있다.

2002년 11월, '쉬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 하나로
무식하고 용감하게 사표를 냈지만 제대로 쉬지 못했다.

미국에서 한달 넘게 잘 놀다 온건 좋았지만,
집에 와서는 '엄숙주의+성실주의'의 극치, 아빠의 눈치를 보느라
아빠가 출근하기 전에 도서관에 갔다.

거 참....쉬고 싶다고 번듯한 직장에 사표를 내고는
새벽 6시에 도서관에 가는 꼴이라니?

출근하는 아빠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온갖 걱정과 안타까움으로 나를 쳐다보는 아빠의 눈은
어떤 악랄한 상사의 괴롭힘 보다도 나를 힘들게 했다.

그 때, 참 많은 소설을 읽었다.
편입 시험,공무원 시험,법무사,회계사,변리사,공인 중개사 등등 다양한 수험서에
고개를 쳐박고 형광펜으로 줄을 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나이브'하게, 편한 자세로 앉아 소설을 읽었다.
소설을 한권 다 읽으면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만약 내가 소설가가 된다면,
그래서 인터뷰를 한다면,
기자가 '당신의 문학적 기반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한다면,
난 이렇게 대답할 수 있겠다.

" 네, 백조 시절 아빠를 피하기 위해 새벽에 도서관에 가서 읽었던 많은 소설들입니다."

뭐....고통스런 기억이지만 써놓고 보니 약간 웃기기도 한다.

어쨌거나 또 이렇게 주말이 가고,
내일이면 또 새벽 비행기를 타고 울산에 간다.
아마....오늘 밤도 2주 전 처럼 짐을 싸기가 싫어서 끙끙 거릴 것이며,
'아....오늘 출근할껄! 워크샵 자료는 언제 만들지?' 하며 짧은 탄식을 뱉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또 6월이 가고, 06년의 상반기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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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6-25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나가 자기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은 있잖아요.
그래도 저는 수선님이 사는 모습이 아름다워요.
내일은 멀리까지 오시네요. 저는 아랫쪽이니까 오신다고.... ^^

프레이야 2006-06-25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욕구불만이면 마구 먹어요. 스위스전 보면서도 치킨 시켜놓고 마구 먹었어요. 상반기가 가는 무렵이라 님도 흘러가는 시간을 어쩌지 못함에 약간의 불만이 엿보여요^^ 그래도 지금처럼 그렇게 열심히~ 때로는 내맘대로~ 뭐 그렇게 화이링~~

2006-06-25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리오 2006-06-26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이어트를 하더라도 일주일에 한번은 거~하게 먹어줘야 몸이 기아상태에 빠져 지방을 축적하지 않는답니다. 치즈바이트보다는 삼겹살(혹은 목살?)과 야채 잔뜩~ 힘내시구요..

BRINY 2006-06-26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장생활하고 나서는 늘 일정체중 이상 늘지 않더라구요. 그렇다고 몸매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 마른 비만 체형이 되어버렸지만 말여요. 작년에 인문계 고등학교 와서는 글쎄 귓속의 지방이 빠져서 소리가 안들리는 현상이 나타나질 않나. 빠지라는 뱃살과 팔뚝살은 안 빠지고 말여요. 하여간 그래서! 허기질 때는 먹어줘야 합니다. 그만큼 먹고 열심히 일하면 되잖아요!

2006-06-26 0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da 2006-06-26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정말 누가 있어줬음 싶을 때 연락하려다 망설이게 되는 거... 사람들은 그러게 평소에 인간관계 관리 잘 하라고 그러겠죠. 그런데 인간관계까지 그렇게 관리해야 한다는 거, 슬프지 않나요? 그럴 땐 만만한 애인 하나가 딱인데 말이죠. 아무 근심 없이 도서관에서 하루 죙일 책읽기... 제 꿈입니다.

로드무비 2006-06-26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지어는 만만한 남편도 관리를 해주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뭐.
그러려니 하시고, 너무 외로워 마세요.
수선님과 꽃양배추님.=3=3=3

잉크냄새 2006-06-26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5일제가 된 이후의 금요일 퇴근길은 좀 거시기해요. 예전에는 금요일 퇴근길이 가장 활력이 있었던것 같은데, 토요일 환한 햇살속으로 퇴근하던 기억도 참 그립군요.

moonnight 2006-06-26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수선님 너무 기운이 없으니까 맘이 더 허해진다구요. 제가 보기엔 연약하기만 하신데 좀 더 드셔도 돼요. ㅠㅠ 지금 많이 힘드시겠지만 좋은 일이 있으리라 믿어요.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시니 당연히. 힘내세요. ^^
 

2달 동안 주말마다 글을 썼다. 거의 아무도 만나지 않고.

공부 못하는 애들이 집에서는 공부가 안된다며 독서실에 가는 것처럼
두번이나 호텔방을 잡고 글을 썼다.
밤새 글을 쓰고, 새벽 5시가 조금 넘어 해 뜨는걸 봤을 때는 뿌듯하기 까지 했다.

일요일 오후에 혼자 호텔에서 나올 때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습격 당했다.
그 때 마다 철저하게 무기력했다.
도대체 내가 뭘하고 있는거지?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 봤다.
웃고 떠들며 손 잡고 걸어가는 활기찬 연인들.
외로움이란 놈한테 감전 당한 듯 크게 흔들리면,
며칠 동안 우울하곤 했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계속 쓰면 곧 한권의 책이 된다....는 생각에.

내겐 너무도...간절히...'터닝 포인트'가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그래서....글쓰기에 올인했다.
주말이면 커피빈이나 스타벅스, 집 앞 던킨도너츠에 죽치고 앉아
웃고 떠드는 많은 사람들의 '행복한 주말' 속에서 혼자 글을 썼다.
글이 잘 써지는 날은 노트북을 들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경쾌했고,
그렇지 못한 날은 갑갑하기도 했다.

그리고.....지난주 금요일.
그 동안 써온 원고 30꼭지를 출판평론가인 P선배에게
무식하고도 용감하게 내밀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한 꼭지, 두 꼭지 보여 주며 어떠냐고 물어본 적은 있지만
그 동안 쓴 원고 전체를 누군가에게 보여 준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전문가에게.

" 주제별로 묶었어요. 이동하시는 시간이나 짜투리 시간에 읽어봐 주세요. "

만나자 마자 멋 부려 제본한 원고를 불쑥 내밀었다. 용감하게!
그리고는 신나게 웃고 떠들며 맥주를 마셨다.
시험 끝나고 술 마시는 대학생처럼 즐겁게.

토요일이 가고, 일요일이 가고, 월요일이 가고.....
슬금슬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P선배의 침묵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바쁜가? 아님 원고가 너무 허접해서 뭐라 해줄 말이 없는 걸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월요일부터 울산에서 6시그마 교육을 받으면서,
산포, 분산, 비정규분포.... 이런 뻣뻣하고 드라이한 단어들을 들으면서,
열심히 듣는 척 강사가 하는 말에 가끔 고개도 끄덕이고 낙서도 하면서,
머리 속은 온갖 상상과 불안, 걱정, 후회로 가득했다.

처음에는 P선배의 평가가 어떤 건지, 그게 궁금하고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런데...시간이 갈수록 내 원고에 대한 '자기 검열'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내 트레이드 마크인 무식함과 무모함에 새삼 놀라기도 했다.

도대체 네 글의 정체는 뭐야?
글들은 또 왜 그렇게 밋밋해?
너 같으면 돈 주고 그런 책을 사겠어?
어떻게 그런 허접한 원고를 읽어 달라고 부탁할 수 있지?
어떻게 충분한 자기검열도 없이, 남한테 원고를 보여 줄 생각을 했지?

얼굴이 하루에도, 아니 한 시간에도 몇 번씩 화끈거렸다.
술 먹고 크게 실수한 다음 날 같이 마셨던 사람들을 만난 것처럼 부끄럽고 쩍 팔렸다.

P선배에게 메일이 오지 않았나 강의 중간중간에 뻔질나게 메일을 확인하다가
참지 못하고 전화를 했다.

P선배는 원고를 읽어보고 있다고,
해줄 얘기가 많다며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P선배는 내 마음을 알고 있는 듯 했다.
"내가 지적할 부분은 이미 스스로가 느끼고 있을 꺼예요."

그렇다. 정말 뼈 저리게 느끼고 있다.
누군가 내게 그 원고를 봐 달라고 했다면,
입 바른 말 자~알 하는 성격에 혹독하게 씹었을 꺼다.

좀 더 가혹한 자기검열의 시간을 갖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겠다.
아니 무식하게 덤비며 쓰기 전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뭔지를,
어떤 책을 쓰고 싶은지를 명확히 해야겠다.

6시그마의 첫 단계는 "Define"이다.
프로젝트의 목표와 범위를 설정하고, 기대효과를 구체화하는 단계다.
Define 단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아무리 시간을 들여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목표와 범위가 명확하지 않으면 측정도 분석도 할 수 없고, 당근 개선을 할 수 없다.

내 글쓰기도 Define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저 책을 쓰고 싶다는 의욕만 앞서서 닥치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썼다.
그러다 보니 갈팡질팡하는, 정체가 애매한, 두리뭉실한 글들을 대량 양산했다.

쌩뚱 맞게도, 이번 6시그마 교육의 깨달음은
내 글도 Define을 다시 해야 된다는 거다.

p.s) 그러나 저러나....P선배에게는 정말 부끄럽고, 또 미안하다.
어떻게 그런 허접한 원고를 읽어 달라고 불쑥 내밀었는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무식하고 뻔뻔하다.
어떻게 P선배를 다시 보나....ㅠ.ㅠ

사실 내 삶의 원동력, 파워 엔진은 무식함과 용기였다.
그래서 한참을 힘들어 하고도 무뇌아처럼 또 다시 연애를 하고,
속 쓰려서 하루 종일 골골 거리고도 저녁이 되면 또 다시 술을 마시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일단 저질렀다.

요즘....좀 지친다.
내 스스로가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안전 빵' 인생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좀 헬멧도 쓰고 무릎 보호대도 하고 안전하게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

정말, 이 시점에서 터닝 포인트가 필요한데.....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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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6-06-15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여나 낙심하거나, 그런거 아니신거지요?
뭔가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한 단계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일단 저질렀다' --> 배우고 싶습니다.
시간을 들여 읽어주고 조언을 주는 P선배 같은 분을 주위에 가지고 계신 것도 부럽네요.

마늘빵 2006-06-15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래도 부러워요. 도전 그 자체.
아직 실망하지 마세요. 나쁜 이야기한거 아니잖아요.

moonnight 2006-06-15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참. 수선님. 힘내세요. 아프락사스님 말씀처럼 아직 실망하시면 안 되죠. 전 수선님이 너무나 존경스럽고 부럽기만 한 걸요. 많이 바쁘셨겠네요. 좋은 결실이 있으리라 전 믿어요. 토닥토닥 ^^

글샘 2006-06-16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빵 중에 젤로 맛있는 빵이 안전빵이래요. ㅎㅎㅎ
글 쓰다 보면, 저 말이 딱 맞습니다.
뭘 고쳐야 되는지는 자기만이 안다.
뭘 썼는지도 자기만 알지요.
걱정말고, 다시 디파인 해 보세요. 그게 <처음부터>인 건 아니잖아요.
이제 반 왔다고 생각하시고, 정말 힘든 쓰기는 이제부터임을 아시니깐, 힘 내세요.^^

다락방 2006-06-16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수선님.
용기를 잃지 마세요. 수선님의 글을 읽어보니 뭔가 해내실 분인걸요.
제가 여기서 이렇게 차분하게 기다리고 있을게요 :)

혜덕화 2006-06-16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언가를 바로 실천해 갈 수 있는 용기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세상일의 대부분은 그런 용기에 의해 전진해 나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겸손과 절제의 미덕보다는 용기가 훨씬 더 가치있는 덕목임을 요즘에사 느낍니다. 저는 너무 님과 반대로 살아온 것 같아서 요즘 슬펌프에 빠져 있었거든요. 힘내세요._()_

드팀전 2006-06-16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글을 쓰시나요? 좋은 글 쓰세요....

icaru 2006-06-16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을 믿어요~
시작한 사람들은 꼭 해내더라고요~
힘내세요~ 늘 지켜보며 응원 드릴께요...

BRINY 2006-06-16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그래도 늘 의욕에 넘치시고, 의욕만 있는 게 아니라 실천을 하시잖아요. 그러다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여요~

릴케 현상 2006-06-16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세요^^

스파피필름 2006-06-17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세요, 수선님은 잘 하실꺼에요 ^^

2006-06-18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6-19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6-06-20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을 define부터 다시 시작하라면 용기가 생길것 같은데...
6-시그마 프로젝트를 define부터 다시 하라면 못할것 같아요...
시그마는 잘 진행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