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탕과 로맨스   
                
                         - 정끝별 -

처음 본 남자는 창밖의 비를 보고
처음 본 여자는 핸드폰의 메씨지를 보네
남자는 비를 보며 순식간에 여자를 보고
여자는 메씨지 너머 보이는 남자를 안 보네
물을 따른 남자는 물통을 밀어주고
파와 후추와 소금을 넣은 남자는 양념통을 밀어주네
마주앉아 한번도 마주치지 않는 허기
마주앉아 한번 더 마주보는 허방
하루 만에 먹는 여자의 국물은 느려서 헐렁하고
한나절 만에 먹는 남자의 밥은 빨라서 썰렁하네
남자는 숟가락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여자는 숟가락을 들고 늦도록 국물을 뜨네
깜빡 놓고 간 우산을 찾으러 온 남자는
여전한 여자를 처음처럼 한번 더 보고
혼자 남아 숟가락을 들고 있는 여자는
가는 남자를 처음처럼 한번도 안 보고
그렇게 한번 본 여자의 밥값을 계산하고 사라지는 남자와
한번도 안 본 남자의 얼굴을 계산대에서야 떠올려보는 여자가
단 한번 보고 다시는 보지 못할 한평생과
단 한번도 보지 못해 영원히 보지 못할 한평생이
추적추적 내리네 만원의 합석 자리에
시월과 모래내와 설렁탕집에


어제는 양곰탕이 먹고 싶었다.
점심시간에 밀린 잠을 자고 일어나 앉아 몸을 움직이려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렇다, 난 고도의 육체노동자이다.
어머니께 가기 전에 무엇을 좀 먹어야 할텐데, 먹고싶은 게 하필 양곰탕이었다.
하긴 어머니가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계실때도 어김없이 내 배는 고팠고,
그 어느 때보다 끼니를 더 잘 챙겨 먹었었다. 
집밖에서는 혼자 밥을 먹어본적이 없었는데, 혼자 씩씩하게 밥을 한그릇 씩 뚝딱 해치웠다.
 
그리고 어제 퇴근길에 혼자 모래내 면옥에 들러 양곰탕 한그릇을 뚝딱 해치우는데,
저 시에서처럼 밥값을 대신 내주는 로맨스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누군가와 한 테이블에 같이 앉아 밥을 먹었었다.
쓸쓸하여 목이 메이거나 하지도 않았다. 

양곰탕을 먹고,
'외로운 마음에 꽃비가 내려요'를 부르는 것도 지겨울 즈음 찾아낸 게 장사익이었다.
(난 그러니까 장사익의 CD를 가지고 있는 거였다.) 
연분홍 치마가 봄 바람에~~~ 

 

 

 

 

 



장사익을 이리저리 웹서핑을 하다가,
김규항의 블로그 에 실린 두 편의 글을 보고 생각이 복잡하다.

2008년 2월25일자 <단호하네>라는 글만 봤다면...충격이 덜 할 수도 있었을텐데,
같은해 2월26일자 <꼬마작자 6인전>까지 같이보게 된지라 후폭풍이 대단한지도 모르겠다.

   
  ...노래잘 하는 아저씬데 이명박 취임식한다고 춤추고 노래하네...
예술가가 말이야...예술은 훌륭한데 생각은 없는 사람하고,
예술은 정말 형편없는 데 생각은 훌륭한 사람하고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해?

                                                                            - 2008년 2월25일자 <단호하네>일 부분
 
   
   
  ...김단이 예술가란 자신의 창작욕와 상상력 그리고 이런저런 사회적 여건이나 제약이라는
두가지 힘 사이에서 끊임없이 부유하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김단이 그걸 요령있게
줄타기하며 세속적 인기와 안락을 얻는 속물이 아니라 현명하게 넘어서는,그러나 고립되진
않는 예술가가 되길 나는 바란다.

                                                                         -2월26일자 <꼬마작가 6인전>일부분
 
   


아버지와 딸의 자연스런 대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아버지의 질문하는 의도를, 눈치빠른 딸이 금방 알아챌 수 있다는 거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부모의 견해나 가치관을 자식에게 주입시키는 건 반대다.

바로 그 다음날 글에서,
'예술가란 자신의 창작욕와 상상력 그리고 이런저런 사회적 여건이나 제약이라는 두가지 힘 사이에서 끊임없이 부유하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하고 전날보다 누그러진 입장을 보인다.

어느 부모라도 자식에게는 너그러울 수 있겠지 하다가도...그렇다면 전날 장사익을 향한 감정이 너무 과격하다 싶다.

또 한가지,
예술은 훌륭한데 생각이 없는 사람보다, 예술은 형편없는데 생각은 훌륭한 사람이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상가'도 예술가의 범주에 넣지 않는다면,예술은 수단이나 목적이 아닌...예술 그 자체가 아닌가?

솔직히 그간의 난, 장사익보단 김규항의 생각들과 더 친숙했었기 때문에 장사익의 입장을 잘 모른다.
하지만, 감정을 삭이고 걸러내고 승화시킨 그런 노래들을 부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 생각이 없어서, 김규항으로하여금 '장사익 경사났네'라는 소리를 하도록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언젠가 <한겨레21>쾌도난담코너에서 최보은, 김규항, 김훈이 대담할 적에...김훈이 한말들이 생각난다.

   
  80년 당시 신군부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자기가 모조리 작성했다는 것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내가 안 썼으면 딴 놈들이 썼을테고...난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어.그때 나를 감독하던 보안사 놈한테 이런 얘기를 했지.내가 이걸 쓸테니까 끌려간 내동료만 때리지 말아달라."
 
   

장사익도 어쩜 김훈과 같은 심정으로 그자리에 나섰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난 장사익도 믿고 싶지만,
내가 아는 김규항이라는 사람이 아무런 사전,사후 조사없이 그런 글들을 쓰지는 않았을 거라고 굳게 믿는다.

국어시전에 나온 예술의 뜻 중 두번째를 보면,
'특별한 재료,기교,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활동 및 그 작품'이라고 되어있다.

어찌되었건 예술이라는 건 '감상'이라는 '생각'을 '표현'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오직 '생각'만을 소유하고, 지금이 아닌 되어야 할 행위를 추구하는 것도,
지금 현재를 치열하게 표현하고는 있지만 '생각'이 없어 미래를 꿈꿀 수 없는 것도 ...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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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5-21 10:49   좋아요 0 | URL
장사익 노래 너무 처연해서 난 좀 그렇드라, 그러고
한참 안들었는데 오늘 보니 또 드는 생각은..
세월 참 빨라요;;

밤새고 모래내 설렁탕, 참 많이 먹으러 다녔는데..

그나저나, 정끝별,은 소설가가 아니고 시인이었군요!
와락, 시집 제목도 좋고
정끝별, 시인 이름은 더 좋네요.

양철나무꾼 2011-05-29 05:31   좋아요 0 | URL
정끝별, 밥시였나?
그녀가 고른 시를 모아 놓은 책이 있었는데...것도 표지도 이쁘고 근사했어요~^^

모래내 설렁탕, 우리 스치듯 만났을 수도 있었겠는걸요~^^

2011-05-21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9 0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1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9 0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05-21 17:32   좋아요 0 | URL
장사익은 정말 작은거인이죠~~~ 찔레꽃을 현장에서 듣는데 전율이 일더군요.
누가 뭐래도 그라고 왜 생각이 없겠어요~~~~~~

어머님은 회복중이실테니 간호하려면 잘 먹어야지요!!

양철나무꾼 2011-05-29 05:45   좋아요 0 | URL
맞아요, 현장에서 그가 노래 부르는 걸 들어본 사람이라면 말이죠~^^

잘 먹어요, 엄청 잘 먹는데...
전 건강하고 넉넉한 걸 미덕으로 생각하고 살았는데...
몸무게가 한 5키로 줄었어요.
체지방은 9키로가 빠져나가고 말이죠,ㅋ~.

2011-05-21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9 0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1-05-21 22:44   좋아요 0 | URL
뭐, 친일파가 된 것도 아니고,
청승을 팔아서 돈을 버는 게 나쁜 일일까요?
이명박이 취임하는 일이 나쁜 일이었던 건 아니잖아요. 선거에서 이긴 건데...
노무현이 죽었을 때 나섰던 사람들이라고 다 독립군은 아니듯,
흑백 논리로 모든 걸 보는 김규항이 조심해야 할 것은,
밥벌이의 비루함에 사람이 얼마나 약해지는지, 그런 걸 무시하는것이 또 얼마나 큰 폭력인지... 그런 것 아닌가 합니다.

양철나무꾼 2011-05-29 05:51   좋아요 0 | URL
밥벌이의 지겨움이나 비루함을 들먹이지 안더라도...먹는다는 건 신성한 거죠.
다만 지극한 원칙론자로 알고 있었던 사람에게서,
원칙은 불변하더라도...그 원칙을 꾸며주는 수사에 따라 원칙의 경중이 달리 느껴진다는 게 좀 슬펐달까요.

김규항을 넘 오래 좋아했나 봐요.
갈아타야 겠어요~

2011-05-21 2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9 0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케 2011-05-22 01:03   좋아요 0 | URL
갈수록. 김규항은 근본주의자로 가는듯. 진중권이 김규항에게 함부로 낙인찍지 말라고 했죠

양철나무꾼 2011-05-29 06:11   좋아요 0 | URL
님이 말씀하신 근본주의자가 제가 사용하는 원칙주의자랑 같은 말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근본이고 원칙이고 간에 이런 저런 수식어가 붙으면 근본이랑 원칙에서 멀어지죠.

하늘에 뜬 별이나 달처럼 생각하고 우러르는 것도 좋지만,
현실에서 부딪치면서 몸으로 배우고 익히는 것도 중요하죠.

김규항을 너무 오랫동안 좋아했던 것 같은데...
갈아타려 해도 마땅히 갈아탈 그 누군가가 없네요~ㅠ.ㅠ

pjy 2011-05-22 01:01   좋아요 0 | URL
사는게 참, 이래도 말이많고 저래도 말이많고....
자기가 직접 그 찻잔속에 들어있지 않은 이상 그냥 찻잔속의 폭풍일뿐인거죠~
원래 환자보다 보호자가 훨씬 빨리 지치더라구요~ 잘 먹어야 간호도 합니다!

양철나무꾼 2011-05-29 06:12   좋아요 0 | URL
우와~찻잔 속의 폭풍, 비유가 넘 근사한걸요.

고맙습니다.
넵, 잘 먹고 있습니다.

2011-05-22 0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9 0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1-05-22 14:54   좋아요 0 | URL
저는 <찔레꽃>이 좋더라구요. 우연히 TV로 봤는데 멜로디와 목소리가 인상적이더라구요.
그리고 가사도 슬픈게 잊혀지지가 않아요.

양철나무꾼 2011-05-29 06:20   좋아요 0 | URL
찔레꽃도 좋죠~

그의 노래는 슬퍼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구슬프고 처량 맞아요.

세실 2011-05-22 22:02   좋아요 0 | URL
아직 양곰탕 못먹어요...그 부들부들한 것이 좀 징그러워요.ㅋ

저도 나이가 드나봐요. 이런 구슬픈 노래소리가 좋은걸 보니.....
오늘 들은 임재범의 여러분과 오버랩 되네요.

양철나무꾼 2011-05-29 06:24   좋아요 0 | URL
ㅎ,ㅎ...제가 생선회를 못 먹는거랑 비슷하시네요.
전 어렸을때부터 할머니가 보양식으로 한번씩 해주셔서 먹었어요.^^

임재범 참 좋아요.
한 3년 전까지 임재범 가을 콘서트 가기 위해서 돈을 모았을 정도니까요.
전 임재범이 '여러분' 인터뷰에서 마음을 나눌 친구가 없다고 하는데서...울컥 했잖아요.
건강 때문이라지만, 임재범이 도중 하차 한다면 좀 아쉬울 것 같아요~ㅠ.ㅠ

차좋아 2011-05-23 12:17   좋아요 0 | URL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다른 판단을 했다고,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 단정짓는 사람, 진정 생각없는 사람입니다.

양철나무꾼 2011-05-30 01:18   좋아요 0 | URL
전 다름과 틀림, 이 두 단어 앞에서 혼란스러워요.
다들 수는 있지만...다른 게 틀린 게 아닌 나라에서 살고 싶어요~^^

루쉰P 2011-05-25 13:10   좋아요 0 | URL
소리꾼 장사익의 노래를 여러 개 다 들어봤는데 찔레꽃이 꽤나 구슬프네요. 전 근데 장사익의 목소리도 그렇지만 노래 부를 때 표정이 좀 압권인 것 같아요. ^^ 은근히 중독성 있네요.

예술가는 정치적 입장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부분도 매우 힘들구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킨다는 일이 얼마나 어렵겠어요.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겠지만 말이죠.
그치만 예술가들에게 우리가 잣대가 엄격한 것은 사실이에요. 저도 그런 편이구요.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자칫 조그만 오해가 큰 오해로 가곤하죠. 사람의 정치적 입장을 판단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양철댁님 같은 상황일 때는 몹시나 당황스럽죠. 믿고 있는 지식인이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에 대해 판단을 할 때 과연 그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아닌가? 흠...저도 고민되네요.

그런 것보다도 병 간호 하시며 꼭 건강 챙기시기를 당부드려요. 양철댁님의 글을 보지 못한다면 제가 병원에 누워버릴거에요. T.T

양철나무꾼 2011-05-30 01:21   좋아요 0 | URL
흠,흠...글이 뜸하신 루신P님의 글들을 찾아 읽느라, 다른 서재의 댓글까지 읽는 거 아실려나~?

병원에 누워 버리시면 귀뜸해 주세요.
제가 장사익 CD 사들고 병문안 갈게요~^^

루쉰P 2011-05-31 10:55   좋아요 0 | URL
ㅋㅋㅋ 그 정도로 지극한 관심을 가져주시는 줄은 몰랐어요. 리뷰를 쓸려고 항상 마음을 먹고 있지만 공부도 하고 있고, 일도 하는 와중에 쓴다는 것이 매우 어렵네요. 게다가 머리가 나빠 곰곰히 책을 읽고 또 읽는 스타일이라 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요. 그래도 양철댁님이 기다리시는 데 리뷰를 아예 안 쓸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리뷰는 항상 준비하고 있어요. 근데 제 속도는 한 달에 한 번 리뷰를 쓸 것 같아요. ^^

병원에 눕지 않는 조건은 양철댁님이 리뷰를 쓰시는 것 ㅋㅋ 그럼 병문안 오실 일도 없어용.

쉽싸리 2011-05-27 07:51   좋아요 0 | URL
이분의 2007연말공연(세종문화회관)에 갔었고, 그 때 김근태씨를 보았죠. 저는 쪼르르 달려가 악수를 청했고요. 김근태씨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죠.
하여간 3천석이 꽉찬 공연은 장관이더군요.

저도 이분이 명박취임식때 노래부르는거 보고 심히 안좋게 생각했드랬죠. 양철님 글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아내한테 이 글을 보여주면서 열심히 설명?해주고 동영상보고 저는 무려 막걸리 세 병을 먹고 거의 뻗었어요. 그래서 아침에 이렇게 수정합니다.

저와 아내도 장사익선생의 팬이랄수 있죠.
이분이 예전엔(지금도 그런지는 모르지만)충남금산의 물패기농요발표회를 하면 오셔서 태평소를 불곤했죠. 그리고 조그만 북 메고 노래 한 소절 하시는 것도 들었고요. 금강변 모래바탕에서의 정말 자그만한 무대였죠. 참. 단아하게 노래 하신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새롭네요.


양철나무꾼 2011-05-30 01:27   좋아요 0 | URL
막걸리 마시고 싶어요.
안주는 장사익 선생의 찔레꽃 정도로 말이죠.

그의 목소리는 마냥 처량맞은데, 오히려 그의 어깨짓이 단아했었죠~^^

2011-05-27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30 0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30 0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30 2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딱 일주일 전 저녁 시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부름에 이 곳 페이퍼에 댓글을 달다말고 달려갔었다.
손에 자동차 열쇠를 쥐고 택시를 집어탈 정도로 정신이 없었는데, 길은 엄청 막혔었다.
초조한 마음에 택시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운전 기사 분이 자꾸 말을 시키셨다.
누가 아프냐?
어머니요.
위독하시냐?
네...
제대로 된 대답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넋을 놓고 앉아 있자,
운전기사 아저씨가 테이프를 밀어넣고 음악 볼륨을 올리신다.
그때 나온 노래가 '외로운 마음에 꽃씨를 뿌려요.'하는 노래였다.
나는 아저씨를 째려보며 "음악 좀 꺼주시면 안돼요?"하고 쏘아붙였고,
그런 나를 향하여 운전기사 분은 허허 웃으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잔뜩 긴장하고 있길래, 긴장 하지 말라고 내 한 곡 틀었소. 긴장 푸는데 음악 만한 것이 없어요." 
음악 몇 곡을 공해다 하며 귀를 막고 있는 사이 난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잔뜩 가라 앉아서 음악은 들을 수 없다고 툴툴거렸으면서,
중환자실에 어머니를 모셔 두고, 난 이런 책들을 읽었었다.

마이클 코넬리의 <트렁크 뮤직>
언젠가 <블랙에코>에서 인상적이었던 대사를 이 책에선 이렇게 바꾸고 있다.

"당신은 혼자 있으면서도 고독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트렁크 뮤직, 141쪽)

 "ㆍㆍㆍ이 세상에 혼자가 되더라도 고독하지 않을 것 같아요?" 
ㆍㆍㆍㆍㆍㆍ
"당신은 혼자인 건가요, 아니면 고독한 건가요, 해리 보슈?" 
ㆍㆍㆍㆍㆍㆍ
"그건 나도 잘 몰라요." 마침내 보슈가 속삭였다. "사람은 원래 자신이 처한 환경에 아주 익숙해지기 마련이죠. 그런데 난 언제나 혼자였어요. 그래서 고독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블랙 에코, 292쪽)

이 두 부분을 비교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한 작가의 책은 한 번역가가 하는 게 낫겠다는 거다. 틀린 번역은 아니지만, 문체가 달라져 버리니...뭐랄까, 해리보슈의 쓸쓸함이 고스란히 배어나오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해리보슈가 다중인격처럼 생각돼서 말이다, 참.
그래도 다행인건 해리보슈가 마음을 다해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고, 그런 사람이 엘리노어 위시라는 것이다. 

마이클 코넬리가 예전 같지 않다.
나나 그, 둘 중 하나 변했나 보다.
또는 둘 다 조금씩 변했거나... 


그리고 이런 책도 읽었었다.

김별아 치유의 산행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동안 이런 류의 치유에세이들이 많이 있었지만, 난 그닥이었다.
다른 사람이 어땠다 카더라 하는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게 좋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은 김별아 자신의 얘기여서, 자신의 깨달음의 얘기여서 좋았다.
물론 곳곳에 그녀 특유의 화려한 수사가 등장하지만, 그게 소박한 감동을 해치지는 않았다.

因地而倒者, 因地而起
땅에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나야 한다!

는 보조국사 지눌을 인용한 산멀미 내용도 좋았고,

'식물이 물과 햇빛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아이도 눈물과 두려움을 견딜 수 있도록 붙잡아줄 어른이 필요하다'는 드레이커스의 인용도 좋았다.

지금 말할 수 없이 힘든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그 사이 어머니는 좀 나아지셔서 병실로 옮기시고...
입소 기념으로 노래를 한 자락 부르게 되셨다.
실은 어머니가 부르신게 아니라, 같은 병실에 계신 흥에 겨운 할머니가 <애수의 소야곡>을 부른 거고...
거기에 화답으로 어머니를 대신하여 내가 '외로운 마음에...'를 선창한 거지만 말이다.
이런 노래가 좋은 건 한소절만 선창하고 나면 어느샌가 합창곡이 되어 있다는 거다.

병실 어머니 옆 싸이드 베드에서 자는 잠은 꿀맛이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병실 싸이드 베드를 처방해 드린다. 

이제 내가 손수 운전을 할만큼 어머니는 나아지셨다. 
차안에 클래식 CD를 틀어놓고, 난 클래식 음악을 BG삼아...애수의 소야곡, 꽃을 든 남자, 이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아침 출근길에 비가 내린다.
언젠가 읊었던 황인숙은 밀어두고, '꽃을 든 남자'를 내 맘대로 개사하여 흥얼거리고 있다.

외로운 마음에 꽃비가 내려요.
사랑이 싹틀 수 있게.
새벽에 맺힌 이슬이 꽃잎에 내릴 때부터.
온통 나를 사로잡네요
나는야 꽃비 되어 그대 가슴에
영원히 날고 싶어라~~~ 

내가 부르는 건 여기까지 되돌이다. 
은근 중독성이 강해서, 왠만한 시름 따윈 잊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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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1-05-20 10:37   좋아요 0 | URL
제 18번이군요 최준석의 꽃을 든 여인. 시모님의 쾌차를 기원합니다

양철나무꾼 2011-05-20 11:33   좋아요 0 | URL
조만간 제 18번으로도 굳어질 듯 해요.

기원 감사드립니다. 조금씩 나아지고 계세요~^^

노이에자이트 2011-05-20 18:49   좋아요 0 | URL
그 가수 이름이 최준석이 아니라 최석준이군요.인상이 서글서글하고 좋아요.

마녀고양이 2011-05-20 10:56   좋아요 0 | URL
양철댁, 많이 피곤하지?
그래도 건강 챙기면서, 어머님 병 간호하세요.

날이 회색이네, 비가 일관성없이 오락가락 하는 날이야. 그리고 말이지,
해리 보슈같이 음침하고 혼자 파고드는 남자 말고, 좀 평면적이더라도 건전한 남자를 만나봐요. 아라찌. ㅋ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남자 주인공이 생각 안난다.. 어째요~)

양철나무꾼 2011-05-20 11:38   좋아요 0 | URL
하루종일 졸고 앉았어, 비가 내려서 그런가 더 졸립네.
점심 시간에 자리 잡고 누워야 겠어~^^

책 속이 됐든지 일상이 됐든지...좀 평면적인 남자 별 매력이 없다는...ㅠ.ㅠ
그러니까 평면적이면서 건전한 남자, 소개시켜줘 보라니까~

마녀고양이 2011-05-20 11:45   좋아요 0 | URL
그냥 날 가져... ㅋㅋ
내가 좀(!) 건전하잖아? 아닌가? 음.......... ^^, 나가야게따~ ㅠㅠ

양철나무꾼 2011-05-21 09:52   좋아요 0 | URL
옵션으로 뭐가 따라붙는건데?
내가 코알라랑, 그집 서재가 따라붙으면 고려해 볼게~

좀 건전하다는 말 앞에선...그냥 먼 산만 바라보고 싶어지는 걸,ㅋ~.

비로그인 2011-05-20 12:39   좋아요 0 | URL
놀라셨겠네요. 그래도 많이 나아지셨다니 다행입니다. 애쓰셨네요^^

양철나무꾼 2011-05-21 09:53   좋아요 0 | URL
첨엔 좀 놀랐는데...
놀란거 가라앉고 나서는 내 소임이다 생각하고 즐겼달까요.
노래도 흥얼거려가면서 말이죠~^^

마노아 2011-05-20 12:46   좋아요 0 | URL
어머니 많이 좋아지셔서 다행이에요. 그동안 소식 뜸한 이유가 있었군요.
어머니 간병하면서 출근도 하고 그랬던 거예요? 피곤함이 불면증을 몰아낸 건가봐요. 어휴, 양철댁님 건강도 꼭꼭 챙기셔요.
근데 저는 저 노래를 가사만 보고는 모르겠어요. 들어보면 알 것 같은데 말이죠...

양철나무꾼 2011-05-21 09:56   좋아요 0 | URL
지금은 웃으며 따라부를 수 있지만, 그날은 참 끔찍했어요~ㅠ.ㅠ

차좋아 2011-05-20 13:00   좋아요 0 | URL
저 시 좋은데요^^ 오늘 점심에 자꾸 읽어봐야지~~ 잘 됐어요. 별 할일도 없는 무료한 점심시간에요.


양철나무꾼 2011-05-21 09:58   좋아요 0 | URL
전 저 시 좀 지겨워지려고 해서, 장사익으로 갈아탔어요~^^
별 할일도 없는 무료한 점심시간이...때로는 젤 편안하잖아요~

참, 사진전이 오늘이던가요?
멋지게 잘 하세요~^^

잉크냄새 2011-05-20 13:48   좋아요 0 | URL
드레이커스의 인용구가 아주 맘에 와 닿네요.
그 인용구대로라면 우린 영원히 아이일수 밖에 없구나 싶네요.

양철나무꾼 2011-05-21 10:04   좋아요 0 | URL
드레이커스, 의지가 되는 참 멋진 인용이죠~
씩씩한 듯 당차게 살아가지만, 어른들도...남자들도...눈물도 흘릴 줄 알고,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겠죠.
때론 참았던 눈물을 흘릴 때도 있고, 때론 숨겼던 두려움을 드러내 놓을 때도 있고...

프레이야 2011-05-20 15:20   좋아요 0 | URL
그동안 병간 하느라 안 보이셨군요.
시어머님 나아지셔서 다행이에요. 고생하셨어요.
병실보조침대에서 쪽잠을 잤던 기억이 제겐 두번 있어요.
아주 오래 전 시어머니, 4년전 친정엄마, 이렇게요.
병간호할 때 오히려 책을 읽으며 마음 달래고 힘든 몸 스스로 다독이고 그랬던 시간이 떠오르네요.
특히 친정엄마 대수술하기 하루전날 밤새 집에서 혼자 그랬고 수술 후 몇날을 병실복도에서 그랬지요.
병실에 환자들은 불을 꺼야 잠을 자니까요.
양철댁님 이해간다는...
김별아의 치유에세이도 찜해갑니다.

양철나무꾼 2011-05-21 10:08   좋아요 0 | URL
ㅎ,ㅎ...어머니가 계신 병실은 9시가 되면 불을 꺼요.
불을 끄고도 밤새 간호사들이 들락거리고,
제가 해드릴 간단한 처치들도 있고 해서 양질의 잠을 잘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런 일들을 제가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어머니가 아프신데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어서 손 놓고 발만 동동 구르느니,
몸은 극도로 피곤하지만, 내 수족을 움직여 뭔가를 해드릴 수 있다는 게...좋아요.
다행이예요~^^

하늘바람 2011-05-20 16:24   좋아요 0 | URL
어머니 괜찮아 지신거예요?
책을 읽으셨다지만 맘이 마음이 아니셨겠어요

양철나무꾼 2011-05-21 10:12   좋아요 0 | URL
간단한 시술을 하시다가 일시적인 쇽이 오셨었어요.
좀 나아지셨고, 이제는 아침에 세수 씻겨 드리고 로션 발라 드리면서 싸우고 있어요.
아프니까 세게 때리며 바르지 말아라...해 가면서요~^^

잘잘라 2011-05-20 16:55   좋아요 0 | URL
궁금했어요. 소식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머님 쾌차하시길 빕니다.
병간호.. 몸 쓰고 마음 쓰고, 보통 일 아니실텐데
님도 기운내시구요! 노래하시는 모습, 상상하게 되네요^ ^
♪외로운 가슴에 꽃씨를 뿌려요~

양철나무꾼 2011-05-21 10:18   좋아요 0 | URL
누군가를 궁금하게 했다니, 몸 둘 바 모르겠지만 기분 좋은 일이긴 하네요~
어머니 쾌차하실거예요~^^

노이에자이트 2011-05-20 18:53   좋아요 0 | URL
병실에선 아무래도 침울한 노래보단 경쾌한 노래가 좋죠.애수의 소야곡은 꽤 슬프죠.꽃을 든 남자가 명랑해서 좋겠네요.

양철나무꾼 2011-05-21 10:20   좋아요 0 | URL
어머니가 계신 병실에 분위기 메이커 할머니가 계시는데요.
이 분이 침울한 노래도 죄다 경쾌한 버젼으로 바꿔 부르는 재주가 있으신 분이더라구요~

제가 부른 꽃을 든 남자는......그러니까, 동요 버젼 쯤 되려나~^^

섬사이 2011-05-20 21:55   좋아요 0 | URL
'외로운 마음에 꽃비가 내려요~~'
봄에 딱 어울리는데요~ ^^
그동안 병간호 하느라 힘드셨을 텐데,
그런데 소소하고 잔잔한 따뜻함이 느껴져서 참 좋네요.
시어머님이 나아지고 계시다니 참 다행입니다.

양철나무꾼 2011-05-21 10:23   좋아요 0 | URL
소소하고 잔잔하더라도 제가 뭔가를 할 수 있어서,
그리고 그 뭔가에 부응하여 조금씩 나아지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보니, 세상은 뭐 엄청난 변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소하고 잔잔한 것들이 모여 따뜻함을 이루며 살아가는 곳인 것 같아요.

2011-05-20 23:09   좋아요 0 | URL
한 소절 이후부터 모두 부르는 합창이 되는 노래, 저도 좋아합니다. 이 세상엔 노래가 참 많다는 사실에 놀랄 때가 많아요. 일요일 아침의 도전 1000곡을 보면, 특히.. 그리고 그 많은 노래들이 대부분 나름대로 좋다는 게 참 좋아요. / 병간호, 쉬운 일 아닌데 그래도 씩씩하게 잘 하고 계시군요. 화이팅입니다!

양철나무꾼 2011-05-21 10:2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어요.
그리고 슬플 때 불러도, 슬픈 내용을 담고 있는 노래여도 힘이 되는 노래가 있다는 게 놀라운 깨달음이었어요.
뽕짝, 또는 트로트라고 불리우는 저 노래들을 사랑하게 될 것 같아요~^^

글샘 2011-05-21 00:59   좋아요 0 | URL
전 노래방에서 저런 노래 안 부르는데요. ^^
쪽잠 주무시느라 고생 많으시네요. 몸 살펴가면서 간호하시길...

양철나무꾼 2011-05-21 10:28   좋아요 0 | URL
저도 노래방에서 아직 못 불러봤는데요.
언젠가 불러보려구요.
전 모든 노래를 동요 버젼으로 편곡해 부르는 묘한 재주가 있어서요~^^

감기 몸살, 괜찮으세요?

루쉰P 2011-05-21 09:31   좋아요 0 | URL
아! 그래서 그렇게 서재에 안 보이셨군요. 병원에 가서 어머님을 챙겨야 하셨다니 정말 신경 많이 쓰시고 걱정도 많이 하셨겠어요. 서재에 갑자기 잘 들어오지 않으셔서 걱정을 했는데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병원은 개인적으로 정말 무서워하는 곳이라서 거기를 가면 숨이 막힌다고 할까요? 특히 가족이 아파서 병원을 가면 너무 마음이 아프죠. 비 오는 주말 몸 좀 추스리고 푹 좀 쉬세요. ^^ 건강챙기세요!

양철나무꾼 2011-05-21 10:31   좋아요 0 | URL
전 제 삶의 반을 병원에서 보냈기 때문에 무서워 하지는 않지만 좀 숨 막히고 끔찍해 하기는 하죠.
주말 내내 비 온대요? 아웅, 이제 비는 싫어요~ㅠ.ㅠ

님도 건강하고 멋진 주말 보내세요~!

blanca 2011-05-21 10:11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그래도 일반 병실로 옮기셨다니 정말 천만 다행이에요. 저도 병실 사이드 베드에서 엎드려 숙면을 취했던 기억이 나네요 ^^;;

양철나무꾼 2011-05-21 10:33   좋아요 0 | URL
이젠 어디든 등만 붙이면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앉아서 또는 서서 자는 사람들도 봤는데...아직은 그런 내공은 터득하지 못했나 봐요~^^

마음 써 주셔서 감사해요.

비로그인 2011-05-21 11:26   좋아요 0 | URL
이런. 쾌차하시길 빕니다.
묵묵히, 그러나 약간 빠른 속도로 먹는 병원식. 갑자기 그 병원식 수저를 싸고 있는 종이에 적혀있던 연둣빛 글자가 생각납니다.

누군가에게는 감금의 대상이었겠지만, 그 복작거리는 곳에 있자니, 또 한편은 재래시장에 온 기분도 들었는데요. 살아 가려는 의지가 정점에 다다른 또 한 면을 보게 되었네요.

양철님 오랜만입니다. ^^

양철나무꾼 2011-05-29 05:22   좋아요 0 | URL
저는 요즘 죽음에 대해서, 죽음을 견뎌낸 삶에 대해서...생각해 보게 돼요.
삶이란 건 언제나 치열한거 겠지만,
병원에서 만나게 되는 살아가려는 의지의 정점보다는 아니지 싶어요.

지극한 이기주의가 허용되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 이기주의가 볼성 사나운 곳이기도 하구요.ㅠㅠ

머큐리 2011-05-23 18:20   좋아요 0 | URL
병원 쪽잠 주무신다길래... 무슨 이야기인가 했어요.. 이제야 알겠습니다...고생많으시죠..

양철나무꾼 2011-05-29 05:27   좋아요 0 | URL
아들은 좀 어떤가요?
이제 슬슬 밤마다 아프다고 해서, 잠을 설치게 만들때도 됐을텐데...
안 움직이도록 잘 고정해줘야 나중에 고생 덜 할거예요~^^

쉽싸리 2011-05-27 07:39   좋아요 0 | URL
아, 큰 일을 치루고 계시는군요.
잘 견녀내시길...

양철나무꾼 2011-05-29 05:27   좋아요 0 | URL
뭘요, 헤헤~
견뎌낸다기보다 나름 즐기고 있어요~^^

세실 2011-05-29 07:25   좋아요 0 | URL
견뎌낸다기보다 나름 즐기고 있다는 글을 읽으니 웃음이 납니다. 역시 양철님 짱!!
그만하셔서 참 다행이예요. 빠른 쾌유를 빕니다.
병실에서 노래로 화답하시는 님.ㅋ. 노래 잘 부르시나보다~~

양철나무꾼 2011-05-30 02:00   좋아요 0 | URL
세실님도 여러가지 일들로 여전히 바쁘시죠?
저도 님, 응원할게요.

음,,,노래는 말이죠.
음치, 박치는 면했는데...맛깔스럽게 부르진 못해요.
모든 노래를 동요 버젼으로 맘대로 편곡해 부르는 재주 있어요~^^
 

 

겁나게와 잉 사이 / 이원규


전라도 구례 땅에는
비나 눈이 와도 꼭 겁나게와 잉 사이로 온다

가령 섬진강변의 마고실이나
용두리의 뒷집 할머니는
날씨가 조금만 추워도, 겁나게 추와불고마잉!
어쩌다 리어카를 살짝만 밀어줘도, 겁나게 욕봤소잉!
강아지가 짖어도, 고놈의 새끼 겁나게 싸납소잉!

조깐 씨알이 백힐 이야글 허씨요
지난 봄 잠시 다툰 일을 얘기하면서도
성님, 그라고봉께 겁나게 세월이 흘렀구마잉!

궂은 일 좋은 일도 겁나게와 잉 사이
여름 모기 잡는 잠자리 떼가 낮게 날아도
겁나게와 잉 사이로 날고
텔레비전 인간극장을 보다가도 금세
새끼들이 짜아내서 우짜까이잉! 눈물 훔치는
너무나 인간적인 과장의 어법

내 인생의 마지막 문장
허공에라도 비문을 쓴다면 꼭 이렇게 쓰고 싶다
그라제, 겁나게 좋았지라잉!

 
내내 기분이 좋다. 
기분이 좋아서 배시시 해시시 웃음을 흘리고 다닌다. 
문장부호 하나 빠졌다고 툴툴 거리는 사람을 만났다.
싫지 않았다, 참 좋았다.
'문장부호'야 말로 '너무나 인간적인 과장의 어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Piazzolla의 calambre를 돌려들으면서 통통거리고 다닌다. 

아직 못 읽고 있는 책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어서...책 구매는 한참 뒤로 미룰 생각이었다.
그냥 좋은 기분을 이어서 웹서핑만 하자는 생각으로 새로 나온 책들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난 그러니까 필립 K.딕을 그냥 지나쳤다.
라인업은 지금 주문하면 18일에나 받을 수 있다니까, 일단 이것도 패쓰~
이언 M.뱅크스의 신작 <게임의 명수> 앞에서 일단 멈춤,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이내 지루해져 <플레바스를 생각하라>를 복기하고 앉았다.















이언 뱅크스는 좀 독특하다.
순문학을 할땐 이언 뱅크스라는 이름을, SF를 할때는 이언 M.뱅크스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그동안 읽은 그의 작품들은 그럭저럭이었지만, 컬쳐 시리즈의 하나인 <플레바스를 생각하라>는 참 좋았었다.
돌이켜보니, 난 <플레바스를 생각하라>를 가지고 이런 리뷰를 썼었다.   
















책을 읽는 내내 스웨이드의 'beautiful ones'를 떠올렸다.
가사만 놓고 봤을 땐 동성애와 마약, 섹스가 등장하는 퇴폐적인 것 같지만,
경쾌하게 내달리는 곡의 분위기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듯이,
호르자의 '우주항해=우주전쟁' 역시, 바라보는 입장에선 좋은 놈도 나쁜 놈도 없는 대책없는 에너지 소모로 보이지만,
나름 신념과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의미있고 멋진것이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없이 읽으면, 영화<스타워즈>를 책으로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선입견을 배제하고 읽으면, 화려한 기차 액션장면이 돋보여서 우주전쟁소설인가 싶기도 하고,
'푸이송'이 등장하는 식인왕국의 섬세한 묘사 등이 생각을 요하게 하여 철학소설인가 싶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느낀 것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좋은 편과 나쁜 편''니편과 내편'같은 편가르기는 비교하는 기준이 동일했을 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컬처'라는 종족은 인간형 종족과 외계종족,인공지능 지성체가 공존하는 거대하고 고도로 발달한 문명집단이다.
인공지능 지성체인 '마인드'와 '드론'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형 정적들도 유전자 조작에 의해 태어날 때부터 아주 건강하고 지적이다.
이런 완벽에 가까운 '컬처'라는 종족에게 ,선교를 숙명으로 여기는 제국주의적 종족 '이디란'이 자꾸 싸움을 건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더 이상의 발전가능성이나 꿈이 없다는 것은,
그걸 정점으로 퇴보를 하게 된다는 의미이기에 '컬처'나 '이디란'이나 맘에 안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주인공 '호르자'가 나오는데...
기계에게 지배받는 것이 싫어 '컬처'종족에게 반발하는 것까지는 멋지지만,
'이디란'종족이 '컬처'와 싸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후사정을 따지지않고 '이디란'을 편든다.

하지만,책을 주의깊게 읽다보면 눈치채겠지만,
호르자가 속해있는 '체인저'라는 종족은 전쟁병기로 쓰기위해 인공적으로 유전자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종족이다.
때문에,호르자는 '컬처'가 싫다고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컬처'에게 유대감을 느낀다.

나의 좁은 소견으로는 '체인저'라는 종족이 제일 나쁜 것 같다.
'이디란'은 선교라는 자신들의 명분을 위해서 전쟁을 하고 '컬처'는 전쟁에 대응을 하지만,
'체인저'는 '전쟁병기'를 따로 만들 정도로 전쟁을 일삼기 때문이다.
그걸 짐작할 수 있는 구절들이 호르자를 통해 너무 많이 등장한다.

'...이런 일을 저지른 이들과 전투를 벌이게 된다면,절대 물러서지 않을 작정이었다.심지어는 즐기게 될지도 몰랐다.'
'...경쟁은 삶의 일부이며 진화의 과정인거야.그 극단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게 되는거지.'

이 책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맘에 들었던 것은...'컬처' 집단의 '자세'라는 드론이었다.
'인간형 종족'과 '외계종족''인공지성체'가 합해진 병종이어서 그렇겠지만...인간보다도 더 인간적인 기계같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드론은 '마음 속 깊이에서는 대책없는 낭만파'라고 묘사된다.

'자세는 팔(이름)이 심지어 코웃음을 치거나 박장대소를 할 때도,팔이 무례하게 굴며 비열하게 웃을때도 기록해 두었다.'

'자세는 기계란 지각력이 있다 할지라도 수치심에 죽을 수는 없음을 알고 있었다.'

이 부분은 입장 바꾸어 해석해보면, 인간은 충분히 수치스러워 죽을 수 있다는 '다소 심오한' 깨달음을 준다.
이렇게 우주에서 일어난 일들이지만, 우리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로 바꾸어 대입해도 되겠다 싶은 부분이 여러군데 더 있었는데,각 종족마다 고통에 반응하는 방법이 다양한 것 또한 그중 하나다.
'컬처'나 '체인저'의 경우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반응을 억제해서 단순한 고통도 두려워한다.
'이디란'의 경우는 고통을 가감없이 완벽하게 느끼며, 자랑스러운 경멸감을 가지고 있다.

가장 감동적이었지만, 마음이 아팠던 부분은...
'호르자'와 '얄슨'이 높은 산의 눈속에 서서 한여름의 태양을 바라보는 부분이었다.

여자는 남자의 표정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데, 남자는 자기 자신의 표정에조차 책임 못진다고 얘기를 한다.
여자는 현실에 안주하는 데서 행복하다고 얘기하는데, 남자는 꿈을 꾸는 표정일 때 행복해 한다.
눈을 생명체라고 묘사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런 눈을 처음 본 호르자가 손의 온기에 눈의 생명을 잃고 마는 부분에서,
얄슨은 알고 있었지만 말할 기횔 놓쳐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이 참 아슴아슴했다.

'솔직한 대답이었지만, 최선의 대답인지는 자신이 없었다.'
하는 부분은 살면서 나도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다.

'컬처는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누군가가 멈추게 해야 한다고 호르자는 생각했다.'
하는 부분은 내가 '컬처'를 향해 불안해 하던 바로 그 부분이었다.

결국 호르자는 죽게 되고,
이것은 작가가 한 개인이 역사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는 걸 끝부분을 보고 알게 되었다.
이것과 관련하여 내 생각은 좀 틀린데,
"안되더라도...되어가게 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참 힘들게 읽었는데...그 이유로 '번역'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번역이라는 것은, 번역자가 그 언어를 해석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해석하고 체화하여 번역본을 읽게 될 사람들에게 이해하도록 하는 것까지가 번역자의 몫이다.
작품 속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한자어를 남발하여 한자어를 이해하느라 또 한번 수고를 하여야 한다.
부사어를 나열하면서도 순서가 엉망이다.
이상하여 살펴보니,역자는 중국어와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다시말해, 문학작품을 학문하듯 번역하였다.
역자에게 문학적 감수성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최소한 작가가 얘기하는 것을 그대로는 전달해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암튼,역자는 계속 문학작품들을 번역해도 좋을지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기분을 이어 가기 위하여, 장바구니의 책들을 깔끔하게 주문한다.
책들에 치여 앉거나 누울 자리가 없는 건 그 다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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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5-13 17:25   좋아요 0 | URL
참 쿨하고 유쾌하신 거 같아요. 멋지기 떄문에 왔지에 나오는 이옥같고 저는 동동거리는 김려의 친구? ㅎㅎㅎ
동네 서점에 와서 저도 나름의 자유를 즐기고 있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5-20 11:10   좋아요 0 | URL
이옥이나 김려를 닮고 싶지만...
실은 그렇게 쿨하고 유쾌하진 못해요.
적당히 찌질해요.
하지만, 이젠 그런 저도 저니까 사랑할 수 있어요~^^

루쉰P 2011-05-13 17:25   좋아요 0 | URL
왠지 양철댁님은 서양 SF물을 상당히 좋아하시고 일가견이 있으신 것 같아요. 전 조지 오웰 류의 약간 SF는 좋아하지만 아예 그 쪽에서 쓰여지는 소설을 거의 안 읽는 편이거든요. ^^

책도 품절나면 사고 싶어도 못 사기에 나올 때 보고 싶은 책이라면 사 놓는 것이 좋은 습관이에요. 칭찬드립니다. ^^

양철나무꾼 2011-05-20 11:12   좋아요 0 | URL
네, 장르소설로 통칭되는 그 쪽을 왕 사랑해요.

맞아요, 품절 되 버리면 사고 싶어도 못 사니까요.
구하게 되더라도 엄청 몸값이 부풀어 버려서요.

칭찬에 어깨 으쓱거리고 있어요~^^

차좋아 2011-05-13 18:00   좋아요 0 | URL
저 하동 가요. 7시 버스 타고 구례 지나서 하동이요^^ 하동, 5월의 차 밭을 담고 올게요.ㅎ
겁나게와 잉사이 만큼 기대되요^^

양철나무꾼 2011-05-20 11:13   좋아요 0 | URL
저는 님이 담아오셨을 사진이 겁나게와 잉 사이 만큼 기대돼요~^^

잘잘라 2011-05-13 18:38   좋아요 0 | URL
겁나게 뽐뿌질해불구마요잉!

플레바스를 생각하라, 그나마 번역이 맘에 안든다니께 을매나 다행인지잉??(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을매나 많은디, 개뿔 자질두 읎구 노력마저 안하는 것들이 자리 차지 하구 앉아 껄덕대는 모양을 볼라치믄, 워매.. 겁나게 뚜껑열려불제잉.)

양철나무꾼 2011-05-20 11:17   좋아요 0 | URL
갑자기 메리포핀스님은 몇 개 사투리를 구사하실까 궁금해졌어요.
전 말이죠, 사투리에 좀 약해요.
요즘 어머니 병간호를 해 드리는 데요.
어머니와 저, 단 둘이만 있을때는 덜 한데...
어머니와 동향이 끼게 되면 못 알아 듣겠어요~ㅠ.ㅠ

cyrus 2011-05-13 20:36   좋아요 0 | URL
최근에 이언 뱅크스의 신작이 나왔군요. 요새 알라딘에 자주 들리지 않아서 그런지 신간에 대한 관심과
반응이 늦어진거 같아요 ^^;; 시험 끝난지 이제 2주 지났는데 2주 뒤에는 학교 축제가 다가오네요.
그래서 그런지 이번달은 저도 기분이 업된거 같고 좋아요 ㅎㅎ

양철나무꾼 2011-05-20 11:20   좋아요 0 | URL
ㅎ,ㅎ,...방가,방가~!
이언 뱅크스를 아는 사람은 별로 못봤어요.
좀 고리타분하고 지루하다는 평을 듣고 있잖아요.
전 다리랑, 대수학자는 그저그랬고...
플레바스는 참 좋았어요.

축제라...좋을때다, 그쵸?
맘껏 즐기세요~^^
그런 얼마 후엔 기말고사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덧글 마지막 줄이 좀 사악하다~^^

마녀고양이 2011-05-14 01:55   좋아요 0 | URL
음하하, 난 필립.K.딕 보자마자 장바구니로 넣었는데, 세권 몽~~~땅!
담주 내에 사고 말테야 하면서.. ^^

글구 이 책은 계속 만지막대는 중인데, 강력 추천? 어때염?
어째 좀 안 땡기네........?

시를 보니, 여행 가고 시퍼 죽어버리겠어요... ㅠ. 구례라. 노란 꽃이 연상되는군~

양철나무꾼 2011-05-20 11:23   좋아요 0 | URL
이언 뱅크스는 내가 별로로 생각하는 그 번역자가 죄다 번역해서 말이지~
아직 사지 말고 있어봐여, 내가 일독 후 말씀 드리겠습니다~

따라쟁이 2011-05-14 10:21   좋아요 0 | URL
갑자기 외할머니가 생각났어요
"겁나게 폭폭하다" 라고 하시면서 가슴을 통통 치시던 모습..

그나저나 양철나무꾼님. 겁나게 보고싶소잉~

봄에 보나 했었는데, 봄은 지나고 여름이 들이닥치고 있어요

양철나무꾼 2011-05-20 11:25   좋아요 0 | URL
저도 겁나게 폭폭하다...그 말 알아요.
그 말 뜻도 알 수 잇을 것 같구요.

저도 따라쟁이님이 겁나게 보고싶소잉~^^

2011-05-14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0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버벌 2011-05-15 09:55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저는 전라도 사람. 겁나게 좋아부네잉~

양철나무꾼 2011-05-20 11:29   좋아요 0 | URL
님이 전라도 사람이라서 그런가...
저희 시댁이 전라도여서 그런가...님의 사투리 구사가 참 생동감 있게 들려요~^^

pjy 2011-05-17 12:18   좋아요 0 | URL
김대중할아버지가 대통령이 되니깐 갑자기 드라마가 너무 잘 들려서 웃겼던 적이 있습니다~ 익숙해서 겁나게 재밌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5-20 11:31   좋아요 0 | URL
저는 서울 토박이이고, 시댁은 전라도예요.
결혼하고 한동안은(아니, 어떤 면에서는 지금도)대화에 통역자가 필요해요~^^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논리야 그렇다손 쳐도,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것으로  들먹이는 게 수사학이라니...
왠지 슬퍼지다 못해 눈물이 나려하지만...

이 책은 읽게 된 것도 다른 사람이 들고 있는게 좀 멋있어 보여서였고,
(언젠가 '책 읽는 남자는 섹쉬하다~'이런 페이퍼를 써서 뭇 알라디너의 원성을 들었었지, 아마~.)
이 책을 읽은 후의 소감을 이렇게 끄적이고 있는 것도...
어느 분의 서재에서 '돈 카밀로와 패포네'의 페이퍼를 보고 하종강의 추천사 속 한 구절이 떠올라서이다.

읽기는 읽었지만, 이 책은 그러니까 나의 취향이 아니었다.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행동이나 사고의 변화도 아닌 '수사'라니 말이다.
수사라고 하면 일단 말장난이 생각난다.

이 부분을 그냥 접고 들어가게 되면 맞닥들이는 것이,
이 책의 겨냥 대상인 '활동가'와 '조직가'에게 '수사학'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행동이나 실천보다 '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 행동이나 실천만큼 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다지만 마음으론 받아들이기 버거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촛불집회 때의 그 연대와 소통은 화려한 수사가 아닌 참여로 빛을 발을 발했었고...
요즘 회자되고 있는 쥐그림도 잘 그린 그림이어서가 아니라 그곳에 그려지는 행위를 통해서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한줄로 줄이자면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라는 데,
나는 우리의 무기는 말이 아니라 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 읽고난 느낌은 그런대로 괜찮았았는데...
이런 변신을 말 뿐인 또는 행동 뿐인 것으로 떼어내지 않고 '언행일치'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말이다. 

물론 나는 하종강님에게 홀릭하는 경향이 있어서...그의 추천사를 읽는 것만으로도 배시시 거렸고,
이 책의 윤곽을 잡는 것도 그의 추천사를 통하여 했다.

하종강님의 추천사 속에서 만나게 되는 김진숙은 황홀했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하나 사서 크레인 위로 올려 보냈다. 그가 트위터에 남긴 수많은 문장 중의 하나다.
"이누무 건 약도 빨리 떨어지구 충전시키기 바쁘이. 근데 갈아 낄 때마다 참 거석한 게 할딱 베낄 수밖에 없는 건지. 야도 굴욕감 만만찮을 텐데......'(6쪽)

돈 까밀로와 뻬뽀네를 언급하며 인용한 트위터의 짧은 글도 무한감동이었다.

'말하고 논쟁할 때 문법이나 단어의 잘못을 가지고 적을 공격하는 것은 가장 비열한 짓이다.'심하게 뜨끔했다.(8쪽)

하지만, 뭐니 뭐니해도 하종강님 추천사 중의 백미는 이 문단이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에 주목하는 이유는 대중이 활동가들의 언행과 글을 통해 운동 전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은 각종 매체에서 자신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표현들을 통해 운동의 실체와 진정성을 대중에게 올바로 전달해야 할 책임이 있다. 활동가들에게는 자신이 바른 말을 했다는 만족감보다 그 말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올바른 영향이 더욱 중요하지만 때로 우리는 그것을 너무 쉽게 잊는다.(7쪽)

나처럼 '수사학'이 거부감이 드는 사람들이라면...하종강님으로 윤곽을 잡은 후, 살을 입히면 되겠다.
결국 이책에서 얘기하는 다른 세상은 가능하게 하는 건, 수사가 아니라 소통이고,
소통의 방법으로 글 잘 쓰는 법, 말 잘 하는 법, 몸 잘 쓰는 법이라는 세 가지 뼈대를 제시하고 거기에 급진주의자에게 알맞은 새로운 살을 입혔다.

그가 말하는 수사가 소통으로 바뀌는 논리는 이렇다.

*수사를 바꾸면, 소통이 바뀐다.
*소통을 바꾸면, 경험이 바뀐다.
*경험을 바꾸면, 사람들의 성향이 바뀐다.
*성향을 바꾸면, 사회에 심대한 변화의 조건이 생긴다.(24쪽) 

활동가가 수사를 통해서 세상을 바꾸는 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활동가는 전통적으로 자신의 물질적 조건에 관심을 두며, 자신과 타인의 구체적인 삶의 상황을 개선하려 노력한다. 따라서 세계를 바꾸는 것은 삶의 조건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틀림없이 중요하나, 놓치는 것이 너무나 많다. 활동가가 바꾸려 하는 이 세상에는, 물질적 조건 이상의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조건들은 게획의 일부분일 따름이다. 세상에는 물질적 조건에 대한 사람들의 경험도 존재한다. 그 경험에는 언어, 지각, 이야기, 담론, 이데올로기, 심리, 사회 관계, 세계관이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물질적 조건을 생각하는 동시에, 그것을 둘러싼 비물질적 수사를 생각해야 한다. 물론 활동가는 언제나 수사를 어느 정도 고려한다.그들은 시위와 직접행동의 형태 및 계획을 놓고 끊임없이 논쟁한다. 그러나 그런 것을 논의해 봤자 물리적 활동과 실질적 조건에 그다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자 나약한 짓이다. 수사를 얕잡아보면, 공공영역 전체와 소통하는 것도 막히고, 거기서 정치적 결과를 내는 것도 어렵다.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 양쪽을 동등하게 생각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여기서 내 생각을 가능한 한 명쾌히 제시하겠다. 나는 물질적 사항을 내치거나 무시하라고 하는 게 아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안전하게 살 만한 집이 필요하고, 양질의 건강관리를 받는 것도 필요하고, 믿음직한 교통, 지속 가능한 환경에 있는 것도 필요하다. 현대의 불평등을 은페하고 생산하는 독재정권, 군부체제, 자본주의 하부구조, 거대한 관료체제와 싸우고 이겨내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물질적 사항은 사람들의 살아 숨 쉬는 몸의 욕구, 필요와도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세상을 올바르게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생각, 이해, 지각을 바꿔야 한다. 이것은 비물질적 문제다.(39~40쪽)

 저자는 실제 활동가들이 수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알고, 지금 사회가 수사를 혐오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다.
'열가지 신화 벗기기'는 그런 점에서 흥미로웠는데...
촘스키를 예로 들어, 그가 급진주의에 기여했던 것은 탁월한 분석 덕분이지, 능통한 연설 때문이 아니다.아무리 촘스키라도 조금이라도 연습하고 손질하면 더 좋아질 것은 분명하다(75쪽)고 얘기한다.

그가 얘기하는 수사의 적절한 예는 피델 카스트로였다.

연설자와 청중은 그곳에서 하나가 되는 계기를 느낀다. 몸말, 눈맞춤, 억양, 말 빠르기, 손직, 끄덕임, 잠깐 멈춤, 침묵은 물론 헛기침과 안달하는 손놀림까지 게기를 창출한다.(95쪽)

다시말해, 이 책은 수사라는 비물질적 노동을 어떻게 읽어내고 번역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소통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다.
취지는 가상하나, 나를 움직이지는 못했다. 
 

그리고 나는 오늘, adele의 chasing pavements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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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1-05-11 11:17   좋아요 0 | URL
운동가는 수사를 바꿔야 한다는 뼈아픈 말에 저는 깊이 공감합니다.
이제 주먹쥐고 앞장서면,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 들어라~ 산 자여 따르라~ 하는 시대가 아니거든요.

촛불 집회는 모인 사람도 사람이지만,
거기서 물대포에 '온수! 온수!'하는 수사를 구사할 수 있었던 여유가 하나의 큰 의미로 남지 않나 합니다.
조선일보 물매운동을 '숙제'라는 수사법으로 희화화했구요.

결국 노무현을 죽이고 4대강을 죽이는 무시무시한 막장 정권이지만,
(저것은 사자다~하는 무시무시한 명명을 주의한다면, 로마의 개 정도는 때려잡을 수 있는 것처럼)
강유원 선생은 그래서 이명박 정권을 파시즘 정권으로 이름붙이면 안 된다더라구요.(우석훈이 파시즘 운운하는데)
그냥 날라리 사기군 정권이라고 부르는 수사법을 구사해야 한다는 뭐, 그런...

반가운 맘에 두서업이 글만 기네요. ^^
비가 시원스레 내립니다. 답답한 마음은 어차피 그것도 내 몫인가 하고 반야심경을 몇 번 쓴답니다. ^^

양철나무꾼 2011-05-11 12:20   좋아요 0 | URL
두서 없이 기시지 않았고,
제 길기만 한 페이퍼를 일목요연하게 매듭지어 주셨는걸요.

저는 페이퍼를 쓰는 내내 '수사'라니 하고 궁시렁 거렸었거든요.
샘이 공감하신다니, 저도 되집어 보죠~^^

루쉰P 2011-05-11 15:00   좋아요 0 | URL
말이 수사로 되는 지점은 양철댁님의 지적처럼 몸으로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요. 무엇을 하든 인간은 수 많은 말을 만들어 내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누구를 생각하는 말인지, 그리고 정말 어떤 행동을 이끌기 위해서 준비된 말인지 보다 상대방을 자신의 논리로 이끌기 위해 탐욕적인 마음에 말이 수사로 되는 경향이 많은 듯 해요. 생명을 건 말, 그것이 몸을 움직이게 끔 하지 않을까란 생각도 해요. 글 역시 글을 위한 글은 결국 읽는 이에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하고 끝나기 마련인 것 처럼요. ^^

노무사 시험을 공부한다고 흉내를 내고 있는 요즘, 하종강님도 그 쪽 분야의 책이 많으셔서 관심을 두고 있는 작가인데 양철댁님도 좋아하신다고 하니...뭐랄까? 이 평행이론은 무엇일까요? ㅋㅋㅋ

그리고 이달의 당선작에 당선되셨더라구요. 완전 축하드려요. 축하! 축하!

양철나무꾼 2011-05-13 17:02   좋아요 0 | URL
노무사 공부를 하고 계셨군요.

제겐 하종강의 문장들이 생명을 건 말, 그래서 몸을 움직이게 하는 글들로 읽혀요.
참 좋아해요.
하지만, 공공장소에서 읽는 건 금물이예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이예요~ㅠ.ㅠ

하늘바람 2011-05-11 12:39   좋아요 0 | URL
아~
그냥 감탄만 하고 ~
있어요

양철나무꾼 2011-05-13 17:02   좋아요 0 | URL
*^^*

섬사이 2011-05-11 13:01   좋아요 0 | URL
아~
저도 그냥 감탄했어요.
수사는 문학 작품 안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소통을 바꾸기도 하는군요.
<내 파란 세이버>라는 책을 검색해 보았어요.
정말 <불량한 자전거 여행>과 표지가 아주 비슷하던데요.
특히 3권과 7권이요.
하종강 님의 책도 검색해보러 가야겠어요. ^^

양철나무꾼 2011-05-13 17:04   좋아요 0 | URL
ㅎ,ㅎ,ㅎ...
하종강 님의 글들은 좀 감성적이예요.
김규항 님의 글들은 군더더기 없고 똑 떨어지고요.

김규항의 문장론을 새기고 본받으려 하지만,
어떨 땐 감정이 넘치는 하종강님의 글들이 땡길 때도 있어요~^^

감은빛 2011-05-11 13:30   좋아요 0 | URL
제 경험을 바탕으로 활동가들에게 '수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은 합니다만,
'수사'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세상을 만들어내는 힘은 결국 '실천'이겠지요.
어떤 의미에서 '수사'만 있고, '실천'은 없는 이들이 말로만 '진보'를 부르짖는 요즘,
이 책은 그런 '가짜 진보'를 양산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는 걸요.

'말'이 아닌 '몸'의 힘을 굳게 믿고 계신 양철님이 더욱 반갑게 느껴지는 글입니다. ^^

징검다리 연휴 잘 보내셨나요?

양철나무꾼 2011-05-13 17:07   좋아요 0 | URL
가장 이상적인 건 언행일치겠죠.
하지만 골고루 갖추기는 힘들죠.
그렇다면 다소 투박하더라도 꾸밈이 없는 쪽을 택하겠다는 게 제입장입니다.

님도 연휴 잘 보내셨어요?
이제 6월을 기다려야죠~^^

마녀고양이 2011-05-11 16:19   좋아요 0 | URL
수사학이란 단어를 찾으러 다녀왔습니다.
난 정반대의 책을 요즘 읽고 있어요. '선을 위한 힘' 이라고 행동에 대한 책이죠. ^^
나두 수사란게 워낙 싫어서 말이죠......... 자기랑 똑같은 느낌, 찌찌뽕~

근데 말야, 페이퍼 제목이 은근히 섹쉬하당?

양철나무꾼 2011-05-13 17:09   좋아요 0 | URL
선을 위한 힘...검색 들어가 줘야지.

미술치료 수업은 어때요?
힘들지 않고?
오늘은 햇살이 너무 좋더라~^^

책가방 2011-05-12 02:16   좋아요 0 | URL
너무 어려워요.ㅠ.ㅠ
세상엔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은데... 우리 큰딸은 중3임에도 불구하고 낮잠자다 학원에 지각하고..ㅜ.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내 딸도 알았으면...
내가 모르고 있는 것까지 내 딸이 알게되었으면...^^

양철나무꾼 2011-05-13 17:1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아래 두줄 저도 공감해요.
근데 그 전에 전 딸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옛날에 그러니까 도사라 불리우는 사람을 알았다.
마라톤에 중독되었던 그는 그렇게 뛰다 길 위에서 죽는 것도 멋지지 않겠느냐 하고 다녀 道死라고도 불리웠다.
그걸 '길 위의 인문학' 이 책에선 '노인(路人)'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국내에선 처음 시도되는 인문학 대중화 사업이고, 이 책은 그동안 진행된 강의와 답사물이라는 것도 알겠는데...
그저 읽기만 하는 사람에겐 더없이 산만한 느낌을 주는 책 한권이다.
그렇다고 내용이 산만하거나 대충이거나 난해한 느낌을 주는 건 아니다.
몰입하여 하룻밤 새에 이 책을 다 읽어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한꼭지씩만 읽기를 권한다.
필진도 빵빵하고 그들의 필력도 대단하고, 그들의 정신세계를 엿보는 재미도 쏠쏠한 것이, 한꼭지만 읽어도 책 한권을 읽은 듯  거뜬하다.
그동안 진행되었던 강의와 답사물 답게 한글로 쓰여진 기획의도는 좋았지만,
조선시대의 저작들을 중간 단계의 해석 없이 곧바로 요즘 어법으로 넘어가 버리니...글이 겉돈다.
난 정민도 좋았지만, 한승원의 필체가 가장 맘에 들었다.
개인적인 욕심으로야 한승원으로 다 통일해 버렸으면 좋겠지만,
그런 과한 욕심 말고라도 한시 해석 정도는 어투나 방식 따위를 통일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한승원이 택한 건 추사였다.
추사선생과의 가상 대담의 형태로 쓰였는데...

"내가 '오만한 천재'였다는 그 시각은 하나만 알고 열을 모르는 유치한 시각일세. 천재라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미안하지만 나는 천재가 아닐세.흔히 추사를 명필이라 말하고, 추사의 글씨를 천재의 글씨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은 실없고 허랑한 소리네. 이 세상에는 하늘에서 타고난 천재는 없네. 내 평생, 붓글씨를 쓰기 위해 먹을 갈고 또 간 까닭으로 닳아져서 밑구멍이 뚫어진 벼루가 몇 번째인 줄 아는가. 추사라는 한 남자가 평생 글씨를 써오면서, 닳아져 못 쓰게 되어 버린 몽땅붓이 몇백 자루나 되는 줄 아는가? 천재는 없고 신을 향한 도전이 있을 뿐이네. 사람은 남자이건 여자이건 내 손으로 세상을 바꾸어놓겠다는 의지와 열정을 가져야 하는 법일세.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물의 흐름, 바람의 흐름을 바꾼다는 것이고, 세상을 비추는 햇살의 색깔을 바꾼다는 것이네. 검게 보이던 세상을 밝고 희게 보이게 한다는 것이고, 무지갯살을 일어나게 하여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는 것이네. 그 짓을 나는 경전 읽기와 글씨 쓰기로 해온 것이네."(86쪽)
(아무리 맞춤법이라지만...무지갯살은 무슨 조갯살 같은 느낌이 든다~ㅠ.ㅠ)

같은 구절도 좋았다.
가상대담이지만 선문답처럼 쓰여졌다.

"억지로 기괴하고 고졸하게 쓰려고 하는 것, 그것은 진실로 기괴함과 고졸함이 아니네. 사실 기괴함과 고졸함이란 것은 내 몸의 우주 속에 들어 있네. 가령 금강산의 기괴함과 고졸함은 우주 라는 자연 속에 들어 있는 기괴한 모습, 고졸한 모습이 드러난 것이네. 글씨는 붓이 쓰는 것이지만, 사실은 붓이 쓰는 것이 아니네. 원래 먹물 속에 그 글씨가 들어 잇엇지. 붓은 먹물을 묻혀 종이 위를 지나갈 뿐이지만, 종이에 영원히 남은 것은 먹물이네. 나는 먹물 속에 들어 있는 글씨를, 물 흐르듯이 꽃 피듯이 종이 위에 꺼내 건져놓고 있을 뿐이야."(96~97쪽)

나무를 가지고한 언어유희도 재미있었고, 
불이선란에 대한 해석도 한번쯤 새길 만하다. 

"부인을 두고 어찌 또 다른 여인을 또 사랑한다는 것입니까?"하고 묻자,
"난초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수선화를 사랑할 수도 있네."라고 대답한다.
이런 멋진 대답이라면 마초가 되거나 바람이 되어도 용서할 수 있겠다. 

이이화의 경우, 하나의 덩어리로 중량감 있게 버무려 내서...강의를 직접 듣는 듯 느껴졌다.
정약용의 유배지를 답사할때는 정민을 읽어주면 될 것이다.
양동마을은 그냥은 이해하기 힘들었을텐데...전에 중전님 서재에서 봤던 사진들이 '향단'을 이해하는 기틀이 되었다.
여행이나 답사를 갈때 연관된 것을 찾아 한꼭지씩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비가내린다.
비가 잦아들때는 바람소리가 오히려 거세져 귀곡산장에 앉아있는 느낌이다.
주말 내내 비가 내린다는 데...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난 봄이 힘들고, 밤이 힘들고, 비가 힘들다.
그러니 비가 내리는 봄밤이야말로 내겐 아주 지랄맞다. 
그야말로 산속에서 길을 잃을 잃은 기분이다.
오늘은 하루종일 나희덕을 읊조려야 겠다.

산속에서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 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 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가게 해 준다는 것을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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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좋아 2011-04-30 05:22   좋아요 0 | URL
어찌 안 주무셨어요^^

전 비가 좋고 비오는 밤은 더 좋고 그래요.(좋아서 좋은 건 아니에요. 화창한 날의 좋음과는 또 다른 이유)
근데요 제가 비오는 봄밤을 좋아하는 이유랑 양철댁님이 그 밤을 싫어하는 이유가 같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딱 같을 수는 없겠지만 어쩐지 어느면으로 그럴 것 같아요.

양철나무꾼 2011-04-30 12:2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그랬네요~

저는 햇살 넉넉한 오후 담벼락이 만들어낸 그늘이 좋아요.
비오는 봄밤은 말이지, 당췌요~ㅠ.ㅠ
커피로 잠을 깨겠다는 건지, 뜨거운 걸로 전신 샤워를 해 잠을 깨겠다는 건지...들이붓고 있습니다.

누구에겐 좋아하는 바로 그 이유로 누군 싫어한다는 거...참 아이러니 하지만 좀 공평한 거 같아요~^^

hnine 2011-04-30 06:44   좋아요 0 | URL
무슨 노래인가 했더니 이 노래였군요.
'억지로' 하다 보면 어딘가 이르게 될지 모르지만 최소한 우러나서 하는 것 만큼 감동을 주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봄, 밤, 비...(또 비읍으로 시작하는게 뭐가 있을까요, 바람? ^^) 저는 이 중에 비가 제일 힘든데 이 비와 바람 속에, 조금 있으면 아이 운동 경기하는데 데려다 주러 나가야 해요. 그리고 거기서 4시간을 기다렸다 데리고 와야 해요 ㅠㅠ
이렇게 일찍 이런 페이퍼로 시작하신 양철댁님 하루가 어떠셨는지도 나중에 들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저에게 어떤 하루일지는 너무나 빤한데 말이지요 ^^

양철나무꾼 2011-04-30 12:32   좋아요 0 | URL
Ain't no sunshine이요~^^

전 그러니까 어젯밤에 잠을 못 자고 꼴딱 샜습니다.
죄 지은게 많아서 그런가...비바람 불고, 천둥치는 밤이면 잠을 통 못 자요~ㅠ.ㅠ

지금 전 옷의 겉감과 안감이 어긋나는 것처럼,
제 육신과 정신의 살짝 어긋남을 경험하고 있어요.

음~비가 이렇게 많이 내리는데 말이죠.
아들 축구 할 수 있을까요?
4시간 동안 기다리면서 뭐 하세요?
독서 위드 커피면 그럭저럭 견딜만 하지 않을까요?^^

알케 2011-04-30 09:14   좋아요 0 | URL
Greys anatomy..한때 몇 시즌을 몰아봤던 드라마. 2시즌까진 정말 때깔 나는 대사들이 등장하죠. 이런 대사들

Intimacy is a four-syllable word for "here are my heart and soul.
Please grind them into hamburger and enjoy."
It's both desired and feared, difficult to live with and impossible to live without.

그 뒤 시즌으론 무슨 동물의 왕국처럼 변해버려서 ㅎㅎ


양철나무꾼 2011-04-30 12:58   좋아요 0 | URL
전 몇편 보지 못했지만 이 구절은 외우고 있습죠~
I love you...in a really really big.
Pretend to like your taste in music,
let you eat the last piece of cheese cake,
hold a radio over my head outside your window,
unfortunate way that makes me hate you.

Love you...so pick me. choose me. love me.


2011-04-30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1-04-30 12:48   좋아요 0 | URL

잘잘라 2011-04-30 12:24   좋아요 0 | URL
아이참, 오이소배기가 익어가는 요즘은 여름이라니깐 그러시네~
여름! 여름밤! 여름비! 여름 여름 여름~
이 음악 틀어주세요.

♪여~~~름은 젊음의 계절, 여~~~~름은 나만의 계절^ ^
♬♪비가 쏟아 지-는 여름으로 가요 여름으로 가요오~ 달콤한 사랑을 속삭여줘요~~

양철나무꾼 2011-04-30 12:52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제가 메리포핀스님 때문에 살만해 졌습니다여~
같은 주룩주룩이라도 봄날의 주룩주룩과 여름날의 주룩주룩은 분위기부터가 다르다니까요~^^

이 음악 틀어드리고 싶은데...제목이 뭐더라~
잠깐만요,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저도 오이 사려구요.

글샘 2011-04-30 12:30   좋아요 0 | URL
봄밤비 봄비밤 밤봄비 밤비봄 비밤봄 비봄밤

하나도 안 우울한데요?

어떡해야할지 혜가처럼 팔뚝 하나 잘라 오시면 갈쳐 드릴게요.

즐건 주말 보내시길... 팔뚝 잘 만지시고...^^

양철나무꾼 2011-04-30 12:56   좋아요 0 | URL
그 팔뚝 제 팔뚝이어야 하는 거죠?
팔뚝의 통증으로 우울해 할 새가 있을까요?

혜가단비, 언제 여쭌건데...이제 알켜 주세요?^^


봄밤비 봄비밤 밤봄비 밤비봄 비밤봄 비봄밤
꽤 쓸만한 주문인걸요~

L.SHIN 2011-04-30 17:51   좋아요 0 | URL
우주선은 안 타고 지구에 있는데요....지구에 있긴 한데..정작 지구생활을 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합닏.-_-;
잘 지내시나요? 댓글 보고 와봤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5-03 11:14   좋아요 0 | URL
우와~잘 지내시죠?
그럼...그걸로 된거죠~^^

세실 2011-04-30 18:52   좋아요 0 | URL
많이 피곤하실텐데 좀 쉬셨나요?
전 결혼식 잠깐 다녀와서 자다, 졸다 반복했습니다. 이렇게 천둥비 내릴땐 돌아다니기 싫어요.
몸도 마음도 더 가라앉는 느낌. 치킨에 맥주 한 잔 마셔야 겠어요.

양철나무꾼 2011-05-03 11:19   좋아요 0 | URL
언젠가 들은 얘기인데...
가라앉히는 것과 잘라내는 것...두가지 방법이 있대요.
가라앉히는 건...그에 비견한 충격이 주어지면, 아니 미꾸라지 한마리가 휘저어 놓아도 다시 흙탕물이 되고,
잘라내는 건, 아무것도 안 남았을 것 같은데...가끔 그 자리가 아리대요.

누군가는 가라앉히고, 누군가는 잘라내고...그렇게 그렇게 살아가는 거 같아요.
전 누구랑 치킨에 맥주 마실때, 치킨 무우에 소주 마셔요~^^

언제, 꼭 세실님이랑 술 마시고 싶어요~^^

세실 2011-05-04 07:10   좋아요 0 | URL
good!!

양철나무꾼 2011-05-10 15:27   좋아요 0 | URL
*^^*

비로그인 2011-04-30 22:57   좋아요 0 | URL
양철님~ 오늘 컴이 말을 안들어 둘 다 싹 혼내놓고, 청소하고 뭘 좀 하다가 들렸습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몸에 땀이 배려는 것이, 곧 더워질 것 같습니다. 여름이 오면 사무실엔 에어컨이 계속 버티고 있겠지만, 오히려 어릴때 눈이 멀 것같던 태양 아래 피부가 벗겨지던 그 때보다 더 덥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천둥 소리가 너무 크던 밤은 잘 보내셨나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 전기가 나가서 촛불 켜두던 기억이 나네요. 어제도 그때 하늘처럼 먹구름 잔뜩 끼었던 날이었는데요.
그때만큼 선명하게 다가오진 않더라고요.

양철나무꾼 2011-05-03 11:29   좋아요 0 | URL
사물의 의인화, 제가 참 잘하는 건데 말이죠~^^
그래서 그런가, 님의 이 댓글 참 친근하게 느껴지네요.
이젠 컴들 말 잘들어요?^^

제가 일하는 이곳은...
아직도 매트엔 전기가 들어가고, 에어콘에선 벌써 송풍이 나와주고 있어요.
이곳에 들어오면...바깥 세상관 잠시 단절인거죠~^^

언제 비가 왔나싶게 쾌청이예요, 라고 쓰고 창문을 열어보니...황사 때문인지 뿌예요.

마녀고양이 2011-05-01 13:29   좋아요 0 | URL
밤에 번개와 천둥이 정말 심했어요. 갑자기 세상 바닥이 번쩍하는게 낙뢰가 꽂힌 느낌이 들더니
우리 아파트 단지 모두 새벽에 정전이 되어 버렸어요. ^^

인용구가 참 좋다. 무지갯살은 마치 조갯살이 생각난다는 점은 동의하지만, 그걸 놔두고,
세상을 바꾼다는게 자연의 흐름을 바꾼다, 일맥상통한다는 것 같아서 좋은걸. 그리고......
"난초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수선화를 사랑할 수도 있네." 이건 내가 하겠소. 허허.
내가 이런 맘으로 세상 남자들을 대하리다.................. 캬. 멋지지!


양철나무꾼 2011-05-03 11:35   좋아요 0 | URL
이 댓글을 보다가, 자기가 여자로 태어난게 못내 아쉽다는 생각을 했어.
아님 여자인채로라면 모계사회로 갔어야 하던가...
참 많은 매력을 가진 처잔데...우리나라는 결혼과 동시에 너무 많은 굴레와 제약을 갖게 된다는 걸 다시 한번 하게 되네~^^

무지갯살이라는 단어 쓰는 거...법으로 금했으면 좋겠어~ㅠ.ㅠ

pjy 2011-05-02 13:52   좋아요 0 | URL
마초가 되거나 바람이 되어도 용서할 수 있겠다~~ 절대 멋진 답변 아닙니다..누구맘대로 용서를 한답니까? 흥!
제가 다음생에 남자로 태어난다면, 딱 양철댁님 같은 여자를 만나줘야 용서받는거죠~ 그렇죠?ㅋㅋ

양철나무꾼 2011-05-03 11:39   좋아요 0 | URL
제가 아직 추사 같은 풍류를 못 만나봐서 말이죠~ㅠ.ㅠ
그나저나 전 이 시대에 추사가 살았더라면...아마 벌써 그의 언년이 정도로 들어갔을 것 같아요.
글도 좋지, 문장도 좋지, 풍류도 끝내주지...

그러니까 용서를 하고 싶어도, 조건에 부합되는 사람을 아직 못 만난지라~.쿨럭--;;

루쉰P 2011-05-02 15:08   좋아요 0 | URL
한승원과 추사의 가상 대담 부분에서는 루쉰 선생이 자신을 천재라 부르는 사람들에게 '천재란 있을 수 없다. 나는 타인이 커피를 마실 시간에 글을 쓰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 부분이 기억나네요. 저는 이 텍스트를 그대로 받아들여 커피를 타 먹는 것은 천재가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그런 뜻이 아니라 루쉰 선생 시절 당시에는 살롱이라 불리는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며 창작은 커녕 서로 추켜 올리며 놀고 다니는 문학가들을 비유해서 한 말이라고 하네요. ^^ 하지만 한승원과 추사의 저 대담의 내용은 너무나 좋은데요. 양철댁님의 리뷰도 날로 날카로워 지고 핵심적 내용으로 건더기 없이 담백하게 읽히는 것을 보면 추사체는 아니더라도 양철체 리뷰가 보이는 듯 해요. 푸훗.
살 책과 안 살 책을 구분해 주는 양철체 리뷰를 저는 존경합니다. ㅋㅋ 새내기 직원들은 여전히 말 안 듣죠? 제가 양철댁님 말 잘 들으라고 그 새로 들어온 직원들을 매일 저주하고 있어용. 나름 저주빨은 먹힙니다. 흐흐흐

제가 직장상사면 말 잘 들으신다고 했는데 전 절세미인에겐 일을 못시키거든요. 크흑!! 양철댁님은 그래서 면접에서 떨어뜨릴 거에요. 눈물을 머금고...아! 감동적이야.

양철나무꾼 2011-05-03 11:46   좋아요 0 | URL
루신P님, 그러시면 안되옵니다.
어찌 저 하나 좋자고 매일 저주를 날리고 계십니까?
그 사기를 다 어찌 감당하시려고요...

제 상사가 싫으시다면, 제 밑으로 들어오시던가요~
근데 제 밑으로 들어오시면, 매일 저에게 저주를 날리게 되실거예요...
저, 가까이서보면 좀 밉상이거든요~^^

버벌 2011-05-02 19:45   좋아요 0 | URL
종이에 영원히 남는 것은 글씨죠. 맞아요.
저도 의지와 열정을 가지겠습니다.

아.. 책을 사야되나.. ㅠㅠ

양철나무꾼 2011-05-03 11:48   좋아요 0 | URL
음~ㅠ.ㅠ
리뷰로 쓰려다가 별 점을 매기기 곤란하여 페이퍼로 갈아탔습니다.
차라리,<국어시간에 시읽기>를 권해드리겠습니다.
참 좋은 시들이 많아요~^^

모름지기 2011-05-04 00:10   좋아요 0 | URL
음..전 밤비가 좋던데
오히려 낮에 내리는 비가 더 지랄맞죠.ㅜㅜ
별로 쓸 글은 없지만 밤에 비라도 내리면 글이 술술 써지거든요.
물론 다음 날 훤한 대낮에 그 글을 다시 읽자면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문제지..ㅋㅋ



양철나무꾼 2011-05-04 01:17   좋아요 0 | URL
전 낮에는 직장에 매어있는 몸이라 비에 사사롭지 않아요.
아니, 덜 사사로워요~

그러게요, 봄이 제외된 밤비...그럴듯 한걸요~
옛날에 읽었던 '아기 사슴 밤비'가 생각나는 것이...
오늘은 살만해 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