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그러니까 도사라 불리우는 사람을 알았다.
마라톤에 중독되었던 그는 그렇게 뛰다 길 위에서 죽는 것도 멋지지 않겠느냐 하고 다녀 道死라고도 불리웠다.
그걸 '길 위의 인문학' 이 책에선 '노인(路人)'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국내에선 처음 시도되는 인문학 대중화 사업이고, 이 책은 그동안 진행된 강의와 답사물이라는 것도 알겠는데...
그저 읽기만 하는 사람에겐 더없이 산만한 느낌을 주는 책 한권이다.
그렇다고 내용이 산만하거나 대충이거나 난해한 느낌을 주는 건 아니다.
몰입하여 하룻밤 새에 이 책을 다 읽어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한꼭지씩만 읽기를 권한다.
필진도 빵빵하고 그들의 필력도 대단하고, 그들의 정신세계를 엿보는 재미도 쏠쏠한 것이, 한꼭지만 읽어도 책 한권을 읽은 듯 거뜬하다.
그동안 진행되었던 강의와 답사물 답게 한글로 쓰여진 기획의도는 좋았지만,
조선시대의 저작들을 중간 단계의 해석 없이 곧바로 요즘 어법으로 넘어가 버리니...글이 겉돈다.
난 정민도 좋았지만, 한승원의 필체가 가장 맘에 들었다.
개인적인 욕심으로야 한승원으로 다 통일해 버렸으면 좋겠지만,
그런 과한 욕심 말고라도 한시 해석 정도는 어투나 방식 따위를 통일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한승원이 택한 건 추사였다.
추사선생과의 가상 대담의 형태로 쓰였는데...
"내가 '오만한 천재'였다는 그 시각은 하나만 알고 열을 모르는 유치한 시각일세. 천재라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미안하지만 나는 천재가 아닐세.흔히 추사를 명필이라 말하고, 추사의 글씨를 천재의 글씨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은 실없고 허랑한 소리네. 이 세상에는 하늘에서 타고난 천재는 없네. 내 평생, 붓글씨를 쓰기 위해 먹을 갈고 또 간 까닭으로 닳아져서 밑구멍이 뚫어진 벼루가 몇 번째인 줄 아는가. 추사라는 한 남자가 평생 글씨를 써오면서, 닳아져 못 쓰게 되어 버린 몽땅붓이 몇백 자루나 되는 줄 아는가? 천재는 없고 신을 향한 도전이 있을 뿐이네. 사람은 남자이건 여자이건 내 손으로 세상을 바꾸어놓겠다는 의지와 열정을 가져야 하는 법일세.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물의 흐름, 바람의 흐름을 바꾼다는 것이고, 세상을 비추는 햇살의 색깔을 바꾼다는 것이네. 검게 보이던 세상을 밝고 희게 보이게 한다는 것이고, 무지갯살을 일어나게 하여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는 것이네. 그 짓을 나는 경전 읽기와 글씨 쓰기로 해온 것이네."(86쪽)
(아무리 맞춤법이라지만...무지갯살은 무슨 조갯살 같은 느낌이 든다~ㅠ.ㅠ)
같은 구절도 좋았다.
가상대담이지만 선문답처럼 쓰여졌다.
"억지로 기괴하고 고졸하게 쓰려고 하는 것, 그것은 진실로 기괴함과 고졸함이 아니네. 사실 기괴함과 고졸함이란 것은 내 몸의 우주 속에 들어 있네. 가령 금강산의 기괴함과 고졸함은 우주 라는 자연 속에 들어 있는 기괴한 모습, 고졸한 모습이 드러난 것이네. 글씨는 붓이 쓰는 것이지만, 사실은 붓이 쓰는 것이 아니네. 원래 먹물 속에 그 글씨가 들어 잇엇지. 붓은 먹물을 묻혀 종이 위를 지나갈 뿐이지만, 종이에 영원히 남은 것은 먹물이네. 나는 먹물 속에 들어 있는 글씨를, 물 흐르듯이 꽃 피듯이 종이 위에 꺼내 건져놓고 있을 뿐이야."(96~97쪽)
나무를 가지고한 언어유희도 재미있었고,
불이선란에 대한 해석도 한번쯤 새길 만하다.
"부인을 두고 어찌 또 다른 여인을 또 사랑한다는 것입니까?"하고 묻자,
"난초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수선화를 사랑할 수도 있네."라고 대답한다.
이런 멋진 대답이라면 마초가 되거나 바람이 되어도 용서할 수 있겠다.
이이화의 경우, 하나의 덩어리로 중량감 있게 버무려 내서...강의를 직접 듣는 듯 느껴졌다.
정약용의 유배지를 답사할때는 정민을 읽어주면 될 것이다.
양동마을은 그냥은 이해하기 힘들었을텐데...전에 중전님 서재에서 봤던 사진들이 '향단'을 이해하는 기틀이 되었다.
여행이나 답사를 갈때 연관된 것을 찾아 한꼭지씩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비가내린다.
비가 잦아들때는 바람소리가 오히려 거세져 귀곡산장에 앉아있는 느낌이다.
주말 내내 비가 내린다는 데...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난 봄이 힘들고, 밤이 힘들고, 비가 힘들다.
그러니 비가 내리는 봄밤이야말로 내겐 아주 지랄맞다.
그야말로 산속에서 길을 잃을 잃은 기분이다.
오늘은 하루종일 나희덕을 읊조려야 겠다.
산속에서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 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 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가게 해 준다는 것을
나희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