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나게와 잉 사이 / 이원규


전라도 구례 땅에는
비나 눈이 와도 꼭 겁나게와 잉 사이로 온다

가령 섬진강변의 마고실이나
용두리의 뒷집 할머니는
날씨가 조금만 추워도, 겁나게 추와불고마잉!
어쩌다 리어카를 살짝만 밀어줘도, 겁나게 욕봤소잉!
강아지가 짖어도, 고놈의 새끼 겁나게 싸납소잉!

조깐 씨알이 백힐 이야글 허씨요
지난 봄 잠시 다툰 일을 얘기하면서도
성님, 그라고봉께 겁나게 세월이 흘렀구마잉!

궂은 일 좋은 일도 겁나게와 잉 사이
여름 모기 잡는 잠자리 떼가 낮게 날아도
겁나게와 잉 사이로 날고
텔레비전 인간극장을 보다가도 금세
새끼들이 짜아내서 우짜까이잉! 눈물 훔치는
너무나 인간적인 과장의 어법

내 인생의 마지막 문장
허공에라도 비문을 쓴다면 꼭 이렇게 쓰고 싶다
그라제, 겁나게 좋았지라잉!

 
내내 기분이 좋다. 
기분이 좋아서 배시시 해시시 웃음을 흘리고 다닌다. 
문장부호 하나 빠졌다고 툴툴 거리는 사람을 만났다.
싫지 않았다, 참 좋았다.
'문장부호'야 말로 '너무나 인간적인 과장의 어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Piazzolla의 calambre를 돌려들으면서 통통거리고 다닌다. 

아직 못 읽고 있는 책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어서...책 구매는 한참 뒤로 미룰 생각이었다.
그냥 좋은 기분을 이어서 웹서핑만 하자는 생각으로 새로 나온 책들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난 그러니까 필립 K.딕을 그냥 지나쳤다.
라인업은 지금 주문하면 18일에나 받을 수 있다니까, 일단 이것도 패쓰~
이언 M.뱅크스의 신작 <게임의 명수> 앞에서 일단 멈춤,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이내 지루해져 <플레바스를 생각하라>를 복기하고 앉았다.















이언 뱅크스는 좀 독특하다.
순문학을 할땐 이언 뱅크스라는 이름을, SF를 할때는 이언 M.뱅크스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그동안 읽은 그의 작품들은 그럭저럭이었지만, 컬쳐 시리즈의 하나인 <플레바스를 생각하라>는 참 좋았었다.
돌이켜보니, 난 <플레바스를 생각하라>를 가지고 이런 리뷰를 썼었다.   
















책을 읽는 내내 스웨이드의 'beautiful ones'를 떠올렸다.
가사만 놓고 봤을 땐 동성애와 마약, 섹스가 등장하는 퇴폐적인 것 같지만,
경쾌하게 내달리는 곡의 분위기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듯이,
호르자의 '우주항해=우주전쟁' 역시, 바라보는 입장에선 좋은 놈도 나쁜 놈도 없는 대책없는 에너지 소모로 보이지만,
나름 신념과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의미있고 멋진것이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없이 읽으면, 영화<스타워즈>를 책으로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선입견을 배제하고 읽으면, 화려한 기차 액션장면이 돋보여서 우주전쟁소설인가 싶기도 하고,
'푸이송'이 등장하는 식인왕국의 섬세한 묘사 등이 생각을 요하게 하여 철학소설인가 싶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느낀 것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좋은 편과 나쁜 편''니편과 내편'같은 편가르기는 비교하는 기준이 동일했을 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컬처'라는 종족은 인간형 종족과 외계종족,인공지능 지성체가 공존하는 거대하고 고도로 발달한 문명집단이다.
인공지능 지성체인 '마인드'와 '드론'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형 정적들도 유전자 조작에 의해 태어날 때부터 아주 건강하고 지적이다.
이런 완벽에 가까운 '컬처'라는 종족에게 ,선교를 숙명으로 여기는 제국주의적 종족 '이디란'이 자꾸 싸움을 건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더 이상의 발전가능성이나 꿈이 없다는 것은,
그걸 정점으로 퇴보를 하게 된다는 의미이기에 '컬처'나 '이디란'이나 맘에 안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주인공 '호르자'가 나오는데...
기계에게 지배받는 것이 싫어 '컬처'종족에게 반발하는 것까지는 멋지지만,
'이디란'종족이 '컬처'와 싸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후사정을 따지지않고 '이디란'을 편든다.

하지만,책을 주의깊게 읽다보면 눈치채겠지만,
호르자가 속해있는 '체인저'라는 종족은 전쟁병기로 쓰기위해 인공적으로 유전자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종족이다.
때문에,호르자는 '컬처'가 싫다고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컬처'에게 유대감을 느낀다.

나의 좁은 소견으로는 '체인저'라는 종족이 제일 나쁜 것 같다.
'이디란'은 선교라는 자신들의 명분을 위해서 전쟁을 하고 '컬처'는 전쟁에 대응을 하지만,
'체인저'는 '전쟁병기'를 따로 만들 정도로 전쟁을 일삼기 때문이다.
그걸 짐작할 수 있는 구절들이 호르자를 통해 너무 많이 등장한다.

'...이런 일을 저지른 이들과 전투를 벌이게 된다면,절대 물러서지 않을 작정이었다.심지어는 즐기게 될지도 몰랐다.'
'...경쟁은 삶의 일부이며 진화의 과정인거야.그 극단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게 되는거지.'

이 책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맘에 들었던 것은...'컬처' 집단의 '자세'라는 드론이었다.
'인간형 종족'과 '외계종족''인공지성체'가 합해진 병종이어서 그렇겠지만...인간보다도 더 인간적인 기계같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드론은 '마음 속 깊이에서는 대책없는 낭만파'라고 묘사된다.

'자세는 팔(이름)이 심지어 코웃음을 치거나 박장대소를 할 때도,팔이 무례하게 굴며 비열하게 웃을때도 기록해 두었다.'

'자세는 기계란 지각력이 있다 할지라도 수치심에 죽을 수는 없음을 알고 있었다.'

이 부분은 입장 바꾸어 해석해보면, 인간은 충분히 수치스러워 죽을 수 있다는 '다소 심오한' 깨달음을 준다.
이렇게 우주에서 일어난 일들이지만, 우리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로 바꾸어 대입해도 되겠다 싶은 부분이 여러군데 더 있었는데,각 종족마다 고통에 반응하는 방법이 다양한 것 또한 그중 하나다.
'컬처'나 '체인저'의 경우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반응을 억제해서 단순한 고통도 두려워한다.
'이디란'의 경우는 고통을 가감없이 완벽하게 느끼며, 자랑스러운 경멸감을 가지고 있다.

가장 감동적이었지만, 마음이 아팠던 부분은...
'호르자'와 '얄슨'이 높은 산의 눈속에 서서 한여름의 태양을 바라보는 부분이었다.

여자는 남자의 표정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데, 남자는 자기 자신의 표정에조차 책임 못진다고 얘기를 한다.
여자는 현실에 안주하는 데서 행복하다고 얘기하는데, 남자는 꿈을 꾸는 표정일 때 행복해 한다.
눈을 생명체라고 묘사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런 눈을 처음 본 호르자가 손의 온기에 눈의 생명을 잃고 마는 부분에서,
얄슨은 알고 있었지만 말할 기횔 놓쳐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이 참 아슴아슴했다.

'솔직한 대답이었지만, 최선의 대답인지는 자신이 없었다.'
하는 부분은 살면서 나도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다.

'컬처는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누군가가 멈추게 해야 한다고 호르자는 생각했다.'
하는 부분은 내가 '컬처'를 향해 불안해 하던 바로 그 부분이었다.

결국 호르자는 죽게 되고,
이것은 작가가 한 개인이 역사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는 걸 끝부분을 보고 알게 되었다.
이것과 관련하여 내 생각은 좀 틀린데,
"안되더라도...되어가게 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참 힘들게 읽었는데...그 이유로 '번역'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번역이라는 것은, 번역자가 그 언어를 해석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해석하고 체화하여 번역본을 읽게 될 사람들에게 이해하도록 하는 것까지가 번역자의 몫이다.
작품 속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한자어를 남발하여 한자어를 이해하느라 또 한번 수고를 하여야 한다.
부사어를 나열하면서도 순서가 엉망이다.
이상하여 살펴보니,역자는 중국어와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다시말해, 문학작품을 학문하듯 번역하였다.
역자에게 문학적 감수성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최소한 작가가 얘기하는 것을 그대로는 전달해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암튼,역자는 계속 문학작품들을 번역해도 좋을지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기분을 이어 가기 위하여, 장바구니의 책들을 깔끔하게 주문한다.
책들에 치여 앉거나 누울 자리가 없는 건 그 다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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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5-13 17:25   좋아요 0 | URL
참 쿨하고 유쾌하신 거 같아요. 멋지기 떄문에 왔지에 나오는 이옥같고 저는 동동거리는 김려의 친구? ㅎㅎㅎ
동네 서점에 와서 저도 나름의 자유를 즐기고 있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5-20 11:10   좋아요 0 | URL
이옥이나 김려를 닮고 싶지만...
실은 그렇게 쿨하고 유쾌하진 못해요.
적당히 찌질해요.
하지만, 이젠 그런 저도 저니까 사랑할 수 있어요~^^

루쉰P 2011-05-13 17:25   좋아요 0 | URL
왠지 양철댁님은 서양 SF물을 상당히 좋아하시고 일가견이 있으신 것 같아요. 전 조지 오웰 류의 약간 SF는 좋아하지만 아예 그 쪽에서 쓰여지는 소설을 거의 안 읽는 편이거든요. ^^

책도 품절나면 사고 싶어도 못 사기에 나올 때 보고 싶은 책이라면 사 놓는 것이 좋은 습관이에요. 칭찬드립니다. ^^

양철나무꾼 2011-05-20 11:12   좋아요 0 | URL
네, 장르소설로 통칭되는 그 쪽을 왕 사랑해요.

맞아요, 품절 되 버리면 사고 싶어도 못 사니까요.
구하게 되더라도 엄청 몸값이 부풀어 버려서요.

칭찬에 어깨 으쓱거리고 있어요~^^

차좋아 2011-05-13 18:00   좋아요 0 | URL
저 하동 가요. 7시 버스 타고 구례 지나서 하동이요^^ 하동, 5월의 차 밭을 담고 올게요.ㅎ
겁나게와 잉사이 만큼 기대되요^^

양철나무꾼 2011-05-20 11:13   좋아요 0 | URL
저는 님이 담아오셨을 사진이 겁나게와 잉 사이 만큼 기대돼요~^^

잘잘라 2011-05-13 18:38   좋아요 0 | URL
겁나게 뽐뿌질해불구마요잉!

플레바스를 생각하라, 그나마 번역이 맘에 안든다니께 을매나 다행인지잉??(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을매나 많은디, 개뿔 자질두 읎구 노력마저 안하는 것들이 자리 차지 하구 앉아 껄덕대는 모양을 볼라치믄, 워매.. 겁나게 뚜껑열려불제잉.)

양철나무꾼 2011-05-20 11:17   좋아요 0 | URL
갑자기 메리포핀스님은 몇 개 사투리를 구사하실까 궁금해졌어요.
전 말이죠, 사투리에 좀 약해요.
요즘 어머니 병간호를 해 드리는 데요.
어머니와 저, 단 둘이만 있을때는 덜 한데...
어머니와 동향이 끼게 되면 못 알아 듣겠어요~ㅠ.ㅠ

cyrus 2011-05-13 20:36   좋아요 0 | URL
최근에 이언 뱅크스의 신작이 나왔군요. 요새 알라딘에 자주 들리지 않아서 그런지 신간에 대한 관심과
반응이 늦어진거 같아요 ^^;; 시험 끝난지 이제 2주 지났는데 2주 뒤에는 학교 축제가 다가오네요.
그래서 그런지 이번달은 저도 기분이 업된거 같고 좋아요 ㅎㅎ

양철나무꾼 2011-05-20 11:20   좋아요 0 | URL
ㅎ,ㅎ,...방가,방가~!
이언 뱅크스를 아는 사람은 별로 못봤어요.
좀 고리타분하고 지루하다는 평을 듣고 있잖아요.
전 다리랑, 대수학자는 그저그랬고...
플레바스는 참 좋았어요.

축제라...좋을때다, 그쵸?
맘껏 즐기세요~^^
그런 얼마 후엔 기말고사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덧글 마지막 줄이 좀 사악하다~^^

마녀고양이 2011-05-14 01:55   좋아요 0 | URL
음하하, 난 필립.K.딕 보자마자 장바구니로 넣었는데, 세권 몽~~~땅!
담주 내에 사고 말테야 하면서.. ^^

글구 이 책은 계속 만지막대는 중인데, 강력 추천? 어때염?
어째 좀 안 땡기네........?

시를 보니, 여행 가고 시퍼 죽어버리겠어요... ㅠ. 구례라. 노란 꽃이 연상되는군~

양철나무꾼 2011-05-20 11:23   좋아요 0 | URL
이언 뱅크스는 내가 별로로 생각하는 그 번역자가 죄다 번역해서 말이지~
아직 사지 말고 있어봐여, 내가 일독 후 말씀 드리겠습니다~

따라쟁이 2011-05-14 10:21   좋아요 0 | URL
갑자기 외할머니가 생각났어요
"겁나게 폭폭하다" 라고 하시면서 가슴을 통통 치시던 모습..

그나저나 양철나무꾼님. 겁나게 보고싶소잉~

봄에 보나 했었는데, 봄은 지나고 여름이 들이닥치고 있어요

양철나무꾼 2011-05-20 11:25   좋아요 0 | URL
저도 겁나게 폭폭하다...그 말 알아요.
그 말 뜻도 알 수 잇을 것 같구요.

저도 따라쟁이님이 겁나게 보고싶소잉~^^

2011-05-14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0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버벌 2011-05-15 09:55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저는 전라도 사람. 겁나게 좋아부네잉~

양철나무꾼 2011-05-20 11:29   좋아요 0 | URL
님이 전라도 사람이라서 그런가...
저희 시댁이 전라도여서 그런가...님의 사투리 구사가 참 생동감 있게 들려요~^^

pjy 2011-05-17 12:18   좋아요 0 | URL
김대중할아버지가 대통령이 되니깐 갑자기 드라마가 너무 잘 들려서 웃겼던 적이 있습니다~ 익숙해서 겁나게 재밌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5-20 11:31   좋아요 0 | URL
저는 서울 토박이이고, 시댁은 전라도예요.
결혼하고 한동안은(아니, 어떤 면에서는 지금도)대화에 통역자가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