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상대하는 이들 중엔 정신이 잠깐씩 출타하여 호칭에 혼란을 느낄 연세의 분들이 있기는 하다.

얼마전의 일이었다.

우리 대장을 향하여,

"아저씨 밥 잘먹는 약 좀 없어?"

하는 소리와,

"아저씨라고 그러면 대답 안해줘."

하는 소리,

"내가 우리집 아저씨 물어봤지, 은제 의사 슨생한테 아저씨라고 그랬어?"

하는 소리가 오락가락하여 나가보니,

"그리고 으사 슨생도...나 만치로 나이들어봐. 그나마 아줌마라고 성별 안바꿔 부른걸 감사하게 될걸~?"

하시면서,

내심,

'호칭의 혼란쯤이야 나이듦의 현상이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지,뭐 그리 유난이냐?'

말이 더하고 싶으신 표정으로 날 쳐다보신다.

나까지 구경을 나가자이번엔 현장에 계셨으나 귀가 먹통이어서 상황을 관망만 하던 올해 아흔의 쉰떡 할머니가  끼어든다.

"아줌니 올해 몇이여?"

"먹을멘치로 먹었어요."

쉰떡 할머니가 엉덩이를 떨고 일어나며 재촉을 하자, 마지못해,

"......여든이여."

라고 하며 창피한듯 '나이만 먹었어요'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씀하시는데,

귀가 먹통인 쉰떡 할머니는 진짜 알아들으신 건지,

입모양을 보고 미루어 짐작을 하신건지,

용케 알아들으시고는...

"얼마 안 먹었구만, 아직 젊구만, 뭐~."

마냥 부러워 하시는 눈치다.

그동안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고 생각하던 예순의 대장와 마흔 몇 살의 나는 명함도 못내밀어보고 깨갱거리 수밖에 없었다.

 

모든게 그런것 같다.

기준을 정해놓고 보면, 기준의 이쪽이냐 저쪽이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입장은 바뀔 수 있는거다.

 

'산사나무 아래'라는 로맨스소설을 읽어주셨다.

내 또래 다른 애들이 로맨스소설을 읽을 때 난 무협지를 읽었었다고는 벌써 여러 차례 얘기했었고,

그래서 그런지 난 로맨스 소설은 금세 심드렁해지는 경향이 있다.

갈등 구조가 단조로운 것이,

쉽게 말하면 밀고 당기는 '밀.당.'이 맘에 들지 않는다.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아닌 거지,

좋아도 좋아한다는 얘기도 제대로 못해서 이런 저런 오해가 생기고 하는 것,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우다가 좋아하는 사람을 놓치게 되는 것,

그런 것들이 나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

답답하다.

섣불리, 경솔하게 마음을 함부로 드러낼 일도 아니지만,

한번 사는 인생이고,

그 인생의 주인공인 나를 사랑한다면,

마음을 표현하는데,

감정을 전달하는데,

인색해서도 안되겠다.

 

나는 상대방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게 아니므로,

표현하지 않으면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상대의 마음을 간파하는 묘한 기술이란 것이,

관심을 갖고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뿐인데,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게 아니고,

상대적으로 미루어 짐작하는 것일 뿐인데,

촉이 좋아 짐작이 맞을 수도 있지만, 착각은 자유일 확률도 반이나 된다.

 

말 그대로 착각은 자유이고, 콩깍지가 씌어도 내눈에 씌는건데 웬 참견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큐피트의 화살이 제대로 들어맞았을때 애기이고,

어긋났을때는 전혀 다른 얘기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 일례가 요번에 생긴 스토커의 법적 기준이 될 수 있겠다.

 

그런데,

암튼,

이 모두가 풋풋한 젊은 이들의 얘기니까 이토록 애절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 같다, ㅋ~.

지금 마흔을 훨씬 넘어선 내가,

처음 읽는 로맨스소설이고,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어서  징치우처럼 철떡서니 없이 굴면...

그땐 고도의 주책이 되는 거다.

 

분위기를 바꾸어,

난 이 '산사나무 아래'를 영화로 봤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언젠가 페이퍼로도 남겼다고 생각했었는데,

(부산에 가고싶다, 또는 버섯만두가 먹고 싶다.<--링크)

되짚어 보니, 같은 '장이모우'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을 보고 '산사나무 아래'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책을 보고나니, 영화도 필히 찾아보고 싶어졌다.

책 속의 '징치우'랑 나랑 정서적으로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 속에서 징치우가 본인은 별로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볼때는 아주 괜찮은 외모로 묘사되고 있는데,

영화를 보고 맞춤한 캐스팅인지 확인해 보고 싶어져서이다.

하긴, 징치우랑 나랑 정서적으로 닮았다고 느낀 것도 이런 '잡념'에 빠져 있을 때 뿐이고,

난 배구도, 탁구도 실력이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로 신통치 않고,

밥을 빌어서 죽을 쒀먹진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닥 살림도 야무지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피로와 고통을 말하지 않는다고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징치우는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와 손을 파고드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모든 신경을 다 없애버리고 싶었다. 하는 수 없이 오랫동안 연습한 특기를 발휘하여 온몸을 짓누르는 아픔을 잊기로 했다. 바로 잡념에 빠지는 것이다. 생각에 깊이 빠지면 종종 영혼이 몸을 빠져 나가 다른 곳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럴 때 자신은 상상 속 인물이 되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징치우는 산사나무를 생각했다.(19쪽)

또 하나 놀라웠던 것은,

지금도 중국은 침술과 민간의학이 발달하여 아무곳에서나 구급약과 침, 뜸을 구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때에도 제대로된 의학은 불모지에 가까웠고 민간요법과 대체의학이 발달하여,

그걸 널리 전파하였나 보다.

사람을 묘사하는데도 그래서 그런가...은연 중에 그런 식의 관찰과 묘사가 눈에 띈다.

 

웃을때 입은 웃지만 눈은 전혀 웃지 않아 차가운 눈빛을 띠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 사람은 웃을 때 코 양옆으로 주름이 잡히며 눈도 가늘어졌다. 꾸며낸 웃음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온 웃음이며 조소가 아니라 진심을 담은 웃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만 사탕 먹으라는 법 있나요." 그가 다시 사탕을 내밀었다.(30쪽)

이 책이 나한테 놀라웠던 것은,

지금 마흔을 넘은 나보다도 훨씬 더 속 깊고 어른스럽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의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날텐데, 대화를 가만 들어보고 있을라치면 파파할머니, 할아버지의 대화 같다.

 "겸손이 사람을 키운다고, 이렇게 겸손한 걸 보니 금세 성장하겠는데요." 그가 멈춰 서더니 천천히 몸을 돌렸다. "하지만 착한 아이는 거짓말하지 않아요. 아코디언 연주할 줄 알죠? 가져왔어요?"(31쪽)

또 한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그때는 사람의 교통편이나 운송 수단도 발달하지 않았을때여서,

특히 여행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하룻밤 제대로 묵을 수 있는 방조차 구하기 힘들었는데...

자신의 짐조차 자기가 짊어질 수 잇는 만큼이 고작이었을텐데,

아코디언을 가지고 왔냐고 묻는 게...참 아이러니컬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낭만이라든가, 음악적 감수성 같은게 로맨스소설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이기는 하겠지만...

들고다니는 손풍금이라고 불리우는 아코디언의 소리는 낭만적이라기 보다는 처량 내지는 청승 맞다고 하는게 낫지 않겠나, ㅋ~.

 

그래도 로맨스소설답게 아슴아슴한 문장은 나와주신다.

참 바보같지만, 저런게 사랑일 것이다.

한참 나이 먹어선 부러운 마음에, '바보같다'는 소리나 하고...

어쩜, 되돌릴 아스라한 기억 따위조차 없는 내가 진정 '바보'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사람이 떠난 뒤에야 사랑을 깨닫게 될 때가 있다. 갑자기 그 사람을 볼 수 없게 돼서야 바로소 자신이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일찍이 이런 감정을 느껴보지 못한 징치우는 두려웠다. 자기도 모르게 자기 심장을 그의 손에 건네줬고, 지금은 그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가 징치우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다면, 손 안의 심장을 한 번 꽉 쥐기만 하면 되고, 징치우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싶다면 그저 미소를 한 번 짓기만 하면 된다. 징치우는 자신이 왜 그렇게 경솔했는지 알 수 없었다. 같은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빤히 알면서도 그를 사랑하게 됐다니.(47쪽)

 

 

산사나무 아래
 아이미 지음, 이원주 옮김 /

 포레 / 2013년 4월

 

 

 

 

 

 

 

 

그리고 연결해서 읽은 책이 '다이 호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이다.

'산사나무 아래'를 읽으며 이 책이 생각난 것은 아마도, 두 소설에서 모두 중국의 '문화대혁명'이라는 격변기가 언급되고 있어서 인것 같다.

그리고 '산사나무'의 그것보다는 다소 나이가 든 이'쑨위에'와 '허징후'의 사랑이 등장한다.

이들의 사랑은 나이가 다소 있다고 하여, 사상과 이념이 다르다고 하여...사랑마저 애틋하지 말란 법은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사랑은 사상이나 이념이기 이전에 삶 그 자체가 아닐까?

역자가 '신영복'이라는 사실은 예전엔  깨닫지 못했던 흥미유발의 원인이다.

 

 

 

 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 호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호 젠후의 태도는 대단히 훌륭하지 않으냐. 하지만 사물을 모두 정반(正反) 양면에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은 그에 대해서 지나쳤다, 이것이 한 면이다. 반면, 그에게 잘못이 있었던 것도 확실하다. 사상의 과격성, 감정의 불건정성. 그가 거기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환영해야 할 일이지. 우리 당은 일관해서, 과거의 잘못을 장래의 교훈으로 삼고 병을 고쳐서 사람을 구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으니까......."(106쪽)

 

잘 보이지 않는데다가 어느 누구도, 그를 다른 색으로 물들일 수가 없다. '마음이 서로 통한다.'는 것은, 그의 경우 영원히 말뿐이고 개념뿐인 것이다.
생활이란 것은 참으로 사람을 교육시키는 힘이 있다.(165쪽)

 

인생이란 것은 과거 우리가 상상했던 것처럼 멋진 것은 아니다. 하물며 과거에 상상했던 것만큼 무서운 것도 아니다. 인생은 인생일 따름이다. 모순으로 가득 차고 끊임없이 흔들린다는 사실이 바로 인생의 매력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을 삼켜버리기도 하지만 인간의 영혼을 드높이 단련시키기도 한다. (367쪽)

 

페이퍼를 이쯤에서 마무리하려던 차에,

내가 좋다고 설레발을 치는 번역가 한분이 신변 잡기적인 책을 내셨다는 얘길 며칠 전에 들었었는데,

알라딘 신간 알리미가 '띵똥'거린다.

알라딘 신간 알리미, 땡큐다.

일빠로  구입해야쥐, ㅋ~.

 

 

 

 

 

 

 

 

 하찌의 육아일기
 이창식 지음 / 터치아트 /

 2013년 5월

 

 

 

 

 



 
 
비연 2013-05-13 17:51   댓글달기 | URL
<사람아 아 사람아>를 읽던 그 감동이 생각나네요..
 

밤새 비가 몹시도 내렸다.

바람은 또 얼마나 거세게 불던지,

꽃이 져야 열매가 맺을 수 있다는 말은 다 까먹어버리고,

비바람에 꽃이 떨어져 버리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했었다.

점심시간에 친구랑 베란다 캐노피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운치있다면서 카.톡.으로 노닥거렸다.

창문을 여니, 해가 환하길래...

서울은 해가 쨍쨍이라고 했더니,

그 동네의 해를 이곳으로 출장보냈기 때문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ㅋ~.

 

어찌 되었건,

지난 주말 난 꼼짝 안 하고 이런 책을 봤다.

 

두명의 만화가가 쓴 책, 두권...ㅋ~.

 

 

 야구생각
 박광수 글.그림 / 미호 /

 2013년 3월

 

 미생 6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4월

 

 

 


요즘 아무래도 일이 힘들어서 그런지,

아니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서 그런지,

내가 어떤 종류의 책을 읽든지 간에,

거기에서 '열정과 재미'라는 글자가 돌출되어 다가온다, ㅋ~.

 

이숭용  그날 땅이 너무 불규칙해서 다칠까봐 못했어.

           우리들은 몸이 재산이잖아.

나        야, 우리는 맨날 그런 곳에서 해.

이숭용  그러니까 나 사실 그날 형네 팀에서 뛰고 많은 걸 배웠어.

        정말? 프로인 니가 아마추어인 우리한테 뭘 배워?

이숭용  프로인 우리에게 없는 것. 열정과 재미.

        열정과 재미?

이숭용  나도 처음에는 야구가 좋아서 시작했거든.

           근데 시간이 지나고 그게 직업이 되니까 어느 순간 내가 야구를 즐기지 못하고 있더라고.

           근데 그날 형네 팀에서 뛰어보면서, 이렇게 위험한 곳에서 야구를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반성했어.
           그날 이후 내가 야구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게 되었어.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야구가 즐거워지더라고.(88쪽)

 

 

 평소 생활이 자유롭지 않을 만큼 연습을 하면 운동장에서는 그만큼이 더 자유로워진진다.박광수 (155쪽)

 

 

 

 

봄...하면 아무래도 프로야구가 먼저 떠오르는걸 보면,

그동안 남편과 아들의 주입식에 가까운 세뇌가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ㅋ~.

 

또 한권,

내 마음의 겨울에 불을 지른 또 한 권, 미생 6권 되시겠다.

 

기존의 판이 흔들리는 모습을 본 후,

나 역시 판 위에 있었음을 새삼 자각했다.

판을 흔들려는 자가 함께 흔들리는 것은 확신을 공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50쪽)

 

 

 

 

술은 열을 올리거든.

즐겁지 않은 기운으로 술을 마시면 뇌가 울어.

크게 울어.

그러다 후회가 쌓이게 되는 거야.

 

기쁘고 싶을 때,

가장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마셔.(158~159쪽)

 

 

 

 

일을 기획할때까진 불덩이를 껴안은 심정으로 확 태워버려야 해.(154쪽)

 

불이다!

 

바둑의 고수들은 대개 다혈질이다.

승부를 결정하는 그 순간만큼은 불이다.

불이어야 한다.

난 불을 꺼내지 못해 프로가 못 된 것이다!(258~259쪽)

 

 

 

 

 

 

 

양미리는 언제 어느 계절에 먹어야 하는건지,

그래야 통통한 알이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난 오늘 양미리에 소주 一盞을 하며,

내린 봄비를 기념하든지,

또는 출장 나온 해님을 환영하든지, 해야겠다.

쩝~(,.)

 

 



 
 
cyrus 2013-04-29 20:29   댓글달기 | URL
이상하게 5월 대구의 날씨는 예전 같지 않네요. 서울 경기도는 날씨가 많다던데 여기는 비 오다가 흐리네요. 흡사 선선한 가을 날씨 같아요. 옛날에 대구 날씨는 봄이 아니라 초여름 정도였는데..

하늘바람 2013-04-30 02:49   댓글달기 | URL
만화책을 보셔도 시집같은 느낌으로 ㅎㅎ

세실 2013-04-30 10:40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예요. 바쁘셨나보다~~
미생 볼수록 재밌더라구요.
봄이라 그런가 저두 많이 파곤하네요.
밤이면 꾸벅꾸벅 졸아요. 어제도 11시에 취침. 애들 시험공부하는 동안 옆에 있어주어야 하는데.....

팜므느와르 2013-05-01 18:45   댓글달기 | URL
양철님 잘 계시지요?
미생을 여기서 만나네요.
지인 왈, 아들이 말하길 어른들께 선물할 마땅한 거리가 없다면 미생 1,2권을 포장해서 말 없이 드릴 거래요.
그 다음 권은 알아서 사보게 될 거라네요. 사실 전 내용 모르거든요. 양철님 덕에, 지인 덕에 읽어볼게요.
오월도 잘 맞이하시어요.^^*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책을 읽어도 문장들이 내 눈을, 음악을 들어도 선율이 내 귀를...비껴갈 때가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꽃들이 만발한 봄날에 독서나 음악 감상 따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꽃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하더라만...

만발하다는 건 다른 의미로 흐드러졌다는 얘기이고,

흐드러졌다는건 이내 지고 열매 맺는다는 말일테니..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쿨하게 털어버리고 일어나야 할텐데 요번엔 자꾸 엉뚱한 상념에 젖는다.

 

요즘 민음사 刊 '안나 카레니나'를 읽는다고 이곳 서재에 광고를 했더니,

누군가 땡큐하게도 톨스토이는 '박형규' 번역본으로 읽어야 한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어디선가,

국내 번역가 1세대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러시아 문호 레프 톨스토이(1828∼1910) 권위자라는 기사를 봤었던 것도 같다.

올해 82세인 그는 내년 말까지 '톨스토이 전집'(뿌쉬낀하우스)을 펴낼 계획인데,

그 뿌쉬낀 하우스에서 현재 '안나 까레니나' 한권이 먼저 나왔다.

요번 '안나 까레니나'는 문학동네에서 나와 현재 반값에 후려치고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뿌쉬낀 하우스의 것을 한권 한권 콜렉션하고 싶은 마음에 구입해 주셨다, ㅋ~.

 

 

 

 

 

 

 

 

 안나 카레니나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뿌쉬낀하우스 / 2013년 4월

 

암튼,

읽던 책을 던져버리고 새 책을 집어들도록 내 마음을 움직인건 '권위자'라는 단어였는데,

시대에 뒤지지 않도록 유행어를 바로 바로 반영해야 하는 언어의 속성 상,

나이 80이 넘어 시대상을 반영하는게 가능할까 하는 우려를 했었고,

또 간담회에서 노환으로 청력이 떨어져 같은 질문을 두 번, 세 번 확인해 전달받았다는 얘기를 듣고는,

마음 한 구석에선 한분야에 60년 이상을 매진한 노학자에 대한 예우 차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유명한 이 첫문장을 보는 순간 나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었다.

청력은 떨어졌을지 모르지만, 청력외의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시대와 소통하고 있었고...

그리하여 당신 만의 더듬이로 언어에 대한 감을 유지하고 계셨던 거다.

'권위자'란 그 분야에 정통하고 탁월한 전문가를 일컫는단다.

언어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언어에 대한 감을 유지하는게 중요한데,

그 감이라는건 세월이 흐를수록 무디어져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허를 찌른 것이다.

  Happy families are all alike; every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박형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민음사)

  모든 행복한 가족들은 서로 닮아 보인다. 하지만 불행한 가족들은 각기 고유한 방법으로 불행하다.(김의기)

 

자신의 분야에서 정통하고 탁월한 전문가나 권위자까지는 아니어도,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신뢰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의 신뢰 구축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나의 '영거한 외모'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내 스스로는 이미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뻑.하고 있지만, (언젠가 썼던 '타인의 취향' 링크)

그런 나도 한 번씩 좌절을 겪긴 한다.

내가 이 부분에서 자.뻑.이 아니고 진짜 달인이어도 해결을 볼 수 없는 세 부류가 있는데,

환자가 미신을 신봉하는 사람이어서 의학의 효능을 신뢰하지 않거나,

치료방법을 신뢰하지 않거나,

치료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경우가 그런 예이다.

 

이들 부부를 알고 지낸건 7, 8년 정도 된다.

할머니는 키 크고 곱고 늘씬하였으며,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활달하였다.

음식 솜씨 좋아 음식을 해서 나눠 먹기를 좋아하여 주변에 할머니 친구들이 끊이질 않았다.

반면 할아버지는 곱상하게 생기신데다가 말을 많이 아끼셔서 선비 같은 성품이라고 짐작했었는데,

한번 화가 나면 할머니에게 욕을 하고 손찌검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도 구시대적 사고방식의 영향을 받고 살아온 세월 때문인지 잘 참고 살아오셨다.

 

나의 오너께서는 엄청 부자니까 비싼 약재 팍팍 넣어 약을 권하라고 종용하셨지만,

구시대적이고 전근대적인 사고 방식의 최첨단을 걸으시다가도,

둘이 합해 이천 원 남짓한 진료비를 계산할때만 되면,

신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더치페이를 구사하시는 이분들에게 이도 안들어갈 소리 같았다.

내가 결정적으로 이들 부부, 아니 할머니에게  충격을 받은건,

할머니가 편찮으시다고 동네에서 왕계란 두판을 들고 병문안을 왔는데,

계란말이 좋아하는 손주들 오면 해주려고 모셔 두느라고 하나도 드시지 못했다는 웃지 못할 얘기를 들었을때 였다.

 

그런 할머니가 얼마전에 오셔서는 많이 편찮으시다면서,

좋은 약재 넣어 약 한재 지어달라고 하셨는데,

당뇨가 심하여 인슐린 주사까지 맞으시는 기왕력에다가,

요즘은 그나마 그 인슐린 주사로도 혈당 수치를 조절하지 못하시는 듯 하여...

더구나 등쪽 날개쭉지 끝나는 부분이 아프다는 말씀에,

간에 부담을 주는 한약이라니 싶어,

큰병원 가서 종합검진을 받아보시라고 돌려보낸게 한달쯤 전이었다.

다른 한의원에 가서 보름치 한약을 지어 드시고는 차도가 없으셨는지 여기저기 병원을 돌고 돌았으며...

검사 결과, 췌장암이란다.

 

물론 내 말이 설득력 있게 작용하여 한 달 전에 큰 병원에 가셨다고 한들,

검사결과나 진단명을 번복하지는 못했을테지만,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은 좀 길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내가 일하는 분야에 있어서 나의 권위나 신뢰라는 것은,

그들을 설득시키지 못할 정도,

나중에 후회하며 연락해 올 정도, 밖에 안되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되는것이다.

 

박형규 님의 안나 까레니나를 읽으면서 단어와 문장을 벼리는 품이 남다르다는 걸,

언어를 가다듬는 센스랄까 하는게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근데 이게 타고나기만 한 게 아니라, 오랜 삶의 체득을 통하여 둥글린 느낌이다.

그렇다고 세월이나 나이만큼 올드하거나 고루하지도 않다.

소위,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 새것을 깨닫는다는 '온고지신'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박형규 님의 권위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권위나 신뢰라는 것이, 외모나 나이 같은 것으로가 아니라  그 분야에 정통하고 탁월한 전문성으로 판가름나는 것이니 좀 쉽게 접근할 수 있겠다 하다가도,

내가 가꾸고 노력해야 할 것이 외모나 나이 따위 또는 학문에 힘쓰는 등 나의 노력으로 성취가능한 것이 아니라,

이 분야에 정통하고 탁월한 전문성이라는, 어찌보면 애매모호하고 주관적인 다른 사람들의 판단력이 개입되는 문제라고 생각 하니...앞으로 무엇을 더 갈고 닦아야 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내가 며칠전에 읽은 <뇌미인>이라는 이 책을 보면,

사람들은 지적 활동을 해야만 뇌에 알통이 생긴다고 생각했던 나의 편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것이기에 더하다.

 

 

 

 

 

뇌미인
나덕렬 지음 / 위즈덤스타일 /

 2012년 10월

 

사람들은 지적 활동을 해야만 뇌에 알통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뇌 알통을 만드는 가장 효율적이고 쉬운 방법은 신체 운동이다.ㆍㆍㆍㆍㆍㆍ우리 치매 연구팀에서는 뇌 유연성에 대한 연구를 했다. 시작하기 전에는, 나이 든 사람보다는 젊은 사람들에게 뇌 유연성이 많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다. 같은 운동을 하더라도 젊은 사람에게서 근육 알통이 더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보면 노인들에게서 오히려 뇌 유연성이 좀 더 많이 나타났다. 물론 똑같은 과제를 하면서 젊은 사람과 노인을 비교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ㆍㆍㆍㆍㆍㆍ노인들은 은퇴 이후에 아무래도 뇌를 덜 쓰게 된다. 고령이 될수록 더욱 그렇다. 따라서 쓰지 않던 뇌에 자극을 주면 더 큰 변화가 생겨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인도 뇌를 사용하는 횟수를 늘리거나 산책을 하는 것만으로도 뇌 알통이 생긴다는 것이다.(28~29쪽) 

 

박형규 님을 보면서 든 생각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도 행운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행운이지만,

적어도 그 일을 하면서 밥을 안 굶을 수 있고 가족들 밥을 안 굶길 수 있어야겠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자리가 잡히고 가족들 밥은 안 굶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준비는 갖추어 졌는데,

건강이 여의치 않아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배우고 또 배운대로 실천할 수 없다면 다 부질없다.

 

그러니 한번 사는 인생,

죽을 때 돈을 싸들고 갈 수 있는것도 아니니,

아등바등 하고 참지 말고,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때 하고 볼 일이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때'라는 저 자리에 대입시켰을때 가장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건,

'보고싶은 사람' 이다.

보고싶은 사람들이 많아 미치겠는,

미치고 팔짝 뛰겠는,

근데 아직 '꼴까닥~'내지는 '깰꾸닥~'까지는 아닌,

그런 비 내리는 봄밤이다.

이 비 그치면 목련이, 그리고 벚꽃이 이울게다.

 

 

 

 



 
 
함께살기 2013-04-21 09:24   댓글달기 | URL
번역을 공부하는 어떤 사람은,
또 저처럼 한국말을 공부하는 어떤 사람은,
헌책방에서 박형규 님 '여러 가지 번역책'을
일부러 하나하나 사서
견주어 읽기도 해요.

박형규 님이 번역한 톨스토이는
'시대에 따라' 말투가 조금씩 다르답니다.
같은 책이라 하더라도
책이 나온 때에 따라서
말투가 조금씩 바뀌곤 해요.
스스로 꾸준하게 가다듬고 손질하시거든요.

늘 스스로 번역을 새로 하고
당신 스스로 한국말을 날마다 새롭게 배우시거든요.

북극곰 2013-04-22 09:18   댓글달기 | URL
안나 까레리나의 저 첫 문장은 아주 어릴 적에 보고도 참 기막힌 말이다. 싶었는데. ^
삼중당 문고판이었던 것 같은데, 같은 번역가였을까요? 꼭 저 문장이었거든요.
나름나름, 고만고만.... ^^

나무꾼님 잘 지내시죠?

간만에 어젠 남한산성에 올랐다가 내려와서 너무 과식하는 바람에
저녁도 건너띄고 아침도 조금 먹었는데도 아직 위가 꼼짝도 안하고 있는 것만 같아요.
소화도 못 시키면서 식탐이 이렇게 많아서야. ㅠㅠ
 

요즘 고전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있다.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券氣)라는게 있다면 이런게 아닐까 싶다.

옛것이라고 하여 고루하거나 진부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깊이있는 사고(思考)를 요하면서도 품격을 두루 갖춘 것이 재미있기까지 하다.

난 옛날에 도스토옙스키 옹의 책을 좀 읽다가 넘 어려워서,

고전은 그렇게 다 어렵고 재미없는건 줄 알았었다는~--;

물론 세월이 흐르고,

나도 생각이 여물고,

책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삶을 해석하는 관점 같은 것들이 바뀌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말이다.

 

실은, '안나 까레니나'를 그냥 읽게 되지는 않았었다.

어쩌다가 읽게된 '김의기'의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읽기'가 계기가 되어 고전문학에 feel이 제대로 꽂혀 주셨다.
'김의기'와 '안나 카레리나'를 읽으면서 느끼는건,

고전문학 중에는 중고등학생들이 필독서로 읽기엔 쉽지 않은 것도 있다는 거다.

나처럼 반 평생을 산 사람의 눈으로 전후좌우 사정을 고려하여도 어림짐작하게 되는 것들이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

개중에는 번역까지 난해하여 우리말로 적혀있어도 무슨 뜻인지 못 알아먹겠는 것도 있더라~--;

 

민음사 刊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로마서 12:19)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1부/13쪽/1줄)

 

  

 

반면, '김의기'의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 읽기'에 나온 이 부분의 내용은 이렇다.

 

 

 

복수는 나의 것이다. 내가 갚을 것이다.

 

모든 행복한 가족들은 서로 닮아 보인다. 하지만 불행한 가족들은 각기 고유한 방법으로 불행하다.

 

누구의 번역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두 번역을 놓고 봤을 때, 같은 내용이 아닌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난 고민을 하다가 '로마서 12장 19절'을 들여다보기로 하였다.

여러분이 직접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원수 갚는 것이 나에게 있으니 내가 갚을 것이라.'"

라고 되어있다.

번역의 잘, 잘못을 떠나서 적어도 원수나 복수를 갚는 주체가 '주님'이라는 생각은 할 수가 없는데,

작가의 의도가 그런 것인지 내가 책을 잘못 읽은 것인지 모르겠다.

 

암튼 안나카레니나를 읽으면서 '톨스토이'가 시대를 넘나드는 거장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의 부단한 노력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시대의 사조나 조류, 유행에 대해서 폭넓고 깊이있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을뿐더러, 그걸 그의 작품 곳곳에 녹여냈는데...그것이 요즘의 삶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올드하거나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였는지, 달아놓은 각주를 보면서 였는지...기억이 가물가물한데...러시아어가 재밌게 느껴져서 러시아어를 배우고 싶어졌다.

 

키티는 안나의 남편인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산문적인 용모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러시아어에서 '시적'이라는 말은 '예술적인'이나 '아름다운'의 뜻을, '산문적'이라는 말은 '일상적이고 범속한'이나 '무미건조한'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1권/162쪽)

 

레빈이 이런 상상을 하는 부분도 재밌다.

그럼 손님이 물을 거야. 어떻게 이런 일에 그토록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됐습니까? 남편이 흥미를 느끼는 일이라면 저도 흥미를 느끼게 돼요.(212쪽)

단순히 레빈의 그것이라고 생각했을때는, 좀 권위주의적이고 남성 위주의 사고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누군가 상대방이 흥미를 느끼는 일에 같이 흥미를 느끼게 되는 그런 사랑이라면, 참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이 틀림없으니까 말이다.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 읽기
 김의기 지음 / 다른세상 / 2013년 1월

 

 

 안나 카레니나 세트 - 전3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서 겹쳐 읽은 책은, 이택광의 '마녀프레임'이다.

이 책은 이웃 a님의 서재에서 보고 혹하여 읽게 되었는데 '동종요법'이나 '고대의학'관련된 장르소설을 좀 읽어줬던 터라 그랬는지 어쨌는지, 책의 내용이 너무 가볍고 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 암튼~--;

  마녀는 고대로부터 전승된 존재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물론 히브리 신화에도 마녀는 분명히 존재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마법은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했다. 즉 날씨나 출산 또는 의술처럼 생존과 밀접한 일들을 마녀가 관장했다.히브리어로 마녀는 므카세파인데 이 말은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특별히 '여성'이라는 의미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마녀하면 떠오르는 섹스와 관련한 뉘앙스도 없다. 대체로 마법은 병을 고치거나 기후를 변하게 하는 요술이었다. 그리고 이런 능력은 대개 여신 숭배에서 기원했다.(28쪽)

 

마녀사냥이란 "마녀를 살려두지 말라"라는 문구가 번역 문제에서 의미적 혼란 때문에 나타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몰랐기에 발생한 것이었다.ㆍㆍㆍㆍㆍㆍ마법사(마녀)를 살려두지 말라는 말은 이렇게 공동체의 이해관계에 반해서 마법을 사용한 경우에 처벌하라는 말이었다. 아이를 납치하거나 질병을 퍼뜨리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둘다 오늘날로 보면, 의학과 과학에 대한 지식을 가진 존재들이 고대의 마법사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29쪽) 

 

이 책을 읽고 내가 생각해 본 것은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이라는 '틀'은 '예외'를 만들고 약자, 소수자, 희생양이라는 말로도 사용된다.

과거에는 그것이 마녀였고, 여성이었고, 유태인이었고, 빨갱이였지만, 오늘날도 여전히 무슬림이고 동성애자고 이주노동자의모습으로 현신하고 있는 것이란다.

 

프레임은 어찌보면 군중심리 같은 것이다.

교집합, 여집합, 합집합의 관계에 따라...마녀로 지목 당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마녀를 지목해야 하고,

이런 상호감시체계가 가장 잘 발달한 곳이 '인터넷'이다.

 

 

 

 

 마녀 프레임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나영석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그리고, 그런 군중심리를 가장 적절히 사용하는 사람들이 연예인이 아닐까 싶지만, 잘못 틀어지면 '타.진.요'같은 인터넷 카페가 생겨나기도 하고 눈덩이나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곳이 연예계가 아닌가 싶다.

그런 생각과 호기심의 연장선 상에서 읽게 된 책, 1박2일 '나영석'PD의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정함'이다. 집중과 편애는 한 끗 차이다. 공정함을 잃는 순간 오해가 만들어지고 팀워크는 깨진다. 누군가를 편애해서 저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다. 기회를 받을 기량이 있기 때문에 주는 것이다. 너도 저 기회가 탐이 난다면 최소한 패스를 받을 기량 정도는 스스로 터득해서 갖춰야 한다. 그것만 갖춰진다면 언제라도 너에게 공을 주겠다. 이런 식이다. 어쩌면 야박해 보일 수 있는 이런 방식이 효과가 있었던 것은 호동이 형이 철저하게 유지했던 그 기회에 대한 '공정함'때문이다. 멤버들은 누군가를 질투하기보단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이 빠른 길임을 알게 된다. 한 예로, <1박 2일>에서 가장 늦게 꽃을 피운 사람은 이수근이다.(143~144쪽)

 

심각하지 않게 설렁설렁 넘겨볼 수 있는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그런 책에서 다른 어떤 책에서 깨달을 수 없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예전에 한번 김C와 술을 먹다가 인간은 대체 몇 살쯤에 철이 드는가, 라는 주제로 진지한 토론을 한 적이 잇다. 김C의 대답은 이랬다. 사람은 말이야. 20대에는 서른이 되면 철들려나 생각하고 30대가 되면 마흔이되면 철들려나 생각하고....근데 너는 철들었니? 아니, 하고 나는 대답한다. ...결론은 이거야.87살쯤 먹고 죽기 직전에 드디어 깨닫는 거지. 아들딸 주변에 모아놓고 숨은 넘어가는데 창피해서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하는거지. '아아....철든다는 건 없구나.' 이렇게 말이야. 최종결 결론을 내리고 저세상으로.

  흠. 묘하게 설득력 있는 애기. 과연 그럴듯하다. 철이 든다는 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철이 든 척. 위악적으로 행동하는 어른이 있을 뿐이라는 얘기. 문제는 나이가 들어서도 사실을 직시하고 저는 아직 철이 들려면 멀었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뿐. 김C는 가능하면 당당하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177~178쪽)

암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날씨가 변덕스럽다거나,

(4월에 눈이 내린게 51년만에 있는 일이란다, ㅋ~.) 

날씨가 변덕스럽다고 하여 나 또한 변덕스럽게 책 한권 읽지않고...

어쨌거나 이 봄을 건너가고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게 아니라,

뭔가를 읽기는 꾸준히 읽었는데 단지 기록으로 남길 시간이 없었을 뿐이고,

내가 열심히 읽는데도 불구하고 신간은 새록새록 나와주고 계신다는 거다.

'책.탑.타.파.'를 고려하여 당분간은 책을 구입하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을 했지만...불끈~!!!

이 책 꼭 한권만 구입한 뒤로 결심은 잠시 유보다~--;

 

 

 

 

 

 

 

 

 

 로스트 라이트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알케 2013-04-12 13:18   댓글달기 | URL
제 경우엔 러시아작가들 중엔 도스토예프스키 한 사람만 편애하고 톨스토이 이 할배는 어려서부터 정이 안가서 유명하다는 소리만 풍문으로 들었어요. 전 당분간 해리보슈 형님하곤 결별. 해리 홀레 형님하고 새 교분을 맺는 중이어서 ㅎㅎ 이 캐릭터 너무 어썸합니다.

2013-04-17 17:54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19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도 우리 가족은 여전히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들으며 아침을 먹는다.

아직 덜깬 눈을 비비고는,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이런저런 이슈를 반찬 삼아 밥을 우겨넣다가는 어느 대목에서 목에 걸린 듯 '케겍'거린다. 눈물을 눌러 삼키느라 맨밥을 서둘러 눌러 삼킨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며칠전에는 쌍용차와 관련 인도 마힌드라 경영진이 제 2의 론스타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불거져 애를 태우더니,

오늘 새벽엔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되어 있던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 천막이 기습 철거되고, 거기에 화단을 만들었단다.

분향소 천막이 철거된 명분이 시민들이 다니는 인도를 점유해서라고 하는데, 그럼 그 자리에 설치된 화단은 시민들이 짓밟고 다녀도 된다는 말인가, 끙~=3=3=3

내가 이 책을 시작하게 된 것은 그러니까 '시선집중'의 <토요일에 만난 사람'> 코너가 있을 당시,

누군가가 나와 손석희와 얘기를 풀어나가는데, 그게 너무 군더더기 없는것이 진솔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였다.

유명 만화가라는데,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끼'라는 작품으로 이미 이름을 날렸다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나 보다.

암튼, 그가 하는 얘기 하나하나가 다 솔깃했는데...

그는 몸으로 부딪쳐 경험한 것을 직접 만화로 그려내 나에게 더 큰 감동을 주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노숙을 밥먹듯 한것이라든지, 허영만 문하생으로 들어가기 까지의 고생 과정...그리고 들어가서, 살아남기 까지의 과정을 하나 하나 차근 차근 밟아 나간다.

예전에 피카소가 왜 유명한 화가인지 모르겠었을 때가 있었다. 인상파 화가라 불리우는 그의 어떤 그림들을 놓고 봤을때 아이디어는 몰라도 비슷하게 흉내낼 수는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의 사실주의 작품을 봤을때 '흡~!'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기본이 제대로 됐기 때문에 다른 어떤 그림이든 넘나들면서 자유롭게 그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미생의 '윤태호'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다.

 

근데, 이 만화를 단숨에 2권까지 읽은 지금...

난 다른 이유에서 '킹왕짱' 이 책을  재밌고 그를 멋지다고 설레발을 칠 수 있겠다.

 

처음 장그래가 입단에 실패하고 세상으로 내몰리게 되는 과정은 차라리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한편의 멜로 드라마다.

 

기재가 부족하거나

운이 없어 매번 반집 차 패배를 기록했다는 것보다는,

열심히 하지 않은 쪽을 택하기로 하는데...이때부터 좀 멋지다, ㅋ~.

 

그러면서 바둑을 포기하면서 들고나온 유일한 재산은 집중력이란 말을 한다.

생각이 번져가는 것은 잡념에 빠졌다는 뜻이란다.

 

이 만화책에서 또 나오는 개념.

솔직한게 진실된 거라 생각하는 착각

변명이나 핑계를 위해 사람은 얼마든지 솔직할 수 있다.

진실과는 별개로.

 

암튼, 어찌어찌하여...인턴 사원 딱지를 떼고,

신입사원으로 살아 남은 이들을 데리고 간 곳이 이곳이다.

 

 

 

근로자로 산다는 것.

버틴다는 것.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아가는 것...

이라는 말과 함께.

 

 

 

 

 

 

 

 



 
 
함께살기 2013-04-05 22:27   댓글달기 | URL
다들 '살아남기'보다 '즐겁게 잘 살아갈' 수 있기를 빌어요...

알케 2013-04-05 23:35   댓글달기 | URL
오늘 자 연재 미생...울컥. 저도 겪어 본 상황이라..윤태호는 정말.

saint236 2013-04-06 12:05   댓글달기 | URL
흠...꼭 구매해야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