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일주일 전 저녁 시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부름에 이 곳 페이퍼에 댓글을 달다말고 달려갔었다.
손에 자동차 열쇠를 쥐고 택시를 집어탈 정도로 정신이 없었는데, 길은 엄청 막혔었다.
초조한 마음에 택시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운전 기사 분이 자꾸 말을 시키셨다.
누가 아프냐?
어머니요.
위독하시냐?
네...
제대로 된 대답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넋을 놓고 앉아 있자,
운전기사 아저씨가 테이프를 밀어넣고 음악 볼륨을 올리신다.
그때 나온 노래가 '외로운 마음에 꽃씨를 뿌려요.'하는 노래였다.
나는 아저씨를 째려보며 "음악 좀 꺼주시면 안돼요?"하고 쏘아붙였고,
그런 나를 향하여 운전기사 분은 허허 웃으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잔뜩 긴장하고 있길래, 긴장 하지 말라고 내 한 곡 틀었소. 긴장 푸는데 음악 만한 것이 없어요."
음악 몇 곡을 공해다 하며 귀를 막고 있는 사이 난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잔뜩 가라 앉아서 음악은 들을 수 없다고 툴툴거렸으면서,
중환자실에 어머니를 모셔 두고, 난 이런 책들을 읽었었다.
마이클 코넬리의 <트렁크 뮤직>
언젠가 <블랙에코>에서 인상적이었던 대사를 이 책에선 이렇게 바꾸고 있다.
"당신은 혼자 있으면서도 고독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트렁크 뮤직, 141쪽)
"ㆍㆍㆍ이 세상에 혼자가 되더라도 고독하지 않을 것 같아요?"
ㆍㆍㆍㆍㆍㆍ
"당신은 혼자인 건가요, 아니면 고독한 건가요, 해리 보슈?"
ㆍㆍㆍㆍㆍㆍ
"그건 나도 잘 몰라요." 마침내 보슈가 속삭였다. "사람은 원래 자신이 처한 환경에 아주 익숙해지기 마련이죠. 그런데 난 언제나 혼자였어요. 그래서 고독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블랙 에코, 292쪽)
이 두 부분을 비교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한 작가의 책은 한 번역가가 하는 게 낫겠다는 거다. 틀린 번역은 아니지만, 문체가 달라져 버리니...뭐랄까, 해리보슈의 쓸쓸함이 고스란히 배어나오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해리보슈가 다중인격처럼 생각돼서 말이다, 참.
그래도 다행인건 해리보슈가 마음을 다해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고, 그런 사람이 엘리노어 위시라는 것이다.
마이클 코넬리가 예전 같지 않다.
나나 그, 둘 중 하나 변했나 보다.
또는 둘 다 조금씩 변했거나...
그리고 이런 책도 읽었었다.

김별아 치유의 산행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동안 이런 류의 치유에세이들이 많이 있었지만, 난 그닥이었다.
다른 사람이 어땠다 카더라 하는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게 좋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은 김별아 자신의 얘기여서, 자신의 깨달음의 얘기여서 좋았다.
물론 곳곳에 그녀 특유의 화려한 수사가 등장하지만, 그게 소박한 감동을 해치지는 않았다.
因地而倒者, 因地而起
땅에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나야 한다!
는 보조국사 지눌을 인용한 산멀미 내용도 좋았고,
'식물이 물과 햇빛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아이도 눈물과 두려움을 견딜 수 있도록 붙잡아줄 어른이 필요하다'는 드레이커스의 인용도 좋았다.
지금 말할 수 없이 힘든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그 사이 어머니는 좀 나아지셔서 병실로 옮기시고...
입소 기념으로 노래를 한 자락 부르게 되셨다.
실은 어머니가 부르신게 아니라, 같은 병실에 계신 흥에 겨운 할머니가 <애수의 소야곡>을 부른 거고...
거기에 화답으로 어머니를 대신하여 내가 '외로운 마음에...'를 선창한 거지만 말이다.
이런 노래가 좋은 건 한소절만 선창하고 나면 어느샌가 합창곡이 되어 있다는 거다.
병실 어머니 옆 싸이드 베드에서 자는 잠은 꿀맛이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병실 싸이드 베드를 처방해 드린다.
이제 내가 손수 운전을 할만큼 어머니는 나아지셨다.
차안에 클래식 CD를 틀어놓고, 난 클래식 음악을 BG삼아...애수의 소야곡, 꽃을 든 남자, 이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아침 출근길에 비가 내린다.
언젠가 읊었던 황인숙은 밀어두고, '꽃을 든 남자'를 내 맘대로 개사하여 흥얼거리고 있다.
외로운 마음에 꽃비가 내려요.
사랑이 싹틀 수 있게.
새벽에 맺힌 이슬이 꽃잎에 내릴 때부터.
온통 나를 사로잡네요
나는야 꽃비 되어 그대 가슴에
영원히 날고 싶어라~~~
내가 부르는 건 여기까지 되돌이다.
은근 중독성이 강해서, 왠만한 시름 따윈 잊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