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북플이 완전 인기인가 보다.

하지만 나같은 경우 어딘가에 빠지면, 물불 안가리는 경향이 있어 헤어나지 못하는 고로,

그냥 관망하는 정도이다.

또 한가지 이유는, 북플에서 제공하는 정보가 '글쎄올시다~(,.)'이다.

나의 정보는 이렇다.

내가 저 정보를'글쎄올시다~(,.)'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저 '223개의 마니아'란 문구 때문이다.

읽은 책장에는 겨우 191권이 있을 따름인데,

마니아 분류된 종류별로 따지면 한권도 못 읽은 분야도 나와야 하는 것이 된다.

'어떤 한 가지 일에 몹시 열중하는 사람. 또는 그런 일'을 '마니아'라고 한다는데,

한권을 읽었거나 채 한권도 못 읽은 것을 가지고 마니아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말이다, 에혀~--;

 

암튼 저 북플의 정보를 계기로 내가 오지랖이 넓다는 걸 알게 되었을 따름이고~.

무한 오지랖, 이것저것 관심분야가 많다는 얘기는 진득하게 한우물을 파지 못한다는 것일텐데,

엉덩이가 무겁다 못해 뚱뚱한 나의 전력으로 미루어봤을때, 또 타당성이 미약하다.

 

이런 '북플의 정보'가 정확하다는 신뢰를 얻기 위해선,

기준이나 잣대를 통일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게 정보입네하고 명함을 내밀기 위해선, 모집단의 수가 많아야 하고 경우의 수 또한 여러가지여야 되지 않을까?

 

북플 얘기는 이쯤하고, '이경원'의 '첫눈에 반하지 마라'얘기를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한다.

이 책이 '골상학' 책인줄 알고 보게 되었다는 얘긴 지난 번에 했고,

이 책의 부제라 할 수 있는'나에게 맞는 배우자 찾는 법'조차도 기준이나 잣대가 애매하고 모호하기만 하다.

 

한의학과 대체의학 또는 자연의학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때로 주류로 자리매김하지 못하는 이유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는 삶을 살수록 뻔히 보이는 미래의 불행을 모르는채,

자신과 맞지 않는 배우자를 만나 결혼 하는 배우자가 많은 것을 보고 안타까워서,

인생을 먼저 산 선배이자 의사로서 '100명을 만나기 전에 이 책부터 보라'며 책을 내게 되었단다.

 

외모로 미래의 체형과 건강, 성격, 속궁합까지 예측하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하고 있는데,

남녀관계뿐만 아니라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보와 지혜까지도 담겨 있단다.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직접 그린 300여컷의 일러스트와 사진을 첨부하였다고도 한다.

 

 

그런데, 기준이나 잣대도 좋고,

모집단과 경우의 수도 차치하고,

이 책의 부제는 '나에게 맞는 배우자를 찾는 법'인데,

저 사진 속의 문장들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지극히 남자의 관점에서 여자를 소유물로 생각하여 쓰여진,

아니 백번 양보하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글쓴이의 주관이 짙다.

 

약간 건조하고 차분한 목소리란 어떤 것일까?

고음과 저음의 기준은 무엇일까?

이게 우리가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그 기준이 적용되는지 의심스러운 것은 바로 '끈적끈적한 목소리는 깐깐한 사람이다'라고 표현한 부분 때문이다.

흔히 끈적끈적하다고 하면 성적인 부분과 연관시켜 섹시한 목소리라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이지,

그걸 깐깐하다고 하게 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차분하면서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깐깐하다고 하게 되지는 않나?

이 경우는 '끈적끈적하다'보다는 '찰지다'가 더 적절할 것 같다.

 

예로 든 경우도 하나 같이 이해하기 힘들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명문대를 나온 미국인 남자가 하버드대학교 파티에 갔다가 한국인 여자를 만나게 된 얘기같은 경우 말이다.

그가 물리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하자 여자가 관심을 보인것까지는 그렇다치고,

그당시 미국인 다섯명과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왜 필요한건지 모르겠다.

다섯명의 미국인 여자들은 하나같이 뀌어난 금발이었는데,

자기를 알아주고 존경해주는것 같아 좋아서 그리 예쁘게 생기지 않은 한국인 여자를 택했다는 말이 왜 필요한 건지 모르겠다.

 

체형과 건강과의 연관성을 얘기하면서도 그렇다.

유방이 큰 여자, 자궁근종 있다. 같은 소제목도 위험하다.

몇명의 모집단을 대상으로 했는지, 몇가지 경우의 수를 검사했는지 모호하다.

그런 사람을 한명 본 것만으로는 용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신뢰하지 못하는 또 한가지 이유는,

외모로 미래의 체형과 건강, 성격, 속궁합까지 예측하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하고 있는데,

사람의 외모를 갖고 분류하는 기준이 단지 세가지뿐이다.

이건 사상체질이나 ABO혈액형보다도 한가지가 적다.

 

사랑호르몬의 유효기간은 3개월에서 1년이라고 하며 사랑 만으로 살 수 없다고 하면서,

사주보다는 말 궁합을 중요시하라는 건 무슨 연유에서인지 모르겠고,

이성을 만나기 전에 먼저 부모를 만나서 그 집안 혈통을 보란다, ㅋ~.

(목소리 엄청 중요시 한다.)

 

그리고 꼭 피해야할 사람들로, 대단한 비법을 전수하는 듯 몇가지 예를 드는데,

살면서 자연스레 깨닫게 되는 것들이다.

 

운전할때 성격이 드러난다.(여기서도 여성비하발언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빨리 걷는 자는 작단다.

게으른 듯 유유자적한 움직임은 내면에 엄청난 실력을 갖춰야 한단다.

남의 말을 끊고 자기 말만 목청 높여 하는 사람, 이메일을 쓸때 띄어쓰기 줄바꾸기 안하고 빽빽하게 쓰는 사람은 이기적이라며,

이런 사람은 성격이 집요하고 끈질긴 사람으로 피하는게 상책이란다.

여기서 새치기에서 사기치기로 비약을 시키는데,

새치기가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새치기에서 어떻게 사기치기로 비약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탄생하기까지 16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비방이나 비법 전수서 같지도 않고, 어떻게 보면 지극히 일부분의 편협한, 또는 모두가 다 아는 보편적인 지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환자를 다루는 사람은 지극히 일부분의 것을 크게 확대하여 전체적인 것으로,

제한적인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해석하면 안된다.

그리고 이 책이 환자가 아니라,

미래의 배우자를 찾는 사람 내지는 사위와 며느리를 찾는 사람들이 보는 책이어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두루뭉술해서는 기준이 되지도 않을 뿐더러 분류를 할 수도 없다.

'내배엽은 몸통이 크다'라고 해놓고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예외를 인정해 버리고,

중배엽, 외배엽에도 그런 예외가 있다면 기준이 모호해져 버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니까 말이다.

 

가만보니,

이 사람의 홈페이지가 있어서 진료도 할 수 있고, 건강보조식품 이딴것도 판매할 수 있고 그렇더라.

 

 

 

그러니까 이 페이퍼를 쓰는 이유는,

나처럼 책의 제목에 현혹되어 이런 책을 돈 주고 사는 사람이 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이다.

 

 

 

 

 

 

 

 첫눈에 반하지 마라
 이경원 지음 / 살림 /

 2014년 10월

 



 
 
cyrus 2014-12-03 23:51   댓글달기 | URL
북플의 마니아가 도서 분야별로 세분화된 서재의 달인 업그레이드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 읽고 마니(많이) 아는 마니아보다는 그냥 책 마니 좋아하는 애서가가 되고 싶어요.

양철나무꾼 2014-12-04 09:47   URL
전 아직도 밥이나 돈보다 책이 좋은 1인이지만,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보를 적절히 잘 쓰고 있다고 나름 뿌듯해 하는 1인이지만,
이렇게 컴이 망령스런 정보를 내놓을 때면,
(223개의 마니아라면, 저 인조인간 버금가는 오지랖인거 아닌가여~?@@)
한번씩 혼란스럽기도 하답니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요,알라딘~♥
알라딘, 포에버~!!!
입니다여~^^

가끔 님글, 읽고 있어요.
이제 졸업반이신가요, 잘 지내시죠?^^

하이드 2014-12-04 08:59   댓글달기 | URL
한가지 책으로 저자, 분야, 등으로 다양하게 마니아가 될 수 있습니다. 북플의 정보가 글쎄올씨다.. 인가요?

양철나무꾼 2014-12-04 09:48   URL
제 얘기는 저렇게 수치화된 자료의 경우,
제가 어느 분야에 관심을 갖는지,
과연 어느 분야에 마니아라고 할만한 것인지를 알려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223개분야의 마니아라는 건, 아무 분야의 마니아도 아니란 말과 같이 들려서 말이죠.
정보가 제가 원하는 그런 방향으로 도움이 안되었다는 얘기였어여, ㅋ~.

북플의 정보가 글쎄올씨다...인것과 관련하여선,
다양한 세상이니, 얼마든지 다양한 반응이 존재할 수 있는거겠죠~^^

하이드 2014-12-04 11:51   URL
`읽은 책장에는 겨우 191권이 있을 따름인데,
마니아 분류된 종류별로 따지면 한권도 못 읽은 분야도 나와야 하는 것이 된다.`

라는 문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말씀드린겁니다. 이건 다양한 반응이 아니라 양철나무꾼님이 잘못 알고 계신거죠.

그와 별개로 댓글 달아주신 부분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마니아를 그냥 워딩의 하나라고 생각하구요. 이게 다양한 반응이지요. 요즘 덕후도 아니면서 쉬이 덕후덕후 거리는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양철나무꾼 2014-12-04 12:25   URL
제가 말씀드린건 북플이란것이 독서와 관련된 것이고,
그러니 마니아라고 하면,
구매한 것을 기준으로가 아니라, 읽은 책을 기준으로 애기되어져야 할거란 얘기였어요.

그리고 제가 쓴 말의 문맥을 이해하지 못하시나 본데요~,
페이퍼를 제대로 읽지 않으셔서 저 책과 관련, 전후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셨던지,
제가 표현력이 부족했나 봅니다, ㅋ~.

이 데이터가 제가 구매한 책을 기준으로 작성되었다는 걸 몰랐다는게 아니라,
이렇게 223개의 분야의 마니아라고 하면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런 얘기였습니다.
어떤 한분야를 들입다파는게 마니아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리고 북플의 정보가 글쎄올시다`라고 제가 북플을 어떻게 느끼는 지 표현할 수 있는 자유는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북플의 정보가 어떻다`라고 표현하는게 `잘못 알고`있는건 아니죠.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는 공간이니,
더구나 이곳은 제 서재이니만큼,
저의 느낌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거겠죠.

근데, 워딩은 무슨 의미이고, 덕후는 무슨 의이신지요?





낭만인생 2014-12-04 10:44   댓글달기 | URL
다양한 의견 좋아요... 마이나 이상하죠. 저도 자고 일어나 보니 마니아 열개 정도 더 늘었어요? 신기하기도하고... 특별한 고민은 안하고 그런 류의 글을 많이 썼구나 합니다.
글 참 잘쓰시네요...

양철나무꾼 2014-12-04 12:28   URL
반갑습니다, 낭만인생님.
칭찬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님의 좋은 책소개 글 잘보고 있는걸요.
좋은 글들로 자주 뵙도록 하죠, 꾸벅~(__)

yamoo 2014-12-04 17:15   댓글달기 | URL
북플이 저런 헛점이 있었군요. 저도 뭔가 이상하긴 했는데...그 이상한 실체가 바로 저것이었다는 사실이 신기합니다..ㅎㅎ

이경원의 책은 일명 쓰레기책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살림문고본으로 나온 <관상>을 보니 저런 비슷한 내용이라 시큰둥해서 던져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저 책을 읽고 리뷰를 써도 양철나무꾼님과 비슷한 내용이 나올 거 같습니다..ㅎㅎ

양철나무꾼 2014-12-05 09:49   URL
yamoo님, 잘 지내시죠?
그러니까 전 님 글들을 눈팅하고 있어서리, 잘 지내시리라 짐작하고 있었습니다만~, ㅋ~.
그러니까 북플이 트윗이랑 비슷한거 같아요.
실시간으로 반응을 빨리 빨리 알 수 있단 점에서는,
이곳을 공감과 소통의 장으로 이용하시는 분들에게는 유용하실 것 같고,

저처럼 깜박깜박하는 기억을 붙들어두기 위한 순간의 그것들을 정리하고,
그동안의 것들의 통계화하여 보고싶은 사람들에게는,
적용 기준이 확실하게 전달되지 않으니까 신뢰가 안 생기는 거고 말이죠.
다들 효용에 맞게 적절하게 사용하면 되겠죠~^^

그나저나 전에 언젠가 올려주셨던 흔들린 사진을 보고,
패션 센스가 보통이 아니실거라 짐작은 했었지만,
전에 지하철에서 건너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옷 색깔에 관한 페이퍼도 그렇고,
얼마전 정장에 관한 페이퍼도 그렇고,
그쪽으로 내공이 장난이 아니세요~^^

언제 그쪽으로도 한수 지도편달을 좀~, 헤헷~!
 

옛날에,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라는걸 텔레비전에서 방송해 주던 때가 있었다.

유독 얼굴도 이쁜데다가 몸매도 착해뵈는 후보가 나와,

태극기를 보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감격의 눈물이 난다고 하는데 같이 울컥해졌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의 사절이니만큼, 스피치교육까지 따로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건 한참 후였다.

 

이젠 텔레비전에서 더 이상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를 방송해주는 것도 아니고,

보는 것도 뉴스나 보도 프로그램 정도가 고작인데, 보기만 하면 폭풍눈물을 흘려대는 통에 뭘 볼 수가 없다.

 

옛날엔 드라마를 보면서,

개연성 있고 현실감 있게 잘 만들어졌다고 하며 열을 올렸었다면,

요즘은 텔레비전의 뉴스나 보도 프로그램을 보면서,

사실일리가 없다고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고 고개를 젖고 혀를 내두른다.

 

용산참사가 그렇고,

쌍용차 사태가 그렇고,

세월호가 그렇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체육관이 무너지고 어디에선 환풍구가 붕괴되고 어디에선가 화재가 일어나지만,

장소와 때는 달리하는데,

사건 원인을 분석하려고 하면 하나같이 똑같다.

이럴땐 어쭙잖게 책 한권 읽는게 사치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하지만, 책 말고는 내가 답을 구할 다른 무엇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러 권을 같이 읽고 있는데,

그중 '이상수'의 '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서대원'의 '주역강의'와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는데,

서대원의 그것보다 더 개념적이고 원리적으로 쉽게 접근한다.

 

주역책을 맘 잡고 읽어 볼려고 하면,

쉽게 쓰여진 책이건 어렵게 쓰여진 책이건, 일단은 한자가 나와서 전의를 상실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또는 한자를 우리말로 억지로 번역해 놓아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이 책은 우리말로 해석한다고 해서, 무작정 우리말로 꿰어 맞히려 들지도 않았고,

때문에 껄끄럽지 않게 잘 읽힌다.

 

 

 

 

 

 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
 이상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2014년 9월

 

 주역강의
 서대원 지음 / 을유문화사 /

 2008년 1월

 

게다가 이상수의'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 초반에는 이 시대를 사는 내가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엿볼 수 있는 구절이 있어서 좋았다.

ㆍㆍㆍㆍㆍㆍ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직장을 옮기는 등 자기 삶에 주요 고비가 닥칠 깨마다 주역점을 의뢰했다.

ㆍㆍㆍㆍㆍㆍ현대 사회를 사는 이들의 삶을 씨줄로, 《주역》을 날줄로 삼아 교직해 읽다 보니, 일정한 시간이 지나자 《주역》을 지은 이들의 의도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주역점을 쳐보지 않고  《주역》의 문장만 읽었더라면 《주역》지은이의 의도를 이렇게 명확하게 깨닫기는 어려웠을 것이다.(17쪽)

작게는 책속에서 주역의 문장만을 읽을게 아니라, 직접 주역 점을 쳐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나아가서는 삶속에서 일일이 점을 쳐보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삶은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통과했을때만이 진정 자기의 것이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미리 정해져 있어서 극복할 수 없는 팔자라는 뜻은 아니오. 당신이 만약에 간절하게 현재의 상황을 바꾸고 싶다면 이런 것들을 찾아내 바꾸어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오. 밑창은 막고, 인생에서 걸리적거리는 바윗덩이와 가시덤불은 걷어내고 말이오. 고맙잖소?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입 밖에 꺼내기 힘든 이런 얘기들을 《주역》이 대신해서 시원시원하고 진솔하게 다 말해주니 말이오. 지금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흉한 괘와 흉한 효가 나왔다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무엇이 삶을 황무지로 만드는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사는 방식과 사람에 대한 태도와 가게의 분위기가 좀 더 유연했더라면 더 다양한 인연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면 삶에서 무언가 다른 기회와 마주칠 가능성도 더 많아지지 않았을까?(23쪽)

이런 주역 책을 너무 어려서 읽는 것은 지양하는 게 좋지않을까 싶다.

그리고 또 한가지, 우리를 독선과 독단에 빠뜨리는 그것,

다른 이름으로 맹목적이라는 말로 불리우기도 하는 것,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만의 일들로 그렇게 그렇게 살고,

그걸 향하여 맹목적으로 치닫는다.

가치관이나 신념이라고 하지만,

독선이나 독단, 편협함과 다른 의미일수 있는 것은,

잘못됐거나 틀린줄 알았을때, 맹목적이지 않고 수정가능하다는 것이다.

황무지가 된 땅은 복원되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삶은 유연할수록 다양한 기회와 인연을 만날 수 있고,

그리하여 윤택해진다.

 

《주역》은 운명의 지도다. 지도는 길만 보여주지 않는다. 길이 아닌 곳도 함께 보여주어야 제대로 된 지도다. 《주역》은 그리로 가면 가시밭인데 왜 그리로 가느냐고 질문을 하는 책이다. 이것이 《주역》이 우리에게 주는 지혜의 본질이다. 그러나 길이 아닌 가시밭에 치명적인 유혹이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주역》은 우리의 어리석음에 대한 경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주역》은 우리의 삶에 깊숙이 개입해 발언한다. 그렇기 때문에 절실하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하다.(24~25쪽)

 

이 이야기들은 우리 인생의 한 단면을 베어내어 만든 것들이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든 예외없이 길함과 흉함이 교차해 등장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주역》은 어떤 면에서 예순네 가지의 새옹지마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주역》은 반드시 인간의 실천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32쪽)

 

이렇게 텔레비전을 볼때마다 하도 울어서,

우는걸 직장동료에게 들킬때마다 벌금을 내다보니,

벌금을 내느라 집을 팔아야 될 정도라고 하여 '집.파.녀.'라는 별명이 붙었었다.

누군가는 이런 나의 별명과 관련하여,

아니 나의 헤픈 눈물과 관련하여,

내 이름이 너무 무겁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진단을 했었다.

'조정에 은혜를 다하라'고 하여 여자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신 할아버지가 지어 주신 이름이란다. 

 

암튼, 어제는 화개장터의 화재소식 때문에,

오늘은 쌍용차 사태가 대법원에서 기각된 그 소식때문에, 한방울씩 맺혀 들던 그것이 폭풍 눈물로 이어졌다.

간혹 그런 생각이 든다.

책은 왜 읽나?

책을 읽고 깨달음의 눈물을 흘려대더라도 행동이나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못하면...부질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어쩜 내가 오늘 할 일은,

책 한권을 읽는 것보다는 느끼고 깨닫는 일이고,

느끼고 깨달았으면 행동이나 실천으로 이어져 삶에 어떤 자그마한 변화라도 가져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냥 눈물만 흘리다가는 '집.파.녀.'에서 헤어나오지 못할테니 명심할 일이닷~!

 



 
 
알케 2014-11-28 22:11   댓글달기 | URL
이상수씨가 한겨레에 이상수의 고전중독 연재하던 그분이신가요? 글 좋던데.. 흠.
눈물부터 멈추시길.

양철나무꾼 2014-12-02 16:13   URL
이 이상수 님이 그 이상수 님인지는 모르겠고,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내는건 보통의 내공으로 되는 일이 아니죠~^^

감은빛 2014-11-29 02:47   댓글달기 | URL
두 권 보관함에 담았습니다.
언젠가 읽다 만 주역 책이 어느 구석에 있을텐데, 못 찾겠네요.
뭐 찾는다해도 읽을 틈이 없습니다만.

참 어려운 시절입니다.
눈물을 넘어 분노로 살아남아야 할 시대가 아닌가 싶어요.

양철나무꾼 2014-12-02 16:19   URL
얼음왕국 생각나요.
눈물을 흘리면, 다 얼음으로 변해버리는~ㅠ.ㅠ

눈물이 되었건, 분노가 되었건,
칼날이 향하는 곳을 꼭바로 인지할 필요가 있고,
그렇다고 하여 칼자루를 우리 후대에 넘겨주어선 안 되겠죠~--;
 

'아름답고 정확한 글쓰기'란 무엇일까?

또는  '자유롭고 행복한 글쓰기'란 무엇일까?

'한국어 글쓰기 강좌'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고종석의 문장1, 2'의 부제들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깜박깜박하는 기억을 붙잡아두는 기록이라는 의미에서 글쓴이의 내적 독백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글을 읽게 될 누군가를 고려하여,

또는 내면의 읊조림을 누군가가 읽어주길 바라며, 쓰여지는게 아닐까 싶다.

때문에 '아름답고 정확하거나 자유롭고 행복한' 글쓰기라는 것은,

'아름답고 정확하거나 자유롭고 행복한' 필이 충만하여 쓴 글이거나,

읽는 사람이 전후사정이나 자신의 감정이나 추억을 약간 가감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답고 정확하거나 자유롭고 행복한' 마음이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난 심미안은 아닌지라,

'아름답고 정확하거나 자유롭고 행복한' 마음보다는 약간 어긋나고 허술해야 숨통이 트이고 편안해지는,

아름다움보다는 편안함을 우선시하는 족속이다보니,

'아름답고 정확하거나 자유롭고 행복한' 글쓰기라는 말에 혹해서 강좌를 듣거나 책을 읽을 일이 없을거라고 생각 했었고,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난 쌍꺼풀 짙고 촉촉하고 큰 낙타눈은 '느끼남'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글에서도 사르륵 사르륵 모래바람이 날리는게 아니라 찐득찐득함이 묻어나는 늪일 것 같아서 고려대상이 아니었는데,

그 넘의 책베개에 홀려 넘어갔다~--;

 



고종석이라고 하면,

글 잘쓰기로는 내로라하는 사람이고,

이 책이 글쓰기 강연을 활자로 풀어 놓은것이기 때문에,

설정이나 마케팅 상, 글쓰기가 재능이 아닌 훈련에 달려 있다고 너스레를 떠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1권 겉표지의 

'모든 뛰어남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타고나는 겁니다. 음악이나 수학은 재능을 타고나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다다를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글쓰기는 수학이나 음악과는 다릅니다. 충분한 훈련이나 연습으로 크게 개선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글 쓰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글이 나아집니다.'

라는 돌출 글이나,

그 내용을 본문 중에 다시 한번 강조한 걸로 보나, 

글쓰기가 재능이 아닌 훈련에 달려 있다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ㅋ~.

 

난 세상의 많은 것들이 훈련이나 연습 등 '엉덩이의 뚱뚱함=엉.뚱.함'이 좌우한다는데 긍정적이지만,

이런 예술적인 분야는 '엉.뚱.함'말고도,

오감외에, 예감이나 영감이라고 부르는 육감, 또 다른 말로 '촉'이라고 하는 그것을 어느 정도는 타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연후에 '엉.뚱.함'까지 갖추고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말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의 수요가 점점 줄어드는 요즘 같은 추세로 미루었을때,

일일이 글로 옮기느니 잘 편집하여 동영상 강의 따위로 만드는게 접근성이나 효용성 면에서 낫지 않았을까 싶지만,

이렇게 책으로 만들어 낸 걸 보면,

책 뒷표지의 그것처럼 고종석이 '당대의 문장가'란 사실을 이용한 마케팅 전략의 승리라고 밖에 할 수가 없겠다.

 

고종석은 이 글쓰기 강연을 통하여 자신이 글쓰기보다 말하기를 더 즐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할 정도로,

강연의 완성도나 강연을 들은 이들의 만족도 또한  높았나 보다.

 

난 책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그들을 통해서 내가 모르던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걸 즐긴다.

파리 생활이 그의 이력과 사고 방식에 어떤 영향력을 미쳤는지 모르겠지만,

내겐 독특하게 느껴졌고,

그 낯선 어색함, 글들여지지 않은 날것의 느낌을, 박학다식함으로 착각했었나 보다.  

그의 전작 '자유의 무늬'를 예로 드는데,

앞부분에 많은 것들이 집중 포진되어 있어 몰입이 잘되는 반면, 중반부로 넘어가면서는 여백도 많아지고 내용도 성글어지고,같은 내용이 되풀이된다.

 

강의를 직접 들은 사람들에게는,

그 시간이 직접 글을 써보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고,

첨삭을 하는 등 실제 자신의 글쓰기에 적용해보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책으로 읽다보니,

초반부에 집중하고 몰입하게 만들었던 그 매력이 감소하고 나니, 그의 강의가 일반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백이 너무 많고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지루하게 늘어지는 책일 수밖에 없다.

 

규칙이나 공식이 있는 것은 그 규칙이나 공식을 나름 적용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개인의 주관적인 느낌 같은것,

언어감각을 키워야 할 것마저 규칙이나 공식으로 만들어서 틀에 넣다보니,

강의를 하고 들을 때는 폼나고 이해도 빠른것 같지만,

글쓰기는 규칙이나 공식으로 해결안되는 부분도 있고,

그리고 규칙이나 공식이 적용되는 그 부분 마저도,

세월이 흐르면서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규칙이나 공식을 쉽게 외우는 방법을 만들어 전수한다 한들,

실제 적용해 보지 않고서는, 언어감각이 향상되거나 할 리가 없다.

 

그러면서 필사가 별로 도움이 안 되니 하지 말라고 하는데,

고종석은 책 내용을 보니 강의 중에, 은연 중에 자기 스타일을 강요하고 있다.

언어규칙과 공식에 관해서라면 그가 아니어도,

우리나라 국어학자나 언어학자의 수만큼 많은 이견이 분분할 것이다.

더 정리가 잘 되고 간결한 글쓰기 책도 많을 것이다.

 

그는 글쓰기 테크닉을 넘어서, 인문교양과 언어학적 이해에 바탕을 둔 기품있는 글쓰기로,

논리가 있는 명확한 아름다움과 수사학적 아름다움, 아울러 한국어 지식을 얘기하고 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자면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기품 있는 글이 좋은 글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좋은 글쓰기란,

맞춤법이나 어법의 정오에 연연하기보다는,

글쓰는 이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치장하지 않고 간결하게 표현하여,

쉽고 편안해서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거추장스럽지 않고 편안해서

숨쉬듯 읊조리듯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데 어려움이 없고,

글을 쓰는 사람의 숨결과 개성이 녹아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일상의 잔잔한 재미가 녹아있으면 더할 나위가 없고 말이다.

 

다시 이 글의 처음으로 옮아가,

글을 쓴다는 것은 글을 읽어줄 누군가가 있어야 하는 것이고, 적어도 누군가가 글을 읽어주길 바라며 쓰여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의 기품이라는 것, 품격이라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과 읽는 사람의 마음이 어느 한곳 만나는 지점에서, 소통하는 지점에서 탄생한다.

 

그리하여 글쓰기는 사람과의 사귐과 닮았다.

자신의 스타일을 테크닉이라는 이름으로, 내지는 빨리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 지름길이라고 하여, 은연중에 강요하는 그런거 말고,

자신의 어느 한부분, 한지점을 기꺼이 포기하고 내어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본질과 본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본질과 본성을 잃게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잃게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고종석의 문장
 고종석 지음 / 알마 /

 2014년 5월

 

 

 고종석의 문장 2
 고종석 지음 / 알마 /

 2014년 9월

 

 



암튼 그렇다고, 고종석의 꿀꿀함을 '라면송'으로 달래겠다는 나는 뭐람~(,.)

뭐긴 속물이지~!

속물이 뭔지 모르겠고,

속풀이엔 라면이 그만이던데,

 

라면송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일상에
쉬운것은 하나도 없지

힘이 들고 지쳐갈땐
천국에서 라면으로 속을 달래봐

 

엊저녁 '세상 쉬운 일 하나도 없지.'어쩌구 저쩌구 하며,

'이럴땐 술집에서 안주나 축내는것도 좋은데'라고 어물쩡 넘어갔다.

그런데, 언어적 기품이 다르다보니,

'술집에서 양주나 축내는것도 좋은데...'라고 알아듣고는 '레알?'하며 되묻는것이다.

'라면송', 이 노래를 일찍 떠올렸다면 '레알?'소리를 들어가며 재차 확인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인데 말이다, ㅋ~.

 

 

 

내츄럴 (Natural) - Special Album
 내츄럴 노래 / 유니버설(Universal) /

 2008년 12월

 

 

 

 

 


 
 
 

'조급한 부모가 아이 뇌를 망친다'를 읽고나서 필(feel) 충만하여 '1.4킬로그램의 우주, 뇌'를 집어들었다.

'신경 의학에서 뉴로 마케팅까지 융합 뇌과학의 현장'이라는 겉표지의 소 제목을 본 터라 쉬울거라고 생각은 안했었지만,

첫강의부터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이 생각지도 못했던 난관에 부딪혔다.

'카이스트 명강'이란 타이틀을 달아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용, 정재승, 김대수 이 세분들은 강의가 깔끔하기로 유명한 분들이다.

이 분들의 강의를 이해 못하면 다른 누가 강의를 해도 마찬가지라는 얘기이다.

 

 

 

 

 



 

 1.4킬로그램의 우주, 뇌
 정재승.정용.김대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7월

   

하물며 소싯적에 해부학이란 걸 들여다본 적이 있는 내가,

다른 것도 아니고 해부학 용어로 등장하는 의학 용어가 중구난방이어서 못 알아먹는다는 것은 창피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난 그동안 한글을 제법 사랑하고 잘 사용한다고 자부했는데도 불구하고 반의 반도 알아먹을 수 없었고,

그렇다고 시작부터 기가 죽어 책을 덮어버릴 수도 없고, 낭패였다~--;

위 사진 속의 글을 뇌에서 인체 전반으로 의미를 확장시켜 슬쩍 문맥에 맞게 바꿔 본다면,

소싯적에 해부학 책을 들여다본 적이 있는 내가 이렇게 해부학 용어를 두고 잘 몰라서 한참 들여다 보게 된 까닭이,

많은 사람들이 인체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부학계에서 한글단어를 새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글쎄, 정작 한자어로 해부학을 공부했던 세대들이 혼란스러움을 겪는 한글단어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체에 대한 이해는 차치하고라도,

얼마나 더 쉽게 접근하도록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차라리 그동안 해부학에서 사용되었던 한자어가 대부분 일제의 잔재이고,

그래서 일제 잔재를 한시바삐 청산하기 위하여 한글 이름으로 바꾸는것이라면,

실용성이나 접근성 등의 측면에서 설득력이 없더라도,

우리가 북한처럼 한글을 잘 살려쓰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걸 부끄러워 하며,

한글이 다의어여서 의미전달이 모호하여 불편하더라도,

한글 단어로만 이루어진 해부학 용어 사용에 대한 타당성은 인정할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그동안 한자어로 쓰여진 해부학적 용어를 사용했던 것은 한글단어가 어떻기 때문이 아니었다.

한글이 다의어여서 여러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경우가 있고,

그런 경우 풀어쓰거나 설명을 하게되면 용어가 한없이 길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처럼 많은 사람이 더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위해서 한글 단어로 바꾼 것이라면,

설명을 위해 풀어쓰다보니까 길어지는 부분은 간결성이라는 면에서 위배된다.

그렇다면 해부학 용어를 한글단어로 바꿀게 아니라, 한글 사용법을 익히는게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한글은 다의어여서,

글이나 말 만으로는 의미가 명확하게 전달 될 수 없을 때도 있다고 생각 했었다.

그래서 글에서는 한자어를 병기하는 걸로 설명을 대신 했었고,

그래서 글이나 말 등의 문자 외에도 음의 고조나 장단 ㆍ 음색ㆍ어조나 어투 ㆍ몸짓 ㆍ얼굴 표정이나 분위기 등 의미의 전달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었다.

 

사람이 삶을 살아간다는건,

살아 움직인다는 건(生),

그래서 바뀐다는 의미이고, 변화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노병사'가 삶의 과정이지만,

병은 그냥 병일 뿐이지만, 의학에서는 이를 더 세분해서 질병, 증후군, 질환, 장애 이렇게 네가지로 구분(90쪽)하는 것도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예를 들어 어떤 병에 증후군이라고 이름이 붙여져 있다는 애기는 원인을 아직 잘 모른다는 뜻이란다~--;)

 

바뀜과 변화는 필요한 걸까?

아니면 늘 한결같아야 할까?

세상엔 변해야 할 것이 있고, 늘 한결 같아야 할 것도 있다.

하지만, 이걸 가르는 데는, 다시말해 구분하는 데는 기준과 방향점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기준과 방향점이 없거나 한쪽으로 치우치면 답보가 되거나 편견 또는 선입견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또는 고집이나 아집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요즘 '신영복'님의 '강의'를 다시 읽고 있는데,

거길 보면 '역易'을 '주역'의 '계사전'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다.

"역易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 가 그것입니다. "역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궁하다는 것은 사물의 변화가 궁극에 이른 상태, 즉 양적 변화와 양적 축적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질적 변화는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통通의 의미입니다. 그렇게 열린 상황은 답보하지 않고 부단히 새로워진다(進新)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구久라고 할 수 있습니다.(130쪽)

처음 주역을 읽을때는 역(易), '변화'에 치중을 하였다면,

그다음 읽을때는 구(久), '오래지속된다'에 연연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주역이 64괘의 마지막 괘인 '화수미제'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도돌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삶이 그렇고 자연이 그렇고 인간의 마음 또한 그렇게 바뀌고 변하는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오래 지속되지 못하면 변덕이고 변절인 것처럼 폄하하였다.

 

고인 물은 썪는다고 오래 지속되거나 머무르면 안된다고도 생각했고,

오래 지속되는 것은 한결같음이 아니라, 현실에 안주하고 답보하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발전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현실에 안주하고 답보하는 것은 퇴보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쯤에서,

'바뀜과 변화는 기준과 방향점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말을 다시 한번 강조해야 겠다.

 

성격이 좋게 말하면 까칠하고 나쁘게 말하면 더러워서,

매사에 흑백 논리가 분명하게 살려고 했던 내게,

역(易)과 구(久)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참 많이 돌아왔다.

역(易), '변화'의 속성에서 본다는 것은 순간순간을 치열하고 가열차게 사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구(久), '오래지속된다'라는 것은 '영원한 도돌이'와도 같은 것으로,
바꾸어 말하면 변하지 않는다가 될 수도 있고,

한발 떨어져서, 관조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면,

변화가 아주 조금씩 천천히 눈곱만큼씩 이루어져서,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이런 것들을,

종교 따위는 없는 내가,

먼 이국 땅의 말도 안통하는 교황의 말한마디에서 깨달았다고 하면 좀 아이러니컬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교황은 세월호 추모 리본을 유족에게서 받아 달았는데,

반나절쯤 지나자 어떤 사람이 와서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것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고 한다.
그때 교황은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바뀜과 변화는 기준과 방향점을 명확하게 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사람이 삶을 살아간다는건,

살아 움직인다는 건(生),

그래서 바뀐다는 의미이고, 변화한다는 의미이지만,

이 모두가 인간이기에 가능한 일이고, 인간을 능가하는 것은 없다.

 

이건, 종교고 과학이고 모두에게 통용되는 이치이다.

다시말해, 종교고 과학이고, 정치고 이념이고 간에,

인간을 능가하는 것은...

인간 위에 군림하는 것은... 없다.

 

 

암튼,

새로운 의학 용어를 공부할 생각은 안하고,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해가며 툴툴거리고 구시렁거리며 변명할 생각만 하는 나,

어쩔 것인가 말이다~(,.)

 



 



 
 
하늘바람 2014-08-20 01:38   댓글달기 | URL
해부학까지 섭렵하시니넘 우러러볼 뿐이어요

양철나무꾼 2014-08-26 18:25   URL
섭렵이 아니라 들여다 봤을 뿐이라는~--;
다치셨다는 무릎은 좀 어떠세요?
빨리 나으시라고 제가 '호오~=3'해 드릴게요~^^
 

주말 저녁, 감기가 들어 맥을 못추는 아들녀석을 북돋워준답시고 온가족(이래봐야 남편, 아들, 나 3명)이 이불 속에 발을 넣고 쇼파에 옹기종기 앉아 텔레비젼을 보았다.

아마 선거 홍보용인거 같은데, 개그맨들이 나와서 그 프로그램을 앞으로 10년간 이끌어갈 메인 MC를 뽑는 선거를 하기 위한 유세를 하고 있었다.

근데, 참 이상도 하지, 개그맨들의 그것이었는데, 재밌다거나 웃기기 보다는 안습이어서 난 보다가 일어나고 말았다.

 

그런의미에서,

오늘 아침, 방현주의 라디오 북클럽에서 참 좋은 책 한권을 소개받았다.

그동안, 자신의 소신이나 주장을 한번도 겉으로 드러낸 적이 없었던, 이권우가 자신의 그것을 드러낸 것도 멋있었고, 앗싸~^^

책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책을 읽은 사람이,

다시말해 책을 읽고, 책을 통하여 깨달은 사람이 그걸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달하여야 하는지,

설득과 감화의 적절한 예를 보여준것 같아서 좋았다.

에효, 나 참 말 어렵게 한다, 이권우의 언변에 엄청 감동받았다. 한마디면 될 것을~ㅠ.ㅠ

 

오늘 소개된 책은 '주대환'의 '좌파논어'였는데, 난 제목을 듣는 순간 '김규항'의 '좌판'을 연상했다.

 

 

 

 

 

 좌파논어
 주대환 지음 / 나무,나무 /

 2014년 4월

 

 김규항의 좌판
 김규항 지음 / 알마 /

 2014년 4월

 

저자 '주대환'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이 '좌파'와 '논어'의 조합이 가당키나 한것이냐고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대환'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일단은 그를 믿고 닥치고 읽고 볼 것이고,

그런 후에라야, 이 책과 주대환을 이해할 수 있고,

이권우를 이해할 수 있고,

나의 설레발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말해, 실패와 실수는 용납되지도 용서되지도 않을 것처럼 서로 헐뜯고 비난하는 요즘의 현실을 놓고봤을때,

공자와 논어를 새로운 시선으로 봤다는 것 자체가 신선하다.

그걸 주대환은 이렇게 얘기하고 있고,


공자가 당대 사람들로부터 오로지 존경과 추앙을 받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공자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비난을 받았다.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다가 상처받기도 했다. 비난보다는 경멸이 더욱 견디기 힘든 것이다. 권력과 힘을 가지면 사람들이 뒤에서 욕할지언정 함부로 대놓고 경멸하지는 못한다. 공자는 잠시 권력과 힘을 가져보았고, 그 효과를 잘 알았기 때문에 더욱 그것을 갖기를 간절하게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더 자주 쓸데없는 헛발질을 하고, 정치적 오판(誤判)으로 비웃음을 샀다.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 비난과 비웃음, 가까운 사람들과의 갈등, 이런 것들을 2천500년 전의 공자도 겪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라는 공간은 지금이나 당시나 비슷하지 않았을까? 나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에게 공감을 느끼고, 그들의 대화 속에서 위로를 얻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좌절하고 상처받은 사람이 어디 나뿐이겠는가? 인간관계를 잘 풀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람은 사회를 떠나 살 수 없다. 나는 이 책을 통하여 보다 많은 분들이 나처럼 위로와 격려를 얻기를 바란다. 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 청년들에게 이 책이 희망의 메신저가 되기를 바란다.('알라딘 책소개'인용)

 

그걸 이권우는 다시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핵심은 그대로인데, 가는 방법이 진보적이다.

그러자 방현주가 묻는다.

"극과 극은 통해서 일까요?"

이렇게 안물었으면 어쩔뻔 했나? 이토록 귀한 답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방현주 무한 땡큐다.^^

"진정성이겠죠."

 

이쯤에서 끝났다면, 내가 이권우를 향하여 설레발을 치지 않았다.

그는 한국진보주의와 진보정당의 문제점과 대안을, 주대환의 이 책을 통하여 제시하고 있다.

논어는 연대(連帶)다.

서로를 위로하고 의지하고 격려하는 '연대의 언어'다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 잘 하자.

부모에게, 형제에게, 동지에게, 잘하자.

 

그러면서, '우월한 사람들은 인간적으로 덜됐다'라고 하면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못하면서 연대를 이땅에 뿌리 내리려고 했던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이었나 하는,

초로의 한국 진보지식인의 자기반성이라는 말로 맺는다.

 

내가 오늘 느낀 것은 뭐냐 하면,

우리는 타인을 의식하되 배려하지는 않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게 아닌가?

우리가 의식해야 할 주체는 자기자신이고, 배려해야 할 대상은 타인이 되는 것인데,

이게 바뀌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인생을 사는게 아닐까 하는 것.

가장 두려워해야할 대상은 자기 자신이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틈틈이 스스로를 위해 공부하면서 때를 기다린다는 게...

공자의 가르침이든, 주대환의 해석이든 아니면 이권우의 그것이든 내가 설레발을 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러고보니, 얼마전 읽은 '살아가겠다'의 '고병권' 같은 경우도 철학자나 인문학자라는 말이 무색하다.

그를 보면, 철학이나 인문학이야말고 무엇보다 삶과 밀접한 실천의 학문인것 같다.

주대환도 경험을 벼리어 글로 써서 그랬지만, 고병권 또한 현장에서의 목소리를 글로 옮겨서 생생하다.

 

 희망이 덧없다는 것. 이는 절망한 이들의 말이 아니라 결코 절망할 수 없는 이들의 말이다. 자신이 사막에 있다는 사실에 압도된 사람들일수록 오아시스에 대한 희망을 빨리 만들어낸다. 그래서 얼마 가지 않고서도 수십 번의 오아시스에 대한 희망을 빨리 만들어낸다. 자신이 사막에 있다는 사실에 압도된 사람들일수록 오아시스에 대한 희망을 빨리 만들어낸다. 그래서 얼마 가지 않고서도 수십 번의 오아시스를 보지만 모두가 신기루다. 희망이란 이상한 것이다. 그것은 미래에 대해 품는 것이지만, 미래로 갈수록 덧없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반대로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실질적인 것이 된다. 희망은 지금 사막을 뚜벅뚜벅 걷는 내 다리에 있다. 이 글을 쓰던 날, 나는 대한문 농성촌의 한 의자에 누군가 적어놓은 희망을 보았다.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11쪽, '책을 내며'중에서, '살아가겠다')

같은 얘기의 반복이다.

몸이 기억하는 것, 날것의 의미에 대해서이다.

날 것은 살아있는 것이고,

그것이 내게로 와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나를 꾸준히 계발, 적어도 유지할 수 있도록 수혈, 내지는 급수, 내지는 에너지 공급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조금 길지만 같이 되새겨보면 좋을것 같아 옮겨보았다.

 

플라톤이 '철학하는 왕' 프로젝트에 실패하고 노년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거기에 대한 내 저술은 있지도, 나오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학문들처럼 말로 옮길 수 있는 게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는 철학의 지혜, 철학적 앎에 대한 참으로 중요한 비유를 남겼다. '앎'이란 오랜 사귐과 공동생활을 통해 "튀는 불꽃에서 댕겨진 불빛처럼 혼 안에서 생겨나 스스로를 길러낼 것"이라고.

철학의 지헤란 홀로 득도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 그런데 함께 살다 보면 온갖 마찰이 생긴다. 그 마찰은 우리를 아프게 하고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돌멩이를 부딪치면 그렇듯, 우리의 부대낌은 열을 만들어내고 때로 불꽃을 튀게 한다. 그 불꽃이 영혼의 램프에 옮겨 타는 것, 그것이 바로 철학의 지혜가 아닌가. 나는 노년의 플라톤이 쓴 이 비유가 참 좋다. 서로 다투고 갈등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때로 열이 나고 불꽃이 튀는 곳에서 우리는 영혼의 램프를 밝힐 기회를 얻는다. 그렇게 얻은 불을 우리는 누군가에게 나눠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한마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우리는 위대한 누군가로부터 그 불을 나눠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몸에서 계속 기름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누군가에게 건네받은 불은 금세 꺼져버릴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삶을 쉼없이 가꾸어감으로써만 우리 영혼의 램프를 밝힐 수 있다. 그것이 철학이라면, 철학은 참 멋진 학문이 아닌가.(29쪽, '살아가겠다')

 

 

  “살아가겠다”
 고병권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4년 1월

 언더그라운드 니체
 고병권 지음, 노순택 사진 / 천년의상상 /

 2014년 2월

 

 철학자와 하녀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