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을 엎어라 - 드라마틱한 역전의 승부사 이세돌의 반상 이야기
이세돌 지음 / 살림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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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을 볼때, 류준열이 훨씬 좋았지만 바둑 기사 최택으로 분한 박보검도 싫진 않았다.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등장했는데, 새롭지 않았지만 추억을 돌이킨다는 의미에서 감동적이었다.

'응.팔.'과 동시대를 살았던 내게 생소한 직업이 있었는데 그게 바둑 기사였다.

바둑기사가 바둑을 두는 사람이라는 걸 몰랐다는게 아니라, 바둑기사의 일상을 몰랐다.

 

간혹 텔레비전 뉴스를 통하여 엄청난 상금 액수를 듣고 부럽다 싶긴 했지만,

정규 교육을 제대로 못 받는다는 것도 몰랐고, 두통과 불면증으로 맨날 약을 달고 사는 것도 몰랐을 때의 얘기다.

울아들이 7세때, 바둑을 전문적으로 시켜보라는 주위의 권유에 심사숙고했던건,

이 같은 지난함을 몰라서 였을 것이다.

 

전에 이런 궁금증을 해갈할 요량으로 조훈현의 고수의 생각법(==>리뷰 링크)을 읽기는 했었지만,

그 책을 볼때만 하더라도,

우리와 동시대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완 격이 다른 사람, 고수라는 말로 치환할 수 있는, 일종의 신을 보는 기분이었다.

정치가들처럼 출판 기념회용 도서라는 느낌도 살짝 들었었는데,

책을 내고 얼마후에 정계진출을 하더라~--; 

 

암튼 조훈현의 그것이 일종의 자서전이나 위인전을 읽는 기분이었다면, 이 책 '판을 엎어라'는 자기계발서의 느낌이 강하다.

인생을 먼저 산 엉아가 동생이나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일종의 덕담 같다.

그래서일까?

언뜻 보기엔 바둑을 두는 후배들이 대상인것 같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하고 삶의 방향을 묻는 모든 이들로 확대 할 수도 있겠다.

일종의 덕담이니 일반론적이고 깊이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겠다.

 

물론 역전승을 이끌어내는 것도 실력의 일부이긴 하지만 운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특히나 중요한 판에서 상대방이 실수를 안 해주면 역전승은 기대할 수 없다.

사람이란 누구나 실수를 하게 마련이지만 아무런 실수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희망이 없는 국면에서도 상대의 어이없는 착각이나 실수로 역전승을 거둔 적이 많으니 내가 '행운의 기사'라는 말은 맞는 듯하다.(65쪽)

 

하지만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좋은 바둑을 남긴다는 건 힘든 일이다. 한판의 바둑에서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기는 어렵다. 그런데 상대 역시 실수를 안 한다면 대국은 더 어려워진다. 좀 다른 얘기지만 내가 실수를 '못'할 때도 있다. 상대가 먼저 중반에 너무 큰 실수를 해버렸을 때가 그렇다.상대가 쉬운 수를 착가해서 큰 실수를 해버렸을 때가 그렇다. 상대가 쉬운 수를 착각해서 큰 실수를 하면 나에게는 실수할 타이밍이 없어져버릴 만큼 바둑이 허무하게 끝난다.(169쪽)

 

실력에 자만하지 않고, 실력이 비슷비슷한 상황에선 실수를 운과 동일선 상에 놓는 건 어찌보면 좀 멋지다.

 

내 경우에는 바둑을 둘 때 적당한 긴장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편이다. 오히려 아무 부담 없이 너무 편한 마음으로 바둑을 두다 보면 자칫 기백이 빠진 무기력한 내용으로 흐르기도 한다. 물론 반대로 긴장이 지나칠 경우에는 바둑의 행마(行馬)나 흐름이 경직되고 활발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긴장감 조절이 필요하다. 사실 '적절하다'는 게 말은 쉽지만 수치로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84쪽)

 

마인드 컨트롤도 마찬가지다. 대국에서 지고 자신감과 확신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억지로 자신감을 끌어올리려고 하다 보면 오버 페이스가 되어 경솔해질 수 있다. 내 마음이지만 아무 때나 '내 마음대로'되지는 않는 것이다.

바둑판 앞에서든 바깥에서든 평소에 지속적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상대방이 누구든, 그 기세가 얼마나 대단하든 주눅 들지 않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억지로 단시간에 만들어낸 자신감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 우승컵을 놓친 대가랄까?(90쪽)

긴장을 하고 부담을 갖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건 바둑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삶이라고 불리우는 일상의 모든 일들이 그렇지 않을까?

통증의 역치를 낮추듯이,

긴장과 부담의 역치를 낮추는 자기만의 비법을 개발해야지 싶다가도,

그게 반복되면 무뎌질지도 모를 일이니, 그걸 경계하는게 우선이지 싶기도 하다.

 

이세돌의 경운 그걸 극복하였고 적절한 긴장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듯 보이지만,

적절한 긴장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주눅들지 않는 자신감을 갖기 위해선 실력을 키우는게 우선이다.

실력을 갖춘 후라면 자신감은 저절로 생겨날 것이고,

그런 상태에서 '행운'이 따라오는 것이지,

근원을 알 수 없는 무모한 자신감은 자신을 위장할 순 있을지 몰라도 타인을 설득할 수는 없다.

 

아예 잡념이 들지 않도록 그 싹을 잘라버릴 방법이 있다면야 가장 좋겠지만 아무리 중요한 대국에서라도 무의식 속에서 느닷없이 치고 올라오는 잡생각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렇게 예방이 안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차선책이 필요하다. 잡념이 생길 때 어떻게 처신하고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해법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고, 프로바둑기사라면 각자 성격이나 스타일에 맞는 비법이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에는 억지로 뿌리치려고 애쓰기 보다는 오히려 잡생각에 잠깐 응답을 해준다, '오늘 이키면 삼겹살에다가 소주나 한잔하지''이따 대국 끝나고 전화해서 딸아이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이렇게 정리하고 넘겨버리게 된다.

  잡생각이 들면 드는 대로 순응해서 넘겨버리고 나면 잠깐에 그치고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 팔자 좋게 이런 거나 생각할 때야? 바둑에 집중해야 될 때란 말이야'라는 마음으로 자책하면서 잡생각을 자꾸 떨치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그 생각에 발목을 잡혀서 자꾸 떨치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그 생각에 발목을 잡혀서 잡념이 떠나지 않는다. 그러다 결국 마음이 흔들리고 바둑의 페이스까지 잃게 된다. 강물이 흐르듯 순응하면서, 그 강물에 잡다한 이물질(?)이 흘러내려오면 그냥 흘러내려 가게 놔두는 게, 다른 사람에겐 몰라도 내게는 가장 좋은 대처 방법이다.(100~101쪽)

 

잘라내는 것과 가라앉히는 것은 고통이나 추억이라고 불리우는 나쁜 기억들에만 적용되는게 아닌 것 같다.

그걸 이 책에선 잡생각 정도로 축소시켰고,

잘라내는 것과 가라앉하는 것을 두고 어느게 더 좋다 나쁘다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이렇게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자기 자신을 구슬리고 타협하는 방법도 괜찮을 것 같다.

 

어찌 보면 엉뚱한것 같기도 하고 사차원 같기도 한데, 내가 보기엔 멋졌다.

그의 이 같은 행동을 멋지다고 할 수 있는건,

짬뽕공 마냥 생각이 어디로 튈지 자신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닮음꼴이고,

우리는 흔히 자기랑 닮은 꼴이거나 사고방식의 사람들을 보면 편하게 느껴지는 것이,

급 호감을 갖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인가 보다.

 

바둑기사라면 상대가 약하다고 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갓 프로가 된 신인이든, 정상의 자리에 오른 고수든 상대를 얕잡아보는 태도를 고치지 않으면 나쁜 습관이 생긴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태도를 이렇게 합리화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상대가 약하니까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데 굳이 힘을 쓸 필요가 없잖아? 강한 상대와 둘 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두면 되지. 그게 페이스 조절이잖아."

얼핏 그럴듯하다. 상대가 약하면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이길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바둑 두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하면 자신의 바둑 전체가 오염된다. 약한 상대인지 강한 상대인지 따지는 것도 나의 주관에 불과하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상대방을 과소평가하는 심리가 조금씩 있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는 자신보다 약한 상대가 아닌데도 얕잡아 보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버릇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결국 '누구와 둬도 최선을 다하지 않는' 바둑을 두게 된다. 그때의 결과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ㆍㆍㆍㆍㆍㆍ자신의 대국 일정이나 컨디션에 따라서 페이스 조절을 하는 것과 상대가 약해 보인다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158쪽)

 

여러 생각을 하게 하고,

그의 가치관이랄까, 인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럴 때 내가 쓰는 방법은 '빨리 포기하는 것'이다. 가령 호각지세인 길이 A에서 D까지 네 가지가 있다고 했을 때, 그런 상황에서 다른 기사들이라면 보통 B라는 길을 선택한다고 해도 내 감이 '그건 느낌도 별로 좋지 않고 내가 둘 바둑이 아니다'라고 신호를 보낸다면 빨리 포기해 버린다. ㆍㆍㆍㆍㆍㆍ

실전으로 다져진 감이란 정말 무섭다. 호각지세인 여러 갈림길이 있을 때 어떤 게 내 스타일인가는 빠른 시간 안에 감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 감으로 초기 단계에서 경우의 수를 줄이는 것이다.(165쪽)

 

신변잡기 식이어서 생각을 깊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방면으로 생각거리들을 제공해주었다.

이런 저런 생각들 중에, 몇몇 진지하게 생각해 본 것이  있는데,

(지극히 주관적인 내 생각이지만),

하난, 바둑도 앞에 '내기'를 붙이게 되면 도박이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겠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난, 그런 바둑의 아시안 게임 정식 종목 채택 여부를 논의하는걸 보니, 바둑을 스포츠로 분류해야 하는가 보다 하는게 다른 하나였다.

이 두가지 생각은 하나의 결과로 모두어졌는데, 정정당당한 페어플레이를 지향해야 겠다는 것이다.

 

바둑이 스포츠라는게 설득력 있게 다가온 부분은 실은 나이 40이면 은퇴를 고려한다는 부분이었다.

바둑처럼 정적인 것이 어느 정도 에너지를 소모하는지 몰랐던 내겐 일종의 기준점처럼 작용했다.

 

이 책으로 궁금증들이 전부다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아직 길 위에 있는 사람이고,

나머지 궁금증을 해갈하기 위하여 이창호가 기다리고 있으니,

그럭저럭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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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8 14:44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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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8 17:45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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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8 22:19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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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6-09-12 14:34   좋아요 0 | URL
전 어렸을때 할아버지를 따라 마실을 다녀서,
바둑이랑 장기를 쫌 둘 줄 압니다.
노인정 바둑과 장기라고 해야 하려나?
어깨 넘어로 배운게 야무진 눈썰미 덕인지(으쓱으쓱~^^)...
지금 노인정에 데려다 놔도 용돈을 벌 수 있을 겁니다.

근데 화투는 짝도 못 맞춘다는 거~--;
하지만 그래도 남편 친구들이랑 내기를 하면,
판돈은 제가 다 쓸어 모은다는 사실~^^

지금은 아주 많이 나아졌는데,
아무래도 지고는 못 사는 성격 탓인 것 같습니다~^^


책읽는나무 2016-09-09 0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팔 드라마를 통해서 저도 바둑에 대한 관심이 생겼었어요
그리고 저도 류준열을 좋아해서 `어남류`의 결말로 이루어지질 않아 어찌나 화가 나던지~~한 며칠 박보검 얼굴만 봐도 속이 쓰려서~~ㅜ
그러다 꽃청춘에서 박보검의 인성을 보고서 화를 달래고 마음을 돌렸던 기억이 나네요ㅋㅋ
그러면서 박보검 하면 아직 사극을 보질 못해서 그런지 항상 바둑이 먼저 떠올라요!!
어릴적 생각해보면 응팔 그시절였던 것같아요!! 친정아버지께서 늘 바둑판만 잡고 계셨던 기억이 많이 나네요~그러고보면 그시절쯤 바둑이 유행이었었나?싶기도 하구요
암튼 바둑이라하면 어렵지만 괜스레 친근감이 가고 약간 추억의 스포츠 같단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자기계발서라 생각하고 관심없었던 책이었는데 나무꾼님의 글을 읽고 나니 이책도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직장생활 하시느라 힘드시죠?
건강 조심하시고 다가오는 명절도 잘 보내시구요
(넘 이른 인사에 괜히 심란하게??ㅋ)

양철나무꾼 2016-09-12 14:39   좋아요 1 | URL
저 지금 이창호 부득탐승 읽고 있는데,
이세돌보다는 가독성이 뛰어나요.
거기다가 최택(박보검)의 설정이 전부 다 이창호에서 비롯되었지 싶네요.

전 시어머니가 살아 계실땐 명절에 시골 가는게 그리 좋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남들이 다 가니까, 체면에 물려 형식적으로 오가는 것 같아서...시간 낭비이지 싶지만,
그래도 어쩔 수 있나요?
오랜 전통인데...악법도 법이다 이러면서 따라야죠~(,.)

님도 보름달처럼 풍성한 추석 보내시길~^^

2016-09-11 15:17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12 14:40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우구스투스
존 윌리엄스 지음, 조영학 옮김 / 구픽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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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책을 제대로 읽을 깜냥이 안 되나 보다.

고등학교때 이과였던 나는 국사와 세계사에 한참 약해서,

이런 역사 소설의 경우, 궁여지책으로 그 시대의 역사책을 먼저 훑어본다.

이 책 '아우구스투스'도 읽기전에 그 무렵 로마의 역사를 공부를 하는 걸로 워밍업을 했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들을 보면 작가 생전보다는 사후에 회자되고 인기를 얻기도 하는 걸로 미루어,

이 책도 그렇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아무런 상 따위는 수상하지도 않은 '스토너'가 나름 괜찮았었기에,

찬사가 쏟아지고 1973년에 전미도서상도 수상한 이 책은 더 나으려니 했었다.

 

이 책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내 견해를 밝혀보자면, 속빈 강정이고 빈수레가 요란한 꼴이다.

우리나라에 이제서야 소개된건 다 이유가 있지 싶다.

 

미국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서에는 반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미국에서 받은 상은 뭐냐고, 어떻게 받게 되었냐고 할 수도 있겠다.

1973년 무렵, 미국의 정세나 상황에 이 책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않았을까 소심하게 추측해 본다.

 

번역도 그리 깔끔하지 않다.

조영학 님의 다른 번역 작품들을 좀 읽었었던 터라, 기대가 너무 컸었는지도 모르겠다.

오타 작렬에다, 문장에서 시제가 일치하지도 않는다.

과거에 벌어진 사건을 두고 편지를 쓰며 회상하는건데, 현재시제여도 이상할텐데 미래시제로 번역된다.

또 '물주구문'이라는 것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이지 싶은데,

사람을 주어로 바꾸었을때 시킴과 당함을 혼동하고 있다.

 

고백하건데==>고백하건대(20쪽)

이 정도는 '숨은그림찾기' 급의 퀴즈이고,

21쪽의 이 부분을 읽다가 무슨 말인지 알아먹지 못한 나는,

아마존까지 꾸역꾸역 들어가서 원서를 미리보기로 비교하였다.

 

 

그저 성격좋은 애송이 정도였지. 얼굴은 너무 섬세해 혹독한 운명을 이겨낼 것 같지도 않고 성격은 내성적이라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고, 목소리도 감미로워 지도자의 거친 언어를 담아낼 것 같지 않았네. 그저 한가로운 학자나 문인이라면 또 모르지. 가문과 부가 있으니 자격이야 충분하지만 솔직히 저렇게 빈약해서는 원로도 어려울 듯싶어.(24쪽)

위 박스 안은 서기전13년, 마에케나스가 리비우스에게 보낸 서한이다.

과거를 회상하며 쓴 편지 글인데,

편지를 쓸 당시에는 이미 황제가 되어있는 옥타비우스를 얘기하면서 현재시제를 사용하니 완전 코미디가 되어버린다.

'원로도 어려울 듯 싶었어'정도가 어떨까 싶다.

친구들이 어떻게 보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날은 물론 그 후로도 한동안 다들 나를 바보같다고 생각할 거네. (23쪽)

이 부분도 '생각했을 거네'정도로 바꿔 주는게 낫지 않을까?

25쪽의 카이사르가 옥타비우스에게 보낸 서한에서는,

아무리 편지 글이 그런 형식을 띤다고 해도 '친애하는 옥타비우스'는 좀 웃기는 번역이다.

 

초반부에 집중되던 이런 오류들은 중반부로 넘어가면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몰입에 실패해서 맥이 빠져버리니 재미가 없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의 전미 문학상 수상은 어찌보면,

황제라는 미명하에 독재를 정당화하고, 그리하여 왕권을 강화시켰던 로마 시대의 그것을,

1973년 당시 강대국인 미국이 재현해 내려했던 욕구와,

그 당시 강대국을 열망하고 선민 의식을 키우려던 미국 국민들의 그것에 부응하려는 기대심리가 맞물려 이뤄낸 성과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서신과 일기, 회고록 등 여러 형식의 글들이 엮여 한 편의 소설이 되는데,

서신도 어느 한 사람을 중심으로 한게 아니고,

일기, 회고록 또한 어느 한사람의 것이 아닌데,

이런 것들이 남아있는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 것인지, 존 윌리엄스의 창작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한사람이 쓴 것 같다.

그 시대에는 모든 글을 연설체로 씌여서 문체에서 자신만의 개성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것인지, 

존 윌리엄스가 그렇게 써서 그런 것인지,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그 섬세함을 잡아내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쉬웠다.

암튼 이러저러한 편견을 버리고 평상심을 유지하려 애쓰면서 보니,

옥타비우스 보다는 '브루투스'가 오히려 멋지다.

브루투스라 함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죽음의 순간에 '브루투스 너마저도'했던 그 브루투스이다.

 

그동안 난 브루투스를 반역을 꿈꾼 포악한 정치가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도덕적'이라는 관점에 있어서는 사람들에 따라 입장이 다를테니 차치하고,

행동가이기 전에 학구적이었던 것 같다.

변론가로서도 명성이 높았고 정치적·철학적인 작품의 저자로도 유명했다는데,

따로 그의 작품으로 남아있는 것은 없고 서신만 몇 편 존재한다니 아쉽다.

 

이 소설 속에서 브루투스가 옥타비아누스에게 보낸 서신을 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지금의 지위가 얼마나 위중한지 자네가 제대로 이해할 것 같지는 않구먼. 내게 애정이 남아 있지도 않겠지. 나 또한 바보가 아니니 자네를 걱정하는 척 위선을 부릴 생각은 없네. 이 편지를 쓰는 이유도 자네가 아니라 이 나라를 걱정해서일세. 안토니우스는 미친놈이니 편지를 받을 수 없고 레피두스는 멍청이라 편지를 이해조차 못할 터이니. 자네는 미치지도 않고 바보도 아니니, 내 마음에 귀를 기울여주리라 믿네.(116쪽)

 

암튼, 원로회 의사록과 개개인의 일기를 보니,

미신과 점성술, 예언가나 주술가 따위가 그 시대, 그 국가에도 성행했었나 본데,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독재의 시대'에는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들이 기승을 부리나 보다.

나처럼 긍정적이 못해 맨날 투덜거리는 투덜이 스머프 같은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며 감정이입을 하다가 뒷목을 잡고 뒤로 넘어갈 수도 있으니 조심 또 조심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다보면,

나라를 잘 다스리고 세력을 튼튼히 하여 로마 제국 전역으로 확장시킨 카리스마 짱 넘치는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한명의 철학자 내지는 선각자를 만나는 기분인데,

이건 왠지 스토너 교수를 닮은 듯도 하고, 존 윌리엄스 작자 본인을 닮은 듯도 싶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의미가 없어질수록 세월을 버텨낸 힘에 대해서까지 점점 회의가 든다네. 인간이야 운명을 향해 발버둥친다지만 신들은 분명 그런 미천한 존재들한테 관심조차 없다네. 신탁도 모호하기 짝이 없기에 결국 그 예언도 직접 뜻을 헤아려야 하지. 사제 노릇을 할때도 난 짐승 수백 두를 잡아 내장과 간을 실험했고, 그 결과 설령 신들이 실존한다 해도 인간사에 개의치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네. 그래서 내가 사람들한테 로마의 고대 신을 따르라 부추겼다면 그건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필요 때문이었네.(382~383쪽)

위 문단을 곱씹어보게 되면 알 수 있듯이,

아우구스투스 이기 전에 옥타비우스였던 그는 정치적이지도 않고 종교적이지도 않고,

"우리는 승리가 아니라 삶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26쪽)의 그것처럼 살기 위한 여정이었을 수도 있다.

 

ㆍㆍㆍㆍㆍㆍ어차피 사람은 혼자일 수밖에 없다네. 아무리 초라하다 해도 본질을 넘어선 그 누구도 되지 못해. 나는 지금 말라빠진 정강이, 쭈글거리는 손, 세월에 얼룩지고 처진 살갗을 보고 있네. 한때 이 육신이 그 자체에서 벗어나 타인의 육신에서 위안을 찾으려 했다니 우습기까지 하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혹자는 쾌락의 찰나에 온 생을 걸고는, 육신이 말을 듣지 않으면 괴로워하고 외로워하지. 그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는, 육신이 아닌 것이 오로지 쾌락뿐이건만, 그 쾌락이 어떤 의미인지조차 모르기 때문이야. 오히려 우리 믿음과는 달리, 성애란 그 무엇보다도 이타적이라네. 타인과 하나가 되어 스스로를 탈피하려 하기 때문일세. 그 때문에 대부분 가장 저급하다고 여기네만 성애도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네. 성애가 더욱 소중한 이유는 우리가 그 사실을 알기 때문이야. 하지만 일단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자아에 갇히지도, 자아 속으로 쫒겨나지도 않는다네.ㆍㆍㆍㆍㆍㆍ동성애는 내가 볼 때 육체적 쾌락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네. 동성의 몸을 애무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애무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야.오컨대 자아의 탈출이 아니라 자아로의 구속이라는 뜻이라네. 친구를 사랑할 경우 자신을 타자화할 수 없어. 온전히 자신으로 남아, 될 수도 없고, 되어본 적도 없는 자아의 신비를 관조해야 하지. 아이를 향한 사랑은 이 신비에서도 가장 순수한 형식이라네. 아이의 내면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잠재력이 많은데다, 가장 극단에 있는 자아가 관찰자로부터 분리되기 때문이라네.(384~385쪽)

 

존 윌리엄스의 전작 '스토너'도 그렇고 요번 '아우구스투스'를 읽고 느낀 점은,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다.

스토너가 학문을 광적으로 사랑하거나,

아우구스투스에게 전쟁을 불사하는 독재자나 폭군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 가 아니라,

나름 자기자신에게 집중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모르겠다.

다른 이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어낼지 모르겠지만,

난 이 책이 별로였던 이유를 내 자신에게서 찾아야할 듯 싶다.

이 책을 읽을 깜냥이 아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단 가랭이가 찟어진다는 말은 적절한 비유가 아니라고 툴툴거린다.

뱁새도 황새도 조류여서 날개로 날아가면 되는데, 굳이 종종 거리면서 걸어가다가 가랭이가 찟어질 일도 아니다.

 

때문에 '부루투스, 너마저도'했던 부루투스를 멋지다고 설레발을 칠 수도 있는 것이고,

거기서 '브로콜리 너마저도'를 유추해 낼 수도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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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6-09-02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마지막 브로콜리 너마저에서 빵 터졌어요!

양철나무꾼 2016-09-03 09:46   좋아요 1 | URL
따뜻한 유자차 한잔으로 시작하고 싶은 아침입니다~^^

저 브루투스 멋지다고 했다가, 친구한테 엄청 욕먹었어요.
아무리 카이사르가 폭군이었다 하더라도,
친아버지가 아닌 양부였던 하더라도,
정당화할 수 없다나 어쨌다나~ㅠ.ㅠ

비록 아버지가 잘못했다 하더라도 자식은 아버지를 편들어야 한다...해가면서 공자를 인용하는데,
저 죽는줄 알았어요.

전 소설을 읽은 것이고, 소설 속 브루투스가 멋지다는 것인데 말이죠.
근데 소설 속 브루투스의 저 말, 쫌 멋지지 않아요?^^

2016-09-02 17:14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09-03 09:58   좋아요 1 | URL
충분히 좋았고~,
님의 선물이어서 가치가 배가 됐습니다.

어제 텔레비전에서 `나혼자산다`를 보는데, 전현무랑 기안84가 그러더라구요.
악플에 상처받았다고요.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그렇지만 악플보다 더 나쁜게 무플이라구요.

이런 리뷰도 마찬가지일거예요.
비판은 장기적으로 봤을때 출판사를 성장시키는 것이고,
그 성장은 독자에게로 되돌아 오리라 믿습니다~^^

좋은 책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ㅅ!

[그장소] 2016-09-02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목조목 신랄한 글 ㅡ잘 읽고 가요~^^
거침없어 시원한 ~~^^

양철나무꾼 2016-09-03 10:13   좋아요 1 | URL
맵더이까, 쓰더이까?ㅋㅋㅋ~.

장렬했던 여름이 전사한 느낌이예요.
독서의 계절 가을이 왔습니다.
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책을 읽어보자구요~^^

[그장소] 2016-09-03 20:19   좋아요 0 | URL
저는 간이 고른게 맵짜고 칼칼한거 좋아해요!^^

초딩 2016-09-02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대상, 시대가 듣고 싶은 이야기, 강제하고 싶은 이야기. 그렇게 상을 받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 속으면 안되는데 ㅎㅎㅎ
개츠비도 같은 맥락이라고 슬쩍 내밀어 봅니다.

양철나무꾼 2016-09-03 10:16   좋아요 1 | URL
아, 맞아요.
개츠비도 그런 듯 해요~^^

하지만 개츠비는 디카프리오 땜에 다 용서할 수 있어요.
완전 후덜덜한 외모고 연기였잖아요~^^

초딩 2016-09-03 10:1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네에 디카프리오 맞네요 ㅎㅎㅎ
좋은 주말 되세요~

르마루 2016-09-02 19: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아우구스투스 담당자입니다. 평소에 양철나무꾼 리뷰들을 즐겁게 읽는 팬이에요. 아우구스투스는 특히나 좋은 평 받고 싶다 생각했는데 찬찬히 읽다보니 느끼시는 부분들이 이해가 갑니다. 저는 담담하고 재미있게 읽어내려갔는데 소설은 역시 여러 분들이 많이 읽으시고 각각 느끼시는 부분이 달라서 재미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오탈자 부분은 제가 잘 살피지 못했네요. 잘 살피고 다음 쇄 때 수정 반영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리뷰 많이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양철나무꾼 2016-09-03 10:26   좋아요 1 | URL
불쾌하셨을 수도 있을텐데, 이렇게 호의적인 댓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위 댓글에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이 모두가 이 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다른 표현이니까 이해해주실거라 믿습니다~^^
귀사와 귀하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구픽 출판사 낯설어서 검색해보니, 올 1월 신생이더군요.
저 한때 장르소설에 열광했었는데, 아무래도 종종 넷상에서 리뷰로 만나게 되겠군요.
그렇지 않아도 감정선을 따라가는 장르소설을 좋아했었는데,
존 코널리도 출간 예정이시더군요.

감정선을 따라가는 장르소설로, 존 카첸바크 출간해 주실 의향없으신지?
완전 강력 추천이요~^^

르마루 2016-09-03 17:09   좋아요 2 | URL
실은 예전 회사에서 마이클 코넬리를 오랫동안 담당해서 그때 좋은 리뷰 써주신 것도 기분 좋게 보고 그랬습니다. 스토너도 그곳에 있을 때 저희 팀에서 출간한 책이라 좋은 리뷰 보고 아우구스투스도 좋게 보셨으면 좋겠다, 기대를 했고요. ㅎㅎ 앞으로 구픽에서 존 코널리와 기타 좋은 작가들도 소개하려고 하고요. 존 하트 작가의 책도 곧 출간됩니다. 카첸바크도 잊고 있었는데 말씀해주시니 다시 검토해봐야겠네요. (그러고 보니 존 윌리엄스-존 코널리-존 하트에 만약 말씀하신 존 카첸바크까지 더하면 존들만 계속...)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cyrus 2016-09-02 1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표지만 있는 페이퍼보다 읽고난 뒤 책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밝힌 리뷰가 좋습니다.

양철나무꾼 2016-09-03 10:29   좋아요 0 | URL
저 이렇게 주제 넘는 짓(?) 했다가 벌써 몇번이나 욕먹었었잖아요~^^

하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멈출 수 없는 이유는
책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고 소심하게 고백해 봅니다~--;

cyrus 2016-09-03 14:43   좋아요 0 | URL
누가 우리 양철나무꾼님을 욕한답니까? 밑에 시이소오님 댓글의 답글에 있는 링크를 확인했는데요, 예나 지금이나 비회원 계정으로 남을 비판하는 건 정말 쉽군요. 자신의 비판이 맞으면 떳떳하게 닉네임을 밝히고, 비판 내용의 문제점이 있으면 정중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이 어려운 가 봅니다.

양철나무꾼 2016-09-08 14:50   좋아요 0 | URL
처음부터 비회원 계정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고,
도깨비 방망인가, 그런 닉으로 들어왔던 그 책 편집자였던 걸로 기억해요.

본인이 편집한 책에 열정을 드러내는 것은 좋지만,
그러기 위해선 본인이 실력을 키우는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꼽으라면, 독해능력을 키웠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봅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어떤 뜻과 의도에서 쓴 리뷰라는거 충분히 알 수 있을테니까 말예요~^^

요즘은 보면 출판사도 그렇고 이런 서점도 그렇고 독자도 그렇고,
불황이라는 이유만으로, 잔뜩 독기만 머금은거 같아서,

출판사나 서점, 독자 모두 윈윈하는 존재가 아니라,
제로 썸 게임을 하는 것 같아,
아니, 모두들 제 살 깎아먹기인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ㅠ.ㅠ

시이소오 2016-09-02 2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원문비교독서시라니, 번역하시는분들 정신이 번쩍들겠네요. ^^

양철나무꾼 2016-09-03 10:55   좋아요 1 | URL
제가 좋아하는 책을 향하여 과욕을 부리다보니,
때론 오지라퍼로 발현되기도 하더군요.

저를 이해해주시는 호의적인 출판 관계자 분들도 계시지만, 때론 욕을 먹기도 하죠.
전에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http://blog.aladin.co.kr/745144177/4538065

지금행복하자 2016-09-02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신랄한 비판. 읽으면서 감안해야겠어요~ ㅎㅎ

양철나무꾼 2016-09-03 10:59   좋아요 1 | URL
저와는 다른 입장에서 바라보실 수도 있을 거예요.
세상에 수많은 사람만큼 수많은 다양한 입장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어여 읽고 리뷰 남겨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2016-09-04 11:44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08 14:41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6-09-04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시우스의 부추김으로 시저를 암살한 부르투스의 흑역사마저 수용? ㅎㅎ
존 윌리엄스의 뚝심으로 아우구스투스를? 하며 약간 기대됐는데 양철나무꾼님 평이 이래서 의외....

양철나무꾼 2016-09-08 14:41   좋아요 0 | URL
바닷가의 수많은 모래알들처럼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존재하고,
제각각 개인적인 감성과 취향이 맞물려 책이 다른 의미와 느낌으로 다가오는게,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트라이 투 해보셔도, 후회 안하실거예요~ㅅ!

제가 별 셋 미만은 리뷰로 안 쓰는데,
별 하나인데도 리뷰를 쓴 적이 딱 두번 있었습니다.

하나는 왕꽃선녀님 류의 책이었고,
다른 하나는 4대강 찬성 류의 책이었어요--;

asnever 2016-10-03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이 비슷한 것 같아서 주제넘게 링크를 걸어봅니다.

http://asnever.blog.me/220825922818

양철나무꾼 2016-10-06 10:58   좋아요 0 | URL
평소 님의 열정과 노력 참 멋지다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네이버 블로그는 하지 않아 인사를 남기지 못했었습니다.

이리 주소를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__))
 

어렸을땐 세상을 잘 못랐었다.

국민(=초등)학교 땐 선생님들이 너무 좋아해서 선생님들은 화장실도 안 가고 잠도 안 자고 그러고 살 줄 알았다.

시인들을 향하여서도 비슷한 환상을 품고 있었는데,

시 속의 언어처럼 예쁜 말만 하고 시 속의 삶처럼 그렇게 예쁘게 살 줄로만 알았다.

 

세월이 흐르고 나도 나이를 먹고 삶을 살면서,

이젠 선생님들도, 시인들도,

환상을 품고 꿈만 꾸는 것이 아니라,

지지고 볶고 그렇게 그렇게 삶을 사는 존재들이란 걸 알게 되었다.

 

당신들이 산 삶의 경험과 체험들을 함께 나누려고 선생님을 하고 시를 쓰는 것일 게다.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

고기잡는 법을 알려줘야지 고기를 잡아줘선 아무 쓸모가 없다는 걸 알지만,

때론 함께 하는것만으로 위로가 된다는 걸 알고 실천에 옮긴 이들이 아닐까 싶다.

 

 

 

 

 집에 가자
 김해자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5년 6월

 

'김해자'라고하면 '데드슬로우'란 시에 익숙해 있던 나는,

요번 시집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알던 그 '김해자'가 맞나 하고 갸우뚱했었다.

시를 통해서 느끼게 되는 정서가 무게 잡지 않는 것이 가볍고 경쾌하지만,

그렇다고 태양을 향해 날아들어 소진하고 녹아내리는 밀랍인형같은 것이 아니라,

인생 살아보니 뭐 별거 없더라 하는 달관의 경지에서 비롯된 가벼움 같은 것이었다.

시들도 그랬다.

어려운 말을 쓰거나  시적인 수사법을 일부러 구사한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느 시보다도 큰 감동과 진한 여운을 주었다.

니가 좋으면

가끔 찾아와 물들이는 말이 있다

두레박 만난 우물처럼 빙그레 퍼져나가는 말

전생만큼이나 아득한 옛날 푸른 이파리 위에

붉은 돌 찧어 뿌리고 토끼풀꽃 몇 송이 얹어

머시마가 공손히 차려준 손바닥만한 돌 밥상 앞에서

이뻐, 맛있어, 좋아,

안 먹고도 냠냠 먹던 소꿉장난처럼

덜 자란 풀꽃 붉게 물들이던 말

덩달아 사금파리도 반짝 빛나게 하던

니가 좋으면 나도 좋아,

말한 게 다인 말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말

나만 얻어먹고 되돌려주지 못한

니가 좋으면 나도 좋아,

붉은 돌에 오소록 새겨진

평범한 일상이고,

그런 일상에서 포착해낸 평범한 단어들인데,

적재적소에 자리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건 있어야 할게 제자리에 있는 거란다.

 

지그시

소나기 몇 줄금 지나간 어스름 옥수수 몇 개 땄지요 흘

러내리는 자주와 갈칠 섞인 수염, 아무렇게나 겹겹 두른

거친 옷들 한 겹 두 겹 벗기다 그만 그의 연한 병아리 빛

속 털 보고 만 것이네 무게조차도 없이 그저 지그시, 알

알 감싸고 있는 한없이 보드라운 속내 만지고 만 것인데

요, 진안 동향면 지나다 왜가리숲 아주 오랫동안 바라본

적 있어요 소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왜가리들, 꼼짝 않고

있는 새들은 모두 알을 품고 있었죠 폭우가 쏟아져도 한

자리에서 지그시, 입과 날개 거두고 지그시, 소중한 것

깊이 품어본 자들은 알죠 왜 한없이 엎드릴 수밖에 없는

지, 왜 한사코 여리고 보드라워질 수밖에 없는지, 왜 하

염없이 그를 감싸줄 수밖에 없는지, 사랑은 그런 것이다,

지그시 덮어주는 일에 골몰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게 사랑

이다, 혼자 중얼거리며 온갖 생각도 지우고 지그시, 중얼

거림도 멈추고 그냥 지그시

'지그시'라는 시도 좋다.

시가 어쩜 이렇게 순하고 맑을 수가 있는지,

어떻게 이토록 여리고 보드러워질 수 있는지,

이 시를 생각하면 중얼거림도 노래가 되고, 중얼거리다 멈추는 것도 춤이 된다.

왼손이란 시는 또 얼마나 멋진가 말이다.

왼손

오른손으로 김치찌개를 푸다 왼손에 엎질렀다

오른손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하라 했는데

글렀다, 오른손이 한 짓 왼손도 알아버렸을 게다

벌겋게 부어오른 자리가 쉬지 않고 욱신거리므로

생각해보니 다친 손은 대부분 왼쪽,

사과 깎다 칼에 찔린 것도 왼손 엄지고

못질하다 망치에 두드려 맞은 것도 왼손 검지

오른발이 미끄러졌는데도 부러진 건 왼쪽 손목 아니었나

내 짓 생각해보더라도 제 손으로 제 손 찍는 일

이 행성에선 드물지 않다 내가 잠시 살아본 오른손잡이

세상에선 칼 쥔 오른손에 왼손이 자주 베이고 피 흘렸다

상한 왼손에 성한 오른손이 약 바르고 방대 감아준다

할 일 대충 마친 오른손이 볼펜 잡고 글도 못 쓰는

왼 손을 잠시 바라본다 친친 감겨 입까지 틀어 막힌

왼손이 불뚝거리고 있다

합일

거기, 밖이 무너지고

여기, 안으로 삼켜져

눈 감는 음저를

거기까지 너였다,

여기까지 나였다,

경계가 차츰 무뎌지고 무너지다

문득 모든 말들이 끊긴다

하지 못한 말,

이미 한 말,

들이키고서야 합쳐지는 입과 입

여기서부터 검은 숲,

침묵이 범람한다

말하면서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

나조차 잊어버려야 나로 돌아갈 수 있다

너조차 잊어버려야 너에게 들어갈 수 있다

'합일'이라는 시는 '날선 울음'이라는 시와 닮았다.

'날선울음'의 마지막 연은 이렇게 끝난다.

 

내가 가진 것만 잃어버릴 수 있다

나인 것은 도저히 잃어버릴 수가 없다

가진 것은 더하거나 잃어버릴 수 있지만,

체화하여 내 안에 들인, 나 자체는 잊어버릴 수는 있어도 잃어버릴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욕심부리지말고 겸손하게 살아야 겠다.

 

김해자는 시만 좋은 것이 아니라, 수필도 멋지다.

수필이란 붓가는대로 쓰는 글이라는데,

그것이 시든 수필이든 간에,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건 나름대로의 진정성을 가지고 있어서 멋진 것인가 보다.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
 김해자 지음 / 아비요 /

 2013년 7월

 

요즘은,

집 안에 쌓아둔 책을 정리하고 버리는데 집중하다보니,

책이 안 읽히고 비껴가기만 한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겠지 싶어 집어든 책들이었는데,

책의 무게가 가벼웠을 뿐이었고,

의외로 진하고 강한 여운을 주는 책들이었다.

 

책구매를 최대한 자제하다보니, 알라딘 서재 마실도 뜨문뜨문이다.

오래간만에 책 마실을 다니다가 이런 책을 발견하였다.

아무리 자제를 해도 이런 시집의 구매까지 자제할 필요는 없고, 자제해서도 안 되지 싶다.

 

 

 

 

 그 쇳물 쓰지 마라
 제페토 지음 / 수오서재 /

 2016년 8월

 

 

 그마음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
 정여민 시, 허구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6년 8월

 

요즘 내가 열쉬미 듣는 앨범'페이퍼컷 프로젝트'

 

 페이퍼컷 프로젝트 - 1집 불공정연애
 페이퍼컷 프로젝트 (Papercut Project) 노래 /

 미러볼뮤직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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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8-24 1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을 분량이 조금 되어서 일까요 ..먼저 ,,,선 댓 후 감...하겠습니다.^^..

아무튼, 시인들은 존재의 감성특공대^^...혹은 감성 선발대....아닐까 싶어요..
유난히 삶에 대한 촉수가 민감한 감도가 있는 분들이니까요..

흔히 저처럼 무덤덤한 것들에게 까지 세밀한 농도의 감각 촉수를 내미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좋은 시가 많아서 엄지척!~

양철나무꾼 2016-08-24 16:18   좋아요 3 | URL
yureka님이 무덤덤하시다구요?
동의할 수 없습니다~ㅅ!

그럼 님의 사진이나 페이퍼에 매번 감동을 받는 전~
넘쳐나서 질질 흘리고 다니는 걸까요? 으허엉~ OTL

님에게 적절한 수식어가 생각났는데,
감정 깡패 어떠세요~ㅅ?
(자신을 과소평가한 벌입니다여~!ㅎㅎ)

yureka01 2016-08-24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감정 깡패..완전 웃었습니다..ㅋ 뭐 감정 말미잘 쯤 했으면 좋겠...촉수가 흐느적흐느적 ㅋㅋㅋ ^^ 덕분에 웃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양철나무꾼 2016-09-02 16:13   좋아요 0 | URL
이 한 몸 망가져 웃음을 드릴 수 있다면야, ㅋ~.

2016-08-24 17:13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02 16:14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8-24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집은 얇고, 가볍고, 무엇보다도 가격이 싸니까 많이 살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첫 문장에 오타가 있어요.

양철나무꾼 2016-09-02 16:16   좋아요 0 | URL
시집을 사면서 감성의 수혈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저렴한 가격으로 감정적으로 호사를 누리는건, 시집이 으뜸아닐까 싶어요~^^

2016-08-24 20:35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6-09-01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쇳물 쓰지마라 에 실린 시인 제페토님 .. 오래전에 인터넷 찾아가면서 열심히 읽었었는데 시집으로 나와서 저도 너무 반가왔어요. 시를 잘 이해하지 못하긴 하지만, 뉴스와 연결되어 있어서 더욱더 절절함이 느껴졌었어요~

저는 부모님이 선생니이셔서, 그런 신비감은 없었는데, 부모님(엄마만)이 선생님 같았어요. 마주치면 뭔가 잘못한 거 같아서 슬금슬금 피하고 싶은 ㅋ

양철나무꾼 2016-09-02 16:33   좋아요 0 | URL
제가 님을 어떻게 유추했느냐 하면, 리뷰 쓰는 문체 때문이었어요.
문장과 단락을 나누는 솜씨도 그렇지만, 길게 늘어지지 않고 간결하고 단정한 느낌.

부모님이 선생님이셨다고 하셔서 드리는 말씀인데,
님은 왠지 일상도 간결하고 단정할 것 같다는, 헤에~^^

짧게 쓰는게 더 힘든 저로서는 마냥 부러울 뿐이랍니다~ㅅ!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너무 많다.

'파트릭 모디아노'라는 작가를 인식하게 된 건 재작년인가 노벨 문학상 때문이었겠고,

나와 독서 취향이 비슷한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했었고,

책을 추천해주는 여러 사이트와 이동진의 '빨간책방'이라는 팟캐스트에서도 소개되어 집어 들었지만,

책을 펼치고 몇 쪽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내 귀가 팔랑귀인건 아닌가, 또는 나의 독해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들로 혼란스러웠었다.

사람들은 김화영의 번역이라고 하면 찬사를 아끼지 않던데, 나는 어쩐 일에선지 자꾸 삐그덕거리고 엇나가기만 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반양장)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마저 읽을 것인가 집어던질것인가 고민하며 책을 팔랑팔랑 뒤로 넘기던 중,

끝부분 김화영의 '해설'과 맨 뒤 도서 정보를 살펴보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는데,

내가 가진 것은 개정판 5쇄(2013년 8월 21일)였는데,

2010년 4월에 김화영이 쓴 해설을 보면 그가 파트릭 모디아노를 처음 번역 소개한 것은 1978년이었단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흘렀고, 그사이 널리 알려졌고, ㆍㆍㆍㆍㆍㆍ이제 수십년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새로운 번역으로 새로운 독자들에게 이 매혹적인 소설을 다시 내보내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271쪽)'고 소회를 밝히고 있는데~--;

 

책을 읽으며 1978년에 처음 번역이 된 후로 한번도 손 본 일이 없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었다.

백번 양보하여, 2010년 해설을 쓸 당시에 먼지만 떼어내고 새로 번역을 하지 않았던건 아닌가?

그런데 관점을 조금 바꾸니,

번역을 새로 하려고 시도는 하였으나 시늉에 그친 것이어도 그렇지만,

제대로 번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어도, 우울하긴 매한가지다.

 

불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내가, 번역을 가지고 툴툴거리니 의아해 하겠지만,

사실 내가 딴지를 거는 것들은 번역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것들이다.

 

가장 흔한 것이, 용어 사용 방식이 일관되지 않은 것이다.

제목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도 책을 다 읽고난 후라면 '어두운'보다는 '희미한'이나 '아련한' 따위가 적절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미묘한 어감은 차치하기로 하자.

폴 두메르 가(街)(10쪽)

아나톨 드 라 포르주 가(16쪽)

부티크 옵스퀴르 가(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188쪽)

를 보면 알겠지만,

어디에는 원어를 소리나는 그대로 적었고, 어디에는 억지로 우리말로 번역하는 방식을 취하는데,

이 둘 사이엔 아무런 일관성도 없어 보인다. 즉, 마음대로다.

 

처음 9쪽의 '우유빛의 전등 불빛'이, 77쪽에서 젖빛 램프로 번역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놀라웠던 건, 이 책 전반에 걸쳐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장치일수도 있는 '전화번호부와 연감'을 나중에는 '사교계신사록' 또는 '신사록'이란 용어로 번역해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지난 오십년 동안의 각종 전화번호부들과 연감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그것들은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필요 불가결한 작업도구라고 위트는 몇 번이나 내게 말하곤 했었다. 그 전화번호부들과 연감들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귀중하고 가장 감동적인 도서관을 구성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 페이지마다에는 오직 그것들만이 증언할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사물들과 세계들이 분류되어 있기 때문이었다.(10쪽)

 

나는 옛날 전화번호부들, 그리고 그보다 좀더 근래의 것들을 열람하면서 발견되는 것이 있을때마다 노트를 한다.ㆍㆍㆍㆍㆍㆍ이런 것이 기록된 사교계 신사록은 삼십여 년 전 것이다.(77쪽)

내 앞에는 신사록들과 전화번호부들이 가지런히 꽂힌 선반이 있다.(106쪽)

 

그애를 안 적이 있으세요?(136쪽)

같은 경우는 번역할때 흔히 보게 되는 오류이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불어번역자라고 일컬어지는 그에게선 보고 싶지 않은 문장이었다.

 

나는 건물의 문을 지나서 시간제한등을 켰다. 낡은 바닥돌이 검은 색과 회색의 장미 무늬였던 복도, 쇠로 된 그물, 받침벽, 노란 벽의 우편함들, 그리고 여전히 풍기는 저 돼지기름 냄새.(141쪽)

위 문장에서 '시간제한등'이란 단어도 생소했지만, 앞뒤에서 수식해주는 말들이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서 더 모호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120쪽)

심근은 불수의근인데 내가 마음대로 두근거리게 할 수 있을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쯤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소소한것까지 따지다보면 한두 가지가 아니니,

용어 사용 방식을 통일시키지 않은 것과 어법과 관련된 기본적인 것 몇 가지만 언급하였다.

 

이런 것들부터 어긋나 버리니, 아무리 좋은 소설이라고 할 지라도 내용을 알아먹을 수가 없고 감정이입 될 턱이 없다.

한국 문학의 국제화나, 외국 문학의 한국화가 갈 길은 멀고도 요원하기만 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한강의 '맨부커 인터네셔널 상'수상은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분위기를 바꾸어,

종편의 텔레비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인기였던 건 잃어버린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미로처럼 좁은 비탈길이나 골목길을 이리저리 걷다보면 막다른 골목이 나오고,

그 좁은 골목에 담장과 대문을 나란히 하고 고만고만 집들이 있고, 고만고만한 동네 꼬마 녀석들이 있었다.

누구네 집 쌀독이 비었는지, 누구네 집 숟가락 젓가락이 몇 개인지 동네 통장이나 반장이 아니어도 훤히 알았고,

동네 어귀의 평상은 온갖 '~카더라'하는 소문의 진원지가 되기도 했지만,

혼자 외로움에 몸부림을 치거나 먹을게 없어 배곯아죽는 야박한 인심은 피해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언제부턴가 1인 가족이 특별할게 없는 삶의 형태가 되었으며,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의 형태라고 하더라도 하루에 1,2끼 정도 혼자 밥먹는 것은 너무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주거형태도 변하여 아파트, 빌라, 다세대 다가구 주택, 원룸 뿐만 아니라,

고시원이나 쪽방촌 등 특수한 주거형태에 사는 사람도 많아졌고,

그 사람들 모두를 이웃으로 일일이 기억하기엔 역부족이다.

 

때로 어린 아이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거나,

마무것도 기억 못하는 치매어르신들의 해맑은 얼굴을 보면,

오히려 부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억해야만 하는 정보들이 넘쳐난다.

 

이 책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작중 화자인 '기 볼랑'과 탐정 '콘스탄틴 폰 위트'는 생애 한부분의 기억을 잃어버린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간판은 흥신소라고 되어 있고, 호칭은 탐정이라고 되어 있는 묘한 번역이다.홍신소는 소장이고, 탐정사무소는 탐정일것 같은데, 끙~(,.))

난 1987년에 고딩이었던 고로, 6월 10일 무렵의 우리나라 상황을 최근에야 비교적 자세히 들었는데, 

이 책의 그것들과 닮은 듯도 하고,

어찌보면 요즘 우리나라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해 내고 있는 듯한 착각에도 빠져드는 것이,

두번의 큰 전쟁의 정점에 있었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전쟁과 망명자, 국경, 위조된 여권 따위는 자유, 민주주의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고,

1987년 6월의 우리나라는 독재와 외력에 항거하는 그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이 소설은 그 전쟁으로 인한 폐해의 한가지를 쟁점으로 하고 있고,

어떤 의미에서, 우리나라는 아직도 전쟁이 진행중인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이 책에 나오는 '기 롤랑'이라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려는 시도를 하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오히려  '콘스탄틴 폰 위트'처럼 어디 휴양 도시에서 말년을 조용히 늙어가는 쪽을 택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기 롤랑이 어떤 이유에서 기억을 잃어버렸는지 모르지만,

기억을 잃어버린 것과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아니, 이전의 기억들을 잃어버리는 것이 어쩜 살아가는데 더 편리하거나 유리하기 때문에,

그의 무의식이 그로 하여금 기억을 잃어버리는 쪽으로 사주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위트는 기억상실증에 걸려 안개 속을 더듬거리는 그에게 기 롤랑이라는 신분을 만들어 주고,

'지금부터는 뒤를 돌아보지 말고 현재와 미래만을 생각하라'고 했지만,

은퇴 후  니스로 가서 어린 시절을 하나하나 되살리게 되면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한 당신의 말은 옳았습니다'라는 편지를 보내게 되고,

기 롤랑의 지난 기억을 찾을 수 있도록 조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 두 사람의 말은 모두 맞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모두 틀리기도 하는데,

삶에 있어서 '기준과 방향성'이 같이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은 청춘들에게는 과거를 되돌아보는 건 잠시 미뤄 두어도 좋겠다.

지금 현재, 여기에서, 이 순간을 살면 되는 것이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도, 언제일지 예측할 수 없는 미래도, 연연해 하는 순간 집착이 되어 버리니까 말이다.

 

하지만, 은퇴 후, 아무리 아름다운 도시에서라도, 하루하루가 똑같은 모습으로만 흘러간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겠다.

거리를 가다가 우연히 삼십 년이나 못 보았던 사람이라든가 죽은 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면,

안개속을 더듬는 듯한 흐릿한 기억도 쓸모가 있을 지 모를 일이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또 한가지, 인간이란 제 멋대로인 존재들이어서, 자신이 바라보고 싶은 것을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려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들은 진정한 나이며,

타인이 보는 나는, 과연 나의 본 모습일까?

우리는 엄청나게 큰 코끼리를 눈 감고 만지면서,

누군가는 코끼리의 다리를, 누군가는 코끼리의 코를, 누군가는 몸통을 만지면서, 코끼리 전체라고 우기는 눈뜬 장님들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타인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지랖 넓게 너무 깊숙히 관여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들이 보는 사람이 기 볼랑이 찾는 그 사람이라는 정확한 근거가 없으면서도 섣부르게 판단해 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상처를 꽁꽁 사매서 곪아터지게 할 것이 아니라,

잘 소독해주고 바람도 통하고 세월의 더께도 앉게 해주고,

딱지도 앉았다 떨어지고,

그리하여 나무에 단단히 박힌 옹이처럼 고통을 이겨낸 자리마다 굳은 살로 자라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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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84년에 나온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번역본
    from 개썅마이리딩 2016-06-11 11:44 
    작년 헌책방에서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번역본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번역본 제목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입니다. 누구나 제목만 보면 프루스트의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책 뒤편에 소설 원제가 있습니다. ‘Rue Des Boutiques Obscures’ 사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원작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1984년 한국출판공사에서 나온 번역본입니다. 펼쳐 보면 세로쓰기로 되어 있습니다. 지
 
 
서니데이 2016-06-10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원서는 번역본이 여러 권 나와있었으면 좋겠어요. 같은 원문이라도 번역자에 따라 조금 느낌이 다를 때가 있어서요.^^
양철나무꾼님 좋은밤되세요.^^

양철나무꾼 2016-06-11 09:31   좋아요 1 | URL
좋은 아침이예요~^^
전에 까뮈의 이방인 때도 그랬지만, 기존의 번역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게 학계의 관행인가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참 편하네요.
이쪽으론 학계라고 할만한 학맥이 없어서리~, ㅋ~.

시이소오 2016-06-10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꼼한 독해시네요. 전 다른 번역본을 읽었는데, 별 감흥은 없었어요. `심근의 불수의근`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김화영 역자,실망스럽네요. 양철나무꾼
님 말씀대로 재번역이 필요할것같습니다 . 문동 문학전집에 대한 판타지가 깨지네요.
리뷰, 잘 봤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6-06-11 09:43   좋아요 0 | URL
얼마전 까뮈 `이방인` 이정서 역으로도 읽으신것 같던데요.
어떠시던가요~?^^

학계의 원로라는 이유만으로 기존의 번역을 신성불가침의 그것처럼 생각하는 건 재고의 여지가 있어요.

심근의 불수의근이라 함은,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120쪽)`에서,
심장은 내가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고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근육이 아니라는거죠. 심장은 움직임을 멈추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말예요, ㅋ~.

그러니까 `나는`이라는 주어를 빼주던지, `나는`을 넣고 싶었다면 심장이 움직이는걸 느끼며 정도로 바꿔줬어야 한다는 의미였는데, 너무 어려운 용어를 고른 저도 설명에 인색했네요, 죄송~(__)

문학동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으로 만들어내는 품이나 적극적인 마케팅 따위는 타의추종을 불허하죠~^^


시이소오 2016-06-11 09:47   좋아요 0 | URL
이정서 역에도 문제가 많아서 설득이 안되던데
양철나무꾼님 설명에 설득되네요. ^^

양철나무꾼 2016-06-13 16:13   좋아요 0 | URL
저도 이정서 의 이방인이 완전 잘된 번역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나라 출판 번역계의 정서가 뭐랄까,
그런 것에 대해 감추고 쉬쉬하는 걸 관행으로 했다면,
이정서의 그것은...과거의 그런 것에서 탈피했다는 걸 높이 사고 싶었던 것입니다.
일종의 `내부고발자`라는 개념으로 보고,
`죄가 없는 사람만 돌을 던질 수 있다`는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여러종류의 다양한 시도를 용인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발전할 수 있는 것이겠죠~^^

시이소오 2016-06-13 16:29   좋아요 0 | URL
이정서 씨가 번역 관행의 문제를 좀 더 부각시켰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워낙에 자아도취적인 글이어서 본질이 왜곡되어 보였거든요.
양철나무꾼님, 말씀을 들으니 역자의 과보단 공을 더 높이 사야할것 같네요.^^


cyrus 2016-06-11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헌책방에서 1984년에 나온 <어두운 거리의 상점> 번역본을 만난 적이 있어요. 1978년에도 나온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6-06-13 16:15   좋아요 0 | URL
이런게 헌책방의 묘미이겠군요.
헌책방은 고사하고, 도서관이라도 맘 편히 가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요즘처럼 일에 치여서는 말이죠~ㅠ.ㅠ

루쉰P 2016-06-11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한국의 번역은 신뢰를 하지 않아요 ㅋ 그렇다고 한국작가 책만 읽는 것도 아니에요 ㅋ 번역은 제2의 창작인데 그러고 보면 한강의 상 받은 건 대단한 일이네요 ㅋ 우리는 번역이 제대로 안 되어 있다고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다면 얼마든지 항의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ㅋ 하여튼 집단의 체제안에서는 무얼 못하는 한국의 근성 최악이에염

양철나무꾼 2016-06-13 16:20   좋아요 0 | URL
저도 한국 소설 잘 안 읽는 경향이 있는데, 장르소설은 진짜 우리나라 작가거 안 읽는다, 반성~!__!
제가 이렇게 번역에 민감한 건, 예전에 장르소설 번역 해보고 싶어했어서 그럴거예요, 아마.

전 우리나라 소설가, 예전엔 성석제, 지금은 이기호 좋아하는데, 재밌어서 이지만,
성석제에서 이기호로 갈아탄 이유는 재밌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어서예요~^^

교주님, 날 더운데 잘 지내세요?
쉬이 지치지 않게 우리, 힘내자구요~ㅅ!

세실 2016-06-12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번역가, 대출판사라면 무조건 믿고 보는 저! 반성합니다^^ 비판적 독서력이 부족해요. 역시!
이 책 읽다 말았지요.

양철나무꾼 2016-06-13 16:26   좋아요 1 | URL
전 지금 `다시, 책은 도끼다`를 읽는데, 거기서 박웅현이 그래요.
`모든 위대한 작가들은 다량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소량의 언어를 사용했다`고요.
그러고 보면, 책을 읽고 체화하는 것까지가 중요할 듯 한데,
그런 의미에서 세실 님은 잘 하고 계실뿐만 아니라, 훌륭하십니다여~^^

2016-06-14 13:19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4 21:48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5 00:54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주역 책을  봤다.

어디선 과학이라고 하고, 어디선 인문학이라고 하고,

각자 다른 용어로 이야기 하고 있지만 같은 얘기라는걸,

결국엔 그게 그거인 얘기를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을뿐이란 걸 깨닫게 된 이후론,

어떤 주역 책을 읽어도 몰입하지 못하고 시큰둥이었다.

 

그래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은,

과학 위의 학문이고 인문학의 최고봉이어서 공자마저 朝聞道夕死可矣라고 했던,

그런 주역의 의미를 헤아릴 수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해석조차 떠듬떠듬이었기 때문이었다.

 

 

 

 

 

 

 

 

 

 

 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인문학
 김승호 지음 / 다산북스 /

 2015년 10월

 

근데 빈수레가 요란하고 나처럼 어설플수록 오지랖은 넓다고, 이 책도 처음 시작했을땐 엄청 툴툴거렸는데,

주역은 인문학이고 과학이고, 의 가부를 나누기 전의 근원적인 것이라 생각하는지라...그 가부 때문이 아니라,

제목은 '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인문학'이라고 해서 '인문학'을 표방하고 있는데,

책 내용은 주역은 과학적인 학문이고 그래서 해외의 '내로라'하는 과학자들마저 주역을 연구하는데 이바지했다, 는 얘기를 처음 60여쪽에 걸쳐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양손 엄지 척'으로도 부족하여,

엄지 발가락까지 가세하고 싶을 정도로 좋다고 설레발을 칠 수 있지만,

제목에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은건 아무래도 요즘 대세라는 인문학의 인기에 편승해보려는 꼼수처럼 보여서 별로였다.

하지만, 이 부분을 꾸욱 참고 넘기면,

주역이라는 학문을 향한 신세계가 열리고 문리가 트이는 것을 경험으로 느낄 수 있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주역 책 가운데 단연코 최고이다.

 

한분야를 꾸준히 연구한 사람에겐 뭔가 범접할 수 없는 그만의 아우라 같은 것이 있나 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1949년 생으로 우리나이로 67세인데,

지난 50년간 과학으로서의 주역을 연구하였다고 한다.

50년이면, 반백년이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한 학문을 강산이 다섯번이 변하도록 연구하였다는걸 보면,

주역이라는 학문도 보통이 아니지만, 저자 김승호 님도 보통은 아니지 싶다.

 

이쯤 되면, 업적은 차치하고라도 숙연해질법도 한데,

이런 책을 만날때마다 만나는 이런 사소한 오류 때문에 저자에 대한 신뢰가 같이 반감되곤 한다.

90쪽의 내용인데,

관우와 산, 방패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말에 신용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바람으로 넘어가는데,

괘상은 여전히 산이다, 오류이다.

 

 184쪽인데, 뇌화풍을 뇌하풍으로 오기하였다.

 

그는,

점이란 대개 미래를 알고자 하는 행위지만 때로는 하늘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점을 치기도 한다. ㆍㆍㆍㆍㆍㆍ이때의 점은 아주 공정하다. 하늘의 운행은 공정한 것이다. 우연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우연 속에는 하늘이 담겨 있는 것이다. 점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으로 알 수 없는 걸 점에 맡기는 것이다.

주역을 공부하는 사람이 가끔 점을 치면 괘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미신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지칭할 때 흔히 미신이라고 말하는데 점은 절대 그렇지 않다. 점은 하늘을 공경하는 행위다. (203쪽)

라고 하며,

호킹박사는 무의 요동에 의해 우주가 생겼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노자의 "유는 무에서 생겼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ㆍㆍㆍㆍㆍㆍ더 정확하게 말하면 에너지 - 시간 불확정성 때문에 우주가 생겼다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주역을 공부하여 이것을 깨달았다. 무는 정지되어 있기도 하고 움직이기도 하는 존재다. 보통 사람은 무란 텅 빈,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그게 아니다. 무는 요동치는 존재로서 양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물론 무는 음의 성질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태극이라고 말하는 것인데, 이는 태극은 음도 양도 아니라는 의미도 된다.(221~222쪽)

이런 식으로 과학자들을 인용한다.

노자, 도(道) 따위도 같은 방식으로 아우른다.

 

 

 

 주역계사 강의
 남회근 지음, 신원봉 옮김 /

 부키 / 2011년 2월

 

물론 다른 주역 관계 서적에서 이런 언급이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확인한 것은 '남회근'의 '주역계사 강의'뿐인데,

 남회근과 신원봉의 조합이 우리나라 주역史엔 아주 큰 의미이지만,)

어려운 말로 쓰여 있어서, 무슨 말인지 알아 먹지 못했었던 반면,

이 책은 쉽게 쓰여서 관심만 있다면 쉽게 이해가능하다.

 

암튼 저자가 여러 과학자를 나열한 속 뜻은,

주역은 '시공'을 '초월'하고 있는데,

그 시공의 초월성이 과학적이라는 것을 합리화시키는 방법인듯 하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거기 가기 전에 이미 그 자리에 있는 것이고,

과거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과거로부터 떠나왔지만,

그 과거는 여전히 살아서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된다.

그렇게 볼때, 자기가 살았던 과거의 것들이 자신의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그리 놀라울 것이 없지만,

자신이 도달하기 전인 자신의 미래로부터 현재인 자기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들에서는 자신의 부모에게서 자신에게로, 자신에게서 자식에게로, 자신의 과업뿐만 아니라 죄도 대물림된다는 의미로 얘기하고 있었던 것과 관련하여...특별할 뿐더러 숙연해질 수 밖에 없게 된다.

 

저자는 이 책 의 아쉬운 점으로 하나 하나의 괘상을 좀 더 깊이 설명하지 못한 점을 들고 있는데,

다른 책에도 많이 설명되어 있으니, 이를 참조하라면서 서둘러 마무리한다.

주역의 괘상은 깊이도 중요하지만 많은 예를 이해함으로써 저절로 깊어질 수가 있다면서, 넓어야 깊어진다는 말은 주역 공부에서 가장 염두에 둬야 할 원칙이라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화살을 맞을지언정 역풍을 맞아서는 안된다'며 저 혼자 고집을 피우지 말고 남과 화합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있다.(265쪽)

하지만, 인생이란 향하는 바가 저만의 세계에 빠져서는 안될 뿐더러 대자연의 큰 뜻과 합치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인간이 태어나서 자기 본능에 따라 일생을 살아가는건, 이는 사는게 아니라, 살아진다고 해야 한단다.

저만의 세계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렇게 무시무시한 말로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암튼 이런 책을 보고 나면, 세상에 읽을 책이 그리 많지 않다.

책이 많고 많지만, 아무 책이나 다 책은 아니고,

어떤 책은 책으로 만들어지느라 베어 넘겨진 나무가,

어떤 책은 그 책을 읽는데 들인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니 그런 책들이 점점 늘어만 간다.

 

그동안 나이는 먹고,

시간은 나이만큼의 속력을 내고 흘러가고,

책 욕심은 버릴 수 없어서 마냥 사 모으기만 했는데,

이젠 책을 좀 줄여갈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말해,

삶의 속도에 정답은 없다.

내 나름대로, 나만의 속도를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살아가는게,

정답은 아니어도 가장 바람직한 모범답안이지 싶다.

 

되게 오래간만에 아침 출근 길에 걸어서 산책하듯 출근을 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직업으로 가져도 그것도 행복이겠지만,

나처럼 그럴 수 없을 경우,

미래의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기꺼이 하기 위해서 직장을 다니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다.

그때까지 건강 관리는 덤이 아니라, 필수 옵션인 것은 당근이다.

 

미래의 언젠가 하고 싶은 그것이 뭔가하면 손으로 꼬물딱거리는 공방이다.

바느질도 좋고, 뜨개질도 좋고,

요즘은 피규어 아트라고 하는 그것도 잼나 보이고,

클레이 아트도 그렇더라.

 

누군가는 현실적인 타당성을 늘어놓으면서,

나의 꿈을 꺾으려 하겠지만,

아직까지 난 공방을 차리겠다는 꿈에 부풀어 날마다 또는 때때로 행복하다.

 

그런 의미에서,

넷 상에 '소잉 데이지' 라는 공방을 꾸리며 솜씨를 살려, 꿈을 키워가는 '서니데이' 님이 계신다.

계절이 바뀌었다고 이쁜 파우치를 만들어 보내주셨는데,

내가 요즘 먹고사는 관계루다가 바빠 이제야 감사 인사를 날린다.

(이 파우치의 이름은 트리볼 네이비'인데 색이 너무 곱다, 아흑~^^)

때~앵~큐,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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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1-17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책 괜찮았던 것 같아요. 일단 한문이나 한자어를 적게 쓰고, 과학이나 수학에서 설명법을 가져온 것 같아서, 그래도 이해하기에는 좋았습니다.
저희집 파우치를 좋게 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실제 색상의 느낌이 잘 나도록 사진에 담아주셨어요.
양철나무꾼님,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blanca 2015-11-17 0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주역에 문외한이라 이런 삶의 철학이 있는지 몰랐어요. 클레이아트 공방 얘기하시니 제 딸 종일 클레이 아트 중이라^^ 말리느라 힘들어요.

하늘바람 2015-11-24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한 책이네요
저도 이제 다시 책 좀 보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