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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충격이니 경악이니 따위의 말을 늘어놓을 생각은 전혀 없다. 애당초 저런 말은 자기 내면하고만 관련을 가진다. 자기가 충격 받거나 경악하지 않는 한, 제3자 입장에서는 경박한 호들갑에 지나지 않는다. 오츠 이치의 느낌이 어떤지, 그가 펼쳐내는 이야기가 어떤지는 당신이 직접 세포하나하나 깊게 느껴보길 바란다.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니.
아, 아무리 그래도 내 생각은 밝혀야 겠다. 경박하게 호들갑 한번 떨어야 겠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느낀 충격과 감동을 다른 이에게 전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워 가슴을 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ZOO>는 10개의 단편이 모인 단편집으로, 어느 한 작품 완성도나 흥미면에서 뒤떨어지는 게 없다. 그래도 인상적인 단편을 꼽으라면, 첫번째 단편 'SEVEN ROOMS'과 네번째 단편 '양지의 시' 그리고 여섯번째 단편 '카자리와 요코' 이 셋을 꼽겠다.
[SEVEN ROOMS] 눈을 떠보니 온통 회색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사각형 방에 감금된 남매. 그들은 왜 감금된 것일까? 감금한 자는 누구란 말인가? 사각형 방에 숨겨진 비밀과 충격적 사건. 너무나 강력한 포스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전율했다. 도무지 생각해 낼 수 없는 충격적 설정과 피와 사체가 난무하는 묘사는 이제까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묘사력은 탁월했다. 몇몇 부분을 살펴보자. 남매가 사각형 방에서 탈출하기 위해, 두꺼운 문을 두드릴 때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무거운 철덩이를 쳤을 때 나는, 인간의 힘으로는 부술 수 없다는 듯한, 절대적으로 매정한 소리가 방안에 메아리 칠 뿐 이었다."(p.12) 사각형 방에서 최후를 기다리는 남매의 심정은 "죽음이 바로 옆까지 닥쳐온 가운데, 마음속이 마치 고요한 수면처럼 냉정해져 갔다."(p.65)로 묘사한다.
주목할 것은, 오츠 이치는 이들을 감금한 것이 누군지, 왜 감금했는지에 대한 일말의 실마리조차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다. 마치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오츠 이치가 제시한 충격적 공간속에서 우린 다양한 해석을 시도 할 수 있다.
[양지의 시] 갑자기 병원균이 하늘을 뒤덮고, 그 균에 감염된 사람들은 예외 없이 2개월 안에 목숨을 잃는다.(p.142) 살아남은 한 사람. 그는 죽게 될 자신을 매장하고 가사일을 돌보게 하기 위해서 인조인간을 만든다. 그들의 아슬아슬한 동거. 숨겨진 비밀.
이 작품은 단순한 소설의 영역을 뛰어넘는다 . 저자는 '인조인간을 만든 이'와 '인조인간'을 통해, 인간존재의 의미와 부모와 자식 간 애증을 이야기한다. 인조인간은 자기를 탄생시켜준 존재를, 자기 손으로 묻어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큰 괴로움을 느낀다. 인조인간의 독백이 언급된 마지막 부분은 가슴깊게 음미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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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 준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망도 하고 있었습니다. (중략) 만일 당신이 매장을 위해, 죽음을 지켜보게 하기 위해 저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저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일도, 누군가의 죽음에 의한 상실감에 시달릴 일도 없었겠죠."(p.1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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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원망을 동시에 품고 있다는 것 이상한 일일까요? 하지만 저는 생각합니다. 분명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훨씬 전에 사라진 인간 아이들도 부모에 대해 비슷한 모순을 안고 살았던 게 아니었을까요? 사랑과 죽음을 배우면서 자라고, 세상의 양지와 음지를 오가며 살았던 게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아이들은 성장해서, 이번에는 자신이 새로운 생명을 이 세상에 창조한다는 업을 등에 졌던 것이 아닐까요?"(p.1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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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리와 요코] 일란성 쌍둥이 엔도 요코와 카자리. 그리고 엄마. 엄마는 카자리에겐 사랑이 넘치는 천사이지만, 요코에게는 밥도 주지 않고 학대하는 악마이다. 왜 그럴까? 도대체 엄마는 왜 그럴까? 역시 그 이유에 대해서 오츠 이치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설정은 무척 독특하고 신선하다. 이야기전개도 흥미진진하다. 마지막에 '왕자와 거지'의 설정에서 이야기는 절정에 오르며, 마지막 요코가 삶의 의욕을 되새기며 '영차!'하는 부분에서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까지 느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걱정되는 것이 하나 있다면, 혹시나 괜한 스포일러 때문에 다른 이의 독서를 방해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런 걱정 때문에 최대한 조심스레 써 나갔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단 한 가지. 오츠 이치, 그와 그의 작품을 가슴 깊게 느껴보라는 것.
<ZOO>, 올해 접한 책 중 가장 놀라운 책이다.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