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400. Wild (Cheryl Strayed)

 

영화보다 더 솔직하게 저자의 밑바닥 생활과 생각을 보여준다. 영화 속 전남편 폴의 다정함도 많은 부분 의붓아버지 에디와 마약친구 조의 몫이었다. 그리고 엄마와의 특별한 관계를 다시 복기하고 응어리를 푸는 과정이 영화보다 더 설득력 있었다. 영어 문장도 그리 까다롭지 않아서 걱정할 것 보다는 잘 읽혔다. 젊은 남자들을 만나면 핡, 거리는 저자의 속마음은 귀엽기도 했지만 각 챕터마다 의도적으로 넣은 설정이 (아무리 사실이라고 저자가 강조했을지라도) 억지스럽다. 지지리 고생한 이야기인데 왜 읽게 되는지 신기하다. 발톱이 빠지고 피나고 산속에서 동물을, 낯선 놈을 만나서 떨면서, 이 무모한 여행을 해낸 그녀가 (아마 한비야도 비슷한 캐릭터일듯) 대단하다 싶기도했다. 난 동네 산책길도 왕복 3킬로미터가 한계인데. 책을 덮으면서 저자가 그 무거운 배낭 Monster에 넣었다던 쇼팽과 포크너의 소설은 나도 읽어보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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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400.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열두 장에 열두 가지 요리법과 인생이야기를 버무린 이 소설은 수십년 동안 적어도 다섯 대에 걸친 사랑과 열정에 대한 이야기다. 아들 없는 집안에서는 막내딸이 부모를 봉양해야하는 법이라니. 이런 멍청한 "전통" 때문에 티타는 열여덟이 되기 전에 첫사랑을 언니에게 빼앗기는 경험을 한다. 맛있게 만든 음식에도 작은 절차 상의 흠을 찾아서 딸을 구박하는 농장주 마마 엘레나는 모든 동화에 나오는 엄마/마녀/여자의 적은 여자 의 화신이다. 그러나.... 티타는 마마 엘레나의 손에서 벗어난 다음에도, 마마 엘레나의 죽음과 또 그 혼령의 사라짐에도 (삼단계의 소멸) 절대 자유롭지 않았다. 티타는 자기가 뭘 원하는지, 누구를 택해야 할 지 몰라서 계속 우왕좌왕이다. 심지어 임신인지 아닌지도 엄마의 유령이 결정해 주다니. 그러니 천하의 대인배 존도 속이 상해 어쩔 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선 목소리 큰 페드로가 이기는 걸까. 티타가 주도권을 잡는 순간은 그 절정의 환한 터널로 자기 '혼자' 들어설 때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밖에 모르는 응석쟁이 페드로와 모든 게 엄마탓인 티타를 응원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티타의 아이덴디티는 자녀를 키우는 , 하지만 자기 속으로는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는 니타였다. 뭐 이런 시시한 여주인공이라니. 차라리 난 몰라, 내 잘못 아니야. 내 껀 뺏기지 않을래, 라고 고집 부리는 거구의 로사우라 (혹은 마마 엘레나)가 더 주인공 스러웠다. 확실한 밉상이니까. 하지만 그들 보다 더 우위에서 호령하는 건 헤르트루디스. 장미향으로 폭발하고 집을 나가 혁명군의 지도자가 되는 맏언니. 그녀가 자유를 찾아 멕시코로 온 흑인의 후예, 자유연애의 증거라 더 멋지다. 하지만, 왜, 이런 근사한 캐릭터마저 집/거리, 요리/힘, 여자/남자, 식의 이분법에 묶어 놓았는지 아쉽다. 뜨겁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끝내 뭔가 빠진 느낌이었다. 이제 마르케스를 읽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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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쥐의 독서일기 2015-04-03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래서 리뷰읽는 재미가 나요. 전 이 소설을 관능적인 마법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젤 나쁜 넘은 페드로고.. 마마고..티타가 불쌍해ㅠㅜ 이렇게요ㅎㅎ
신데렐라 이야기 안 좋아해서 드라마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실은 좋아했봐요. 아님 음식이야기만 있으면 뭐든 유해지는건지..ㅎㅎ 그나저나 저도 헤르트루디스 이야기가 넘 짧은 건 아쉬웠어요. 장교랑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장미가 어쩌고 하는 비유도 넘 좋았구요..ㅎㅎ

유부만두 2015-04-03 20:45   좋아요 0 | URL
ㅎㅎ 제가 너무 삐딱하게 읽었나요;;; 첫 두어장은 완전 푹 빠져서 읽었는데 티타가 영 철이 안들쟎아요. 음식 만드는 이야기 저도 정말 좋아하는데 티타가 너무 부엌데기 처럼 되버려서 속상했어요. ^^;;

뽈쥐의 독서일기 2015-04-03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아녀요. 유부만두님이 객관적이시라는 뜻이었어요.ㅎㅎ 음식에 대한 얘기랑 마법같은 이야기를 빼면 사실 거의 고전소설급의 주인공 편애가 화가 나죠.ㅎㅎ 저는 음식, 성애 묘사 같은 거에 아주 관대한 사람이라 편애를 하고 예쁘게 봤다가 유부만두님 리뷰보고 아 좀 웃기는 소설이긴 했지.. 떠올렸어요.ㅎㅎ 타인의 리뷰보는 재미가 이럴 때 정말 크지요.^^

유부만두 2015-04-03 21:16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제 리뷰도 엄청 주관적 애정 식도락 편중되었어요....그래도 이 소설은 저에겐 음식 마법 조미료 빼면 인물들은 기대보다 심심했나봐요...
 

파이 소가 양념에 재워지는 동안 거기서 흘러나오는 냄새를 맡는 것은 정말 흐뭇했다. 냄새는 기억 속의 소리와 향을 전하며 과거의 어떤 시간을 떠오르게 하는 특성을 지녔다. 티타는 냄새를 흠뻑 들이마시며 그 각별한 냄새나 향과 함께 자신의 추억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걸 좋아했다 (16)

고개를 돌리자 페드로와 눈길이 마주쳤다. 그 순간 티타는 팔팔 끓는 기름에 도넛 반죽을 집어 넣었을 때의 느낌이 이런 거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얼굴과 배, 심장, 젖가슴, 온몸이 도넛처럼 기포가 몽글몽글 맺힐듯이 후끈 달아올랐다. 티타는 그 느낌이 너무 생생해서 페드로의 눈길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24)

어머니 옆에서는 가차 없이 미리 정해진 일을 해야만 했다. 질문의 여지도 없었다. [...] 매일 매일, 해마다 그렇게 똑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잠시 쉴 틈도 없이, 그게 자기가 해야 할 일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 어머니의 명령에서 자유로워진 손을 보며 티타는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녀는 자기 스스로 결정을 내린 적이 한번도 업성ㅆ다. 이제 그녀의 손은 뭐든지 할 수 있었고, 무엇을 만들건 상관없었다. 손이 새가 되어 훨훨 날아갈 수 있다면! 그 손이 자신을 멀리, 가능한 한 아주 멀리 데려가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티타는 안뜰로 난 창문에 다가가 하늘을 향해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117-118)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다고 하셨죠. (124)

티타는 인형의 섬세한 모양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어렸을 때 소원을 비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이었던가 생각했다. 그때는 불가능이라는 게 없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을 다 바랄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금기시되는 것과 죄악시되는 것, 정숙하지 않은 것은 바랄 수 없다. (184)

나는 나예요! 원하는 대로 자기 삶을 살 권리를 가진 인간이란 말이에요. 제발 날 좀 내버려 둬요! 더 이상은 참지 않을 거예요! 나는 어머니를 증오해요! 항상 증오해왔다고요!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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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400.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레이먼드 카버)

 

아무 문제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그 말을 믿고 싶었던 부모들. 그리고 다친 다른 아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그저 가만히 있었다는 다른 집 아이가 괜찮은지 확인하려는 부모들. 그들은 빵집 아저씨네서 따뜻한 시나몬 롤로 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대화를 가진 다음, 아침이 밝아오는 대로 뺑소니 차량 수배에 나설 것이다. 그리고 그 무책임하게 차창 밖으로 쓰러진 여덟살 짜리 꼬마를 바라만 보다 그 자리를 떠 버린 그 나쁜 놈을 찾아내서 정당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의 스커티는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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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400. 피리술사 (미야베 미유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지만 시대극은 영 읽기 불편해서, 이름도 복잡하고 이런저런 역사 관련어들이 헷갈리는데다 거북했기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옛이야기" 풍의 짧은 글을 읽고 싶어서 손에 들었다. 시시한 귀신 이야기 쯤으로 취급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흔한 '괴담'을 책으로 묶어내도 찾아 읽는 독자들이 생기는 이유는, 사건과 문장을,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심정을 호흡을 조절해 내가며 풀어놓는 미야베 미유키의 힘이다. (그게 바로 '요재지이' 와 이 책의 큰 차이점이다)

 

원한이 남아서 사람을 씹어 삼킨다, 는 피리술사 이야기는 공포스럽지만, 한강의 괴물처럼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다. 얼굴을 빌려주는 사내 이야기는 어떤가. 꿈마다 친구 집을 찾아가 술래잡기를 하는 꼬마, 그리고 아이의 수명을 지켜내는 어머니의 마음. 이상하게 귀신이며 혼령, 등 으스스한 존재들이 어깨 뒤로 다가올 듯도 했지만, 책을 덮고나면 마음은 따뜻해진다. 그러니 청자로 나선 당찬 아가씨 오치카도 위안을 얻겠지. 말하고 버리고, 듣고 버린다. 그런데 나는 읽고 버린다, 와는 조금 다른 독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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