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400.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열두 장에 열두 가지 요리법과 인생이야기를 버무린 이 소설은 수십년 동안 적어도 다섯 대에 걸친 사랑과 열정에 대한 이야기다. 아들 없는 집안에서는 막내딸이 부모를 봉양해야하는 법이라니. 이런 멍청한 "전통" 때문에 티타는 열여덟이 되기 전에 첫사랑을 언니에게 빼앗기는 경험을 한다. 맛있게 만든 음식에도 작은 절차 상의 흠을 찾아서 딸을 구박하는 농장주 마마 엘레나는 모든 동화에 나오는 엄마/마녀/여자의 적은 여자 의 화신이다. 그러나.... 티타는 마마 엘레나의 손에서 벗어난 다음에도, 마마 엘레나의 죽음과 또 그 혼령의 사라짐에도 (삼단계의 소멸) 절대 자유롭지 않았다. 티타는 자기가 뭘 원하는지, 누구를 택해야 할 지 몰라서 계속 우왕좌왕이다. 심지어 임신인지 아닌지도 엄마의 유령이 결정해 주다니. 그러니 천하의 대인배 존도 속이 상해 어쩔 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선 목소리 큰 페드로가 이기는 걸까. 티타가 주도권을 잡는 순간은 그 절정의 환한 터널로 자기 '혼자' 들어설 때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밖에 모르는 응석쟁이 페드로와 모든 게 엄마탓인 티타를 응원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티타의 아이덴디티는 자녀를 키우는 , 하지만 자기 속으로는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는 니타였다. 뭐 이런 시시한 여주인공이라니. 차라리 난 몰라, 내 잘못 아니야. 내 껀 뺏기지 않을래, 라고 고집 부리는 거구의 로사우라 (혹은 마마 엘레나)가 더 주인공 스러웠다. 확실한 밉상이니까. 하지만 그들 보다 더 우위에서 호령하는 건 헤르트루디스. 장미향으로 폭발하고 집을 나가 혁명군의 지도자가 되는 맏언니. 그녀가 자유를 찾아 멕시코로 온 흑인의 후예, 자유연애의 증거라 더 멋지다. 하지만, 왜, 이런 근사한 캐릭터마저 집/거리, 요리/힘, 여자/남자, 식의 이분법에 묶어 놓았는지 아쉽다. 뜨겁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끝내 뭔가 빠진 느낌이었다. 이제 마르케스를 읽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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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쥐의 독서일기 2015-04-03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래서 리뷰읽는 재미가 나요. 전 이 소설을 관능적인 마법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젤 나쁜 넘은 페드로고.. 마마고..티타가 불쌍해ㅠㅜ 이렇게요ㅎㅎ
신데렐라 이야기 안 좋아해서 드라마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실은 좋아했봐요. 아님 음식이야기만 있으면 뭐든 유해지는건지..ㅎㅎ 그나저나 저도 헤르트루디스 이야기가 넘 짧은 건 아쉬웠어요. 장교랑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장미가 어쩌고 하는 비유도 넘 좋았구요..ㅎㅎ

유부만두 2015-04-03 20:45   좋아요 0 | URL
ㅎㅎ 제가 너무 삐딱하게 읽었나요;;; 첫 두어장은 완전 푹 빠져서 읽었는데 티타가 영 철이 안들쟎아요. 음식 만드는 이야기 저도 정말 좋아하는데 티타가 너무 부엌데기 처럼 되버려서 속상했어요. ^^;;

뽈쥐의 독서일기 2015-04-03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아녀요. 유부만두님이 객관적이시라는 뜻이었어요.ㅎㅎ 음식에 대한 얘기랑 마법같은 이야기를 빼면 사실 거의 고전소설급의 주인공 편애가 화가 나죠.ㅎㅎ 저는 음식, 성애 묘사 같은 거에 아주 관대한 사람이라 편애를 하고 예쁘게 봤다가 유부만두님 리뷰보고 아 좀 웃기는 소설이긴 했지.. 떠올렸어요.ㅎㅎ 타인의 리뷰보는 재미가 이럴 때 정말 크지요.^^

유부만두 2015-04-03 21:16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제 리뷰도 엄청 주관적 애정 식도락 편중되었어요....그래도 이 소설은 저에겐 음식 마법 조미료 빼면 인물들은 기대보다 심심했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