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400. 중국인 거리 (오정희)
오래전 읽은 소설인데 다시 읽어도 새롭다. 거리의 묘사나 아이들의 말이 너무 생생해서 살짝 섬찟하기도 했는데, 무엇보다 적산가옥과 창이 좁은 중국인 거리의 건물이 적대적일 만큼 낯설다. 비슷한 시대적 배경의 박완서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와 아주 다른 기분이 든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골방에 웅크린 소녀, 덜컥 찾아온 초경.
181/400. 건축이냐 혁명이냐 (정지돈)
담담하게 시작한 소설은 이구, 라는 이름으로 역사성을 띄나 싶다가 이런 저런 건축사의 일화들이 복잡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소설이 읽.힌.다. 줄거리도 없어 보이는데, 읽힌다. (내가 시를 잘 못 읽는 큰 이유는 줄거리를 못 찾아서입니다) 신기하기도 하지. 건축가와 문인의 연결점이라면 함성호 시인, 오기사, 그리고 엘리엇 부, 정도가 생각난다. 잊을만하면 튀어나오는 이구, 그리고 정신없이 이어지는 육칠십 년대의 서울과 뉴욕의 미술, 정치, 사람들의 삶. 제목에선 건축과 혁명 중 택일하라는 압박을 느꼈는데, 읽다보니 건축이나 혁명이나 삶이나 공간을 훑어가고 있었다. 제대로 읽었는가, 는 모르겠다. 이 소설이 하나의 건물이라면, 대문이 있던가 없던가, 닫혔던가 열렸던가. 없으면 뚫어보라고, 옆에 큰 망치 하나 놓여있는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