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400. 중국인 거리 (오정희)

오래전 읽은 소설인데 다시 읽어도 새롭다. 거리의 묘사나 아이들의 말이 너무 생생해서 살짝 섬찟하기도 했는데, 무엇보다 적산가옥과 창이 좁은 중국인 거리의 건물이 적대적일 만큼 낯설다. 비슷한 시대적 배경의 박완서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와 아주 다른 기분이 든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골방에 웅크린 소녀, 덜컥 찾아온 초경.

 

181/400. 건축이냐 혁명이냐 (정지돈)

담담하게 시작한 소설은 이구, 라는 이름으로 역사성을 띄나 싶다가 이런 저런 건축사의 일화들이 복잡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소설이 읽.힌.다. 줄거리도 없어 보이는데, 읽힌다. (내가 시를 잘 못 읽는 큰 이유는 줄거리를 못 찾아서입니다) 신기하기도 하지. 건축가와 문인의 연결점이라면 함성호 시인, 오기사, 그리고 엘리엇 부, 정도가 생각난다. 잊을만하면 튀어나오는 이구, 그리고 정신없이 이어지는 육칠십 년대의 서울과 뉴욕의 미술, 정치, 사람들의 삶. 제목에선 건축과 혁명 중 택일하라는 압박을 느꼈는데, 읽다보니 건축이나 혁명이나 삶이나 공간을 훑어가고 있었다. 제대로 읽었는가, 는 모르겠다. 이 소설이 하나의 건물이라면, 대문이 있던가 없던가, 닫혔던가 열렸던가. 없으면 뚫어보라고, 옆에 큰 망치 하나 놓여있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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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는 이교도인 와일드를 불편하고 괴롭게 했다. 그는 복음서가 전하는 기적을 용서하지 못했다. 이교도에게 기적이란 예술인데 기독교가 예술의 영역을 침범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비현실을 추구하는 예술가라도 실재하는 삶 가운데서는 현실성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37)

 

와일드는 예술가의 인생에는 일종의 치명적인 숙명이 동반되며, 생각은 인간을 뛰어넘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43)

 

"내 인생의 비밀을 알려줄까? 나는 나의 모든 천재성을 내 인생에 쏟아부었어. 내 작품에는 고작 재주만을 부렸네."

그보다 더 사실일 수 없었다. 와일드의 가장 뛰어난 작품도 그의 화려한 말솜씨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 이라면 누구나 그의 글에 실망할 수밖에 없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도 처음에는 얼마나 참신한 이야기인가. 발자크의 <나귀가죽>에 비하면 얼마나 대단하고 또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하지만 글로 남겨진 그 작품은 실로 실패한 걸작이 아니던가! 그의 재미있는 이야기는 문학적 간섭을 지나치게 받아 아무리 수려해도 허식을 지울 수 없게 된다. 미사여구로 멋을 내느라 최초의 이야기가 지녔던 아름다움이 가려진다. 독자로서는 그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거치는 세 단계를 놓치기가 쉽지 않다. 최초의 생각은 언제나 아름답고 단순하며 오묘하고 놀랍다. 일종의 잠재적인 필연성으로 각각의 부분이 인위적으로 전개되고 작품의 구성이 서툴러진다. 그 후 와일드가 각 문장을 다듬고 손보면서 지나친 기교를 더하고 진부한 표현으로 뒤바꿔 감동은 사라지고 독자는 영롱한 표현 밑에 가려진 심오한 감정선을 놓치게 된다. (51)

 

"B는 끔찍하네.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네. 내가 다시 과거의 나로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남들이 나를 변화시켰다며 비난을 퍼붓고 있네. 하지만 사람이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지. 내 인생은 예술작품이네. 그런데 예술가가 같은 작품을 다시 만드는 법이 있던가? 그랬다면 그 작품은 실패작이어서겠지. 수감 이전의 내 인생은 최고로 성공한 인생이었다네. 하지만 그것은 분명 나의 과거라네." (60-61)

 

와일드는 몇 번이나 말한 바 있다. "인생에서 얻은 모든 것은 예술로서는 잃은 것이다." 그랬기에 와일드는 비극을 맞이했다. "그렇다면 결국 예술만이 이 모든 것의 결론인가요?"라고 와일드는 <의도>의 화자를 통해 묻는다. 다른 화자를 통해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예술은 우리를 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10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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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400. 오스카 와일드에 대하여 (앙드레 지드)

 

세기의 멋쟁이 훈남이었다는 오스카 와일드에 대한 앙드레 지드의 추억담이다. 와일드의 화보용 사진이 몇 장 실려있는데, 미남이라는 데에는 동감하지 못하겠다. 그의 넉넉한 턱과 앞가르마는 얼핏 베니를 떠올리게도 한다;;; 지드를 비롯한 19세기 대중이 와일드에 열광하고, 와일드를 모욕하고, 또 동정까지 한 이유는 그의 외모 뿐아니라 그가 뿜어낸 아우라, 그리고 그의 언변이었겠지. 하지만 지드가 여러 번 반복해서 와일드의 희곡이나 소설이 명작은 아니라고 단언하니 (지드는 와일드를 좋아했는데, 실은 좋아한 건 아니었던 거야??) 와일드의 매력이 내겐 와닿지 않는다. 단 하나, 오스카 와일드가 예술을 사랑했고 인생을 예술처럼 살아냈다는 것은 알게되었다. 자신이 예술품이 된 와일드, 결국 신화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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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00. 콧구멍만 바쁘다 (이정록)
178/400. 시인의 서랍

한창훈 작가의 산문집에 등장한 ˝오오 크기도 한˝ 존재감의 시인 이정록. 그의 구수한 어휘와 느긋한 삶의 태도는 동시로 또 산문으로 진하게 배어나온다. 오오 진국이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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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5-07 0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정록시인의 동시집이군요. 그분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구수하고 맛깔나고 재미있었어요. 콧구멍도 크시던데요ㅎㅎ

유부만두 2015-05-07 09:32   좋아요 0 | URL
동시집이 좋았어요. 말로 놀며 자연과 어우러진다고나 할까요. 산문집에선 시인의 생활과 시의 배경을 알게되어서 좋았고요.

수이 2015-05-07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른 달려가야겠습니다~ 민이가 좋아할 거 같아요. :)

유부만두 2015-05-07 18:01   좋아요 0 | URL
저희집 막내가 제일 좋아한 시는 ˝곰유치원˝ 이에요. ^^
 

175/400. 와카코와 술 1 (신큐 치에)

176/400. 와카코와 술 2

 

<음식의 언어>를 읽으면서 메인 디시와 디저트를 맛보았는데, 맥주가 없어서 <맥주, 문화를 품다>를 읽다가, 맥주만 술이더냐 와인과 사케는 어쩌고. 또 그에 어울리는 안주를, 때로는 친구들과 대부분 혼자서 집중해서 즐기는 만화를 만났으니, 남은 일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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