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는 이교도인 와일드를 불편하고 괴롭게 했다. 그는 복음서가 전하는 기적을 용서하지 못했다. 이교도에게 기적이란 예술인데 기독교가 예술의 영역을 침범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비현실을 추구하는 예술가라도 실재하는 삶 가운데서는 현실성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37)

 

와일드는 예술가의 인생에는 일종의 치명적인 숙명이 동반되며, 생각은 인간을 뛰어넘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43)

 

"내 인생의 비밀을 알려줄까? 나는 나의 모든 천재성을 내 인생에 쏟아부었어. 내 작품에는 고작 재주만을 부렸네."

그보다 더 사실일 수 없었다. 와일드의 가장 뛰어난 작품도 그의 화려한 말솜씨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 이라면 누구나 그의 글에 실망할 수밖에 없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도 처음에는 얼마나 참신한 이야기인가. 발자크의 <나귀가죽>에 비하면 얼마나 대단하고 또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하지만 글로 남겨진 그 작품은 실로 실패한 걸작이 아니던가! 그의 재미있는 이야기는 문학적 간섭을 지나치게 받아 아무리 수려해도 허식을 지울 수 없게 된다. 미사여구로 멋을 내느라 최초의 이야기가 지녔던 아름다움이 가려진다. 독자로서는 그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거치는 세 단계를 놓치기가 쉽지 않다. 최초의 생각은 언제나 아름답고 단순하며 오묘하고 놀랍다. 일종의 잠재적인 필연성으로 각각의 부분이 인위적으로 전개되고 작품의 구성이 서툴러진다. 그 후 와일드가 각 문장을 다듬고 손보면서 지나친 기교를 더하고 진부한 표현으로 뒤바꿔 감동은 사라지고 독자는 영롱한 표현 밑에 가려진 심오한 감정선을 놓치게 된다. (51)

 

"B는 끔찍하네.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네. 내가 다시 과거의 나로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남들이 나를 변화시켰다며 비난을 퍼붓고 있네. 하지만 사람이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지. 내 인생은 예술작품이네. 그런데 예술가가 같은 작품을 다시 만드는 법이 있던가? 그랬다면 그 작품은 실패작이어서겠지. 수감 이전의 내 인생은 최고로 성공한 인생이었다네. 하지만 그것은 분명 나의 과거라네." (60-61)

 

와일드는 몇 번이나 말한 바 있다. "인생에서 얻은 모든 것은 예술로서는 잃은 것이다." 그랬기에 와일드는 비극을 맞이했다. "그렇다면 결국 예술만이 이 모든 것의 결론인가요?"라고 와일드는 <의도>의 화자를 통해 묻는다. 다른 화자를 통해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예술은 우리를 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10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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