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앙처럼 비행중 사라진 파일럿, 생 택쥐베리의 '야간비행 Vol de nuit'를 뒤늦게 읽었다. '어린왕자' 생각도 났고, 어린왕자를 좋아하는 친구도 생각났다.

 

 하늘에서 돌풍과 사투를 벌이는 파비앙, 그리고 지상에서 만오천 킬로미터를 무선으로 관리하는 리비에르, 두 사람이 하늘과 지상에서 고민하고 싸우며 '전진하는' 이야기다. 관리자 리비에르는 노동자의 안전이나 복지, 무엇보다 그들의 생명 위에 '일'과 '의무'를 놓는다. 앞으로 전진하고, 일의 '강제성'으로 인간이 존엄성을 갖는다고 믿는 워커홀릭 나쁜 상사. 그의 신념은 비행사고 이후에도 꺾이지 않고 밤하늘에 비행기를 띄운다. 젊은 파일럿은 냉소를 지으면 '훗, 리비에르는 내가 겁먹은 줄 알잖아' 라고 혼잣말을 한다. 그 상사에 그 부하. 생명을 내놓고 위험을 감내하는 사람들. 그들의 멋찜은 천재지변에 맞서서 지상에서나 하늘에서 싸우는, 밤하늘의 거친 바다를 헤쳐나가는 뱃사람들로, 격전이 펼쳐지는 적지로 돌격하는 군인으로 그려진다. 죽음으로 완성되는 젊은 병사들, 지상에서 쓸쓸하게, 하지만 고집스레 전진 명령을 내리는 리비에르, '전쟁과 평화'의 장군 쿠투조프는 울기라도 했지....

 

새신랑 소식을 찾아서 사무실로 찾아오는 파비앙의 부인. 그녀의 애닲은 마음은 아무도 위로하지 못한다. 육주 동안 익혀온 신랑의 비행 리듬과 하늘의 길을 이제 그녀는 잊어야한다. 긴장하며 천천히 읽어도 짧고 아름다운 소설은 금세 끝나버린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syche 2018-06-05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어책도 불어책도 술술 읽으시는 유부만두님! 곧 일어책도 읽겠죠? 부러웡

유부만두 2018-06-06 08:27   좋아요 0 | URL
술술은 못읽고요 ;;;; 사전 끼고 읽습니다.
일어책은 ...글쎄요

라로 2018-06-05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부러워요!! 모든 술술술 잘 읽고 잘 하는 유부만두님!!!

유부만두 2018-06-06 08:28   좋아요 0 | URL
아, 라로님....그게요....이걸 제가 대학때부터 공부한 건데 ...
직장 잡고 했어야 한건데 ... ㅜ ㅜ

다락방 2018-06-05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

유부만두 2018-06-06 08:29   좋아요 0 | URL
공들인게 아까워서 아직도 못 놓고 있어요.
 

이다혜 씨의 책 '아무튼 스릴러'에서 언급되는 책이라서 구입했다.

 

 

배송된 책에는 떡하니 19금이라고, 비닐로 싸인 책이 그 안에도 띠지가 꽁꽁 봉하는 포장으로 배송되었다. 훗,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역겹고 지겹고 짜증이 났다. 범인의 자기연민이 끝없고 책 뒷면의 '살육에 이르는 병, 사랑' 이라니. 책 링크도 걸기 싫다. 마지막이 강한 반전이라고 해서 완독했다.

 

계속해서 정유정 작가의 책 '종의 기원'이 생각났다. 끔찍한 악의 이유를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걸 상상으로 밝혀내 까발리고 글로 옮기는 사람들과 돈을 주고 사서 읽는 사람들, 그중에 나. 연쇄살인범 수사극을 보기도 했었는데. 마음이 무겁고 싫다.

 

이 소설의 마지막 트릭이 잠깐, 아, 하는 순간을 만들기는 하지만 작가가 그려낸 세계, 호감형 범인, 그의 미소에 넘어가는 멍청한 여자와 헛된 희망으로 일을 망치는 여자, 자신보다 30살 이상 연상 예순다섯의 퇴직 형사에게 매달리는 여자, 가슴으로만 묘사되는 여자, 그 극점에 앉아있는 엄마...라니...그 도식에 분노하게 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라로 2018-06-04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의 명성(?)을 익히 들었는데 덕분에 안 읽어도 책이 늘어서 좋아요. ㅎㅎㅎㅎ

유부만두 2018-06-04 13:13   좋아요 1 | URL
네... 한 권 지워드렸습니다. ^^;;;

syo 2018-06-04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기억합니다. 전 평생을 추리나 스릴러 장르에서 반전이나 트릭을 맞추는 일이 없이 사는데, 이 책은 맞췄어요! 그걸 맞추고 나니 정말 이 책은 정말 아무것도 남긴 게 없는 똥덩어리가 되었지요....

유부만두 2018-06-04 19:16   좋아요 1 | URL
syo님은 정말 스마트 하신가봐요. 전 까맣게 모르고 그 마사루(?) 모자(?!)의 서술을 순진하게 (하하, 그 범죄 이야기를 사서 읽은 저는 과연 순진할까요) 따라 가다가 우웩 했어요. 아니 그 반전 (물론 syo님 처럼 미리 간파한 독자도 있지만) 하나 갖자고 이 똥덩어리 피비린내 썩은내 나는 난리를 봐야합니까. ㅜ ㅜ 이걸 읽고나니 정유정 작가는 ‘종의 기원‘에서 정말 많이 순하게 했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psyche 2018-06-05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제목은 익히 알고 있는 책인데 덕분에 안읽어도 되네 ㅎㅎ

유부만두 2018-06-06 08:29   좋아요 0 | URL
어휴.... 괜히 사서 읽었어요.... 에비에비
 

“작가가 적은 문장들이 나에게 환기시키는 감각, 나는 그것에 일찌감치 매료되었다. 문장은 작가의 것이었지만 감각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으니까.”_ 역자 배수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자서전 수필이라고 듣기 전에 이미 그 표지에 낚여서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 친구 책을 먼저 보고 훑었더니 여백이 너무 넓고 글은 얼마 없는데다, 얇아서 흥미를 잃었다. 그때 작가 이름을 들었다.

 

저자와 역자의 소개글이 특이했다. 작고한 저자에게는 현재형 문장을, 반면 역자에게는 과거형 문장이다. 책 중간 중간에도 현재형 문장이 과거의 이야기 속에서 나타나는데 억지 스럽거나 실수 같지는 않다. 원문은 어떨지, 저자처럼 외국어로 불어를 배운 처지에 '원서'를 읽어보고 싶다.

 

 

어린시절의 고생과 기숙사 학교의 외로움과 가난, 그리고 책과 글에 대한 사랑. 그후 망명으로 그 모든 정체성을 잃고 지붕과 옷, 그리고 비누를 받아들었을 때의 참담함을 적어놓았다. 이제 막 백일을 넘긴 아기를 안고 11월의 숲을 밤에 넘었다고 했다. 자유를 찾아서. 그런데 그 자유로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문맹이 되었다. 넉넉한 여백에는 저자가 모국어로 넘치듯 채울 많은 문장을 상상했다. 입에 붙어도 겉도는 불어로 이 책을 쓰고 교정 받고 그 과정에서 여러번 모국어롤 되뇌었을 문장들이 사라지지 않고 아직 현재형으로 저자의 책 주위를 떠돌고 있을 것만 같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극곰 2018-06-04 1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늘 주문했는데. ^^

유부만두 2018-06-04 13:13   좋아요 0 | URL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전 좋았어요. 맘 속에서 울컥, 하는 느낌도 들었고요.
 

섬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민속춤을 추는 여자. 다만 그녀의 얼굴은 섬의 원주민 보다는 본토 사람에 가까워서 섬사람들에게도 관광객들에게도 호기심 혹은 이질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녀의 이름은 애슐리.

 

아무런 정보 없이 작가 이름으로만 주문하고 받아본 책은 얇고 작고 그림이 많다. 하루키의 버스데이걸, 생각 났고요. 이 책도 읽어가면서 장소가 어딜까, 외국어와 우리말의 자리바꿈을 의식하다보면 천명관의 '유쾌한 하녀 마리사'도 떠오릅니다.

 

본토와 섬 사이에 공식으로 존재하는 경제, 사회 구별과 차별. 그걸로 먹고 사는 사람들. 그 안전한 구별 혹은 가짜 전통을 흔드는 것 처럼 보이는 존재 애슐리,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아무런 저항도 혹은 변화도 꾀하지 않는다. 다만 하루 하루를 살아갈 뿐. 커다란 재앙으로 망가진 본토 그리고 그곳 사람들이 몰려오는 섬의 변화. 그 후의 추이는 평범한 영화를 한 편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하다. 문단으로 찬 페이지들 사이사이에 만나는 한예롤의 그림은 잠시 이 평이한 이야기를 애슐리의 이야기로 감싸안는다. 마지막, 애슐리의 행동이 진짜 소설의 시작이다. 그 소설은 평이하지 않고 아픈 곳을 헤집는다. 오늘도 섬은 덥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