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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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주인공이 열 다섯이라고, 세상에서 가장 용감하고 쿨한 열다섯 소년이라고, 까마귀 소년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소년은 숲 속 깊은 곳, 저 너머의 세계를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그리던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확인했습니다. 만, 나는 왜 이 책을 지금 읽었을까. 다들 마흔 넘어서는 하루키를 극복(?)하고 독서의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는데, 왜 나는 지금 그의 열다섯 소년 이야기를 읽었을까.

1Q84의 많은 퍼즐들이 이 책에서도 발견된다. 사에키상과 주인공 소년의 관계도 그렇고, 문을 여닫는 것이나 환상적인, 아니면 충격적인 설정도 그렇다. 그래서 훅하고 빠지는 하루키식 완전 몰입 독서를 할 수 없었다. (조니 워커와 고양이 장면에서는 깜짝 놀라긴 했다) 이상하게 사에키상과의 관계도 그리 놀랍지 않다. 초반부터 프로이트 이야기를 많이 해 두어서 마음의 준비가 된 탓일까. 문학적인, 그리고 계산된 장치들이 여기저기 놓여있는데, 그 트릭들이 미리 보여서 재미가 덜 했다. 나카타 할아버지와 호시노 청년의 여행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아니, 벌써 기억이 흐릿해지고 있다. 

하루키의 책은 그렇다. 읽는 순간은 하루키식 논리 (하늘에서 생선이나 거머리가 쏟아져 내리더라도 그러려니 하는 식으로)를 따라간다. 하지만 책을 덮고 사흘이 지나면, 줄거리를 다시 말하기 어렵다. 

주인공이 열다섯이라 하더라도 고등학생이 읽을 책 같지는 않고, 스물 다섯 쯤 읽고 서른 쯤에 주인공과 나카타를 떠올리면 좋을 듯하다. 다양한 연령대의 여러가지 인생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간간이 내 인생의 의미(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지만)도 생각해 볼 수도 있을테고. 그런데 난 너무 늦게 읽었다. 그래서 감동을 받기에 너무 늦어버렸다. 입구의 돌은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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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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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절판된 중고책을 찾아서 중고서점을 찾아 헤매는 일은, 이제는 흔하지 않은 7080 스타일이 되었다. 온라인 서점에서도 클릭 한 번으로 찾던 책을 구할 수 있고, 모르는 남남끼리도 책을 사고 판다.  

1949년 이차 대전 직후 던 런던의 한 고서점(채링 크로스 로드 84번지가 바로 그 서점의 주소다)이 미국에서 보다 훨씬 더 훌륭한 상태의 양서들을 취급한다는 것을 알고 배고픈 저술가 - 희곡을 써서 무대에 올리기를 열망하지만 현실에선 이런저런 기고로 생활을 꾸려가는 - 헬렌 한프가 한장의 편지를 쓰고 런던의 서점 사람들과 20년의 우정이 시작된다.  

이 얇은 책은 그들 사이에 오갔던 주문서, 안부 편지, 감사 편지, 선물 목록에 끼워둔 카드, 그리고 엽서들이다. 안타깝게 모든 편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이야기가 건너 뛰기도하지만, 그 긴 시간동안 얼굴을 마주하지도 않은 채 우정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책을 사랑하는 공통분모 덕이었다. 때론 짖궂은 투정을 부리는 고객 (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거예요? 우두커니 앉아서 빈둥거리고 있나요?"22쪽) 은 서점주인에게 읽고 싶은 책을 어서어서 보내달라고 보채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햄과 위문 상자들을 보내기도 한다. (얼마전 영국 총리가 1950년대 초반, 영국의 경제사정을 빌미로 호주로 어린이들을 강제 이주시킨 점에대해서 사과한 바 있다. 그 시절, 힘겨운 삶은 우리 나라 뿐이 아니었나 보다)  

별다른 줄거리 없이,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들 사이에 쌓여가는 정(情)이 보인다. 그래서 가슴이 훈훈해졌다. 주문서에 올려진 책들은 꽤 전문적이기도 하지만, 뭐 어때, 그 책을 읽어야만 그들의 우정을 느낄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묘하게도 헬렌 한프는 서점 주인이 사망한 다음, 오갔던 편지들을 묶어서 책으로 내놓고서야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유명해진 이 책은 이미 영화로 만들어져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품절인 디비디를 겨우 주문해 놓고 기다리는 중이다. 영화로도 훈훈한 기분을 계속 느끼고 싶어서. 이제, <노팅힐> 다음으로 런던의 서점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또 생기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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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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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저는 임항 열차에서 내려 지저분한 보도를 이 두발로 직접 밟을 그날을 꿈꾸며 살아간답니다. 걸어서 버클리 광장까지 올라갔다가 윔폴 거리로 내려오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런던탑 입성을 거부하고 앉았던 세인트폴 성당의 그 계단, 존 던이 앉아 연설하던 바로 그 계단을 저도 한 번 밟아보고 싶어요. 대전 중에 런던 주재원으로 나갔던 신문기자 한 사람을 아는데, 그 사람 말이 관광객들은 영국에 어떤 고정 관념을 가지고 가기 때문에 늘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찾는대요. 전 영국문학 속의 영국을 찾아갈 거라고 그랬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렇다면 거기에 있어요."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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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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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9월 11일, 큰아이의 preschool 첫날이었다. 세시간 차이로 이미 큰일이 벌어져 버린 뉴욕과 달리 캘리포니아는 놀랐지만 다소 덤덤했다. 유아원도 정상 수업을 했고 쇼핑센터도 문을 열었다. 정작 다음날이 되자 사태의 심각성이 더 다가왔다. 그 다음해 9월11일이 되기 훨씬 전부터 자동차 뒷범퍼에는 God Bless America 스티커가 붙어있었고 국가 의정 관계차도 아닌 허름한 중고 (일제) 차들도 성조기를 매달고 다녔다. 쌍동이 빌딩에서 희생된 수많은 생명들 보다도 그라운드 제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오와 분노가 더 컸다.

911 을 배경으로 한다는 이 책에 대해서 좋은 서평과 "상큼"하다는 이야기들도 별로 믿기지 않았다. 911은 내게는 외국인으로서 꽤나 불편하게 버텨야하는 남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책의 911은 시계를 거꾸로 돌려서 그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너무도 바라는 아홉살 아이의 이야기이다. 그 아이를 찢어지는 심정으로 쳐다보는 엄마와 할머니, 또 할아버지의 이야기이다. "그날밤만 밤이었던건 아니니까.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어떻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겠니? (439쪽)" 이런 새털같이 많은 미래를 당연시하던 일상말이다. 

2차대전 공습때 사랑하던 연인과 가족을 잃은 할아버지, 또 기구하게도 21세기 평화의 땅에서 또 한명의 아들을 잃는다. 그리고 그의 손자는 없을지도 모를 자물쇠를 찾아 뉴욕시의 Black 을 찾아나선다. 

이 괴상하고 정신없고, 먼 이야기가 어이없게 나를 울렸다. 손자를 알아보는 할아버지의 눈에서 아빠와의 마지막 통화 (일방적인)를 이야기하는 꼬마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외국인 아줌마는 울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내 가족,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살을 부비고 사랑한다고 이야기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안쓰럽도록 까칠한 주인공 오스카 만큼 인상적인 할아버지는 역시 미스터 블랙이다. 스무해 넘도록 아파트 밖으로 나서지 않고 전화주문으로 쇼핑을 해결하고 보청기마저 꺼버린 사람. 전쟁터를 누비다가 이젠 더 전쟁터 같은 바깥을 닫아 버리고 매일 아침 대못을 한 개씩 박으면서 하루를 여는 엽기 할아버지. 하지만, 그 역시 진짜 셸 할아버지를 만나고는 쿨하게 퇴장할 줄 안다. 

책 중간 중간 만나게 되는 사진과 메모들, 색색깔의 이름들, 빨간 교정본들, 빽빽히 겹쳐져 있던 할아버지의 독백들....그리고 다시 그날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오스카의 마음처럼 빌딩 옆을 날아서 올라가는 사람의 사진. ... 책을 다 읽고 나면 제목이 말하는 것 처럼 엄청 시끄럽고 엄청 가까운게 뭘까 싶게 멍한 느낌이다. 같은 뉴욕땅에서 성경말씀대로 살았던 A.J.제이콥스가 그렇게도 질투해 마지 않던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 나도 그의 재능을 열심히 질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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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 세계적인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가장 속물적인 돈 이야기
석영중 지음 / 예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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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예술은 돈 보기를 돌과 같이 해야한다고 여겼다. 19세기 낭만파 예술가들은 술에 절고 가난에 절었지만 하늘을 향해 목을 빳빳히 쳐 들었다. 그런데, 러시아 대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런 행동들이 가식이며 없는자들의 눈가리고 아웅이라고 했다. - 아니, 도스토예프스키를 축약본 말고는 읽어본 적이 없으니 - 이 책의 저자에 따르자면, 현실속에서 종이와 펜을 대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누구보다도 돈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였다.

무거운 돈과 생존의 이야기를 작품들의 친절한 "축약" 설명과 더불어 깔끔 명료하게 이야기 하는 책은 어렵지 않게 읽힌다. 하지만 가난의 심리학, 빈자의 위선이 이토록 잘 이해되는게 조금은 섬찟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 자신이 상대적 빈곤감에 몸을 떨고 있고 되먹지 않은 자존심때문에 이런저런 변명으로 내 주위에 벽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돈이 있다면, 누군들 좋지 않을까. 더러운 돈이 아니라면, 누가 마다 할까. 저 미운 시누이가 부자가 아니였다면 내가 좀더 이해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을까. 

돈이 궁해서 글을 미친듯이 써 제꼈다는 도스토예프스키. 그 왕성한 창작력이 감탄스럽다. 천재는 어느 상황에서도 천재인가보다. 그가 돈으로 많은 굴욕을 겪었다지만, 그는 돈을 알아보았고 그래서 시대를 앞선 천재라고 평해지는 것이리라. 

 "돈은 자유다" "돈은 시간이다" "돈은 자식을 낳는다" 라는 무서운 명제들은 지나친 비약이며 어거지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어느정도 사실이다. 그 사실의 틈바구니에서 자존심, 빈자의 자존심 지키기가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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