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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절판된 중고책을 찾아서 중고서점을 찾아 헤매는 일은, 이제는 흔하지 않은 7080 스타일이 되었다. 온라인 서점에서도 클릭 한 번으로 찾던 책을 구할 수 있고, 모르는 남남끼리도 책을 사고 판다.
1949년 이차 대전 직후 던 런던의 한 고서점(채링 크로스 로드 84번지가 바로 그 서점의 주소다)이 미국에서 보다 훨씬 더 훌륭한 상태의 양서들을 취급한다는 것을 알고 배고픈 저술가 - 희곡을 써서 무대에 올리기를 열망하지만 현실에선 이런저런 기고로 생활을 꾸려가는 - 헬렌 한프가 한장의 편지를 쓰고 런던의 서점 사람들과 20년의 우정이 시작된다.
이 얇은 책은 그들 사이에 오갔던 주문서, 안부 편지, 감사 편지, 선물 목록에 끼워둔 카드, 그리고 엽서들이다. 안타깝게 모든 편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이야기가 건너 뛰기도하지만, 그 긴 시간동안 얼굴을 마주하지도 않은 채 우정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책을 사랑하는 공통분모 덕이었다. 때론 짖궂은 투정을 부리는 고객 (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거예요? 우두커니 앉아서 빈둥거리고 있나요?"22쪽) 은 서점주인에게 읽고 싶은 책을 어서어서 보내달라고 보채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햄과 위문 상자들을 보내기도 한다. (얼마전 영국 총리가 1950년대 초반, 영국의 경제사정을 빌미로 호주로 어린이들을 강제 이주시킨 점에대해서 사과한 바 있다. 그 시절, 힘겨운 삶은 우리 나라 뿐이 아니었나 보다)
별다른 줄거리 없이,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들 사이에 쌓여가는 정(情)이 보인다. 그래서 가슴이 훈훈해졌다. 주문서에 올려진 책들은 꽤 전문적이기도 하지만, 뭐 어때, 그 책을 읽어야만 그들의 우정을 느낄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묘하게도 헬렌 한프는 서점 주인이 사망한 다음, 오갔던 편지들을 묶어서 책으로 내놓고서야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유명해진 이 책은 이미 영화로 만들어져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품절인 디비디를 겨우 주문해 놓고 기다리는 중이다. 영화로도 훈훈한 기분을 계속 느끼고 싶어서. 이제, <노팅힐> 다음으로 런던의 서점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또 생기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