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벌 떼과부가 따로 읎어”역경을 헤쳐나가는 억척스러운 여성을 빗대어 이르는 충청도 속담
청주의 내덕동 일대의 옛 이름은 안덕벌이었다. 6.25전쟁 직후안덕벌에 남편을 잃은 여성들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당시에는 ‘과부촌‘이라 불렸다.) 남편을 잃은 안덕벌의 여성들은 애를 들쳐 업고 두부를 팔면서 삶을 이어 나갔다고 한다. 그렇다면 안덕벌에는 어떻게 남편과 사별한 여성들이 모이게 되었을까.그 배경에는 보도연맹 학살 사건이 있다. 1948년에 국가보안법에 따라 구성되었던 국민보도연맹은 ‘극좌 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사상 전향시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명분으로 좌익 성향을 가진 사람을 가입시켰다. 보도연맹원 가입은 할당제로 이루어져 지역공무원들은 좌익 성향과 관계없는 일반인도 가입시켰다. 전쟁 직전에는 가입자 수가 수십만에 이르렀다. 전쟁이 발발하자 정부와 군은 보도연맹원들이 인민군에 협조할 것을 우려해 이들을 무차별로 살해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을 포함한 일반인이 최소 10만 명 이상 사망했다. 전국 곳곳에서 법적절차 없이 즉결 처형이라는 형식의 집단 학살이 일어났다. 충남 홍성군 담산리, 충북 청주시 분터골 등 충청 지역도 대량 학살의 예외가 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청주의 안덕벌에서만 40여 명의여성이 남편을 잃었다. 남편을 잃은 이들이 애를 들쳐 업고 콩나물이나 두부를 팔며 생계를 잇는 장면이 일대 주민들에게 각인된것이 이 속담의 유례다.매년 보도연맹 희생자의 유해가 수백 구씩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들려 온다. 억울한 누명을 안고 죽은 사람과 유족들의 한은언제 풀릴까. - P115
검색해보니 창경궁 대온실 보수가 2013-2017에 있었지만 소설은 2023년 준공을 설정하고 있다. 이 책은 30대초반 여성 영두가 문화재 보수 과정 기록과 보고서 담당 계약직을 맡으면서 과거를 마주하는 이야기. 주인공 영두의 2003년 중2 서울 생활, 문자 할머니의 (1945-)1951년 중학생 나이 때 서울 생활이 창덕궁/창경궁 대온실을 중심으로 소환된다. 현재 영두의 친구 딸(초6) 산아도 그 두 아이들과 연결되며 또다른 시간 속 이야기를 보여준다. 고향이 아닌 곳에 이식된 아이들은 어떤 일을 보고 겪는지, 대온실 지하에는 무엇이 남아있는지 찬찬히 추적해간다. “과거를 끄집어 낸다는 거 되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거든요.”(340)“인간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들이 언제나 흐르고 있다.”(403)대온실을 세운 일본인 학자/관리와 그 아래서 일하던 조선인들, 광복 후 남아있던 일본인들, 어지러운 사회와 전쟁. 2020년대 문화재 보수 담당 관리와 건축사무소 이야기도 좋았다. 단순한 스릴러나 역사물이 아닌 “부서진 삶을 수리” 하려는 시도 그리고 그 보고서 같은 소설이다. 후반부는 좀 힘이 빠지는 감이 있지만 그건 독한 걸 좋아하는 내 취향 탓.대온실은 실내 식물과 대탐험+제국주의 시대를 연상시키는데 (유럽의 온실, 새로운 식물 이식/이종 이야기) 전에 재미있게 읽은 <실내식물의 문화사>가 떠올랐고 소설 속 문자 할머니는 박완서 작가보다 대여섯 살 정도 어린 나이라 그 두 사람이 보는 그 시대의 차이와 공통점을 생각해봤다. 원서동 2000년대 딩 아주머니와 1940년대의 두자 아주머니 대조도 그렇고 시간대별 인물들이 만드는 조합이 흥미롭다. 모든 우연과 인연이 영두와 대온실에 모인다,는 설정은 과한 느낌도 있지만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은 세대와 다(다)음 세대에게 이 이야기는 아주 낯설진 않을 것 같다. 재미있게 읽었고 위로도 받았다. 일거양득 이상임. 할말많아.. 일단 추천.
https://tobe.aladin.co.kr/t/764993272‘한국어 배우는 일본인의 에세이툰‘ : 투비컨티뉴드
https://youtu.be/Nqwn5Y_Y4xs
촐리에게도 사연이 있고 소프헤드에게도 슬픔이 있겠지만 그들의 행동은 약자인 어린이를 향한 폭력. 왜 처절하며 수려한 (리드미컬한) 묘사를 입혀주었을까. 매우 괴롭고 힘들다. 주제의식과 제목의 의미는 알겠지만 토니 모리슨이라도 이번 소설은 어휴. 경고: 어린이 성착취와 펫 살해 장면 상세히 나옴.
나는 지독한 자기비하의 피해자가 결국 위험하고 난폭한 성향이 되어, 자신을 거듭거듭 욕보이게될 적을 재생산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다른 부류는 자기 정체성을 포기하고, 자신들에게 부족한 강한 자아상을 건네주는 구조 속으로 녹아들어간다. 대부분은 그것을 극복하고 성장하지만 말없이, 이름도없이, 그것을 표현하거나 인정할 목소리도 없이 붕괴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자아를 일으켜 세울 ‘두 다리‘를 가지기 이전의 아이들에게 자존감의 종말은 금방, 쉽게 일어날 수 있다. 무관심한 부모와 무시하는 어른, 자체의 언어와 법과 이미지로 절망을 강화하는 세상에 어린 나이라는 취약성이 더해지면 파멸로 이르는 길은 확정적이다.-저자 서문 - P8
네 시간이 남았고, 시간은 파리 끈끈이에 붙은 각다귀처럼 용을 썼다. 그러니까 생명줄을 놓지 않으려 기를 쓰다가 기운이 빠지며 천천히 죽어가는 것이다. - P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