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벌 떼과부가 따로 읎어”
역경을 헤쳐나가는 억척스러운 여성을 빗대어 이르는 충청도 속담

청주의 내덕동 일대의 옛 이름은 안덕벌이었다. 6.25전쟁 직후안덕벌에 남편을 잃은 여성들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당시에는 ‘과부촌‘이라 불렸다.) 남편을 잃은 안덕벌의 여성들은 애를 들쳐 업고 두부를 팔면서 삶을 이어 나갔다고 한다. 그렇다면 안덕벌에는 어떻게 남편과 사별한 여성들이 모이게 되었을까.

그 배경에는 보도연맹 학살 사건이 있다. 1948년에 국가보안법에 따라 구성되었던 국민보도연맹은 ‘극좌 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사상 전향시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명분으로 좌익 성향을 가진 사람을 가입시켰다. 보도연맹원 가입은 할당제로 이루어져 지역공무원들은 좌익 성향과 관계없는 일반인도 가입시켰다. 전쟁 직전에는 가입자 수가 수십만에 이르렀다. 전쟁이 발발하자 정부와 군은 보도연맹원들이 인민군에 협조할 것을 우려해 이들을 무차별로 살해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을 포함한 일반인이 최소 10만 명 이상 사망했다. 전국 곳곳에서 법적절차 없이 즉결 처형이라는 형식의 집단 학살이 일어났다. 충남 홍성군 담산리, 충북 청주시 분터골 등 충청 지역도 대량 학살의 예외가 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청주의 안덕벌에서만 40여 명의여성이 남편을 잃었다. 남편을 잃은 이들이 애를 들쳐 업고 콩나물이나 두부를 팔며 생계를 잇는 장면이 일대 주민들에게 각인된것이 이 속담의 유례다.

매년 보도연맹 희생자의 유해가 수백 구씩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들려 온다. 억울한 누명을 안고 죽은 사람과 유족들의 한은언제 풀릴까.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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