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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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쇄 살인범의 이야기를 읽은후에 찾은 것은 가벼운 읽을거리였다. 잡지에나 실리는 연애이야기 말고, 놀란 가슴을 달래줄 밝은 이야기였다. 내친김에 일본 소설 하나 더, 하고 고른 것이 바나나의 키친이다.  

얼마나 경쾌한 이름 인가! 바나나...그녀의 흑백 사진은 그냥 보통 40대 일본 아줌마인데 과연 그의 감각이 나를 그 발랄함으로 감쌀수 있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발랄함은 그녀의 이름뿐이고 책 속엔 상처받고 외로운 섬세한 감성의 주인공이 있었다. 그 친구들도 어색한 번역 만큼이나 (일본어를 모르니 이문체가 계산된 바나나 스타일이라면 번역자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그 주인공 주변에 따로 따로 서 있다.

너무나 센서티브 한 사람들은 사랑하는 가족의 갑작스런 죽음을 힘겹게 극복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 방법으로 요리를 하거나, 여자로 성전환을 하거나, 여자친구의 세일러복을 입거나...또, 아니면 새벽에 조깅을 한다. 그리고 그 위태위태한 견딤 속에 가까스로 사랑을 보듬어 안고, 기운을 차린다. 
 절대, 발랄한 현대소설은 아니었다. 어느정도 다자이 오사무 스타일의 (일본판 프루스트) 염세주의가 보인다. 슬프게도, 내가 바랬던 따스함은 없었다. 인물들의 대사도 저마다 외로운 메아리를 치는 듯하다.

"모방범"을 읽은 뒷맛이 아직 남아서인지, 한밤중 친구를 위해 돈까스 덮밥을 들고 뛰는 주인공이 행여나 밤길에 험한 꼴을 당하지 않을까 괜히 맘졸였다. 이런 내 몹쓸 독서 태도 때문에 감동 스러워야할 영혼의 만남도 그저 그런 장면으로 남는다.  그들은 바나나의 섬세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섬세함이 지나쳐서 읽는 내내 겉도는 기분은 어쩔수가없다. 너무 섬세하고 가녀려서 그들은 훅 불면 날아가 버린다. 그리고 그 자리엔 얼마전 뉴스에서 비판하던 지나치게 화려한 장정의 책만 남는다. 책은 무겁다. 그리고 내 마음도 아직 무겁다.

"참을수 없는 책의 무거움" -kbs 취재파일 4321
http://news.kbs.co.kr/article/culture/200807/20080713/15957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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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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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0쪽을 넘는 양이지만 사흘안에 읽을 수 있었던건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작가의 글솜씨가 좋은 번역가를 거쳤기 때문이다.

날이 더워지니 왠지 공포물이 생각났고 미야베 미유키의 신작 "낙원"이 메스컴을 타길래 읽어볼까 하다가 대신 전작인 이 책을 골랐다. 일본 소설은 많이 읽지는 않아서 일본추리소설의 스타일을 잘 모른다. (추리소설 매니아인 친구는 일본추리소설은 최근 몇년에서야 성립된 "모방"작들이며 읽을 가치를 못느낀다고 했지만 그래도 난 읽었다) 예상외로 일찍 밝혀지는 범인들때문에 역시나(?) 별로 추리물 같지는 않았지만 억지스럽게 잔혹한 범행장면 없이도 은근한 공포를 느꼈다. 그건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나고 있는 여성 납치 살인극이 중심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얼마전 잡힌 강화 모녀 살인사건의 범인들 체포 뉴스가 책장에 오버랩되는 기분이 들었다. 

범인의 어두운 내적 비밀이 독자의 동정심을 불러 일으키지도 않는다. (안된 놈이긴 하지만 이 책은 이 놈의 인간극장은 아니다) 또 무리해서 사회의 잔혹성을 분석하지 않고, 도리어 그런 범죄의 해석을 현학적 도피라고 떳떳하게 이야기 해주는 두부집 할아버지가 듬직하다. 그래서 주인공인가 싶었던 극중 "저널리스트"는 막판 범인과 맞장을 뜰 때 조차 영웅으로 등극하지 못한다. 하지만, 3권에서 범인이 밝혀지는 (독자들이야 진작에 알았지만) 과정이 1,2권에서 지켜왔던 긴장을 갑자기 놓아버려서 어이없기도 하다. 왜 이리 쉽게?

억울한 목숨들, 그리고 질기고 악랄한 목숨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다들 너무 덧없고 슬프게 가볍다. 이런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없어지길, 그래서 그저 살인범 이야기가 무더운 여름날의 납량특선으로 저 멀리 책장속에서, 영화관에서나 존재하길 바란다.

사족1  :  세음절 이름에 익숙한 나는 여섯 아니면 여덟 음절의 비슷 비슷한 일본 이름에 자꾸 책 앞으로 되돌아가서 이게 누구시더라를 해야했다. 책 제일 앞에 등장인물을 넣어 줬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아무아무개 - 범인 할 수는 없겠지.

사족2 : CSI 에 익숙한 독자로 경찰의 수사방법에 조바심이 났더랬다. 과학수사 좀 해봐. 왜 그 사람을 의심하면서 뒷조사는 그 나중에 했남? 그리고 성문감식은 왜 하다 말고? 일본넷티즌은 한국넷티즌보다 약한가? 왜 그리 조용했대?

사족3 : 2권을 읽을때만해도 낙원을 꼭 주문해야지 했는데, 뒷심이 딸린 3권 덕에 지름신은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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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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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명작 리스트의 책들중 늘 읽었다고 착각하고 제껴두었던 제인 오스틴. 그녀의 책은 너무 익숙해서 다른 책보다 독서 순서에서 밀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영화로 만들어진 오만과 편견을 보았고 내친김에 어린시절의 세계명작 리스트를 주문했다.

클래식.

주말드라마에서 흔히 보이는 구조가 나온다. 배경의 차이, 교양없는 여자쪽 집안 사람들, 하지만 오만스러운 실장님(!)은  사실 발랄한 여주인공의 매력으로 인해 모든것을 극복할 준비가 되어있다. 실장님의 오만은 편견을 낳지만 극렬한 반대파 이모님 덕에 해피엔딩이다. 그래도, 이틀만에 설겆이를 쌓으면서 읽은 이유는 깔끔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악역을 자쳐하는 빙리양이나 에컴씨가 있었지만 리즈양이 생각보다  더 솔직하고 덜 내숭이었기 때문이다. 넓고 격조있는 다아시의 저택과 영지를 둘러보고 자기가 튕겨버린 복덩이를 씁쓸해 하는 장면이나 자신의 매력(?)을 그다지 믿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천방지축 된장녀 리디아의 상대격으로 공부한 티를 내지 않았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아주 어렸을 적에 읽고 또 읽었던 "작은 아씨들"이 생각났다. 하긴, 거의 모든 소녀들은 조이에게서 자기를 보았으니까, 그러고 보면 많은 숙녀들은 리즈에게서, 더 중요하겐 다아시부인으로서의 리즈 에게서 자기를 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오만해 보이는 남자, 많은 것을 가졌지만 약간 쓸쓸해 보이는 남자, 그런 남자가 모든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나를 택해준다면, 난 매달릴 필요도 없다면!
사실 이 모든 것들이 여자들의 연애에 대한 환상, 편견일 것이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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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 어린이 경제동화 1
보도 섀퍼 지음, 김준광 옮김, 신지원 그림 / 을파소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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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두살 나이가 제목에 들어가서 선택했다, 또, 경제 교육을 시킬 수 있다면 더 좋을 듯했다. 작년에 읽게했던 책 "돈은 고마운 친구"의 이야기 버전이라고 생각했다.
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382188&CategoryNumber=001001016002012008

돈의 단위를 우리 나라의 원 으로만 바꾸었을 뿐이지만 주인공 열두살 소녀 키라는 (서양 아이의 만 나이일테니까 중학교 1학년생 쯤인것 같다) 우리나라 초등 5학년 보다 훨씬 성숙하게 느껴진다. 적당한 판타지 요소 (말하는 개!)와 우연들 (부자 친구들의 풍성한 선물과 알찬 경제 상담) 은 읽어 나가기에 부담이 없지만 우리집 초딩에게는 어째 좀 황당한 기대감을 심겨주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키라가 진짜로 부자가 될 수 있는 이유는, 펀드계좌의 잔액의 문제가 아니다. 키라가 "머니"와 만난 후 얻은 자신감과 꿈으로 나아가는 길을 구체적으로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 진행 사항으로 노트 적기는 꼭 필요하다는데, 어째, 요즘 유행하는 책들 (시크릿, 꿈꾸는 다락방,....)이 생각났다. 아니, 정말 이거야 말로 진짜 비법아닐까! 결론은, 이책은 12살용은 아니다. 하지만 12살이 읽어보고 2년후 한 번 더 읽으면 좋을 책이다. 책 후반부의 펀드나 주식이야기 보다도, 어떻게 해서 키라가 자신이 "부자"라고 느끼게 되는지가 중요하니까. 

그런데, 책 내용중 "드러내놓고" 돈을 좋아한다거나, 돈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넘쳐나서 좀 거북했다. 어째 좀 덜 가진 사람들은 덜 현명하고 더 게을러서 그렇다는 얘기 같기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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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지지 않는 실
사카키 쓰카사 지음, 인단비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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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자는 추리 소설이라고 했다.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7584

그런데, 주인공의 1년의 좌충우돌 세탁소 승계일지인 네 가지 이야기를 읽고 있는 동안 "추리"는 별로 안 하게 된다. 그저, 아..봄에는 이렇구나, 여름엔 차가운 맥주가 제맛이지,카페 로키의 커피는 얼마나 맛있을까, 본 가을 축제때 야끼우동은 맛있겠다, 그리고 겨울의 붕어빵...일본에는 그 안에 삶은 계란 반쪽을 넣기도 하는구나, 하는 잡다하고 (거의 먹을거리에 집중되는 나의 일차원적 관심이란 - - ;;) 일상적인 생각이 들 뿐이다.

추리라고 해봤자, 그 흔한 살인사건이나 도난사건도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저, 가정불화 (아, 큰일이긴 하구나.) 패션이 어색한 막 독립한 대학졸업생, 이젠 퇴물이 된 마술사, 그리고 과거를 숨기는 다림질의 달인. 

이런 사건(!)들은 아주 예리한 눈썰미가 아니면 묻혀버리기 일쑤인데, 우리의 작가님은 이 소소한 일상의 떨림을, 그 미세한 파동을 잡아서 하나씩 둘씩 일러준다. 

주인공은 탐정도 아니고, 그저 자신 앞에 나타나는 "도움이 필요한 생명체"에게 태생적으로 손을 내미는 아주 따스하고 또 "그냥" 일상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는 이런 "일상적인" 사람이 아직....없는 것 같다.

마음이 푸근해 진다. 사건이래 봤자 범인도 딱히 없고, 벌 줄 사람도 딱히 없어서, 옆에서 엿보는 독자인 주제이지만 어째 한 방안에서 (아니면 의례의 그 카페 로키에서) 따뜻한 카레 오므라이스를 먹는 옆 테이블 손님이 된 기분이다.

작가는 자기의 프로필이나 사진, 실명 등을 공개하지 않는다했다. 와, 이거 멋진걸, 생각했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선, 그게 뭐 그리 큰 대수일까 싶다. 우린 그저 그가 나누어 주는 이 따뜻한 소설에 속이 푸근해 지면 그뿐 아닐까.

하지만, 왠지, 내일 아침 집 앞을 "세~탁~" 하면서 지나가는 동네 세탁소 아저씨랑 눈을 마주치기는 조금 (아주 조금) 조심스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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